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창밖에서 부드럽게 쏟아져 들어왔고, 도윤은 빛을 등진 채 앉아 있었다. 햇빛은 그의 주위에 부드러운 금빛을 입혔다.도윤의 딱딱한 이목구비도 지금 많이 부드러워 보였는데, 그는 그곳에 조용히 앉아 있었고 주위에는 작은 먼지가 흩날렸다.이 순간, 도윤은 마치 시간을 거슬러 다시 지아를 처음 본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그러나 불과 2 년 사이, 두 사람은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기나긴 침묵은 인사를 대신했고, 도윤은 지금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다 기억났어?”“응.”지아의 눈빛은 이미 변했고, 강인하면서도 차가웠다. 그녀는 직접 입을 열었다.“이도윤, 만약 약간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날 놓아줘.”도윤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니나 다를까, 지아가 기억을 회복한 후 가장 먼저 하려는 일이 바로 자신을 떠나는 것이었다.“지아야, 네가 날 미워한다는 거 나도 알아. 하지만 지금 네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그러니 내가 널 가두고 싶은 게 아니라, 너를 놓아줄 수 없는 거야. 약속할게, 네가 몸이 좋아지면 난 즉시 너에게 자유를 돌려줄 거야. 지금은 반드시 치료에 협조해야 해.”지아는 차갑게 웃었다.“그때 가서 날 놓아준다고?”그녀의 질문은 따끔했다. 도윤이 지아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그녀 역시 도윤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만약 내 상황이 위급하지 않았다면, 이도윤은 또 어떻게 내 기억을 회복할 수 있었겠어. 설령 내 병이 정말 완치됐다 하더라도, 그 남자는 더욱 손을 놓을 수 없을 거야.’“응.”도윤은 몸을 굽혀 지아의 두 눈을 응시하며 또박또박 말했다.“네가 완치될 수만 있다면, 나는 널 놓아줄 수 있어.”말을 마치자마자 도윤은 화제를 돌렸다.“그러나 지금은 아니야. 지금 네 몸은 많이 허약하니까 이곳에서 휴양해야 해. 배고프지, 내가 이 집사더러...”지아는 망설이지 않고 그의 말을 끊었다.“이도윤, 난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니까 제발 날 놓아줘.”도윤은 멈칫하더니 발걸음을 재촉했다.문이 가볍게 닫히자
이 집사는 지아가 음식을 먹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무척 기뻐했다.지아는 이번 주 내내 식욕이 별로 없었으니 이것은 정말 좋은 현상이었다.그러나 지아는 지금 음식을 조금도 먹고 싶지 않았지만,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지아가 음식을 마구 씹어 먹는 것을 보고 이 집사는 매우 뿌듯했다.“그래요, 많이 먹어야 면역력이 떨어지지 않죠.”지아는 너무 빨리 먹어서 구역질이 났고 또다시 토해냈다. 그녀가 힘들게 토하는 것을 보고, 이 집사도 마음이 아팠다.“작은 사모님, 이따가 다시 드시죠?”지아는 물을 마신 후, 또다시 먹기 시작했다.암 환자들은 후기에 이르러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먹지 않을수록 신체의 저항력이 떨어져 암세포가 더욱 날뛸 것이다.그렇게 지아는 먹고 토하고 또 계속 먹었다. 그녀는 오직 하나의 신념밖에 없었다. ‘난 잘 살아야 해.’도윤은 지아가 기억을 회복한 후, 자포자기하고 치료를 거부할까 봐 가장 두려웠는데. 이 집사의 말을 듣고, 지아가 다시 희망을 불태워 죽음과 타협하지 않으려는 것을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래요, 지아에게 무슨 일 있으면 가장 먼저 나에게 알려줘요.”“안심하세요, 도련님.”이때 지아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무슨 일 있으면 나에게 직접 물어봐.”도윤은 문 앞을 바라보았고, 지아는 휠체어에 앉아 침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이 집사는 어쩔 수없이 떠났다. 도윤은 지아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헤아릴 수 없어 먼저 가서 그녀에게 인사했다.“지아야, 네가 날 이렇게 찾아오다니, 정말 고마워.”“내가 전에 쓰던 핸드폰 돌려줘.”도윤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그리고 약병도 돌려줘. 전에 너도 섬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난 너에게 안에 비타민이라고 말했지. 사람 시켜 얼른 가져다줄 순 없어?”“그 병안에 뭐가 있는 거지?”일이 이렇게 된 이상, 지아도 도윤을 속일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또박또박 말했다.“난 2년 전에 죽었어야 했는데, 내가 어떻게
