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아는 혼수상태에서 천천히 깨어났고, 두통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누군가 약을 묻힌 손수건으로 그녀의 입과 코를 꽉 막았다.아직 약효가 완전히 가시지 않아 소지아는 온몸에 힘이 없고 쑤셨다.두 눈은 두꺼운 검은 천으로 가려져 소지아는 전혀 빛을 볼 수 없었다.손목과 발목도 끈질기게 꽁꽁 묶여 있었다.몸은 좁은 공간에 갇혀 있었고 코에서는 썩은 냄새가 풍겼다.소지아는 몸을 내밀었지만, 몸이 이 공간에 빈틈없이 꽉 차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곧 자신이 차 트렁크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왠지 모르게 소지아는 갑자기 조율의 죽음이 생각났다.누군가가 그녀를 목을 졸라 죽인 후 바다에 버려 시체는 물에 잠겨 변형되어서야 인양되었다.‘그래서 이제 내 차례인가?’소지아가 이도윤의 회사에 간 것이 상대방을 격노시켰을 것이다. 그래서 상대방은 앞당겨 이 게임을 결속 짓고 이도윤의 약혼날에 그에게 큰 선물을 주려 했다.그런데, 그녀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았다.소지아는 떠나기 전에 위험을 알아차리고 옷 안에 접이식 칼을 숨겼다.다행히 소지아는 유연성이 괜찮았기에, 몸을 구부린 다음 손가락을 조금씩 외투 안으로 내밀었다.오랫동안 밀폐된 공간에 있어서 소지아의 온몸에는 땀이 송골송골 배어 있었다.차가 막힘없이 달리는 것으로 판단하면, 지금은 아마 고속도로에 있을 것이다. 즉 목적지에 그렇게 빨리 도착하지 않을 것이다.‘아직 시간 있어.’소지아는 고통을 참으며 손끝에 온 힘을 다해 그 안을 매만졌다.접이식 칼에 닿은 순간, 소지아는 마음이 움직였다.‘찾았다!’그녀는 천천히 칼을 꺼내 밧줄을 가볍게 끊었다.소지아는 너무 티나게 하지 못하고 손목에 있는 밧줄을 대략 3분의 2정도 끊었다.겉으로 보기에 소지아는 여전히 끈질기게 묶여 있었지만, 벗어날 수 있는 힘이 충분하기만 하면 단번에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손의 끈을 베고 나서 소지아는 또 자신의 몸을 비틀었고, 밧줄을 끊을 때마다 모든 힘을 소모해야 했다.그녀의 세상은
차가운 공기가 트렁크 안의 각종 곰팡내를 몰아내어 소지아의 머리를 잠시 맑게 했다.소지아는 일부러 긴장하여 소리쳤다.“당신들은 누구지? 빨리 날 풀어주지 못할까!”긴장한 건 사실이지만 소지아는 냉정해야 했다. 냉정해야 상대방의 허점을 찾을 수 있었다.오정인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아가씨, 줄곧 조율의 죽음을 알아내려고 하지 않았어요? 내 입으로 직접 말해줄까요?”소지아는 자신의 목에 갑자기 밧줄이 하나 생긴 것을 느꼈다. 오정인의 목소리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부드럽지 않았고, 마치 독사가 그녀의 귓가에 대고 혀를 뱉는 것 같았다.“그녀야, 이렇게 목을 졸라 죽었죠. 그래요, 그녀는 죽기 전에 당신의 표정이 똑같았어요. 손과 발은 계속 발버둥쳤고요.”“그녀는 목숨을 걸고 살려달라고 소리쳤지만, 말 한마디도 하지 못했고, 결국 절망적이고 두려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조금씩 숨이 끊어졌어요.”어둠 속에서 소지아는 주위의 환경에 더욱 민감했고, 오정인의 목소리는 그녀에게 무한한 상상의 공간을 주었다.소지아는 마치 조율이 죽기 전의 절망과 자신의 생명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았다.“그래서 조율을 죽인 사람은 우리 아빠가 아니야!”소지아가 지금까지 조사한 일은 틀리지 않았다. ‘아빠는 그렇게 좋은 사람인데, 어떻게 그렇게 미친 짓을 할 수 있겠는가!’“그녀의 뱃속에 있는 아이는 확실히 네 아버지의 것이지.”“짐승 같은 놈! 우리 집안은 도대체 당신들과 무슨 원수가 있길래, 뜻밖에도 임산부까지 죽이다니!”소지아는 눈물을 펑펑 흘렸다. 만약 그 아이가 죽지 않았다면, 그녀는 지금 이미 어린 동생이 하나 더 생겼을지도 모른다.변진희가 떠난 후, 소지아는 마음속으로 소계훈이 다시 진정한 사랑을 찾기를 바랐다.소계훈은 또 무슨 잘못이 있을까?“조율은 이도윤의 친여동생이니, 만약 그가 사실을 알게 된다면 틀림없이 너희들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허.” 오정인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냉소했다.“그가 진실을 알면 네가 여
