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단 몇글자만으로도 남자를 뼛속까지 전율하게 만들었다.한대경이 눈을 들어 보니, 옅은 수증기가 자욱한 온천 가장자리에 반쯤 가면을 쓴 남자가 한 여자를 몸 아래에 두고 있었다.화려한 꽃무늬 옷은 벌어져 있었고, 가녀린 목과 어깨가 드러나 있었지만 중요한 부분은 다 가려져 있었다.하얗고 긴 두 다리는 남자의 허리에 감겨 있었고, 두 손은 남자에 의해 머리 위로 올려져 있었다.이도윤의 입술은 지아의 목에 파묻혀 있었고, 이 장면은 너무나도 아찔하고 자극적이었다.문을 발로 차는 소리에 지아는 놀란 사슴처럼 두려움에 떨며 문밖을 바라보았다.지아의 큰 검은 눈동자엔 공포가 가득했고, 도윤의 품속으로 파고들며 그에게 몸을 숨겼다.그리고 도윤은 떨어진 옷을 집어 지아에게 덮어주었다.동작은 빨랐지만, 한대경은 그 순간 여자의 갈색 머리카락이 예쁜 나비뼈 위로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마치 한없이 유혹적인 존재 같았다.작은 손으로 도윤의 목을 꼭 붙잡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부드럽게 말했다.“도윤.”“자기야, 걱정하지 마.”도윤은 재빨리 타월을 집어 여자의 몸을 단단히 감싸고는, 차갑게 말했다.“한대경, 이 상황에 대해 해명할 필요가 있겠는데?”한대경은 맨발에 하얀 종아리가 드러난 그 여자를 관찰했다.지아의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은 느슨하게 흘러내렸고, 메이크업은 정교했으며, 갈색 눈썹과 하얀 피부가 어우러져 마치 동화 속 공주처럼 보였다.지아의 모습엔 전혀 수연의 흔적이 없었다.지아는 그에게 매번 날카롭고 공격적으로 굴었지, 이렇게 부드러울 리가 없었다.“죄송하네요. 관리 소홀로 온천에 도둑이 들어왔어요. 좋은 시간 방해하게 될까 걱정돼서 그만.”그러자 도윤은 화를 참지 못하고 과일 접시를 발로 차 엎었다.“미안하다는 말로 끝낼 일이 아니잖아요? 사람이 밤에 무단으로 들어왔어요. 이게 C국의 손님 대접 방식인가요?”긴장감이 팽팽하게 감돌았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한대경이 분명 잘못이 있었다.한대경은 도윤의 품에
지아의 정보는 쉽게 찾아볼 수 있었고, 곧 한대경의 눈앞에 그녀의 과거가 드러났다.소씨 가문의 소중하게 자란 장녀, 천재였으나 한 남자 때문에 학업을 중단했다.또한 몇 년간의 숨겨진 결혼 끝에 그와 얽히고설킨 관계는 결국 이혼으로 마무리되었다.몇 년 전 암 판정을 받았고, 병이 악화되며 A시에선 자취를 감췄다. 사람들은 그녀가 이미 죽었거나, 혹은 산속에 숨어서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다.도윤이 3년 넘는 시간 동안 지아를 포기하지 않고 찾고 있다는 소문은 일찍이 들어 알고 있었다.그저, 한대경은 처음으로 도윤의 전처 얼굴을 봤다. 아름답고도 여리게 보이는 얼굴. 한 번 보면 부서질 듯 껴안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얼굴이었다.지아와 이도윤의 얽힌 과거를 보더라도, 지아는 절대 소수연일 리가 없었다.‘내가 착각한 건가?’‘머리카락은 바꿀 수 있고, 흔적은 가릴 수 있으며, 얼굴마저도 살인자가 교묘하게 변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지아의 정보를 확인한 후, 그는 점점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게 되었다.도윤이 지아를 사랑하는 건 뼛속 깊이 새겨진 것이었기에, 지아가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오게 두었을 리가 없었다.‘그리고 무슨 이득이 있을까?’돈, 권력, 지위, 이미 모든 것을 가진 여자였다.이 반지는 비록 소중하지만, A국에는 아무 쓸모가 없었다. 만약 진정 두 나라가 전쟁을 벌인다면, 그들은 무기를 사용해 기지를 공격하지,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반지를 훔치려 하진 않았을 것이다.반지를 원한 자는 기지에 몰래 침투하려는 자였으며, 도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보스, 다행히 이번에 우리 형이 반지를 가져와서 업그레이드했기 때문에 우리만 알아요. 그 안에 자폭 장치가 추가되었다는 사실은 아직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고요.”“그래서 큰 손실은 없는 셈이나 마찬가지죠. 반지를 원한 자는 우리 근처에 있는 것 같고요.”파괴된 반지는 다시 제작하면 그만이었기에 손실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하지만 여자를 보내 한대경의 자존심을 짓밟
