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연주는 싱글벙글하여 미셸에게 전화를 걸었다. “설아, 좋은 소식이 있어. 네 아빠가 너한테 내일 저녁 집으로 돌아와 밥 먹으라고 하셨어. 내일이 기회이니 더 이상 아빠를 화 나게 해선 안 돼.” 미셸은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고 있었는데 이미 3일 전 임신이 되었던 것이다. 이에 미셸은 달콤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알겠어. 엄마, 나도 내일 모두에게 알릴 서프라이즈가 있어.] “서프라이즈? 뭘 준비한 건데 그래?” 미셸은 지금 당장이라도 자신이 임신했다는 소식을 알리고 싶었지만 그녀의 이성이 이런 엄청난 소식은 내일 식사 자리에서 발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내일이면 알게 될 거야! 엄마도 분명 기뻐할 소식이야.] 민연주는 비록 약간 의심이 가긴 했지만 최근 미셸은 줄곧 얌전했고 이상한 일을 벌일 낌새도 없었기에 이제는 정말 그녀가 철이 든 거라 생각했다. 그리하여 민연주는 몇 마디 당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 이때 시간을 확인하던 미셸은 아직 하용이 돌아오지 않자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하용은 한참이 지나서야 전화를 받았다. [설아, 미안해. 지금 야근 중이야. 밥은 먹었어? 우리 아기랑 함께 굶고 있는 건 아니지?] 전화기 너머에서 하용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여왔고 이에 미셸은 불쾌하던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밥은 먹었어. 언제 돌아와?” [오늘 밤엔 아마 못 갈 것 같아. 요즘 일이 터져서 다들 아주 바빠. 도윤은 일 처리하러 다른 곳으로 파견까지 갔어.] [하지만 난 네가 임신한지 얼마되지 않아 네 곁에 있으려고 남은 거야.] 미셸은 약간 서운하긴 했지만 이해한다며 말했다. “그래, 알겠어. 아빠가 내일 저녁 나더러 집으로 돌아와 밥 먹으래.” [이거 좋은 일 아니야? 은사님의 화가 풀렸다는 말이잖아.] “응, 그러니 너도 내일 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야 해. 모두에게 나의 좋은 소식을 알려야 하니까.” [알겠어. 그럼 오늘 밤은 혼자서도 얌전히 잘 자야 해. 무서우면 나에게 꼭 전화하고, 알겠지?
지아가 방금 해경과 영상통화를 마친 순간 도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보름 간 거의 연락이 닿지 않다가 겨우 전화가 온 것이었고 지아는 마침내 도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지아.] 전화기 너머에서 거센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응.” 지아는 원래 도윤이 어디에 있는 건지 묻고 싶었지만 혹시 비밀 업무를 실행중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나 안 보고 싶어?] 도윤의 목소리는 약간 잠겨 있었는데 아마 극한의 지역에 있는 것 같았다. 지아도 그런 곳을 몇 군데 가본 적 있었는데 숨을 한 번 들이쉬는 것만으로도 찬 공기에 폐가 터져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별로?” [지아, 왠지 좀 서운한 걸? 난 너와 달리 네가 엄청 보고 싶거든.] 잠긴 목소리가 도윤의 남성미를 한 층 더 끌어올렸고 지아의 마음을 간질간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아는 더 이상 전처럼 도윤이 보이지 않을 때면 밤낮없이 그가 그립지 않았고 매일 그녀 스스로 해야 할 일들도 아주 않았다. 전에는 도윤이 지아에게 있어 마치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공기이자 물 같은 존재였지만 이제는 한 병의 음료 같았다. 가끔 생각날 때면 그 단맛을 느끼고 싶긴 하지만 없다고 해도 일상생활에 크게 영향을 주진 않는 그런 음료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도윤의 머릿속은 온통 지아뿐이었고 그건 이미 도윤의 집념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나 내일 돌아가.] 그러자 지아가 담담히 대답했다.“그래, 조심해서 돌아와.” [잘 자.] 이때 지아는 한 치이 망설임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고 도윤은 약간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비록 두 사람은 육체적인 접촉이 늘어나긴 했지만 절대로 그 전의 관계로 돌아갈 수 없었다. 도윤이 손바닥을 펼치자 눈꽃이 그의 손바닥에 내려 금세 녹아버렸고 마치 자신과 지아 사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도윤은 손을 꽉 쥐었고 그렇다고 한들 절대 다시 지아를 잃고 싶지 않았다. 그는 지아와의 관계가 꼭 다시 좋아질 거라며 스스로를 위
