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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화

Author: 최한울
‘바로 여기야!’

오래된 아파트가 다 시든 덩굴로 뒤덮여 있었다.

임서준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문패를 보며 감격에 겨웠다.

이제 1초라도 지체할 수가 없다.

그는 짧디짧은 5분 사이에 수백 마리 좀비 떼를 뚫고 여기까지 왔다.

작전복은 끈적끈적한 피가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가죽 부츠 밑창은 부서진 살덩이로 가득했다.

부러진 소방 도끼도 어느새 리커의 반쪽 척추뼈로 갈았다.

피의 사투를 벌인 임서준은 겉모습만 보면 시체 무덤에서 기어 나온 괴물을 방불케 했다.

“정우야! 하경아!”

그는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문 앞에 산더미를 이룬 시신은 아랑곳하지 않고 안정우 남매 이름만 연신 불러댔다.

“서준 오빠!”

방안에서 줄곧 움츠리고 앉아있던 안하경이 드디어 얼굴에 화색을 띠었다. 행여나 잘못 들은 건 아닌지 재빨리 일어나서 밖을 내다봤더니 정말 임서준이었다.

“나 여기 있어요!”

그녀는 희망찬 눈길로 임서준을 향해 손짓했다.

한편 문밖에 있던 좀비들은 임서준의 인기척을 느끼고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임서준은 안하경의 목소리를 듣더니 머리를 번쩍 들었다.

별안간 의자에 앉아있던 안정우가 밧줄에서 손을 빼내고 손목도 끊임없이 비벼댔더니 닳고 닳아서 수갑에서 풀려났다.

쇠사슬이 바닥에 떨어지며 찰진 소리를 냈다.

하지만 안하경은 좀비들의 비명만 듣느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조명이 꺼진 흐릿한 방안, 벌겋게 충혈된 두 눈동자가 그녀 뒤에 불쑥 나타났다.

임서준은 아찔한 기운을 내뿜으며 파워를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각성자의 천부적 재능이 또다시 작동했다.

단기간 내에 연속 작동하면 에너지를 엄청 소모하지만 그는 이런 것 따위 고려할 새가 없다.

미친 듯이 체내의 에너지를 끌어올리고 앞으로 돌진했다.

타닥.

리커의 날카로운 척추로 문 앞의 좀비들을 무참하게 찔러버렸다.

‘빨리! 더 빨리!’

그는 속으로 외치며 오른쪽 주먹에 힘을 가했다.

쿵.

귀청이 째질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마침내 단단했던 철문이 찌그러졌다.

방안에서 안하경은 무기력하게 목을 움켜쥐고 손 틈 사이로 피가 새어 나왔다.

“오빠, 오빠?”

입을 벌렸지만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안정우의 일그러진 얼굴과 눈빛에서 전혀 이성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입가에 피가 묻은 채 또 한 입 깨물려고 하는 이 남자, 임서준이 재빨리 소리치며 말렸다.

“정우야!”

근육이 다 찢어지고 최대치에 달했던 속도를 또 더 올렸다.

안정우는 그 소리에 몸을 움찔거리며 망연한 눈빛으로 변했다.

쾅.

한 입 더 물려다 말고 잠시 머뭇거릴 때, 고작 0.5초 사이에 임서준이 재빨리 방안으로 달려와 그를 밀쳐냈다.

안하경한테서 떨어져 나간 안정우는 벽에 부딪히고 그 순간 벽에 금이 가며 분말이 후드득 떨어졌다.

좀비는 일반인과 다르다.

안정우가 비록 완전히 변이된 건 아니지만 바이러스가 강해지면서 체내의 위력이 일반인을 뛰어넘었다.

일반인이었다면 아무리 임서준이 힘 조절을 해서 밀쳤다고 해도 온몸이 으스러질 지경이겠지만 안정우는 달랐다.

잠시 몸이 굳는가 하더니 두 눈이 다시 벌겋게 충혈되고 포식자의 갈망으로 이글거렸다.

“으악!”

임서준은 그가 또다시 안하경을 해칠까 봐 죽을힘을 다해서 제압했다.

꼼짝달싹 못 하게 되자 안정우는 이번에 머리를 미친 듯이 흔들어댔다.

야수처럼 포효하더니 근엄했던 얼굴이 다 갈라 터져서 추악한 몰골로 변했다.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몸의 피부도 썩어 문드러질 대로 문드러졌다.

