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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종말의 생존 법칙
지구 종말의 생존 법칙
Author: 최한울

1 화

Author: 최한울
황폐하고 처량한 도시, 무성한 잡초가 딱딱한 시멘트 무덤을 뚫고 나왔고 바닥엔 온통 잔해였다.

임서준은 무거운 두 다리를 간신히 이끌고 앞으로 달려갔다.

폐에서 차오르는 뜨거운 통증 때문에 숨을 쉴 때마다 갈비뼈가 부러질 것 같지만 뒤에서 무리 지어 달려오는 좀비가 두려워 감히 멈출 수가 없었다.

험상궂은 표정으로 달려오는 좀비는 일단 그를 잡기만 하면 살갗을 찢어버리고 그대로 먹어치운다.

2035년 12월.

3년 전, 지구 종말로 온 세상이 지옥으로 변했다.

안전 구역이 점점 가까워지자 절망에 휩싸였던 그의 얼굴에도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쾅쾅!

“문 열어! 얼른!”

임서준은 미친 듯이 철문을 두드렸다. 두꺼운 철문 뒤엔 좀비가 악취를 풍기며 코앞까지 쫓아왔으니까.

“약 가져왔어. 얼른 문 열어 아린아!”

안전 하우스 안에는 임서준의 약혼녀 가족 세 명이 있다.

별안간 창문이 열렸지만 대문은 끝까지 굳게 닫혀 있었다.

도아린이 협소한 철창 사이로 그를 내다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린아, 나야! 빨리 문 열어!”

임서준은 그녀를 바로 알아보고 가슴이 찢기는 고통을 참으며 외쳤다.

가슴팍에서 피가 샘솟자 좀비들이 더욱 흥분하면서 속도를 올렸다.

한편 철창 안에서 도아린은 그의 손에 쥔 약을 힐긋 쳐다봤다.

이건 그가 도아린의 남동생을 위해서 목숨을 내걸고 구해온 해열제였다.

“그래, 서준아, 바로 열어줄게.”

임서준은 그제야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진정됐다.

일단 집 안으로 들어가면 안전해질 것이다.

위기로 뒤덮인 도시 곳곳에서 그가 직접 만든 안전 하우스만이 유일한 집이다.

“일단 약부터 줘봐. 볼트 내려놓을게.”

임서준은 무기력한 채 손에 든 약을 철창 사이로 겨우 비집어 넣었다.

‘근데 왜... 바로 문을 안 열지?’

그는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도아린은 재빨리 약을 챙겨갈 뿐 대문을 열어줄 기미가 안 보였다.

“아린아!”

칠흑 같은 밤, 절망에 휩싸인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슴이 움찔거리고 온몸이 차갑게 식었다. 이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 없으니까.

대체 왜 문을 안 여는 걸까?

좀비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데 대체 왜?

“서준아, 너 가슴 다쳤어?”

문득 도아린이 지극히 차분한 어투로 말했다.

꼭 마치 낯선 이를 대하는 듯한 말투였다.

“감염됐을 수도 있으니 이 문 열어줄 수 없어.”

임서준은 그 순간 온몸이 굳어버렸다. 뒤에 있던 좀비들은 어느새 그에게 달려들어 살갗을 갈기갈기 찢었다.

“그리고 안전 구역 대장님이 그러시는데 내가 함께 자주기만 하면 안전 구역으로 들어갈 수 있대. 물론 너도 죽어야 하고.”

도아린은 머리를 쓸어넘기며 홀가분하게 말했다.

임서준은 큰 충격에 휩싸여서 좀비에게 물어뜯기는 고통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는 도아린을 향해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다.

“왜 날 배신해? 대체 왜?”

손바닥으로 문을 쾅 짓누르자 살벌한 손자국이 찍혔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창자가 쏟아져나올 것 같은 고통에 온몸의 기운이 쫙 빠졌다.

다만 도아린은 야유 섞인 눈빛으로 이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왜냐고? 네가 폐인이니까. 난 종일 굶으면서 두려움에 떨고 싶진 않아. 대장님은 아주 강한 분이야. 각성자이지! 너 같은 일반인이 아니야!”

뒤에서 좀비가 임서준의 머리를 잡아 뜯고 찌직 소리를 내며 척추까지 부러뜨렸다.

좀비들은 악취를 풍기며 썩어빠진 손가락으로 그의 눈동자를 찔렀다.

“아린아, 이딴 녀석과 뭔 말을 섞어? 멀리 꺼지라고 해. 우리 집 앞에서 죽지나 말고!”

따뜻한 조명이 비추는 방 안에서 도아린의 엄마 현수정이 피 묻은 약상자를 들고 싸늘한 눈빛으로 창밖을 내다봤다.

도아린의 남동생 도지호까지 세 사람은 나란히 서서 임서준이 좀비에게 가차 없이 물어뜯기는 걸 지켜보고 나서야 자리를 떠났다.

...