그때 소시후는 가면을 쓰고 독충의 기지로 들어갔으니, 천웅의 스폰서란 그의 신분을 아는 사람은 아마 얼마 없을 것이다. 심지어 소시후의 가족들도 모를 가능성이 있었으니 지아는 이런 방법으로 떠볼 수밖에 없었다.아니나 다를까 소시언은 영문 몰라 하며 머리를 긁적거렸다.“천웅이요? 그게 뭐죠?”“그냥 물어본 것이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대표님은 몸이 많이 안 좋나요?”지아는 2년 전 소시후의 초췌한 얼굴을 떠올렸다. ‘벌써 2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마땅한 신장을 찾지 못했을 리가 없잖아?’소씨 가문과 같은 지위로서 그 어떤 수단을 사용하든 적합한 신장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소시언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네, 일이 좀 복잡해졌네요. 지아 씨 무슨 수요가 있으면 나한테 말해요.”지아는 몇 마디 물었지만, 그들은 너무 익숙한 사이가 아니었기에 소시언도 소시후의 상황을 많이 밝히지 않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천웅을 의지할 수 없다면 그녀는 지금 주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지아는 오랫동안 잠잠했던 채팅 기록을 보며 먼저 한 걸음을 내디뎠다. 전에 그녀의 문자에 칼답장을 하던 주원 역시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의 번호도 이미 사용되지 않는 번호로 되었다.지아는 휴대전화를 쥐고 멍을 때렸다. ‘설마 나 정말 이대로 죽어야 한단 말인가? 지금 아무런 방법도 없어.’도윤은 어느새 지아의 뒤에 나타나더니 현재의 상황을 설명했다.“소시후의 생사는 지금 알려지지 않았고, 주원은 K국으로 간 후 행방불명으로 되었어.”지아는 안색이 어두워졌고, 잠시 후 씁쓸하게 웃었다.“어쩌면 이것이 나의 운명일지도 몰라. 하느님조차 날 도우려 하지 않잖아.”도윤은 마음이 무척 안쓰러웠다.“지아야, 나 이미 일손을 더 파견하여 주원을 찾고 있으니 반드시 그를 무사히 데리고 나올 거야.”지아는 오히려 그에게 반문했다.“만약 내가 그날까지 버티지 못한다면?”도윤은 침묵했다. 그는 이 결과를 감히 생각하지 못했고 그럴 용기조차 없었다.“사람은 결국 죽는
“말해 봐, 내가 도울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도와줄게.”지아는 건우의 귓가에 대고 무슨 말을 했고, 건우는 걱정스러운 기색을 보였다.“정말 그렇게 할 거야?”“선배, 죽든 살든 난 꼭 이곳을 떠나야 해요.”“좋아, 그럼 나도 최선을 다하지.”도윤이 재차 지아의 혈액 검사 보고서를 받았을 때, 엄청난 의혹에 잠겼다.“지금 적혈구와 백혈구의 수치는 이미 상승 중이고, 각 수치도 모두 호전되고 있는데, 지아는 대체 무엇 때문에 아직도 침대에서 내려올 수 없는 거지?”양요한도 고개를 저었다.“이치대로라면 사모님은 지금쯤 걸으실 수 있을 텐데요.”건우는 싸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약물치료에 쓰이는 약이 얼마나 독한지 알아요? 암세포뿐만 아니라 지아의 정상적인 세포까지 전부 소멸되었어요. 한 번의 치료만으로도 이미 지아의 몸을 크게 다치게 했으니 그동안 지아는 무릎이 시릴 뿐만 아니라 손발까지 차가웠다고요. 이제 겨우 20여 일밖에 안 됐으니 침대에서 내려올 수 없는 것도 정상이죠. 신체에 입은 손상은 몇 개월 만에 좋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2년 이상은 걸려야 해요. 어떤 환자들은 7, 8년 동안 약물치료의 부작용에 시달렸고요.”양요한은 전문적인 종양과 의사가 아니었기에 프로인 건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사모님께서 지금 호전된 것은 이미 좋은 일이니, 지금 감기처럼 빨리 회복되길 바라는 건 말이 안 되죠.”도윤은 피곤함에 눈살을 비볐다.“내가 너무 조급했나 보군.”“그래요, 대표님. 현재 사모님의 상황이 안정된 것만 해도 이미 불행 중 다행입니다. 몸은 계속 천천히 키워야 하니 너무 서두르면 안 됩니다.”“지아의 상황은 그다지 좋다고 말할 수 없지만, 호전되기만 하면 좋은 일이죠. 난 수시로 지아의 신체 수치를 감시할 거예요. 그러나 대표님도 절대로 지아를 자극하지 말고 그녀의 마음을 안정시켜야 해요.”“알았어.”도윤은 지아가 마음 편하게 치료를 받게 하기 위해 그녀와의 만남을 피했고, 심지어 백채원까지 뒤뜰에 감금
예전의 심예지를 떠올리자, 이 집사도 나름 지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여자라면 어찌 자신의 남편이 밖에 다른 여자 숨기는 것을 용납할 수 있을까?이 집사는 무척 난처했다. 들어가지 않는다면 지아는 계속 의심을 할 것이고 그렇다고 들어간다면 그녀와 백채원은 분명히 말다툼이 일어날 것이다.“이 집사, 이 정원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 봐요!”지아는 뜻밖에도 휠체어에서 일어나더니 떨리는 발걸음으로 앞으로 걸어갔다.“작은 사모님, 이제 그만 돌아가시죠.”“여기에 대체 누가 숨었는지 궁금하군요.”이 집사는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보고 얼른 사람 시켜 도윤을 불러오게 했다. 잠시 후, 도윤이 성큼성큼 걸어오자, 지아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문 열어. 한 번 들어가 보고 싶으니까.”“지아야, 돌아가자.”“너 말끝마다 날 사랑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럼 이 안에는 또 어떤 여자를 숨긴 거지?”