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의 검사 결과도 즉시 나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위암 말기였다. 그러나 이것은 가장 무서운 일이 아니었다. 종양은 지금 머리로 전이되었고 이미 조기 악성 종양의 증상이 나타났다.여러 종양 전문가들은 한자리에 모여 회진한 후, 건우와 같은 제안을 했다.“치료해도 완치될 가능성이 거의 없으니 직접 포기하시는 게…”도윤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시도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포기하려는 건가!”원장은 식은땀을 닦으며 말했다.“대표님, 이것은 다른 질병이 아니라 암입니다. 일찍 발견된 상황에서 저희는 수술로 절제 처리를 하겠지만 사모님은 이미 말기에 이르렀습니다. 대표님께서도 그 종양이 얼마나 큰지 보셨잖습니까. 그것은 수술을 진행하는 조건에 부합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지금 사모님의 머리에서도 종양을 발견했습니다. 머리에는 뇌신경이 매우 많아서 마음대로 수술을 할 수 없습니다.”도윤의 갈수록 차가워지는 얼굴을 보고 원장은 재빨리 보충했다.“물론 지금은 아직 보수적인 치료 방안을 채용할 수 있습니다. 우선 사모님에게 약물치료를 진행하는 거죠. 하지만… 약물치료의 부작용은 아주 커서 만약 사모님의 몸이 약하시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많은 환자들은 암이란 병 대신 약물치료의 부작용으로 죽는 경우가 많거든요.”“보통 말기가 되면 환자는 정신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상태가 아주 나빠질 것입니다. 약물치료는 그들에게 있어 죽기보다 못할 뿐만 아니라 효과도 생각만큼 좋지 않거든요. 그래서 저희도 일반적으로 치료를 포기하라는 제안을 하기도 합니다.”도윤은 두 손을 모아 턱을 받쳤고, 눈빛은 종래로 보지 못한 엄숙함을 드러냈다.그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지아에게 있어 모두 큰 상처였다. 그러나 이대로 지아를 포기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했다.잠시 침묵한 후, 도윤은 다시 고개를 들었고, 이미 결정을 내렸다.“가능한 한 빨리 약물치료 진행해.”그의 말은 모두의 예상대로였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항상 최선을 다해 가족을 구하고 싶기 때문이다.중환자실에 보내
건우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지금 이 순간의 도윤은 마치 쇠사슬에서 벗어나려는 야수와 같았다.지아는 바로 그를 묶을 수 있는 쇠사슬이었지만, 만약 지아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도윤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너무 독단적인 거 아니에요? 치료를 받을지 말지는 적어도 본인의 의견을 물어봐야 하잖아요.”그러나 도윤은 또박또박 말했다.“지아를 살리는 게 가장 좋은 결과야. 난 과정 따윈 개의치 않거든. 오로지 지아가 살아있기만 하면 돼. 알겠어?”말을 마친 다음, 도윤은 성큼성큼 떠났다. 건우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진심으로 지아가 안타까웠다.‘이 남자는 여전히 제멋대로군. 아직도 사람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몰라.’양요한은 드디어 도착했고, 도윤을 보자마자 죄책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호되게 자신의 뺨을 때리며 말했다.“대표님, 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사모님을 이렇게 만들었습니다.”그러나 도윤은 그 누구도 원망할 자격이 없었다. 지아를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이었기 때문이다.“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야. 이건 지아의 검사 결과인데 먼저 무슨 방법이 있는지부터 좀 봐.”“네.” 양요한은 빗물로 젖은 손을 닦으며 검사 보고서를 받았다. 잠시 후,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어떻게 이렇게 심각할 수가 있죠? 이미 말기가 되었다니!”도윤은 마음속의 슬픔을 억지로 참으며 주먹을 꽉 쥔 채 벽을 세게 두드렸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답답하게 소리쳤다.“M-1이 암세포를 유발했어.”“대표님,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기범이가 이미 저에게 말했는데, 그때 누군가 사모님의 검사 보고서를 조작했다면서요. 게다가 사모님도 이 사실을 숨기려고 애를 쓰셨으니 대표님도 어쩔 수가 없었죠.”세상일은 정말 뜻대로 되지 않았다. 도윤은 최선을 다해 지아를 남기려 했지만 결국 그녀를 점점 더 멀리 밀어내고 있었다.도윤은 이를 갈며 말했다.“이예린이 한 짓이야.”양요한도 그들의
