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윤은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은 아니다.지아가 팔꿈치로 그를 쿡쿡 찍으며 그의 귓가에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 무서워?”도윤은 손이 닿는 대로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무섭고 저렇게 말하는 것도 좋아.”그는 사람들 앞에서 지아과 친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조금도 꺼려 하지 않았다.지아는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지만 도윤은 오히려 개의치 않았다.주위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도윤은 뼈마디가 뚜렷한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당겼다.“어린애도 아닌데 왜 이렇게 수줍음이 많아?”지아는 줄곧 이쪽 면에서 낯가죽이 얇은 편이었다.예전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몰래 사랑을 했었다.지금처럼 이렇게 대놓고 애정행각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몸에 베인 듯이 익숙하지 않았다.한대경은 나오자마자 달콤하게 귓속말을 하고 있는 부부를 보게 되었다.그뿐만 아니라 도윤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지아는 이내 수줍어하는 모습이었다.한대경은 잠자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람들과 거리를 두었다.이때 배신혁이 그의 옆으로 다가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떠봤는데, 소수연 씨가 아니었습니다.”한대경은 담배를 입에 물고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확실해?”“네, 제가 여러 방면으로 떠봤지만 이상한 점이 없었습니다.”배신혁은 한숨을 쉬었다.“저도 맞았으면 하는데, 정말로 소수연 씨가 아닙니다.”라이터 소리가 나고 한대경은 담배를 두 모금 빨고 니코틴이 폐관을 따라 한 바퀴 굴리도록 내버려둔 후 천천히 내뱉었다.“그럼, 그 여자는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소수연은 마치 나비가 되어 날아간 ‘향비’처럼 어젯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반드시 찾아내고 말 거야! 이미 온천을 봉쇄하라고 시켰어.”한대경은 손에 쥔 담배를 버리고 연회장으로 향했다.오늘에는 지아에게도 자리가 마련되었고 그 자리는 바로 도윤의 옆자리였다.점심은 별다른 행사 없이 자유롭게 식사했기에 분위기는 평소처럼 엄숙하지 않았다.도윤은 누구에게나 쌀쌀맞게 대했다.그래서
그의 동작은 너무 거칠어서 창문을 닫을 겨를조차 없었다.멀리 옥상에 있는 한대경은 쓸데없이 시력이 너무 좋았다.도윤과 벽 사이에 꼭 갇힌 채 서서히 눈초리가 풀리고 있는 지아의 모습을 그대로 보게 되었으니 말이다.도윤은 지아의 두 손을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 위에 꽉 잡고 있었다.아리따운 얼굴에는 어느새 어여쁜 분홍색 꽃이 피어 있었고 터프하기 그지없는 도윤의 행동에 지아는 고개를 들기조차 어려웠다.이윽고 도윤은 지아를 침실로 안고 갔고 19금인 사랑이 펼쳐지기 시작했다.한대경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도윤이 생각보다 이 여자를 더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연기는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으니 지아를 바라보고 있는 도윤의 눈빛은 그토록 사랑이 가득했으니 말이다.뜨거운 사랑을 나누고서 다시 일어나 보니 어느새 오후 3시였다.땅바닥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옷을 보고서 도윤의 터프함을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지아는 그 아찔한 광경을 보고서 그만 눈살을 찌푸렸다. “내 치마...”방금 세수를 마친 도윤은 민트향을 풍기면서 다가왔다. “이따가 사줄게. 네가 원하는 만큼.”“진짜?”“앞으로 내 시간은 모두 네 것이야. 자, 라카까지 왔는데 구경이라도 좀 해야 하지 않겠어?”두 사람은 개인 맞춤으로 만들어진 옷을 벗고 평범한 커플템으로 갈아입었다.도윤도 가면을 벗고 지아와 손을 잡고 이국땅을 걷기 시작했다.막무가내로 걷다보니 개인 맞춤 웨딩드레스숍이 보였다.지아는 진열장에 걸려 있는 웨딩드레스를 잠시 동안 넋 놓고 보았다.도윤은 그녀의 마음속의 유감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그렇다, 도윤은 지아에게 결혼식 하나를 빚지고 있다.“지아야.”지아는 곧 정신을 차렸다, “오해하지 마. 나 결혼하고 싶지 않아. 그냥 저 여자를 보고 있었어.”창문 넘어 젊은 신혼부부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여자는 하얀 웨딩드레스에 부케를 들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화장을 마친 남자에게 신성하게 다가갔다.그 어느 한쪽이든 잘 어울리고 달콤해 보였다.“부러
