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는 이 말 때문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근사하게 차린 식탁에서, 도윤은 케이크의 촛불에 불을 붙였다.지아는 도윤과 함께 아이에게 생일축하송을 불러주었고, 지윤은 두 손 모아 열심히 소원을 빌었다.“무슨 소원 빌었어?” 지아는 몰래 물었다. 그러나 지윤은 웃으며 말했다.“말하면 안 된대요.”그는 엄마가 빨리 나아서 아빠와 함께 자신의 곁에 있어주길 바랐다.촛불에 비친 지아의 부드러운 얼굴을 보면서 도윤은 시간이 영원히 이 순간에 멈추길 간절히 바랐다.지윤은 아주 즐겁게 웃었고, 도윤은 저도 모르게 자신의 세 살 생일을 떠올렸다. ‘내 아들은 절대로 그런 비참한 어린 시절을 겪지 않을 거야. 난 최선을 다해 지아와 지윤을 사랑할 테니까.’지아는 오늘 밤 아주 즐겁게 웃었는데, 지윤이 무엇을 하든 옆에서 웃어주며 박수를 쳤다. 저녁에 지아는 심지어 지윤을 사이에 두고 도윤과 한 침대에 누웠다.이때 지아는 감탄하며 말했다.“만약 그 아이가 살아 있다면, 지금 우리와 같이 이곳에 누워있겠지?”도윤은 설명하려 했지만 지아는 지윤이 바로 그녀의 아이란 것을 전혀 믿지 않았다.“지아야...”“요 며칠 너무 행복했어. 우리 마치 여태껏 싸운 적이 없는 것 같더라. 사실 그 아이가 그때 세상을 떠났어도 나쁠 건 없어. 이 세상에 남아 있어도 나 때문에 고생할 테니까.”오늘 밤 지아의 말은 아주 많았고, 대부분 도윤이 그녀가 말하는 것을 듣고 있었다.지아의 목소리는 아주 가볍고 느렸는데, 도윤은 저도 모르게 불안해졌다.‘왠지 모르게 지아를 잃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밤이 깊어지다, 지윤은 이미 꿈나라에 들어섰고, 지아는 그의 얼굴에 뽀뽀를 했다. 아이는 뭔가를 느낀 듯 그녀의 품속으로 파고들더니 가볍게 불렀다.“엄마.” 지아는 아이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도윤은 불안한 마음에 한밤중이 되어서야 깊이 잠들었다. 지아는 밤새 동안 자지 않았는데, 머릿속으로 수많은 기억을 떠올렸다.그녀의 전반생은
도윤은 떨리는 두 손으로 결혼반지와 편지를 주웠다. 편지를 뜯는 이런 아주 간단한 일에, 그는 마치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것처럼 끊임없이 손을 떨었다.이때 진환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대표님, 제가 할게요.” 사실 이 편지를 보든 말든 모두들 이미 지아가 어디로 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도윤은 공포와 슬픔에 천천히 편지를 꺼냈는데, 익숙한 글씨가 눈앞에 나타났다.전에 도윤이 출장을 다닐 때, 지아는 몰래 그에게 편지를 쓰곤 했는데, 주소를 몰랐기에 지아는 하고 싶은 말을 써서 병에 담은 다음 화원에 묻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윤은 무심코 이를 발견한 후, 매번 돌아올 때마다 곧바로 지아의 신비한 동굴에 새로운 편지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러 갔고 점차 습관이 되었다.그때 지아의 편지 내용은 귀엽고 발랄했다. 그러나 지금 손에 든 이 편지는 글자가 얼마 없었지만 전부 결별에 관한 것이었다.[이도윤,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 버티고 싶지 않아. 이번 생 우리 두 사람의 인연은 여기까지인 것 같으니 다음 생에도 만나지 말자.소지아가.]도윤은 눈시울이 빨개졌고 때마침 하늘에서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편지에 물방울이 떨어지더니 도윤의 눈물인지 빗물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도윤은 편지를 가슴 위에 얹으며 천천히 무릎을 꿇었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지아야, 내가 잘못했으니까 제발 돌아와. 넌 죽으면 안 돼. 죽어야 할 사람은 나란 말이야.”그는 그 결혼반지를 꼭 쥐었다. 전에 지아는 반지를 팔았다가 또 버렸지만 도윤은 결국 몰래 그 반지를 주워 왔다.도윤은 지아가 이 반지 꼈을 때의 미소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결혼반지를 끼면 난 이제 네 사람이야. 여보, 우리 앞으로 잘 지내보자.”도윤의 버림을 받은 동안이라도, 지아는 반지를 뺀 적이 없었고, 암 때문에 살이 빠진 후, 도윤은 특별히 반지를 작게 고쳤다. 지금은 반지가 다시 원래의 주인에게 돌아온 셈이었다.‘이번 생의 인연이 끝났으니 다음 생에도 만나지 말자고 했어.