도윤은 걸음을 재촉했고 드디어 다음날 점심쯤 A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는 심지어 집에 돌아가 씻지도 않은 채 부씨 가문으로 향했고 온몸에 피 비린내와 한기를 풍기며 부남진의 서재로 들어갔다.이때 지아는 마침 차를 따르고 있었고 부남진은 책을 보고 있었다. 도윤은 성큼성큼 앞으로 다가갔고 지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는데 싸늘했던 눈빛에 부드러움이 한 스푼 더해졌다. “각하, 명에 따라 임무를 순조롭게 마쳤습니다.” 부남진은 보고 있던 책을 덮었는데 어젯밤 이미 상세한 보고를 들었기에 도윤에 대해 칭찬의 눈빛을 보내며 입을 열었다. “아주 잘했어. 시간도 늦었으니 온 김에 남아서 식사라고 하고 가거라.” 지아가 곁에 있어서인지 부남진은 업무 상의 얘기는 더 길게 하지 않았다. 만약 전이었다면 도윤은 식사 자리에 십중팔구 미셸이 있을 것을 대비하여 부남진의 이 요청을 거절하기 급급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지아가 부씨 가문에 있었기에 싱글벙글하여 냉큼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도윤은 부남진의 눈치를 보더니 말했다. “각하, 지아와 잠깐 할 말이 있습니다.” 이때 지아는 부남진에게 차를 부어주고 있었는데 그가 안 된다고 할 까봐 먼저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마침 저도 도윤과 할 말이 있습니다.” 이에 부남진은 손짓을 하며 말했다. “가보거라. 그런데 나도 머리가 지끈지끈하니 빨리 돌아와서 마사지 좀 해줘야 해.” 사실 부남진이 머리가 아프다는 건 단지 지아와 도윤이 함께 오래 두지 않으려는 핑계일 뿐이었다. 요 며칠 동안 부남진은 또 인력을 동원하여 지아의 과거를 알아보았고 그녀를 죽이려던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려 했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도윤이 그동안 지아에게 저질렀던 일들까지 낱낱이 알게 된 것이다. 도윤은 부남진에게 있어 출중한 부하인 것 확실했다. 하지만 만약 도윤이 지아와의 재혼을 꿈 꾼다면 그건 부남진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도윤도 그런 부남진의 마음을 눈치 챌 수 있었
결국 빠져나갈 틈은 없었다. 이미 도윤의 바지까지 손이 닿았던 지아는 원망에 찬 도윤의 두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저기, 나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 도윤은 지아를 덥석 끌어안으며 말했다. “어떻게 보상해줄 거야?” “좀 참아. 다음 기회에 다시 봐.” “그럼 넌 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던 거야? 정말 조금도?” 그쪽으로 욕구가 크게 강하지 않았던 지아는 도윤이 떠난 뒤로 정말 단 한 번도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방금 도윤의 폭풍키스와 유혹에 지아도 조금은 그런 욕구가 생겼던 것도 사실이다. 그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조금?” 지아는 주동적으로 도윤의 볼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먼저 집으로 돌아가 샤워부터 해.” “밤에 다시 올게.” 이에 지아도 입술을 꽉 깨물며 대답했다.“알겠어.” 지아는 자신의 옷을 정리하고 불만스러운 도윤의 눈빛을 뒤로 한 채 방에서 나왔다. 시종은 과연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지아를 데리고 부남진에게로 향했다. 이때 부남진은 약간 부은 듯한 그녀의 빨간 입술을 발견했고 이에 지아는 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비록 지아는 이미 애까지 여럿 낳은 어른이었지만 부남진 앞에서는 몰래 연애하다 들킨 어린 아이처럼 저도 모르게 변명하기 시작했다. “도윤이 오랜만에 저를 만나 대화가 좀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러자 부남진은 찻잔을 들며 대답했다. “정말 그냥 대화만 했어?” 부남진은 이미 지아를 꿰뚫은 듯 뭔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얘야, 할아버지한테 솔직하게 말해봐. 도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어?” “할아버지, 사실 전...” 두 사람의 관계는 한 두 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었기에 지아 스스로도 도윤과의 관계를 어떻게 형용해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얘야, 도윤은 인품은 좋은 아이야. 나도 상관으로서 그 점을 꽤 높이 사고 말이야.”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도윤은 한 아내의 남편으로선 자격 미달이야. 그 자식이 너에게 저
