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윤은 떨리는 두 손으로 결혼반지와 편지를 주웠다. 편지를 뜯는 이런 아주 간단한 일에, 그는 마치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것처럼 끊임없이 손을 떨었다.이때 진환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대표님, 제가 할게요.” 사실 이 편지를 보든 말든 모두들 이미 지아가 어디로 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도윤은 공포와 슬픔에 천천히 편지를 꺼냈는데, 익숙한 글씨가 눈앞에 나타났다.전에 도윤이 출장을 다닐 때, 지아는 몰래 그에게 편지를 쓰곤 했는데, 주소를 몰랐기에 지아는 하고 싶은 말을 써서 병에 담은 다음 화원에 묻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윤은 무심코 이를 발견한 후, 매번 돌아올 때마다 곧바로 지아의 신비한 동굴에 새로운 편지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러 갔고 점차 습관이 되었다.그때 지아의 편지 내용은 귀엽고 발랄했다. 그러나 지금 손에 든 이 편지는 글자가 얼마 없었지만 전부 결별에 관한 것이었다.[이도윤,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 버티고 싶지 않아. 이번 생 우리 두 사람의 인연은 여기까지인 것 같으니 다음 생에도 만나지 말자.소지아가.]도윤은 눈시울이 빨개졌고 때마침 하늘에서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편지에 물방울이 떨어지더니 도윤의 눈물인지 빗물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도윤은 편지를 가슴 위에 얹으며 천천히 무릎을 꿇었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지아야, 내가 잘못했으니까 제발 돌아와. 넌 죽으면 안 돼. 죽어야 할 사람은 나란 말이야.”그는 그 결혼반지를 꼭 쥐었다. 전에 지아는 반지를 팔았다가 또 버렸지만 도윤은 결국 몰래 그 반지를 주워 왔다.도윤은 지아가 이 반지 꼈을 때의 미소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결혼반지를 끼면 난 이제 네 사람이야. 여보, 우리 앞으로 잘 지내보자.”도윤의 버림을 받은 동안이라도, 지아는 반지를 뺀 적이 없었고, 암 때문에 살이 빠진 후, 도윤은 특별히 반지를 작게 고쳤다. 지금은 반지가 다시 원래의 주인에게 돌아온 셈이었다.‘이번 생의 인연이 끝났으니 다음 생에도 만나지 말자고 했어.
이씨 집안.침대 위에 누운 남자는 손가락을 움직이더니 갑자기 소리 질렀다.“지아야!” 그리고 두 눈을 뜨며 벌떡 일어나 당황한 모습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심예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드디어 깨어났구나. 너 혼수상태에 빠진 지 3일이나 됐어.”도윤의 기억은 여전히 해변에 머물러있었고, 멍하니 있다 얼른 물었다.“어머니, 지아는요? 지아를 찾았나요?” 심예지는 마음이 아파서 도윤에게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도윤아, 너도 마음의 준비를 좀 해야 할 것 같아. 지아는...지아는 이미...”“그럴 리가 없어요, 지아는 죽지 않았을 거예요!”도윤은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맨발로 내려와 문밖으로 뛰어갔다.“지아야, 너 어디에 있는 거야? 지금 나 피하는 거니?”“지아야, 숨지 마!”도윤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지아를 찾았다. 1층 안방으로 들어가자, 모든 것은 지아가 떠나기 전 그대로였다.깨끗한 침대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꽃병 속의 꽃은 일주일 전 정원에서 자른 꽃으로, 이미 시들어져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테이블에는 책이 하나 놓였는데, 지아는 아직 다 보지 못했기에 접지 않고 여전히 그 페이지에 머물러 있었다.방안의 물건은 모두 예전 그대로였지만, 지아가 없었다.도윤은 정원의 문을 열고 들어가 지아가 평소에 가장 좋아하는 곳으로 갔다.그곳에는 휠체어 한 대와 아름답게 핀 꽃만 남았다.도윤은 미친 듯이 화원에서 달리며 다급하게 소리쳤다.“지아야, 너 지금 어디에 있는 거야? 제발 나타나줄래?”“지아야, 내가 잘못했어. 나 정말 잘못했으니까 네가 돌아오기만 하면 무엇이든 할게.”두 발은 돌에 베여 피가 났지만 도윤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는지 그는 꽃대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그는 자신의 손가락에 이미 반지를 낀 흔적이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 마치 지아가 그의 세계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귓가에서 바스락바스락하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자, 도윤은 희망을 느끼며 즉시 고개를 돌렸다.“지아야!”
