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윤은 공짜로 엄청난 드라마 한 편을 본 것 같았는데 지금쯤 하용은 또 계획 실패로 쓴 맛을 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약간 깨고소한 느낌이었다. 때문에 도윤은 이 식사자리가 매우 즐거웠고 밥을 두 공기나 먹었다.하지만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간 뒤 부씨 가문의 몇 사람은 안색이 완전히 어두워졌고 부남진은 밥맛이 뚝 떨어졌다. 이때 지아가 부남진에게 음식을 짚어주며 말했다. “할아버지, 건강을 생각하셔야죠.” 이에 부남진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설아처럼 바보 같은 딸을 나은 걸까?’ 부남진은 자신과 민연주 모두 똑똑한 사람인데 미셸은 도대체 누구를 닮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오늘 식사 자리는 파토 나진 않았지만 분위기는 미셸로 인해 엉망진창이 되었기에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부남진이 지아에게 말했다. “오늘 밤엔 발 마사지 안 해줘도 돼. 네 할머니와 할 얘기가 있어.” 할머니란 이 호칭에 지아는 약간 움찔했는데 아직 50여 세밖에 되지 않은 민연주가 얼렁뚱땅 할머니가 되어버린 것이다. “알겠어요. 할아버지, 어쨌든 화는 내시지 말아요.” 미셸의 임신 소식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고 하용이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저지른 이번 일은 부남진의 마지노선을 완전히 침범해 버렸다. 부장경도 부남진의 방으로 들어갔고 도윤 혼자 싱글벙글이었다. “지아야, 방까지 데려다 줄게.” 바깥 복도의 불빛은 어두컴컴했고 가로등 아래에는 흰 눈이 깃털처럼 부드럽게 쏟아지고 있는 것이 경치는 매우 아름다웠다. 이때 도윤이 지아의 손을 잡으려 했고 그녀는 두 눈을 부릅 뜨고 말했다. “왜 또 그래?” 하지만 도윤은 지아의 손을 잡아 자신의 옷주머니에 넣었고 다른 사람들 눈에 띌 까봐 걱정되었던 지아가 얼른 손을 빼려 했다. 그러나 도윤은 단단히 지아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지아, 문득 우리가 연애를 금방 시작했던 때가 떠올라.” 이 순간 지아의 머리속에 한 화면이 떠올랐다. 당시 마침 해외에서 금방 돌아온 도윤은 가장 먼저 지아의
방으로 돌아온 지아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도윤, 오늘에 와서 결국 이럴 거면서 그때는 왜 그렇게 모질게 굴었던 거야?’ 지금의 지아는 다시 결혼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는데 그게 그녀의 전 남편이라 할 지라도 말이다. 도윤은 눈 속에서 한참 동안이나 서 있었고 온몸이 눈으로 뒤덮이고 나서야 긴 한숨을 내쉬며 자리를 떴다.도윤은 지금 자기가 저지른 일의 대가를 뼛속 깊이 치르는 중이었다. 서재. 부남진은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민연주는 옆에서 계속 그를 위로하고 있었는데 일단은 먼저 미셸과 선을 그었다. “여보, 이번 일는 나도 정말 몰랐어. 그렇게 보지 마.” “설아가 계속 무슨 서프라이즈를 준비했다고 하길래 이젠 정말 잘못을 뉘우쳤나 했더니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이에 부장경도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이번엔 설아가 확실히 선 넘었어요. 우리 모두 설아가 전에 하용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고 있잖아요.” “하용 그 자식한테 당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짧은 기간 내에 임신을 하다니요! 게다가 하용의 아이라니!” “그러니까! 분명 지난 번에 설아가 피임약을 먹는 것까지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는데 절대 임신일 리 없어! 여보, 이제 어쩌면 좋아?” 그러자 부남진이 냉소하며 말했다.“뭘 어떻게 해? 난 이미 말했어.” “그래도 설아는 당신이 가장 아끼던 딸인데 정말 이렇게 버리려는 거야?” “설아가 직접 선택한 길이야. 누구도 억지로 밀어붙인 적 없고 말이야. 이제 와서 뭘 더 어떻게 해?” “사람이 아니라 돼지였어도 이만큼 했으면 말귀는 알아들었을 거야.” “고작 하용의 몇 마디 말에 또 속아 넘어가다니! 내가 봤을 때 설아는 너무 곱게 컸어. 그러니 이번 기회에 고생 좀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부남진은 단번에 결론을 내렸다. “이번 일은 이렇게 정했어. 앞으로 설아는 내 딸이 아니야. 그러니까 경고하는데 너희들도 더는 무의미한 일 벌이지 마.” “아버지, 알겠어요.” 민연주는 부장경을 잡으며 말
