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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화

Author: 최한울
아파트 입구에서 임서준은 휴대폰을 꺼내 지도를 자세히 살펴봤다.

때마침 전우 안정우한테서 문자가 한 통 날라왔다.

[서준아, 요즘 돈 필요하다며? 나 금방 제대해서 여유 있으니 계좌번호 보내.]

[그리고 시간 있으면 놀러 좀 와. 하경이가 자꾸 너랑 놀고 싶다고 난리야.]

문자를 확인한 임서준은 가슴에 따뜻한 전류가 흘렀다.

안정우는 그의 전우이자 어릴 때부터 함께 커온 친구 사이였다.

둘은 줄곧 돈독한 우정을 유지했고 임서준이 대학 갈 때 안정우의 부모님이 등록금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그가 미처 답장하기도 전에 안정우가 또다시 문자를 보냈다.

[요즘 날씨가 변덕스러우니 감기 조심해. 나처럼 열나고 앓아눕지나 말고.]

[시력도 전보다 못해져서 안경 끼고 다닌다 나. 만날 때 놀려대지 말아.]

그는 답장하려다 말고 온몸이 굳어졌다.

휴대폰까지 철퍼덕 바닥에 떨어트린 채 제자리에 멍하니 서서 등골이 오싹해졌다.

안정우는 부대에서 정찰병이라 신체 소질도 좋고 시력도 전혀 문제가 없는데 갑자기 시력이 떨어지고 열까지 난다니?

이건 분명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초기증상이다.

기억 속에서 맨 처음 좀비 바이러스는 일부 사람들의 체내에 잠복해 있다가 발열, 시력 저하, 오한의 증상을 나타낸다.

안정우의 상황과 기억을 더듬으며 임서준은 두 눈이 서서히 빨개졌다.

전생에 지구 종말이 들이닥쳤을 때 그는 안정우와 함께 교외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이 자식은 아무런 연락도 없고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나 보다 여길 뿐 절대 바이러스 폭발로 죽었을 줄은 몰랐다.

가장 친한 친구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좀비가 되고 평생 지옥에서 살게 된다니.

임서준은 심장이 타들어 갈 것만 같고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됐다.

이제 안정우의 사인을 알게 됐으니 절대 두 번 다시 이 비극을 연출할 순 없다.

그는 재빨리 기억을 더듬으며 어떻게든 방법을 연구해내려고 애썼다.

한참 후 임서준은 충혈된 두 눈을 번쩍 떴다.

‘각성자의 혈액을 강제로 주입해야 해!’

이건 그로써 좀비가 되어가는 시간을 좀 더 연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완전한 좀비로 거듭나기 전에 각성자의 혈액을 주입하여 이 과정을 조금이라도 연장해야 한다.

안정우는 일반인보다 체력이 강한 편이니 좀비로 변하기 전까지 좀 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두 시간!

임서준은 재빨리 전생에 감염자들의 세부변화를 되새겼다.

안정우는 지구 종말 후 최대한 2시간을 버틸 수 있다.

그렇다면...

3일 안에 물자를 마련하고 장비까지 다 챙겨서 안정우에게 달려가야 한다.

생각을 마친 임서준은 곧장 방안을 짜기 시작했다.

5분 동안 조각상처럼 침묵하고 있다가 마침내 걸음을 옮겼다.

‘3일이면 충분해!’

...

해운 신용대출회사.

널찍한 재무팀 안에서 세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며 앉아 있었다.

“임서준 씨, 3일 뒤에 3억 4천만 원을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이자는 7%로 해줄게요. 그때 가서 못 갚으면 집을 내놔야 하니 약속 시간을 꼭 지키길 바랄게요.”

임서준은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3일 뒤에 돈은 파지에 불과할 것이고 6개월 뒤엔 길거리에 현찰이 널려도 사람들은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다.

지구 종말 앞에서 유일하게 가치 있는 물건은 바로 식량과 인간 본연의 실력이다.

그때 되면 집과 차도 대가를 막론하고 브리지 대출 회사에 담보로 넣어둔다.

미처 건네지 않은 예물 값까지 포함해서 그가 현재 가진 돈은 6억8천만 원이다.

너무 큰 액수는 아니지만 대량의 생존물자를 구입하는 건 문제없다.

아직 지구 종말 직전이라 돈은 여전히 만능이다.

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곤 본인이 출근하는 제약 회사로 향했다.

문밖을 나설 때 뒤에서 대부업자 두 명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대표님, 제가 저 자식을 살짝 조사해봤는데 신혼집까지 담보로 내놓고 7% 이식도 감안하는 건 진짜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아요.”

“알 게 뭐야? 인터넷 도박으로 빚이 산더미라 눈에 뵈는 게 없지 뭐. 3일 후에 돈 안 갚으면 그 집 바로 회수할 거야!”

...

제약 회사.

임서준은 익숙하게 로비로 들어서며 본인의 호송 및 보안 사원증을 흔들어 보였다.

경비원 아저씨는 그의 얼굴을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그저 사원증만 바라봤다.

[이름: 임서준, 성별: 남, 나이: 24세, 직무: 특수 약품 호송 인원]

띠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임서준은 곧게 카드를 찍고서 3층 실험실로 향했다.

명절 연휴에 또 점심시간이라 십여 명이 있던 실험실에는 실습생만 한 명 덩그러니 남았다.

“서준 형?”

그보다 한 살 어린 실습생이 놀란 눈빛으로 임서준을 쳐다봤다. 금방 잠에서 깼는지 머리는 뒤죽박죽이 되었다.

철컥.

임서준은 그가 도망치지 못하게 실험실 문을 잠그고 다짜고짜 본론에 들어갔다.