이씨 집안.침대 위에 누운 남자는 손가락을 움직이더니 갑자기 소리 질렀다.“지아야!” 그리고 두 눈을 뜨며 벌떡 일어나 당황한 모습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심예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드디어 깨어났구나. 너 혼수상태에 빠진 지 3일이나 됐어.”도윤의 기억은 여전히 해변에 머물러있었고, 멍하니 있다 얼른 물었다.“어머니, 지아는요? 지아를 찾았나요?” 심예지는 마음이 아파서 도윤에게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도윤아, 너도 마음의 준비를 좀 해야 할 것 같아. 지아는...지아는 이미...”“그럴 리가 없어요, 지아는 죽지 않았을 거예요!”도윤은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맨발로 내려와 문밖으로 뛰어갔다.“지아야, 너 어디에 있는 거야? 지금 나 피하는 거니?”“지아야, 숨지 마!”도윤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지아를 찾았다. 1층 안방으로 들어가자, 모든 것은 지아가 떠나기 전 그대로였다.깨끗한 침대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꽃병 속의 꽃은 일주일 전 정원에서 자른 꽃으로, 이미 시들어져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테이블에는 책이 하나 놓였는데, 지아는 아직 다 보지 못했기에 접지 않고 여전히 그 페이지에 머물러 있었다.방안의 물건은 모두 예전 그대로였지만, 지아가 없었다.도윤은 정원의 문을 열고 들어가 지아가 평소에 가장 좋아하는 곳으로 갔다.그곳에는 휠체어 한 대와 아름답게 핀 꽃만 남았다.도윤은 미친 듯이 화원에서 달리며 다급하게 소리쳤다.“지아야, 너 지금 어디에 있는 거야? 제발 나타나줄래?”“지아야, 내가 잘못했어. 나 정말 잘못했으니까 네가 돌아오기만 하면 무엇이든 할게.”두 발은 돌에 베여 피가 났지만 도윤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는지 그는 꽃대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그는 자신의 손가락에 이미 반지를 낀 흔적이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 마치 지아가 그의 세계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귓가에서 바스락바스락하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자, 도윤은 희망을 느끼며 즉시 고개를 돌렸다.“지아야!”
도윤은 다시 그 해변으로 찾아왔고 진봉과 진환은 안색이 초췌했다. 비록 두 사람은 번갈아 가며 이곳을 지켰지만, 요 며칠 거의 쉬지 않았기에 눈 밑에 선명한 다크서클이 생겼다.그들은 지아가 도윤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요 3일간 그들은 무수한 일손을 파견했고 심지어 모든 자원을 동원하여 지아의 시체를 인양했다.도윤을 보자, 그들은 재빨리 다가가서 인사했다.“대표님.”도윤은 눈시울이 새빨갰고, 검은색 양복을 입은 그는 예전처럼 카리스마가 넘치는 대신 많이 의기소침해졌다.입을 열자, 도윤의 목소리는 약간 잠겼다.“찾았어?”진환은 고개를 저었다.“아직입니다. 사모님께서 뛰어든 해역은 좀 복잡합니다. 당시 사모님께서는 역류를 만나 먼 곳으로 밀려갔는데, 저쪽은 또 마침 해역에 단층이 생겨 깊이가 수백 미터에 달했고 가시거리도 좋지 않아 인양 작업이 많이 어렵습니다.”도윤은 주먹을 꼭 쥐더니 뼈마디가 새하얗게 변했고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았다.“내가 할게.”그는 잠수복으로 갈아입고 산소탱크를 멘 다음 인양팀을 따라 심해로 들어갔다.바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가시거리가 좋지 않았는데, 주위의 물고기 떼, 산호 그리고 기타 해양 생물을 많이 볼 수 있었다.이미 3일이 지났으니, 설사 지아의 시체가 물고기 떼에게 먹히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미 심하게 변형되어 본래의 모습조차 보기 힘들 것이다.도윤은 그런 지아를 찾을까 봐 두려웠지만 또 빨리 그녀를 찾고 싶었다. 그는 지아를 혼자 바다에 남기고 싶지 않았다.“지아야, 두려워하지 마. 내가 너 데리고 집에 갈게. 앞으로 우리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응?”도윤은 이렇게 기진맥진할 때까지 한 번 또 한 번 바다를 뒤적였고, 해가 내려갈 때까지 찾았지만 여전히 지아를 발견하지 못했다.그는 갑판 위에 누워 머리 위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숨을 크게 헐떡였다. 지금 그는 힘들어서 손가락조차 들 수 없었다.“대표님, 이제 물에 들어가지 마세요. 그러다 대표님도 위험에 빠질 거예요.”도