도윤이 결코 열어주지 않자, 지아는 경호원을 노려보았다.“문 열어.”도윤은 강제로 그녀를 데려가려 했지만 지금 지아의 몸이 안 좋았기에 그도 지아의 뜻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문이 열리자, 지아는 주은청과 이채나가 정원에서 나비를 쫓으며 놀고 있는 것을 보았다.지아는 이채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이게 바로 날 사랑하는 방식인가? 겉으로는 날 사랑한다면서, 나 몰래 또 다른 여자를 집에 숨겨?”도윤은 지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는 설명을 하려고 시도했고 또 친자 확인서를 지아에게 보여주었지만 그녀는 아이가 그녀의 것이란 것을 믿지 않았기에 지금 또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 몰랐다.“지아야, 우리 방으로 돌아가자. 날 믿기만 한다면 네가 알고 싶은 모든 거 다 알려줄게.”이때 백채원도 휠체어를 밀며 다가왔다.“오해하지 마, 소지아 씨. 나와 도윤 씨는 이미 파혼했고, 지금 이런 모습으로 너와 그이를 빼앗고 싶은 생각도 없어. 난 단지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 필요할 뿐이니 제발 나와 아이들을 쫓아내지 말아줘.”백채원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붉게 퍼져나가는 피를 바라보며, 지아는 강미연이 죽은 그날을 떠올렸다. 그렇게 지아는 몸이 굳어진 채 제자리에 서 있었고, 두 눈을 부릅떴다.이 순간, 지아는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아침까지만 해도 하루는 지아의 품 안에서 안락히 잠들었지만, 지금은 숨을 거둔 채 그녀의 발 옆에 엎드려 있었고, 입과 코에서는 검은 피가 흘러나왔다.지아는 뻣뻣하게 몸을 굽히며 속으로 생각했다.‘나 지금 틀림없이 꿈을 꾸고 있을 거야.’“하루야, 너, 너 얼른 일어나. 이런 장난 하나도 재미없어.” 지아의 목소리는 떨렸고, 손을 내밀어 하루를 안으려 했지만 오히려 도윤의 품에 와락 안겼다.“지아야, 건드리지 마. 하루 지금 중독된 상태야.”지금 고양이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빨간색이 아니라 검은색이었다.그러나 지아는 이미 사고할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연약한 몸을 이끌고 하루를 향해 달려들었다.“하루야, 정신 차려, 눈 뜨고 나 좀 봐봐!”“지아야!” 도윤은 두 손으로 지아를 꼭 껴안으며 그녀가 하루의 몸을 만지지 못하게 했다.이 집사는 눈치가 빨라서 얼른 사람들 시켜 하루의 시체를 치우게 했다. 그러나 지아는 미친 것처럼 백채원을 향해 달려가 그녀의 옷깃을 덥석 잡았다.“네가 그런 거 맞지!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덤빌 것이지 왜 애꿎은 고양이한테 손을 대는 거야?”“나 아니야, 정말 나 아니라고.”말이 떨어지자 지아는 백채원의 얼굴에 뺨을 내리쳤다.“이제 와서 계속 거짓말을 할 거야? 그럼 하루가 왜 네 정원에 있는 거지? 백채원, 너 정말 악독한 여자구나. 아빠와 엄마를 죽인 것도 모자라 이젠 고양이한테까지 화풀이하는 거야?”지아는 계속해서 욕설을 퍼부었고, 백채원의 설명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이채나는 멀리서 달려오더니 지아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겼다.“나쁜 아줌마, 우리 엄마 때리지 마요.”도윤은 지아를 떼어냈다.“지아야, 일단 진정 좀 해.”‘진정하라고?’지아는 하인들이 하루의 시체를 치우는 것을 지켜보았는데,
건우는 계속해서 지아를 설득했다.“지아야, 절대 이 일 때문에 영향받지 말고 정신 차려. 넌 지금 자신의 건강을 잘 챙겨야 해.”“선배, 나도 알아요.”현재 지아의 생존 욕구는 그 어느 때보다 더 강렬했으니 또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이끌려가고 또 한 번 또 한 번 당하고 있을 수 있겠는가.지아의 머릿속은 온통 강미연의 얼굴과 하루의 시체로 가득 차 있었다.‘절대 그 사람의 뜻대로 되지 않게 할 거야.’“선배, 이제 우리 계획에 따라 움직여요.”“좋아.”지아가 다시 병원으로 실려가자, 이씨 가문은 난리 법석이 났고, 모든 하인들은 줄줄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하루의 부검 결과가 이미 나왔는데, 그는 맹독에 중독되었으며, 죽기 전에 독약이 뇌신경에 영향을 미쳐서 지붕에서 떨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사인은 여전히 중독이었다.하루처럼 연세가 있고 또 똘똘한 고양이는 함부로 음식을 먹지 않았는데, 그의 위안에는 아직 소화가 되지 않은 물고기 져키가 있었고, 검사를 거쳐 그 안에 맹독이 들어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얼굴이 부은 채 휠체어에 앉아 있던 백채원은 황급히 설명했다.“도윤 씨, 지금 내가 이 꼴로 됐는데 또 어디 가서 독약을 구하겠어요? 그 고양이는 확실히 요 며칠 내 정원에 와서 놀았지만, 채나가 좋아하길래 내쫓지 않았던 거예요. 난 그게 소지아 씨의 고양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으니 정말 내가 한 짓이 아니에요.”백채원이 수작 부릴까 봐 도윤은 그녀가 매일 먹는 음식을 엄격히 통제하였고 게다가 백채원은 다리가 불편했기에 확실히 독약을 구할 기회가 없었다.이씨 가문의 장원은 너무 커서 곳곳마다 감시 카메라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즉 사각지대에서 누군가 하루에게 먹이를 준 것이다.‘그 사람은 틀림없이 이 정원의 사람이야!’지아의 음식은 전문적인 사람이 책임졌으니 그녀에게 독을 타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그리하여 상대방은 고양이의 죽음을 이용하여 지아를 자극하고 하루빨리 그녀를 죽이려 했던 것이다.‘정말 악독하군!’독으로 죽은 것은
