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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화

Author: 최한울
윤제시 부영로 18번지.

임서준은 텅 빈 거리를 터벅터벅 걷다가 별안간 속도를 올렸다.

쾅.

다짜고짜 구석의 가게 대문을 차버리자 단단한 가죽 부츠가 문에 찍히며 굉음을 냈다.

윤제시 유흥 거리는 낮에 거의 인기척이 없지만 밤이 되면 술집과 노래방들이 하나둘씩 문을 열어 북적거리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대충 만들어놓은 철문이었던지라 발로 몇 번 차버리니 금세 틈이 생겼다.

저녁에 도박이 이뤄지는 이 ‘찻집’은 경비원이 문단속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어차피 검은 세력의 밀집 지역이라 감히 여기 물건을 훔칠 인간은 없으니까.

“누구야? X발 죽고 싶어?”

찻집 안에서 팔에 온통 문신을 새긴 중년 남자가 담배를 지그시 물고 나왔다.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나오는 모습이 영락없는 건달이었다.

흐릿한 방 안에 인테리어는 나름 잘 되어 있었다.

임서준은 싸늘한 표정으로 허리를 숙이고 가게에 들어와 휴대폰 위치를 대조해 보았다.

노선과 표기된 빨간 점이 드디어 겹쳐졌다.

“X발 내 말 안 들려? 귀먹었냐?”

“여기네.”

임서준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주먹을 휘날리는 중년 문신남을 아예 무시했다.

곧이어 휴대폰을 넣고 홀가분하게 몸을 피하면서 팔꿈치로 가격했다.

마치 예측이라도 한 듯 전생의 풍부한 작전 경험을 되새기며 문신남의 뒤로 가더니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척추를 정확히 부러뜨렸다.

문신남은 딱딱한 팔꿈치에 맞으니 척추가 부러지고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

“닥쳐.”

곧이어 오른쪽 주먹이 휙 소리를 내며 날아왔다.

임서준은 주먹 한 방에 그를 바닥에 쓰러 눕혔다.

문신남은 고래고래 욕설을 퍼부었고 턱이 바닥에 부딪힌 순간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X발 죽고 싶어?”

문신남은 원망과 분노에 섞인 비명을 지르며 겨우 몸을 일으키려고 오른손으로 허리를 짚었다.

이에 임서준이 차갑게 노려보며 발로 힘껏 짓밟았다.

딱딱한 신발 바닥으로 문신남의 태양혈을 짓밟았더니 그는 반항할 힘조차 없어서 끝내 기절하고 말았다. 이제 막 꺼냈던 비수도 바닥에 떨어트리고 임서준에게 걷어차여서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한편 임서준은 찻집 내부를 두리번거렸다.

사실 전생에 지구 종말 직전, 일부 조짐이 보였다.

현실과 이차원 공간이 겹쳐지는 노드가 종말 직전에 이미 나타났으니까.

기억 속에 이 가운데서 아주 드문 장비가 나타났었다.

그것은 공간의 파편을 융합하는 반지였는데 영화에서나 소설에서 모두가 챙기고 있는 이 반지가 정작 지구 종말 앞에서는 희귀한 존재였다.

그뿐만 아니라 장비도 훨씬 줄어들었다.

평소의 게임처럼 무릇 괴물이면 폭파할 수 있는 장비가 절대 아니다.

지구 종말 게임에서는 일반인의 실력을 훨씬 초월하는 각성자들이 죽을 때까지 자신만의 장비를 챙기기 힘들었고 공간 반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전생에 이 소중한 공간 반지를 어떤 건달이 챙기게 되었는데...

그는 이 장비로 천부적 재능을 각성했을 뿐만 아니라 반지의 저장 기능으로 안전 구역까지 만들었다.

공간 반지는 물자를 축적하고 온도와 신선도를 유지하게 해준다.

다시 말해 외출할 때 살인 방화를 저지를 수 있는 유리한 무기로 쓰일 수 있다.

임서준은 기대에 찬 눈길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30분 후.

촤르륵.

그는 속절없는 표정으로 문신남의 머리에 찬물을 끼얹었다.

아무것도 못 찾았으니까.

찬물 세례를 당한 문신남은 몸을 움찔거리다가 욕설을 퍼부었다.

“이런...”

다만 그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임서준이 또다시 그의 치아를 발로 걷어찼다.

피가 철철 흘러내려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묻는 말에만 대답해. 쌍욕 박으면 죽는다!”

이 녀석은 대체 왜 입만 열면 욕설인지 이해가 안 됐다.