도윤은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며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지아가 죽지 않았다면, 그녀를 다시 내 곁으로 데려오는 것은 전철을 밟은 것에 불과해. 다시 한번 지아를 슬프게 할 뿐이지. 내 곁에 남아 있는 것은 마치 꽃병에 꽂힌 꽃과 같아.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게 될 거야. 아마 지아를 놓아주는 게 정확한 선택일지도 몰라.”진봉과 진환은 도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듣고 모두 불가사의하다고 느꼈다.“대표님, 정말 이대로 사모님을 놓아주려고요?”“예전에 난 줄곧 지아를 곁에 두고 싶었지만 늘 불의의 사고가 찾아왔지. 지아는 뼈에 사무칠 정도로 날 원망하고 있으니, 만약 이것이 그녀가 원하는 것이라면 난 지아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어.”도윤은 한숨을 내쉬었다.“이것도 모두 나의 추측일 뿐, 아직은 확실한 증거가 없어. 먼저 지아가 아직 살아있는지부터 검증해. 지아의 휴대폰 위치와 일주일 간 임건우의 모든 동향을 추적하고. 그리고 절대로 들키지 마.”“네, 대표님.”“먼저 돌아가실래요?”도윤은 고개를 저었다.“만약 지아가 아직 죽지 않았다면 지금쯤 나의 행동에 관심을 기울일 거야. 그녀를 두렵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요 며칠 바다에서 지낼게.”지아의 죽음에 미쳐버린 도윤은 틀림없이 시체를 인양하기 위해 전력을 다 할 테니 또 어떻게 하루 만에 포기할 수 있겠는가?도윤은 지아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니 지아 역시 도윤을 잘 알고 있었다.다만 도윤은 자신이 언젠가 지아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를 놓아줄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그 다음 며칠간, 인양작업은 여전히 계속되었고 진환도 무언가를 조사해냈다.“사모님의 핸드폰 신호는 마지막으로 해변에 나타났는데, 지금은 이미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을 겁니다. 그리고 저는 특별히 임건우의 동향을 조사해 봤지만, 요 며칠 그는 여전히 제때에 출퇴근했고, 퇴근 후 심지어 여자친구와 함께 쇼핑하고, 식사를 하거나 영화까지 봤습니다. 아무튼 모든 것이 정상이었습니다.”“정상일수록 이상하지. 이 모든 것은
이때 진환이 말했다.“대표님, 전에 비해 많이 변하신 것 같습니다.”“예전에 난 항상 내 결정이 바로 지아에게 가장 이로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결과, 오히려 한 번 또 한 번 지아를 다치게 했어. 게다가 지아가 가짜로 죽는 것도 나쁜 일이 아니야. 날 속일 수 있는 이상, 전의 그 주모자를 속일 수도 있으니까. 이렇게 되면 지아는 오히려 안전해졌고, 수시로 암살당하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그래서 대표님은 지금 사모님뿐만 아니라 주모자에게 보여주려고 연기를 하시려는 거군요.”“그래야 우리는 더 많은 시간을 이용해 조사할 수 있어. 지금 그 사람은 아마 경계심을 내려놓았을 거야. 그러나 그 전에 난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어.”“무슨 일이죠?”“집안 정리.”이씨 가문의 작은 사모님이 불치병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재빨리 전해졌다. 지아의 장례식은 오늘 저녁으로 정해졌고, 거의 모든 상류층의 유명 인사들이 찾아왔다.심예지는 눈시울이 새빨갰다. 그녀는 지아란 며느리를 매우 좋아했지만, 아쉽게도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어르신은 정신이 아직 회복되지 않아 망연한 표정으로 홀에 서서 오 집사에게 물었다.“누가 죽었지?”오 집사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드러냈다.“어르신, 더 이상 묻지 마세요.”다른 사람들도 분분히 의론을 하기 시작했다.“듣자니 이 대표님이 자신의 부인을 그렇게 좋아했다고 하던데.”“그런 것 같지 않은데. 전에 국내에 있을 때, 다른 사람과 결혼하려 하지 않았어?”“하긴, 이 작은 사모님도 참 불쌍한 사람이야.”백채원은 장례식에 참석할 자격이 없었지만, 지아의 사망 소식을 듣고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마침내 이 날이 왔군. 소지아가 죽었으니 앞으로 나와 도윤 씨를 빼앗는 사람은 없을 거야!’‘하느님도 내 편에 섰던 거야. 마침내 소지아가 먼저 죽어버렸어.’도윤이 나타났을 때,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비록 도윤은 여전히 정장을 입고 있었지만, 원래 깨끗하던 턱에는 짧은 수염이 자랐고, 얼굴은
도윤은 피하지 않았다. 이때 진환이 나타나 민아를 뒤로 끌어당겼다.“김민아 씨, 진정 좀 하시죠. 저희 대표님도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고, 이 모든 것은 사모님께서 스스로 선택한 것이에요. 대표님은 지금 충분히 고통을 느끼고 있단 말이에요.”민아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었다.“이 찌질한 남자 같으니라고. 지아의 상태는 분명히 많이 좋아졌는데, 틀림없이 당신이 지아를 자극해서 일을 이렇게 만든 거예요. 지아가 당신을 만난 것은 정말 재수가 없는 일이군요.”민아는 진환을 돌아서 도윤의 앞으로 걸어갔다. 하이힐을 신은 민아는 도윤과 키가 거의 비슷했고, 가까이 다가간 다음, 도윤의 옷깃을 꽉 잡았다.“지아가 대체 뭘 잘못했길래, 대체 왜 지아를 이렇게 만든 거죠?”도윤은 고개를 숙이며 담담하게 말했다.“지아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어. 다 나 때문이야.”