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빠져나갈 틈은 없었다. 이미 도윤의 바지까지 손이 닿았던 지아는 원망에 찬 도윤의 두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저기, 나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 도윤은 지아를 덥석 끌어안으며 말했다. “어떻게 보상해줄 거야?” “좀 참아. 다음 기회에 다시 봐.” “그럼 넌 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던 거야? 정말 조금도?” 그쪽으로 욕구가 크게 강하지 않았던 지아는 도윤이 떠난 뒤로 정말 단 한 번도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방금 도윤의 폭풍키스와 유혹에 지아도 조금은 그런 욕구가 생겼던 것도 사실이다. 그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조금?” 지아는 주동적으로 도윤의 볼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먼저 집으로 돌아가 샤워부터 해.” “밤에 다시 올게.” 이에 지아도 입술을 꽉 깨물며 대답했다.“알겠어.” 지아는 자신의 옷을 정리하고 불만스러운 도윤의 눈빛을 뒤로 한 채 방에서 나왔다. 시종은 과연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지아를 데리고 부남진에게로 향했다. 이때 부남진은 약간 부은 듯한 그녀의 빨간 입술을 발견했고 이에 지아는 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비록 지아는 이미 애까지 여럿 낳은 어른이었지만 부남진 앞에서는 몰래 연애하다 들킨 어린 아이처럼 저도 모르게 변명하기 시작했다. “도윤이 오랜만에 저를 만나 대화가 좀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러자 부남진은 찻잔을 들며 대답했다. “정말 그냥 대화만 했어?” 부남진은 이미 지아를 꿰뚫은 듯 뭔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얘야, 할아버지한테 솔직하게 말해봐. 도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어?” “할아버지, 사실 전...” 두 사람의 관계는 한 두 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었기에 지아 스스로도 도윤과의 관계를 어떻게 형용해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얘야, 도윤은 인품은 좋은 아이야. 나도 상관으로서 그 점을 꽤 높이 사고 말이야.”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도윤은 한 아내의 남편으로선 자격 미달이야. 그 자식이 너에게 저
당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매번 부남진이 환희의 그림이나 사진을 볼 때면 아주 애틋한 표정을 짓곤 했다. 때문에 지아는 부남진이 환희에 대한 마음이 얼마나 진심인지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날은 점점 어두워졌고 미셸이 집으로 돌아왔다.민연주는 평소보다 옷을 두껍게 입은 미셸의 모습에 의아한 듯 물었다. “왜 그렇게 많이 입었어?” “감기 걸릴 까봐 그런 거지. 엄마, 보고 싶었어.” 미셸은 민연주의 품에 안긴 채 애교를 부렸다. “얘야, 앞으로는 절대 이 엄마 속상하게 만들지 마. 내가 널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엄마, 이제 진짜 알았어.” 민연주는 미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참, 무슨 서프라이즈를 준비했다고 하지 않았어? 대체 뭔데 그래?” 민연주는 궁금한 마음에 미셸의 뒤를 살펴보았지만 아무것도 가져온 건 없었다.“좀 있으면 알 게 될 거야.” 미셸은 신비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민연주는 쉬지 않고 계속 미셸에게 당부했다. “이번 교훈은 꼭 기억해야 해. 이제부터 절대 소지아 그 여자 건드리지 말고 알겠지? 요 며칠 네 아빠가 그 여자에 대한 믿음이 더 강해졌어.” “알겠어, 엄마.” 미셸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갑자기 180도 변한 미셸의 모습에 민연주는 왠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너 화 안 나?”“엄마, 나 이제 확실히 깨달았어. 내가 왜 굳이 그 여자와 열을 내겠어? 필경 그 여자는 남이고 우리 집에서 평생 살 것도 아니잖아?” “언젠가는 이 집에서 사라질 테니 말이야.” 미셸은 그동안 부씨 가문에서 일어난 여러 변화들을 알 지 못했고 이에 민연주는 걱정스러운 눈빛을 비췄다. 이때 미셸은 뒷마당에서 들려오는 공사 소리에 궁금한 듯 물었다. “엄마, 집에서 뭘 공사 중인 거야?” “응.” 미셸은 뒷마당으로 향했는데 아이들의 시소, 미끄럼틀, 그리고 회전목마와 각종 장난감들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설마 아빠가 벌써 뭔가를 눈치 채고 날