“대표님, 약물치료는 독으로 독을 물리치는 것과 같기에 암세포 외에 정상적인 세포까지 무차별로 공격할 거예요. 사모님의 현재 상황은 이미 아주 심각하니 암세포와 약물치료의 이중 타격에 잘못하면…”도윤은 고개를 숙여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그럴 리 없어, 지아는 죽지 않을 거야.”양요한은 도윤의 이런 모습을 보고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지금 그들은 기적이 나타나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하룻밤의 응급치료를 거쳐 지아는 잠시 위험에서 벗어났지만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그녀는 비할 데 없이 허약했고, 의사는 지아가 버틸 수 없을까 봐 재삼 약물치료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고 건의했다. 도윤은 혼수상태에 빠진 지아를 보면서 마음이 약해졌고 그저 약물치료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이때 진환이 황급히 달려왔다.“대표님, 큰일입니다. 방금 소시후 대표님이 입원했단 것을 알아냈습니다.”“뭐?”“고질병이 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개인 병원으로 옮겨졌는데, 소씨 가문에서는 이 일을 엄밀하게 보호하고 있어 아직 소시후 대표님의 상황을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본인과도 연락이 닿지 않고 있습니다.”이것은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제 소시후에게도 문제가 생겼다니!“주원 그 사람은?”“아직은 종적을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안심하세요, 대표님, 무슨 소식 있으면 바로 대표님에게 보고하겠습니다.”이때 양요한이 다급하게 달려왔다.”대표님, 사모님께서 깨어나셨습니다.”말이 떨어지자 도윤은 이미 성큼성큼 자리를 떠났다.지아는 병상에 누워 얼굴은 종이처럼 하얬다. 심예지도 뒤따라 들어왔는데, 줄곧 도도했던 그녀 역시 지아가 하루아침에 이렇게 된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파 눈물을 흘렸다.“지아야, 미안해. 나도 일부러 널 속이려고 한 게 아니야…”지아는 깨어나자마자 짙은 약물 냄새를 맡았다. 비록 위통이 잠시 멈추었지만 몸속에 마치 큰 괴물이 그녀를 삼키고 있는 것 같았다.어젯밤에 일어난 모든 일은 마치 꿈과 같았고 지금 머릿속은 여전
도윤은 하마터면 손에 든 그릇을 떨어뜨릴 뻔했다. 그는 입을 열어 설명하려 했다.“지아야, 이건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나와 백채원은 아무 사이도…”지아는 차가운 눈으로 도윤을 바라보더니 그의 말을 끊었다.“이번에 또 무슨 이야기를 꾸미려고? 지금 딱 하나만 묻겠어. 나와 백채원이 동시에 바다에 빠진 날, 네가 구한 사람은 누구지?”이것은 지아가 유일하게 생각난 기억이었고, 지금 다시 생각해도 그녀는 여전히 가슴이 아팠다.그녀가 이렇게 말한 순간, 도윤은 더 이상 지아를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지아야, 나도 그때 고충이 있었어.”지아는 여전히 담담하게 말했다.“그랬겠지, 그러나 넌 자신의 아내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구하러 갔어. 미안하지만 난 네 고충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아. 난 그냥 나 자신이 너무 불쌍하다고 생각하거든. 네 말이 맞아, 그때의 기억들을 잊어도 나쁠 건 없지. 어차피 생각하면 마음만 아플 뿐이니까.”이렇게 냉정한 지아를 마주하며 도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랐다. 지금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설령 진실이라도 지아는 더는 믿지 않을 것이다.지아는 지금 이미 도윤을 사기꾼이라 생각하고 있었다.심예지는 죽을 받더니 도윤을 노려보았다.“지아야, 이 자식은 너무 둔하니까 상대하지 마. 내가 먹여줄게. 많이 먹어야 빨리 나아질 거야.”“빨리 낫는다고요? 어머님, 저 이제 곧 죽을 거예요.” 지아는 가볍게 웃었다. 그녀는 더 이상 세 살짜리 아이가 아니었고, 자신이 위암 말기에 살아남을 수 있단 말도 믿지 않았다. 하물며 지아는 지금 상태가 심각해서 아마 며칠 정도밖에 살지 못할 것이다.“또 허튼소리 한다, 지금 의학이 얼마나 발달한데, 치료할 수 없는 병이 없지. 너도 절대로 부담 갖지 마. 다 좋아질 거야.”심예지는 인내심을 가지고 지아를 위로했다. 만약 환자가 자신이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을 안다면, 심리적인 부담 때문에 몇 개월 정도 살 수 있어도 두려움에 며칠 밖에 살지 못할 것이다.
