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는 온갖 복잡한 마음을 안고 부씨 가문으로 돌아왔다. 방 안은 따뜻한 조명이 깜빡이고 있었고, 화연은 아직 잠자리에 들기 전이었다. 민연주는 직접 짠 목도리를 화연에게 둘러주며 말했다.“딱 맞네. 내일은 장갑이랑 모자도 짜서 줄게.”“고마워요, 엄마.” 화연의 안색은 며칠만에 눈에 띄게 좋아졌고, 얼굴에도 약간 살이 붙었다.“엄마한테 뭐가 고마워? 앞으로 엄마가 너에게 해주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데. 그러니까 빨리 건강해져야 해.”그때 지아가 문을 두드리며 들어왔다. 화연은 지아를 보자마자 신뢰 가득한 눈빛을 보냈고, 그로 인해 화연의 얼굴이 더욱 환해졌다.“지아, 돌아왔구나. 오늘 어디 갔다 왔어?”“환자 좀 보러 갔어요. 고모님 몸은 괜찮으세요?” 지아는 화연의 밝은 얼굴을 보며 오늘 하루 나빴던 기분이 조금씩 사라져가는 걸 느꼈다.“응, 괜찮아. 배도 안 아프고, 식욕도 늘었어. 다 네 약 덕분이야.”화연은 마치 작은 태양처럼 보였다. 그녀는 비록 속으로 아이를 잃은 슬픔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늘 미소를 짓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다른 이들이 자신을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화연은 미셸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미셸은 자기중심적이고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하려는 사람이었지만, 화연은 늘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했다.그러나 때로는 남을 지나치게 배려하는 것이 결국 자신에게 상처가 된다는 것을 지아는 알고 있었다. ‘그래, 나를 지키려면 우리 다 어느 정도 이기적이어야 해...’지아는 이렇게 생각하며 잠시 화연과 함께 시간을 보낸 후 바로 방으로 돌아갔다. 침대 옆 탁자 위에 놓인 핸드폰이 계속 진동하고 있었지만, 지아는 욕실에서 목욕을 하느라 알지 못했다.그동안 도윤은 부씨 가문의 저택까지 지아를 쫓아왔지만, 문 앞에서 저지당했다.“죄송합니다, 이 대표님. 각하께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밤에는 들일 수 없다고 지시하셨습니다.”도윤이 말다툼을 벌이는 사이, 하용은 손에 간식
도윤은 마치 지아가 위에서 내려다볼 것을 먼저 예상한 듯, 가로등 아래 서서 온몸에 쌓인 눈을 털어내지 않고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지아가 날 불쌍하게 생각한다면, 아마 이 눈을 뚫고 나에게 내려오겠지.’지아는 욕실 가운을 걸치고 손에 도윤이 보낸 선물을 안고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그런 도윤을 내려다보며, 지아는 고개를 숙여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입력하고는, 핸드폰을 흔들어 보이며 도윤에게 확인하라고 했다.도윤은 지아의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우리 지아가 날 걱정해 주고 있네.’하지만 그는 핸드폰을 열어보는 순간 미소는 완전히 굳어버렸다.[선물 고마워. 춥고 길이 미끄러우니 조심히 가.]도윤은 문자를 확인한 후, 지아가 창을 닫고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커튼은 단단히 쳐졌고, 지아의 모습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도윤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학창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는 지아가 잠옷 차림으로 폭설을 뚫고 내 품에 뛰어들던 날도 있었는데.’ 하지만 그런 날들은 이제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그는 깨달았다. ‘지금의 지아는 이미 달라졌고, 나도 더 이상 이 여자의 최우선 순위가 아닌 거야.’...지아도 도윤의 생각을 모를 리 없었다. 방금 전, 도윤이 단지 작은 ‘연민 유발’ 정도로 자신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그녀는 작은 토끼 인형들을 침대 머리맡에 가지런히 놓았다. 비록 선물을 받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도윤을 용서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우리 둘은 지금 이 정도의 거리감이 서로에게 가장 나은 선택일지도 모르지...’그날 밤, 지아는 푹 자고 일어나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열어보니, 밤새 내린 눈으로 인해 하인들이 정원에서 눈을 치우고 있었다. 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가 그녀를 맞았다.“지아 아가씨.” 길을 지나던 고용인들이 지아에게 미소로 인사했다. 많은 이들이 손에 빨간 등롱을 들고 있었다. 곧 설날이 다가오고 있어서 집안은 이미 설 준
