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임서준이 침울한 표정으로 옥상에서 뛰어내렸다.정신 충격이 끝난 뒤 사람들은 편두통 말곤 딱히 큰 문제가 없었다.종말 게임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안정우의 목숨도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는 걸 뜻한다.시간이 급박하니 도시의 메인 구역을 지나서 얼른 운전 가능한 차를 찾아야 한다.이대로 걸어가는 건 당최 목적지에 이를 수 없다.지금 이 도시에 적어도 좀비가 수백만 마리는 분포됐으니 아무리 그가 각성자라고 할지라도 좀비 무리를 뚫고 나갈 순 없다....윤제시 외곽.빨간색 국산 중장비 트럭이 미친 듯이 질주하며 길거리의 좀비들
콰당.임서준은 리커가 집어던진 차를 있는 힘껏 피했다.길을 에돌아 가려 했더니 되레 원위치로 돌아왔다.가장 짧은 직선거리에 리커가 있으니 아예 돌아갈 수가 없었다.괴물은 마치 폭탄을 집어 던지듯 세단 한 대를 내던졌다.무슨 수를 써서든 이 괴물을 비좁은 거리로 끌고 가서 죽여야만 한다.임서준은 재빨리 머리를 굴리다가 뒤에 차들이 적은 아파트 단지로 들어갔다.고급 주택 6층.도난 방지 창문에서 이제 막 포기하려던 윤제 건설 대표가 불현듯 자동차 경적을 들었다.어찌 된 영문인지 내려다봤더니 임서준이 다시 돌아왔다.그는
‘바로 여기야!’오래된 아파트가 다 시든 덩굴로 뒤덮여 있었다.임서준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문패를 보며 감격에 겨웠다.이제 1초라도 지체할 수가 없다.그는 짧디짧은 5분 사이에 수백 마리 좀비 떼를 뚫고 여기까지 왔다.작전복은 끈적끈적한 피가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가죽 부츠 밑창은 부서진 살덩이로 가득했다.부러진 소방 도끼도 어느새 리커의 반쪽 척추뼈로 갈았다.피의 사투를 벌인 임서준은 겉모습만 보면 시체 무덤에서 기어 나온 괴물을 방불케 했다.“정우야! 하경아!”그는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문 앞에 산더미를 이룬
순간 임서준의 두 눈이 반짝였다.[구원자 미션 시스템이 작동하였습니다.][미션 정보: 2급 변이체 봉합자를 격살합니다.][미션 등급: 위험!][미션 제한 시간: 240시간.][미션 보너스: 항체 혈청 3개 (체내 좀비 바이러스를 제거함).][미션 내용: 윤제시는 12시간 이내로 위험 레벨 2급 좀비가 탄생할 테니 최대한 빨리 격살해야 합니다. 240시간이 지나면 그 좀비들은 완전체 형태인 공포 레벨 3급으로 변신할 것입니다.]임서준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펜던트 모양의 두 물체가 그의 손에 떡하니 쥐어졌다.차갑고 묵직
임서준만이 그녀의 유일한 버팀목인데 절대 이상한 낌새를 드러내선 안 된다.다만 침착한 표정 아래 그의 마음은 파도처럼 일렁였다.수많은 궁금증이 터져 나왔으니까.구원자 모드가 작동된 후 아주 실용적인 심판의 눈을 그에게 부여했고 또 때마침 안정우 남매를 구원할 보너스를 챙겼다.이건 임서준만을 위한 선물이나 다름없었다.그는 이 시스템이 생기게 된 배후의 뜻을 연구하기 시작했다.구원자라, 그는 대체 누구일까?임서준? 아니면 그의 주위 사람? 또 혹은 인류 전체?이게 만약 인류 문명이라면... 임서준은 저도 몰래 헛웃음이 새
“오빠, 가려고요? 우리 오빠... 괜찮겠죠?”안하경이 벽에 기대 문을 수선하는 임서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종말의 종자도 모르는 그녀는 임서준이 해독 약제를 안 가져오면 어떤 결말을 빚을지 전혀 모른다.그저 뒷짐을 지고 가녀린 손으로 옷 끝자락을 꼼지락거렸다.긴 치마 아래에 새하얀 다리가 드러났는데 무릎에 찰과상을 입었다.새하얀 원피스가 피와 먼지로 물들어서 조금 어수선해 보였다.그녀는 가녀린 몸을 겨누며 사색이 된 얼굴로 임서준을 쳐다봤는데 그 모습이 실로 안쓰러웠다.쾅.임서준이 조심스럽게 철문을 다시 조립했다.