당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매번 부남진이 환희의 그림이나 사진을 볼 때면 아주 애틋한 표정을 짓곤 했다. 때문에 지아는 부남진이 환희에 대한 마음이 얼마나 진심인지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날은 점점 어두워졌고 미셸이 집으로 돌아왔다.민연주는 평소보다 옷을 두껍게 입은 미셸의 모습에 의아한 듯 물었다. “왜 그렇게 많이 입었어?” “감기 걸릴 까봐 그런 거지. 엄마, 보고 싶었어.” 미셸은 민연주의 품에 안긴 채 애교를 부렸다. “얘야, 앞으로는 절대 이 엄마 속상하게 만들지 마. 내가 널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엄마, 이제 진짜 알았어.” 민연주는 미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참, 무슨 서프라이즈를 준비했다고 하지 않았어? 대체 뭔데 그래?” 민연주는 궁금한 마음에 미셸의 뒤를 살펴보았지만 아무것도 가져온 건 없었다.“좀 있으면 알 게 될 거야.” 미셸은 신비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민연주는 쉬지 않고 계속 미셸에게 당부했다. “이번 교훈은 꼭 기억해야 해. 이제부터 절대 소지아 그 여자 건드리지 말고 알겠지? 요 며칠 네 아빠가 그 여자에 대한 믿음이 더 강해졌어.” “알겠어, 엄마.” 미셸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갑자기 180도 변한 미셸의 모습에 민연주는 왠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너 화 안 나?”“엄마, 나 이제 확실히 깨달았어. 내가 왜 굳이 그 여자와 열을 내겠어? 필경 그 여자는 남이고 우리 집에서 평생 살 것도 아니잖아?” “언젠가는 이 집에서 사라질 테니 말이야.” 미셸은 그동안 부씨 가문에서 일어난 여러 변화들을 알 지 못했고 이에 민연주는 걱정스러운 눈빛을 비췄다. 이때 미셸은 뒷마당에서 들려오는 공사 소리에 궁금한 듯 물었다. “엄마, 집에서 뭘 공사 중인 거야?” “응.” 미셸은 뒷마당으로 향했는데 아이들의 시소, 미끄럼틀, 그리고 회전목마와 각종 장난감들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설마 아빠가 벌써 뭔가를 눈치 채고 날
대답을 하려던 부방경은 마침 멀지 않은 곳에서 걸어오는 지아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지아, 이리 와봐.” 순간 어리둥절해진 미셸이 투덜거렸다.“엄마, 오빠가 언제부터 저 여자와 이렇게까지 친해진 거야?” 부장경의 다정한 모습에 미셸은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 평소 부장경은 줄곧 무뚝뚝한 성격이었고 특히 여자들과는 더욱 거리를 유지해왔다.때문에 미셸은 지금까지 부장경과 가장 친한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오늘 지아를 대하는 그의 다정한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설마 오빠는 소지아 저 여자가 결혼을 했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계속 좋아하는 거야?’ 지아는 공손한 태도로 민연주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부인, 설아 아가씨.” 민연주는 요 며칠 감히 제멋대로 굴 수 없었기에 상냥한 태도로 지아와 담담히 인사를 나눴다. “소지아 씨, 오셨군요.” 이때 오직 미셸만이 콧방귀를 뀌었는데 비록 지아에게 시비를 걸진 않았지만 친절하게 대하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아는 아직 자신의 신분이 공개되지 않았기에 사람들 앞에서 전과 같은 호칭으로 부장경을 불렀다. “부 선생님.” “이리 와서 페인트 색깔 좀 봐. 혹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전부 다시 해도 돼.” 그런데 아직 지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미셸이 끼어들어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왜 저 여자한테 물어보는 거야? 설마 이 별채가 저 여자를 위해 준비한 건 아니지? 아니, 고작 저딴 외부인한테 이렇게 큰 집을 내줄 필요까지 있어?” 현재 새로 짓고 있는 이 별채는 마당의 면적을 제외하고도 거의 200여 평은 되어 보였는데 미셸의 별채는 고작 50몇 평 밖에 되지 않았다. 때문에 미셸은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 여자가 우리 아빠의 목숨을 구한 은인이라고 쳐도 우리 집에 평생 눌러 살 건 아니잖아? 아빠는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오빠는 아빠를 말리지 않고 뭐 했어? 내가 볼 땐 아빠 정말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아!” 이때 민연주가 얼른 미셸을 말렸