한편 임서준은 한쪽 발로 그의 목을 짓누르고 싸늘한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일단 반항하기만 하면 당장에서 죽여버리고 천천히 찾아보면 그만이니까.

“알았어!”

문신남은 침을 꿀꺽 삼키며 그제야 주제 파악이 됐는지 두려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평소에 건달이랍시고 갖은 거만을 떨었는데 진짜 고수 앞에서 찍소리도 못하는 문신남이었다.

“반지 어디 있어? 혹은 액세서리 같은 거 어디 뒀어?”

문신남은 멍하니 넋을 놓았다. 임서준이 그냥 시비 걸려고 찾아온 줄 알았는데 지금 이 상황은 물건을 훔친다?

아니, 그게 아니라 물건을 뺏는 경우였다.

‘진작 말하지!’

문신남은 속상한 표정을 지었다.

어젯밤에 늦게까지 카드게임을 하다가 여기서 잠들었을 뿐이고 만약 임서준이 물건 찾으러 온 줄 진작 알았다면 절대 먼저 공격할 리가 없을 텐데...

“그건 나도 몰라. 내가 여기 대표는 아니거든.”

문신남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목을 움츠리고 우물쭈물 대답했다.

다만 임서준이 더 날카롭게 째려보자 이제 곧 죽일 것만 같아서 재빨리 해명했다.

“2층 사무실에 뭐가 많이 들어있던 것 같은데 거기 아마 문 잠갔을 거야!”

퍽.

임서준은 원하는 대답을 들은 후 문신남의 태양혈을 힘껏 걷어찼다.

거대한 충격에 문신남은 그대로 기절했다.

‘문이 잠겼다고? 껌이지 그건.’

부대 출신 임서준은 문 따는 기교도 배운 적이 있다.

30분 후 그는 소방용 도끼로 가차 없이 문을 땄다.

값비싼 나무문에 도난 방지 잠금장치가 아주 잘 되어있었는데 문 한 가운데 죄다 도끼로 찍은 흔적이었다.

우아한 방식으론 결코 문을 딸 수가 없으니까.

안에 들어선 임서준은 조명을 켜고 내부를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지금 이건 공간의 파동이야?”

오랫동안 방을 비워둔 탓인지 곰팡냄새가 허공을 맴돌았다.

한편 구석 자리에 주먹만 한 크기의 신비한 검은 상자가 허공에 붕 떠 있었다.

임서준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검은 상자에 섞인 은빛을 빤히 쳐다봤다.

‘저건... 공간 반지야!’

그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전생에도 이 반지는 주위를 떠들썩하게 했다.

무릇 윤제시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그 건달이 바로 여기서 슈퍼맨이 되었다.

하찮은 일반인으로부터 실력이 막강한 각성자가 되었으니까.

또한 교외에 안전 구역까지 만들었다.

전설 속의 장비가 바로 눈앞에 있으니 임서준은 선뜻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 촉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런 이상한 낌새를 고려할 새도 없이 재빨리 허공에 손을 내밀고 반지를 챙겨왔다.

우웅.

순간 파동이 이어지고 섬뜩한 기운이 블랙홀에서 새어 나왔다.

쿵.

블랙홀에서 갑자기 포효가 울려 퍼지고 짙은 죽음의 기운이 주위를 뒤덮었다.

‘도망쳐야 해!’

임서준은 반지를 챙기고 줄행랑을 쳤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린 게 틀림없었다.

전생에는 이런 인기척이 있을 거라고 전혀 들은 바가 없는데?

미리 반지를 챙겨가서 이러는 걸까?

임서준은 더 생각할 겨를 없이 냅다 밖으로 달려나갔다.

은백색의 반지를 손에 꼭 잡은 채 말이다.

[띠! 종말 게임 플레이어가 검측되었습니다.]

[띠! 검측에 실패했습니다. 데이터 바디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경고! 경고!]

귀청이 째질듯한 경보음이 그의 머릿속에 맴돌았고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다.

짙은 살기가 점점 깊게 퍼져 흐르고 마치 넝쿨 채 밖으로 뻗어 나갈 것만 같았다.

이제 더는 도망칠 곳도 없다.

임서준은 눈 딱 감고 2층 창문에 머리를 박고서 뛰어내렸다.

바닥에 떨어진 순간 극도의 무기력함과 암흑의 기운이 그의 시야를 흐렸다.

서서히 의식이 사라지고 그렇게 기절해버렸다.

손에 쥔 반지는 종적을 감추더니 그와 한 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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