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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화

작가: 윤지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02-25 19:00:01
와인에 약을 탄 박민정은 어깨가 반쯤 드러나는 요염한 민소매 잠옷으로 갈아입고 유남준에게 다가가 술을 따랐다.

“받으세요.”

유남준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한눈에 바라보며 그녀가 건네는 잔을 받아 들었지만 마시지 않았다.

“열 살 때 고향에서 진주로 왔어. 그때 처음 만났고.”

순간 박민정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유남준이 두 사람의 첫 만남을 기억하고 있을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최대한 티를 내지 않고 술잔을 다시 그의 앞으로 밀었다.

하지만 유남준은 그녀가 민 술잔을 다시 박민정 앞으로 들이밀며 말했다.

“네가 먼저 마셔!”

약을 탄 잔 속의 술을 보며 박민정은 순간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지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잔을 들고 바로 마셨다.

목구멍으로 흘러 들어가는 술은 그렇게 맵고 쓸 수가 없었다.

그녀는 만약 자기가 마시지 않으면 유남준이 분명 의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랫동안 사업에 몸담은 유남준은 눈치가 빨라 조금이라도 허점을 보이면 바로 알아채기 때문이다.

박민정은 다시 술잔에 술을 따라 유남준 앞에 놓았다.

“유 대표님, 이제 당신 차례예요.”

유남준은 손목 마디마디가 뚜렷이 보이는 긴 손으로 잔을 들어 살랑살랑 흔들었지만 계속 마시지 않았다.

그는 여유 있는 눈빛으로 박민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뭐가 그리 급해, 우리 추억부터 먼저 회상해야지.”

추억?

십여 년의 추억을 어찌 하룻밤에 다 말할 수 있겠는가?

박민정은 예쁜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실내는 분명 에어컨을 시원하게 켠 상태였지만 그녀의 이마에서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 손바닥을 계속 꼬집으며 정신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녀는 맑은 눈으로 유남준을 깊이 바라보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앞으로 추억할 시간은 많아요. 오늘은 시간도 늦었는데 여기서 쉬다 가시지 않을래요?”

박민정은 말을 하면서 백옥 같은 손으로 술잔을 들어 유남준의 앞에 내밀었다.

그녀도 자기가 이렇게 행동하는 게 맞는지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어렵게 얻은 기회, 절대 이대로 놓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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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 안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급히 안으로 들어선 김인우는 침대 위에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조하랑을 발견했다.심장이 철렁한 김인우는 빠른 걸음으로 조하랑에게 다가갔다.“하랑아!”시끄러운 소리에 놀라 깨어난 조하랑이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을 떠보니 김인우의 얼굴이 가까이서 보였다.그녀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 입술을 달싹이며 중얼거렸다.“내가 왜 여기 있지?”말을 마친 조하랑의 머릿속에는 불쾌했던 기억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동공이 크게 흔들리더니 이내 온몸을 감싸며 방 한구석으로 자신의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다 꺼져, 꺼져! 아무도 오지 마, 오지 말라고!”그 모습을 보며 김인우는 조하랑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믿고 싶지 않았다.“하랑아, 왜 그래?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김인우는 따뜻한 목소리로 물었다.조하랑은 대답하기 싫다는 듯 계속 같은 말만 반복했다.“나가! 나가라고!”박민정은 놀란 듯한 얼굴로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았다.조석천이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하랑아, 아빠 여기 있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아빠한테 얼른 얘기해 보렴. 설마 강연우 그 짐승 새끼가 그런 거니?”그는 조하랑에게 몹쓸 짓을 저지른 사람이 강연우라고 생각했다.조하랑의 머릿속은 혼란 그 자체였고 마음은 더욱 답답했다.그녀는 아무것도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나가! 다 나가라고!”김인우는 조하랑의 상태를 바라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일단 우리 다 나갑시다. 혼자 진정할 시간을 줘야 할 것 같아요.”그 말에 주위 사람들도 모두 방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리를 뜨면서도 조하랑에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함부로 추측하고 있었다.조하랑의 상태를 확인한 박민정 역시 걱정되어 미칠 지경이었다.“민정아, 넌 남아줘.”조하랑이 박민정을 불러세웠다.“알겠어.”박민정은 곧바로 대답했다.그렇게 방 안에는 박민정과 조하랑 두 사람만 남게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393화