대답을 하려던 부방경은 마침 멀지 않은 곳에서 걸어오는 지아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지아, 이리 와봐.” 순간 어리둥절해진 미셸이 투덜거렸다.“엄마, 오빠가 언제부터 저 여자와 이렇게까지 친해진 거야?” 부장경의 다정한 모습에 미셸은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 평소 부장경은 줄곧 무뚝뚝한 성격이었고 특히 여자들과는 더욱 거리를 유지해왔다.때문에 미셸은 지금까지 부장경과 가장 친한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오늘 지아를 대하는 그의 다정한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설마 오빠는 소지아 저 여자가 결혼을 했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계속 좋아하는 거야?’ 지아는 공손한 태도로 민연주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부인, 설아 아가씨.” 민연주는 요 며칠 감히 제멋대로 굴 수 없었기에 상냥한 태도로 지아와 담담히 인사를 나눴다. “소지아 씨, 오셨군요.” 이때 오직 미셸만이 콧방귀를 뀌었는데 비록 지아에게 시비를 걸진 않았지만 친절하게 대하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아는 아직 자신의 신분이 공개되지 않았기에 사람들 앞에서 전과 같은 호칭으로 부장경을 불렀다. “부 선생님.” “이리 와서 페인트 색깔 좀 봐. 혹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전부 다시 해도 돼.” 그런데 아직 지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미셸이 끼어들어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왜 저 여자한테 물어보는 거야? 설마 이 별채가 저 여자를 위해 준비한 건 아니지? 아니, 고작 저딴 외부인한테 이렇게 큰 집을 내줄 필요까지 있어?” 현재 새로 짓고 있는 이 별채는 마당의 면적을 제외하고도 거의 200여 평은 되어 보였는데 미셸의 별채는 고작 50몇 평 밖에 되지 않았다. 때문에 미셸은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 여자가 우리 아빠의 목숨을 구한 은인이라고 쳐도 우리 집에 평생 눌러 살 건 아니잖아? 아빠는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오빠는 아빠를 말리지 않고 뭐 했어? 내가 볼 땐 아빠 정말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아!” 이때 민연주가 얼른 미셸을 말렸
‘설마 소지아와 도윤 저 녀석이 재혼이라고 하려는 건가?’ ‘재혼한다고 쳐도 오늘 같은 부씨 가문의 가족 식사 자리에 저 자식 같은 외부인이 낄 필요는 없을 텐데?’ 하용은 아마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도윤이 부남진에게 상황 회보를 하러 온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면 하용은 납득이 가지 않았다.두 사람은 동시에 차에서 내렸고 비슷한 검은색 코트를 입었으며 기럭지까지 매우 비슷했지만 유독 도윤이 풍기는 기운은 하용보다 더욱 싸늘했다. 다른 사람들이 없는 상황에서 두 사람은 표면적인 친분조차 유지하려 하지 않았고 냉랭한 얼굴로 서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동시에 부씨 가문에 발을 들여 놓았고 그들 뒤를 따르던 시종들은 두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가 마치 차가운 날씨보다 더욱 썰렁하게 느껴졌다. “오늘 같은 가족 식사 자리에 네가 얼굴을 비추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웃기지도 않네.” 하용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 그러자 도윤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가족 식사 자리인 걸 알면서 넌 무슨 자격으로 여기 있는 건데? 지난번 일이 쪽팔리지도 않나 봐?” 비록 지아에게 물을 뿌린 건 미셸이었으나 그 뒤에서 모든 걸 조종한 사람은 하용이었다. 하지만 그가 직접적으로 나서진 않았기에 부남진은 단지 미셸만 집에서 내쫓고 처벌했을 뿐 하용에게 책임을 묻진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판을 짠 사람이 하용임을 뻔히 알고 있었고 부남진 또한 그 일을 마음속에 새기고 있었다. 이때 하용이 쌀쌀맞게 대답했다.“설아가 그런 일을 벌인 건 다 각하의 안전을 위한 거였어. 오히려 너와 소지아 그 여자가 뒤에서 농간을 부리고 각하를 속여왔지.” “그러니 분명 각하도 누가 옳고 그른 건지 잘 알고 계실 거야.” 그렇게 두 사람은 동시에 식사 자리로 향했고 하용이 나타난 순간 민연주는 미간을 찌푸렸는데 초대하지 않은 손님임이 분명했다. 그녀는 부장경이 다친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속상했지만 한 가족의 어른으로서 절대 그 불쾌한 감정을 대놓고 티 낼 수