도윤은 지아의 모습이 눈 속에서 점점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다시 내가 일을 망친 것 같네. 사실 어떤 계략이나 계획 때문이 아니라, 그저 지아가 보고 싶었을 뿐인데...’부남진이 중간에서 도윤을 막고 있고, 지아는 화연을 돌봐야 했기에 이제 지아를 만나는 일조차 도윤에게는 사치가 되었다. 그래서 오늘 지아가 수술이 있다는 것을 알고, 도윤이 그녀가 부씨 가문의 저택을 떠나는 첫 순간에 마주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밤새 차 안에서 지아를 기다렸다.도윤도 과거를 떠올렸다. ‘내가 임무에서 돌아온다고 미리 알리면, 지아는 항상 식사를 준비해 놓고 앞치마를 두른 채 현관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지.’ ‘하얀 눈이 지아의 머리카락과 옷자락 위에 소복이 쌓여, 마치 요정처럼 아름다웠어.’ 그는 그때의 지아가 그리웠다.도윤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이 또다시 지아를 화나게 한 것을 자책했다. 그는 곧바로 차에 올라타고, 지아를 따라갔다.오늘 수술은 지아의 별장 지하실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곳에는 최신 의료 장비가 구비되어 있었지만,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기에 지아는 먼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검은 차와 흰 차가 나란히 멈췄고, 도윤은 재빠르게 지아의 뒤를 따랐다. 지아가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지만, 집 안은 아직 난방이 켜지지 않아 마치 커다란 냉동고처럼 차가웠다.지아는 도윤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신발을 갈아 신고 난방기를 켰다. 그때, 지아의 외투 끝자락이 누군가에게 살짝 잡혔다. 돌아보니, 키가 큰 도윤이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고, 그의 눈에는 미안함이 가득했다. 도윤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잘못했어.”그가 만약 거만하게 나왔다면, 지아는 오히려 더욱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윤은 너무나도 순순히 사과하고 있었고, 지아는 그 모습을 보고 마음속의 화가 조금씩 누그러졌다.“뭘 잘못했는데?”“자기 말이 맞아. 전림에 대해 은혜 갚는 것을 자기에게까지 강요한 건
늘 고고했던 도윤이 이제는 말할 수 없이 비굴한 자세로 간절히 지아에게 말했다. “어젯밤 채나에게 준 선물은 내가 자기에게 줄 토끼 인형을 고르다가 그냥 산 거야. 지아야, 내 마음속엔 자기와 우리 아이들 말고는 아무도 없어. 이제 곧 설날인데, 아이들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줄 수는 없을까?”특히, 부드럽고 귀여운 무무를 떠올릴 때마다 도윤의 마음은 저려왔다. 그때 도윤이 무무와 잠시 함께했던 그 짧은 순간에, 지아는 바로 무무를 데려가버렸다.지아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겠어, 이번이 마지막이야.”도윤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절대로 또다시 그러지 않을게.”지아는 그의 턱에 난 수염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위로 올라가서 좀 씻어.”“알았어.” 도윤은 그녀의 손끝을 잡아 입술에 살짝 입맞춤하며 말했다. “이제 자기 정말로 안 화난 거지?”“정말이야.”그제야 도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지금 자신과 지아의 사이는 마치 얇은 얼음 위를 걷는 듯 위태롭기만 했다. 겨우 ‘연결고리’를 붙잡은 지금, 도윤은 다시는 지아를 잃고 싶지 않았다. 이제 자존심이든, 과거의 은혜든 이제 그 어떤 것도 지아보다 중요하지 않았다.샤워기 아래에서 도윤은 지난날을 떠올렸다. ‘전림의 목숨을 구해준 은혜는 절대 잊을 수 없겠지만, 그 은혜를 갚기 위해 백채원의 소원을 다 들어주느라 정작 내 결혼 생활을 망쳐버렸어. 지금까지 그 은혜는 충분히 갚았어. 앞으로는 오직 우리 지아와 아이들을 위해 살 거야. 나를 옭아맸던 그 은혜의 족쇄, 이제는 내가 스스로 끊어내야 해!’도윤도 자신의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이렇게 오랜 세월을 지아와 아이들과 만나지도 못한 채 헛되이 보내지 않았을 텐데...’방으로 돌아오니, 지아가 이미 도윤을 위해 옷을 준비해 두었다. 도윤은 예전부터 억지로 이 집에 자기 옷을 놔두고 다녔었다. 침대 위에 놓인 깔끔한 옷들을 보
