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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화

Author: 최한울
쾅.

임서준이 침울한 표정으로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정신 충격이 끝난 뒤 사람들은 편두통 말곤 딱히 큰 문제가 없었다.

종말 게임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안정우의 목숨도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는 걸 뜻한다.

시간이 급박하니 도시의 메인 구역을 지나서 얼른 운전 가능한 차를 찾아야 한다.

이대로 걸어가는 건 당최 목적지에 이를 수 없다.

지금 이 도시에 적어도 좀비가 수백만 마리는 분포됐으니 아무리 그가 각성자라고 할지라도 좀비 무리를 뚫고 나갈 순 없다.

...

윤제시 외곽.

빨간색 국산 중장비 트럭이 미친 듯이 질주하며 길거리의 좀비들을 무참하게 짓밟았다.

콰당.

운전석에 탄 임서준은 가차 없이 차 문을 걷어차고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뛰어내렸다.

연속 뒹굴다가 마침내 자세를 다잡은 이 남자, 각성자로 거듭난 이후로 체력은 12급으로 올라갔고 대부분 충격을 감당할 수 있는 면역력이 생겼다.

중장비 트럭은 제어를 잃고 그대로 아파트 단지 담벽에 들이받았다.

더러운 핏자국들이 차체에 잔뜩 묻고 정체 모를 살코기가 트럭 틈새에 걸렸다.

앞 범퍼에는 상반신만 남은 좀비가 지칠 줄도 모르고 범퍼 뚜껑을 물어뜯고 있었다.

순간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이 트럭은 교외로 나와서부터 미친 듯이 질주하다가 마침내 사명을 다했다.

한편 아파트 입구에는 시신을 물어뜯던 좀비들이 트럭에 끼워서 핏덩어리로 변해버렸다.

변형된 차 앞머리에서 검은 연기가 나고 시커먼 타이어 자국에 붉은 피가 섞였다.

어느덧 하늘이 어둑해졌다.

시 중심에서 벗어난 임서준은 마침내 안정우가 있는 구역으로 도착했다.

차로 세 시간은 걸릴 테지만 그는 무려 한 시간 30분이나 단축했다.

다만 한숨을 돌릴 새도 없이 휴대폰을 꺼내서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2, 30분은 더 있어... 이거면 충분해.’

졸여왔던 마음이 드디어 안심됐다.

안정우가 있는 단지는 이 구역에서 제일 안쪽에 있는 단지였다.

이곳은 예전에 구시가지라 길이 엄청 복잡하여 걸어서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미 업그레이된 몸이었기에 임서준의 속도로 15분 안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다.

‘정우야, 꼭 버텨야 해!’

정면으로 덮쳐드는 좀비를 다 쓰러뜨린 후 임서준은 단지 안으로 미친 듯이 달려갔다.

아늑하고 조용했던 아파트 단지는 어느새 도살장이 돼버렸다.

봉쇄된 도난 방지 창문이 탈출에 가장 큰 장애물이 될 줄이야.

아파트 내부에서 처참한 비명이 간헐적으로 들려오고 반쯤 열린 창문 안에서 좀비들이 휙휙 스쳐 지나갔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종말이 오기 전, 대부분 아파트 주민들이 미처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만약 죄다 아파트에 있었다면 임서준은 차마 걸음을 내디딜 수가 없을 것이다.

그는 민첩하고 날렵하게 좀비들을 피하면서 온몸의 에너지를 끌어올려 마침내 단지 입구에 도착했다.

좀비들을 피할 수 있으면 최대한 피하고 만약 그럴 수 없다면 주먹으로 머리를 박살 내버렸다.

...

입구에 서서 위를 올려다보자 6층 고급 주택의 도난 방지 창문 안에 부자로 돼 보이는 남자가 웃옷을 발가벗은 채 힘겹게 난간에 걸려 있었다.

저렇게 뚱뚱한 체형에 대체 어떻게 바깥쪽 벽을 타고 올라간 걸까?

“살려주세요!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작고 뚱뚱한 남자는 임서준을 향해 큰소리로 외치며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커다란 땀방울이 콧등에서 툭 떨어졌다.

바깥쪽 벽으로 기어온 지 한참 된 그 남자는 신처럼 아파트 단지를 뚫고 온 임서준을 보더니 다시 희망이 샘솟았다.

‘저 실력으로 날 구하는 건 식은 죽 먹기잖아!’

다만 임서준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코앞에 덮친 좀비들만 쳐냈다.

“돈 드릴게요! 2천만 원 드릴 테니 제발 좀 구해줘요!”

이제 막 대문을 나서려는 임서준을 보자 그 남자가 초조해졌다.

도난 방지 창문은 서서히 변형되었고 좀비로 변한 여자가 단단한 난간을 물어뜯으며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2억 줄게요, 2억 준다고요!”

그 남자는 슬슬 체력이 고갈되어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여자의 입에서 썩어빠진 냄새가 풍기자 그 남자는 머리가 다 어지러웠다.