밤새 내린 폭우가 멈추고, 날이 밝아오자 이도윤은 품에 안긴 채 잠든 지아를 바라보았다. 살짝 이불을 들추자 지아의 몸에는 그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도윤이 움직이자 지아도 깨어났다. 지아는 이불로 가슴을 가리고, 뜰에서 담배를 피우는 도윤의 등 뒤에서 쓸쓸함을 느꼈다.목욕 가운을 걸치고 맨발로 도윤에게 다가가 그의 목을 뒤에서 감쌌다.“무슨 일이야?”도윤은 담배를 즉시 끄고 지아를 품에 끌어안으며 속삭였다.“지아야.”도윤은 지금껏 지아가 느꼈던 그 상실감을 절실하게 체감하고 있었다. 마치 지아가 언제라도 사라질 것만 같은 불안감이 그를 사로잡았다.도윤은 손가락으로 지아의 얼굴을 천천히 더듬으며 그녀의 모습을 영원히 기억에 새기고 싶다는 듯했다.“너 정말로 지아 맞아?” 도윤의 눈빛엔 혼란이 가득했다. “분명히 널 안고 있는데도, 전혀 실감이 안 나는 것 같아.”지아는 도윤의 손을 자기 가슴에 가져다 댔다. “이렇게 해도 실감이 안 나?”도윤의 눈빛은 마치 안개 속에 둘러싸인 것마냥 우울해 보였다.지아는 도윤을 오랫동안 알아 왔지만, 그가 이렇게 변한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도윤아, 대체 무슨 일이야?”도윤은 깊게 한숨을 내쉬며 지아를 바라보다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더 자고 싶어? 아니면 배가 고프면 진환에게 아침을 준비하라고 할까?”“오늘 일정이 있어? 우리 언제 귀국해?” 지아는 지금 당장이라도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지아는 한대경이 분명 외부에 덫을 놓았을 것임을 알기에, 피할 수 없는 위험에 뛰어들지 않았다.그녀는 이 임무가 실패로 돌아갔음을 깨닫고, 조속히 귀국하는 것만이 마음의 안정을 되찾는 길이라 생각했다.“오늘은 5개국 회의가 있어. 저녁에 돌아와서 너랑 저녁을 먹을게. 내일 아침이면 돌아갈 거야.”도윤은 계획을 분명히 말했지만, 그의 눈엔 여전히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그 말에 지아는 웃으며 도윤에게 말했다. “그럼 내가 옷 준비해 줄게.”“좋아.”지아는 그에게 늘 하
한대경의 시선은 도윤이 품고 있는 지아한테 옮겨졌다. 지아의 얼굴은 마치 도자기 인형처럼 섬세하고, 수줍음으로 가득 찬 모습은 핑크빛 복숭아꽃처럼 상기되어 있었다.흰색 드레스는 지아의 단정하고 우아한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했고, 백조 같은 목선이 너무나 아름다웠다.한대경과 눈이 마주치자 지아는 더욱 부끄러워하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안 된다고 했잖아. 참나.”도윤은 그녀의 손을 들어 올려 입술에 키스하며 미소를 띠었다. “내 아내에게 키스하는 게 왜?”그러면서 도윤은 한대경을 향해 의도적으로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한대경 씨, 기분 나쁘진 않으시죠?”지아는 무심코 한대경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걸 알게 된 후 도윤이 얼마나 질투를 느끼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도윤은 밤새도록 지아를 놓아주지 않았다.한대경은 자료에서 지아가 한 아이를 조산했으며, 이혼 후에도 한 번 더 조산했지만, 아직 자식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그렇기에 네 아이가 있다고 말했던 소수연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비록 체격은 조금 닮았지만, 나머지는 전혀 닮지 않았다.대학도 졸업하지 못한 채 가정주부가 되었는데, 어떻게 그런 높은 의술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한대경은 지아의 얼굴에서 시선을 거두며 차갑게 대답했다.“신경 쓰이지 않죠. 먼 길 오셨는데 어젯밤 같은 일이 생겨서 정말 죄송하네요. 사과의 의미로 작은 프로그램을 준비해 뒀어요.”지아는 원래 도윤의 거처에서 하루만 머물고 내일 떠날 계획이었다. 더 이상 한대경과 얽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한대경이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거절하는 것도 이상해 보여, 도윤의 옆에 붙어 대답했다.“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저희를 위해 일부러 준비하시는 게 번거로울지 걱정되네요.”지아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달콤했으며, 수연처럼 대놓고 욕설을 퍼붓는 성격과는 달랐다.“아량이 넓으시네요. A국과 우리 사이에 불편한 마찰이 있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갈등을 풀고 싶어요. 제가 주최자이니