“왕도마뱀 추출물과 뱀독 추출물 어디 있어?”

“네? 형 오늘 호송 임무 없잖아요. 그건 왜요?”

실습생은 놀랍고도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임서준이 말한 이 두 가지는 각자 높은 금액에 반드시 사전 등록해야 할 약품이다.

“넌 몰라도 돼!”

그가 싸늘한 말투로 경고장을 날리자 실습생은 뭔가 알아챈 듯한 눈치였다.

임서준의 눈빛에 스친 살벌한 기운에 덜컥 겁을 먹고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형... 그건 진짜 안 돼요.”

한편 임서준은 벽시계를 힐긋 바라봤다.

‘안돼! 이제 더는 지체할 수 없어.’

계획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서 이 두 가지 약품을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한다.

촤르륵.

임서준은 가방의 현찰을 마구 쏟아냈다.

“여기 1억 4천이야. 내가 산 거로 할게. 등록 절차만 없을 뿐 회사에서 절대 너한테 뭐라 하지 않아.”

실습생은 바닥에 널브러진 현찰을 바라보며 어쩔 바를 몰랐다.

1억 4천이라니...

회사에서 외부에 판매하는 가격도 거의 이 수준인데 임서준은 거침없이 돈을 쏟아내곤 실험실을 뛰쳐나갔다.

시간이 급박하니 더 이상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비록 일전 한 푼 안 내놔도 이 약품을 챙겨갈 수 있지만 3일 뒤에 현금은 파지에 불과할 것이고 실습생과 아는 사이이니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굳이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다.

실습생은 뒤에서 입을 살짝 벌리고 뭐라 더 말리고 싶었지만 임서준이 현찰을 쏟아부은 순간 스스로 위로하기 시작했다.

‘됐다, 형이 돈까지 냈으니 불법은 아니잖아.’

다만 인상 속 다정하고 온순하던 임서준이, 누군가와 언쟁 한 번 안 벌리던 임서준이 지금은 꼭 마치 딴사람으로 변해버린 것만 같았다.

그는 냉동실 문을 모조리 열고 한바탕 뒤진 후 시험관을 조명에 높이 들고 파란색 약물을 빤히 쳐다봤다.

조명에 비친 액체는 이상하리만큼 흠뻑 도취할 것 같았다.

왕도마뱀 추출물은 북메리카 왕도마뱀 혈액을 추출하여 단시간 안에 에너지를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또한 뱀독 추출물은 심장과 폐를 자극하여 폭발력과 인내력을 높인다.

이 두 가지 특수 약품을 동시에 사용하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이룰 테지만 그 대신 부작용도 매우 크다.

하지만 임서준은 이런 것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천부적 재능을 각성할 수만 있다면 컨디션을 완벽하게 끌어올릴 테니까.

질병이 사라지고 사지가 더욱 단단해지며 무릇 각성자라면 가장 완벽한 전사가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체력도 더욱 강해진다.

임서준은 전생의 파워에 대한 갈망을 품고 실험실의 남은 약품들을 모조리 챙겨갔다.

좋은 물건은 낭비할 수가 없으니까.

가방 안에 현찰이 절반 줄어들고 그 대신 약품이 30개나 늘어났다.

이 약품들은 지구 종말 이후에 전부 생산을 멈춘다. 한 개씩 사용할 때마다 개수가 줄어들기 마련이다.

속도를 가하면 에너지가 폭발하고 고통을 이겨낼 수 있으며 주의력을 높여준다.

지구 종말 직전, 이 약물 하나로 전체 국면을 뒤바꿀 수도 있다.

이 약물들을 챙기고 있으면 그는 이번 계획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임서준은 흡족한 듯 실험실을 나섰고 뒤에서 실습생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떨리는 손으로 돈을 주워 담았다.

“3일만 비밀로 해줘. 3일 뒤엔 실컷 떠들고 다녀도 돼!”

이 말만 남긴 채 엘리베이터에 타고 그를 지그시 바라봤다.

임서준의 싸늘한 눈빛에 실습생은 겁에 질려 목을 움츠렸다.

...

엘리베이터가 내려갈 때 임서준은 어떤 물자를 구매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했다.

식량은 열량이 높은 캔 음식으로 해야 한다.

또한 휴대하기 간편한 초콜릿과 에너지바를 많이 챙겨야 한다.

각성자의 막강한 실력을 보전하려면 소모하는 에너지도 일반인들보다 훨씬 많다.

대용량의 생수를 준비하되 포도당을 적당량 추가해야 한다.

무기와 활은 딱히 소용이 없다.

천부적 재능을 각성하거든 이딴 쓰레기 같은 원격 공격 방식은 일절 쓸모없다.

열핵 무기라고 하면... 총은 구하기도 힘들고 시간 소모가 너무 크니 포기가 답이다.

작전복은 여러 벌 준비해도 된다.

고강도의 전투는 옷을 쉽게 더럽히니까.

블래스트 쉴드와 방탄복도 굳이 준비할 필요가 없다.

체력 차이가 어마어마한데 방탄복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괜히 거동만 불편해질 뿐이다.

무기 방면으로 백병은 괜찮은 선택이다.

합금 무기를 몇 개 마련하면 칼날이 말리는 상황을 면할 수 있다.

지구 종말이 오면 규제의 제압을 받아서 총기, 폭탄의 위력도 대폭 감소할 것이다.

하지만 각성자의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지탱해주고 백병이 대적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해진다.

1층에 도착한 임서준은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며 재빨리 지도 앱을 열어보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 안에 분명 각성을 도와주는 결정적인 장비가 들어있어!”

그의 눈빛이 한없이 들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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