원래도 화가 났던 민연주는 이명란의 말에 테이블을 치며 더욱 분노했다.“그 여자가 무슨 자격으로? 그 년이 대체 뭔데! 근본도 없는 잡종 따위가 감히!” “부인의 말씀이 맞아요. 아직 자기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게 잡종이 아니면 뭐겠어요? 저희 설아 아가씨가 이렇게 된 건 다 그 잡종 때문이예요.”“만약 그 여자만 없어지면 각하도 분명 다시 설아 아가씨를 가문으로 데려올 거예요!” 이때 민연주는 갑자기 험상궂은 얼굴로 이명란을 바라보며 말했다.“이 집사는 왜 갑자기 이 일에 그렇게 분노하는 거야?” 그러자 이명란은 갑자기 무릎을 꿇으며 대답했다. “부인, 저는 부인이 아직 처녀일 때부터 부인을 모셔온 사람이예요. 당시 제 애가 사고로 세상을 뜬 뒤 설아 아가씨도 거의 제 손으로 직접 키우다시피 했고요.” “그러니 전 이미 설아 아가씨를 거의 제 친딸이라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그런 설아 아가씨가 가문에서 쫓겨나니 저도 마음이 아플 따름입니다.” 그러자 민연주는 이명란의 얼굴을 치켜들며 그녀의 오른쪽 볼에 난 상처를 바라보았고 순간 이명란은 다시 고개를 숙이더니 자신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쓸데없는 말을 꺼냈습니다.” “일어나.” 민연주가 싸늘하게 말했다. “이번 일은 너와 상관없어. 하지만 네 말이 다 맞아.” “소지아 그 천한 년이 우리 집에 온 뒤부터 내 딸이 억울하게 당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절대 용서 못해.” “부인, 설아 아가씨 쪽은 제가 애를 지울 수 있는지 그리고 하용과 헤어지게 할 수 있을 지 잘 알아보겠습니다. “그래, 필경 네가 설아를 직접 키우다시피 했으니 네 말이라면 설아가 들을 지도 몰라.” 민연주는 자신의 머리를 짚었고 낯빛은 초췌하기 그지없었는데 요 며칠 미셸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았다. “부인, 제가 좀 주물러 드리지요.” “그래.” 이날 밤, 민연주는 전혀 잠이 오지 않았고 미셸 일만 생각하면 속상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제일 신경
미셸이 한바탕 휩쓸고 간 뒤 전체 부씨 가문의 분위기는 아주 암울했고 지아도 이 틈에 바깥으로 나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어젯밤 도윤과 찝찝하게 헤어진 탓에 지아는 먼저 그를 찾으러 가지 않았다. 도윤은 줄곧 재혼을 원했지만 지아는 또 한번 자신에게 같은 족쇄를 채우고 싶진 않았다. 지아는 이번에 외출한 김에 장민호가 얼마나 애가 타 하는지 확인해보려 했다. 장민호는 매일 지아에게 문자를 보냈지만 그녀는 거의 대부분 답장하지 않았고 점점 더 차갑게 대했다. 그러던 오늘, 지아는 특별히 보약을 준비해 고심옥의 집으로 찾아갔는데 지아를 본 고심옥은 매우 기뻐했다. “얘야, 드디어 왔구나! 얼른 내 얼굴 좀 봐. 확실히 변화가 있지?” 비록 아직 흉터가 남아있긴 했지만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전보다는 많이 희미해진 상태였다. 이에 지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네, 많이 나아지셨네요. 여기 제가 특별히 준비해온 보약이예요. 지난번에 맥을 짚어보니 몸이 많이 허하신 것 같아서 말이죠. 드시면 몸에 좋을 거예요.” “아이고, 세심하기도 해라.” 고심옥은 원래 받지 않으려 했으나 몸에 좋다는 말에 냉큼 받았다. 고심옥에게 있어 지아는 마치 명의 같은 존재였는데 그녀는 격동된 듯 지아를 잡으며 말했다. “고맙네, 오늘 꼭 남아서 밥이라도 먹고 가. 참, 의사이니 미용에 관한 여러 가지 방법들도 잘 알고 있겠지?” “네,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고심옥은 지아를 끌고 방으로 향했고 시종에게 눈짓을 했다. “소지아 씨에게 좋은 한 끼 대접해드려야 하니 얼른 가서 장 봐와.” “네.” 시종은 대답을 하고서 가장 먼저 장민호에게 연락했다. 이때 지아가 고심옥의 집에 왔다는 소식을 접한 장민호는 부리나케 달려왔다. 지아는 모든 것을 눈치 채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척 고심옥과의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다른 친구의 병도 봐주러 가야 해서 침을 가져왔는데 아주머니께서 괜찮으시다면 제가 시침해드려도 될까요? 침 몇 방이
