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우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지금 이 순간의 도윤은 마치 쇠사슬에서 벗어나려는 야수와 같았다.지아는 바로 그를 묶을 수 있는 쇠사슬이었지만, 만약 지아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도윤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너무 독단적인 거 아니에요? 치료를 받을지 말지는 적어도 본인의 의견을 물어봐야 하잖아요.”그러나 도윤은 또박또박 말했다.“지아를 살리는 게 가장 좋은 결과야. 난 과정 따윈 개의치 않거든. 오로지 지아가 살아있기만 하면 돼. 알겠어?”말을 마친 다음, 도윤은 성큼성큼 떠났다. 건우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진심으로 지아가 안타까웠다.‘이 남자는 여전히 제멋대로군. 아직도 사람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몰라.’양요한은 드디어 도착했고, 도윤을 보자마자 죄책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호되게 자신의 뺨을 때리며 말했다.“대표님, 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사모님을 이렇게 만들었습니다.”그러나 도윤은 그 누구도 원망할 자격이 없었다. 지아를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이었기 때문이다.“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야. 이건 지아의 검사 결과인데 먼저 무슨 방법이 있는지부터 좀 봐.”“네.” 양요한은 빗물로 젖은 손을 닦으며 검사 보고서를 받았다. 잠시 후,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어떻게 이렇게 심각할 수가 있죠? 이미 말기가 되었다니!”도윤은 마음속의 슬픔을 억지로 참으며 주먹을 꽉 쥔 채 벽을 세게 두드렸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답답하게 소리쳤다.“M-1이 암세포를 유발했어.”“대표님,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기범이가 이미 저에게 말했는데, 그때 누군가 사모님의 검사 보고서를 조작했다면서요. 게다가 사모님도 이 사실을 숨기려고 애를 쓰셨으니 대표님도 어쩔 수가 없었죠.”세상일은 정말 뜻대로 되지 않았다. 도윤은 최선을 다해 지아를 남기려 했지만 결국 그녀를 점점 더 멀리 밀어내고 있었다.도윤은 이를 갈며 말했다.“이예린이 한 짓이야.”양요한도 그들의
“대표님, 약물치료는 독으로 독을 물리치는 것과 같기에 암세포 외에 정상적인 세포까지 무차별로 공격할 거예요. 사모님의 현재 상황은 이미 아주 심각하니 암세포와 약물치료의 이중 타격에 잘못하면…”도윤은 고개를 숙여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그럴 리 없어, 지아는 죽지 않을 거야.”양요한은 도윤의 이런 모습을 보고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지금 그들은 기적이 나타나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하룻밤의 응급치료를 거쳐 지아는 잠시 위험에서 벗어났지만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그녀는 비할 데 없이 허약했고, 의사는 지아가 버틸 수 없을까 봐 재삼 약물치료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고 건의했다. 도윤은 혼수상태에 빠진 지아를 보면서 마음이 약해졌고 그저 약물치료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이때 진환이 황급히 달려왔다.“대표님, 큰일입니다. 방금 소시후 대표님이 입원했단 것을 알아냈습니다.”“뭐?”“고질병이 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개인 병원으로 옮겨졌는데, 소씨 가문에서는 이 일을 엄밀하게 보호하고 있어 아직 소시후 대표님의 상황을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본인과도 연락이 닿지 않고 있습니다.”이것은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제 소시후에게도 문제가 생겼다니!“주원 그 사람은?”“아직은 종적을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안심하세요, 대표님, 무슨 소식 있으면 바로 대표님에게 보고하겠습니다.”이때 양요한이 다급하게 달려왔다.”대표님, 사모님께서 깨어나셨습니다.”말이 떨어지자 도윤은 이미 성큼성큼 자리를 떠났다.지아는 병상에 누워 얼굴은 종이처럼 하얬다. 심예지도 뒤따라 들어왔는데, 줄곧 도도했던 그녀 역시 지아가 하루아침에 이렇게 된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파 눈물을 흘렸다.“지아야, 미안해. 나도 일부러 널 속이려고 한 게 아니야…”지아는 깨어나자마자 짙은 약물 냄새를 맡았다. 비록 위통이 잠시 멈추었지만 몸속에 마치 큰 괴물이 그녀를 삼키고 있는 것 같았다.어젯밤에 일어난 모든 일은 마치 꿈과 같았고 지금 머릿속은 여전