윤제시, 반짝이는 조명의 신혼 방 안에서 그의 약혼녀 도아린이 재촉했다.

“서준아, 전우들한테 전화해서 돈 빌리지 않고 뭐해?”

임서준은 깊은 물에 빠져서 허우적대다가 살아난 것처럼 숨을 헐떡거렸다.

죽기 직전의 화면과 눈앞의 그녀가 서서히 겹쳐졌다.

그렇다면 좀전의 모든 건 꿈일까?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몸은 여전히 살갗이 찢긴 고통이 남아 있었다.

생생한 고통을 느끼며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는데...

“2032년 11월 9일?”

임서준은 너무 놀라서 입안이 바짝 말랐다.

‘아니, 이건 꿈이 아니야! 내가 환생했어.’

그랬다. 그는 3년 전, 지구 종말 3일 전으로 돌아갔다. 바로 도아린에게 프러포즈한 날로...

“서준아, 우리 아린이랑 결혼하려면 최소한 예물 값 4천만 원을 준비해야 해! 지호가 곧 결혼하는데 매형으로 돼서 일전 한 푼 안 낼 거니?”

현수정이 도지호에게 얼른 돈을 요구하라고 곁눈질했다.

“매형 전우들이 금방 제대했다고 했잖아요.”

도지호는 다리를 꼬고 소파에 앉아 시큰둥하게 말했다.

“요즘은 제대하면 돈 많이 준다고 하던데 몇 푼 빌리는 것쯤이야 뭐가 대수겠어요? 쑥스러워 말고 빨리 돈 좀 구해와요.”

임서준이 계속 제자리에 서 있자 도아린은 미간을 확 구겼다.

군인 출신 임서준은 점잖고 돈도 많을 거라 여기며 나름 신랑을 잘 고른 줄 알았는데 우물쭈물하면서 일전 한 푼 못 내놓을 줄이야.

그녀는 가족 앞에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전우들이랑 사이좋다며? 왜 이까짓 돈도 못 빌려주는데?”

현수정은 줄곧 아무 반응 없는 임서준을 바라보며 코웃음을 치더니 거만한 기세를 내뿜었다.

“서준아, 이 돈 못 구해오면 결혼 못 할 줄 알아. 최소한 성의는 보여줘야지. 전에 그렇게 안 봤는데 애가 왜 이렇게 쪼잔해?”

현수정이 이상야릇한 말투로 쏘아붙였다.

한편 도지호는 눈에 뵈는 것도 없는지 엄마가 누나의 결혼을 반대한다는 말에 입을 나불거렸다.

“누나! 전에 어떤 돈 많은 남자가 누나한테 대시한다고 하지 않았어? 이딴 거지새끼랑 결혼할 바엔 차라리 그 김 대표를 택해! 돈도 많겠다, 지난번엔 나한테 무슨 차 좋아하냐고 물어보기도 하더라!”

세 사람은 쉴 새 없이 입을 나불거리느라 임서준의 눈가에 드리운 살기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전생에 그는 엄마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얼떨결에 도아린과 결혼했다.

비록 대충 올린 결혼식이지만 그녀에게 해줄 만큼 다 해줬다고 당당하게 말할 순 있다.

집과 차, 예물 값까지 어느 하나 빠진 게 없으니까.

심지어 염치불문하고 전우에게 돈을 빌려서 예물 값 금액을 맞추기도 했다.

하지만 결혼식 전날, 지구 종말이 들이닥쳤다.

군인 소질을 갖춘 임서준은 약혼녀 가족을 책임지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좀비에게 처참하게 잡아먹힌 마지막 날까지 그는 가족을 위해 애썼다.

그 철문을 넘지 못해 죽음을 맞닥뜨렸고 이로써 배려와 의리, 책임까지 모조리 무너져내렸다.

적나라한 야유가 그를 현실로 이끌어왔다.

“거지면 거지답게 살아. 있는 척하지 말고! 누나가 네 체면을 봐서 결혼해주는 거야. 밖에 우리 누나 좋다는 사람이 얼만데!”

쾅!

임서준이 별안간 어마어마한 힘으로 도지호의 배를 걷어찼다.

3미터 밖으로 튕겨 나간 도지호는 얼굴이 빨개지고 담즙까지 토하더니 새우처럼 움츠리고 구석에 드러누웠다.

뜻밖의 광경에 도아린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임서준이 발을 거둬들이자 그녀는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이 남자가 누군가를 때리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평상시엔 점잖기만 하던 인간이 이렇게까지 매정할 줄이야.

“아이고, 사람 살려요!”

정신을 차린 현수정은 큰소리로 외치면서 두 다리를 내리쳤다.

“이런 빌어먹을! 감히 내 아들을 때려? 거지새끼가 돈도 없으면서 사람을 쳐? 너 오늘 끝장이야. 지금 당장 경찰에 신고할 거야! 이 결혼 꿈도 꾸지 말아!”

“닥쳐, 늙어빠진 년이!”