채나는 도윤이 편안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자 마음속이 복잡했다. ‘아빠와 의사 선생님은 이미 같이 사는 걸까?’ 어머니인 백채원이 상처받을까 걱정되어, 채나는 어젯밤 자신이 본 장면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집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 속에서 채나는 또래보다 훨씬 성숙해졌고, 심리적으로는 이미 십 대 후반의 소녀처럼 내면이 깊고 예민했다.그래서 채나는 조용히 입을 열어 말했다. “아빠.”도윤은 책을 덮고 그것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백호는 채원을 밀고 들어와 도윤을 보며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대표님, 혹시 바네사 선생님과 잘 아시는 사이인가요?”“네, 아주 잘 알죠. 먼저 수술실로 안내할게요.” 도윤은 채원 일행을 데리고 지하실로 향했다.채원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도윤은 채원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곧 모두가 지하실에 도착했고, 수술실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지아는 이미 마스크를 쓰고 수술복을 입은 채 살균 소독을 마친 상태였다. 방 안은 오직 수술대 위의 중앙 조명만 켜져 있었고, 어두운 모서리로 인해 그녀의 실루엣만 희미하게 보였다.도윤은 무심하게 말했다. “채원이를 수술대에 올려놓으면 나가도 돼요.”채원은 도윤이 지시를 내렸다는 말을 듣고, 그의 성격을 잘 알기에 마음속 불안이 더욱 깊어졌다.‘이도윤이 몇 년 동안 소지아를 찾아 헤맸다는 소문이 있었어. 그건 이도윤이 아직도 소지아에게 미련이 남아 있다는 뜻이겠지. 그런데 왜 이제 와서 갑자기 바네사와 얽히는 걸까?’채원은 용기를 내어 물었다. “도윤 씨, 혹시 바네사 선생님과는 어떤 사이예요?”도윤은 채원 앞에 서서 차갑게 대답했다. “내가 바네사와 어떤 관계이든 너와는 아무 상관 없어.”그 말만 남기고 도윤은 수술실을 떠났고, 너무 냉정해서 마치 낯선 사람 같았다. 채원은 그 말에 가슴이 시려왔다. ‘도윤 씨와 부부로 지낼 수 없다면, 최소한 친구로라도 남을 수는 없을까?’백호는 채원을 조용히 수술대에 눕히고 나서 차가운 시선으로 그
두 손을 옆에 늘어뜨린 채 고개를 들어 채나를 바라보는 도윤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게 다는 아니야.” 도윤은 손을 뻗어 채나를 옆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그냥 우리 채나에게 이야기 하나 해주고 싶은데.” 채나의 얼굴에 눈물이 이미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만약 제가 아빠의 재혼을 반대하면 어떻게 할 거예요? 아빠가 그동안 엄마와 잘 지내지 못한 건 알지만, 아빠가 항상 혼자였다는 것도 들었어요. 그냥 이렇게 사는 게 나쁘지 않잖아요? 아빠는 왜 이렇게 서둘러 새로운 가정을 꾸리려는 거예요? 저는 아빠가 다른 아줌마와 아이를 낳는 거 원하지 않아요. 아빠가 제 아빠이기만 하면 좋겠어요.” 도윤은 채나의 눈을 바라보며, 그 안에 비친 집착이 과거 백채원의 모습과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사실을 이제라도 깨달은 것은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앞으로 큰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채나야, 진정해.” “싫어요!” 채나는 그대로 도윤의 품에 달려들며 눈물을 쏟아냈다. “아빠, 저와 엄마는 아빠를 정말로 사랑해요. 제발 우리를 버리지 마요. 엄마가 잘못한 건 알아요. 하지만 엄마는 이미 벌을 받았어요. 아빠는 엄마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잖아요? 엄마는 유명한 무용가였는데, 이제는 휠체어에만 앉아 있어요.” “적어도 예전에 아빠는 엄마를 사랑했잖아요? 학교에서 배웠는데, 부모는 사랑으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대요. 아빠가 엄마를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오빠랑 제가 어떻게 태어날 수 있었겠어요?”도윤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채나의 눈물을 손끝으로 닦아주며 부드럽게 말했다. “아니야, 네 아빠는 정말로 널 사랑했어. 그리고 네 엄마도 사랑했지. 하지만 그 아빠는 내가 아니야.” 채나는 깜짝 놀라 큰 눈으로 도윤을 바라보았다. “아빠, 무슨 말이에요? 그 아빠가 아니라니... 그게 무슨 뜻이에요?” 도윤은 채나를 옆으로 앉히며 말했다. “이 이야기는 좀 길어...” 그는 전림과 자신 사이의 관계, 그리고 소지아, 백채
