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지아는 약을 받지 않았다.“제가 의사인데, 남이 건넨 약을 함부로 먹겠어요? 저는 원래 떠나고 싶었어요. 당신이 저를 데리고 갈 수 있다면 감사할 일이죠. 억지로 약을 먹일 필요는 없죠.”지아의 반항에 배이혁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그건 당신 마음대로 되지 않아요.”그러고는 지아에게 강제로 약을 먹이려 했다.“난 약한 여자라고 봐주지 않아요. 그러니 의사 선생님이 알아서 순순히 먹는 게 좋을 거예요. 그래야 덜 고생하시죠.”배이혁은 지아의 턱을 세게 잡고 억지로 약을 먹이려 했고, 지아는 필사적으로 저항했다.그때, 문밖에서 배신혁의 목소리가 들렸다.“형, 거기 있어요?”배이혁은 급히 지아의 입을 막으며 그녀가 소리를 내지 못하게 했다.“응, 무슨 일이야?”지아는 무기를 지니고 있었지만, 최후의 수단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지금은 오히려 약한 척하는 게 더 안전했다. 배이혁의 계획이 드러나면 오늘 밤 탈출은 물 건너가기 때문이었다.분명 배신혁은 배이혁의 계획을 모르는 것 같았다. 배이혁은 그저 몰래 지아를 제거하려고 했던 것이다.또한, 지아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그녀는 배이혁의 손가락을 세게 물었고, 배이혁의 손가락에서는 피가 났지만 그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오늘 피곤해서 좀 쉬려 해. 네가 가서 잘 지켜봐. 여기 모인 정계와 상업계 인사 중에서 실수가 있어선 안 돼.”“저기, 물어볼 게 있어서 왔는데 알았어. 잘 쉬어.”배신혁이 돌아서려 하자, 지아는 발로 작은 탁자를 세게 차서 과일과 컵을 바닥에 떨어뜨렸다.뭔가 깨지는 듯한 소리에 배신혁은 돌아서서 물었다.“형, 무슨 일이에요? 무슨 일 생겼어요?”배이혁은 지아를 노려보며 더욱더 그녀의 목을 세게 졸랐다. 배이혁이 처음부터 지아를 살려서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 확실해졌고, 그 약은 소리 소문 없이 그녀를 죽이려는 것이었다. 그 후 한대경이 무슨 말을 하든 다른 이유로 설명할 것이고, 아무도 배이혁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배신혁과 배이혁은 마치 빛과 어둠 같았다. 배신혁이 태양이라면, 배이혁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이었다. 그의 손은 더럽혀져 있었고, 밤에만 모습을 드러냈다.배신혁은 당연히 자신의 형이 무고한 사람을 함부로 죽이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형, 의사 선생님에게 문제가 있다는 증거가 없잖아. 말해봐, 어떤 스파이가 병원장마저도 감탄할 만큼 뛰어난 의술을 가질 수 있겠어?”“형도 알다시피, 보스가 의사 선생님을 데려온 건 보스의 고집 때문이었고, 소 의사님은 여러 차례 도망쳤지만 결국 다시 잡혔잖아.” “그런데도 증거도 없이 죽이려 하다니, 만약 보스가 깨어나면 얼마나 화를 낼지 생각해 봤어?”“보스가 화내고 날 처벌할 거란 걸 알아. 그래도 나는 어떤 위험도 남기지 않을 거야. 그 월롱초가 어떻게 왔는지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너는 잘 알잖아.”이에 지아가 배신혁을 향해 물었다.“월롱초가 뭐가 문제죠?”“우리 나라의 토양에서는 자라지 않아요. 보스가 마성에서 직접 가져와 이곳에서 키우게 한 거예요. 그 때문에 많은 자원이 낭비됐죠.”한대경은 이런 얘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또한 지아는 오늘 밤 온 신경을 반지에만 쏟고 있었기에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그러나 이제 배신혁의 말을 듣고 나서야 깨달았다.“자랑스럽겠지. 당신 하나 때문에 이 세상을 뒤지고 거금을 들여서라고 찾아내 당신에게 이식하려고 했으니.”그 말에 지아는 차갑게 대답했다.“나는 자랑스러운 게 아니라 부담스러워요. 나를 좋아하는 건 나에게는 짐일 뿐이에요. 나는 전혀 좋아하지 않아서 해줄 대답도 없고요. 그냥 여기서 떠나고 싶을 뿐이고 그게 전부예요.”“떠나고 싶었다? 웃기지 마. 내가 몰랐을 거 같아? 당신 같은 여자들은 다 똑같아. 원하는 건 모두 잡고, 다 계획된 거잖아. 하지만 당신이 살아 있는 한, 보스는 계속 찾아낼 거야.”“그렇지도 않을 거예요. 내가 떠나면, 절대 나를 찾지 못할 거야. 신혁 씨, 제발 저를 여기서 나가게 해주세요. 당신 형이 미쳐서 날 죽이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못한 한대경은 갑자기 정신을 차렸으나 머리는 여전히 어지러웠다.머리에 꽂혀 있던 침은 이미 제거되어 있었고, 방 안에 피워놓은 향은 막 꺼졌지만, 그 강한 냄새가 한대경을 매우 불편하게 만들었다. 