그 사람은 어떤 음색도 들리지 않게 자신의 목소리를 숨겼다.다만 자신의 턱을 들어올릴 떼, 소지아는 은은한 약 냄새를 맡았다.소지아는 모두 서양의 의학을 배웠기에 한약에 대해 연구를 하지 않았고, 이것이 어떤 약재인지 아니면 여러 가지 약재가 혼합된 것인지 몰랐다.“날 죽이고 싶어?” 소지아가 직접 물었다.“그건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야.”소지아는 눈썹을 찌푸렸다. ‘지금 날 여기에 묶은 이상 무슨 목적이 있는 거지?’“무슨 뜻이야?”상대방이 자신을 죽이지 않는다는 말에 소지아는 더욱 불안해졌다.그녀가 자신의 목숨을 남긴 것은 틀림없이 이도윤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나와 이도윤은 이미 이혼했어.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없고. 넌 도대체 나에게서 무엇을 얻으려 하는 거지?”소지아의 턱을 쥐고 있는 손가락은 더욱 조여졌고, 소지아는 통증을 느꼈지만, 시종 약간의 소리도 내려 하지 않았다.“넌 아주 총명한 여자군, 어쩐지 그가 너를 그렇게 좋아하더라니.”상대방은 한눈에 소지아가 떠보려는 마음을 알아차렸고, 자신과 이도윤의 일에 대해서 한 글자도 언급하지 않았다.소지아는 그녀가 속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계속 말했다.“일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나는 내가 오늘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만약 내가 틀리지 않았다면 이곳은 해변의 버려진 집일 거야. 이도윤은 나를 구하려 해도 늦었고.”“맞아.”“내가 죽기 전에 네가 누군지 보고 싶은데. 누가 우리 집안을 이렇게 만들었나 알아야 할 거 아니야.”턱을 쥐던 손가락에는 다시 힘을 더했다.“너는 아직 내 앞에서 요구할 자격이 없어.”상대방은 조금도 긴장을 늦추려 하지 않았다.“내가 말했듯이, 오늘 죽는 사람은 꼭 네가 아닐 수도 있어.”소지아는 또 무슨 말을 하려다가 진동하는 소리를 들었고, 곁의 사람은 전화를 받더니 말투가 나른했다.“좀 놀았을 뿐인데 왜? 마음 아파?”조용한 방에서 소지아는 전화 너머의 목소리가 남자란 것을 발견했다. 그녀가 자세히 듣기도 전에 턱을
어느 말이 문 의사를 화나게 했는지, 그녀는 버럭했다.“두려워? 내가 왜? 그녀는 원래 정신질환이 있는 환자였고, 그동안 내가 그녀를 돌보지 않았더라면 간소연은 진작에 죽었을 거야. 나는 단지 그녀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을 뿐. 그런 사람이 이 지옥과 같은 인간 세상에 사는 것이야말로 일종의 고문이지!”“그래서 당신이 간소연을 민 거예요?”“그럼 뭐가 어때서? 다 너 때문이야. 만약 네가 정신병원에 오지 않는다면, 그녀는 살아 있을 수 있었는데, 탓하려면 너 자신을 탓해! 왜 기어코 끼어드는 거냐고!”소지아는 갑자기 정신과 진찰을 받아야 할 사람이 문 의사라고 생각했다. 분명히 그녀의 정신상태에 문제가 있었다.‘두 사람은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간소연 얘기만 나오면 이렇게 흥분하다니.’“간소연의 아기는요? 지금 어디에 있어요?”“무슨 아기? 난 몰라.”“그녀의 시체를 검사한 적이 있어요. 그녀의 배에는 임신 주름이 있고, 자궁도 출산한 흔적이 있죠.”문 의사는 소지아를 향해 소리쳤다.“지금와서 아이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가? 소연은…….”소지아는 간소연에 관한 일을 더 많이 알아내려고 했지만 오정인이 달려들어 문청을 안아준 것 같았다.“청아, 진정해. 그 일은 이미 지나갔어. 그녀와 쓸데없는 말을 그렇게 많이 해서 뭐 해?”‘지나갔어?’‘설마 간소연의 죽음이 그녀에게 큰 영향을 준 건 아니겠지?’‘왜?’‘문청은 간소연이 죽기를 원했는데 왜 또 이런 모습을 드러낸 거지?’오정인은 문청을 데려간 듯 세상은 다시 고요한 상태로 돌아갔다.이렇게 큰 방에는 아무런 소리도 없었고, 오직 소지아의 심장 박동 소리와 가끔 한두 마리 뛰어다니는 작은 쥐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조용했다.원래 소지아는 이런 것들을 두려워하였는데 지금은 죽기 직전이었으니 생명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아마도 쥐가 소지아의 숨결을 알아차렸는데, 그녀의 곁에서 이리저리 냄새를 맡았을 뿐, 감히 움직일 수 없었다.얼굴이 붙어 있는 곳은 울퉁불퉁하여
다른 사람은 이미 도착했다. 특히 변진희는 한복을 입고 있어 우아하면서도 존귀했다.그녀는 백정일의 팔짱을 끼고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변진희의 친딸이 약혼한 줄로 알 것이다.그녀의 미소는 이도윤에게 있어 눈에 거슬렸다.진환은 얼른 대답했다.“백 선생님과 백 부인님은 일찍 출발하셨고, 그들은 미리 와서 손님을 접대했습니다. 백채원 아가씨는 예복 쪽에 문제가 좀 생겨 직원들은 어젯밤에 야근을 해서 고쳤습니다. 그리고 백채원 아가씨는 아침 일찍 가서 화장을 하고 예복을 입었는데, 이치대로라면 곧 도착할 것입니다.”이도윤은 백채원의 성격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오늘은 그녀가 그렇게 원한 약혼식이었기에 일찍 와서 자랑했으면 했지 절대로 지각할 리가 없었다.현장은 설비를 여러 번 조정하여 백채원이 와서 의식을 거행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공기 속에는 꽃이 만발하는 냄새가 가득했고, 눈에 띄는 대로 각양각색의 예복을 입은 사람들이 우아하게 누볐다.어떤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사진을 찍고 있었다.아이들은 또 즐겁게 나무 아래를 뛰어다니며 매우 조화로운 광경을 이루었다.