임해가 고개를 끄덕이고 얘기했다.“아버님은 걱정하지 마십쇼. 제가 이미 사람을 시켜 경기도의 모든 인력을 동원하여 알아보라고 했으니 곧 소식이 있을 겁니다. 임수환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제대로 알아보기 전까지, 그는 절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부대의 대장이던 그는 보통 사람처럼 충동적이지 않았다. 임수환의 태도를 본 대표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한숨을 돌렸다. 솔직히 말하면 CY그룹이 있는 한 그들은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한다. 너무 대놓고 나서면 안 된다. 그래서 그들은 하루하루가 숨 막히는 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임수환이 나서기만 한다면 CY그룹은 곧 없어질 것이었다.그러면 그들은 성남에서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것이다. 특히는 앞으로의 투자유치대회에서 가질 수 있는 이득은 다 손에 넣어 벌 수 있는 만큼 벌어들일 것이다. 성남을 위해서 공헌하라고?웃기는 소리!그들은 남 좋은 일을 하기 위해 성남에 모인 것이 아니다. 그저 돈을 벌기 위해서이다. 다른 사람들은 식량이 없어 굶어 죽지만 그들은 돈이 없으면 죽을 사람들이다. 이건 농담이 아닌 진심인 말이다. ...공항을 떠난 후, 견후는 성남 호텔의 로얄 스위트룸에 와서 흥분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재미있군! 임수환 어르신이 왔을 뿐만 아니라 그의 양아들과 그가 키운 4대 장병도 왔으니. 성남에서 크게 한바탕 해볼 생각인 건가! 우리는 무조건 로열 가든 그룹을 손에 넣을 것이다!”부산 견씨 가문에게 있어서 성남은 그저 자원이 풍부한 디딤돌 같은 것이었다. 성남부터 시작해서 경기도 전체를 먹어버릴 수 있는 생각을 했기에 그들은 한시라도 빨리 성남을 손에 넣고 싶었다.그리고 로열 가든 그룹은 부산 견씨 가문이 심사숙고해서 고른 회사였다. 한 개 도시의 발전에 있어 부동산은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로열 가든 그룹이 성남 부동산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니 다른 가문과 세력도 눈독을 들이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로열 가든
에디의 말을 들은 견후는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좋습니다. 에디 씨가 이렇게 얘기하시니 그럼 부산 견씨 가문을 대표해서 허락하죠. 하지만 앞으로 로열 가든 그룹의 장악권이 라벤더 재단에 들어갈 것이니 이번에 로열 가든 그룹을 치는 것도 라벤더 재단에서 먼저 손을 쓰는 것이 어떻습니까?”에디가 웃으면서 얘기했다.“견후 씨는 걱정하지 마십쇼. 우리는 진작에 계획해 놓았습니다. 한국인들의 심리는 제가 가장 잘 알아요. 그러니 저를 믿으세요. 제 계획대로라면 로열 가든 그룹은 곧 바람 잘 날이 없을 겁니다.”말을 마친 에디는 의기양양해하며 떠나갔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견후가 차갑게 웃었다.견후의 비서가 옆에서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도련님, 라벤더 재단의 외국인들은 너무 예의가 없습니다. 로열 가든 그룹의 장악권을 가지려고 하다니, 우리를 자기들 일꾼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까!”견후가 담담하게 얘기했다.“조급해하지 마. 아직 일이 끝난 것도 아니니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거다. 지금의 로열 가든 그룹은 CY그룹 김세자가 배후에 있으니 보통 사람들이 건드릴 수 없는 거야.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들을 시켜서 간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앞으로 지켜보기만 하면 돼. 정 안 되면...”말을 하던 견후는 목을 긋는 제스처를 했다.그들에게 있어서 친구란 없다. 그저 눈앞의 이득을 취할 뿐이다. 라벤더 재단이 일을 성사하면 좋고 성사하지 못하면 부산 견씨 가문이 나서면 된다. 견후의 말을 들은 그의 비서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이렇게 보면 도련님이 많이 성장한 것이 보였다.견후는 와인잔을 들고 창문가로 걸어갔다. 멀지 않은 곳에 로열 가든 그룹의 건물이 보였다. 그곳을 응시하던 견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정민아, 마음 놓고 기다려. 결국 로열 가든 그룹은 내 것이고 너도 내 것이 될 거니까! 성남의 모든 것은 곧 우리 부산 견씨 가문의 것이 된다!”...로열 가든 그룹.정민아는 미간을 찌푸린 채 좋지 않은 표정으로 손 안의 자료를 쳐다
