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박민호는 당연히 윤석후 윤소현 부녀의 헛소리를 믿지 않았다.“아니, 용돈만 좀 주면 돼, 누나.” 박민호가 웃으며 말했다.“그게 뭐 대수라고.”윤소현은 눈을 흘겼다. 아무리 아빠가 다른 동생이라지만 어떻게 이렇게 무능한 동생이 있을 수 있는지.그녀는 차를 타고 떠나는 길에 박민정을 어떻게 혼낼지 고민하면서 비서에게 물었다.“박민정은 직업이 뭐예요?”앞서 그녀는 비서에게 박민정을 조사하게 했다.“에스토니아에 작은 스튜디오가 있는데 겨우 생계를 꾸려가고 있어요.”비서가 답했다.작은 스튜디오?“그 스튜디오에 손 좀 써요. 운영하지 못하게 해야겠어요.”윤씨 가문의 현재 힘으로 외국 스튜디오 하나 처리하는 것 정도는 쉬웠다.다만 윤소현이 조사한 정보들은 모두 박민정이 대외적으로 공개한 것들이고, 이전에 국내에서 자신을 히트시킨 곡들이 모두 박민정이 만든 곡이라는 사실을 윤소현은 몰랐다.윤석후가 돈이 있다고 해도 박민정의 회사 문을 닫게 할 방법은 없었다.“알겠습니다.”윤소현은 여전히 만족하지 못했다.“사람 몇 명 불러서 신림으로 따라와요.”박민정이 모욕을 당하고도 순결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유남우도 결국 그녀의 순수함 때문에 좋아하는 거잖아?...한편 신림현, 집의 거실.유남준은 반듯한 자세로 자리에 앉았다.맞은편에 있던 박민정이 그에게 물었다.“갚을 돈 많다면서 차용증은 어디 있어요?”유남준은 유남우가 왔을 때 분명 무슨 말을 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서다희한테 있어. 보고 싶으면 서다희한테 전화해서 가져오라고 할게.”“유남우 씨는 당신이 지분의 30%를 보유하고 있고, 돈이 전혀 부족하지 않다고 하던데요.”박민정은 덧붙였다.박민정은 빠르게 얘기를 끝내고 싶었다. 그가 또 자신을 속인 거라면 더 이상 함께 지내고 싶지 않았고 유남준도 이를 알고 있었다.“내가 그렇게 많이 가지고 있었으면 서다희랑 내가 왜 회사에서 쫓겨났겠어? 민정아, 내 동생 겉으로는 다정해 보여도 속은 알 수 없는 애야. 전에 얘기했잖
박민정은 그의 태도를 보고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유남우가 또 뭐라고 했어?” 하지만 유남준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맞춰봐요.” 박민정은 일부러 놀려댔다.유남준은 몸을 숙여 한 손으로 그녀를 끌어안으며 귀에 대고 천천히 속삭였다.“무슨 말을 하던 날 믿어줘야 해.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신 널 해치지 않을 거야.”박민정은 의아했다. 다시는?“엄마, 아저씨.”위층에서 박윤우가 음산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잠시 한눈을 판 사이 쓰레기 아빠가 또 엄마를 건드리기 시작했다.박민정은 윤우의 목소리를 듣고 당황한 나머지 유남준을 밀쳐냈다.그녀의 뺨은 불이 붙은 것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또다시 방해를 받은 유남준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박윤우는 내려와 박민정 앞에 다가갔다.“엄마, 나도 안아줘요.”“그래.”박민정이 아이를 안아주자 박윤우는 유남준을 향해 메롱 했지만 아쉽게도 유남준은 박윤우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아저씨, 포옹을 원하면 아저씨 엄마한테 가세요.”그 말에 박민정도 웃음이 났고 유남준은 망설임 없이 대꾸했다.“엄마 말고 아내도 안을 수 있다는 거 몰라?”이 말을 들은 박민정이 조용히 그의 손을 꼬집었다.박윤우는 쓰레기 아빠를 몇 번이나 깨물어버리고 싶었다. 뻔뻔하게 나와 엄마를 빼앗으려 하다니.“엄마, 나 오늘 밤에도 나랑 같이 자요, 네?”박민정이 거절할 리가 없었다.“그래.”유남준은 짜증이 났다. 어쩐지 어젯밤 박민정의 방으로 가도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이대로 가면 줄곧 박민정을 안을 수 없지 않나.“네가 무슨 세 살짜리 어린애야, 아직도 엄마랑 같이 자게?”박예찬이었다면 분명 부끄러워서 박민정과 함께 자지 않겠지만 윤우는 달랐다. 그는 박민정의 팔을 꼭 껴안았다.“난 백 살이 되어도 엄마 아들이니까 엄마랑 잘 거예요. 아저씨 엄마는 어디 있어요? 엄마한테 버림받고 우리 엄마를 귀찮게 하는 거예요?”유남준은 어이가 없었고 박민정은 즐거워하며 눈이 휘어지게 웃었다.“아저씨는 어른이니까 당연히