게다가 지금 상태가 아주 악화하여 반드시 휴식을 취해야 한다.연이은 살육과 각성자의 스킬 사용으로 체력이 고갈됐고 의지로 겨우 버티는 중이다.그는 안하경을 품에 꼭 안았다.안하경은 그의 가슴팍에 머리를 묻고 몸을 파르르 떨었다.“오빠… 나 너무 무서워요.”임서준은 소녀의 몸에서 전해지는 떨림을 고스란히 느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조용히 그녀를 끌어안고, 오른손으로 조심스럽게 등을 쓸어내렸다.말 한 마디 건넬 수 없을 만큼, 세상은 이미 너무 조용하고 무서워졌다.…그 긴 밤 동안,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
떠나기 직전까지 안하경은 단잠에 빠졌고 안정우도 상태가 많이 호전된 채 고이 잠들어 있었다.예외가 없다면 안정우는 잠시 후 깨어날 것이다.임서준은 좀비 시체를 몇 개 구해와서 문 앞에 쌓아뒀다. 생존자의 인기척을 없애야 하니까. 또한 갖은 잡동사니로 문 앞을 단단히 막아놓았다.그제야 임서준도 안심하고 자리를 떠났다.다만 문밖에 생존자가 더 있을 것 같은데?실은 물건을 옮길 때 뛰어난 청각으로 맞은편 집안에서 나는 소리가 얼핏 들렸다.그 사람은 임서준이 눈치채지 못한 줄 알고 조심스럽게 도어뷰어로 그를 관찰했다.한편 임서
복도 끝에서 임서준은 잠시 멈춰 서서 생각에 잠겼다.그는 전생에 이 호텔에서 한 마리의 변이체가 나타났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 어디에서인지는 몰랐다.그 변이체는 사람들에게 블러드 마녀라고 불리는데 그 수단이 극도로 잔혹했다.비록 실력은 강하지 않았지만, 말세 초기에는 윤제시의 모든 생존자가 그녀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 정도였다.이유는 간단했다. 블러드 마녀는 학살을 즐겼고, 그녀 손에 죽은 플레이어들은 모두 비인간적인 고문을 당했기 때문이다.“설마 층마다 하나씩 청소하며 찾아야 하나?”임서준은 중얼거리며 약간 난
수정은 임서준이 전혀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모습에 얼굴에 초조함이 감돌았다.복도에 널브러진 좀비 시체들은 너무나도 소름 끼치는 광경이었다.“김 청장님, 일단 저 사람 뒤를 따라가는 게 나을까요?”김국현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지난 이틀 동안, 그는 좀비가 사람을 잡아먹는 끔찍한 장면을 수없이 목격했다. 만약 임서준이 복도를 정리하지 않았다면 그는 절대 밖으로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임서준이 점점 멀어지는 모습에 두 사람은 허둥지둥 뒤를 따라가며 뛰기 시작했다....8층.무거운 방화문을 밀어젖힌 임서준의 시선이
그는 현재 각성자 레벨로나, 플레이어 레벨 모두 단 한 마리의 변이체만 처리하면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1단계 상승하는 순간, 그의 전투력은 질적인 도약을 이룰 것이 분명했다.곧 있을 변이체와의 혈전에서 온주아가 함께한다면 오히려 발목만 잡힐 뿐이다.그녀의 진정한 가치는 며칠 후 각성하여 임서준과 함께 봉합자와의 전투에 참여하거나, 후에 세력을 구축할 때 정신력을 제공하는 후방 요원으로 해야 할 역할이었다.온주아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영화 속 여자 조연처럼 쓸데없이 강한 척하는 멍청이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옥상 문의 철제 자물쇠를 맨손으로 비틀어 뜯어내고 난 임서준은 온주아를 데리고 비상계단을 통해 호텔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이미 오후 시간.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호텔의 창문들은 모두 꽁꽁 닫혀 있었고, 전력 공급이 끊긴 탓에 실내는 어둑어둑했다.9층 복도에는 몇 마리 좀비들이 의미 없이 배회하고 있었다. 빨간 카펫 위에는 검붉은 반점들이 곳곳에 묻어있었다. 고급 벽지로 장식된 통로 벽면에는 피가 튄 듯한 패턴이 선명했다.상반신만 남은 여성 좀비가 한 손으로 비틀거리며 기어 다니고 있었다. 그 뒤로는 남학생처럼 생긴