이지윤마저 주은청에 안겨 있었고, 호기심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가리는 벚꽃 잎을 바라보았다.바람이 없을 때도 꽃잎이 우수수 떨어졌다.이지윤은 손을 뻗어 받으려 했지만, 그가 고개를 드는 순간, 꽃잎은 마침 그의 코에 떨어졌다.어린 꼬마는 꽃잎이 떨어질까 봐 꼼짝도 하지 못했고, 이 화면은 매우 귀엽고 힐링되었다.변진희는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백채원을 보지 못하고 얼른 백정일 팔을 잡아당겼다.“채원은 왜 아직도 오지 않았지? 무슨 일 생긴 거 아니야?”“그 계집애는 꾸미길 좋아해서, 이전부터 예복의 사소한 문제로 굳이 남들더러 밤새 고치라고 했으니, 아마 지금도 예복 일로 사람과 다투고 있을 거야.”백정일은 어쩔 수 없이 말했다.“그건 안 되지. 의식이 곧 시작될 것 같은데, 조금의 착오도 생기면 안 돼. 내가 가서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재
헬리콥터에 탄 백채원은 불평을 늘어놓았다.“그게 무슨 개떡 같은 디자이너야, 내가 이렇게 비싼 가격을 썼는데도 나에게 흠이 있는 드레스를 만들어 주다니. 나의 약혼식 날에 이렇게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니.”이 드레스 때문에 백채원은 어제부터 마음에 들지 않아 어젯밤 밤새 잠을 자지 못했고 헬리콥터에 오르자마자 바로 잠들었다.그녀는 자신이 지옥까지 잤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백채원은 깨어났을 때, 눈앞이 캄캄한 것을 발견했고 두 손과 두 발이 묶여 있었다.‘섬은? 이도윤은? 약혼식은?’백채원은 즉시 당황했다.“이곳은 어디지? 내가 누군지 아는 거야? 이씨 집안 사모님이라고! 너희들이 감히 나를 납치하다니, 우리 남편은 반드시 너희들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백채원이 입을 열었을 때, 온 방에는 자신의 목소리가 메아리치고 있었고, 게다가 고약한 냄새가 곧장 코 안으로 파고들고 있었다!“사람 살려!”“힘 좀 아껴요. 만약 소리치는 게 쓸모가 있다면, 이 세상에는 납치범이 없을 거예요.”백채원은 이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노호하며 소리쳤다.“소지아, 이 천한 년아, 이거 네가 꾸민 짓이지? 내가 도윤 씨에게 시집가는 것을 질투하여 이런 더러운 수단을 썼다니…….”이 말에 소지아는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당신 무슨 망상증 같은 거 있어요? 상상력이 이렇게 풍부한데 왜 소설을 쓰지 않는 거죠? 아직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다니, 솔직히 나는 이도윤이 도대체 당신의 뭐가 좋은지 정말 궁금하네요.”백채원은 마음이 급해지자 그 자리에서 욕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욕을 심하게 할수록 소지아는 더욱 이상하다고 생각했다.이도윤의 곁을 이렇게 오래 따라다녔으니 소지아는 이도윤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백채원이란 사람은 생김새나 성격까지 모두 이도윤의 취향이 아니었고, 설령 애인을 찾아 자신을 질투하게 한다 하더라도 많은 선택이 있을 텐데, 백채원을 고를 리가 없었다.“짝짝짝.”옆에서 박수를 치는 소리는 마침내 백채원을 현실로 돌려보냈다.“참 재밌는
백채원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 상대방의 의도를 알아차렸다.“그게 무슨 소리예요? 나와 손을 잡겠다고 하지 않았어요?”“손을 잡아?”그 사람은 비웃었다. “그럴 자격이 있긴 한 거야?”격렬한 공포가 마음속에서 퍼지자 백채원은 안색이 유난히 보기 흉했고 입가가 떨리기 시작했다.“너, 내가 누군지 몰라요? 내 남편은 이도윤이에요. 감히 나를 건드리면 그는 절대로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말을 마치자 그녀는 아픔을 느꼈고, 발이 백채원의 허리를 짓눌렀다.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소지아에게 당한 그때를 제외하고 백채원은 이런 굴욕을 겪은 적이 없었다.“내가 경고하는데, 나한테 손을 대려면 자신에게 목숨이 몇 개가 있는지부터 가늠하는게…… 아!”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백채원의 허리를 밟은 그 발은 힘을 더 주었고, 백채원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먼저 네 자신에게 몇 개의 목숨이 있는지, 자격이 있는지부터 가늠해 보는 게 좋을 거야. 이 점에 있어 넌 소지아보다 못하지. 봐, 그녀는 나를 화나게 하지 않잖아.”백채원은 그제야 소지아가 자신과 같은 처지에 빠졌단 것을 알게 되었다.“당신의 목적은 종래로 소지아 한사람이 아니라 우리였단 말인가요?”“물론이지.”상대방의 목소리는 남녀를 분간할 수 없었다. 이렇게 보면 두 가지 이유일 뿐이었다. 연적이기 때문에 백채원과 소지아를 혐오하고 있거나, 이도윤의 적이기에 이 기회를 틈타 이도윤을 협박하려 하거나.어떤 신분이든 백채원은 오늘 살아서 나가기가 매우 어려웠다.여기까지 생각하자 백채원은 갑자기 공포에 질려 방금 날뛰던 태도를 감추고 용서를 빌기 시작했다.“제발 살려줘요. 나 정말 죽고 싶지 않거든요! 나한테 아직 두 아이가 있단 말이에요. 나는 죽을 수 없어요.”그리고 말머리를 돌리더니 백채원은 계속 말했다.“죽이려면 소지아를 죽여요. 그녀는 이도윤의 전처이자 이도윤이 가장 사랑하는 여자거든요.”가장 사랑하는 여자란 말은 소지아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그녀는 언젠가 이도윤이 자신을