도윤은 하마터면 손에 든 그릇을 떨어뜨릴 뻔했다. 그는 입을 열어 설명하려 했다.“지아야, 이건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나와 백채원은 아무 사이도…”지아는 차가운 눈으로 도윤을 바라보더니 그의 말을 끊었다.“이번에 또 무슨 이야기를 꾸미려고? 지금 딱 하나만 묻겠어. 나와 백채원이 동시에 바다에 빠진 날, 네가 구한 사람은 누구지?”이것은 지아가 유일하게 생각난 기억이었고, 지금 다시 생각해도 그녀는 여전히 가슴이 아팠다.그녀가 이렇게 말한 순간, 도윤은 더 이상 지아를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지아야, 나도 그때 고충이 있었어.”지아는 여전히 담담하게 말했다.“그랬겠지, 그러나 넌 자신의 아내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구하러 갔어. 미안하지만 난 네 고충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아. 난 그냥 나 자신이 너무 불쌍하다고 생각하거든. 네 말이 맞아, 그때의 기억들을 잊어도 나쁠 건 없지. 어차피 생각하면 마음만 아플 뿐이니까.”이렇게 냉정한 지아를 마주하며 도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랐다. 지금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설령 진실이라도 지아는 더는 믿지 않을 것이다.지아는 지금 이미 도윤을 사기꾼이라 생각하고 있었다.심예지는 죽을 받더니 도윤을 노려보았다.“지아야, 이 자식은 너무 둔하니까 상대하지 마. 내가 먹여줄게. 많이 먹어야 빨리 나아질 거야.”“빨리 낫는다고요? 어머님, 저 이제 곧 죽을 거예요.” 지아는 가볍게 웃었다. 그녀는 더 이상 세 살짜리 아이가 아니었고, 자신이 위암 말기에 살아남을 수 있단 말도 믿지 않았다. 하물며 지아는 지금 상태가 심각해서 아마 며칠 정도밖에 살지 못할 것이다.“또 허튼소리 한다, 지금 의학이 얼마나 발달한데, 치료할 수 없는 병이 없지. 너도 절대로 부담 갖지 마. 다 좋아질 거야.”심예지는 인내심을 가지고 지아를 위로했다. 만약 환자가 자신이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을 안다면, 심리적인 부담 때문에 몇 개월 정도 살 수 있어도 두려움에 며칠 밖에 살지 못할 것이다.
도윤은 안방으로 돌아온 후, 욕실로 향했다. 그는 물을 튼 다음 수온이 뜨거워지기도 전에 안으로 들어갔다.차가운 물이 몸에 쏟아졌지만, 도윤은 마음이 더욱 아팠다.그는 2년 전 그날 밤, 지아가 자신에 의해 화장실에 묶여 찬물을 맞은 장면을 떠올렸다. 물이 이토록 차가웠으니 그때의 지아는 또 얼마나 큰 절망을 느꼈을까.지금의 지아를 생각하면 도윤은 후회막급이었다. 지난날 지아를 모질게 대한 그는 지금 마침내 쓰라린 고통을 받게 되었다. 지아를 얼마나 사랑한다면 도윤은 지금 얼마나 자책하고 있었다.이때 진환이 급히 달려오더니 욕실 문밖에 멈춰 섰다. 안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바깥의 빛을 빌어 그는 벽에 기대어 앉아 있는 도윤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남자는 목을 젖힌 채 물이 얼굴에 떨어지도록 내버려두었고, 피 묻은 셔츠는 여전히 그의 몸에 딱 달라붙었다. 남자의 주위엔 말할 수 없는 슬픔과 절망이 감돌았다.진환은 묵묵히 문을 닫았고, 도윤이 혼자 상처를 핥을 수 있는 공간을 남겨주었다.그는 테라스 옆으로 가서 담배 한 대를 피웠다. 방관자인 그들조차 마음이 아팠으니 당사자인 도윤은 또 얼마나 고통스러울까?“형, 사모님 설마…”진봉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두 사람 모두 지아가 도윤의 마음속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었다. 만약 지아가 죽는다면 도윤은 또 어떻게 될까?진환은 담배꽁초를 끄더니 소리 없이 한숨을 쉬었고, 도윤이 안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입을 열었다.“아직은 잘 몰라. 만약 초기였다면, 아니, 중말기였어도 사모님은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이 아주 높았을 거야. 보통 말기가 되었을 때, 모든 암세포가 전이되어 확산되기 시작했으니 아마도…”“그럼 어떡하지! 사모님께서 돌아가시면 대표님도 큰 타격을 받으실 텐데.”“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자. 독충이 기억을 잃게 하는 약물을 개발할 수 있는 이상, 어쩌면 방법이 있을 지도 몰라.”진환은 비록 신심을 북돋우고 있었지만, 그들 모두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 지아의 상황은 더 이