저녁, 박윤우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박민정이 잠이 든 뒤, 그는 박민정을 두 팔로 감싸 안으며 중얼거렸다.“엄마, 난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아빠가 정말 엄마를 사랑한다면 기꺼이 받아들일게요. 하지만 만약 계속 거짓말하면 죽여버릴 거예요.”박민정은 박윤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고, 알았더라면 진작 아이를 올바르게 교육했을 것이다.박윤우는 다시 뼈가 조금 아팠는지 살며시 일어나 박민정의 이마에 뽀뽀를 하고 잠이 들었다....어느덧 설날이 다가오고, 박민정은 집안일을 마치고 두 아이와 은정숙이 입을 옷과 신발을 준비했다.윤우와 은정숙은 오래 쇼핑을 할 수 없을 만큼 몸이 좋지 않아 박민정은 치수를 재고 다시 쇼핑하러 갈 준비를 했다.유남준은 오늘 출근하지 않았다.“내가 같이 갈까?”“앞이 안 보여서 불편하잖아요. 정민기 씨한테 연락해서 운전도 하고 물건도 들어달라고 했어요.”박민정이 말했다.정민기는 이제 그녀의 전속 보디가드가 되어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녀를 따라다녔다.유남준은 앞은 볼 수 없었지만 기억이 돌아왔기에 나쁘지 않은 정민기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그는 다소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감히 내색하지 않았다.“그럼 지금 가려고?”유남준이 다시 물었다.“네, 그렇죠.”박민정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왜요?”“이따 서다희한테 내 치수 보내라고 할게.”유남준은 뻔뻔하게 말했다.이 말은 박민정에게 옷을 사달라는 뜻이었다.사실 그가 치수를 알려주지 않아도 박민정은 기억하고 있었다.두 사람이 아직 결혼하지 않았을 때, 박민정은 몰래 그의 키와 체형을 측정해 옷을 잔뜩 사준 적이 있었다.그의 생일 말고도 여러 가지를 마음속으로 기억하고 있었다.몇 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만 하면 무의식적으로 그에 대한 모든 정보가 떠올랐다.하지만 당시 그녀가 아무리 잘해줬어도 유남준은 개의치 않았고 그녀가 사준 옷들은 쓰레기통에 버려지거나 불태워졌다.박민정이 침묵하자 유남준이 다시 말을 꺼냈다.“나 앞이 안 보이
신림 쇼핑몰에 도착한 박민정이 쇼핑을 하러 차에서 내리는데 정민기가 뒤따라오다가 갑자기 멈췄다.“누군가 우리를 미행하고 있습니다.”박민정이 그 말에 걸음을 멈췄다.“유남준 씨가 보낸 경호원인가요?”그리 먼 곳도 아니었고 박민정은 사람들이 많이 따라오는 것을 싫어했기에 그들이 올 가능성은 작았다.“아니요, 모르는 얼굴들입니다. 일단 쇼핑부터 하죠.”“그래요.”박민정은 정민기에게 항상 편안함을 느꼈다. 연지석은 평범한 사람 스무 명도 정민기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정민기는 죽은 시체 더미 속에서 살아서 기어 나온 사람이었다.쇼핑몰 안에서 가족들의 옷을 고르던 박민정은 두 아이와 은정숙의 옷은 잘 골랐지만, 유남준의 옷에 대해서는 조금 망설였다. 과거 유남준이 입었던 옷은 고가의 맞춤옷이었고 온통 무채색에 전혀 화사하지 않았다. 그 생각에 박민정은 유남준을 위해 특별히 밝은 색상의 비싸지 않은 옷을 골라주었다. “정민기 씨도 몇 벌 입어보지 않을래요?”입구에 서 있던 정민기는 박민정의 말을 듣고는 잠시 당황하다가 곧바로 거절했다.“괜찮습니다. 고마워요.”박민정은 생각에 잠겼다. 전에 정민기가 고향 집에 약혼녀와의 결혼을 취소하러 간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제 여자 친구가 생겨서 자신이 옷을 사주는 게 불편한 걸까?박민정은 서둘러 해명했다.“오해하지 마세요. 직접 고르시고 저는 고용인으로서 돈만 내는 겁니다. 여자 친구가 알아도 화내지 않을 거예요.”여자로서 여자 친구나 아내가 있는 남자에게 옷을 사주는 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박민기의 차갑고 무뚝뚝한 얼굴에 묘한 표정이 교차했다.“여자 친구 없습니다. 월급만 있으면 되니까 거절한 겁니다.”약혼녀와 결혼을 취소한 이유는 정해진 결혼이라 사랑도 없거니와 약혼녀의 배신 때문이었다.박민정은 더욱 당황스러워졌다.“알았어요.”정민기는 상사가 주는 혜택도 거부하는 참된 경호원이었다.그녀는 이번 달 정산이 끝나면 정민기에게 월급을 몇 배로 올려줄 생각도