하루가 죽은 후, 지아는 큰 충격을 받아 더는 일어서지 못했고, 심지어 호전하는 추세까지 말끔히 사라졌다.도윤은 그런 지아를 보며 마음속으로 안달이 났지만 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신체적인 고통이든 심리적인 고통이든 그는 지아를 대신하여 감당할 수가 없었다.지아는 나날이 초췌해져 갔지만 주원에게 여전히 소식이 없는 것을 보고 도윤은 당황하면서도 초조했다.하필 지아는 또 그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도윤은 문밖의 유리와 의사를 통해 그녀의 현재 상황에 대해 알 수밖에 없었다.요 며칠, 지아는 계속 침대에 누워 눈물을 훔쳤는데, 이 집사와 심예지가 번갈아 그녀를 달래도 효과가 없었다.지아는 지금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기에 아무리 좋은 의사라도 치료할 수 없었다.심예지는 도윤의 어깨를 두드렸다.“지금 지아는 이미 살아갈 욕망을 잃었으니 너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모든 사람들이 도윤을 설득했지만 오늘까지 그는 여전히 지아와 헤어질 준비를 하지 못했다.도윤은 주춤거리며 지아의 병실에 발을 들였고, 그녀는 이불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불쌍하면서도 허약한 작은 몸은 더 이상 예전처럼 생기발랄하지 못했다.도윤은 저도 모르게 생각했다. ‘만약 지아가 그때 모든 것을 뒤로하고 나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렇게 되지 않았겠지?’지아는 눈을 들어 천천히 도윤을 바라보았다.“왔어?”도윤은 그녀의 얼굴에 드리워진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말했다.“지아야, 제발 죽지 마. 내가 이렇게 부탁할게.”그러나 지아는 머리 위의 창백한 천장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이도윤, 나 이곳 떠나고 싶어. 병원에서 죽고 싶지 않거든. 너무 썰렁하잖아.”“헛소리, 넌 죽지 않을 거야.”“어젯밤에 나 그 두 아이를 꿈꿨는데, 내가 엄청 보고 싶대. 나도 이제 아이들과 같이 있고 싶어.”도윤은 목이 메어 목소리가 잠겼다.“지아야, 분명히 방법이 있을 거야.”하지만 지아는 들은 체 만 체 했다.“이제 곧 지윤이 생일이지?”“응.”“나 그 아이
이예린은 비록 나이가 많지 않았지만, 노련한 태도로 전혀 흔들림 없이 대답했다.“새로운 곳에 와서 그런지 잠이 안 오네요. 좀 걸으려고요.” “네 오빠도 여기 있잖니. 그 아이가 네가 나가는 걸 보면 분명히...” 이예린은 곧장 심예지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오빠가 제 손발이 이미 회복된 걸 모를 거라고 생각하세요?” “오빠가 정말 저를 죽이고 싶었다면, 이미 3년 전에 끝냈을 거예요. 하지만 오빠는 누군가처럼 사랑에 눈이 멀어버리는, 마음 여린 사람이라고요.” 당시 도윤은 예린을 죽이지 않고, 단지 손과 발의 힘줄을 끊어버렸다. 그것만으로 지아를 위해 복수를 한 셈이었다.더구나 지아는 죽지 않았기에, 도윤은 더 이상 예린을 해치지 않았다.“너는 전혀 우리를 닮지 않은 모양이구나.”예린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러게요.”사실, 사랑에 눈이 멀어버리는 것은 그들 가문에 흐르는 피와 같았다.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도윤도 그러했으며, 예린도 다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시후가 예린을 구해준 순간부터, 예린은 자신의 목숨이 영원히 시후의 것임을 알았다. “그래, 주변에서만 걸어 다니렴. 괜한 문제는 일으키지 말고.” “알겠어요.”예린은 몇 발짝 걸어가다가 멈추더니, 뒤돌아 심예지를 바라보았다.“엄마.”심예지는 온몸이 굳어버렸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예린을 바라보며 물었다.“방금... 뭐라고 했니?” 심예지는 지난 몇 년 동안 예린에게 모든 것을 맞춰주었지만, 예린은 늘 과묵했으며, 좀처럼 말하지 않았다. 예린은 태도마저 차갑고 무관심했기에, 심예지는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것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저 여생 동안 속죄할 기회가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심예지는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았는데, 예린의 입에서 나온 ‘엄마’라는 단어는 너무나 큰 의미를 지니는 듯했다.심예지는 그 자리에서 눈물이 차올랐고, 다시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뭐... 뭐라고?”“엄마.”이번에는 예린