도윤은 다시 그 해변으로 찾아왔고 진봉과 진환은 안색이 초췌했다. 비록 두 사람은 번갈아 가며 이곳을 지켰지만, 요 며칠 거의 쉬지 않았기에 눈 밑에 선명한 다크서클이 생겼다.그들은 지아가 도윤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요 3일간 그들은 무수한 일손을 파견했고 심지어 모든 자원을 동원하여 지아의 시체를 인양했다.도윤을 보자, 그들은 재빨리 다가가서 인사했다.“대표님.”도윤은 눈시울이 새빨갰고, 검은색 양복을 입은 그는 예전처럼 카리스마가 넘치는 대신 많이 의기소침해졌다.입을 열자, 도윤의 목소리는 약간 잠겼다.“찾았어?”진환은 고개를 저었다.“아직입니다. 사모님께서 뛰어든 해역은 좀 복잡합니다. 당시 사모님께서는 역류를 만나 먼 곳으로 밀려갔는데, 저쪽은 또 마침 해역에 단층이 생겨 깊이가 수백 미터에 달했고 가시거리도 좋지 않아 인양 작업이 많이 어렵습니다.”도윤은 주먹을 꼭 쥐더니 뼈마디가 새하얗게 변했고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았다.“내가 할게.”그는 잠수복으로 갈아입고 산소탱크를 멘 다음 인양팀을 따라 심해로 들어갔다.바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가시거리가 좋지 않았는데, 주위의 물고기 떼, 산호 그리고 기타 해양 생물을 많이 볼 수 있었다.이미 3일이 지났으니, 설사 지아의 시체가 물고기 떼에게 먹히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미 심하게 변형되어 본래의 모습조차 보기 힘들 것이다.도윤은 그런 지아를 찾을까 봐 두려웠지만 또 빨리 그녀를 찾고 싶었다. 그는 지아를 혼자 바다에 남기고 싶지 않았다.“지아야, 두려워하지 마. 내가 너 데리고 집에 갈게. 앞으로 우리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응?”도윤은 이렇게 기진맥진할 때까지 한 번 또 한 번 바다를 뒤적였고, 해가 내려갈 때까지 찾았지만 여전히 지아를 발견하지 못했다.그는 갑판 위에 누워 머리 위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숨을 크게 헐떡였다. 지금 그는 힘들어서 손가락조차 들 수 없었다.“대표님, 이제 물에 들어가지 마세요. 그러다 대표님도 위험에 빠질 거예요.”도
도윤은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며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지아가 죽지 않았다면, 그녀를 다시 내 곁으로 데려오는 것은 전철을 밟은 것에 불과해. 다시 한번 지아를 슬프게 할 뿐이지. 내 곁에 남아 있는 것은 마치 꽃병에 꽂힌 꽃과 같아.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게 될 거야. 아마 지아를 놓아주는 게 정확한 선택일지도 몰라.”진봉과 진환은 도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듣고 모두 불가사의하다고 느꼈다.“대표님, 정말 이대로 사모님을 놓아주려고요?”“예전에 난 줄곧 지아를 곁에 두고 싶었지만 늘 불의의 사고가 찾아왔지. 지아는 뼈에 사무칠 정도로 날 원망하고 있으니, 만약 이것이 그녀가 원하는 것이라면 난 지아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어.”도윤은 한숨을 내쉬었다.“이것도 모두 나의 추측일 뿐, 아직은 확실한 증거가 없어. 먼저 지아가 아직 살아있는지부터 검증해. 지아의 휴대폰 위치와 일주일 간 임건우의 모든 동향을 추적하고. 그리고 절대로 들키지 마.”“네, 대표님.”“먼저 돌아가실래요?”도윤은 고개를 저었다.“만약 지아가 아직 죽지 않았다면 지금쯤 나의 행동에 관심을 기울일 거야. 그녀를 두렵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요 며칠 바다에서 지낼게.”지아의 죽음에 미쳐버린 도윤은 틀림없이 시체를 인양하기 위해 전력을 다 할 테니 또 어떻게 하루 만에 포기할 수 있겠는가?도윤은 지아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니 지아 역시 도윤을 잘 알고 있었다.다만 도윤은 자신이 언젠가 지아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를 놓아줄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그 다음 며칠간, 인양작업은 여전히 계속되었고 진환도 무언가를 조사해냈다.“사모님의 핸드폰 신호는 마지막으로 해변에 나타났는데, 지금은 이미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을 겁니다. 그리고 저는 특별히 임건우의 동향을 조사해 봤지만, 요 며칠 그는 여전히 제때에 출퇴근했고, 퇴근 후 심지어 여자친구와 함께 쇼핑하고, 식사를 하거나 영화까지 봤습니다. 아무튼 모든 것이 정상이었습니다.”“정상일수록 이상하지. 이 모든 것은