정민기는 정보를 알아낸 뒤 경찰에 신고해 그들을 보냈다.이윽고 그는 차에 올라타 박민정에게 알렸다.“누군가 시킨 것 같은데 돌아가서 확인해 보겠습니다.”“그래요.”박민정 역시 자신을 해치려는 사람이 누군지 알고 싶었다.한편 윤소현은 쇼핑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자신의 차에 남아 박민정의 초라한 몰골을 기다리던 중 비서로부터 전화를 받았다.“아가씨, 박민정이 아주 유능한 경호원을 옆에 두고 있어 우리 쪽 사람들을 쓰러뜨려서 경찰서로 보냈어요.”“경호원 혼자서 우리 쪽 사람들을 전부 때렸다고?”윤소현은 믿을 수 없었다.“네.”윤소현은 화를 내며 전화기를 꽉 움켜쥐었다.“그 여자는 운도 좋아. 그쪽은 뭐 하느라 그런 쓸데없는 놈들을 데려왔어요?”비서는 감히 대답하지 못했고 윤소현은 다시 물었다. “그 여자 작업실 처리하라는 건 어떻게 됐어요?”“아, 아직 스튜디오를 못 찾았습니다.” 비서는 감히 윤소현을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윤소현은 전화를 집어 들어 그녀를 향해 내리쳤다.“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비서는 머리가 찢어져 피가 새어 나왔다.윤소현이 더 욕하려던 찰나 문득 지나가는 행인들이 이쪽을 보는 시선이 느껴지자 바로 똑바로 앉았다.“빨리 차에 타서 출발하기나 해요.”그녀는 한층 누그러진 어투로 말했다.“조심 좀 하지. 내가 휴대폰 놓쳐서 하필 그쪽을 때렸네요. 나중에 돌아가서 의사 선생님께 치료해달라고 해요.”윤소현은 겉으로는 고고한 백조처럼 행동하면서 제법 너른 아량을 베푸는 척하고 있었다.“알겠습니다.”비서는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줄곧 고개를 숙인 채 들지를 못했다.윤소현은 이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박민정이 진주에 없다는 것이다. 양쪽으로 뛰는 박민정을 상대하기에는 너무 힘들었다.윤소현은 밤이 되어서야 윤씨 저택에 돌아왔고 한수민은 일찍부터 그녀를 기다렸다.“소현아, 왔구나. 오늘 어디 갔었어?”“신림현, 왜?”윤소현은 가방을 옆으로 던져놓고 소파에 앉
애초에 은정숙의 말을 잘 들었던 박민정은 심지어 지금 은정숙이 아픈 상태였기 때문에 그녀의 뜻을 거스를 수 없어 일어나서 유남준을 방으로 데려가 옷을 입어보도록 도와주었다.박민정이 유남준을 위해 사준 옷은 대부분 캐주얼한 옷이라 입기 편했다.“옷 벗어요.”박민정은 이렇게 말한 후 새로 산 옷들을 모두 꺼내서 옆에 정리했다.준비를 마치고 유남준에게 가져다주려고 돌아서는 순간 온몸이 굳어버리며 동공이 커졌다.“왜, 왜 옷을 다, 다 벗었어요?”그런데 눈앞에 있는 남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있었다. 완벽한 비율의 몸매에 탄탄한 근육, 에잇팩 복근까지, 그리고…박민정은 당황한 나머지 얼굴에 불이 붙은 것 같은 느낌에 시선을 피했다.비록 예찬이와 윤우를 낳고 유남준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지만 두 사람이 관계를 맺은 횟수는 많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유남준의 핏줄을 위해 능숙한 척 행동했지만 정작 본론으로 들어갔을 땐 유남준이 적극적으로 리드했다.유남준은 항상 자신의 몸에 만족하고 있었기에 잘생긴 얼굴에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안에 입을 옷도 있지 않아?”박민정은 감히 그를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떨군 채 중얼거렸다.“내가 속옷 사준 것도 아니잖아요. 얼, 얼른 속옷 입어요.”그런데 유남준은 이렇게 말했다.“너무 급하게 벗어서 어디에 뒀는지 깜빡했는데 좀 찾아줄 수 있어?”박민정은 그가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았지만 빨리 끝내야겠다는 생각에 그가 옷을 놓아둔 곳을 찾으러 갔다.하지만 속옷을 찾기도 전에 유남준이 뒤로 다가왔고 박민정의 몸이 굳어버렸다.그 순간 유남준은 온몸의 피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박민정은 그의 물건이 닿는 것을 느끼며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뭐 하는 거예요?”유남준은 곧바로 한발 물러섰다.“네가 못 찾는 것 같아서 내가 직접 찾으려고.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말을 하던 그는 목에 불이 붙은 것 같았고 귓불이 뜨거웠다.박민정은 재빨리 옷을 뒤지다가 겨우 옷을 찾아 그에게 건넸다.“빨리 입어요!”유남준이
유남준은 그녀를 품에 더 으스러지게 안고 싶었다.박민정이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자신을 가둔 그의 단단한 팔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온몸이 뜨거워지는 동시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남준 씨, 이거 놔요!”목구멍이 꽉 멘 유남준은 이대로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오늘 밤 우리 같이 자자.”그의 뜨거운 입김이 귓속을 파고들자 박민정은 귓불이 빨개졌다.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벌써 두 팔로 그녀를 손쉽게 들어 올려 침대 위에 살포시 눕혔다.“이러지 마요...”