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경의 시선은 도윤이 품고 있는 지아한테 옮겨졌다. 지아의 얼굴은 마치 도자기 인형처럼 섬세하고, 수줍음으로 가득 찬 모습은 핑크빛 복숭아꽃처럼 상기되어 있었다.흰색 드레스는 지아의 단정하고 우아한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했고, 백조 같은 목선이 너무나 아름다웠다.한대경과 눈이 마주치자 지아는 더욱 부끄러워하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안 된다고 했잖아. 참나.”도윤은 그녀의 손을 들어 올려 입술에 키스하며 미소를 띠었다. “내 아내에게 키스하는 게 왜?”그러면서 도윤은 한대경을 향해 의도적으로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한대경 씨, 기분 나쁘진 않으시죠?”지아는 무심코 한대경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걸 알게 된 후 도윤이 얼마나 질투를 느끼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도윤은 밤새도록 지아를 놓아주지 않았다.한대경은 자료에서 지아가 한 아이를 조산했으며, 이혼 후에도 한 번 더 조산했지만, 아직 자식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그렇기에 네 아이가 있다고 말했던 소수연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비록 체격은 조금 닮았지만, 나머지는 전혀 닮지 않았다.대학도 졸업하지 못한 채 가정주부가 되었는데, 어떻게 그런 높은 의술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한대경은 지아의 얼굴에서 시선을 거두며 차갑게 대답했다.“신경 쓰이지 않죠. 먼 길 오셨는데 어젯밤 같은 일이 생겨서 정말 죄송하네요. 사과의 의미로 작은 프로그램을 준비해 뒀어요.”지아는 원래 도윤의 거처에서 하루만 머물고 내일 떠날 계획이었다. 더 이상 한대경과 얽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한대경이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거절하는 것도 이상해 보여, 도윤의 옆에 붙어 대답했다.“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저희를 위해 일부러 준비하시는 게 번거로울지 걱정되네요.”지아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달콤했으며, 수연처럼 대놓고 욕설을 퍼붓는 성격과는 달랐다.“아량이 넓으시네요. A국과 우리 사이에 불편한 마찰이 있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갈등을 풀고 싶어요. 제가 주최자이니
아침부터 도윤이 뭔가 걱정이 있는 듯 보였다. 차에 타자마자 그의 이마에 드리운 주름을 본 지아는 살짝 다가가 도윤의 뺨에 입맞춤했다.“왜 이렇게 계속 우울한 표정이야?”도윤은 무슨 말을 하려다 망설였다.“아무것도 아니야.”이에 지아는 장난스레 말했다.“말 안 하면 계속 입맞춤할 거야.”“정말, 이 여우 같으니라고.” 도윤은 입맞춤을 깊게 하다가 자칫 더 진전될 뻔해 지아가 그를 밀어냈다.지아는 도윤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손가락을 지아의 손가락 사이로 천천히 끼워 넣으며 속삭였다.“비록 우리 사이에 법적으로 맺어진 관계는 없지만,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로 아이들 말고는 당신이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야. 대체 뭘 그렇게 고민하는 거야?”도윤은 지아의 손을 꽉 잡고, 그녀의 눈을 깊숙이 응시했다.“너 정말 지아 맞아? 아니면 영지인가?”그 말에 지아의 몸이 순간 굳었다.“이미 다 알고 있었구나?”“블랙X의 최신 S급 임무가 바로 그 반지를 노리는 거였고, 그 임무를 맡은 사람이 영지라는 것도 말이야. 사실 난 이미 너를 조사하고 있었어. 그날 금상어를 죽인 것도 너지?”도윤이 중독된 후, 도망간 금상어를 처리한 사람은 지아였고, 그것도 도윤이 즐겨 쓰는 방식으로 머리를 잘라내어 다크 웹에 올렸다.그 말에 지아는 부정하지 않았다.“그래, 나야. 난 그때 날 죽이려 했던 사람을 끝까지 찾으려고 해. 아무 소식이 없더라도, 내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다시 돌아올지도 몰라. 그런 곳에 있어야 내가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알 수 있잖아.”“지아야, 내가 네 복수를 도와주겠다고 말했잖아. 왜 날 믿지 않고, 이렇게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나서는 거야?”“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들이 다시는 우리 관계에 영향을 주지 않길 바랐어. 만약 그 사람이 당신에게 중요한 친척이라면, 예를 들어 이예린 같은 존재 말이야, 아무리 당신이 나를 아끼더라도 결국에는 나를 겨냥할 거 아니야.”지아는 담담하게 말했다.“그런 고통을 또다시 겪고 싶지 않아.