종유가 이번에 로열 가든 그룹의 공사장에 온 것은 정민아 때문이었다.그는 이곳에 오기 전에 라벤더 그룹의 에디와 한번 만났다.그분의 뜻대로라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정민아가 한 파티에 참여하게 해야 했다.그리고 그 파티에서 라벤더 재단은 정민아를 시켜 로열 가든 그룹을 내놓게 할 것이다. 종유는 정민아가 그저 워킹걸인 줄 알았다.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그러자 종유는 이 기회에 미녀를 안아보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종유가 일부러 정민아를 뚫어져라 보면서 물었다.“이분은?”그와 싸우고 있던 공사 현장의 사람이 콧방귀를 뀌며 얘기했다.“이분은 우리 로열 가든 그룹의 정민아 대표다! 이곳은 다 저분의 것이야. 여기는 저분이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는 곳이야!”종유가 얘기했다.“아, 이분이 바로 대표인가? 얼른 오라고 해! 이 일은 네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그러니 얼른 대표를 불러와.”그렇게 말하면서 종유는 정민아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그는 평소에도 자신의 권력으로 여자를 협박하기 좋아하는 변태 같은 남자였다.지금 생각해 보면 그와 잠자리를 가졌던 여자들은 다 정민아보다 못했다.제일 중요한 건, 이 여자의 일이 지금 그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이었다.그가 이 여자를 살려주고 싶으면 살리는 것이고 죽이고 싶으면 죽일 수도 있다. 그 생각에 종유는 이미 정민아와 함께 침대를 뒹구는 상상까지 했다.다른 사람이 정민아를 소개해 주기도 전에 종유는 머리를 쓱 정리하고 성큼성큼 걸어 정민아 앞으로 와 손을 내밀며 인사했다.“안녕하세요, 이번에 팀을 데리고 현장 검사에 나온 성남 신도시 거주 계통 이인자, 종유라고 합니다.”종유는 이미 승자의 미소를 얼굴에 띈 채 정민아의 반응도 한번 볼 겸 손을 내밀었다. “종유?”정민아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부동산을 하는 그녀가 종유를 모를 리 없었다.종유는 성격이 괴팍하기로 소문이 나 정민아도 잘 알고 있었다.그러자 정민아는 싫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펑 소리와 함께 찻잎의 포장이 깨졌다.종유는 그것을 가리키며 차갑게 웃고 얘기했다.“정 대표님, 이게 무슨 뜻입니까? 나, 종유는 항상 청렴결백하게 살아왔습니다. 밖에서 시민들의 뇌물을 받아먹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런 것으로 저를 모욕하다니. 지금 당장 공사장의 시공을 멈춰주셔야겠습니다. 그리고 합법적인 허가를 받으면 계속 하든지 하세요. 그리고 오늘의 일은 그대로 위에 보고할 테니 앞으로 로열 가든 그룹에서 또 이런 짓을 한다면 파산할 각오는 해야 할 겁니다!”말을 끝낸 종유가 화를 씩씩 내며 몸을 돌리고 떠났다.정민아는 놀라서 그대로 굳었다. 그녀는 종유가 이런 태도로 나올 줄 몰랐다.그녀는 종유를 조사해 본 적이 있다. 그래서 그의 일 처리 방식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본 그의 모습은 조사했을 때와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하지만 정민아도 이 바닥에서 오래 일 했기에 바로 종유를 따라가서 웃는 얼굴로 얘기했다.“종유 님, 오해하셨습니다. 제 비서가 물건을 잘못 가져온 것 같아요... 이건 저희의 잘못이니 꼭 사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시공 허가는, 전에 기관과 합의한 대로 시공을 진행하면서 허가를 맡도록 했습니다. 그래야 재건설 프로젝트의 속도를 올리고 사람들이 새로운 집에서 살 수 있게 말입니다. 이건 예외의 일이니 한 번만 눈 감아 주시면 안 될까요?”종유는 차갑게 웃었다.“예외의 일인지 아닌지는 모르겠고, 모든 일은 법대로, 규정대로 해야 한다는 것 모릅니까? 법을 어겼으면 그 책임을 져야죠!”이때 현장의 사람이 달려와 작게 얘기했다.“정 대표님, 절대로 시공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전기를 끊는 순간, 적어도 몇십억의 손해가 날 겁니다. 그리고 후에 다시 시공하면 시공 질량과 속도에 다 영향 줄 겁니다.”정민아도 그건 알고 있었다.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겨우 웃음을 짜내며 물었다.“종유 님, 그러면 여기까지 검사하러 오신 김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정민아는 어쩔 수 없이 총총걸음으로 종유를 따라가 입을 열었다.“종유 님, 제가 불편해할 리가 있나요. 