도윤은 안방으로 돌아온 후, 욕실로 향했다. 그는 물을 튼 다음 수온이 뜨거워지기도 전에 안으로 들어갔다.차가운 물이 몸에 쏟아졌지만, 도윤은 마음이 더욱 아팠다.그는 2년 전 그날 밤, 지아가 자신에 의해 화장실에 묶여 찬물을 맞은 장면을 떠올렸다. 물이 이토록 차가웠으니 그때의 지아는 또 얼마나 큰 절망을 느꼈을까.지금의 지아를 생각하면 도윤은 후회막급이었다. 지난날 지아를 모질게 대한 그는 지금 마침내 쓰라린 고통을 받게 되었다. 지아를 얼마나 사랑한다면 도윤은 지금 얼마나 자책하고 있었다.이때 진환이 급히 달려오더니 욕실 문밖에 멈춰 섰다. 안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바깥의 빛을 빌어 그는 벽에 기대어 앉아 있는 도윤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남자는 목을 젖힌 채 물이 얼굴에 떨어지도록 내버려두었고, 피 묻은 셔츠는 여전히 그의 몸에 딱 달라붙었다. 남자의 주위엔 말할 수 없는 슬픔과 절망이 감돌았다.진환은 묵묵히 문을 닫았고, 도윤이 혼자 상처를 핥을 수 있는 공간을 남겨주었다.그는 테라스 옆으로 가서 담배 한 대를 피웠다. 방관자인 그들조차 마음이 아팠으니 당사자인 도윤은 또 얼마나 고통스러울까?“형, 사모님 설마…”진봉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두 사람 모두 지아가 도윤의 마음속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었다. 만약 지아가 죽는다면 도윤은 또 어떻게 될까?진환은 담배꽁초를 끄더니 소리 없이 한숨을 쉬었고, 도윤이 안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입을 열었다.“아직은 잘 몰라. 만약 초기였다면, 아니, 중말기였어도 사모님은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이 아주 높았을 거야. 보통 말기가 되었을 때, 모든 암세포가 전이되어 확산되기 시작했으니 아마도…”“그럼 어떡하지! 사모님께서 돌아가시면 대표님도 큰 타격을 받으실 텐데.”“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자. 독충이 기억을 잃게 하는 약물을 개발할 수 있는 이상, 어쩌면 방법이 있을 지도 몰라.”진환은 비록 신심을 북돋우고 있었지만, 그들 모두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 지아의 상황은 더 이
이유민의 상황은 정말 좋지 않았다. 어젯밤 지아가 병원으로 긴급 호송된 후, 이정진은 그 자리에서 화가 나서 발병했고 또다시 예전처럼 정신이 오락가락해졌다.이남수와 임수경은 이유민을 데리고 떠나려 했지만, 도윤이 명령을 내렸기에 경호원들은 그들이 데려가지 못하게 한사코 버텼다.이유민은 한번 기절한 적이 있었는데, 의사가 현장에서 살려준 후, 그는 지금까지 계속 무릎을 꿇고 있었다.어젯밤 집안이 난장판으로 된 것을 보았을 때, 그는 그래도 고소하다고 웃을 수 있었지만, 하룻밤 동안 무릎을 꿇고 나니 이유민은 당장이라도 죽고 싶었다.무릎은 이미 아파서 마비되었고, 머리의 상처도 간단하게 처리했을 뿐 여전히 아팠다. 이유민은 심지어 자신의 하반신에 이미 아무런 감각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피곤하고 배고프고 졸렸지만 그는 감히 정신줄을 놓지 못했다. 밤중에 이유민은 너무 졸려서 한 번 쓰러졌는데, 온몸에 유리가 가득 박혀 더욱 고통스러웠던 것이다.그렇게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이유민은 도윤이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도윤의 눈빛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고 심지어 차가운 바람처럼 그의 살을 에는 것 같았다.이유민은 뻑뻑한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난 이미 밤새 무릎을 꿇었는데, 또 무슨 짓 하려고?”도윤은 차갑게 물었다.“겨우살이와 무슨 관계지?”이유민은 발뺌을 했다.“겨우살이든 하루살이든, 난 그런 거 몰라.”예전에 이유민이 매번 일을 저지른 후, 도윤이 그를 가만두었기 때문인지, 그는 아직 도윤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몰랐다. 그러나 그는 지아가 바로 도윤의 가장 큰 약점이란 것을 잊어버렸다.이유민의 말이 떨어지자, 도윤은 다짜고짜 그의 피 섞인 머리카락을 잡고 머리를 호되게 억눌렀다.바닥에는 아직 치우지 못한 유리 조각이 있었는데, 이렇게 포악한 장면을 본 적이 없는 임수경은 즉시 입을 가리고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펑’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를 박자, 이유민은 거의 죽을 뻔했다.머리에서 굉음이 날 뿐만 아니