민아는 화가 나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그녀 역시 어쩔 수가 없었다.지금 도윤을 죽인다고 해서 또 뭐가 달라지겠는가? 지아는 이미 돌아올 수 없었다. 그러나 민아는 여전히 내키지가 않아 계속해서 도윤을 때리려 했다.이번에 누군가가 민아의 손을 잡았는데, 그것은 그녀의 사장님이자 그녀에게 이 소식을 알려주고, 또 특별히 그녀를 데려온 남자였다.“김 비서, 그만해.” 남자의 표정은 무척 엄숙했다.그러나 민아는 한창 화가 나 있었기에 또 어찌 손을 내려놓으려 하겠는가.“사장님, 이 손 놓으세요. 난 이 쓰레기 같은 남자를 죽일 거예요! 이 남자만 아니었다면 지아도 죽지 않았을 텐데. 다 이 남자 때문에 지아가 핍박을 못 이겨 죽은 거라고요.”민아는 옆에 놓인 흰국화와 흰장미를 모두 도윤의 몸에 던졌다. 장미의 가시는 그의 뺨을 매섭게 스쳐 핏자국을 남겼고, 피는 그의 얼굴을 따라 천천히 흘러내렸다.도윤은 처음부터 반항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표정조차 변하지 않았다.그는 확실히 잘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고, 민아가 지아를 대신해서 자신을 때렸다
머리가 타일에 부딪치자, 격렬한 충돌 소리가 났고 모두를 놀라게 했다.이것은 추모가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것과 다름없었다!‘이 대표 미친 거 아니야? 이 어린 소녀가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이렇게 심하게 손을 쓰는 거지?’이예린은 자신이 지아의 장례식에 놀러 왔다가 뜻밖에도 남에게 발각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것도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오빠에게.‘나와 소지아 사이에서 줄곧 날 선택했는데.’‘지난번에는 심지어 날 위해 소지아의 손까지 다치게 했고.’‘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머리가 타일에 박히자, 이예린은 어지러워서 눈앞이 캄캄해졌고, 이마는 아예 피투성이가 되었다.‘내가 지금 이 모습을 유지하려고 얼굴에 얼마나 많은 수술을 했는데!’“대표님, 지금 사람 잘못 본 거 아닌가요! 난 당신과 잘 알지도 못하는데, 왜 나에게 이런 짓을 하는 거죠?”이예린은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었지만 여전히 자신의 거친 목소리를 숨기기 어려웠다.그녀는 얼굴을 고칠 수 있어도 불에 타버린 성대를 통제할 수 없었다.그러나 도윤은 이예린과 다툴 마음이 없었다. 그는 그녀의 머리를 억누르더니 몸을 숙여 오직 두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차갑게 말했다.“이예린, 지아는 이미 떠났지만 그녀를 해친 사람, 난 하나도 놓치지 않을 거야. 지아 앞에 고분고분 무릎 꿇고 참회나 해. 넌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이예린도 더 이상 연기를 하지 않았다.“그 여자가 스스로 선택한 길인데,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거지? 앞으로 오빠가 지옥에 가면 스스로 그 여자 찾아가서 설명하든가.”“잘못을 뉘우치고 싶지 않은 건가? 하지만 오늘 네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지아에게 꼭 절을 해야 해!”말을 마치자, 도윤은 이예린의 머리를 잡고 힘껏 눌렀고, 이예린은 발버둥 칠 여지가 전혀 없었다.심예지는 두 사람의 행동에서 이미 여자의 신분을 알아맞힐 수 있었다. 도윤이 이예린을 험하게 대하는 것을 보며 심예지는 마음이 아팠지만 나서서 막지 않았다.심예지가 이예린에게 빚진 것
이예린은 비록 나이가 많지 않았지만, 노련한 태도로 전혀 흔들림 없이 대답했다.“새로운 곳에 와서 그런지 잠이 안 오네요. 좀 걸으려고요.” “네 오빠도 여기 있잖니. 그 아이가 네가 나가는 걸 보면 분명히...” 이예린은 곧장 심예지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오빠가 제 손발이 이미 회복된 걸 모를 거라고 생각하세요?” “오빠가 정말 저를 죽이고 싶었다면, 이미 3년 전에 끝냈을 거예요. 하지만 오빠는 누군가처럼 사랑에 눈이 멀어버리는, 마음 여린 사람이라고요.” 당시 도윤은 예린을 죽이지 않고, 단지 손과 발의 힘줄을 끊어버렸다. 그것만으로 지아를 위해 복수를 한 셈이었다.더구나 지아는 죽지 않았기에, 도윤은 더 이상 예린을 해치지 않았다.“너는 전혀 우리를 닮지 않은 모양이구나.”예린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러게요.”사실, 사랑에 눈이 멀어버리는 것은 그들 가문에 흐르는 피와 같았다.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도윤도 그러했으며, 예린도 다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시후가 예린을 구해준 순간부터, 예린은 자신의 목숨이 영원히 시후의 것임을 알았다. “그래, 주변에서만 걸어 다니렴. 괜한 문제는 일으키지 말고.” “알겠어요.”예린은 몇 발짝 걸어가다가 멈추더니, 뒤돌아 심예지를 바라보았다.“엄마.”심예지는 온몸이 굳어버렸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예린을 바라보며 물었다.“방금... 뭐라고 했니?” 심예지는 지난 몇 년 동안 예린에게 모든 것을 맞춰주었지만, 예린은 늘 과묵했으며, 좀처럼 말하지 않았다. 예린은 태도마저 차갑고 무관심했기에, 심예지는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것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저 여생 동안 속죄할 기회가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심예지는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았는데, 예린의 입에서 나온 ‘엄마’라는 단어는 너무나 큰 의미를 지니는 듯했다.심예지는 그 자리에서 눈물이 차올랐고, 다시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뭐... 뭐라고?”“엄마.”이번에는 예린