그렇게 시크했던 남자는 지금 더없이 비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내가 남자인 건 맞지만, 남자라고 하여 안전감이 필요하지 않은 건 아니야. 나한테있어서 결혼이 바로 그 안전감이야.”지아는 중얼거리며 말했다.“하지만 나에게 결혼은 안전감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족쇄일 뿐이야.”목적지에 도착하자 지아는 손을 들어 그의 얇은 입술에 묻은 립스틱 자국을 지우고는 빙긋 웃었다. “지금처럼 지내는 것만으로도 난 충분히 행복해.”핸드백에서 립스틱을 꺼내 그의 손에 쥐여주며 지아가 덧붙였다. “네가 발라 줘.”각국의 외빈들은 모두 멈춰 섰고 우두머리인 한대경과 몇 마디 주고받았다.차에서 내린 그 부부를 아직 못한 채로 말이다.그는 배이혁에게 사람을 데리고 먼저 가라고 하고 자신은 도윤의 차 앞으로 갔다.진환을 비롯한 경호원들은 꼼짝도 하지 않고 차 옆에 서 있었다.한대경은 참다못해 화를 내며 문을 잡아당겨 열었는데 그러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평소 그와 독을 품고 있던 도윤과는 달리 손끝으로 지아의 턱을 살짝 움켜쥐고, 자상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열심히 립스틱을 발라주고 있었다.도윤의 눈빛과 동작은 지극히 경건하여 마치 지아가 그의 삶이자 목숨인 것처럼 보였다.지아는 입을 오므리고 그를 향해 활짝 웃었다. “도윤아, 나 예뻐?”그런 웃음이 자칫 한대경의 영혼마저 앗아갈 뻔했다.그는 이 세상에 그렇게 아름다운 웃음이 있을 줄이라고 상상하지도 못했다.분명 요염한 얼굴이었지만 눈은 보석처럼 순수하고 깨끗했으니 말이다.“우리 지아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지아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한대경을 바라보며 확연히 멀어진 공손한 태도를 그를 마주했다.“립스틱이 좀 지워져서요... 미안해요.”“괜찮아요.”한대경은 시선을 거두면서 대답했다.이 여자 앞에만 오면 그는 자기도 모르게 모든 성질이 죽어버리고 만다.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그조차도 알 수 없었다.도윤은 긴 다리로 차에서 내려 지아에게 팔을 건네주었고, 지아는 그제야 그의 팔을 잡고
자기를 떠 보고 있는 배신혁의 의도를 지아는 분명히 낚아챘다.따라서 지아는 당황하지 않고 덤덤하게 웃으며 대답했다.“만약 제가 속임을 당했다고 한다면 그 교훈을 기억하고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끔 주의할 거예요. 다음에는 사람을 쉽게 믿지도 않을 것 같고요.”배신혁은 그녀의 빈틈없는 언행에서 그 어떠한 실마리도 찾을 수 없었다.하는 수 없이 숨을 죽이고 이곳 건축이나 풍경에 대해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국립병원과 가까워지자 그 앞에는 약초가 심어져 있었는데 마침 꽃이 예쁘게 피어 있었다.“이 꽂은 우리나라 국화 상직이라고 합니다. 꽃잎을 말리면 약재로 쓰일 수 있고 그 열매와 꽃줄기는 직접 먹을 수도 있습니다.”그때 지아기 입을 열었다.“네. 60년 전 C국에서 큰 재난을 겪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천지가 바하고 군벌이 도처에 널려 있고 그뿐만 아니라 가뭄까지 닥치면서 수확 하나 못했다고 했었어요. 사람들은 하는 수 없이 산을 타서 산나물을 캐게 된 거죠.”“상직과 같은 초본식물은 생명력이 강하고 일 년 자랄 수 있고 꽃잎부터 뿌리줄기까지 먹을 수 있어 그 가뭄을 이겨낼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을 도와줬었죠. 그래서 그 재난 이후로 상직은 국화로 된 거라고 들었어요.”“정확합니다. 사모님께서 박학다식하시네요. 생활이 좋아진 오늘날에 젊은이들은 그유래도 모르고 있을 거예요.”감탄하면서 말하다가 배신혁은 갑자기 말머리를 돌렸다.“여기가 바로 국립병원입니다. 사모님께서 의학을 공부하셨다고 들은 바가 있는데, 들어가셔서 직접 둘러보시지 않겠습니까? 많은 약초들이 심어져 있습니다.”지아는 그가 이렇게 할 것이라고 이미 알고 있었다.따라서 만약 지금 바로 거절하면 너무 의도적인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일단은 동의하기로 한 지아였다.“의학에 대해서 배운 건 사실이나 개인적인 일로 학업을 중단했어요. 외과를 전공했던 저라 한의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요.”“괜찮아요. 국립병원에는 간단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한의사가