목적을 가지고 접근했었던 사기꾼 소수연은 그렇게 아이러니하게도 진심으로 한대경의 병을 치료해 주고자 약까지 준비해 놓고 떠났다.좀 더 모질게 굴었다면 한대경은 이렇게 망설일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눈만 감으면 지아의 얼굴이 떠오르게 된 한대경은 점점 이성을 놓아가고 있었다.‘빌어먹을! 대체 어디로 숨은 거야!’그날 밤, 지아는 캄캄한 하늘을 보면서 초조해졌다.내일 무슨 일이 생겨 떠나지 못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었다.도윤은 지아의 그러한 생각을 한눈에 꿰뚫어 보았다.이윽고 도윤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지아를 안심시켜 주었다. “지아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 하늘이 무너진다고 하더라도 난 너 데리고 갈 거야. 무조건.”그 어떠한 19금 장면도 없이 도윤은 지아를 꼭 끌어안았다.온몸이 포근해지자 지아는 서서히 졸음이 밀려와 눈을 감고 잠들었다.날이 밝기도 전에 지아는 도윤의 볼 뽀뽀에 게슴츠레 눈을 떴다.“지아야, 일어나. 같이 집으로 가자.”“집?”지아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순간 졸음이 사라지면서 펄쩍펄쩍 뛰었다.“자, 집에 가자.”도윤은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면서 덧붙였다.“괜찮아.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내 손 꼭 잡고 가기만 하면 돼. 진환이가 모든 걸준비해 놓았거든.”지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재빨리 씻고 준비하고 나서 도윤과 함께 떠났다.집을 나섰을 때 마침 동쪽 해안선을 타고 해가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지아는 서둘러 차에 올라 공항으로 향했다.하지만 마음은 이내 불안했고 눈꺼풀마저 자꾸 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지아는 불안하게 도윤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도윤아, 나 무서워.”“괜찮아, 나 여기 있잖아.”도윤은 불안해하는 지아를 품으로 끌어안았다.따뜻한 몸으로 불안해하는 지아를 녹여주고 싶었던 마음이었다.“그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넌 꼭 날 믿어야 해. 조금 더 자면 공항에 도착할거야.”지아는 눈을 감았고 귀청을 찢을 듯한 폭발음이 또다시 머릿속에
순간 지아는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그러한 지아의 미세한 변화를 느낀 도윤은 지아의 손가락을 살짝 쥐었다.“친구라고요? 라카에 제 아내 친구가 있을 리가 없는데요.”도윤은 냉담하게 대답했다.어느새 지아도 어느 정도 사로가 정연해졌다.‘시억이가 잡혀있는 것 같아.’킬러로 일하면서 가장 꺼리는 것은 조직을 배신하는 것이다.하급 컬러는 협박하에 말할 수 있지만 시억은 S급 킬러임으로 절대 한대경에게 지아의 신분을 밝힐 수 없을 것이란 말이다.하물며 지아는 그동안 항상 신중했고 지금까지 시억의 정체를 본 적이 없으며 시억 역시 지아의 신분을 모르고 있다.두 사람이 함께 수행한 임무는 두 번이 전부였고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사이도 아니다.지아와 도윤 사이를 시억이가 알 수 있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따라서 지아는 한대경이 그녀를 속이고 있다고 것으로 단정할 수 있었다.지아을 찾을 수 없는 상황에 자신이 갑자기 나타난 것도 의심스러웠으니 자기를 의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하물며 만약 이대로 지아가 비행기에 올라 귀국하게 되면 한대경은 더 이상 찾고 싶어도 그러할 기회가 없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그렇다면, 지금 한대경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 마지막 기회를 잡으려는 것이다.지아는 바로 깨달았다.“혹시 배신혁 씨를 가리키시는 겁니까? 라카에 처음 온 저와 반나절 동안 같이 있어줘서 고마운 건 사실입니다.”한대경은 그녀 얼굴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하지만 흠잡을 데가 전혀 없었다.“아니요. 친구분 코드명이 시억이던데요. 직업은 킬러이고요.”한대경은 차가운 목소리로 덧붙였다.“사모님과 같은 편이라고 친구분이 직접 밝혔습니다.”“같은 편이라고요?”도윤은 차갑기 그지없게 웃었다.“제 아내가 무슨 일을 했다고 감히 그렇게 모함하고 있는 거죠? 분명히 말씀하시는게 좋을 겁니다. 아니면 정전 협의든 뭐든 서명할 수 있는 반면 한쪽이 먼저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두 사람은 키가 비슷하지만, 도윤은 계단에 서 있기에 한대경보다 머리 절반 정도 크