전화를 받은 이예린은 당황해서 더듬거리며 말했다.[말씀만 해주세요. 제 목숨을 구해주셨으니, 선생님을 위해서라면 불 속이라도 뛰어들겠어요.]이 대답은 시후가 예상한 대로였다. 과거에도, 그리고 얼마 전에 재회했을 때도, 예린은 시후를 볼 때마다 두려워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평소의 당당한 이예린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시후는 연애 경험은 없었지만, 비즈니스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다양한 유형의 여성을 접해왔다. 그래서 예린이 단순히 자신에게 감사함을 느끼는 것 외에도, 깊은 연모의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예린이 이씨 가문의 아가씨라 할지라도, 시후 앞에서는 늘 자신감 없는 태도를 보였으니 말이다. 예린은 시후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며, 늘 자격지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시후는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다. [제가 선생님의 아버지를 구출하라는 말씀이시죠?] “그래, 할 수 있겠어?”시후는 예린에게 모든 진실을 털어놓았지만, 속으로는 그녀가 해낼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예린은 주저하지 않고 답했다.[어려울 순 있겠지만, 반드시 해낼게요.]예린은 나이가 어리지만 결단력이 있었다. 예린의 대답에 시후는 한결 안도했다.“뭐든 얘기해줘. 최선을 다해서 널 도울게.”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저 혼자로도 충분하니까요. 사람이 많아지면 오히려 적에게 이상한 낌새만 줄 뿐이에요.]시후는 곧 이예린의 놀라운 능력을 직접 보게 되었다. 예린은 명석한 두뇌와 치밀한 계획, 냉혹하면서도 질서 정연한 방식으로 일을 처리했다. 만약 예린이 적이었다면, 정말로 두려운 상대가 되었을 것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양지운이 시후를 바라보며 물었다.“어떻게 됐습니까?” “우리 사람들을 철수시켜.” “그 여자의 말을 믿으시는 거예요? 오랜 세월 동안 보지 못했던 사람인데요.” 시후는 길가에 떨어진 나뭇잎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때로는 은혜 하나만으로도 평생 기억되는 법이지
이 말을 할 때 조경선의 얼굴은 거의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고, 입가에는 미친 듯한 웃음이 번졌다.“꼭 살아남아서, 그 모든 걸 똑똑히 지켜보도록 해.” 조경선은 다시 소임호에게 영양제를 주사했다. 소임호는 침대에 누운 채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는데, 조경선과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도 남은 힘을 모두 소진한 것 같았다. 소임호가 눈을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병약한 모습을 보자, 조경선은 결국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조경선은 수년간 어둠 속에서 모든 것을 계획해 왔다.조경선이 상상했던 장면은 소임호가 무릎을 꿇고 자신에게 애원하며 사과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소임호를 붙잡고 나서도, 소씨 가문이 이렇게 망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소임호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심지어 자살 시도까지 했으니, 조경선의 분노를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온 힘을 다해 날린 주먹이 솜사탕에 파묻힌 것 같은 기분이었다.조경선의 가슴속은 분노와 억울함으로 가득 찼다. 그토록 오랜 시간 공들여 계획했지만, 조경선은 결국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조경선은 뼛속 깊이 소임호를 증오하면서도, 소임호가 그렇게 약해진 모습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절대 그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소임호는 조경선이 평생 이루지 못한 소원이자, 사랑하면서도 증오하던 대상이기 때문이었다. 소임호를 미워할수록 사랑도 더 깊어졌기에, 조경선은 소임호를 죽이기보다는 그가 자신에게 굴복하며 돌아오기를 원했다.해가 저물 무렵.조경선은 잠시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별장 안팎에 놓인 꽃들과 각종 장식은 사실 특정한 용도로 설계된 것이었다. “침입자 발견! 침입자 발견!”기계음이 별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조경선은 두 눈을 번쩍 뜨며 침대 옆 협탁에서 가면을 꺼내 얼굴에 썼고, 입가에 음흉한 웃음을 그렸다. “감히 여길 들어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한 모양이지?”조경선이 손을 한 번 흔들자, 벽에 설치된 스크린에 실시간 CCTV 화면이 투사되