한대경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들어오자 향 냄새가 흩어졌고, 그제야 조금 나아진 것 같았다.그럼에도 여전히 머리가 조금 띵했다. 그는 하품하며 방안을 둘러보았지만, 이미 지아의 흔적은 없었다.‘역시나 또 도망갔네.’한대경은 손으로 콧등을 움켜잡고 있었다가, 손가락에 있던 반지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그 순간 그는 정신이 반쯤 차려졌다. 또한 책상 위에는 한 장의 쪽지가 놓여 있는 글씨가 한대경의 눈에 들어왔다.[한대경 씨, 앞으로는 여자를 너무 쉽게 믿지 마세요. 대가는 이미 받았으니.]한대경은 그동안 있었던 모든 일들을 떠올렸고, 그는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좀처럼 믿지 못했다.쪽지를 쥔 손가락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그의 눈은 차갑고 음산한 빛을 띠었다.그때 배신혁이 갑자기 방으로 들어왔다. 또한, 한대경의 표정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물었다.“보스, 의사 선생님은 어디 있죠?”한대경의 손에서 쪽지가 가볍게 떨어졌고, 그의 목소리는 놀랍도록 평온했다.“그 여자가 내 반지를 훔쳐 갔어.”“뭐라고요!”배신혁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는데. 아무도 이렇게 대담할 수는 없었다. 이는 마치 호랑이의 꼬리를 자르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정원의 나뭇가지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투두둑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마치 한대경의 마음에 내리는 비와도 같았다.“멀리 가지 못했으니 즉시 모든 출입구를 봉쇄해!”배이혁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역시 그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 여자는 정체가 불분명했다.배신혁은 조금 전 지아를 위해 형에게 맞서 싸웠던 자신을 떠올리며 분노가 치밀었다. 지아의 행동은 그를 뺨이라도 때리듯 통렬한 배신이었다.“빌어먹을, 그 여자가 우리
지아는 급히 발걸음을 옮기다 갑자기 멈춰 섰다. 멀리서 들려오는 폭발음에 그녀의 발이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그건 총소리가 아니라 소형 폭탄의 폭발 소리였다. 설령 그들이 시억을 발견했다고 해도, 폭탄을 사용하는 일은 없을 터였다.결론은 그 반지 안에 자폭 장치가 있었다는 것 그 하나뿐이었다.하지만 자료에는 이런 내용이 없었다.‘혹시 폭사 당한 걸까?’지아는 돌아가려고 몸을 돌렸지만 이내 발걸음을 멈췄다. 돌아간다면 스스로 함정에 빠지는 셈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한대경에게 잡힌다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빠르게 결정을 내린 지아는 외빈 구역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폭발 소리는 모든 사람을 놀라게 했고, 몇몇은 온천 방에서 고개를 내밀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하려 했다.그 순간 지아 역시 누군가에게 막혔다.“멈춰! 뒤를 돌아!”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바로 한대경의 부하, 양요겸이었다. 그들은 이미 지아를 찾기 위해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지아는 침착하게 뒤돌아 A국 사람의 억양으로 대답했다.“무슨 일이죠?”요겸은 지아가 자신에게 잡혔다고 생각했지만, 돌아선 여자는 눈부신 미모를 자랑하며 하얀 피부에, 갈색 머리를 뒤로 묶고 있었다. 지아의 화려한 외모는 자신이 알던 의사 선생님과는 전혀 다르게 아름다웠다.요겸은 배이혁의 지시를 떠올리며, 지아의 목을 유심히 살펴보았다.지아는 많은 시간을 들여 목의 자국을 가려놓았고, 이런 조명 아래에서는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당신은 누구죠? 어떻게 여기에 있죠?”지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진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형수님, 여기 계셨군요. 보스가 벌써 한참 기다리셨어요.”진봉은 냉정한 얼굴로 요겸을 바라보았다.“이 분은 저희 보스의 부인이시고, 방금 도착했어요.”어차피 지아와 도윤의 관계는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정보였기에, 그 누구도 지아와 소수연을 연관 지을 수 없었다.이에 요겸은 고개를 숙이며 길을 비켰다.“실례했네요.”지아는 귀걸이를