거부하려고 하는 순간, 문밖에서 윤우가 다급하게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엄마, 엄마...”그 소리에 유남준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박민정은 일어나려고 하였으나 그는 큰 바윗덩어리처럼 아무리 밀어도 미동조차 없었다.“남준 씨, 비켜요, 얼른.”목소리를 낮춰 다그쳤지만 그는 역시나 아랑곳하지 않고 문 쪽으로 향해 눈길을 돌렸다.“엄마가 자니까 내일 다시 찾아.”윤우는 문밖에서 그 말을 듣고 잠시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코앞에서 쓰레기 아빠가 엄마를 괴롭히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윤우는 이내 더 세게 문을 두드리며 소리 질렀다.“아저씨 나쁜 사람이야. 빨리 우리 엄마 내보내요! 엉엉... 우리 엄마 내놔... 엉엉... 엄마, 엄마...”윤우의 울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간할 수 없는 박민정은 너무 급한 나머지 유남준의 다부진 어깨를 덥석 깨물었다. 그 바람에 유남준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지만 여전히 끄떡도 하지 않고 오히려 그녀를 더 꽉 껴안았다.“민정아, 제발. 오늘은 나랑 같이 있어. 앞으로 네가 뭐라고 하든 다 네 뜻대로 할게.”박민정은 순순히 그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더 세게 깨물었다. 그러자 유남준의 잇새에서 아픔을 참는 나지막한 신음이 흘러나왔다.문밖에서 윤우는 아직도 쉴 새 없이 큰 소리로 떠들고 있었다.“나쁜 놈, 엄마 안 내놓으면 나 경찰에 신고할 거야!”박민정은 입에서 피비린내가 나는 것을 느끼고서야 잠시
그녀의 이부언니, 윤소현!이 답을 듣게 되는 순간 박민정은 약간 얼떨떨해졌으나, 귓가에서는 정민기의 목소리가 계속하여 들려왔다.“어제 그 일을 뒤처리하면서 그놈들한테서 들었는데, 계획대로라면 민정 씨를 잡아가서... 성폭행할 예정이었다고 하네요.”정민기는 입에 담기 어려운 듯 조금 경직된 말투로 그 세 글자를 내뱉었다.그의 말을 들은 박민정은 저도 몰래 주먹을 쥐었다.“알겠어요.”전화를 끊은 후 박민정은 생각에 빠졌다. 윤소현이 자신을 그 정도로 미워할 이유가 대체 뭘까...유일하게 미움을 살만한 일이라면 아마 유남우에 관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자신은 유남우와 아무런 관계도 아니지 않은가.생각 끝에 그녀는 비서 진서연한테 연락해 윤소현의 연락처를 보내달라고 했다. 전에 협력한 적이 있었으므로 진서연은 윤소현의 연락처를 갖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소현의 전화번호가 찍힌 문자가 도착했다.진서연은 이어서 물었다.“보스, 윤소현과 또다시 협력하려고 그러시는 거예요? 제가 미처 얘기 드리지 못한게 있는데 며칠 전에 저한테 연락이 왔었어요. 보스님의 곡을 또 사고 싶다고 하더라고요.”박민정은 그녀한테 답장했다.“아니야. 사적인 일이야.”“아... 그러시구나.”진서연은 문득 또 다른 일이 생각나 박민정에게 말했다.“참, 보스. 최근에 누가 저희 해외에 등록한 유령 작업실을 몰래 조사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작업실은 박민정이 돌아온 후 만들어낸 대외용 멘트일 뿐이다.진서연의 말을 들자 그녀는 진주시의 누군가가 조사하고 있음을 바로 알아챘다.“넌 신경 쓰지 말고 네 일에 집중해.”“오케이.”만약 누가 감히 함부로 덤빈다면 혼쭐을 내주리라 진서연은 생각했다.귀엽고 온순한 외모와는 달리 진서연은 산타 국제전 여자 조에서 챔피언을 따낸 프로 선수급 유단자로서 보통 남자들은 전혀 그녀의 상대가 될 수 없다. 하나 이편에 있는 박민정은 그들이 누구인지 관심이 없었다. 유령 작업실을 등록 한 건자신이 하는 일을 유남준한테 들키지
유남준의 수염은 덥수룩하게 자라있었고 정돈되지 못한 모습이 전반적으로 초췌해 보였다.“이지원 조사하고 왔는데, 민정이의 실종과는 아무 관련도 없던데요. 나한테 뭘 숨기고 있는 거예요?”만약 윤소현이 임신 중인 아이가 유씨 가문의 아이만 아니었다면, 그녀가 정수미의 양녀만 아니었다면 유남준은 당장이라도 윤소현을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윤소현의 수려한 얼굴은 멍한 표정이 되었다.“그럴 리 없어요, 이지원이 분명 저한테 그랬다고요. 박민정이랑 그 두 아이들 처리해준다고...”윤소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유남준은 천천히 윤소현의 앞으로 다가갔다.“말할 거예요, 안 할 거예요?”“정말로 이지원이었어요.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고요.”윤소현이 다시 대답했다.유남준은 바닥나버린 인내심에 몸을 돌려 방을 나갔다.