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박윤우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박민정이 잠이 든 뒤, 그는 박민정을 두 팔로 감싸 안으며 중얼거렸다.“엄마, 난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아빠가 정말 엄마를 사랑한다면 기꺼이 받아들일게요. 하지만 만약 계속 거짓말하면 죽여버릴 거예요.”박민정은 박윤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고, 알았더라면 진작 아이를 올바르게 교육했을 것이다.박윤우는 다시 뼈가 조금 아팠는지 살며시 일어나 박민정의 이마에 뽀뽀를 하고 잠이 들었다....어느덧 설날이 다가오고, 박민정은 집안일을 마치고 두 아이와 은정숙이 입을 옷과 신발을 준비했다.윤우와 은정숙은 오래 쇼핑을 할 수 없을 만큼 몸이 좋지 않아 박민정은 치수를 재고 다시 쇼핑하러 갈 준비를 했다.유남준은 오늘 출근하지 않았다.“내가 같이 갈까?”“앞이 안 보여서 불편하잖아요. 정민기 씨한테 연락해서 운전도 하고 물건도 들어달라고 했어요.”박민정이 말했다.정민기는 이제 그녀의 전속 보디가드가 되어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녀를 따라다녔다.유남준은 앞은 볼 수 없었지만 기억이 돌아왔기에 나쁘지 않은 정민기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그는 다소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감히 내색하지 않았다.“그럼 지금 가려고?”유남준이 다시 물었다.“네, 그렇죠.”박민정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왜요?”“이따 서다희한테 내 치수 보내라고 할게.”유남준은 뻔뻔하게 말했다.이 말은 박민정에게 옷을 사달라는 뜻이었다.사실 그가 치수를 알려주지 않아도 박민정은 기억하고 있었다.두 사람이 아직 결혼하지 않았을 때, 박민정은 몰래 그의 키와 체형을 측정해 옷을 잔뜩 사준 적이 있었다.그의 생일 말고도 여러 가지를 마음속으로 기억하고 있었다.몇 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만 하면 무의식적으로 그에 대한 모든 정보가 떠올랐다.하지만 당시 그녀가 아무리 잘해줬어도 유남준은 개의치 않았고 그녀가 사준 옷들은 쓰레기통에 버려지거나 불태워졌다.박민정이 침묵하자 유남준이 다시 말을 꺼냈다.“나 앞이 안 보이
신림 쇼핑몰에 도착한 박민정이 쇼핑을 하러 차에서 내리는데 정민기가 뒤따라오다가 갑자기 멈췄다.“누군가 우리를 미행하고 있습니다.”박민정이 그 말에 걸음을 멈췄다.“유남준 씨가 보낸 경호원인가요?”그리 먼 곳도 아니었고 박민정은 사람들이 많이 따라오는 것을 싫어했기에 그들이 올 가능성은 작았다.“아니요, 모르는 얼굴들입니다. 일단 쇼핑부터 하죠.”“그래요.”박민정은 정민기에게 항상 편안함을 느꼈다. 연지석은 평범한 사람 스무 명도 정민기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정민기는 죽은 시체 더미 속에서 살아서 기어 나온 사람이었다.쇼핑몰 안에서 가족들의 옷을 고르던 박민정은 두 아이와 은정숙의 옷은 잘 골랐지만, 유남준의 옷에 대해서는 조금 망설였다. 과거 유남준이 입었던 옷은 고가의 맞춤옷이었고 온통 무채색에 전혀 화사하지 않았다. 그 생각에 박민정은 유남준을 위해 특별히 밝은 색상의 비싸지 않은 옷을 골라주었다. “정민기 씨도 몇 벌 입어보지 않을래요?”입구에 서 있던 정민기는 박민정의 말을 듣고는 잠시 당황하다가 곧바로 거절했다.“괜찮습니다. 고마워요.”박민정은 생각에 잠겼다. 