이남수는 도윤의 앞을 가로막더니 엄숙하게 말했다.“그만해, 너희들은 그래도 형제인데, 굳이 서로를 상대할 필요가 있겠어? 오늘 이후로 유민이가 모든 상속권을 포기하면 되잖아. 이제 그만 유민이 놓아줘, 그럼 우리도 다시는 네 앞에 나타나지 않을게.”지금 이 순간까지도 이남수는 자신의 잘못을 의식하지 못했고 여전히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만약 어린 시절의 도윤이라면 틀림없이 매우 괴로워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단지 핏빛으로 물든 눈을 이남수에게로 천천히 옮기더니 입가에는 조롱의 의미를 가진 미소가 나타났고, 잠시 후 악마처럼 입을 열었다.“그것은 원래 내 것인데, 이유민이 포기하다뇨? 이남수, 만약 내가 당신이었다면 지금 바로 꺼졌을 거예요. 여기서 방해하지 말고 당장 나가.”“방금 날 뭐라고 불렀어?”전에 도윤은 그래도 이남수를 선생님이라 존칭했지만 지금은 아예 이름에 성까지 붙여 그를 불렀다. 도윤은 더 이상 이남수를 상대하기가 귀찮은 것이다.그는 높은 곳에서 차갑게 이유민을 내려다보았다.“말하지 않겠다 이거야? 하지만 난 네가 입을 열게 할 방법이 아주 많은데.”말을 마치자 도윤은 이유민의 팔을 잡아당기더니 그를 질질 끌고 계속 걸었다. 이유민은 아직도 피를 흘리고 있었으니 그 장면은 사람을 죽인 현장과 다름없었다.도윤에 비해 이유민은 줄곧 순조로운 삶을 만끽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보살핌속에서 자란 그가 또 언제 이런 굴욕을 당했겠는가?지금 그는 그제야 진심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지금의 도윤은 전과 전혀 딴판이었다.“아빠, 살려주세요!” 이유민은 구조를 요청하기 시작했다.도윤은 그들의 면전에서 이유민을 이렇게 대했으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또 어떤 악랄한 수단을 쓸지 모른다. 일은 이미 이남수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발전하기 시작했고, 그는 하는 수없이 휴대전화를 꺼냈다.지금 이남수는 더 이상 많은 것들을 돌볼 수가 없었는데, 그저 이유민이 살아서 돌아오기를 바랄 뿐이었다.“당장 유민이 놓지 못해. 그렇지 않으면 바로
이유민은 재차 기절을 했고, 진봉은 그의 몸에 침을 뱉더니 경멸에 찬 표정을 지었다.“허약해 빠졌군. 시작도 하기 전에 쓰러지다니, 퉤, 정말 재수가 없는 놈이야.”도윤은 이씨 가문의 큰 도련님으로서 어릴 때부터 아주 엄격한 훈련을 받아왔다. 이유민의 따뜻하고 원만한 가정에 비해, 도윤의 어린 시절은 무척 비참했다.도윤은 담담하게 이유민을 힐끗 바라보았다.“의사더러 상처 좀 싸매라고 해. 죽이지 말고. 그의 입에서 유용한 단서들을 알아내야 하거든.”“알겠습니다, 대표님.”도윤은 미련없이 몸을 돌려 주방으로 갔고, 하인들은 질서정연하게 집안의 난장판을 치우고 있었다.이때 이 집사가 따라와서 말했다.“도련님, 드시고 싶은 게 있다면 그냥 저희에게 말씀하시면 될 텐데, 왜 직접 요리하시려는 거예요?”도윤은 그녀를 상대하지 않고 긴 손가락으로 방금 처리한 닭을 손질하고 있었다.이 집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 남자는 포악한 야수였지만, 앞치마를 두른 순간, 하얀 셔츠에서 심지어 빛을 발하고 있었다.도윤은 닭과 각종 식재료를 뚝배기에 넣은 다음, 또 다른 식재료를 처리했다. 그는 단숨에 죽을 끓이고 채소를 볶은 다음 또 보신탕을 보온함에 담았다. 그리고 또 직접 차를 몰고 병원에 갔다.지아는 여전히 아픈 모습 그대로였다. 야위고 작은 얼굴은 무척 창백했고, 방금 소염제를 맞았기에 지금은 깊이 잠들었다.심예지는 반나절 동안 지아와 함께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못한 그녀는 연이어 하품을 했다.도윤은 살금살금 심예지의 곁으로 가서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여긴 제가 있으니 먼저 돌아가세요.”심예지는 도윤을 복도로 끌고 갔다.“너 도대체 어떻게 할 작정이야? 지아는 지금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은 것 같은데. 의사 선생님은 오늘 그녀의 암세포가 아주 빨리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어. 이대로 간다면 지아는…”“저 이미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 중이에요. 저 지금 어머니의 도움이 필요해요. 독충 쪽에서 이미 항암제를 개발했는데, 암세
지아는 멍하니 서 있다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진봉을 바라보며 물었다.“성형?” “예, 성형수술이요.”지아는 그제야 소시월이 왜 자신과 닮았는지, 혹시 소임호와 관련 있는 사람인지 의심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이제야 모든 것이 설명되었으니 말이다. 지아는 손에 든 서류를 훑어보았다.소시월은 13살에 처음 성형수술을 했고, 이후 매년 한 가지씩 성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게다가 20대 중반 이후로는 유지와 보수를 시작했기 때문에, 아무도 그녀를 의심하지 않았다.그 시절 소시월은 기숙 학교에 다녔기에, 사람들은 반년 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가 성장하며 부모를 닮아간다고 생각했을 뿐, 의술의 힘으로 얼굴을 바꿨다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아마 그들이 당시에 지아를 해치지 않은 이유도 그녀의 얼굴을 복제하려 했기 때문일 터.그 후, 지아가 쓸모없어지자 암살 계획을 시작한 것이 분명했다. 지아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 가짜 얼굴을 한 꺼풀씩 다 벗겨내 주겠어!”“사모님, 만약 그 여자가 사모님을 계속 암살하려던 배후라면, 그 여자의 등에는 분명히 총상이 있을 겁니다. 그날 저희가 사람들을 데리고 갔을 때, 그 여자는 도망치면서 총을 한 발 맞았었죠.” “당장 알아봐!”지아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는데,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생지옥 같은 나날들이 떠오르는 듯했다.