    조석천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럼 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하랑이랑 할 얘기가 있어서 왔어요. 하랑이 여기 있나요? 얘기 좀 하고 싶은데요.”강연우가 대답했다.오자마자 자신의 딸을 찾는 강연우의 모습에 조석천은 또다시 화가 나기 시작했다.“감히 내 딸을 찾아와? 아까까지는 잊고 있었는데, 설마 네가 우리 딸 납치한 거 아니니? 그런 게 아니고서야 왜 아직도 안 나타나는 건데? 너 김씨 가문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는 거야?”그 말을 들은 강연우는 조하랑이 이곳에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하지만 오늘은 조하랑의 결혼식 날인데, 대체 그녀는 어디로 간 걸까?강연우는 더 조석천과 말을 섞어 봤자 아무 소용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곧장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 했다.그 순간, 조석천이 강연우를 붙잡았다.“잠깐, 여기서 나갈 거면 당장 우리 하랑이 내놓고 나가!”“하랑이가 저한테 있었다면, 제가 굳이 여기까지 와서 하랑이를 찾아왔겠어요?”강연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뒤늦게 강연우의 말을 이해한 조석천이 그를 놓아주었다.강연우가 떠나는 모습을 보던 조석천은 그가 예전의 힘없고 겁 많던 소년에 비해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조석천은 어딘가 모르게 후회되었다.만약 처음부터 그를 조하랑과 사귈 수 있도록 내버려 두었다면 두 사람의 아이는 지금의 박예찬보다 더 나이가 많을 것이었다.게다가 지금의 강연우도 예전의 그 촌놈이 아니라 능력 있는 남자 같아 보였다.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조석천은 다급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강연우가 아무리 노력해도 김인우는 평생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라며 애써 자신을 위로했다.그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결혼식 준비를 하도록 지시했다. 김인우의 집에서도 계속 준비 중일 테니 말이다....아침 일찍 조하랑의 집을 찾아갔던 박민정도 조하랑을 만나지 못했다.그녀는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디가 이상한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리 만날 수 없었다 해도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392화

    그 말에 강연우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저를 찾아온 적은 없어요. 저는 지금 집에 있고요. 혹시 무슨 일 있나요?”김인우는 그 말에 뒤늦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아무것도 아닙니다.”말을 마친 김인우는 또 전화를 끊어버렸다.강연우는 그렇게 끊겨버린 전화에 휴대폰만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어느새 자신의 뒤로 다가와 서 있는 황예지도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그는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다.황예지의 안색은 오늘따라 창백해 보였다.“연우야, 아직 안 늦었어. 난 다 알아. 하랑 씨도 널 잊지 않았다는 걸. 네가 먼저 찾아가서 모든 일을 설명한다면, 하랑 씨는 분명 네 곁으로 다시 돌아올 거야.”그 말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강연우가 몸을 돌려 황예지를 바라보았다.“왜 또 그 얘기야? 내가 전에 말하지 않았나? 난 이미 너랑 결혼했고, 다른 여자는 쳐다도 보고 싶지 않다고.”그 말을 들은 황예지는 기뻐해야 할 것 같았지만 마음은 어딘가 묘하게 서운하면서도 아팠다.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나도 알아. 하지만 네 마음이 바뀐다면 언제든 나한테 먼저 얘기해 줘야 해.”그녀는 강연우가 자신에게 맞춰 살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여자라면 어떠한 의리나 은혜 때문에 해주는 결혼이 아닌 진심 어린 사랑 때문에 하는 결혼을 원하기 마련이다.황예지 역시 그날 밤, 침대 위에 누워 여기저기 뒤척이다가 한숨도 자지 못했다.오늘따라 이상한 황예지를 알아차리지 못한 강연우는 혼자 발코니로 나가 담배를 한 대씩 꺼내 피우며 김인우의 말을 되새기고 있었다.조하랑이 사라진 건가?설마 정말 김인우와 결혼하는 걸 후회하는 걸까?강연우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복잡했다. 한참이나 고민하던 끝에 강연우는 결국 외투를 챙겼다.문을 나서기 전, 그는 황예지를 보며 말했다.“잠깐 나갔다 올게, 금방 돌아올 거야.”황예지는 그런 강연우의 뒷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녀가 입을 열어 대답하기도 전에 현관문이 닫혀 버렸다.“연우야, 나 집에 가고 싶어.”황예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391화