지아는 고사하고 한대경마저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부장경이 왜 여기에 나타난 거지?A국의 중심으로서 부장경은 마음대로 출국할 수 없으니 말이다.그리고 방금 말한 부씨 가문 역시 아리송하기만 했다.이치대로라면 지아는 응당 소씨 가문 사람이어야 한다.도윤의 전처라고 하더라고 단지 이씨 가문과 관련되어 있다.지아도 놀란 표정으로 부장경을 바라보았다.“부 선생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부장경은 성큼성큼 지아에게 다가가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일이 좀 있어서 온 김에 너 보러 왔어. 근데 네가 이 꼴을 당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 지아야, 부씨 가문의 일원이라고 밝히면 될 것을 그게 그렇게 힘들어?”“사모님이...”한대경이 물었다.부장경은 도윤과 나란히 서서 지아를 뒤로 막고 또박또박 말했다. “친조카입니다. 저의 아버지께서 최근에 외부로 밝히려고 했으나 지아가 하도 겸손한 바람에 말렸던 것입니다. 한대경 씨, 부씨 가문에서 굳이 그깟 반지 하나 훔치려고 여기까지 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둘째 삼촌...”지아는 불안해서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이렇게 직접 자신의 신분을 밝히는 것이 부씨 가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기 때문이다.부장경은 몸을 기울며 그녀의 걱정을 알아차렸다.“지아야, 무서워할 것 없어. 어느 기지가 마음에 들었다고 하면 반지 따위를 훔칠 것도 없어. 삼촌이 직접 폭파해 줄게.”그 말에 모든 사람이 들숨을 내쉬었다.‘저렇게 예뻐해 줄 수도 있는 거구나...’기자들이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아니면 바로 국제 뉴스에 헤드 라인으로 오르게 될 것이다.도윤보다 위엄이 더욱 강한 부장경이다.그가 폭파한다고 하면 결코 장난이 아닐 것이다.전국의 병권을 부장경이 잡고 있으니 말이다.한대경은 A 국에 뜻이 있지만 직접 도발하지 않았고 그 나라 주변에 전략기지를 배치하려고 했을 뿐이다.전쟁이 일어난다면 최근에 A 국이 갑자기 군사 대국 V 국과 가까워져서 C국은 분명 밀릴 것이다.지아도 놀
그 한마디에 배신혁은 탁 트였다.“그러네요, 일이 좀 있다고 해도 C 국에 온 일이 뭐가 있나요? 분명히 사모님을 지지하고자 온 것일 텐데, 만약 정말로 아무런 문제도 없다면 굳이 저렇게까지 총동원할 리가 있을까요? 뭐가 있다는 뜻으로 들리는 것 같아요.”“안타깝게도 우리는 사모님이 영지라는 증거가 없고 분명히 감정 확인 검사에 협조해 주지도 않을 거예요.”배신혁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하늘을 가르는 비행기를 바라보던 한대경의 검은 눈동자가 점점 깊어졌다.“알아낸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정말로 저 사람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지아가 한대경의 반지를 훔친 것은 사실이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한대경의 감정을 속인 것 외에 큰 손해는 없다.반지는 이미 폭발했으니 새로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다.지아는 한대경의 두통을 고쳐줬고 계산해 보면 얻은 게 더 많은 한대경이다.그리고 부씨 가문이 지아를 보호하고 있어 어떻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그럼 보스의 뜻은?”“만약 저 사람이 소수연이라면...”한대경의 입가에 음산한 미소를 지었다.“그럼 더할 나위 없이 좋아.”소수연의 가면 아래엔 뜻밖에도 꽃 같은 얼굴에 훌륭한 의술까지 갖추고 있다.결혼한 것 빼고는 지아는 정말 완벽한 여자가 아닐 수가 없다.“자료상으로는 도윤과 이혼하고 재혼하지 않은 것으로 나와 있지?”“네, 올해까지도 A 국 상장이 사람을 보내 소지아 씨의 행방을 알아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혼은 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의 사이가 좋아 보이는 것을 보면 보스가 소지아 씨를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기회가 없을 것 같습니다.”“사이가 좋은 데 왜 이혼을 했겠어? 네가 여자라면 자기를 배신한 남자를 다시 용서하고 받아드릴 수 있겠어?”과거에 지아에게 줬었던 상처만 놓고 보면 지아는 그러한 성격으로 절대 쉽게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보스, 설마...”한대경은 손을 뒤로 한 채 서 있고, 얼굴에는 다소 심오한 표정을 지었다, “부장경이 똑똑히 설명하라고 했었지?”배신혁과 배이혁은