비록 도윤이 한때 지아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결국 그 모든 고통은 누군가가 뒤에서 지아의 삶을 철저히 망가뜨린 것이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소시월은 내 자리를 차지하고, 내가 누려야 할 가족의 사랑과 따듯함을 즐겼어. 그것도 모자라서 나를 지옥 속으로 처참히 몰아넣었다고!’지아의 분노는 억누를 수 없을 정도였다. “사모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반드시 모든 진실을 밝혀내겠습니다.” “그 여자를 감시할 사람을 찾아. 최근 움직임이 많아졌으니, 뭔가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해. 최대한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 해!”“예.”지아는 머리를 짚으며
안타깝게도 지아가 이미 진실을 알아낸 상태였기에, 장민호의 소식은 늦은 셈이었다.“지금 어디에 계세요?”지아가 급히 물었다.‘민호 씨가 이 일에 연루되었는지 아닌지 확인할 필요가 있어.’ [Z국에 있어요. 최근 소씨 가문에 많은 일이 일어나는 바람에, 이 소식을 알아내는 데 시간이 꽤 걸렸어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틈을 타서 지아 씨에게 위협이 되는 소시월을 제거할 테니까요.]지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지아는 처음에 장민호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자신의 의도를 눈치챘을까 봐 걱정했지만, 장민호는 아직 그녀가 Z국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했다. “죽이면 안 돼요.”[왜요? 그 여자는 지아 씨를 죽이려고 했잖아요. 그런 위험한 존재를 살려두면 지아 씨에게 더 큰 위협이 될 거예요.]지아는 핑계를 댔다.“저는 이미 몇 번이나 그 사람한테 암살당할 뻔했고, 그 소씨 가문의 여섯째 딸이라는 사람과도 만났어요. 우리는 나이도 비슷하고, 국적도 달라서 아무런 원한도 없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왜 저를 죽이려고 했겠어요?” “제 생각엔 누군가 소시월을 조종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은 단지 이용당하는 말일 뿐인 거죠. 그 사람을 죽이는 건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니에요. 그 배후의 사람이 진짜 목표니까요...” 지아는 이미 체스판 위의 말이 아니라 말을 움직이는 사람이 되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장민호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강인했다.[제가 도울게요.]“위험하지 않겠어요? 너무 위험하다면 하지 마세요. 저는 민호 씨가 다치는 걸 원치 않아요.” [지아 씨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겁니다.]장민호는 마지막으로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제 속죄라고 생각해 주세요.]전화를 끊은 후에도 지아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사건이 윤곽이 점점 명확해지고 있지만, 주변 상황은 여전히 위태로웠다. 특히 소씨 가문이 혼란스러운 지금은 지아가 신분을 밝히기에 적절한 때가 아니었다. 소임호와 조경숙이 자기 친부모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지아
병원에서 사고를 당한 시언을 진정시키기 위해, 지아는 일찍이 자신과 시후의 계획을 모두 털어놓았다. 다만, 다른 사람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시후는 그림자 속에 숨어 있었고, 시언이 대외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즉, 두 사람이 안팎에서 호응하며 움직이고 있었던 것. 게다가 소임호 또한 차근차근 사건을 조사하며, 여러 정황으로 인해 배후의 흑막이 조경선이라는 의심을 품게 되었고, 조경선을 끌어내기 위해 자신을 미끼로 삼았다. 하지만 비행기 사고 이후로 소임호와 시후의 연락이 끊겼고, 시언은 며칠 동안 마음을 졸이며 초조해했다. 그런데 조금 전, 다행히도 소임호의 행방을 알아낸 것이었다.시언은 즉시 이 소식을 지아에게 알렸다. 지아는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게 되자, 시언의 목소리를 듣고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순간적으로 수많은 말들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왜 그래, 지아야?”시언은 지아의 침묵에 걱정하며 물었다.“무슨 일 있어?” 지아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말했다.[아니요, 저는 그냥...]하지만 말을 꺼내자 목소리에 눈물 섞인 떨림이 묻어나왔다.시언이 더욱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일이 있다면 숨기지 마. 우리는 이미 네 의형제가 됐어. 우린 가족이라고. 소씨 가문에 이런저런 일이 생겼다고 해도, 난 널 지킬 거야.”시언의 ‘지킨다’라는 말이 지아의 마음을 더욱 따뜻하게 했다.