여자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단 몇글자만으로도 남자를 뼛속까지 전율하게 만들었다.한대경이 눈을 들어 보니, 옅은 수증기가 자욱한 온천 가장자리에 반쯤 가면을 쓴 남자가 한 여자를 몸 아래에 두고 있었다.화려한 꽃무늬 옷은 벌어져 있었고, 가녀린 목과 어깨가 드러나 있었지만 중요한 부분은 다 가려져 있었다.하얗고 긴 두 다리는 남자의 허리에 감겨 있었고, 두 손은 남자에 의해 머리 위로 올려져 있었다.이도윤의 입술은 지아의 목에 파묻혀 있었고, 이 장면은 너무나도 아찔하고 자극적이었다.문을 발로 차는 소리에 지아는 놀란 사슴처럼 두려움에 떨며 문밖을 바라보았다.지아의 큰 검은 눈동자엔 공포가 가득했고, 도윤의 품속으로 파고들며 그에게 몸을 숨겼다.그리고 도윤은 떨어진 옷을 집어 지아에게 덮어주었다.동작은 빨랐지만, 한대경은 그 순간 여자의 갈색 머리카락이 예쁜 나비뼈 위로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마치 한없이 유혹적인 존재 같았다.작은 손으로 도윤의 목을 꼭 붙잡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부드럽게 말했다.“도윤.”“자기야, 걱정하지 마.”도윤은 재빨리 타월을 집어 여자의 몸을 단단히 감싸고는, 차갑게 말했다.“한대경, 이 상황에 대해 해명할 필요가 있겠는데?”한대경은 맨발에 하얀 종아리가 드러난 그 여자를 관찰했다.지아의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은 느슨하게 흘러내렸고, 메이크업은 정교했으며, 갈색 눈썹과 하얀 피부가 어우러져 마치 동화 속 공주처럼 보였다.지아의 모습엔 전혀 수연의 흔적이 없었다.지아는 그에게 매번 날카롭고 공격적으로 굴었지, 이렇게 부드러울 리가 없었다.“죄송하네요. 관리 소홀로 온천에 도둑이 들어왔어요. 좋은 시간 방해하게 될까 걱정돼서 그만.”그러자 도윤은 화를 참지 못하고 과일 접시를 발로 차 엎었다.“미안하다는 말로 끝낼 일이 아니잖아요? 사람이 밤에 무단으로 들어왔어요. 이게 C국의 손님 대접 방식인가요?”긴장감이 팽팽하게 감돌았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한대경이 분명 잘못이 있었다.한대경은 도윤의 품에
지아의 정보는 쉽게 찾아볼 수 있었고, 곧 한대경의 눈앞에 그녀의 과거가 드러났다.소씨 가문의 소중하게 자란 장녀, 천재였으나 한 남자 때문에 학업을 중단했다.또한 몇 년간의 숨겨진 결혼 끝에 그와 얽히고설킨 관계는 결국 이혼으로 마무리되었다.몇 년 전 암 판정을 받았고, 병이 악화되며 A시에선 자취를 감췄다. 사람들은 그녀가 이미 죽었거나, 혹은 산속에 숨어서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다.도윤이 3년 넘는 시간 동안 지아를 포기하지 않고 찾고 있다는 소문은 일찍이 들어 알고 있었다.그저, 한대경은 처음으로 도윤의 전처 얼굴을 봤다. 아름답고도 여리게 보이는 얼굴. 한 번 보면 부서질 듯 껴안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얼굴이었다.지아와 이도윤의 얽힌 과거를 보더라도, 지아는 절대 소수연일 리가 없었다.‘내가 착각한 건가?’‘머리카락은 바꿀 수 있고, 흔적은 가릴 수 있으며, 얼굴마저도 살인자가 교묘하게 변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지아의 정보를 확인한 후, 그는 점점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게 되었다.도윤이 지아를 사랑하는 건 뼛속 깊이 새겨진 것이었기에, 지아가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오게 두었을 리가 없었다.‘그리고 무슨 이득이 있을까?’돈, 권력, 지위, 이미 모든 것을 가진 여자였다.이 반지는 비록 소중하지만, A국에는 아무 쓸모가 없었다. 만약 진정 두 나라가 전쟁을 벌인다면, 그들은 무기를 사용해 기지를 공격하지,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반지를 훔치려 하진 않았을 것이다.반지를 원한 자는 기지에 몰래 침투하려는 자였으며, 도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보스, 다행히 이번에 우리 형이 반지를 가져와서 업그레이드했기 때문에 우리만 알아요. 그 안에 자폭 장치가 추가되었다는 사실은 아직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고요.”“그래서 큰 손실은 없는 셈이나 마찬가지죠. 반지를 원한 자는 우리 근처에 있는 것 같고요.”파괴된 반지는 다시 제작하면 그만이었기에 손실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하지만 여자를 보내 한대경의 자존심을 짓밟