“빨리 가지 않고 뭐 하시는 거죠? 사모님께서 지금 한창 둘러보고 계셨거든요.”배신혁은 매서운 눈빛으로 오혁에게 경고를 주었다.오혁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지금 바로 자리 비켜드릴게요.”“참, 수연 선생님은 어디에 계시나요? 출근하지 않은 거예요?”국립병원 사람들은 아직도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지아는 마음속으로 죄책감을 느꼈고 자기를 친구로 삼은 그 사람들에게 미안했다.“헛소리하지 말고 얼른 가요!”배신혁은 지아의 행방을 묻는 오혁을 재촉했다.오혁이 멀리 간 뒤에야 배신혁은 고개를 돌려 지아를 바라보며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사모님. 잠시 헤프닝이 있었네요.”“괜찮아요. 닮은 사람이라면 착각할 수도 있는 법이죠.”지아는 당당하게 계속 그를 따라서 돌아다녔고 배신혁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갖은 방법으로 계속 떠봤지만 지아한테 이상한 점은 없었다.공기 중의 그 강한 향수 냄새를 맡으면서 배신혁은 소수연의 몸에서 나는 냄새는 은은한 약의 향기라는 것을 떠올렸다.지아에게서는 꽃향기가 나오 있었으므로 배신혁은 점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향으로 온전히 한 사람을 판단하는 건 어처구니가 없지만, 향수를 뿌리는 여자들도 많으니 배신혁은 단지 냄새로만 지아를 부정할 수 없었다.지아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공효신은 직접 접견하면서 지아에게 국립병원을 소개해 주었다.지아가 음료수를 마시고 있는 동안 배신혁은 공효신을 한쪽으로 데리고 갔다.“원장님, 알 것 같으세요? 저 여자한테서 무슨 냄새가 나는 것 같나요?”“몇 가지 꽃향기와 박달나무에서 추출한 냄새인 것 같은데 강하고 독한 데다 난 향수를 잘 모릅니다.”“약재 냄새가 나나요?”“아니요.”공효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근데 수연 선생님은 왜 아직도 출근하지 않은 거예요? 대체 어디로 데리고 간 거예요?”배신혁은 아직 그 여자가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냉담한 얼굴로 말했다.“그 여자는 그저 사기꾼일 뿐이고 앞으로
도윤은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은 아니다.지아가 팔꿈치로 그를 쿡쿡 찍으며 그의 귓가에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 무서워?”도윤은 손이 닿는 대로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무섭고 저렇게 말하는 것도 좋아.”그는 사람들 앞에서 지아과 친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조금도 꺼려 하지 않았다.지아는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지만 도윤은 오히려 개의치 않았다.주위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도윤은 뼈마디가 뚜렷한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당겼다.“어린애도 아닌데 왜 이렇게 수줍음이 많아?”지아는 줄곧 이쪽 면에서 낯가죽이 얇은 편이었다.예전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몰래 사랑을 했었다.지금처럼 이렇게 대놓고 애정행각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몸에 베인 듯이 익숙하지 않았다.한대경은 나오자마자 달콤하게 귓속말을 하고 있는 부부를 보게 되었다.그뿐만 아니라 도윤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지아는 이내 수줍어하는 모습이었다.한대경은 잠자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람들과 거리를 두었다.이때 배신혁이 그의 옆으로 다가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떠봤는데, 소수연 씨가 아니었습니다.”한대경은 담배를 입에 물고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확실해?”“네, 제가 여러 방면으로 떠봤지만 이상한 점이 없었습니다.”배신혁은 한숨을 쉬었다.“저도 맞았으면 하는데, 정말로 소수연 씨가 아닙니다.”라이터 소리가 나고 한대경은 담배를 두 모금 빨고 니코틴이 폐관을 따라 한 바퀴 굴리도록 내버려둔 후 천천히 내뱉었다.“그럼, 그 여자는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소수연은 마치 나비가 되어 날아간 ‘향비’처럼 어젯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반드시 찾아내고 말 거야! 이미 온천을 봉쇄하라고 시켰어.”한대경은 손에 쥔 담배를 버리고 연회장으로 향했다.오늘에는 지아에게도 자리가 마련되었고 그 자리는 바로 도윤의 옆자리였다.점심은 별다른 행사 없이 자유롭게 식사했기에 분위기는 평소처럼 엄숙하지 않았다.도윤은 누구에게나 쌀쌀맞게 대했다.그래서