지아는 멍하니 서 있다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진봉을 바라보며 물었다.“성형?” “예, 성형수술이요.”지아는 그제야 소시월이 왜 자신과 닮았는지, 혹시 소임호와 관련 있는 사람인지 의심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이제야 모든 것이 설명되었으니 말이다. 지아는 손에 든 서류를 훑어보았다.소시월은 13살에 처음 성형수술을 했고, 이후 매년 한 가지씩 성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게다가 20대 중반 이후로는 유지와 보수를 시작했기 때문에, 아무도 그녀를 의심하지 않았다.그 시절 소시월은 기숙 학교에 다녔기에, 사람들은 반년 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가 성장하며 부모를 닮아간다고 생각했을 뿐, 의술의 힘으로 얼굴을 바꿨다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아마 그들이 당시에 지아를 해치지 않은 이유도 그녀의 얼굴을 복제하려 했기 때문일 터.그 후, 지아가 쓸모없어지자 암살 계획을 시작한 것이 분명했다. 지아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 가짜 얼굴을 한 꺼풀씩 다 벗겨내 주겠어!”“사모님, 만약 그 여자가 사모님을 계속 암살하려던 배후라면, 그 여자의 등에는 분명히 총상이 있을 겁니다. 그날 저희가 사람들을 데리고 갔을 때, 그 여자는 도망치면서 총을 한 발 맞았었죠.” “당장 알아봐!”지아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는데,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생지옥 같은 나날들이 떠오르는 듯했다.비록 도윤이 한때 지아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결국 그 모든 고통은 누군가가 뒤에서 지아의 삶을 철저히 망가뜨린 것이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소시월은 내 자리를 차지하고, 내가 누려야 할 가족의 사랑과 따듯함을 즐겼어. 그것도 모자라서 나를 지옥 속으로 처참히 몰아넣었다고!’지아의 분노는 억누를 수 없을 정도였다. “사모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반드시 모든 진실을 밝혀내겠습니다.” “그 여자를 감시할 사람을 찾아. 최근 움직임이 많아졌으니, 뭔가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해. 최대한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 해!”“예.”지아는 머리를 짚으며
안타깝게도 지아가 이미 진실을 알아낸 상태였기에, 장민호의 소식은 늦은 셈이었다.“지금 어디에 계세요?”지아가 급히 물었다.‘민호 씨가 이 일에 연루되었는지 아닌지 확인할 필요가 있어.’ [Z국에 있어요. 최근 소씨 가문에 많은 일이 일어나는 바람에, 이 소식을 알아내는 데 시간이 꽤 걸렸어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틈을 타서 지아 씨에게 위협이 되는 소시월을 제거할 테니까요.]지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지아는 처음에 장민호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자신의 의도를 눈치챘을까 봐 걱정했지만, 장민호는 아직 그녀가 Z국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했다. “죽이면 안 돼요.”[왜요? 그 여자는 지아 씨를 죽이려고 했잖아요. 그런 위험한 존재를 살려두면 지아 씨에게 더 큰 위협이 될 거예요.]지아는 핑계를 댔다.“저는 이미 몇 번이나 그 사람한테 암살당할 뻔했고, 그 소씨 가문의 여섯째 딸이라는 사람과도 만났어요. 우리는 나이도 비슷하고, 국적도 달라서 아무런 원한도 없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왜 저를 죽이려고 했겠어요?” “제 생각엔 누군가 소시월을 조종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은 단지 이용당하는 말일 뿐인 거죠. 그 사람을 죽이는 건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니에요. 그 배후의 사람이 진짜 목표니까요...” 지아는 이미 체스판 위의 말이 아니라 말을 움직이는 사람이 되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장민호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강인했다.[제가 도울게요.]“위험하지 않겠어요? 너무 위험하다면 하지 마세요. 저는 민호 씨가 다치는 걸 원치 않아요.” [지아 씨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겁니다.]장민호는 마지막으로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제 속죄라고 생각해 주세요.]전화를 끊은 후에도 지아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사건이 윤곽이 점점 명확해지고 있지만, 주변 상황은 여전히 위태로웠다. 특히 소씨 가문이 혼란스러운 지금은 지아가 신분을 밝히기에 적절한 때가 아니었다. 소임호와 조경숙이 자기 친부모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지아