그러면 오늘 저녁에 제가 식사를 대접하는 것으로 하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종유의 얼굴에 승리자의 미소가 드러났다. 정민아가 드디어 미끼를 물었다. 종유는 정민아를 위하는 척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이렇게 하죠. 내가 이 지역을 담당하는데 정 대표님이 나를 식사 대접 한다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게 되면 큰일 날 겁니다. 오늘 밤 마침 큰 파티에 참석할 예정인데 참가하는 사람들이 다 성남의 거주 계통의 윗사람들과 건축업의 사람들이니 정 대표만 괜찮다면 와서 같이 파티에 참석하는 것으로 하죠.”정민아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부동산 업계와 관련된 파티이니 참석한다면 로열 가든 그룹에도 좋은 일이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얘기했다.“얘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밤 무조건 제때 도착하도록 하겠습니다!”“그래요. 저녁에 그곳에서 기다릴게요.”종유는 주소와 전화번호를 남기고 등을 돌려 떠나갔다.그리고 차에 탄 종유는 얼른 한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공경한 표정을 지으며 종유가 얘기했다.“에디 님, 명령하신 대로 처리했습니다. 그 여자는 오늘 꼭 파티에 참석할 겁니다.”“잘했어. 수고했네.”전화기 너머의 라벤더 재단의 에디가 눈을 가늘게 뜨고 얘기했다.“약속대로 남은 1억을 보내주지. 오늘 밤, 나의 말에 잘 따라야 할 거야. 이 여자를 잘 구슬려서 로열 가든 그룹을 손에 넣을 거니까!”종유는 굽신거리며 얘기했다.“에디 님이 나서시는 일인데 착오가 날 리 없습니다! 그리고 감히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에디 님께서 허락해 주실지...”“말해봐.”에디가 차갑게 얘기했다.종유는 두꺼운 낯짝으로 얘기했다.“에디 님, 이 여자가 너무 아름다워서 그러는데... 오늘 밤 떨어진 콩고물이라도 주워 먹을 수 있을까요?”“그건 당연히 문제없지. 하하하.”두 사람은 통화를 하면서 웃음을
“이분은 로열 가든 그룹의 정 대표님이 아니에요? 정 대표님이 재건설 프로젝트를 건네받았다고 들었는데, 역시 대단하신 분이네요!”“보통의 부동산 기업이 어떻게 이런 운과 실력이 있겠어요.”잘나가는 부동산 기업들의 사람이 모여들어 정민아를 우러러보았다.정민아는 그저 미소를 지어 보였다.이런 사람들은 비즈니스석에서 몇 번 만난 적이 있는데 다들 친하지 않았고 전혀 접점이 없었다.사람들이 계속 말하고 있을 때, 벤틀리의 조수석 문이 열리고 김예훈이 내렸다.한순간이었지만 모든 사람들이 멈칫했다.임윤서의 사건 때문에 부동산 기업의 사람들은 김예훈이라는 데릴사위에 대해 잘 알았다.하지만 부동산 업체의 파티에 정민아가 이 데릴남편을 데리고 올 줄은 몰랐다.그러나 너무 이상해할 것도 없었다. 이미 여러 번 이런 상황을 겪은 정민아는 익숙했다.이런 파티에 김예훈을 데려가면 불필요한 걱정을 덜 수 있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데릴사위 김예훈인가?”이때 부동산 기업들의 사람 뒤로 정갈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걸어왔다.바로 성남 신도시 거주 계통의 이인자인 종유였다. 그는 정민아만 파티에 초청했다.하지만 정민아가 김예훈을 데리고 파티에 참석할 줄 몰랐다.종유가 나타나자 부동산 기업 사람들은 엄마를 찾은 아기새처럼 든든한 버팀목을 찾은 기분이었다.“정 대표님, 내가 정 대표님을 위해서 하는 말인데, 이런 장소에는 쓰레기 남편을 데리고 오지 않는 게 낫지 않습니까? 우리 파티에 참석할 수 있는 사람들은 다 잘나가는 부동산 기업의 사람들인데 이렇게 함부로 사람을 데려오면 앉을 자리도 없잖아요.”“앉을 필요가 없죠. 그대로 웨이터나 하면 되겠네요.”사람들은 말하며 웃으며 김예훈을 놀림거리로 삼았다.종유도 웃음을 지으며 김예훈을 훑어보았다.김예훈이 왜 왔는지 모르겠지만 그저 몇 번 짓밟아 주면 되는 문제였다.사람들의 비웃음 속에서 정민아의 낯빛이 어두워졌다.하지만 김예훈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광대도 아닌데 매일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여보!”정민아는 고개를 돌려보더니 한마디 외쳤다.김예훈이 웃으면서 그녀를 따라갔다.그가 오늘 여기로 온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정민아와 함께하기 위해서이다.부동산 업계 파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그에게 있어서 이 파티는 그저 어린아이 소꿉놀이처럼 보여 사람들과 어울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곧이어, 그들은 호텔 3층에 도착했다.3층에는 개별적인 룸만 있었다. 평일에는 몇 개월 전부터 예약해야 여기의 룸을 잡을 수 있었다.