    하지만 이지원이 예상 못 했던 것은 그 노인네가 자신보다 못한 소녀를 며느리로 맞는다는 사실이었다.다가 더 충격적인 것은 김인우도 그 결혼을 받았다는 것이다.조하랑을 보는 이지원의 눈빛은 질투로 가득 찼다.침대 위의 조하랑은 그제야 천천히 의식을 되찾는 듯했다.눈을 뜬 그녀는 극심한 두통에 머리를 부여잡으며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낯선 주위를 둘러보았다.“여기가 어디지?”조하랑이 눈을 뜨자 이지원은 곧장 방에서 걸어 나왔다.적어도 이지원은 지금 자신에게 도주할 여지를 남겨두어야 했다. 조하랑에게 그녀를 납치한 사람이 이지원이라는 사실을 절대 들켜서는 안 됐다. 만약 조하랑이 김인우에게 얘기라도 한다면 절대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니 말이다.“오늘 밤, 저 여자는 당신들 거야. 그러니까 잘 즐기도록 해. 내 호의 무시하지 말고.”이지원은 건장한 남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녀의 말에 남자들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지원 씨.”“앞으로 나 지원이라고 부르지 마. 차라리 아가씨라고만 불러.”이지원이 말했다.“알겠습니다, 아가씨.”이지원은 그제야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떠났다....한편, 병원에서는 박민정이 치료 중인 박윤우의 옆에 있어 주었다.아직 조하랑이 실종됐다는 사실을 모르던 박민정은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박민정은 김인우에게서 조하랑이 혼자 있고 싶어 한다는 말을 전해 듣게 되었다.그렇게 박민정 역시 더는 조하랑에게 연락을 하진 않고 그녀의 생각이 다 정리될 때까지 기다려 주기로 했다.“엄마, 나 물 마시고 싶어요.”박윤우가 입을 열었다.“알겠어, 엄마가 따라줄게.”박민정은 몸을 일으켜 물을 받으러 걸음을 옮겼다.빅윤우는 곧 있을 수술을 받기 위해 머리를 깔끔하게 민 상태였다.아이는 온몸이 아파왔지만 박민정을 굳이 걱정시키기는 싫었던 탓에 묵묵히 참고만 있었다.박민정이 물을 받아왔지만 박윤우는 한 모금만 마신 후 또다시 재촉하기 시작했다.“엄마, 얼른 가서 쉬어요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390화