밤새 내린 폭우가 멈추고, 날이 밝아오자 이도윤은 품에 안긴 채 잠든 지아를 바라보았다. 살짝 이불을 들추자 지아의 몸에는 그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도윤이 움직이자 지아도 깨어났다. 지아는 이불로 가슴을 가리고, 뜰에서 담배를 피우는 도윤의 등 뒤에서 쓸쓸함을 느꼈다.목욕 가운을 걸치고 맨발로 도윤에게 다가가 그의 목을 뒤에서 감쌌다.“무슨 일이야?”도윤은 담배를 즉시 끄고 지아를 품에 끌어안으며 속삭였다.“지아야.”도윤은 지금껏 지아가 느꼈던 그 상실감을 절실하게 체감하고 있었다. 마치 지아가 언제라도 사라질 것만 같은 불안감이 그를 사로잡았다.도윤은 손가락으로 지아의 얼굴을 천천히 더듬으며 그녀의 모습을 영원히 기억에 새기고 싶다는 듯했다.“너 정말로 지아 맞아?” 도윤의 눈빛엔 혼란이 가득했다. “분명히 널 안고 있는데도, 전혀 실감이 안 나는 것 같아.”지아는 도윤의 손을 자기 가슴에 가져다 댔다. “이렇게 해도 실감이 안 나?”도윤의 눈빛은 마치 안개 속에 둘러싸인 것마냥 우울해 보였다.지아는 도윤을 오랫동안 알아 왔지만, 그가 이렇게 변한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도윤아, 대체 무슨 일이야?”도윤은 깊게 한숨을 내쉬며 지아를 바라보다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더 자고 싶어? 아니면 배가 고프면 진환에게 아침을 준비하라고 할까?”“오늘 일정이 있어? 우리 언제 귀국해?” 지아는 지금 당장이라도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지아는 한대경이 분명 외부에 덫을 놓았을 것임을 알기에, 피할 수 없는 위험에 뛰어들지 않았다.그녀는 이 임무가 실패로 돌아갔음을 깨닫고, 조속히 귀국하는 것만이 마음의 안정을 되찾는 길이라 생각했다.“오늘은 5개국 회의가 있어. 저녁에 돌아와서 너랑 저녁을 먹을게. 내일 아침이면 돌아갈 거야.”도윤은 계획을 분명히 말했지만, 그의 눈엔 여전히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그 말에 지아는 웃으며 도윤에게 말했다. “그럼 내가 옷 준비해 줄게.”“좋아.”지아는 그에게 늘 하
한대경의 시선은 도윤이 품고 있는 지아한테 옮겨졌다. 지아의 얼굴은 마치 도자기 인형처럼 섬세하고, 수줍음으로 가득 찬 모습은 핑크빛 복숭아꽃처럼 상기되어 있었다.흰색 드레스는 지아의 단정하고 우아한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했고, 백조 같은 목선이 너무나 아름다웠다.한대경과 눈이 마주치자 지아는 더욱 부끄러워하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안 된다고 했잖아. 참나.”도윤은 그녀의 손을 들어 올려 입술에 키스하며 미소를 띠었다. “내 아내에게 키스하는 게 왜?”그러면서 도윤은 한대경을 향해 의도적으로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한대경 씨, 기분 나쁘진 않으시죠?”지아는 무심코 한대경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걸 알게 된 후 도윤이 얼마나 질투를 느끼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도윤은 밤새도록 지아를 놓아주지 않았다.한대경은 자료에서 지아가 한 아이를 조산했으며, 이혼 후에도 한 번 더 조산했지만, 아직 자식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그렇기에 네 아이가 있다고 말했던 소수연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비록 체격은 조금 닮았지만, 나머지는 전혀 닮지 않았다.대학도 졸업하지 못한 채 가정주부가 되었는데, 어떻게 그런 높은 의술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한대경은 지아의 얼굴에서 시선을 거두며 차갑게 대답했다.“신경 쓰이지 않죠. 먼 길 오셨는데 어젯밤 같은 일이 생겨서 정말 죄송하네요. 사과의 의미로 작은 프로그램을 준비해 뒀어요.”지아는 원래 도윤의 거처에서 하루만 머물고 내일 떠날 계획이었다. 더 이상 한대경과 얽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한대경이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거절하는 것도 이상해 보여, 도윤의 옆에 붙어 대답했다.“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저희를 위해 일부러 준비하시는 게 번거로울지 걱정되네요.”지아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달콤했으며, 수연처럼 대놓고 욕설을 퍼붓는 성격과는 달랐다.“아량이 넓으시네요. A국과 우리 사이에 불편한 마찰이 있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갈등을 풀고 싶어요. 제가 주최자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