윤소현은 다시 어둠과 침묵 속에 갇혀 버렸다.“남준 씨, 얼른 저 내보내 주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 제발 나 좀 꺼내달라니까!”그제야 윤소현은 자신이 유남준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밖으로 나온 유남준은 휴대폰부터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가 몇 통이나 찍혀있었지만 그중 일부는 정수미에게서 온 것들이었고, 다른 몇 통은 고영란에게서 온 것이었다.그는 제일 먼저 정수미에게 전화를 걸었다.“무슨 일이시죠?”“유 대표, 민정이 소식은 있나요?”정수미가 조심스레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아직 없습니다.”유남준이 대답했다.정수미는 그 대답을 듣는 순간, 더욱 절망스러워졌다.“그럼... 소현이는 어떻게 됐나요?”윤소현은 어릴 때부터 정수미가 직접 지켜봐 왔던 아이였고, 그 아이와 깊은 정이 쌓여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현재 임신 중이었다.“소현 씨도 아무 일 없습니다.”“그럼, 소현이 좀 풀어줄 수 있을까요? 내가 직접 물어볼게요.”정수미가 다시 물었다.정수미는 어렸을 때부터 온갖 호사만 누리며 살아온 윤소현이 그런 감금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수미 본인 역시 윤소현에게 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엄마...”이지원은 떠보듯 정수미를 부르고는 말을 이었다.“엄마, 언니가 사라졌어요.”그녀는 박민정의 일부터 처리한 후 윤소현에게 연락하려 했지만 도무지 연락이 닿지 않았다.정수미는 멍한 표정으로 뒤돌아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뭐?”“소현이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야?”“저도 모르겠어요. 오늘 언니랑 같이 산부인과 검진 가려고 했는데, 어딜 갔는지 갑자기 사라졌어요.‘이지원이 대답했다.정수미는 멍한 표정으로 이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상황파악을 마치기도 전에 유남준이 사람들을 데리고 그녀의 앞으로 걸어왔다.“윤소현은 제가 가둬놨습니다.”유남준이 말했다.정수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소현이는 왜 가둔 거죠?”“민정이의 실종은 분명 윤소현이랑 관련이 있으니까요.”유남준이 단호하게 말했다.그러고는 다시 시선을 이지원에게로 옮기며 말했다.“윤소현이 그러더라, 이지원 네가 내 아이들 데리고 갔다고. 민정이는 아이들 찾으러 간 거라고 하던데, 어디로 데려간 거야?”그 말에 이지원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그게 무슨 말이에요, 남준 오빠? 제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하겠어요? 저랑 민정 언니는 아무 사이도 아닌데.”하지만 유남준이 그녀의 말을 믿어줄 리 없었다.곧바로 몇 명의 경호원이 다가와 이지원을 제압했다.“끌고 가!”이지원은 순간적으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 역시 유남준의 수법을 잘 알고 있었던 탓이었다.그녀가 스스로 이곳에 등장한 것도 전부 유남우 때문이었다. 그가 이지원에게 직접 유남준을 찾아가 박민정의 실종이 자신과는 관련 없다는 사실을 어필하라고 조언해주었기 때문이었다.“오해예요, 오빠. 소현 언니가 왜 그런 얘길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정말 민정 씨 아이들 데리고 간 적 없어요.”뒤이어 그녀는 도움을 청하는 눈빛으로 정수미를 바라보았다.“엄마, 엄마.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저 그동안 집에만 있었고, 어디 간 적도 없어요.”하지만 정수미는
정수미는 그 질문에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가 대답했다.“유 대표는 이미 내가 민정이 친엄마라는 걸 알고 있었죠?”유남준은 그 말에도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되물었다.“그런데 대표님은 제 말 안 믿었잖아요.”정수미는 목구멍이 막힌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다 내가 어리석었어요, 내 잘못이에요... 저도 너무 후회 중이에요.”그동안 윤소현이 늘 박민정에 대해 안 좋은 얘기만 늘어놨던 탓에 정수미는 박민정에 대한 인식이 별로 좋지 못했다.그 탓에 정수미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박민정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줘버렸다.