시언은 지아의 정체를 알지 못했음에도 여전히 이렇게 다정하고 따듯하게 대해주었다. 아마 이것이야말로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만이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러운 유대일 것이었다. 하지만 지아는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왜 소씨 가문 사람들은 내 존재 자체를 몰랐을까?’ 현재 지아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경숙은 여섯 번째 아이를 낳은 후 과다출혈로 크게 몸이 상해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고 했다.‘가족이 내 존재를 모를 리가 없는데.’ ‘게다가 시영 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남은 건 소시월 뿐이야.’‘소시
소임호는 눈앞의 광기 어린 조경선을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조경선, 그동안 정말 행복했니? 그렇게 애써 계획해서 네가 얻은 건 뭐지? 지금의 이 상황을 만든 우리는 모두 패배자라고!” “틀렸어.”조경숙이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그 당시의 나는 얼굴도 망가지고, 족보에서 제명되고, 가족들에게도 내쳐졌어. 나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데, 조경숙은 왜 모든 걸 가져야 해? 시골에서 돌아온 한낱 촌뜨기가 어떻게 나를 대신할 수 있었냐고!” “그래, 난 패배자야. 하지만 너희도 내 시체 위에 서서 잘난 척할 수는 없을걸? 우리 두 쪽 다 망가지는 게 내 승리니까!” 조경선이 고개를 숙여 소임호를 살펴보며 말했다.“당신 꼴을 좀 봐. 떠돌이 개랑 다를 게 뭐야? 참 안쓰럽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야.”“곧 소씨 가문은 완전히 망가질 거야. 나는 당신을, 그리고 소씨 가문을 반드시 파멸시키고 말 거야!” “너 정말 미쳤구나.”“그래, 난 미쳤어.”“하지만 당신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이젠 내가 겪었던 고통을 당신이 똑똑히 느껴야 할 차례야. 당신도 알겠지만,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조경숙은 이제 심세호의 여자가 됐어. 정말 가슴 아프지 않아?” “참, 그건 모르지? 소씨 가문의 노친네는 이미 죽었고, 당신 아들들도 곧 당신과 함께 무덤으로 갈 거야!” “조경선, 너는 진짜 인간 말종이야!” 소임호는 극도로 분노하며 몸부림쳤고, 쇠사슬은 그의 몸부림으로 인해 요란하게 울렸다.하지만 조경선은 소임호의 턱을 잡고 비웃으며 말했다. “왜, 불만이야? 그럼 나한테 빌어봐. 그러면 그 자식들한테 고통 없는 죽음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꿈 깨.”소임호가 냉소하며 말했다.“죽어도 너한테 무릎 꿇을 일은 없을 거야.” “걱정하지 마. 당신을 죽게 두지는 않을 테니까. 당신이 죽으면,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처참히 망가지는지 보여줄 수 없잖아. 당신 자식들은 끔찍한 최후를 맞이할 거고, 당신이 가장 사랑했던 조경숙은 눈이 멀어 다른 남
여자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넌 먼저 돌아가.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볼 테니, 당분간 티 내지 말고 조용히 있어.” “알겠어요.”시월은 갑자기 한 가지 일이 떠올라 물었다.“맞다, 아빠는 어떻게 됐어요?” 그 말을 들은 여자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흥, 끝까지 고집불통인 쓰레기 같은 남자. 내가 겪은 교통을 천배, 만 배로 되돌려줄 거야!” 시월의 얼굴에 찰나의 망설임이 스쳐 지나갔다.“엄마, 이제 그만하면 안 돼요? 우리는 그동안 아빠가 가족도 잃게 하고, 집안도 망가지게 했잖아요.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요?” “충분? 꿈 깨! 이건 그 사람이 나한테 진 빚이라고!” 여자가 소시월의 옷깃을 꽉 잡으며 으르렁거렸다.“경고하는데, 나는 네 어미야. 네가 조금이라도 망설인다면, 나는 절대 널 용서하지 않을 거야.” “엄마, 알겠어요, 나는 엄마의 딸이니까 당연히 엄마 편이에요.” 소시월은 여자의 손아귀에서 간신히 벗어나 두려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최근 몇 년 동안 그 여자의 정서는 점점 더 불안정해졌다.사실, 그녀의 얼굴도 치료를 통해 회복할 수 있었지만, 집착이 너무도 강한 그녀는 치료를 거부했다. “이 고통을 평생 기억하면서 나한테 상처를 준 사람한테 천 배, 만 배로 돌려줄 거야!!” 여자는 평생을 복수 계획에만 몰두하며 살았다. 하지만 소시월이 보기에, 복수를 이루더라도 그녀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을 것이었다. 소씨 가문은 지금 엉망진창이 되었기에, 소시월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소시월이 떠난 후, 여자는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며 지하실로 향했다. 지하실 문은 단단히 닫혀 있었는데, 여자가 자신의 지문을 입력하자,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이 서서히 열렸다. 여자는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며 안으로 들어갔고, 어둡고 습한 지하실에는 손과 발이 묶인 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생사조차 알 수 없었다. 여자는 그를 향해 다가가며 광기 어린 집착이 서린 눈빛으로 말했다.“소임호