아침부터 도윤이 뭔가 걱정이 있는 듯 보였다. 차에 타자마자 그의 이마에 드리운 주름을 본 지아는 살짝 다가가 도윤의 뺨에 입맞춤했다.“왜 이렇게 계속 우울한 표정이야?”도윤은 무슨 말을 하려다 망설였다.“아무것도 아니야.”이에 지아는 장난스레 말했다.“말 안 하면 계속 입맞춤할 거야.”“정말, 이 여우 같으니라고.” 도윤은 입맞춤을 깊게 하다가 자칫 더 진전될 뻔해 지아가 그를 밀어냈다.지아는 도윤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손가락을 지아의 손가락 사이로 천천히 끼워 넣으며 속삭였다.“비록 우리 사이에 법적으로 맺어진 관계는 없지만,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로 아이들 말고는 당신이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야. 대체 뭘 그렇게 고민하는 거야?”도윤은 지아의 손을 꽉 잡고, 그녀의 눈을 깊숙이 응시했다.“너 정말 지아 맞아? 아니면 영지인가?”그 말에 지아의 몸이 순간 굳었다.“이미 다 알고 있었구나?”“블랙X의 최신 S급 임무가 바로 그 반지를 노리는 거였고, 그 임무를 맡은 사람이 영지라는 것도 말이야. 사실 난 이미 너를 조사하고 있었어. 그날 금상어를 죽인 것도 너지?”도윤이 중독된 후, 도망간 금상어를 처리한 사람은 지아였고, 그것도 도윤이 즐겨 쓰는 방식으로 머리를 잘라내어 다크 웹에 올렸다.그 말에 지아는 부정하지 않았다.“그래, 나야. 난 그때 날 죽이려 했던 사람을 끝까지 찾으려고 해. 아무 소식이 없더라도, 내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다시 돌아올지도 몰라. 그런 곳에 있어야 내가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알 수 있잖아.”“지아야, 내가 네 복수를 도와주겠다고 말했잖아. 왜 날 믿지 않고, 이렇게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나서는 거야?”“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들이 다시는 우리 관계에 영향을 주지 않길 바랐어. 만약 그 사람이 당신에게 중요한 친척이라면, 예를 들어 이예린 같은 존재 말이야, 아무리 당신이 나를 아끼더라도 결국에는 나를 겨냥할 거 아니야.”지아는 담담하게 말했다.“그런 고통을 또다시 겪고 싶지 않아.
그렇게 시크했던 남자는 지금 더없이 비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내가 남자인 건 맞지만, 남자라고 하여 안전감이 필요하지 않은 건 아니야. 나한테있어서 결혼이 바로 그 안전감이야.”지아는 중얼거리며 말했다.“하지만 나에게 결혼은 안전감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족쇄일 뿐이야.”목적지에 도착하자 지아는 손을 들어 그의 얇은 입술에 묻은 립스틱 자국을 지우고는 빙긋 웃었다. “지금처럼 지내는 것만으로도 난 충분히 행복해.”핸드백에서 립스틱을 꺼내 그의 손에 쥐여주며 지아가 덧붙였다. “네가 발라 줘.”각국의 외빈들은 모두 멈춰 섰고 우두머리인 한대경과 몇 마디 주고받았다.차에서 내린 그 부부를 아직 못한 채로 말이다.그는 배이혁에게 사람을 데리고 먼저 가라고 하고 자신은 도윤의 차 앞으로 갔다.진환을 비롯한 경호원들은 꼼짝도 하지 않고 차 옆에 서 있었다.한대경은 참다못해 화를 내며 문을 잡아당겨 열었는데 그러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평소 그와 독을 품고 있던 도윤과는 달리 손끝으로 지아의 턱을 살짝 움켜쥐고, 자상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열심히 립스틱을 발라주고 있었다.도윤의 눈빛과 동작은 지극히 경건하여 마치 지아가 그의 삶이자 목숨인 것처럼 보였다.지아는 입을 오므리고 그를 향해 활짝 웃었다. “도윤아, 나 예뻐?”그런 웃음이 자칫 한대경의 영혼마저 앗아갈 뻔했다.그는 이 세상에 그렇게 아름다운 웃음이 있을 줄이라고 상상하지도 못했다.분명 요염한 얼굴이었지만 눈은 보석처럼 순수하고 깨끗했으니 말이다.“우리 지아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지아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한대경을 바라보며 확연히 멀어진 공손한 태도를 그를 마주했다.“립스틱이 좀 지워져서요... 미안해요.”“괜찮아요.”한대경은 시선을 거두면서 대답했다.이 여자 앞에만 오면 그는 자기도 모르게 모든 성질이 죽어버리고 만다.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그조차도 알 수 없었다.도윤은 긴 다리로 차에서 내려 지아에게 팔을 건네주었고, 지아는 그제야 그의 팔을 잡고