소지아는 백채원의 공포에 질린 모습에 비해 훨씬 냉정해 보였다.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다시 한번 일어나도 같은 결과란 것을.눈을 감으면 소지아는 차가운 바다에서 백채원을 향해 몸을 던진 이도윤의 뒷모습이 떠올랐다.이 일은 악몽처럼 그녀를 꼬박 일 년 동안 괴롭혔고, 소지아는 가까스로 최근에 다시 시작하려고 걸어 나왔다.“왜…….” 소지아는 중얼거렸다.“뭐?”소지아는 턱을 살짝 들어올렸다. 비록 그녀는 지금 극도로 굴욕적인 자세로 땅에 엎드려 있었지만, 여전히 자존심을 유지하고 있었다.“왜 자꾸 이런 수작을 부리는 거지? 재밌어?”상대방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왜 재미가 없지? 그가 사랑하는 사람을 직접 죽이는 것을 보면, 난 아주 재미있다고 생각하거든.”소지아는 여러 번 밧줄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녀는 참고 또 참았는데, 자기가 지금 벗어나면 철저히 끝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만약 당신이 그를 좋아한다면, 공평하게 경쟁해야지, 이런 수단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지?”소지아는 이해가 안 됐다.비록 상대방은 줄곧 잘 숨어 있었지만, 남녀 사이에서 소지아는 여전히 상대방이 여성이라고 생각했다.이도윤과 원한이 있는 남자라면 일반적으로 더욱 직접적이고 난폭한 수단을 선택했을 것이다.몇 년 동안의 시간을 낭비해 가며 백채원과 자신을 잡아 이도윤더러 선택하라고 하다니.이것은 딱 봐도 여자가 할 짓이었다. 게다가 이 여자는 마음이 모질고 악랄할 뿐만 아니라 사이코패스였다.그러나 상대방의 목적은 이도윤의 여자일 뿐만 아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도윤과 소지아의 관계가 가장 나쁜 이 2년 동안, 백채원이 올라갈 이유가 없었으니까.이 사람이 이도윤을 이렇게 잘 알고 있었으니, 도리상 만약 그녀가 원한다면 백채원보다 이도윤에게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그러나 이 2년 동안 이도윤과 가깝게 지내던 여자는 백채원 뿐이었고 다른 여자는 없었다.만약 이도윤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또 왜 이렇게 애를 썼을까?소지아의 마음속에는 너무
조경숙이 갑자기 납치되면서 소씨 가문의 안팎은 큰 혼란에 빠졌다. 심지어 병상에 누워 있던 시언조차 몸을 일으키려 애썼으니 말이다. 시후는 곧장 소명담의 본가로 향했다.‘사람은 도망칠 수 있어도 근거지는 숨길 수 없는 법이지.’ 하지만 소명담을 잡기도 전에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한편, 지아는 무무의 머리를 땋고 있었는데, 아이의 머릿결은 매끄럽고 윤기가 흘러, 까만 머리카락이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도윤은 모녀의 곁에서 작은 수납 상자를 들고 서 있었고, 상자 안에는 아이들의 머리끈과 머리핀들이 가득했다. 도윤이 초록색 리본 모양의 머리핀을 건넸다.“이걸로 하자. 초록색이 예쁘잖아.” 지아는 그것을 받아 무무의 머리를 묶어주었고,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우리 딸, 정말 예쁘다.”무무의 초록색 눈동자에 웃음기가 만연해지는 순간이었다. 아이는 한 손으로 지아를, 다른 손으로 도윤을 잡고 아주 행복해했다. 바로 이때, 진봉이 급히 들어왔다.“사모님, 나쁜 소식입니다!” 지아는 대충 짐작이 갔다.“소명담이 도망친 거야?” 이는 지아도 예상했던 일이었기에,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소명담이 그렇게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해 온 일을 소씨 가문 사람들이 이렇게 쉽게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아니요, 죽었습니다.”지아가 빗을 들고 있던 손을 멈추며 물었다.“뭐라고? 죽었다고?” 이것은 지아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말도 안 돼!’“그게 말이 돼? 설마... 그 사람 뒤에 또 다른 누군가가 있는 걸까?” 지아는 과거 자신과 대면했던 소명담을 떠올렸다.‘그 사람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깊이를 알 수 없는 사람이었어.’‘그런 사람이 갑자기 죽었다고?’ 그때 진환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제가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진봉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것 같네요.”“소명담은 죽은 게 맞습니다만, 죽은 지는 이미 수년이 지났다고 합니다.” “그럼... 지금까지 우리가 본 소명담은 누군가가 변장했던 거야?” 지