달그락- 민연주는 손에 들고 있던 젓가락을 떨어뜨렸는데 미셸이 이런 말을 내뱉을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하용과 결혼한다고? 미친 거 아니야?’ 민연주는 낯빛이 하얗게 질렸고 환각이 생겨 잘못 들은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다.그런데 이때 미셸이 환한 미소를 띄며 말을 이어갔다. “엄마, 아빠, 저 드디어 누가 저에게 가장 진심인지 깨달았어요.” “전에는 제가 사랑할 만한 가치도 없는 사람을 위해 멍청한 짓을 하면서 진짜 저를 사랑해주는 사람은 보지 못했던 거예요.” “저도 이제 나이가 어리지 않으니 앞으로 하용과 잘 살아 보고 싶어요.” 이에 민연주는 심장이 철렁했다. 그리고 깊게 심호흡을 한 뒤 물을 한 잔 마셨고 당장이라도 미셸을 때려죽이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으며 자신을 진정시켰다. 미셸은 민연주의 낯빛이 보기 흉해진 건 발견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표정들은 모두 괴상할 정도로 덤덤했다. 도윤의 얼굴에는 전혀 미셸에게 배신당한 불쾌한 감정이 보이지 않았고 지아는 약간 어색한 듯 물을 한 잔 마셨다.이때 부장경은 안색이 어두워진 채 미간을 찌푸렸지만 오히려 부남진의 표정은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냉담했고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느껴지지 않았다. 부남진은 담담하게 물컵을 내려놓더니 미셸을 바라보며 물었다.“정말 잘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니?” 목소리에는 아무런 감정의 파동도 느껴지지 않았고 이건 미셸이 예상했던 반응과는 전혀 달랐다. 부남진이 미셸을 바라보는 눈빛은 낯선 이를 바라보는 것 같았고 예상치 못했던 반응에 미셸은 약간 당황하고 말았다.“아빠, 하용은 저에게 아주 잘해줘요. 전 정말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니 아빠도 허락해줬으면 좋겠어요.”이때 하용도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미셸의 손을 잡으며 입을 열었다.“은사님, 사모님, 다들 아시겠지만 전 줄곧 설아를 좋아해왔어요. 그러니 앞으로도 무슨 일이 생기든지 반드시 설아를 아끼겠다고 맹세할게요.” 민연주는 부남진의 절정으로 차오르는 분노를 느꼈는데 미셸에게 너무 실망한
부남진의 눈빛은 순간 싸늘해졌고 손으로 컵을 꽉 쥐었다. 지아는 당장이라도 부남진이 폭발했던 같다는 느낌에 그의 손등을 톡톡 치며 말했다. “각하, 일단 물부터 마시세요.” 방금 그 순간 부남진은 하마터면 손에 들고 있던 물컵을 미셸의 얼굴에 던진 뻔했다. 그는 차오르는 분노를 겨우 억누르고 자신을 진정시키며 물었다.“그래서 혼전임신이 자랑스럽기라도 한 거야?” “은사님, 탓하시려면 저를...” 쨍그랑- 부남진은 손에 쥐고 있던 컵을 하용의 발 밀으로 뿌리며 말했다. “설아는 철이 없다고 쳐도 하용 너까지 생각이 없는 거야? 아니면 일부러 내 기를 채우려고 이러는 거니?” “혼전임신이라는 게 외부에 소문이라도 나면 사람들이 우리 부씨 가문을 어떻게 생각 하겠어?” “아빠, 그 고지식한 생각 좀 버려요!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혼전임신으로 결혼하는데요! 게다가 저와 하용은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고요.” “심지어 아빠도 오빠한테 빨리 결혼하고 애를 낳으라고 재촉도 했잖아요. 마침 저에게 애가 생겼고 손자를 품에 안을 수 있게 되었는데 이거 좋은 일 아닌가요?” 그러자 부남진이 냉소하며 말했다. “한 달 전만 해도 도윤이 아니면 평생 결혼은 하지 않겠다더니 이젠 또 하용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네 진심이 너무 값 떨어진다는 생각 안 들어?” “전에는 제가 멍청해서 사랑하지 말아야 할 사람을 사랑했던 것뿐이예요.” “그럼 지금은 멍청하지 않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거니?” 부남진의 말에 미셸은 할 말을 잃었고 민연주에게 도움을 바랬다. “엄마, 빨리 나 대신 말 좀 해줘. 내가 임신한 게 나쁜 일도 아닌데 아빠는 왜 저렇게까지 화를 내시는 거야?” 하지만 민연주도 이번엔 미셸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싸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너 정말 미쳤구나? 네 아버지가 무슨 신분이고 넌 또 무슨 신분인지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 거니?” “이게 만일 소문이라도 나면 네 아빠가 얼굴을 어떻게 들고 다니겠어?” 그러자 미셸이 투덜댔다. “