이유민의 상황은 정말 좋지 않았다. 어젯밤 지아가 병원으로 긴급 호송된 후, 이정진은 그 자리에서 화가 나서 발병했고 또다시 예전처럼 정신이 오락가락해졌다.이남수와 임수경은 이유민을 데리고 떠나려 했지만, 도윤이 명령을 내렸기에 경호원들은 그들이 데려가지 못하게 한사코 버텼다.이유민은 한번 기절한 적이 있었는데, 의사가 현장에서 살려준 후, 그는 지금까지 계속 무릎을 꿇고 있었다.어젯밤 집안이 난장판으로 된 것을 보았을 때, 그는 그래도 고소하다고 웃을 수 있었지만, 하룻밤 동안 무릎을 꿇고 나니 이유민은 당장이라도 죽고 싶었다.무릎은 이미 아파서 마비되었고, 머리의 상처도 간단하게 처리했을 뿐 여전히 아팠다. 이유민은 심지어 자신의 하반신에 이미 아무런 감각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피곤하고 배고프고 졸렸지만 그는 감히 정신줄을 놓지 못했다. 밤중에 이유민은 너무 졸려서 한 번 쓰러졌는데, 온몸에 유리가 가득 박혀 더욱 고통스러웠던 것이다.그렇게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이유민은 도윤이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도윤의 눈빛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고 심지어 차가운 바람처럼 그의 살을 에는 것 같았다.이유민은 뻑뻑한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난 이미 밤새 무릎을 꿇었는데, 또 무슨 짓 하려고?”도윤은 차갑게 물었다.“겨우살이와 무슨 관계지?”이유민은 발뺌을 했다.“겨우살이든 하루살이든, 난 그런 거 몰라.”예전에 이유민이 매번 일을 저지른 후, 도윤이 그를 가만두었기 때문인지, 그는 아직 도윤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몰랐다. 그러나 그는 지아가 바로 도윤의 가장 큰 약점이란 것을 잊어버렸다.이유민의 말이 떨어지자, 도윤은 다짜고짜 그의 피 섞인 머리카락을 잡고 머리를 호되게 억눌렀다.바닥에는 아직 치우지 못한 유리 조각이 있었는데, 이렇게 포악한 장면을 본 적이 없는 임수경은 즉시 입을 가리고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펑’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를 박자, 이유민은 거의 죽을 뻔했다.머리에서 굉음이 날 뿐만 아니
이남수는 도윤의 앞을 가로막더니 엄숙하게 말했다.“그만해, 너희들은 그래도 형제인데, 굳이 서로를 상대할 필요가 있겠어? 오늘 이후로 유민이가 모든 상속권을 포기하면 되잖아. 이제 그만 유민이 놓아줘, 그럼 우리도 다시는 네 앞에 나타나지 않을게.”지금 이 순간까지도 이남수는 자신의 잘못을 의식하지 못했고 여전히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만약 어린 시절의 도윤이라면 틀림없이 매우 괴로워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단지 핏빛으로 물든 눈을 이남수에게로 천천히 옮기더니 입가에는 조롱의 의미를 가진 미소가 나타났고, 잠시 후 악마처럼 입을 열었다.“그것은 원래 내 것인데, 이유민이 포기하다뇨? 이남수, 만약 내가 당신이었다면 지금 바로 꺼졌을 거예요. 여기서 방해하지 말고 당장 나가.”“방금 날 뭐라고 불렀어?”전에 도윤은 그래도 이남수를 선생님이라 존칭했지만 지금은 아예 이름에 성까지 붙여 그를 불렀다. 도윤은 더 이상 이남수를 상대하기가 귀찮은 것이다.그는 높은 곳에서 차갑게 이유민을 내려다보았다.“말하지 않겠다 이거야? 하지만 난 네가 입을 열게 할 방법이 아주 많은데.”말을 마치자 도윤은 이유민의 팔을 잡아당기더니 그를 질질 끌고 계속 걸었다. 이유민은 아직도 피를 흘리고 있었으니 그 장면은 사람을 죽인 현장과 다름없었다.도윤에 비해 이유민은 줄곧 순조로운 삶을 만끽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보살핌속에서 자란 그가 또 언제 이런 굴욕을 당했겠는가?지금 그는 그제야 진심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지금의 도윤은 전과 전혀 딴판이었다.“아빠, 살려주세요!” 이유민은 구조를 요청하기 시작했다.도윤은 그들의 면전에서 이유민을 이렇게 대했으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또 어떤 악랄한 수단을 쓸지 모른다. 일은 이미 이남수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발전하기 시작했고, 그는 하는 수없이 휴대전화를 꺼냈다.지금 이남수는 더 이상 많은 것들을 돌볼 수가 없었는데, 그저 이유민이 살아서 돌아오기를 바랄 뿐이었다.“당장 유민이 놓지 못해. 그렇지 않으면 바로