아무도 소시월의 입가에 떠오른 희미한 미소를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옆에서 조용히 관찰하던 지아는 시월의 표정을 정확히 포착했다. 시월은 마치 자기 행동을 들킨 것처럼 고개를 돌려 지아와 눈을 마주쳤다. 곧이어 시월은 다시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소 선생님, 왜 그러세요?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요?” 지아가 침착하게 대답했다.“아니요, 아가씨께서 너무 아름다워서 그냥 한 번 더 보고 싶었을 뿐이에요.”시월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지아의 팔을 살며시 잡았다.“소 선생님, 오랫동안 고생하셨으니 잠시 옆 방에서 쉬는 게 어떠세요? 여긴 우리가 지키고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지아는 은근히 자기 손목을 향하는 시월의 시선을 감지했다.그 손목은 몇 년 전 도윤의 총에 맞았던 곳이었다. “아가씨, 왜 그러세요?” “피부가 정말 하얗고 매끄러우시네요. 정말 부러워요. 평소엔 어떻게 관리하세요?” 지아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아가씨, 사모님께서 갑자기 사라지셨는데도 그다지 걱정하지 않으시네요? 평소에 가족에게 효심이 지극하신 분이, 왜 이런 일엔 관심이 적으신 거죠?” 지아의 말은 정확히 급소를 찔렀고, 시월은 당황한 듯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우리 소씨 가문에 이렇게 많은 일이 연달아 터지는데, 제가 어떻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저 지금은 제가 조급해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그래서 오빠들을 도와 손님들을 챙기려 했던 거라고요.”“그런데 소 선생님께서 갑자기 저를 의심하는 듯한 질문을 하시니까 조금 속상하네요.” 두 사람은 몇 번의 수를 주고받았지만, 어느 쪽도 명확한 단서를 잡지 못했다.시월은 지아의 정체를 의심했다. 그녀는 지아의 손목에 총상 흉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눈앞의 지아는 매끈한 손목을 가지고 있었으며 전혀 총알 자국이 없었다. 지아 역시 시월에게서 의심스러운 점을 느꼈다.하지만 모든 증거가 소명담을 가리키고 있었고, 시월과는 아무런 관련이
“세라야, 네가 알고 있는 모든 걸 말해줘.”시하가 부드럽게 설득했다. 시하와 강세라의 대화는 다른 방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시하 오빠의 미남계가 통한 모양이네요.” 시후는 책상을 세게 내리치며 분노했다.“역시 그 자식일 줄 알았어! 망할 자식 같으니라고!” 지아는 마음 한편이 실망스러웠다. 지아는 모든 일이 시월과 연관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그렇지 않았다. 그 순간, 양지운이 검사 결과를 들고 들어왔다. “소 선생님, 사모님께서 사용하시는 화장품과 약물을 검사했는데, 매일 사용하시는 안약에서 추가적인 약물이 발견됐습니다. 그 약물은 정기적으로 사용할 경우 시력을 저하시켜 실명에 이를 수 있습니다!” “나쁜 새X!” 시후가 분노하며 벌떡 일어섰다.“드디어 증거를 잡았어! 양 비서, 당장 그 자식을 붙잡아! 우리 소씨 가문을 이렇게 망쳐놓다니, 여태까지의 모든 대가를 치르게 해주자고!”“예!”시하가 시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형, 너무 화내지 마. 화내다 몸 상하면 안 되잖아. 이제 그 능구렁이를 잡았으니, 나도 안심이야.”지아는 옆에서 말없이 상황을 지켜보았다.“지아야, 왜 아직도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어? 모든 게 네 계획대로 되고 있잖아. 혹시 뭔가 잘못된 거라도 있어?” 지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모든 게 계획대로라는 게 오히려 마음에 걸려요. 너무 순조롭잖아요.” “순조로운 게 어때서?” “그냥 좀 불안해요. 물론 제가 괜한 걱정을 하는 걸 수도 있겠지만요.”“이제 원인을 찾았으니, 사모님께선 약물을 끊은 후에 제대로 진찰받고 휴식까지 취하시면 시력을 회복할 수 있을 거예요.” “좋아, 나는 이 좋은 소식을 시언이한테 알려야겠어. 마음 놓고 푹 쉴 수 있도록 말이야.”“저도 같이 갈게요.” 지아는 곧 동이 트려는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모든 일이 해결되었으니, 남은 일은 소 선생님께 맡기면 될 거야.’ 하지만 그때 불길한 소식이 전해질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양지운이 급히