전화를 받은 이예린은 당황해서 더듬거리며 말했다.[말씀만 해주세요. 제 목숨을 구해주셨으니, 선생님을 위해서라면 불 속이라도 뛰어들겠어요.]이 대답은 시후가 예상한 대로였다. 과거에도, 그리고 얼마 전에 재회했을 때도, 예린은 시후를 볼 때마다 두려워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평소의 당당한 이예린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시후는 연애 경험은 없었지만, 비즈니스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다양한 유형의 여성을 접해왔다. 그래서 예린이 단순히 자신에게 감사함을 느끼는 것 외에도, 깊은 연모의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예린이 이씨 가문의 아가씨라 할지라도, 시후 앞에서는 늘 자신감 없는 태도를 보였으니 말이다. 예린은 시후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며, 늘 자격지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시후는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다. [제가 선생님의 아버지를 구출하라는 말씀이시죠?] “그래, 할 수 있겠어?”시후는 예린에게 모든 진실을 털어놓았지만, 속으로는 그녀가 해낼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예린은 주저하지 않고 답했다.[어려울 순 있겠지만, 반드시 해낼게요.]예린은 나이가 어리지만 결단력이 있었다. 예린의 대답에 시후는 한결 안도했다.“뭐든 얘기해줘. 최선을 다해서 널 도울게.”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저 혼자로도 충분하니까요. 사람이 많아지면 오히려 적에게 이상한 낌새만 줄 뿐이에요.]시후는 곧 이예린의 놀라운 능력을 직접 보게 되었다. 예린은 명석한 두뇌와 치밀한 계획, 냉혹하면서도 질서 정연한 방식으로 일을 처리했다. 만약 예린이 적이었다면, 정말로 두려운 상대가 되었을 것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양지운이 시후를 바라보며 물었다.“어떻게 됐습니까?” “우리 사람들을 철수시켜.” “그 여자의 말을 믿으시는 거예요? 오랜 세월 동안 보지 못했던 사람인데요.” 시후는 길가에 떨어진 나뭇잎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때로는 은혜 하나만으로도 평생 기억되는 법이지
이 말을 할 때 조경선의 얼굴은 거의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고, 입가에는 미친 듯한 웃음이 번졌다.“꼭 살아남아서, 그 모든 걸 똑똑히 지켜보도록 해.” 조경선은 다시 소임호에게 영양제를 주사했다. 소임호는 침대에 누운 채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는데, 조경선과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도 남은 힘을 모두 소진한 것 같았다. 소임호가 눈을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병약한 모습을 보자, 조경선은 결국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조경선은 수년간 어둠 속에서 모든 것을 계획해 왔다.조경선이 상상했던 장면은 소임호가 무릎을 꿇고 자신에게 애원하며 사과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소임호를 붙잡고 나서도, 소씨 가문이 이렇게 망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소임호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심지어 자살 시도까지 했으니, 조경선의 분노를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온 힘을 다해 날린 주먹이 솜사탕에 파묻힌 것 같은 기분이었다.조경선의 가슴속은 분노와 억울함으로 가득 찼다. 그토록 오랜 시간 공들여 계획했지만, 조경선은 결국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조경선은 뼛속 깊이 소임호를 증오하면서도, 소임호가 그렇게 약해진 모습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절대 그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소임호는 조경선이 평생 이루지 못한 소원이자, 사랑하면서도 증오하던 대상이기 때문이었다. 소임호를 미워할수록 사랑도 더 깊어졌기에, 조경선은 소임호를 죽이기보다는 그가 자신에게 굴복하며 돌아오기를 원했다.해가 저물 무렵.조경선은 잠시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별장 안팎에 놓인 꽃들과 각종 장식은 사실 특정한 용도로 설계된 것이었다. “침입자 발견! 침입자 발견!”기계음이 별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조경선은 두 눈을 번쩍 뜨며 침대 옆 협탁에서 가면을 꺼내 얼굴에 썼고, 입가에 음흉한 웃음을 그렸다. “감히 여길 들어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한 모양이지?”조경선이 손을 한 번 흔들자, 벽에 설치된 스크린에 실시간 CCTV 화면이 투사되