이때 진환이 말했다.“대표님, 전에 비해 많이 변하신 것 같습니다.”“예전에 난 항상 내 결정이 바로 지아에게 가장 이로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결과, 오히려 한 번 또 한 번 지아를 다치게 했어. 게다가 지아가 가짜로 죽는 것도 나쁜 일이 아니야. 날 속일 수 있는 이상, 전의 그 주모자를 속일 수도 있으니까. 이렇게 되면 지아는 오히려 안전해졌고, 수시로 암살당하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그래서 대표님은 지금 사모님뿐만 아니라 주모자에게 보여주려고 연기를 하시려는 거군요.”“그래야 우리는 더 많은 시간을 이용해 조사할 수 있어. 지금 그 사람은 아마 경계심을 내려놓았을 거야. 그러나 그 전에 난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어.”“무슨 일이죠?”“집안 정리.”이씨 가문의 작은 사모님이 불치병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재빨리 전해졌다. 지아의 장례식은 오늘 저녁으로 정해졌고, 거의 모든 상류층의 유명 인사들이 찾아왔다.심예지는 눈시울이 새빨갰다. 그녀는 지아란 며느리를 매우 좋아했지만, 아쉽게도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어르신은 정신이 아직 회복되지 않아 망연한 표정으로 홀에 서서 오 집사에게 물었다.“누가 죽었지?”오 집사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드러냈다.“어르신, 더 이상 묻지 마세요.”다른 사람들도 분분히 의론을 하기 시작했다.“듣자니 이 대표님이 자신의 부인을 그렇게 좋아했다고 하던데.”“그런 것 같지 않은데. 전에 국내에 있을 때, 다른 사람과 결혼하려 하지 않았어?”“하긴, 이 작은 사모님도 참 불쌍한 사람이야.”백채원은 장례식에 참석할 자격이 없었지만, 지아의 사망 소식을 듣고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마침내 이 날이 왔군. 소지아가 죽었으니 앞으로 나와 도윤 씨를 빼앗는 사람은 없을 거야!’‘하느님도 내 편에 섰던 거야. 마침내 소지아가 먼저 죽어버렸어.’도윤이 나타났을 때,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비록 도윤은 여전히 정장을 입고 있었지만, 원래 깨끗하던 턱에는 짧은 수염이 자랐고, 얼굴은
도윤은 피하지 않았다. 이때 진환이 나타나 민아를 뒤로 끌어당겼다.“김민아 씨, 진정 좀 하시죠. 저희 대표님도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고, 이 모든 것은 사모님께서 스스로 선택한 것이에요. 대표님은 지금 충분히 고통을 느끼고 있단 말이에요.”민아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었다.“이 찌질한 남자 같으니라고. 지아의 상태는 분명히 많이 좋아졌는데, 틀림없이 당신이 지아를 자극해서 일을 이렇게 만든 거예요. 지아가 당신을 만난 것은 정말 재수가 없는 일이군요.”민아는 진환을 돌아서 도윤의 앞으로 걸어갔다. 하이힐을 신은 민아는 도윤과 키가 거의 비슷했고, 가까이 다가간 다음, 도윤의 옷깃을 꽉 잡았다.“지아가 대체 뭘 잘못했길래, 대체 왜 지아를 이렇게 만든 거죠?”도윤은 고개를 숙이며 담담하게 말했다.“지아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어. 다 나 때문이야.”민아는 화가 나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그녀 역시 어쩔 수가 없었다.지금 도윤을 죽인다고 해서 또 뭐가 달라지겠는가? 지아는 이미 돌아올 수 없었다. 그러나 민아는 여전히 내키지가 않아 계속해서 도윤을 때리려 했다.이번에 누군가가 민아의 손을 잡았는데, 그것은 그녀의 사장님이자 그녀에게 이 소식을 알려주고, 또 특별히 그녀를 데려온 남자였다.“김 비서, 그만해.” 남자의 표정은 무척 엄숙했다.그러나 민아는 한창 화가 나 있었기에 또 어찌 손을 내려놓으려 하겠는가.“사장님, 이 손 놓으세요. 난 이 쓰레기 같은 남자를 죽일 거예요! 이 남자만 아니었다면 지아도 죽지 않았을 텐데. 다 이 남자 때문에 지아가 핍박을 못 이겨 죽은 거라고요.”민아는 옆에 놓인 흰국화와 흰장미를 모두 도윤의 몸에 던졌다. 장미의 가시는 그의 뺨을 매섭게 스쳐 핏자국을 남겼고, 피는 그의 얼굴을 따라 천천히 흘러내렸다.도윤은 처음부터 반항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표정조차 변하지 않았다.그는 확실히 잘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고, 민아가 지아를 대신해서 자신을 때렸다