전에 정민기가 고향 집에 약혼녀와의 결혼을 취소하러 간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제 여자 친구가 생겨서 자신이 옷을 사주는 게 불편한 걸까?박민정은 서둘러 해명했다.“오해하지 마세요. 직접 고르시고 저는 고용인으로서 돈만 내는 겁니다. 여자 친구가 알아도 화내지 않을 거예요.”여자로서 여자 친구나 아내가 있는 남자에게 옷을 사주는 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박민기의 차갑고 무뚝뚝한 얼굴에 묘한 표정이 교차했다.“여자 친구 없습니다. 월급만 있으면 되니까 거절한 겁니다.”약혼녀와 결혼을 취소한 이유는 정해진 결혼이라 사랑도 없거니와 약혼녀의 배신 때문이었다.박민정은 더욱 당황스러워졌다.“알았어요.”정민기는 상사가 주는 혜택도 거부하는 참된 경호원이었다.그녀는 이번 달 정산이 끝나면 정민기에게 월급을 몇 배로 올려줄 생각도
정민기는 정보를 알아낸 뒤 경찰에 신고해 그들을 보냈다.이윽고 그는 차에 올라타 박민정에게 알렸다.“누군가 시킨 것 같은데 돌아가서 확인해 보겠습니다.”“그래요.”박민정 역시 자신을 해치려는 사람이 누군지 알고 싶었다.한편 윤소현은 쇼핑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자신의 차에 남아 박민정의 초라한 몰골을 기다리던 중 비서로부터 전화를 받았다.“아가씨, 박민정이 아주 유능한 경호원을 옆에 두고 있어 우리 쪽 사람들을 쓰러뜨려서 경찰서로 보냈어요.”“경호원 혼자서 우리 쪽 사람들을 전부 때렸다고?”윤소현은 믿을 수 없었다.“네.”윤소현은 화를 내며 전화기를 꽉 움켜쥐었다.“그 여자는 운도 좋아. 그쪽은 뭐 하느라 그런 쓸데없는 놈들을 데려왔어요?”비서는 감히 대답하지 못했고 윤소현은 다시 물었다. “그 여자 작업실 처리하라는 건 어떻게 됐어요?”“아, 아직 스튜디오를 못 찾았습니다.” 비서는 감히 윤소현을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윤소현은 전화를 집어 들어 그녀를 향해 내리쳤다.“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비서는 머리가 찢어져 피가 새어 나왔다.윤소현이 더 욕하려던 찰나 문득 지나가는 행인들이 이쪽을 보는 시선이 느껴지자 바로 똑바로 앉았다.“빨리 차에 타서 출발하기나 해요.”그녀는 한층 누그러진 어투로 말했다.“조심 좀 하지. 내가 휴대폰 놓쳐서 하필 그쪽을 때렸네요. 나중에 돌아가서 의사 선생님께 치료해달라고 해요.”윤소현은 겉으로는 고고한 백조처럼 행동하면서 제법 너른 아량을 베푸는 척하고 있었다.“알겠습니다.”비서는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줄곧 고개를 숙인 채 들지를 못했다.윤소현은 이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박민정이 진주에 없다는 것이다. 양쪽으로 뛰는 박민정을 상대하기에는 너무 힘들었다.윤소현은 밤이 되어서야 윤씨 저택에 돌아왔고 한수민은 일찍부터 그녀를 기다렸다.“소현아, 왔구나. 오늘 어디 갔었어?”“신림현, 왜?”윤소현은 가방을 옆으로 던져놓고 소파에 앉
애초에 은정숙의 말을 잘 들었던 박민정은 심지어 지금 은정숙이 아픈 상태였기 때문에 그녀의 뜻을 거스를 수 없어 일어나서 유남준을 방으로 데려가 옷을 입어보도록 도와주었다.박민정이 유남준을 위해 사준 옷은 대부분 캐주얼한 옷이라 입기 편했다.“옷 벗어요.”박민정은 이렇게 말한 후 새로 산 옷들을 모두 꺼내서 옆에 정리했다.준비를 마치고 유남준에게 가져다주려고 돌아서는 순간 온몸이 굳어버리며 동공이 커졌다.“왜, 왜 옷을 다, 다 벗었어요?”그런데 눈앞에 있는 남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있었다. 완벽한 비율의 몸매에 탄탄한 근육, 에잇팩 복근까지, 그리고…박민정은 당황한 나머지 얼굴에 불이 붙은 것 같은 느낌에 시선을 피했다.