지아는 멍하니 서 있다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진봉을 바라보며 물었다.“성형?” “예, 성형수술이요.”지아는 그제야 소시월이 왜 자신과 닮았는지, 혹시 소임호와 관련 있는 사람인지 의심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이제야 모든 것이 설명되었으니 말이다. 지아는 손에 든 서류를 훑어보았다.소시월은 13살에 처음 성형수술을 했고, 이후 매년 한 가지씩 성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게다가 20대 중반 이후로는 유지와 보수를 시작했기 때문에, 아무도 그녀를 의심하지 않았다.그 시절 소시월은 기숙 학교에 다녔기에, 사람들은 반년 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가 성장하며 부모를 닮아간다고 생각했을 뿐, 의술의 힘으로 얼굴을 바꿨다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아마 그들이 당시에 지아를 해치지 않은 이유도 그녀의 얼굴을 복제하려 했기 때문일 터.그 후, 지아가 쓸모없어지자 암살 계획을 시작한 것이 분명했다. 지아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 가짜 얼굴을 한 꺼풀씩 다 벗겨내 주겠어!”“사모님, 만약 그 여자가 사모님을 계속 암살하려던 배후라면, 그 여자의 등에는 분명히 총상이 있을 겁니다. 그날 저희가 사람들을 데리고 갔을 때, 그 여자는 도망치면서 총을 한 발 맞았었죠.” “당장 알아봐!”지아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는데,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생지옥 같은 나날들이 떠오르는 듯했다.비록 도윤이 한때 지아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결국 그 모든 고통은 누군가가 뒤에서 지아의 삶을 철저히 망가뜨린 것이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소시월은 내 자리를 차지하고, 내가 누려야 할 가족의 사랑과 따듯함을 즐겼어. 그것도 모자라서 나를 지옥 속으로 처참히 몰아넣었다고!’지아의 분노는 억누를 수 없을 정도였다. “사모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반드시 모든 진실을 밝혀내겠습니다.” “그 여자를 감시할 사람을 찾아. 최근 움직임이 많아졌으니, 뭔가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해. 최대한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 해!”“예.”지아는 머리를 짚으며
안타깝게도 지아가 이미 진실을 알아낸 상태였기에, 장민호의 소식은 늦은 셈이었다.“지금 어디에 계세요?”지아가 급히 물었다.‘민호 씨가 이 일에 연루되었는지 아닌지 확인할 필요가 있어.’ [Z국에 있어요. 최근 소씨 가문에 많은 일이 일어나는 바람에, 이 소식을 알아내는 데 시간이 꽤 걸렸어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틈을 타서 지아 씨에게 위협이 되는 소시월을 제거할 테니까요.]지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지아는 처음에 장민호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자신의 의도를 눈치챘을까 봐 걱정했지만, 장민호는 아직 그녀가 Z국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했다. “죽이면 안 돼요.”[왜요? 그 여자는 지아 씨를 죽이려고 했잖아요. 그런 위험한 존재를 살려두면 지아 씨에게 더 큰 위협이 될 거예요.]지아는 핑계를 댔다.“저는 이미 몇 번이나 그 사람한테 암살당할 뻔했고, 그 소씨 가문의 여섯째 딸이라는 사람과도 만났어요. 우리는 나이도 비슷하고, 국적도 달라서 아무런 원한도 없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왜 저를 죽이려고 했겠어요?” “제 생각엔 누군가 소시월을 조종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은 단지 이용당하는 말일 뿐인 거죠. 그 사람을 죽이는 건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니에요. 그 배후의 사람이 진짜 목표니까요...” 지아는 이미 체스판 위의 말이 아니라 말을 움직이는 사람이 되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장민호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강인했다.[제가 도울게요.]“위험하지 않겠어요? 너무 위험하다면 하지 마세요. 저는 민호 씨가 다치는 걸 원치 않아요.” [지아 씨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겁니다.]장민호는 마지막으로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제 속죄라고 생각해 주세요.]전화를 끊은 후에도 지아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사건이 윤곽이 점점 명확해지고 있지만, 주변 상황은 여전히 위태로웠다. 특히 소씨 가문이 혼란스러운 지금은 지아가 신분을 밝히기에 적절한 때가 아니었다. 소임호와 조경숙이 자기 친부모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지아