강세라의 얼굴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안 돼요, 절대 안 돼요.” “왜 안 된다는 거야? 네가 걱정하는 게 뭔지 말해줘. 내가 전부 해결해 줄게.” 시하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때 우리가 헤어지지 않았다면, 우리에겐 아마 아이도 있었을 거야. 네가 그랬잖아, 너 닮은 아들이랑 나 닮은 딸 하나씩 낳고 오순도순 살자고. 세라야, 시간을 더 낭비하려는 건 아니지?” 강세라가 머뭇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나는 이미 큰 금기를 어겼어. 나는 한낱 바둑돌일 뿐인데, 바둑돌은 임무 대상에게 감정을 가져서는 안 되는 법이잖아. 하지만 나는 이제 시하 씨의 따스함을 외면할 수가 없어.’ 강세라는 이미 시하를 해친 적이 있었다. 그 후로 수년이 지났지만, 그녀는 단 하루도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으며, 시하에 대한 사랑 또한 포기할 수 없었다.“세라야, 두려워하지 마. 네 배후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반드시 널 지켜줄 거야.” 강세라는 눈물로 얼굴이 범벅이 되어 말했다.“하지만 내 가족이 아직 그 사람들의 손에 있어요. 내가 입을 열면, 내 가족들이 죽을 거라고요! 내 조카는 곧 초등학교에 입학할 예정이에요. 이제야 인생의 시작을 앞두고 있는데...!” 강세라는 얼굴을 가린 채 울음을 터뜨렸다.“가족이 위협받는 바람에, 나는 그동안 당신을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어요. 내가 원망스럽다면 내 목숨을 가져가도 좋아요. 나는 절대로 말할 수가 없으니까요.”“세라야, 소 선생님을 암살하려던 건 이미 실패했어. 우리가 너를 잡았다는 소식도 벌써 노출됐을 가능성이 높아. 네가 말하지 않아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거야.” 강세라는 그제야 눈을 크게 떴고, 시하의 손목을 꽉 잡으며 간절히 말했다.“시하 씨, 나는...” “지금은 나를 믿어야 해. 나만이 진심으로 너를 도우려는 사람이니까. 가족이 걱정되는 거라면 안심해도 돼. 나는 이미 삼 일 전부터 네 가족들의 행방을 알아냈고, 사람을 보내 보호하고 있었어. 믿기 어렵다면 지금 바로 전화해서 확인해
직접 마주한 이 순간, 지아의 말이 진실임이 입증되었다. 처음부터 강세라가 그에게 접근한 이유는 목적이 있었던 것이었다. 시하가 강세라의 입에 물린 천을 제거하자, 강세라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며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미안해요.”강세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을 속였어요.” 시하는 강세라를 와락 끌어안았다.“세라야, 네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 네가 살아 있다니 정말 다행이야.” 강세라는 시하가 진실을 알게 된 후 분노할 줄 알았지만, 그는 그녀를 꼭 안으며 뜨거운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시하 씨, 당신을 속였는데도 날 원망하지 않는 거예요?” “원망해, 어떻게 원망하지 않을 수 있겠어? 하지만 네가 살아 있는 것에 비하면 그까짓 건 아무것도 아니야. 너도 알지? 난 수년 동안 밤낮으로 신께 기도했어. 왜 죽은 사람이 내가 아니고 너였어야 했냐고. 너만 살아 있다면 나는 모든 걸 포기할 수 있다고.” 시하는 곧장 강세라의 손발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강세라는 아직도 자신이 꿈을 꾸는 것 같았다.“그럼 소 선생님과는...” “소 선생님은 네가 살아 있다는 걸 내게 알려준 사람이야. 그때의 나는 널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지만, 기회가 없어서 소 선생님께 도움을 청해 이런 연극을 꾸몄던 거야.”“세라야, 내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사랑한 사람은 오직 너뿐이야. 내 마음은 한 번도 변한 적 없었어.” 세라의 몸을 묶고 있던 줄이 모두 풀리자, 두 사람은 재회한 기쁨에 망설임 없이 서로를 끌어안았다. “알아요, 그동안 당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요.”“미안해요, 시하 씨, 내가 당신을 이렇게 만든 거예요.” “세라야, 다시 나한테 돌아와 줄래? 난 너 없이는 살 수가 없어.” “나는...”강세라는 머뭇거리며 지난날 자신이 저질렀던 일들을 떠올렸다. 그녀는 시하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받아들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다리를 다쳐서 싫어진 거야?” “아니에요! 절대 그런 거 아니에요!”강세라가 시하의