박민정이 자신을 찾아왔던 그때도, 정수미는 그녀를 가차 없이 비웃고 쫓아내 버렸다.“지금 민정이 어디 있어요? 찾았어요?”눈시울이 붉어진 정수미가 다시 물었다.유남준은 폐허로 시선을 돌리며 자신의 손에 꽉 쥐고 있던 반지를 보여주었다.“마지막으로 추적된 곳이 여기인데, 방금 민정이 반지를 찾았어요.”그가 낮게 대답했다.그 말을 들은 정수미는 몸을 휘청이며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한 기색을 보였다.놀란 비서가 다급히 정수미를 부축해 주었다.“대표님.”“얼른, 얼른 주변 수색해!”정수미가 지시했다.“알겠습니다.”비서는 곧바로 인력을 충원해 폐허 속에 남았을지도 모를 박민정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하지만 밤이 깊도록 폐허 속을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박민정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저 박민정과 관련된 물건만 몇 가지 발견되었을 뿐이었다.비서는 멍하니 서 있는 정수미의 곁에 서서 슬쩍 말을 꺼내 보았다.“아가씨 말이에요, 설마... 무슨 일 생긴 건 아니겠죠?”그 말에 정신을 차린 정수미가 차가운 눈빛으로 비서를 올려 보았다.“지금 무슨 헛소릴 하는 거야?”살아 있으면 살아 있는 대로 봐야 할 것이고, 죽었다면 죽은 대로 시체를 봐야만 했다.정수미는 박민정이 이렇게 실종됐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민정이 여기 없는 거 확실해. 다른 데서 계속 찾아봐.”“네.”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유남준도 폐허
“뭐라고요?”정수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어떻게 실종됐다는 거예요?”“저도 잘은 몰라요.”설인하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아무튼 벌써 이틀이에요. 이틀 동안 찾아 헤매는 중인데 도통 안 보이네요.”그 말을 들은 정수미가 몸을 휘청거렸다. 다리에 힘이 풀려버려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지만 그런 그녀를 비서가 붙잡아 주었다.“조심하세요, 대표님.”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어지러움에 정수미는 비서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이게 어떻게 된 거야? 겨우 찾았는데 실종이라니?”“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 누가 데려갔는지는 알아냈으니까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예요.”비서가 애써 정수미를 위로했다.“그래, 얼른 사람 보내서 민정이 좀 찾아내.”정수미가 말했다.이번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는 박민정을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박민정을 찾아낼 것이다.“알겠습니다.”정씨 가문에서도 사람들을 시켜 전국적으로 박민정을 수색하기 시작했다.힘없이 자리를 뜨는 정수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설인하는 의아했다. 정수미가 왜 갑자기 이런 식으로 변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민정 씨, 제발 빨리 좀 돌아와요.”설인하가 혼자 중얼거렸다....한편, 유남준은 거의 진주 시내 전체를 뒤집다시피 했지만 박민정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유남준은 주변 지역에까지 사람을 보내 수색작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그렇게 마침내, 단서를 발견했다.유남준은 즉시 차를 몰고 그곳으로 향했다.그리고 정수미는 유남준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 역시 박민정을 찾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결국, 두 세력이 힘을 합쳐 공동으로 박민정을 수색하기로 했다.그렇게 수색 속도는 한층 빨라졌다.사람들은 곧장 단서가 있는 곳으로 향했지만 도착했을 때 그들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오직 불에 다 타버린 집뿐이었다.차에서 내린 유남준은 망설임 없이 까맣게 불타버린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그의 심장이 더 빠르게 뛰었다.“민정아!