머리가 타일에 부딪치자, 격렬한 충돌 소리가 났고 모두를 놀라게 했다.이것은 추모가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것과 다름없었다!‘이 대표 미친 거 아니야? 이 어린 소녀가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이렇게 심하게 손을 쓰는 거지?’이예린은 자신이 지아의 장례식에 놀러 왔다가 뜻밖에도 남에게 발각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것도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오빠에게.‘나와 소지아 사이에서 줄곧 날 선택했는데.’‘지난번에는 심지어 날 위해 소지아의 손까지 다치게 했고.’‘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머리가 타일에 박히자, 이예린은 어지러워서 눈앞이 캄캄해졌고, 이마는 아예 피투성이가 되었다.‘내가 지금 이 모습을 유지하려고 얼굴에 얼마나 많은 수술을 했는데!’“대표님, 지금 사람 잘못 본 거 아닌가요! 난 당신과 잘 알지도 못하는데, 왜 나에게 이런 짓을 하는 거죠?”이예린은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었지만 여전히 자신의 거친 목소리를 숨기기 어려웠다.그녀는 얼굴을 고칠 수 있어도 불에 타버린 성대를 통제할 수 없었다.그러나 도윤은 이예린과 다툴 마음이 없었다. 그는 그녀의 머리를 억누르더니 몸을 숙여 오직 두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차갑게 말했다.“이예린, 지아는 이미 떠났지만 그녀를 해친 사람, 난 하나도 놓치지 않을 거야. 지아 앞에 고분고분 무릎 꿇고 참회나 해. 넌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이예린도 더 이상 연기를 하지 않았다.“그 여자가 스스로 선택한 길인데,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거지? 앞으로 오빠가 지옥에 가면 스스로 그 여자 찾아가서 설명하든가.”“잘못을 뉘우치고 싶지 않은 건가? 하지만 오늘 네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지아에게 꼭 절을 해야 해!”말을 마치자, 도윤은 이예린의 머리를 잡고 힘껏 눌렀고, 이예린은 발버둥 칠 여지가 전혀 없었다.심예지는 두 사람의 행동에서 이미 여자의 신분을 알아맞힐 수 있었다. 도윤이 이예린을 험하게 대하는 것을 보며 심예지는 마음이 아팠지만 나서서 막지 않았다.심예지가 이예린에게 빚진 것
도윤 쪽은 이미 단서를 찾았는데, 그는 지아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확신했고, 곧 그녀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곳을 찾아낼 수 있었다.그러나 도윤은 내색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와줘서 고맙군.”건우는 도윤과 눈을 마주쳤는데, 그의 눈에는 이미 핏발이 가득했고 얼굴 역시 전보다 많이 야위었다. 요 며칠 도윤에게 있어 1분 1초가 고문이었다.장례식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아주 이상하다고 느꼈다. 장례식에서 한 여자를 피투성이로 만들다니. 게다가 이씨 가문의 사람들은 뜻밖에도 나서서 도윤을 막지 않았고 심지어 도윤이 무릎을 꿇도록 내버려두었다.남자는 쉽게 무릎을 꿇으면 안 된다는 옛말이 있었는데, 도윤은 뜻밖에도 자신의 부모님이 아닌 아내의 위패 앞에서 계속 무릎을 꿇고 있었다.시간은 1분 1초 지나갔고, 날이 점점 어두워질 때, 이예린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한쪽에 쓰러졌다.심예지는 얼른 가서 도윤을 말렸다.“도윤아, 이제 그만해.”도윤은 이예린을 바라보았다. 이마의 피는 이미 응고되었지만 안색은 많이 창백해졌다.왠지 모르지만, 지금 도윤의 머릿속은 온통 지아가 약물치료를 받은 후의 그 연약하고 불쌍한 모습으로 가득했다.‘그에 비하면 이게 뭐라고?’도윤은 냉담하게 웃었지만, 주위의 사람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추측하고 있었기에 그는 진환을 바라보았다.“데리고 가서 치료해 줘.”그리고 도윤은 계속 무릎을 꿇으며 참회했고 그렇게 하룻밤이 지나갔다.이예린은 자기가 이런 방식으로 다시 집에 돌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얼마 동안 기절했는지, 이예린은 천천히 깨어났다.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귓가에 다급한 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 어디 아픈 데 없어?”이예린은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았고, 그것은 검은 원피스를 입은 심예지였다.심예지는 관심을 가진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움직이지 마. 너 지금 뇌진탕이라 휴식을 취해야 해. 오랫동안 잤으니 목마르지? 참, 배도 고프겠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이예린은 눈앞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