‘설마 소지아와 도윤 저 녀석이 재혼이라고 하려는 건가?’ ‘재혼한다고 쳐도 오늘 같은 부씨 가문의 가족 식사 자리에 저 자식 같은 외부인이 낄 필요는 없을 텐데?’ 하용은 아마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도윤이 부남진에게 상황 회보를 하러 온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면 하용은 납득이 가지 않았다.두 사람은 동시에 차에서 내렸고 비슷한 검은색 코트를 입었으며 기럭지까지 매우 비슷했지만 유독 도윤이 풍기는 기운은 하용보다 더욱 싸늘했다. 다른 사람들이 없는 상황에서 두 사람은 표면적인 친분조차 유지하려 하지 않았고 냉랭한 얼굴로 서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동시에 부씨 가문에 발을 들여 놓았고 그들 뒤를 따르던 시종들은 두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가 마치 차가운 날씨보다 더욱 썰렁하게 느껴졌다. “오늘 같은 가족 식사 자리에 네가 얼굴을 비추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웃기지도 않네.” 하용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 그러자 도윤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가족 식사 자리인 걸 알면서 넌 무슨 자격으로 여기 있는 건데? 지난번 일이 쪽팔리지도 않나 봐?” 비록 지아에게 물을 뿌린 건 미셸이었으나 그 뒤에서 모든 걸 조종한 사람은 하용이었다. 하지만 그가 직접적으로 나서진 않았기에 부남진은 단지 미셸만 집에서 내쫓고 처벌했을 뿐 하용에게 책임을 묻진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판을 짠 사람이 하용임을 뻔히 알고 있었고 부남진 또한 그 일을 마음속에 새기고 있었다. 이때 하용이 쌀쌀맞게 대답했다.“설아가 그런 일을 벌인 건 다 각하의 안전을 위한 거였어. 오히려 너와 소지아 그 여자가 뒤에서 농간을 부리고 각하를 속여왔지.” “그러니 분명 각하도 누가 옳고 그른 건지 잘 알고 계실 거야.” 그렇게 두 사람은 동시에 식사 자리로 향했고 하용이 나타난 순간 민연주는 미간을 찌푸렸는데 초대하지 않은 손님임이 분명했다. 그녀는 부장경이 다친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속상했지만 한 가족의 어른으로서 절대 그 불쾌한 감정을 대놓고 티 낼 수
달그락- 민연주는 손에 들고 있던 젓가락을 떨어뜨렸는데 미셸이 이런 말을 내뱉을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하용과 결혼한다고? 미친 거 아니야?’ 민연주는 낯빛이 하얗게 질렸고 환각이 생겨 잘못 들은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다.그런데 이때 미셸이 환한 미소를 띄며 말을 이어갔다. “엄마, 아빠, 저 드디어 누가 저에게 가장 진심인지 깨달았어요.” “전에는 제가 사랑할 만한 가치도 없는 사람을 위해 멍청한 짓을 하면서 진짜 저를 사랑해주는 사람은 보지 못했던 거예요.” “저도 이제 나이가 어리지 않으니 앞으로 하용과 잘 살아 보고 싶어요.” 이에 민연주는 심장이 철렁했다. 그리고 깊게 심호흡을 한 뒤 물을 한 잔 마셨고 당장이라도 미셸을 때려죽이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으며 자신을 진정시켰다. 미셸은 민연주의 낯빛이 보기 흉해진 건 발견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표정들은 모두 괴상할 정도로 덤덤했다. 도윤의 얼굴에는 전혀 미셸에게 배신당한 불쾌한 감정이 보이지 않았고 지아는 약간 어색한 듯 물을 한 잔 마셨다.이때 부장경은 안색이 어두워진 채 미간을 찌푸렸지만 오히려 부남진의 표정은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냉담했고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느껴지지 않았다. 부남진은 담담하게 물컵을 내려놓더니 미셸을 바라보며 물었다.“정말 잘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니?” 목소리에는 아무런 감정의 파동도 느껴지지 않았고 이건 미셸이 예상했던 반응과는 전혀 달랐다. 부남진이 미셸을 바라보는 눈빛은 낯선 이를 바라보는 것 같았고 예상치 못했던 반응에 미셸은 약간 당황하고 말았다.“아빠, 하용은 저에게 아주 잘해줘요. 전 정말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니 아빠도 허락해줬으면 좋겠어요.”이때 하용도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미셸의 손을 잡으며 입을 열었다.“은사님, 사모님, 다들 아시겠지만 전 줄곧 설아를 좋아해왔어요. 그러니 앞으로도 무슨 일이 생기든지 반드시 설아를 아끼겠다고 맹세할게요.” 민연주는 부남진의 절정으로 차오르는 분노를 느꼈는데 미셸에게 너무 실망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