병원에서 사고를 당한 시언을 진정시키기 위해, 지아는 일찍이 자신과 시후의 계획을 모두 털어놓았다. 다만, 다른 사람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시후는 그림자 속에 숨어 있었고, 시언이 대외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즉, 두 사람이 안팎에서 호응하며 움직이고 있었던 것. 게다가 소임호 또한 차근차근 사건을 조사하며, 여러 정황으로 인해 배후의 흑막이 조경선이라는 의심을 품게 되었고, 조경선을 끌어내기 위해 자신을 미끼로 삼았다. 하지만 비행기 사고 이후로 소임호와 시후의 연락이 끊겼고, 시언은 며칠 동안 마음을 졸이며 초조해했다. 그런데 조금 전, 다행히도 소임호의 행방을 알아낸 것이었다.시언은 즉시 이 소식을 지아에게 알렸다. 지아는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게 되자, 시언의 목소리를 듣고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순간적으로 수많은 말들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왜 그래, 지아야?”시언은 지아의 침묵에 걱정하며 물었다.“무슨 일 있어?” 지아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말했다.[아니요, 저는 그냥...]하지만 말을 꺼내자 목소리에 눈물 섞인 떨림이 묻어나왔다.시언이 더욱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일이 있다면 숨기지 마. 우리는 이미 네 의형제가 됐어. 우린 가족이라고. 소씨 가문에 이런저런 일이 생겼다고 해도, 난 널 지킬 거야.”시언의 ‘지킨다’라는 말이 지아의 마음을 더욱 따뜻하게 했다.시언은 지아의 정체를 알지 못했음에도 여전히 이렇게 다정하고 따듯하게 대해주었다. 아마 이것이야말로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만이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러운 유대일 것이었다. 하지만 지아는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왜 소씨 가문 사람들은 내 존재 자체를 몰랐을까?’ 현재 지아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경숙은 여섯 번째 아이를 낳은 후 과다출혈로 크게 몸이 상해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고 했다.‘가족이 내 존재를 모를 리가 없는데.’ ‘게다가 시영 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남은 건 소시월 뿐이야.’‘소시
소임호는 눈앞의 광기 어린 조경선을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조경선, 그동안 정말 행복했니? 그렇게 애써 계획해서 네가 얻은 건 뭐지? 지금의 이 상황을 만든 우리는 모두 패배자라고!” “틀렸어.”조경숙이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그 당시의 나는 얼굴도 망가지고, 족보에서 제명되고, 가족들에게도 내쳐졌어. 나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데, 조경숙은 왜 모든 걸 가져야 해? 시골에서 돌아온 한낱 촌뜨기가 어떻게 나를 대신할 수 있었냐고!” “그래, 난 패배자야. 하지만 너희도 내 시체 위에 서서 잘난 척할 수는 없을걸? 우리 두 쪽 다 망가지는 게 내 승리니까!” 조경선이 고개를 숙여 소임호를 살펴보며 말했다.“당신 꼴을 좀 봐. 떠돌이 개랑 다를 게 뭐야? 참 안쓰럽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야.”“곧 소씨 가문은 완전히 망가질 거야. 나는 당신을, 그리고 소씨 가문을 반드시 파멸시키고 말 거야!” “너 정말 미쳤구나.”“그래, 난 미쳤어.”“하지만 당신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이젠 내가 겪었던 고통을 당신이 똑똑히 느껴야 할 차례야. 당신도 알겠지만,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조경숙은 이제 심세호의 여자가 됐어. 정말 가슴 아프지 않아?” “참, 그건 모르지? 소씨 가문의 노친네는 이미 죽었고, 당신 아들들도 곧 당신과 함께 무덤으로 갈 거야!” “조경선, 너는 진짜 인간 말종이야!” 소임호는 극도로 분노하며 몸부림쳤고, 쇠사슬은 그의 몸부림으로 인해 요란하게 울렸다.하지만 조경선은 소임호의 턱을 잡고 비웃으며 말했다. “왜, 불만이야? 그럼 나한테 빌어봐. 그러면 그 자식들한테 고통 없는 죽음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꿈 깨.”소임호가 냉소하며 말했다.“죽어도 너한테 무릎 꿇을 일은 없을 거야.” “걱정하지 마. 당신을 죽게 두지는 않을 테니까. 당신이 죽으면,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처참히 망가지는지 보여줄 수 없잖아. 당신 자식들은 끔찍한 최후를 맞이할 거고, 당신이 가장 사랑했던 조경숙은 눈이 멀어 다른 남