한때 가장 사랑했던 여자인데, 향기만 나던 여자인데 어쩌다가...

“10억 줄게요. 저 윤제 건설 대표예요! 목숨만 구해준다면 원하는 건 다 드릴게요!”

임서준이 점점 멀어지자 남자는 사색이 되어 돈 아까운 줄도 모르고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윤제 건설은 윤제시에서 명성이 자자하니 무릇 사람이라면 이 유혹에 안 흔들릴 수가 없다.

하지만 임서준은 여전히 눈길조차 안 줬다.

지구 종말 앞에서 돈은 한낱 종잇장에 불과하니까.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윤제 건설 대표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무려 10억인데 거들떠보지 않는다고?

대체 원하는 게 뭘까?

충분히 가격을 불렀는데 저런 바보가 또 어디 있을까?

분노에 차오른 윤제 건설 대표는 임서준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 두려움을 떨쳐냈다.

...

한편 임서준은 간만에 좀비가 없는 큰길을 지나더니 불쑥 걸음을 멈추고 정색한 표정을 지었다.

좀전의 10억에 흔들려서 다시 돌아가려는 게 아니라 가까운 곳에 3미터가 되는 괴물이, 가죽이 벗겨진 개구리처럼 온몸이 시뻘건 거대한 괴물이 길을 막고 있었으니까.

그것은 바로 리커였다.

변이된 좀비인 리커는 아주 섬뜩한 전투력을 지니고 있다.

전생에 고작 한 마리가 소형 안전 구역을 가뿐히 무너뜨렸다.

딱히 무장한 건 없지만 끊임없이 재생되는 근육 조직 덕분에 대부분의 소구경 총기를 견딜 수 있다.

날렵한 속도와 어마어마한 파워, 그리고 재생능력까지 지닌 괴물, 단단한 강철은 그의 손에 쥐어지면 반죽과도 다름없다.

이는 생존자의 악몽과도 같은 존재이니 과연 피해갈 수 있을까?

임서준은 조심스럽게 트럭 뒤에 숨었다.

제아무리 각성자라고 할지언정 그의 레벨은 고작 0이다.

인체 한계를 넘어선 파워이지만 이런 괴물과는 현저한 차이를 이룬다.

에돌아 가야 하는 걸까?

그는 조심스럽게 숨을 죽이고 부러진 백미러를 손에 든 채 꼼꼼히 살펴보았다.

길을 가로막은 리커는 한 걸음 이동할 때마다 지진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2미터 길이에 날렵한 앞발로 철판을 가뿐히 쪼개고 차 안에 숨은 사람들을 끊임없이 끄집어낸 후 디저트처럼 맛있게 먹었다.

식욕이 제대로 오른 이 괴물은 좀비까지 모조리 입에 넣었다.

임서준은 말문이 턱 막혔다.

어쩐지 이 거리에 좀비가 없더라니, 바로 저 괴물이 깔끔하게 먹어치운 것이었다.

십 초 남짓 지난 후.

리커는 부러진 다리를 질겅질겅 씹어먹으며 탐욕스러운 눈길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느덧 이 거리를 말끔하게 먹어버려서 더는 손에 잡히는 게 없었다.

우웅.

이때 안정우한테서 음성 메시지가 한 통 도착했다.

휴대폰 진동에 임서준은 아찔거리는 눈빛으로 볼륨을 다 죽였다.

[오빠, 저 하경이에요. 우리 오빠가 이제 안 될 것 같아요! 피를...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요.]

[그리고... 날 쳐다보는 눈빛이 왜 이런지 잘 모르겠어요.]

[꼭 마치... 나를 잡아먹고 싶은 눈빛이에요.]

전류 간섭으로 어떤 메시지는 소리가 잘 안 들렸다.

지구 종말로 통신에 심각한 영향을 미쳐서 3시간 안으로 서서히 중단될 것이며 이 문자도 5분 전에 도착한 문자였다.

임서준은 휴대폰을 꽉 잡았다.

갖은 좀비를 헤치면서도 떨림 없던 두 손인데 지금은 정처 없이 파르르 떨었다.

안정우의 몸 상태가 그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악화하고 있었다.

이제 곧 좀비로 변할지도 모르니 더는 지체할 수가 없다.

에돌아 가려던 임서준은 허리를 곧게 펴고 리커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연신 앞으로 돌진했다.

쿵, 쿵!

바닥이 마구 뒤흔들리자 대형 괴물 리커도 무언가를 알아챈 듯 일그러진 얼굴에 거대한 콧구멍으로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쾅, 쾅, 쾅...

불현듯 리커가 어마어마한 몸덩이로 미친 듯이 달려왔다.

길옆의 차들은 기차에 부딪힌 것처럼 죄다 튕겨 나갔다.

괴물은 곧장 생명의 인기척을 느꼈고 둘의 거리가 바짝 좁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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