비록 예찬이와 윤우를 낳고 유남준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지만 두 사람이 관계를 맺은 횟수는 많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유남준의 핏줄을 위해 능숙한 척 행동했지만 정작 본론으로 들어갔을 땐 유남준이 적극적으로 리드했다.유남준은 항상 자신의 몸에 만족하고 있었기에 잘생긴 얼굴에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안에 입을 옷도 있지 않아?”박민정은 감히 그를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떨군 채 중얼거렸다.“내가 속옷 사준 것도 아니잖아요. 얼, 얼른 속옷 입어요.”그런데 유남준은 이렇게 말했다.“너무 급하게 벗어서 어디에 뒀는지 깜빡했는데 좀 찾아줄 수 있어?”박민정은 그가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았지만 빨리 끝내야겠다는 생각에 그가 옷을 놓아둔 곳을 찾으러 갔다.하지만 속옷을 찾기도 전에 유남준이 뒤로 다가왔고 박민정의 몸이 굳어버렸다.그 순간 유남준은 온몸의 피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박민정은 그의 물건이 닿는 것을 느끼며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뭐 하는 거예요?”유남준은 곧바로 한발 물러섰다.“네가 못 찾는 것 같아서 내가 직접 찾으려고.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말을 하던 그는 목에 불이 붙은 것 같았고 귓불이 뜨거웠다.박민정은 재빨리 옷을 뒤지다가 겨우 옷을 찾아 그에게 건넸다.“빨리 입어요!”유남준이
유남준은 그녀를 품에 더 으스러지게 안고 싶었다.박민정이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자신을 가둔 그의 단단한 팔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온몸이 뜨거워지는 동시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남준 씨, 이거 놔요!”목구멍이 꽉 멘 유남준은 이대로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오늘 밤 우리 같이 자자.”그의 뜨거운 입김이 귓속을 파고들자 박민정은 귓불이 빨개졌다.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벌써 두 팔로 그녀를 손쉽게 들어 올려 침대 위에 살포시 눕혔다.“이러지 마요...”거부하려고 하는 순간, 문밖에서 윤우가 다급하게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엄마, 엄마...”그 소리에 유남준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박민정은 일어나려고 하였으나 그는 큰 바윗덩어리처럼 아무리 밀어도 미동조차 없었다.“남준 씨, 비켜요, 얼른.”목소리를 낮춰 다그쳤지만 그는 역시나 아랑곳하지 않고 문 쪽으로 향해 눈길을 돌렸다.“엄마가 자니까 내일 다시 찾아.”윤우는 문밖에서 그 말을 듣고 잠시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코앞에서 쓰레기 아빠가 엄마를 괴롭히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윤우는 이내 더 세게 문을 두드리며 소리 질렀다.“아저씨 나쁜 사람이야. 빨리 우리 엄마 내보내요! 엉엉... 우리 엄마 내놔... 엉엉... 엄마, 엄마...”