그녀가 쥔 친자 확인 감정서에는 두 사람이 모녀 관계라고 적혀 있었다.비서는 다른 병원에서도 받아온 서류들을 건네며 말했다.“이번엔 틀림없습니다, 대표님. 박민정 씨는 대표님의 친딸이 확실합니다. 지난번엔 저희가 오해한 것 같습니다.”친자 확인 감정서를 쥔 정수미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어떻게... 그 걔가 어떻게 내 딸이야?”박민정이 자신의 딸이라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정수미는 너무 갑작스러운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그녀 역시 자신이 친딸에게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그 짓들이 얼마나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이제 어떡해야 하지?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 어떻게 날 이런 식으로 갖고 놀아?”정수미의 눈시울이 서서히 붉어졌다. 친자 확인 감정서를 손에 꼭 쥐고 있던 그녀의 마음은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 만큼 괴로웠다.“내가, 내가 그 아이한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엄마라는 작자가 딸한테 오히려 모욕감만 잔뜩 줬으니...”정수미의 마음은 견딜 수 없이 힘들었다.오랫동안 찾고 있던 딸이 바로 옆에 있었는데 그 사실조차도 모르고 살아왔다.더군다나 친딸을 괴롭히는 자신의 양딸을 그렇게나 적극적으로 돕기까지 했다.비서 역시 이런 운명의 장난에 착잡함을 느끼고 있었다.“대표님께서 일부러 그러신 것도 아니잖아요. 조금 더 일찍 아셨더라면 민정 씨를 해치지 않으셨을 겁니다.”정수미는 비서의 위로에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책을 멈추지 않았다.“그 아이가 날 찾아왔을 때도 난 상처만 잔뜩 줘버렸어. 얼마나 아팠을까.”오랜 세월 동안 눈물이라는 것을 거의 흘려보지 않았던 정수미였지만 하늘의 장난과도 같은 이 상황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난 정말 나쁜 년이야! 어떻게 친딸한테 그럴 수가 있어!”만약 이 세상에 후회 약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전 재산을 내걸고서라도 얻고 싶을 지경이었다.당장이라도 과거로 돌아가 정신 차리라며 자신의 뺨을 수차례 내리치고 싶은 심정이었다.“가야
하지만 이 세상은 생각보다 컸고, 유남우가 박민정의 모든 인간관계를 전부 끊어버린 지금, 유남준은 어쩌면 평생 박민정을 찾지 못할 지도 몰랐다.“신경 쓸 필요 없어요.”유남우가 대답했다.“네.”이지원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그럼 약속한 건 어떻게 된 건가요?”“아직 일이 다 끝난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자꾸 서두르는 거죠?”유남우가 다시 말했다.유남우를 이미 따르기로 한 이지원은 지금 모든 것을 그의 말에 따라야만 했다.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죄송합니다.”“이제 마지막까지 딱 한 단계 남았어요. 유남준한테 박민정이라는 존재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리기만 하면 되거든요.”유남우가 입을 열었다.이지원은 그런 유남우를 보면서 보통 미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여자 한 명을 위해 이렇게까지 한다는 것이었으니 말이다.“알겠습니다, 지금 가서 준비하죠.”“그래요.”이지원이 자리를 뜨자 유남우는 다시 코트를 입고 회사로 향했다.회사에 도착하자 홍주영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유남우를 바라보며 말했다.“도련님, 요즘 안색이 안 좋아보이시는데, 따로 주치의라도 불러드릴까요?”“필요없어.”유남우는 단호히 홍주영의 말을 거절했다.“주영아, 난 요즘 하루하루가 정말 기쁘거든. 나쁜 일이라곤 하나도 없어, 네가 괜한 걱정 하는 거야.”그 말에 홍주영도 더는 권하려 하지 않았다.유남우의 결재가 필요한 서류더미를 한아름 안고 온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도련님, 실례가 안 된다면 꼭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혹시 요 며칠 동안 어디 다녀오신 건가요?”유남우는 퇴근 들어 계속 외출을 하는 것 같았지만 구체적으로 어딜 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서류 위로 사인 하던 남자의 손이 순간적으로 멈추었다.“실례되는 질문인 것 같은데, 묻지 말아야 할 질문 아닌가?”그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냉기가 스며있었다.유남우의 이런 말투는 처음 들어보는 홍주영은 잠시 멍해져 있다가 한참이나 지나서야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사과를 건넸다.
하지만 유남준은 그런 윤소현의 말을 전부 믿을 정도의 바보가 아니었다.“우선 이 여자 가둬요.”그는 부하에게 명령했다.“네.”그 말에 당황한 윤소현이 말했다.“아주버님, 남우 씨를 봐서라도, 제 배 속의 아이를 봐서라고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하지만 유남준은 그런 윤소현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한 마디만 남겼다.“민정이를 찾았을 때, 민정이 입에서도 같은 말이 나온다면 그때 풀어드리죠.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각오하는 게 좋을 겁니다. 소현 씨를 구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그렇게 윤소현은 가차 없이 차에 태워졌다. 혼자 남겨진 그녀의 마음은 싸늘하게 식어만 갔다.후회가 물 밀듯 밀려왔다. 자신이 왜 박민정을 찾아갔었는지, 왜 그 일을 인정했던 건지.이제 윤소현은 더 도망갈 곳이 없었다.남준은 계속해서 인력을 충원해가며 박민정을 찾는 게 총력을 기울였다.마침내 유남준은 서다희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았다.“대표님, 사모님께서 택시에 남기신 귀걸이를 찾았습니다. 택시 안에 내장된 블랙박스 영상으로 사모님의 이동 경로까지 모두 파악했습니다.”“알겠어, 그 영상 나한테 보내줘. 그 경로대로 찾아봐야 하니까.”“네.”수색 범위가 좁아지자 유남준은 김인우와 방성원의 인력까지 동원해 박민정을 찾기 시작했다.한편, 이지원은 유남우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있었다.“장소 바꿔요. 유남준이 추적 중인 모양이니까.”“네.”이지원이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 유남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두 아이는 남겨놓고 가요.”두 아이가 작전을 방해할지도 몰랐다.이지원은 딱히 내키지 않았지만 유남우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이렇게 된다면, 남우 씨가 어떻게 저를 유남준한테서 구해준다는 거죠? 유남준 그 냉혈한이 작정하고 저를 공격하면 어쩔 건데요?”이지원은 윤소현 같은 그 바보가 유남준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지원 씨가 비밀만 지켜준다면, 제가 책임지고 지켜드리죠.”유남우가 약속했다.“좋아요.