여자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넌 먼저 돌아가.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볼 테니, 당분간 티 내지 말고 조용히 있어.” “알겠어요.”시월은 갑자기 한 가지 일이 떠올라 물었다.“맞다, 아빠는 어떻게 됐어요?” 그 말을 들은 여자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흥, 끝까지 고집불통인 쓰레기 같은 남자. 내가 겪은 교통을 천배, 만 배로 되돌려줄 거야!” 시월의 얼굴에 찰나의 망설임이 스쳐 지나갔다.“엄마, 이제 그만하면 안 돼요? 우리는 그동안 아빠가 가족도 잃게 하고, 집안도 망가지게 했잖아요.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요?” “충분? 꿈 깨! 이건 그 사람이 나한테 진 빚이라고!” 여자가 소시월의 옷깃을 꽉 잡으며 으르렁거렸다.“경고하는데, 나는 네 어미야. 네가 조금이라도 망설인다면, 나는 절대 널 용서하지 않을 거야.” “엄마, 알겠어요, 나는 엄마의 딸이니까 당연히 엄마 편이에요.” 소시월은 여자의 손아귀에서 간신히 벗어나 두려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최근 몇 년 동안 그 여자의 정서는 점점 더 불안정해졌다.사실, 그녀의 얼굴도 치료를 통해 회복할 수 있었지만, 집착이 너무도 강한 그녀는 치료를 거부했다. “이 고통을 평생 기억하면서 나한테 상처를 준 사람한테 천 배, 만 배로 돌려줄 거야!!” 여자는 평생을 복수 계획에만 몰두하며 살았다. 하지만 소시월이 보기에, 복수를 이루더라도 그녀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을 것이었다. 소씨 가문은 지금 엉망진창이 되었기에, 소시월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소시월이 떠난 후, 여자는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며 지하실로 향했다. 지하실 문은 단단히 닫혀 있었는데, 여자가 자신의 지문을 입력하자,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이 서서히 열렸다. 여자는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며 안으로 들어갔고, 어둡고 습한 지하실에는 손과 발이 묶인 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생사조차 알 수 없었다. 여자는 그를 향해 다가가며 광기 어린 집착이 서린 눈빛으로 말했다.“소임호
소지훈이 폭로한 충격적인 사실은 소씨 가문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아에게도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출생 비밀을 찾아 헤매던 지아는,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중에 스스로 이야기의 중심인물이 되고 말았다. 이전에 소씨 가문 사람들의 고충에 공감했던 지아는 이제 그들이 자기 혈육임을 알게 되자,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지아는 도윤의 품에서 천천히 미끄러졌고, 무릎을 꿇고 앉은 채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아빠, 엄마, 그리고 오빠들이...” 하지만 더욱 지아를 견딜 수 없게 한 것은 예전에 마주했던 그 시신이 자기 친언니였다는 사실이었다. ‘시영 언니는 너무도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어.’ ‘심지어 나는 그걸 전혀 몰랐고, 언니의 마지막 가는 길조차 배웅하지 못했어...’ 지아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지아야!”도윤은 지아를 안고 급히 자리를 떠났다. 침대에 누운 채 찡그린 표정을 한 지아를 보며 도윤은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지아는 이미 너무 많은 고통을 겪었어. 그런데 간절히 바랐던 가족마저 이런 모습으로 드러나다니.’ 무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지아의 곁을 지켰다.도윤은 무무를 부드럽게 달래며 말했다.“엄마는 괜찮을 거야. 그냥 과로한 상태에서 큰 충격을 받아 기절한 것뿐이거든.” 한편, 소씨 가문의 황당한 해프닝은 아직도 진행 중이었으며, 소영수의 장례식은 결국 소씨 가문 사람들의 싸움의 장이 되고 말았다. 겉으로는 소지훈이 이긴 듯 보였으나, 사실 그로 인해 소씨 가문은 체면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시월은 마음이 조급해졌고, 해가 뜨기도 전에 황급히 차를 몰아 오래된 별장으로 향했다. 건물 꼭대기에는 까마귀들이 앉아 있었다.‘까악까악’ 울음소리가 밤하늘을 배경으로 더욱 섬뜩하게 들렸다. 장미 덩굴은 낡은 담벼락 위로 기어오르며, 삭막하고 부패한 세상에 한 줄기 생기를 더하고 있었다. 새벽이 다가오자, 햇살이 어둠을 찢으며 온 세상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