윤우의 울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간할 수 없는 박민정은 너무 급한 나머지 유남준의 다부진 어깨를 덥석 깨물었다. 그 바람에 유남준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지만 여전히 끄떡도 하지 않고 오히려 그녀를 더 꽉 껴안았다.“민정아, 제발. 오늘은 나랑 같이 있어. 앞으로 네가 뭐라고 하든 다 네 뜻대로 할게.”박민정은 순순히 그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더 세게 깨물었다. 그러자 유남준의 잇새에서 아픔을 참는 나지막한 신음이 흘러나왔다.문밖에서 윤우는 아직도 쉴 새 없이 큰 소리로 떠들고 있었다.“나쁜 놈, 엄마 안 내놓으면 나 경찰에 신고할 거야!”박민정은 입에서 피비린내가 나는 것을 느끼고서야 잠시
그녀의 이부언니, 윤소현!이 답을 듣게 되는 순간 박민정은 약간 얼떨떨해졌으나, 귓가에서는 정민기의 목소리가 계속하여 들려왔다.“어제 그 일을 뒤처리하면서 그놈들한테서 들었는데, 계획대로라면 민정 씨를 잡아가서... 성폭행할 예정이었다고 하네요.”정민기는 입에 담기 어려운 듯 조금 경직된 말투로 그 세 글자를 내뱉었다.그의 말을 들은 박민정은 저도 몰래 주먹을 쥐었다.“알겠어요.”전화를 끊은 후 박민정은 생각에 빠졌다. 윤소현이 자신을 그 정도로 미워할 이유가 대체 뭘까...유일하게 미움을 살만한 일이라면 아마 유남우에 관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자신은 유남우와 아무런 관계도 아니지 않은가.생각 끝에 그녀는 비서 진서연한테 연락해 윤소현의 연락처를 보내달라고 했다. 전에 협력한 적이 있었으므로 진서연은 윤소현의 연락처를 갖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소현의 전화번호가 찍힌 문자가 도착했다.진서연은 이어서 물었다.“보스, 윤소현과 또다시 협력하려고 그러시는 거예요? 제가 미처 얘기 드리지 못한게 있는데 며칠 전에 저한테 연락이 왔었어요. 보스님의 곡을 또 사고 싶다고 하더라고요.”박민정은 그녀한테 답장했다.“아니야. 사적인 일이야.”“아... 그러시구나.”진서연은 문득 또 다른 일이 생각나 박민정에게 말했다.“참, 보스. 최근에 누가 저희 해외에 등록한 유령 작업실을 몰래 조사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작업실은 박민정이 돌아온 후 만들어낸 대외용 멘트일 뿐이다.진서연의 말을 들자 그녀는 진주시의 누군가가 조사하고 있음을 바로 알아챘다.“넌 신경 쓰지 말고 네 일에 집중해.”“오케이.”만약 누가 감히 함부로 덤빈다면 혼쭐을 내주리라 진서연은 생각했다.귀엽고 온순한 외모와는 달리 진서연은 산타 국제전 여자 조에서 챔피언을 따낸 프로 선수급 유단자로서 보통 남자들은 전혀 그녀의 상대가 될 수 없다. 하나 이편에 있는 박민정은 그들이 누구인지 관심이 없었다. 유령 작업실을 등록 한 건자신이 하는 일을 유남준한테 들키지
윤소현은 꽁꽁 싸맨 채 뽀얗고 말간 얼굴만 드러내놓고 박민정이 걸어 들어오는 모습을 지켜봤다.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 특히나 정성스레 그려진 듯한 눈매와 눈동자를 가진 박민정은 그녀가 봐도 미인임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무리 많이 챙겨입었어도 볼륨감 있는 몸매가 감춰지지 않았다.자신도 뒤처지지는 않는다는 걸 물론 알고 있지만 뭔지 모르게 박민정보다 조금 부족한 것만 같았다.“그딴 걸 보낸다고 내가 졸 줄 알았어? 그런 건 나한테 아무런 소용 없어. 그러니까 힘 그만 빼.”이럴 땐 기선 제압이 중요하다고 윤소현은 생각했다.박민정은 속으로 콧방귀를 꼈다. 두려울 거 없는데 왜 일찌감치 여기 와서 앉아 있는건지. 하나 굳이 까발리지 않고 그녀 앞에 친자확인 서류를 내밀었다.