“도윤 씨, 당신이랑 함께 떠날게. 하지만 강세라의 일을 마무리할 시간을 줘. 그 여자의 일이 끝나는 대로 떠나자, 응? 그리고 사모님의 눈 치료도 약속했단 말이야. 더 지체되면 사모님은 정말 시력을 잃게 될지도 몰라.” “지아야, 네가 의술에 뛰어난 건 알겠지만, 세상에는 너만큼 뛰어난 의사도 많아. 내가 두려운 건 네가 더 깊이 관여하다가 더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거야... 여긴 A시가 아니야. 일이 더 크게 번지면 나도 널 지킬 수 없을지도 몰라.” 지아는 도윤의 단호한 결심을 느끼고 간절히 부탁했다.“3일, 3일만 더 있으면 안 될까?” 도윤은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래, 딱 3일이야. 3일 후에는 나랑 집으로 가야 해, 알았지?”두 사람은 꽤 오랜만에 만난 터라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지금 지아에겐 해야 할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강세라는 그들 뒤에 숨어 있는 진범을 잡을 중요한 열쇠였다. ‘강세라가 모든 걸 털어놓기만 하면, 삼 일도 걸리지 않아 모든 미스터리가 풀릴 거야.’ 지아는 이 소식을 소씨 가문 사람들에게 알렸고, 소식을 접한 시후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잡았어? 나도 곧 갈게.][맞다, 지아야, 네가 말한 대로 어머니께서 최근에 사용하신 약과 화장품 샘플을 검사에 맡겼어. 곧 결과가 나올 거야.]“좋아요.”지아는 이 소식을 시하에게도 전하며 긴 시간 대화를 나눴다. 시하는 멍한 표정을 지었는데, 이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진 듯했다. 시하는 수년 동안 강세라의 죽음에 얽매여 살아왔다. 이전에 지아가 강세라가 살아있을 가능성과 그 의도를 추측했을 때도, 그것은 단지 말뿐인 존재였다. 하지만 이제 강세라가 실제로 잡혔다는 사실 앞에서, 시하의 마음은 복잡해졌다.강세라가 단순히 죽음에서 돌아온 것이라면 시하는 기뻤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모든 증거는 강세라가 소씨 가문을 공격하는 계획에 가담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강세라를 향한 사랑과 증오가 뒤섞인 시하는 그녀를
뒤돌아보지 않아도, 지아는 자신을 향한 차가운 한 줄기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저도 오래 기다렸답니다.”지아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키가 조금 작은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비록 그 사람은 철저히 변장한 상태였으나, 지아는 단번에 그 사람의 눈을 알아보았다.“강세라!”지아가 자신의 이름을 바로 부르는 것을 보고, 상대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당신이 어떻게...” 지아를 위해 준비한 함정이 결국 자신을 묶는 족쇄가 되었음을 느낀 강세라는 자신의 목적을 되새기며 방아쇠를 당길 준비를 했다. 탕!총성이 울리자 강세라의 손목에 총알이 박혔고, 강세라가 들고 있던 총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골목 입구에는 훈련받은 사람들이 가득 서 있었고, 강세라는 손목에서 피가 뚝뚝 흐르는 것도 개의치 않고 소리쳤다.“저 X을 죽여!!” 모든 상황은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졌다. 강세라의 부하들이 행동하기도 전에, 골목 입구 2층에서 몇 명이 뛰어내려 잽싸게 강세라의 부하들을 제압해 버렸으니 말이다. 혼란을 틈타 지아를 향해 총을 쏘려던 한 사람은 뒤에서 덮친 누군가의 일격으로 즉시 쓰러지기도 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강세라가 데려온 여섯 명은 모두 능숙한 사람들에게 제압당하고 말았다. 강세라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총을 쏜 사람을 바라보았다. 골목 입구에 서 있는 그는 키가 컸으나, 역광으로 인해 얼굴이 잘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그의 차가운 시선은 강세라의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했다. 남자는 느릿느릿 걸어왔고, 말 한마디 없이도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를 본 지아의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여긴 왜 왔어?” 도윤이 지아 옆에 서더니 자연스레 그녀를 품에 안았다. 도윤은 먼 길을 고생하며 달려왔고, 전날 밤 한숨도 자지 못해 목소리가 다소 쉰 듯했다. “더 늦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잖아.” 다정한 두 사람을 본 강세라는 욕설을 퍼부었다.“이 더러운 X아! 감시 시하 씨를 두고 다른 남자와 놀아나?! 난 이미 네 속셈을 알고 있었