소지훈이 폭로한 충격적인 사실은 소씨 가문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아에게도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출생 비밀을 찾아 헤매던 지아는,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중에 스스로 이야기의 중심인물이 되고 말았다. 이전에 소씨 가문 사람들의 고충에 공감했던 지아는 이제 그들이 자기 혈육임을 알게 되자,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지아는 도윤의 품에서 천천히 미끄러졌고, 무릎을 꿇고 앉은 채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아빠, 엄마, 그리고 오빠들이...” 하지만 더욱 지아를 견딜 수 없게 한 것은 예전에 마주했던 그 시신이 자기 친언니였다는 사실이었다. ‘시영 언니는 너무도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어.’ ‘심지어 나는 그걸 전혀 몰랐고, 언니의 마지막 가는 길조차 배웅하지 못했어...’ 지아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지아야!”도윤은 지아를 안고 급히 자리를 떠났다. 침대에 누운 채 찡그린 표정을 한 지아를 보며 도윤은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지아는 이미 너무 많은 고통을 겪었어. 그런데 간절히 바랐던 가족마저 이런 모습으로 드러나다니.’ 무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지아의 곁을 지켰다.도윤은 무무를 부드럽게 달래며 말했다.“엄마는 괜찮을 거야. 그냥 과로한 상태에서 큰 충격을 받아 기절한 것뿐이거든.” 한편, 소씨 가문의 황당한 해프닝은 아직도 진행 중이었으며, 소영수의 장례식은 결국 소씨 가문 사람들의 싸움의 장이 되고 말았다. 겉으로는 소지훈이 이긴 듯 보였으나, 사실 그로 인해 소씨 가문은 체면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시월은 마음이 조급해졌고, 해가 뜨기도 전에 황급히 차를 몰아 오래된 별장으로 향했다. 건물 꼭대기에는 까마귀들이 앉아 있었다.‘까악까악’ 울음소리가 밤하늘을 배경으로 더욱 섬뜩하게 들렸다. 장미 덩굴은 낡은 담벼락 위로 기어오르며, 삭막하고 부패한 세상에 한 줄기 생기를 더하고 있었다. 새벽이 다가오자, 햇살이 어둠을 찢으며 온 세상의
시하와 시언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모두 완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는데, 도무지 이게 무슨 일인지 알 수 없는 듯했다. 심지어 소시월조차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이걸... 오빠들은 알고 있었어?” 두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어.” 소시월은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내 계획이 성공하려던 찰나에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어. 절대 다른 사람이 내 계획을 망치게 둘 순 없어!’“단지 사진 한 장으로 뭘 증명한다는 거죠? 아빠와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고, 아빠는 비행기 사고로 시신조차 찾지 못했어요. 두 사람의 친자확인도 없이, 대체 무슨 증거를 내놓겠다는 거냐고요!” “이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했던 혈액형 검사야. 두 분은 모두 O형이야. 즉, 두 분은 O형의 자녀만 낳을 수 있다는 뜻이지. 하지만 당신들 아버지는 B형이었어. 혈액형에 돌연변이가 생길 확률이 아주 적다는 건 알고 있겠지? 과연 당신들 아버지가 그 예외일까?” 소지훈은 다시 다른 사진을 꺼냈다.“혈액형 이야기는 우선 접어두자고.”“이건 할아버지의 여러 아들들 사진이야. 우리 아버지와 삼촌, 작은삼촌은 할아버지와 60% 이상 닮았지만, 네 아버지는 전혀 닮은 점이 없어!” 지아는 소임호의 실물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대형 스크린에 비춰진 소임호의 얼굴을 보자, 그녀는 그 자리에 멍하니 굳어버렸다. 지아는 이성을 잃고 도윤의 손을 꽉 잡았다.“저 사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아?” “많이 본 정도가 아니라, 완전 똑같아!” 두 사람의 대화는 오직 서로만 이해할 수 있었다. 소임호가 부남진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부남진은 나이가 들어 얼굴이 많이 변했지만, 가까운 사람들은 그가 젊었을 때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소임호는 분명히 부남진의 젊은 시절을 그대로 닮은 모습이었다. “설마...”