자기를 떠 보고 있는 배신혁의 의도를 지아는 분명히 낚아챘다.따라서 지아는 당황하지 않고 덤덤하게 웃으며 대답했다.“만약 제가 속임을 당했다고 한다면 그 교훈을 기억하고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끔 주의할 거예요. 다음에는 사람을 쉽게 믿지도 않을 것 같고요.”배신혁은 그녀의 빈틈없는 언행에서 그 어떠한 실마리도 찾을 수 없었다.하는 수 없이 숨을 죽이고 이곳 건축이나 풍경에 대해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국립병원과 가까워지자 그 앞에는 약초가 심어져 있었는데 마침 꽃이 예쁘게 피어 있었다.“이 꽂은 우리나라 국화 상직이라고 합니다. 꽃잎을 말리면 약재로 쓰일 수 있고 그 열매와 꽃줄기는 직접 먹을 수도 있습니다.”그때 지아기 입을 열었다.“네. 60년 전 C국에서 큰 재난을 겪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천지가 바하고 군벌이 도처에 널려 있고 그뿐만 아니라 가뭄까지 닥치면서 수확 하나 못했다고 했었어요. 사람들은 하는 수 없이 산을 타서 산나물을 캐게 된 거죠.”“상직과 같은 초본식물은 생명력이 강하고 일 년 자랄 수 있고 꽃잎부터 뿌리줄기까지 먹을 수 있어 그 가뭄을 이겨낼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을 도와줬었죠. 그래서 그 재난 이후로 상직은 국화로 된 거라고 들었어요.”“정확합니다. 사모님께서 박학다식하시네요. 생활이 좋아진 오늘날에 젊은이들은 그유래도 모르고 있을 거예요.”감탄하면서 말하다가 배신혁은 갑자기 말머리를 돌렸다.“여기가 바로 국립병원입니다. 사모님께서 의학을 공부하셨다고 들은 바가 있는데, 들어가셔서 직접 둘러보시지 않겠습니까? 많은 약초들이 심어져 있습니다.”지아는 그가 이렇게 할 것이라고 이미 알고 있었다.따라서 만약 지금 바로 거절하면 너무 의도적인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일단은 동의하기로 한 지아였다.“의학에 대해서 배운 건 사실이나 개인적인 일로 학업을 중단했어요. 외과를 전공했던 저라 한의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요.”“괜찮아요. 국립병원에는 간단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한의사가
“빨리 가지 않고 뭐 하시는 거죠? 사모님께서 지금 한창 둘러보고 계셨거든요.”배신혁은 매서운 눈빛으로 오혁에게 경고를 주었다.오혁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지금 바로 자리 비켜드릴게요.”“참, 수연 선생님은 어디에 계시나요? 출근하지 않은 거예요?”국립병원 사람들은 아직도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지아는 마음속으로 죄책감을 느꼈고 자기를 친구로 삼은 그 사람들에게 미안했다.“헛소리하지 말고 얼른 가요!”배신혁은 지아의 행방을 묻는 오혁을 재촉했다.오혁이 멀리 간 뒤에야 배신혁은 고개를 돌려 지아를 바라보며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사모님. 잠시 헤프닝이 있었네요.”“괜찮아요. 닮은 사람이라면 착각할 수도 있는 법이죠.”지아는 당당하게 계속 그를 따라서 돌아다녔고 배신혁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갖은 방법으로 계속 떠봤지만 지아한테 이상한 점은 없었다.공기 중의 그 강한 향수 냄새를 맡으면서 배신혁은 소수연의 몸에서 나는 냄새는 은은한 약의 향기라는 것을 떠올렸다.지아에게서는 꽃향기가 나오 있었으므로 배신혁은 점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향으로 온전히 한 사람을 판단하는 건 어처구니가 없지만, 향수를 뿌리는 여자들도 많으니 배신혁은 단지 냄새로만 지아를 부정할 수 없었다.지아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공효신은 직접 접견하면서 지아에게 국립병원을 소개해 주었다.지아가 음료수를 마시고 있는 동안 배신혁은 공효신을 한쪽으로 데리고 갔다.“원장님, 알 것 같으세요? 저 여자한테서 무슨 냄새가 나는 것 같나요?”“몇 가지 꽃향기와 박달나무에서 추출한 냄새인 것 같은데 강하고 독한 데다 난 향수를 잘 모릅니다.”“약재 냄새가 나나요?”“아니요.”공효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근데 수연 선생님은 왜 아직도 출근하지 않은 거예요? 대체 어디로 데리고 간 거예요?”배신혁은 아직 그 여자가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냉담한 얼굴로 말했다.“그 여자는 그저 사기꾼일 뿐이고 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