소지아가 위암 양성 판정을 받았던 날, 이도윤은 자신의 첫사랑과 함께 그녀의 아들과 아동 병원에 있었다.병원 복도에서 임건우는 검사 보고서를 들고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지아야, 검사 결과 나왔어. 악성 종양 말기야, 수술 성공하면 5년 생존율은 15~30% 정도고.”소지아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어깨에 멘 숄더백 끈을 잡아당겼고, 약간 창백한 작은 얼굴에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선배, 수술 안 하면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요?”“6개월에서 1년, 사람마다 다르지. 네 상황은 먼저 약물치료를 두 번 받은 뒤, 수술을 하는 게 좋을 거야. 이렇게 하면 암세포의 확산과 전이의 위험을 막을 수 있거든.”소지아는 입술을 깨물며 힘겹게 말했다.“고마워요, 선배.”“나한테 고맙긴, 바로 입원 수속 밟자.”“됐어요, 치료할 생각이 없어요. 약물 치료 견디기 힘들 거예요.”임건우는 몇 마디 더 설득하고 싶었지만 소지아는 공손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선배, 이건 일단 비밀로 해줘요. 가족들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소씨 가문 파산 이후로 아버지의 거액의 입원비를 내는 것만으로도 소지아는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차마 가족에게 자신이 암에 걸렸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임건우는 소지아의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한숨을 쉬었다.“걱정 마. 입 꼭 다물고 있을게. 참, 너 결혼했다고 들었는데, 네 남편 쪽은...”“선배, 우리 아빠 잘 부탁할게요, 신경 좀 많이 써주세요. 난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요.”소지아는 더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듯 임건우의 대답도 듣지 않고 재빨리 떠났다.임건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소지아가 대학을 휴학하고 결혼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의학계의 천재로 불리던 소지아는 그렇게 의학계에서 사라져 지금은 만신창이가 되었다.지아의 아버지 소계훈이 치료를 받는 최근 2년 동안, 오직 소지아만이 바쁜 일정을 쪼개 그를 돌보았다. 정작 소지아 자신은 아파서 쓰러졌을 때도 지나가던 행인이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고,
어두컴컴한 밤, 소지아는 혼자 욕실로 돌아왔다.수도꼭지를 돌려 뜨거운 물을 틀자 소지아를 둘러싸고 있던 추위가 씻겨나갔다. 빨갛게 부은 눈을 비비며 문을 열고 한 방으로 들어갔다. 아늑한 분위기의 인테리어를 한 어린이 방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가볍게 벨을 흔들자, 오르골 음악 소리가 방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방의 조명은 무척 따뜻했고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소지아의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아마도 이게 내가 받아야 할 벌인가 봐. 뱃속의 아이를 지켜내지 못해서 지금 신이 이제 내 생명까지 빼앗으려는 건가...’소지아는 1.2미터 길이의 어린이 침대에 올라 누워 몸을 웅크렸다. 왼쪽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오른쪽 눈으로 흘러내리며 볼에서 미끄러져 아래에 깔린 담요까지 촉촉하게 적셨다.침대 위에 있던 인형을 꼭 안고 중얼거렸다.“미안해, 아가야, 다 엄마 잘못이야. 엄마가 너를 지켜내지 못 했어. 근데 무서워하지 마. 엄마가 곧 갈게.”아이가 세상을 떠난, 소지아의 정신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마치 아름다운 꽃이 나날이 시들어가는 것 같았다.어둠에 잠긴 바깥 풍경을 보면서 아버지에게 이 돈만 남기면 자신의 아이를 찾아 떠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이튿날 아침, 날이 밝기도 전에 소지아는 이미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 고개를 숙여 웨딩드레스를 입고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자신의 결혼사진을 바라보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3년이란 시간이 지나갔다.그녀는 특별히 위에 좋다는 음식으로 아침을 먹었다. 비록 오래 살지는 못하지만, 가능한 한 좀 더 오래 살아서 아버지를 돌보고 싶었다.소지아는 외출하자마자 병원의 전화를 받았다.“보호자님, 지금 환자분께서 갑자기 심장이 발작을 일으켜서 이미 수술실로 옮겼습니다.”“곧 갈게요!”소지아는 재빨리 병원으로 달려갔고, 수술은 아직 끝나기 전이었다. 수술실 문밖에서 두 손을 모아 기도하며 기다렸다. 이미 모든 것을 잃었고, 이제 유일한 희망은 아버지가 건강하게 회복하여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