지아는 자연스레 시하의 목을 끌어안으며 목소리를 약간 높였다.“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둘째 도련님은 꼭 나아질 거예요. 오빠의 몸까지 망가뜨리면 안 된다고요.” 시하는 지아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깊은 감정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내 곁에 있어 줘서 정말 다행이야.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몰랐을 거야.” 지아는 얌전히 시하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고, 두 사람은 연인처럼 낮게 속삭였다. 지아는 잠시 후에야 입을 열었다.“자, 시간도 늦었으니 이만 가봐야겠어요. 맞다, 아직 아무것도 못 먹었죠? 뭐 좀 사 올 테니까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사람만 무사하면 다 잘될 거예요.” “그런 일은 경호원이 하면 돼.” “어차피 병원에선 제가 도울 일이 별로 없잖아요. 오빠의 입맛은 제가 더 잘 아니까 제가 다녀올게요.” 이 말을 끝으로 지아는 시하의 무릎에서 일어났다. 지아는 병원을 떠나는 순간, 누군가가 자신을 따라나서는 기척을 느꼈다. 한편, 눈빛이 변한 시하가 낮은 목소리로 지시했다.“물고기가 미끼를 물었어. 따라가서 소 선생님을 보호해!” 병원에는 환자와 가족들이 많아 함부로 행동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경호원들은 지아를 따라나섰다. 지아는 고의로 시간을 끌며 강세라라는 물고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 며칠 강세라는 질투심에 미쳐가고 있었을 것이었다. 간신히 기회를 찾아 행동에 나섰는데 강세라가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지아는 근처 야시장으로 향했다. 신호등의 초록불이 켜지고 막 건너려던 순간, 멈춰 서 있던 차가 아무런 경고도 없이 지아를 향해 돌진했다.불빛도 경적도 없는, 뒤에서 덮치는 호랑이와 같은 기습 공격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할 때는 이미 차가 지아에게 근접한 상태였다. 다행히 지아는 미리 대비하고 있었기에 차가 다가오기 전에 한 걸음 물러설 수 있었다.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운이 좋지 않았는데, 순식간에 인도는 비명으로 가득 찼다. 어떤 사람은 가까스로 달아났고, 어떤 사람은
시언은 지아가 왜 시월의 반응을 묻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월이를 두고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월이를 제 품에 안은 거죠. 이게 무슨 문제라도 있다는 겁니까?” 지아는 차마 시언에게 냉혹한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아직은 증거를 모아야 해’ ‘이 사람들은 소시월을 너무도 아끼는 사람들이라, 늘 눈에 장밋빛 필터를 쓰고 있어.’ “아니요, 도련님은 정말 훌륭한 오빠였습니다. 저는 단지 당시 상황을 알고 싶을 뿐이에요.”“그러니 조금만 진정해 보세요. 제가 시하 오빠의 다리를 고쳤듯이, 도련님의 손을 고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어요.” “정말입니까?”“제가 왜 그런 거짓말을 하겠어요.” “그럼 시하의 다리가 이미 치료되었는데, 왜 우리에게 말하지 않은 거죠?” 지아가 시언의 귀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건 소씨 가문을 무너뜨리려는 검은 손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 말인즉슨...”지아는 그제야 모든 계획을 시언에게 말했다.“죄송해요, 시언 도련님.”“그동안 도련님도 제 의심의 대상 중 한 명이였기 때문에 말씀드리지 않았던 거예요. 이런 곤경을 겪게 해서 정말 죄송해요.” 시언은 잠시 멍하니 있었고, 오랜 시간이 지난 끝에 모든 것을 서서히 받아들였다.그의 머릿속은 온통 혼란으로 가득했다. 디자인에 몰두하던 사람이 오늘 병상에 누워서야 가장 가까운 사람이 자신을 계획에 끌어들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큰형이 계속 많은 경호원을 대동하라고 했던 거군요. 저는 그저 형의 과민 반응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형은... 제가 정말로 사고를 당할까 봐 두려웠던 거였어요. 이제야 알겠습니다. 소 선생님, 그 사람은 대체 누굴까요?” “처음에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오늘 일로 약간의 실마리를 잡았어요.”“도련님, 제가 이 비밀을 말하는 이유는 도련님께서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예요. 소씨 가문은 지금 큰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