도윤은 채나를 쫓아가 붙잡으며 말했다. “채나야, 너는 너희 아빠의 자랑이야. 그분이 살아 계셨다면 분명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셨을 거야.”그러나 채나는 도윤의 품에서 격렬하게 몸부림쳤고, 그 와중에 뛰어오르며 도윤의 뺨을 세게 때렸다.“아저씨는 진짜 나쁜 사람이야! 우리 엄마를 배신하고, 아저씨의 아내에게도 상처 줬어. 아저씨 정말 미워! 아저씨 싫다고!”그 말을 남기고, 채나는 그대로 뛰어나갔다.진환이 그 뒤를 쫓으며 말했다. “보스, 이건 제게 맡기세요.”도윤은 자기 뺨을 살짝 만져보았다. 사실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그는 단지 전림의 아내와 자식을 지키고자 했고, 그 과정에서 자기 가족에게도 상처를 주고 말았다. ‘결국 채나도 나를 원망하게 됐고, 백채원도 모든 걸 잃었지.’ ‘심지어 내가 반드시 지키겠다고 다짐했던 지아에게마저 깊은 상처를 입히고 말았어.’도윤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내 인생은 결국 이렇게 실패로 끝나는 건가... 아무도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어.’진봉이 도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보스, 이건 보스의 잘못이 아니에요. 누구나 인생에서 모든 걸 가질 수 없는 법이잖아요. 어차피 사람은 두 가지 좋은 걸 동시에 얻을 수 없어요. 사실 보스가 이렇게 하신 건 잘한 일이에요.”진봉은 바닥에 앉아 진지하게 설명했다. “생각해 보세요. 채나 아가씨도 이제 곧 9살이고,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면서 세상의 이치를 알아가고 있어요. 만약 보스가 지금 설명해 주지 않으면, 채나 아가씨는 더 큰 오해를 하게 될 거예요. 보스는 그동안 채나 아가씨를 잘 보호해 왔고, 소문이 퍼지지 않게 막았죠. 하지만 아가씨가 말한 것처럼, 보스가 평생 그렇게 속일 수는 없잖아요.”“솔직히 보스도 알고 계시잖아요. 반대로 언젠가 보스의 친자식들이 자라서 다른 아이들이 보스를 ‘아빠’라고 부르는 걸 본다면, 그 아이들이 보스를 어떻게 생각하겠어요?”“결국 언젠가는 진실을 말해야 했을
채원의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불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저기... 무슨 뜻이죠? 설마 마취도 안 한다는 건 아니겠죠?” 지아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맞아요.”채원은 처음엔 그저 농담으로 한 말이었지만, ‘바네사’가 정말로 마취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표정이 굳어버렸다. “지금... 농담하는 거죠? 이렇게 큰 수술을 마취도 없이 한다는 게 말이 돼요?” 채원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손목이 꽉 묶여 있어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동시에 지아는 필요한 도구들을 차례대로 꺼내기 시작했다.채원은 교통사고 후 수술을 받을 때 마취했기 때문에, 수술 과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지아는 그 손에 날카로운 칼을 들고 있었다. 그녀는 그 칼을 손바닥에서 자유자재로 돌리며 능숙한 움직임을 보였다. 마치 살인자처럼 보일 뿐, 의사 같지는 않았다. “누가 채원 씨에게 농담을 하겠어요?” 지아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본래 목소리로 대답했다. 비록 두 사람은 오랜 시간 동안 만나지 않았지만, 채원에게는 그 목소리가 너무도 익숙했다. 그녀는 자다가 꾼 악몽 속에서도 그 목소리를 잊을 수 없었다. “너, 너는... 소지아!” 채원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지만, 곧 머릿속에서 모든 것이 뒤엉켜 버렸다. 그녀는 미친 듯이 고개를 저으며 이 현실을 부정하려 했다. ‘내가 헛걸 본 거야. 소지아가 여기 있을 리가 없잖아.’그러나 바로 그 순간, 지아는 얼굴에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답이야. 상으로 뼈 한 번 공짜로 깎아줄게.” 채원은 그제야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어떻게 네가 여기 있지? 바네사는 어디 갔어? 바네사를 어디에 숨겼냐고?” 하지만 이 방은 완벽한 방음 장치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문밖에 있는 백호조차도 채원의 비명을 들을 수 없었다.지아의 손에 들린 칼은 천천히 채원의 얼굴을 스치며 아래로 움직였다. “백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