문밖의 장민호는 긴장한 듯 담배를 한 대 또 한 대 연거푸 피웠다. 그날 밤 지아가 그런 말을 남기도 떠난 뒤로 장민호는 줄곧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이 지아에게 느끼는 특별한 감정이 사랑일 수도 있다는 걸 인식한 뒤로는 스스로도 믿기 힘들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사랑할 수 없는 이가 지아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장민호는 지아를 조산하게 만든 사람이었고 심지어는 강미연을 죽인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분명 지아와 멀리 떨어져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마음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점점 커져갔다. 그리고 지아가 냉담하게 굴 때마다 장민호는 마치 누군가 자신의 가슴을 후비는 듯 아파왔는데 그는 다시 한번만 지아를 만날 수 있기를 매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장민호는 안절부절 못하며 밖에서 지아를 기다렸고 이때 안에서는 시침을 마친 고심옥의 격동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몸이 한결 편해진 것 같아. 얘야, 너 정말 명의구나!” 그러자 지아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명의까진 아니고 단지 의술을 조금 아는 것뿐입니다.” 이때 장민호가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마침 침들을 정리하고 있던 지아의 우아하고도 부드러운 미소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자신의 옷 매무새를 정리하고 있던 고심옥이 이를 보고는 답답한 듯 말했다. “내 아들 성격이 얼마나 급한 지 좀 봐. 얼른 내 아들과 얘기 좀 해봐.” 지아는 몸을 일으키며 의료 상자를 들었고 이에 고심옥과 장민호는 약간 긴장되었다. “왜? 그만 가려고?” “오늘은 저번에 아주머니께 드린 약의 약효를 보고 혈을 짚어드리려고 온 거예요. 겸사겸사 시침도 해드릴 겸 해서 말이죠.” “그리고 이제 치료가 끝났으니 저도 가봐야죠.” “도우미한테 장 봐오라고 시켰는데 밥 먹고 가지.”“아주머니, 저 다음 일정이 있어서요. 다른 환자도 시침을 기다리고 있어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이 말에 장민호는 표정이 어두워졌다.“데려다 드리겠습니다.” “네.” 엘리베이터
지아는 괴로운 듯한 표정으로 장민호를 밀어내며 말했다.“저, 저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지아는 곧장 차에 올라탔지만 장민호는 차문을 못 닫게 막았다. “안 가면 안 돼요?” “저도 고려해야 할 것들이 있어요. 만약 민호 씨가 여기 있는 줄 알았다면 오늘 오지 않았을 거예요. 지금은 마음이 심란하니, 일단 저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그럼 문자에 꼭 답장해줘야 해요.” “네.” 그제야 장민호는 차문에서 손을 뗐고 지아는 시동을 걸기 전 일부러 눈물을 흘릴 것만 같은 마음 아픈 표정을 지었다. 장민호 같은 사람을 상대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밀당이었는데 그 혼자서 여러 가지를 고민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단계는 장민호가 자신을 애절한 역할에 대입하는 것인데 스스로 자신의 절절한 감정에 잠겨 있을 때 비로소 지아는 다음 계획을 실행할 수 있었다. 36계중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것만큼 좋은 수는 없었다. 오늘 지아는 백채원에게도 시침을 해줘야 했고 앞으로의 치료계획을 위해 그녀를 병원에 보내 CT를 찍어보게 했다. 병원 앞에 도착한 지아는 미리 차 안에서 다시 가면을 쓰고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지아가 병원 로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윤화연이 그녀 앞에서 픽 쓰러지고 말았다. 이때 눈치가 빨랐던 지아가 얼른 달려가 윤화연을 안았기에 다행히 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면할 수 있었다. 지아가 팔로 윤화연의 허리를 감쌌는데 그녀의 몸은 아주 왜소했고 허리도 가냘프기 그지없었다. ‘설마 또 예쁨을 위해 과도하게 다이어트를 한 사람인 건가? 아니면 큰 병이라도 걸린 걸까?’ 윤화연은 마치 당시 항암치료를 받던 지아처럼 매우 말라 있었다. 사실 일반인은 연예인처럼 화면에 얼굴이 작아 보일 필요는 없기에 몸을 이 정도로 혹사 시키지 않아도 됐다. 윤화연은 지아의 품에 기대 있었는데 지아가 그녀의 머리를 넘겨보니 백옥 같은 피부와 얇은 목선이 드러났고 그 위로 핏줄이 선명하게 보였다.‘엄청 가냘픈 여인이네.’