병원에서 사고를 당한 시언을 진정시키기 위해, 지아는 일찍이 자신과 시후의 계획을 모두 털어놓았다. 다만, 다른 사람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시후는 그림자 속에 숨어 있었고, 시언이 대외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즉, 두 사람이 안팎에서 호응하며 움직이고 있었던 것. 게다가 소임호 또한 차근차근 사건을 조사하며, 여러 정황으로 인해 배후의 흑막이 조경선이라는 의심을 품게 되었고, 조경선을 끌어내기 위해 자신을 미끼로 삼았다. 하지만 비행기 사고 이후로 소임호와 시후의 연락이 끊겼고, 시언은 며칠 동안 마음을 졸이며 초조해했다. 그런데 조금 전, 다행히도 소임호의 행방을 알아낸 것이었다.시언은 즉시 이 소식을 지아에게 알렸다. 지아는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게 되자, 시언의 목소리를 듣고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순간적으로 수많은 말들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왜 그래, 지아야?”시언은 지아의 침묵에 걱정하며 물었다.“무슨 일 있어?” 지아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말했다.[아니요, 저는 그냥...]하지만 말을 꺼내자 목소리에 눈물 섞인 떨림이 묻어나왔다.시언이 더욱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일이 있다면 숨기지 마. 우리는 이미 네 의형제가 됐어. 우린 가족이라고. 소씨 가문에 이런저런 일이 생겼다고 해도, 난 널 지킬 거야.”시언의 ‘지킨다’라는 말이 지아의 마음을 더욱 따뜻하게 했다.시언은 지아의 정체를 알지 못했음에도 여전히 이렇게 다정하고 따듯하게 대해주었다. 아마 이것이야말로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만이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러운 유대일 것이었다. 하지만 지아는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왜 소씨 가문 사람들은 내 존재 자체를 몰랐을까?’ 현재 지아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경숙은 여섯 번째 아이를 낳은 후 과다출혈로 크게 몸이 상해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고 했다.‘가족이 내 존재를 모를 리가 없는데.’ ‘게다가 시영 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남은 건 소시월 뿐이야.’‘소시
소임호는 눈앞의 광기 어린 조경선을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조경선, 그동안 정말 행복했니? 그렇게 애써 계획해서 네가 얻은 건 뭐지? 지금의 이 상황을 만든 우리는 모두 패배자라고!” “틀렸어.”조경숙이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그 당시의 나는 얼굴도 망가지고, 족보에서 제명되고, 가족들에게도 내쳐졌어. 나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데, 조경숙은 왜 모든 걸 가져야 해? 시골에서 돌아온 한낱 촌뜨기가 어떻게 나를 대신할 수 있었냐고!” “그래, 난 패배자야. 하지만 너희도 내 시체 위에 서서 잘난 척할 수는 없을걸? 우리 두 쪽 다 망가지는 게 내 승리니까!” 조경선이 고개를 숙여 소임호를 살펴보며 말했다.“당신 꼴을 좀 봐. 떠돌이 개랑 다를 게 뭐야? 참 안쓰럽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야.”“곧 소씨 가문은 완전히 망가질 거야. 나는 당신을, 그리고 소씨 가문을 반드시 파멸시키고 말 거야!” “너 정말 미쳤구나.”“그래, 난 미쳤어.”“하지만 당신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이젠 내가 겪었던 고통을 당신이 똑똑히 느껴야 할 차례야. 당신도 알겠지만,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조경숙은 이제 심세호의 여자가 됐어. 정말 가슴 아프지 않아?” “참, 그건 모르지? 소씨 가문의 노친네는 이미 죽었고, 당신 아들들도 곧 당신과 함께 무덤으로 갈 거야!” “조경선, 너는 진짜 인간 말종이야!” 소임호는 극도로 분노하며 몸부림쳤고, 쇠사슬은 그의 몸부림으로 인해 요란하게 울렸다.하지만 조경선은 소임호의 턱을 잡고 비웃으며 말했다. “왜, 불만이야? 그럼 나한테 빌어봐. 그러면 그 자식들한테 고통 없는 죽음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꿈 깨.”소임호가 냉소하며 말했다.“죽어도 너한테 무릎 꿇을 일은 없을 거야.” “걱정하지 마. 당신을 죽게 두지는 않을 테니까. 당신이 죽으면,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처참히 망가지는지 보여줄 수 없잖아. 당신 자식들은 끔찍한 최후를 맞이할 거고, 당신이 가장 사랑했던 조경숙은 눈이 멀어 다른 남