그의 동작은 너무 거칠어서 창문을 닫을 겨를조차 없었다.멀리 옥상에 있는 한대경은 쓸데없이 시력이 너무 좋았다.도윤과 벽 사이에 꼭 갇힌 채 서서히 눈초리가 풀리고 있는 지아의 모습을 그대로 보게 되었으니 말이다.도윤은 지아의 두 손을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 위에 꽉 잡고 있었다.아리따운 얼굴에는 어느새 어여쁜 분홍색 꽃이 피어 있었고 터프하기 그지없는 도윤의 행동에 지아는 고개를 들기조차 어려웠다.이윽고 도윤은 지아를 침실로 안고 갔고 19금인 사랑이 펼쳐지기 시작했다.한대경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도윤이 생각보다 이 여자를 더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연기는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으니 지아를 바라보고 있는 도윤의 눈빛은 그토록 사랑이 가득했으니 말이다.뜨거운 사랑을 나누고서 다시 일어나 보니 어느새 오후 3시였다.땅바닥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옷을 보고서 도윤의 터프함을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지아는 그 아찔한 광경을 보고서 그만 눈살을 찌푸렸다. “내 치마...”방금 세수를 마친 도윤은 민트향을 풍기면서 다가왔다. “이따가 사줄게. 네가 원하는 만큼.”“진짜?”“앞으로 내 시간은 모두 네 것이야. 자, 라카까지 왔는데 구경이라도 좀 해야 하지 않겠어?”두 사람은 개인 맞춤으로 만들어진 옷을 벗고 평범한 커플템으로 갈아입었다.도윤도 가면을 벗고 지아와 손을 잡고 이국땅을 걷기 시작했다.막무가내로 걷다보니 개인 맞춤 웨딩드레스숍이 보였다.지아는 진열장에 걸려 있는 웨딩드레스를 잠시 동안 넋 놓고 보았다.도윤은 그녀의 마음속의 유감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그렇다, 도윤은 지아에게 결혼식 하나를 빚지고 있다.“지아야.”지아는 곧 정신을 차렸다, “오해하지 마. 나 결혼하고 싶지 않아. 그냥 저 여자를 보고 있었어.”창문 넘어 젊은 신혼부부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여자는 하얀 웨딩드레스에 부케를 들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화장을 마친 남자에게 신성하게 다가갔다.그 어느 한쪽이든 잘 어울리고 달콤해 보였다.“부러
목적을 가지고 접근했었던 사기꾼 소수연은 그렇게 아이러니하게도 진심으로 한대경의 병을 치료해 주고자 약까지 준비해 놓고 떠났다.좀 더 모질게 굴었다면 한대경은 이렇게 망설일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눈만 감으면 지아의 얼굴이 떠오르게 된 한대경은 점점 이성을 놓아가고 있었다.‘빌어먹을! 대체 어디로 숨은 거야!’그날 밤, 지아는 캄캄한 하늘을 보면서 초조해졌다.내일 무슨 일이 생겨 떠나지 못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었다.도윤은 지아의 그러한 생각을 한눈에 꿰뚫어 보았다.이윽고 도윤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지아를 안심시켜 주었다. “지아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 하늘이 무너진다고 하더라도 난 너 데리고 갈 거야. 무조건.”그 어떠한 19금 장면도 없이 도윤은 지아를 꼭 끌어안았다.온몸이 포근해지자 지아는 서서히 졸음이 밀려와 눈을 감고 잠들었다.날이 밝기도 전에 지아는 도윤의 볼 뽀뽀에 게슴츠레 눈을 떴다.“지아야, 일어나. 같이 집으로 가자.”“집?”지아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순간 졸음이 사라지면서 펄쩍펄쩍 뛰었다.“자, 집에 가자.”도윤은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면서 덧붙였다.“괜찮아.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내 손 꼭 잡고 가기만 하면 돼. 진환이가 모든 걸준비해 놓았거든.”지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재빨리 씻고 준비하고 나서 도윤과 함께 떠났다.집을 나섰을 때 마침 동쪽 해안선을 타고 해가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지아는 서둘러 차에 올라 공항으로 향했다.하지만 마음은 이내 불안했고 눈꺼풀마저 자꾸 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지아는 불안하게 도윤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도윤아, 나 무서워.”“괜찮아, 나 여기 있잖아.”도윤은 불안해하는 지아를 품으로 끌어안았다.따뜻한 몸으로 불안해하는 지아를 녹여주고 싶었던 마음이었다.“그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넌 꼭 날 믿어야 해. 조금 더 자면 공항에 도착할거야.”지아는 눈을 감았고 귀청을 찢을 듯한 폭발음이 또다시 머릿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