지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자신이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진실이 이렇게 갑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시언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분노를 참지 못했는데, 그의 손이 여전히 멀쩡했다면, 지금쯤 소지훈의 뺨을 때렸을 것이었다. 시월과 심장후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아는 도윤을 바라보며 물었다.“이게 어떻게 된 거지? 저 사람이 한 말이 사실이야?” 도윤은 고개를 숙이고 지아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도 방금 들은 소식인데, 이 사진 속 사람을 한 번 봐봐.” 도윤은 핸드폰 속 사진을 열어 서른쯤의 매혹적인 여성을 지아에게 보여주었다. 지아는 그녀의 눈가에 있는 검은 점을 보자마자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우리 할머니잖아!” 흑백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환희의 모습이 컬러로, 게다가 훨씬 선명한 화질로 나타난 것이었다. “맞아.”지아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혹시 할머니의 행방을 알아낸 거야?” 도윤이 논쟁으로 가득 찬 현장을 보며 말했다.“아마 저 사람들이 답을 줄지도 몰라.” 소지훈의 폭로는 현장을 술렁이게 했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지훈 도련님께서 파문을 일으킬 만한 거짓말을 할 리가 없잖아요?” “당연하죠, 아무리 무례한 사람이라도 이런 자리에서 저런 말을 할 순 없으니까요!” “어머, 정말 흥미진진한데요?”시월은 마음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오빠, 시언 오빠와 오해가 있는 건 알지만, 그런 거짓말은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늘은 할아버지를 배웅해 드리는 날인데,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고요.” “할아버지? 허, 네가 무슨 자격으로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거야?” “오빠, 적당히 좀 하세요! 그런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웃기지도 않는다고요!” “웃기는 건 너희 같은 잡종들이지!”소지훈이 손뼉을 치며 준비된 프로젝터를 가리켰다.“여러분, 죄송합니다만, 이 자리에서 모든 이야기를 공개하고, 소씨 가문의 족보를 깨끗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죽어서도 소씨 가문에 매달리려는 사람이 없도록 말이죠!” “도대체 숨
밤이 깊어지자, Z국에서 전통적인 가족 고별 의식이 시작되었다.지아는 조용히 사람들 사이에 섞여 소씨 가문의 방대한 자손들과 그들의 복잡한 계보를 바라보았다. 소영수의 직계 자손들 외에도 그의 둘째 동생과 셋째 동생 등의 곁가지 후손들까지 합쳐져, 효성과 의리를 다하는 자식들과 손주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고별 의식은 곧 시작될 예정이었다.첫 번째로 향을 올리는 순서는 원래 장남의 몫이었지만, 장남이 사고를 당하면서 그 역할은 둘째에게 넘어갔다. 다른 자손들도 각자 자신의 향을 챙기러 움직였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시언과 시하를 대신해 시월이 나서서 향을 가지러 갔다. 하지만 소시월이 향에 손을 대기도 전에, 누군가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 냉랭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소지훈이었다.“오늘은 가족을 위한 작별의 자리야. 미안하지만, 너는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시언이 즉각 반응했다.“소지훈, 적당히 좀 하지 그래? 여긴 할아버지의 영정이 모셔진 자리야. 할아버지께서 편히 눈감지도 못하게 할 작정이야?” ‘예전의 작은 다툼은 다 넘어갈 수 있어. 하지만 오늘처럼 외부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저렇게 무례한 말을 하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 시하는 상대적으로 차분해 보였지만, 그는 이 상황이 단순하지 않음을 직감했다. ‘연예계에서 단련된 소지훈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저런 말을 했을 리 없어. 뭔가 계획이 있는 게 분명해.’ 시하가 둘째 삼촌인 소상현을 바라보았다. 소상현은 아들의 죽음으로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소명담의 시신이 발굴되었을 때, 소상현은 자기 친아들이 이토록 오래전에 죽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백발의 노인이 흑발의 자식을 보내는 고통은 이루 형용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래서 소상현은 소지훈의 말을 듣고도 아무 말 없이 공허한 눈빛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 입을 연 사람은 소상현의 부인인 오연희였다.“시언아, 너무 흥분하는 거 아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