여자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넌 먼저 돌아가.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볼 테니, 당분간 티 내지 말고 조용히 있어.” “알겠어요.”시월은 갑자기 한 가지 일이 떠올라 물었다.“맞다, 아빠는 어떻게 됐어요?” 그 말을 들은 여자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흥, 끝까지 고집불통인 쓰레기 같은 남자. 내가 겪은 교통을 천배, 만 배로 되돌려줄 거야!” 시월의 얼굴에 찰나의 망설임이 스쳐 지나갔다.“엄마, 이제 그만하면 안 돼요? 우리는 그동안 아빠가 가족도 잃게 하고, 집안도 망가지게 했잖아요.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요?” “충분? 꿈 깨! 이건 그 사람이 나한테 진 빚이라고!” 여자가 소시월의 옷깃을 꽉 잡으며 으르렁거렸다.“경고하는데, 나는 네 어미야. 네가 조금이라도 망설인다면, 나는 절대 널 용서하지 않을 거야.” “엄마, 알겠어요, 나는 엄마의 딸이니까 당연히 엄마 편이에요.” 소시월은 여자의 손아귀에서 간신히 벗어나 두려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최근 몇 년 동안 그 여자의 정서는 점점 더 불안정해졌다.사실, 그녀의 얼굴도 치료를 통해 회복할 수 있었지만, 집착이 너무도 강한 그녀는 치료를 거부했다. “이 고통을 평생 기억하면서 나한테 상처를 준 사람한테 천 배, 만 배로 돌려줄 거야!!” 여자는 평생을 복수 계획에만 몰두하며 살았다. 하지만 소시월이 보기에, 복수를 이루더라도 그녀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을 것이었다. 소씨 가문은 지금 엉망진창이 되었기에, 소시월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소시월이 떠난 후, 여자는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며 지하실로 향했다. 지하실 문은 단단히 닫혀 있었는데, 여자가 자신의 지문을 입력하자,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이 서서히 열렸다. 여자는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며 안으로 들어갔고, 어둡고 습한 지하실에는 손과 발이 묶인 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생사조차 알 수 없었다. 여자는 그를 향해 다가가며 광기 어린 집착이 서린 눈빛으로 말했다.“소임호
소지훈이 폭로한 충격적인 사실은 소씨 가문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아에게도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출생 비밀을 찾아 헤매던 지아는,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중에 스스로 이야기의 중심인물이 되고 말았다. 이전에 소씨 가문 사람들의 고충에 공감했던 지아는 이제 그들이 자기 혈육임을 알게 되자,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지아는 도윤의 품에서 천천히 미끄러졌고, 무릎을 꿇고 앉은 채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아빠, 엄마, 그리고 오빠들이...” 하지만 더욱 지아를 견딜 수 없게 한 것은 예전에 마주했던 그 시신이 자기 친언니였다는 사실이었다. ‘시영 언니는 너무도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어.’ ‘심지어 나는 그걸 전혀 몰랐고, 언니의 마지막 가는 길조차 배웅하지 못했어...’ 지아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지아야!”도윤은 지아를 안고 급히 자리를 떠났다. 침대에 누운 채 찡그린 표정을 한 지아를 보며 도윤은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지아는 이미 너무 많은 고통을 겪었어. 그런데 간절히 바랐던 가족마저 이런 모습으로 드러나다니.’ 무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지아의 곁을 지켰다.도윤은 무무를 부드럽게 달래며 말했다.“엄마는 괜찮을 거야. 그냥 과로한 상태에서 큰 충격을 받아 기절한 것뿐이거든.” 한편, 소씨 가문의 황당한 해프닝은 아직도 진행 중이었으며, 소영수의 장례식은 결국 소씨 가문 사람들의 싸움의 장이 되고 말았다. 겉으로는 소지훈이 이긴 듯 보였으나, 사실 그로 인해 소씨 가문은 체면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시월은 마음이 조급해졌고, 해가 뜨기도 전에 황급히 차를 몰아 오래된 별장으로 향했다. 건물 꼭대기에는 까마귀들이 앉아 있었다.‘까악까악’ 울음소리가 밤하늘을 배경으로 더욱 섬뜩하게 들렸다. 장미 덩굴은 낡은 담벼락 위로 기어오르며, 삭막하고 부패한 세상에 한 줄기 생기를 더하고 있었다. 새벽이 다가오자, 햇살이 어둠을 찢으며 온 세상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