비록 서로 모르는 사이긴 하지만, 지아는 의사로서 걱정이 앞섰다. 지금의 몸 상태로는 임신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만약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결과는 두 가지뿐이다. 첫째는 아기가 일정 시점에 도달하면 자연 유산되는 것이고, 둘째는 산모와 아이가 모두 위험에 처하는 경우다. 첫 번째가 그나마 최선의 결과다.여성으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지아는 이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녀는 곧장 뒤따라갔는데, 상대방이 임신 중이라 걸음이 느렸기 때문에 쉽게 따라잡을 수 있었다.“잠깐만요.” 지아는 윤화연을 멈춰 세웠다.정순영은 경계하는 눈빛으로 지아 앞을 가로막았다. “또 무슨 일이신가요?” 그녀의 눈에는 마치 도둑이라도 만난 듯한 경계심이 가득했다.윤화연은 서둘러 정순영을 밀어내며 말했다. “순영 아주머니, 이분은 좋은 분이니 괜찮아요.”지아는 윤화연이 심성이 착한 사람임을 느낄 수 있었고, 특히 그녀의 눈은 너무도 깨끗해서 오염되지 않은 설산의 초목처럼 순수했다. 이런 사람에게 지아는 항상 자비로웠다.윤화연은 두 걸음 앞으로 나와 지아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물었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지아는 정순영이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에, 상대방의 몸 상태에 대해 직접 말하기 곤란해 핑계를 대며 말했다. “옆에 아침 식사할 수 있는 곳이 있어요. 혹시 또 쓰러질까 봐 걱정돼서요.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윤화연은 원래도 약간 배가 고팠기 때문에 정순영을 바라보며 묻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아주머니, 저...”“아가씨, 밖에서 파는 음식은 깨끗하지 않아요. 집에 가서 먹자고요.” 정순영이 말했다.그러자 지아는 솔직하게 말했다. “임산부는 영양을 즉시 보충해야 하는 거 아세요? 만약 다시 쓰러져서 태아에게 해가 가면 어떻게 책임 지실 거죠?”정순영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떻게 우리 아가씨가 임신한 걸 아신 거죠?”윤화연도 눈을 반짝이며 신기해했다. “맞아요, 맞아요.”“방금 당신 손목을 잡았을 때 맥박을 느
병을 치료하거나 사람을 구하는 일은 항상 지아의 기분에 달려 있었다. 특히 그녀는 노약자나 병약자들에게 유독 인내심을 가지고 임했다. 지아는 결코 거만하지 않았으며, 가난한 환자를 만나면 무료로 진료를 해주기도 했다.그녀는 언제나 스승의 말씀을 마음에 새겼다. “병을 치료하고 사람을 구하는 것은 결코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의사는 천하를 함께 구제해야 한다.”정순영은 지아가 무엇을 하려는지는 몰랐지만, 그녀가 윤화연의 병을 한눈에 알아차린 것을 보고 긴장해 경호원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 몇 명의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들이 도착했다.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그들은 근처의 죽집으로 갔다.“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거예요? 말해두지만, 저희 아가씨는 보통 사람이 아니에요. 이상한 짓을 할 생각은 하지 마세요.” 정순영이 말했다.지아는 정순영의 말을 무시하고, 죽 두 그릇을 주문한 뒤 윤화연에게 손을 다시 내밀라고 했다. 방금 너무 급해서 맥을 잘못 짚었을까 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윤화연은 서둘러 손을 내밀었고, 지아는 다시 그녀의 맥을 짚었다. 지아가 손을 떼자마자 정순영이 물었다. “어떻습니까?”“태아는 잘 자라고 있어요.” 지아가 대답했다. 이 점은 이미 초음파 검사에서 확인한 바 있었다.“그건 말 안 해도 알아요. 아가씨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정순영은 더 자세한 답을 원했다.정순영이 윤화연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에, 지아는 그녀의 무례함을 너그럽게 넘어갔다.“아이는 문제가 없지만, 출산은 어려울 겁니다.”“당신은 돈을 뜯어내려는 사기꾼이겠죠!” 정순영이 소리쳤다. 사실 병원 밖에는 장애인 구걸이나 점술가처럼 환자의 절박한 심리를 이용해 돈을 뜯어내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윤화연의 창백한 얼굴이 더욱 하얘졌다. “무슨 말씀이시죠?” 그녀는 지아를 바라보았다. 지아의 외모는 평범해 보였고, 입고 있는 옷도 단순한 디자인이었지만 모두 고급 브랜드였으며, 그녀에게서 풍기는 분위기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