이유민은 재차 기절을 했고, 진봉은 그의 몸에 침을 뱉더니 경멸에 찬 표정을 지었다.“허약해 빠졌군. 시작도 하기 전에 쓰러지다니, 퉤, 정말 재수가 없는 놈이야.”도윤은 이씨 가문의 큰 도련님으로서 어릴 때부터 아주 엄격한 훈련을 받아왔다. 이유민의 따뜻하고 원만한 가정에 비해, 도윤의 어린 시절은 무척 비참했다.도윤은 담담하게 이유민을 힐끗 바라보았다.“의사더러 상처 좀 싸매라고 해. 죽이지 말고. 그의 입에서 유용한 단서들을 알아내야 하거든.”“알겠습니다, 대표님.”도윤은 미련없이 몸을 돌려 주방으로 갔고, 하인들은 질서정연하게 집안의 난장판을 치우고 있었다.이때 이 집사가 따라와서 말했다.“도련님, 드시고 싶은 게 있다면 그냥 저희에게 말씀하시면 될 텐데, 왜 직접 요리하시려는 거예요?”도윤은 그녀를 상대하지 않고 긴 손가락으로 방금 처리한 닭을 손질하고 있었다.이 집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 남자는 포악한 야수였지만, 앞치마를 두른 순간, 하얀 셔츠에서 심지어 빛을 발하고 있었다.도윤은 닭과 각종 식재료를 뚝배기에 넣은 다음, 또 다른 식재료를 처리했다. 그는 단숨에 죽을 끓이고 채소를 볶은 다음 또 보신탕을 보온함에 담았다. 그리고 또 직접 차를 몰고 병원에 갔다.지아는 여전히 아픈 모습 그대로였다. 야위고 작은 얼굴은 무척 창백했고, 방금 소염제를 맞았기에 지금은 깊이 잠들었다.심예지는 반나절 동안 지아와 함께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못한 그녀는 연이어 하품을 했다.도윤은 살금살금 심예지의 곁으로 가서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여긴 제가 있으니 먼저 돌아가세요.”심예지는 도윤을 복도로 끌고 갔다.“너 도대체 어떻게 할 작정이야? 지아는 지금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은 것 같은데. 의사 선생님은 오늘 그녀의 암세포가 아주 빨리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어. 이대로 간다면 지아는…”“저 이미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 중이에요. 저 지금 어머니의 도움이 필요해요. 독충 쪽에서 이미 항암제를 개발했는데, 암세
도윤은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었는데, 한동안 지아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지아야, 내가 다 설명할게. 나와 백채원은 정말 아무것도…”지아는 그의 입에서 백채원에 관한 그 어떤 일도 듣고 싶지 않았다. 이는 그녀로 하여금 구역질 나게 할 뿐이었다.“이도윤, 내가 말했지, 난 당신들이 어떤 관계인지 알고 싶지 않다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일은 내 병에 관해서야.”도윤은 물컵을 들고 있었고, 키가 우뚝 솟은 남자는 지금 무척 당황해 보였다. 그는 컵을 한쪽에 놓고 침대 옆에 앉아 가능한 한 자신의 감정을 진정시켰다.“좋아, 말해봐. 난 가만히 듣고 있을게.”“퇴원 수속 밟아줘. 나 이곳을 떠나고 싶거든.”“그건 안돼, 너 지금 상황이 아주 심각해서 병원을 떠날 수 없어.”도윤은 계속 설명하려고 했다.“의사들은 이미 치료 방안에 대해 상의를 마쳤고, 나도 항암약을 찾고 있어. 너 절대로 자포자기하지 마. 이건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지아 네가 치료에 협조하기만 하면 다 나아질 거야.”지아는 담담하게 웃었다.“이도윤, 나도 의대생이야. 요 며칠 내가 가장 많이 본 책이 바로 의학에 관한 책이고. 넌 지금 내가 자신의 상황조차 모를 것 같아? 난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지아야…”“치료를 협조해도 두 가지 결과밖에 없겠지. 현재 나의 상황으로 보면 난 틀림없이 수술을 할 수 없어. 그럼 방사선 치료나 약물치료를 받아야겠지? 그러나 이 두 가지 치료는 모두 부작용이 매우 큰 데다 지금 내 몸까지 허약하니 병세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야. 만약 내가 버틸 수 없다면 아마도 바로 죽겠지.”지아는 도윤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만약 내가 틀리지 않았다면, 넌 틀림없이 나에게 약물치료를 안배했을 거야.”도윤의 마음속의 생각까지 지아는 모두 알아맞혔다.“난 확실히 그럴 계획이었어. 이것은 유일한 방법이고.”“하지만 난 그러고 싫지 않아.”도윤은 계속 말했다.“지아야, 지금은 떼를 쓸 때가 아니야. 네 몸에 있는 암세포는 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