“괴... 괴물이다!”꽃집 주인의 비명에 좀비들은 더욱 광포해져 문 앞에 쌓인 진열대를 마구 들이받기 시작했다.멘탈이 진정으로 무너진 듯, 꽃집 주인은 뚱뚱한 체형과는 어울리지 않는 속도로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딸칵.방문이 안쪽에서 잠기더니 문 뒤로 무거운 물건을 끌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문을 막으려는 모양이었다.온주아는 잠시 멍해져 있다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그러나 오른손은 무의식적으로 임서준의 팔을 움켜쥐더니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2층의 닫힌 문을 향해 애처로운 시선을 던졌다.그녀는 꽃집 주인이 좀비를
임서준은 미칠 듯한 희열에 사로잡혔고 머리끝까지 피가 끓어오르는 듯한 느낌이 밀려왔다.1등급 초능력 식물과 2등급은 단순히 이름 한 글자 차이일 뿐이었지만 효과는 천지 차이가 났다.전생에서 무려 3년 동안, 그는 채팅창에서 단 한 번뿐인 2급 초능력 식물의 희미한 정보를 목격했을 뿐이었다.그 한 줄의 정보는 동부 전투 구역의 수십 명의 2계단 각성자들을 광적인 쟁탈전으로 몰아넣었다.결국 한 명의 2급 최정상급 각성자가 자신의 팀원 수천 명을 죽음으로 내몬 끝에야 얻을 수 있었다.어째서 이런 곳에 2급 초능력 식물이 존재하는
종말 사태 전 가치로 계산한다면 초능력 식물 한 그루가 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건 전혀 과장된 것이 아니다.그뿐만 아니라, 임서준을 더욱 기쁘게 한 것은 바로 그 추가 속성이었다.‘독성 저항치 +20%?’이건 뜻밖의 행운이었다.임서준은 초능력 식물이 특수 효과까지 가지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독성 저항치라는 이 추가 저항은 실로 실용적었다.이 저항치는 단순히 좀비화 시간을 늦추는 게 아니라, 저항력에 따라 일정량의 독소를 아예 무효화시키는 능력이었다.좀비에게 살짝 스치거나 긁히는 정도의 상처라면 임서준은 그냥
이 여자는 고마운 줄 모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갈수록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또 소란을 피운다면, 임서준은 망설이지 않고 그녀를 한 방에 차려던 참이었다.멀리 있는 좀비들이 이미 소리를 듣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가게 입구가 좁아서 짧은 시간 안에 초능력 식물을 찾지 못한다면...시간만 끌다가 대량의 좀비를 불러오게 되면 그조차도 상당한 골칫거리가 될 터였다.지폐가 바닥에 떨어지자 뚱뚱한 꽃집 주인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재빨리 땅에 떨어진 돈을 주웠다.그녀는 도끼를 든 온주아를 힐끔 쳐다보더니 돈을 주머니에 쑤셔 넣은
“옆차기!”임서준은 힘을 모아 몸을 돌리며 가까운 좀비를 걷어찼다.표준적인 군사 격투 기술의 발차기였다.쿵!입에 피와 살점을 가득 문 좀비가 막 반응하려는 순간, 포탄처럼 셔터 쪽으로 날려가살점이 철판에 부딪히는 소리가 귀를 찔렀다.멀리서 배회하던 좀비들이 피 냄새를 맡은 상어처럼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들어가요!”쿠웅!임서준이 문을 난타하며 상반신만 남은 좀비를 발로 짓밟았다.온주아도 뒤이어 비틀거리며 도끼를 휘둘러 마지막 좀비의 머리를 베어 버렸다.꽃집 2층, 창문 뒤에서 엿보던 한 쌍의 눈은 충격과 기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