하용은 순간 멍해졌고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정신을 차렸는데 부남진이 이런 고약한 수를 쓸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하용은 부남진이 정말로 자기 딸을 버릴 리는 없다고 생각했고 단지 자신을 시험하려는 것이라고 여겼다. “당연하죠. 제가 사랑하는 건 설아라는 사람이지 신분이 아니니까요.” 미셸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말했다.“아빠, 무슨 뜻이예요? 그때는 홧김에 한 말 아니었어요? 제 친 아빠면서 어떻게 저를 버리려 할 수 있어요?” 이에 부남진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홧김에 한 말이라고? 내가 너처럼 유치한 줄 알아? 그런 말을 홧김에 내뱉게?” “몇 년 동안 너는 잘난 네 신분과 지위로 줄곧 제멋대로 굴고 다녔지만 만약 그 신분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미셸은 순간 표정이 굳어 버렸다. “아빠, 화 다 풀리신 거 아니었어요? 안 그럼 왜 저한테 집에 돌아와 식사하자고 한 건데요?” “너에게 돌아오라고 한 건 내가 모두에게 알릴 중요한 일이 있어서였어. 마침 네 이름도 호적에서 파버릴 겸 말이야.” 이에 미셸은 몸이 파르르 떨려왔다. “아빠,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내가 왜 굳이 이런 거로 농담하겠어?” 부남진의 얼굴은 극도로 싸늘했고 마치 남 보는 듯한 눈길로 미셸을 바라보았다. 이에 미셸은 갑자기 민연주의 팔을 잡고 흔들었는데 그제야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엄마, 빨리 얘기 좀 해줘.” 만약 임신만 아니었어도 민연주는 미셸의 편을 들었겠지만 이런 엄청난 사고를 친 그녀에 민연주도 철저히 실망해 버렸다. 민연주는 알뜰살뜰 키운 자기 딸이 어떻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사고를 친 건지 수치스러울 따름이었다. “난 할 말은 없어.” “오빠!” 미셸은 또 부장경에게로 다가가 그의 팔을 마구 흔들며 말했다. “빨리 아빠 좀 말려봐.” 그런데 미셸이 너무 심하게 밀었던 탓에 부장경은 옆에 있던 지아와 부딪쳤고 순간 미셸과 지아와 두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미셸은 모든 화를 지아에게
이미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예감하고 있었던 민연주는 부남진의 입에서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민연주는 떨리는 입술로 물었다. “여보,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그러자 부남진이 설명했다. “오래 전, 당신을 만나기 전에 다른 사람을 만난 적 있다고 내가 얘기 했었지?” “당신을 배신한 게 아니라 나와 헤어지고 난 뒤 그 사람에게 아이가 생겼던 것 같아. 지아는 바로 그 사람과 나의 손녀야.”“아빠, 저 여자가 어떻게 아빠의 손녀야? 저 여자는...” 미셸은 연거푸 고개를 저으며 인정하려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부남진은 냉랭하게 웃으며 대답할 뿐이었다. “이미 지아와 난 유전자 검사까지 마쳤어. 우린 확실히 혈연 관계가 있고 앞으로 지아 또한 우리 부씨 가문 사람이야. 그리고 넌...” 부남진은 한 층 더 엄숙해진 태도로 말했다.“전에도 말했지만 난 이제 너 같은 딸은 필요 없어. 그러니 알아서 잘 살도록 해.” 미셸은 그제야 부씨 가문에 천지개벽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고 그녀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녀에겐 단 한 장의 카드 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건 바로 뱃속의 아이였다. “아빠, 저 임신했어요! 여기 초음파 사진 좀 보세요. 어떻게 임신한 저를 쫓아내실 수 있어요?” “하용은 자신이 한 일에 책임질 줄 아는 좋은 남자이니 너도 끝까지 책임져줄 거야.” “게다가 이 결혼도 네가 원하던 거 아니냐? 하용과 결혼하고 네가 원하는 삶을 살아.” 이때 하용도 심장이 철렁했는데 그가 오늘을 위해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는 오직 하용 자신만이 알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도윤을 한 번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하용은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어떻게 지아가 부남진의 친손녀인 거지? 저 여자는 파산 당한 소씨 가문의 딸 아니었어?’ 비록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지만 하용은 애써 이성의 끈을 부여잡고 미셸을 말렸다.“설아야, 뱃속 아기를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