임서준은 비통한 표정을 지었다.

안하경은 당분간 아무런 지장이 없지만 안정우에게 목을 뜯겨서 마찬가지로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절친이 곧 좀비로 변하고 두 남자 모두 지극히 아끼던 동생까지 감염됐다.

임서준은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질 것 같았다.

‘정우야, 꼭 버텨야 해!”

스윽.

문득 임서준이 한 손으로 철편을 들고 재빨리 손목을 그었다.

피가 흘러넘치고 에너지가 폭발했다.

그는 나직이 외치며 또다시 각성자를 끄집어냈다.

주위에 반짝이던 금빛이 서서히 어두워지고 빨간 피로 한 층 물들었다.

온몸에 기운이 쫙 빠지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임서준은 아예 혀를 꼭 깨물며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오빠, 우리 오빠 아직 구할 수 있어요?”

안하경이 무기력하게 옆에 앉아서 겨우 질문을 건넸다.

목에 난 상처는 안정우의 손가락에 긁힌 거라 흉터가 그리 크진 않았다.

임서준은 아무 말 없이 정색한 얼굴로 손목을 안정우의 심장에 갖다 댔다.

흉터와 피부가 닿고 핏속에 섞인 은은한 금빛이 생명을 부여하듯이 갑자기 안으로 쏙 빠져들어 갔다.

“걱정 마. 내가 있잖아.”

혀끝을 깨물었더니 입안에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임서준의 피가 안정우에게 닿자 변이가 발생했다. 그제야 임서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생에 각성자의 혈액은 좀비가 되는 걸 억제하는 데 효과가 있었다. 물론 소문일 뿐 직접 시도한 적이 없어서 효과가 어떨지는 모른다.

그는 나직이 안하경을 위로하며 불안한 마음을 추슬렀다.

각성자의 혈액으로 좀비가 되어가는 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

이건 임서준이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제 곧 좀비가 될 안정우이니 닥치는 대로 뭐든 시도해봐야 안다.

금빛 혈액이 괴이하게 안정우의 가슴팍으로 흘러 들어갔다.

섬뜩하게 충혈된 두 눈이 차츰차츰 맑아지고 발악했던 몸도 진정이 됐다.

역시 효과가 있었다.

임서준은 기쁨도 잠시 코끝이 찡했다.

전생의 유감스러웠던 점을 이제야 보상할 수 있게 됐으니까.

“우리 오빠 괜찮아진 거예요?”

안하경은 기대에 찬 눈길로 임서준을 바라봤다.

이제 막 그렇다고 대답하려던 찰나 변이가 발생했다.

“으아악!”

차분해졌던 안정우가 갑자기 허리를 뒤로 90도 꺾으며 관절이 부러지고 소름 끼치는 소리를 냈다.

동공이 회색으로 돌변하고 임서준의 손목에 침투한 그의 혈액까지 죄다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풉.

금빛 혈액이 가슴팍에 떨어지며 기체로 변했고 코를 찌르는 악취를 풍겼다.

임서준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느슨했던 신경을 다시 곤두세우고 안정우를 살펴보았는데 단 몇 초 사이에 옷 벗겨지듯 피부가 모조리 벗겨지고 선홍빛 살덩이만 드러났다.

“안돼! 어떻게 이럴 수가!”

임서준은 두 눈이 충혈되고 안색이 창백해졌다.

전생에 각성자의 혈액으로 좀비가 되는 걸 연장할 수 있다던 소식이 가짜였던 걸까?

아니면 그가 각성자로 거듭나서 다른 사람들과 달라진 걸까?

각성자의 혈액으로 좀비가 되는 걸 연장하지 못할뿐더러 되레 시간을 단축해버렸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안정우를 구할 수가 없다.

혈액이 아무 소용 없으니까.

그렇다면 안하경도...

죽게 될 것이다.

한길 내내 피의 사투를 벌이며 여기까지 와서 체력이 고갈될 대로 고갈됐는데 어쩌다가 이런 결말이 차려진 걸까?

소중히 여기는 두 사람인데, 어떻게 단 한 명도 구할 수 없는 걸까?

임서준은 주먹을 꽉 쥐어서 손톱이 살을 파고 들어갈 것만 같았다.

깊은 절망에 빠져있을 때 제시음이 울렸다.

[띠, 구원자 미션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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