이때 임서준이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앙칼진 목소리와 야박한 말투가 너무 짜증 나서 빤히 쳐다보더니 뺨을 두 대나 내리쳤다.

찰싹, 찰싹.

이제 좀 후련해졌는지 연이어 귀싸대기를 십여 대 날렸다.

현수정은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임서준, 너 미쳤어?”

도아린은 이 상황을 못 믿겠다는 듯 큰소리로 외쳤다.

“뭐?”

이에 임서준은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살의가 폭발했다.

이 속물들을 싹 다 아작내서 생전에 그가 느꼈던 고통과 절망을 똑같이 겪게 해주고 싶었다.

그는 거침없이 현수정을 짓밟으며 도아린을 날카롭게 째려봤다.

“왜 이래? 대체 왜 이러냐고?”

그가 허리를 숙이고 살벌한 기운을 내뿜자 도아린은 몸을 움찔거리며 허겁지겁 방으로 도망쳤다.

“내가 신고했어. 경찰이 곧 올 거라고!”

그녀는 스피커폰으로 전환하고 떨리는 손으로 겨우 경찰에 신고했다.

지구 종말을 앞둔 지금 사건, 사고가 다분했고 창밖에는 경찰차와 구급차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경찰차 경적을 들은 임서준은 걸음을 멈추고 뭔가 생각하는 듯 제자리에 잠자코 서 있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기웃거리며 굳게 잠긴 문을 쳐다봤다.

지구 종말을 3일 앞둔 이 시점에서 그들과 엮여버리면 엄청난 시간을 소모할 것이다.

시간을 소모한다는 것은 환생의 기회를 낭비하는 것과 다름없으니 너무 부질없는 노릇이다.

이딴 잡것들은 그의 소중한 시간을 차지할 자격이 없다.

그렇다면...

3일, 정확히 3일 후에 지구 종말을 맞닥뜨린다.

임서준은 싸늘하게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의 보호가 없이 폐인 같은 도아린 가족이 과연 지구 종말에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좀비 앞에서도 지금처럼 거만을 떨 수 있을까?

죽음과 그 철문이 이번 생의 임서준을 철저히 바꿔놓았다.

‘이제부턴 오직 나를 위해서 살 거야!’

더는 전생처럼 집요하게 도아린 가족을 위해서 희생할 일은 없다.

누군가에게 함부로 이용당할 일은 절대 없다.

더욱 강해져야만 한다. 이 잔혹한 지구 종말에서 살아남으려면 엄청 강해져야만 한다.

3일 뒤 다시 죽이면 되니까 임서준도 굳이 여기서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얇은 철문을 박차고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

도아린은 은은하게 들리는 그의 발걸음 소리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제 곧 능력 있는 대표님들을 불러서 그를 괴롭혀야만 한다.

이대로 당하기엔 너무 억울하니까.

이 또한 임서준이 걱정할 바가 아니다. 손 한 번 휘두르면 바로 해결해버릴 테니까.

그는 모든 악의를 내려놓았다.

불필요한 감정은 이성을 잃게 할 뿐 아무 소용이 없다.

이제부터 지구 종말 전까지 어떻게든 충족한 물자를 비축해야 한다.

또한 천부적 재능을 각성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3일 뒤 지구 종말 게임이 시작되면 좀비 바이러스가 폭발하고 이차원 공간에 야수들이 출몰하며 괴이한 사건들이 온 세상을 휩쓸 것이다.

한편 사람들은 마치 게임을 하듯 데이터화된 패널을 얻게 된다.

운이 좋은 몇몇 사람들은 에너지 노드에서 초자연적인 힘을 얻고 천부적 재능을 각성한다.

다시 태어난 인생, 임서준은 반드시 운명을 장악하리라 다짐했다.

이번 생엔 절대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가며 허우적대고 싶지 않았다.

에너지 모드는 지구 종말이 시작된 후 아주 잠깐 나타난다.

전생에는 도아린 가족 때문에 각성자가 될 기회를 놓쳐버렸으니 이번 생엔 무조건 이 기회를 거머쥐고 모든 걸 바꿔야 한다.

그 첫걸음이 바로 운명을 바꾸는 것이다

“부영로 18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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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차기!”임서준은 힘을 모아 몸을 돌리며 가까운 좀비를 걷어찼다.표준적인 군사 격투 기술의 발차기였다.쿵!입에 피와 살점을 가득 문 좀비가 막 반응하려는 순간, 포탄처럼 셔터 쪽으로 날려가살점이 철판에 부딪히는 소리가 귀를 찔렀다.멀리서 배회하던 좀비들이 피 냄새를 맡은 상어처럼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들어가요!”쿠웅!임서준이 문을 난타하며 상반신만 남은 좀비를 발로 짓밟았다.온주아도 뒤이어 비틀거리며 도끼를 휘둘러 마지막 좀비의 머리를 베어 버렸다.꽃집 2층, 창문 뒤에서 엿보던 한 쌍의 눈은 충격과 기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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