윤소현은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제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아내랑 아이를 못 지킨 건 아주버님인데, 왜 그걸 저한테서 찾아요? 웃겨, 정말.”유남준의 인내심이 결국 바닥나 버렸다.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유남준은 곧장 CCTV를 통해 박민정이 스스로 병원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곧장 부하직원들에게 박민정이 병원을 벗어난 후의 행방을 추적하도록 지시했다.한편, 윤소현은 여전히 곁에서 비아냥거렸다.“아주버님, 제가 봤을 땐 굳이 찾을 필요도 없어 보여요. 분명 바람 나서 다른 남자랑 도망간 게 분명해요. 애도 있으면서 참... 그냥 조용히 살지...”윤소현은 끝을 모르고 혼자 계속해서 중얼거리며 비아냥거렸다. 그 순간, 유남준의 마음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윤소현에게 다가간 유남준은 조금 전의 신사다운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그는 손을 뻗어 윤소현의 목을 단단히 움켜잡았다.“네 애새끼가 20주쯤 됐다고 했지? 내가 지금 너 죽이고, 의사 찾아가서 애 꺼내라고 하면 어떨 것 같아? 우리 가문 재력 정도면 조산아 살리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거든.”그 말에 윤소현의 동공이 커지더니 눈빛이 눈에 띄게 흔들렸다. 그녀는 최대한 유남준의 말에 흔들리지 않으려 애썼지만 조금 전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던 건지 점점 땅에서 발이 떨어지더니 숨쉬기가 어려워졌다.이 미친놈은 지금 마음만 먹으면 정말 윤소현을 죽일 수 있을지도 몰랐다.윤소현은 필사적으로 그의 손을 뿌리치며 발버둥 쳐봤지만 그럴수록 자신의 목을 움켜쥔 유남준의 힘은 점점 강해지기만 할 뿐, 아무 소용이 없었다.그제야 윤소현은 처음으로 진정한 두려움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느끼게 되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유남준을 향해 눈빛으로 용서를 구했다.그녀의 의식이 점점 흐려져 갈 때쯤, 남자는 마침내 손에서 힘을 풀었다.윤소현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 채 목을 감싸고 거친 숨과 기침을 내뱉었다.“이제 말할 수 있겠지? 민정이랑 아이는 지금 어디 있어?”그 말을 하는
“그땐 내가 직접 이 애새끼 목을 졸라 죽여버릴 거니까!”이지원은 아이의 여린 목덜미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솔직히 얘도 참 귀엽게 생겼어. 네 어릴 때처럼 말이야.”순간 당황한 박민정이 외쳤다.“애한테 손대지마! 네가 원하는 게 뭐든, 시키는 대로 다 할게.”이지원은 이 말만을 기다렸다는 듯 천천히 아이의 목에서 손을 뗐다.“진작 그렇게 말했어야지. 나도 마음이 여린 사람이라, 이렇게 어린 애한테까지는 손대고 싶지 않단 말이야.”말을 마친 이지원은 다시 아이를 여자에게 넘겨주었다.혹시라도 박민정이 다시 반항할까 봐 두려웠던 것인지 이지원은 두 여자에게 아이를 이곳에 두고 가게 했다.뒤이어 누군가가 박민정의 결박을 풀고는 그녀를 의료용 침대 위로 눕혔다.앞서 나섰던 흰 가운의 남자가 다가와 말했다.“이제 눈을 감으시고, 제가 하는 말에 무조건 따르셔야 합니다. 아시겠죠?”“네.”박민정은 그렇게 천천히 눈을 감았다.아직 이성을 잃지 않은 박민정은 해서는 안 되는 일과 해도 되는 일을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그 남자의 말에 따르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봤지만 결국엔 그가 유도하는 무의식 속으로 빠져버리고 말았다.몸이 지나치게 허약해졌던 박민정은 의사에 유도대로 무의식 속에서 양어머니가 자신에게 했던 모든 일들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그리고 뒤이어 친모인 정수미가 했던 말들도 떠올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박민정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하더니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흰 가운의 남자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이지원을 바라보며 말했다.“이런 치료는 하루 이틀만으로는 안 됩니다. 꾸준히 받아야 제대로 된 효과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이지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알겠어요.”의사들이 떠나는 것을 지켜보던 이지원은 이내 휴대폰을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이쪽 준비는 끝났어요. 약속하신 거 꼭 지키셔야 해요.”“걱정 마세요, 제가 지원 씨를 속일 리가 없잖아요.”그 한 마디에 이지원은 청심환이라도 삼킨 듯 마음이 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