이 자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대형 부동산 회사의 임원들이 있는가 하면, 소형 부동산 회사의 대표, 스타 셀러도 있었다.성남시 부동산 업계에서 유명한 사람들은 다 이곳에 모였다고 할 수도 있다.이 사람들이 회의를 한다면 어쩌면 내일 성남시 현지 부동산 시장의 흐름을 바꿀 수도 있을지 모른다.정민아를 본 사람들은 저마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로열 가든 그룹은 성남시 부동산 업계에서의 위상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이것이 바로 부산 견씨 가문에서도, 라벤더 재단에서도 로열 가든 그룹을 손에 넣고 싶어 하는 이유였다.이때, 부동산 업계 사람들은 모두 존경의 눈빛으로 정민아를 바라봤다.정민아는 얼굴과 몸매가 완벽할 뿐만 아니라 그녀는 성남시 부동산 업계에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심지어 이곳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로열 가든 그룹에 의지하며 살아야 했으니 그들은 정민아를 보고 눈을 반짝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심지어 어떤 사람은 정민아를 손에 넣으면 앞으로 열심히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환상을 했다.사람들이 정민아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정민아도 여유롭게 잘 대처하는 모습에 김예훈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그는 정민아가 그동안 힘든 나날을 보내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힘든 나날을 겪은 후, 정민아는 예전보다 훨씬 많이 성숙하고 이성적으로 변했다.‘이대로 계속한다면 앞으로 내가 없어도 민아는 스스로 큰 업적을 이룰 수 있겠는데? 그때면 내 정체를 밝힐 때가 되겠군.’지금 보니 그때까지 시간이 그리
이때, 누군가가 웃으면서 말했다.“이건 어때요? 요즘 우리 공사 현장에서 마침 벽돌을 나르는 일꾼을 찾고 있어요, 한 달에 100만 원은 나올 거예요. 정 대표님의 체면을 봐서 월급은 두 배로 올려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조건 있어요. 그건 바로 당신이 정 대표님의 곁을 떠나는 거예요. 정 대표님의 인생이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허비되는 건 절대 참을 수 없어요!”분명 이 말을 한 사람은 정민아를 오랫동안 흠모해 왔을 것이다.하지만 정민아는 이미 결혼했기 때문에 그에게 기회가 없었고, 지금은 김예훈을 핍박하기 가장 좋은 기회였다.그의 말을 듣더니, 다른 부동산 업계 사람들도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우리 동네에도 청소부가 한 명 부족한데 한 번 생각해 봐요...”“우리는 짐꾼이 필요합니다...”정민아는 참다못해 말했다.“여러분, 남편을 이 모임에 데려오려고 한 건 저입니다... 남편이 부동산과 관계된 지식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데려왔으니 같은 업계 사람들끼리 저를 너무 난감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편견을 갖고 제 남편을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편견이요? 저희는 정 대표님이 안쓰러워 그러죠. 이 남자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해서 대표님 마음을 홀린 거죠? 이 남자를 따른다면 결국 행복하지 않을 거라는 걸 몰라요?”누군가가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만 해요, 이 얘기는 그만하죠. 오늘 다들 우리 성남시 부동산 업계의 미래를 얘기해 보려고 이 파티에 참석한 거잖아요. 너무들 예민하게 굴지 마시죠?”종유는 괜한 얘기가 너무 길어지자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그러고는 예의를 갖춰 정민아에게 옆에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하지만 정민아는 그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김예훈의 곁에 앉았다.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종유의 직장 동료인 전정민이 종유 옆에 앉고는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종유 씨, 아마도 매력 부족인가 봐? 오늘 정민아를 쓰러 눕히려고 이 파티에 부른 거 아니었어?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