의심스러운 눈길로 그 서류를 열어보던 윤소현의 눈동자에는 알지 못할 빛이 스쳤다.“나 뒷조사하고 있었어?”친자확인서를 들고 있는 윤소현의 첫마디가 친자관계 여부에 관한 질문이 아니라 뒷조사를 한 것에 대한 비난이자 박민정은 순식간에 멍해졌다.“한수민 씨의 딸이라는 걸 알고 있었네요.”그녀는 물음이 아니라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그러자 이 사실을 정수미한테 알릴까 봐 두려운 윤소현은 대뜸 해명했다.“나도 어제 금방 들어서 알게 된 거야, 네가 내 이부동생이라는 거.”윤소현은 손을 뻗어 박민정의 손을 꼭 잡았다.“진작에 알았다면 널 해치려고 안 했어. 우린 자매잖아. 난 박민호랑은 달라.”하지만 박민정은 손을 빼내며 냉담한 눈매로 그녀를 쳐다봤다. 참말이지, 윤소현의 연기 실력은 이지원의 발밑도 못 따라간다. 이지원한테서 하도 많이 당해, 이 정도는 눈을 감고도 진심인지 아닌지 변별해 낼 수 있었다.“오늘 여기 가족 상봉하러 온 게 아니에요. 경고하는 데, 이런 일이 또 있는 날엔 저도 가만히 안 있어요.”그 말에 윤소현은 얼굴이 굳어버렸다.박민정은 일어서며 또 한마디 남겼다.“윤씨 집안 아가씨가 무슨 벼슬이라도 되는 줄 아나 본데, 그 집안 재산은 모두
거실 안에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예전의 집안에서 부리던 가정부 따위가 감히 자신한테 이런 말을 할 줄 몰랐던 한수민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은정숙을 때리려고 손을 들었다. 그러자 간병인이 앞으로 나서서 말렸다.“이보세요, 사모님. 저희 집 어르신이 몸도 안 좋으신데 이러시면 곤란해요. 제가 경찰부를 수도 있어요.”한수민은 손을 허공에 든 채로 간병인의 말을 듣더니 입가에 냉소를 흘렸다.“어르신은 무슨. 저거 그냥 데려가는 남자 하나 없는 궁상맞은 여편네일 뿐이야. 운 좋게 내 딸을 좀 돌봐줬다고 지금 이런 호사를 누리고 있는 거고. 내 딸이랑 사위가 능력이 있어서 집에 모시고 있으니까, 진짜로 무슨 귀부인이나 되는 줄 아나 보지?”간병인은 조금 의아했다. 줄곧 은정숙이 박민정의 친척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고, 심지어 눈앞에 있는 이 사모님이 박민정의 친어머니였다.자세히 보니 확실히 좀 비슷하게 생겼긴 하였지만, 성격과 인품이 어찌 이리 다르단 말인가. 말투 또한 신랄하고 각박하기만 하다.하지만 고용주의 친어머니라는 생각에 뭐라고 할 수도 없어, 한쪽에 물러서서 일단 지켜보기로 하였다.은정숙은 한수민의 비꼬는 말에 대꾸했다.“난 아무리 가난해도 남자한테 의지 안 하고 제힘으로 꿋꿋이 잘 살아왔어요. 누구처럼 자식의 피까지 빨아먹는 짓은 절대 안 해요.”박민정의 성질머리가 누구를 닮았는지 한수민은 이제야 깨달았다. 모두 이 은정숙이란 여자한테서 배운 것이었다.화가 치밀어 오른 그녀는 다시 손을 들어 간병인이 채 반응하기도 전에 은정숙의 뺨을세게 내리쳐 바닥에 쓰러뜨렸다.“콜록콜록...”워낙에 몸이 안 좋은 은정숙은 바닥에 쓰러지자 격렬하게 기침 하기 시작했다.간병인은 황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물었다.“어르신, 괜찮아요?”연거푸 나오는 기침 때문에 은정숙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그 모습을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며 한수민은 전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은정숙이 점점 힘들어하며 숨이 넘어갈 것처럼 보이자, 박민정한테 전화를 걸어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