    조하랑은 종일 그저 멍하니 호텔에만 있으며 결혼 준비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다음날 오후가 되자 그녀는 김인우에게 자신의 의견을 얘기해주려 했다. 그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방 문을 두드렸다.조하랑은 어쩔 수 없이 휴대폰을 내려놓고는 슬리퍼를 끌며 문을 열어주러 걸음을 옮겼다.하지만 문이 열린 그 순간,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나타나 그녀의 코와 입을 손수건으로 막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조하랑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김인우의 집.김인우는 오늘 종일 마음이 복잡했다. 그는 초조한 심경으로 조하랑의 결정을 기다렸지만, 오후 5시가 돼도, 6시가 돼도 울리지 않는 휴대폰에 마음은 점점 불안해져만 갔다.결국, 참지 못한 김인우가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생각 정리 끝났어요?”하지만 1분이 지나도, 10분이 지나도 아무런 답장이 없었다.김인우는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에 원하면 원한다, 싫으면 싫다는 의사 표현조차 똑바로 하지 않는 조하랑을 원망했다.마음 같아서는 조하랑의 앞으로 순간이동을 해서라도 직접 물어보고 싶었다.초조하게 자신의 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김인우를 바라보던 박예찬은 덩달아 함께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기분이었다.“아저씨, 가만히 좀 앉아계시면 안 돼요?”그 말에 김인우는 곧장 걸음을 멈춘 채 박예찬을 바라보며 말했다.“하랑 이모한테 전화 좀 해줄래?”박예찬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스마트워치를 이용해 조하랑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아이의 스마트워치에서도 들려온 건 그저 전원이 꺼져 있다는 안내음이었다.“왜 아직도 전화기가 꺼져 있는 거지?”김인우가 미간을 찡그린 채 말했다.그때, 김훈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솔직히 말해 봐. 너 하랑이한테 뭐 잘못한 거 있지?”김인우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반박했다.“제가 감히 어떻게 그래요.”“그럼 하랑이가 왜 갑자기 네 연락을 안 받겠어? 휴대폰도 꺼져 있고 말이야. 내일이 당장 결혼식인데.”김훈은 김인우의 머리를 툭툭 건드리며 말을 이어갔다.“솔직하게 말해. 너 밖에서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389화

    조하랑은 김인우를 그저 멍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인우 씨...”김인우는 조하랑이 입을 열기도 전에 다시 말을 이었다.“내일까지 고민할 시간 더 줄게요. 하지만 그다음 날에 갑자기 결혼 취소해서 나한테 망신을 준다면, 나도 하랑 씨 용서 안 해줄 거예요.”김인우가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김인우가 진주시에서 그 어떤 여자를 못 만나봤을까. 적어도 진주시 90%의 여자들은 그와 결혼하고 싶어 할 것이다.만약 조하랑이 결혼식 당일 갑자기 결혼을 취소해 버린다면 그는 조하랑을 절대 가만둘 생각이 없었다.김인우의 말에 조하랑은 한동안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자신이 사랑하던 강연우는 이미 유부남이었고, 황예지도 아주 좋은 여자였다.“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조하랑이 말했다.핸들을 잡고 있던 김인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이미 결혼을 확정 지은 조하랑이 이제 와서 결혼식을 취소할 것이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그런데도 아직까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그녀는 김인우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단순한 예비 후보 취급을 받은 김인우의 마음이 불쾌했다.“집으로 데려다줄까요?”이틀 뒤면 결혼식이었던 탓에 조하랑은 김인우의 집으로 갈 수 없었다. 결혼 절차라는 것은 지켜야 하는 법이었으니까.“싫어요.”조하랑은 단호하게 그의 말을 거절했다.“근처에 있는 아무 호텔로 데려다주세요.”“그래요.”김인우가 대답했다.그는 시설이 좋은 호텔 하나를 찾아 조하랑을 내려주었다.원래였다면 조하랑을 직접 방까지 데려다줬을 테지만 이미 빈정이 상해버린 탓에 김인우는 그녀를 혼자 호텔로 들어가게 두었다.그녀를 호텔까지 데려다준 김인우는 곧장 조석천에게 안부를 전했다.호텔 방 안으로 들어온 조하랑의 머릿속은 복잡하기 그지없었지만 따로 하소연할 사람도 없었다.결국,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박민정에게 연락했다.마침 휴식을 취하려던 박민정은 조하랑에게서 결려온 전화에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다.“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박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388화

    “하랑아, 왜 아무 말도 안 해? 제발 아빠 좀 놀라게 하지 마. 난 정말 널 위해서 그랬던 거라고. 지금 아빠는 먹고사는 데 아무 문제 없고, 딱히 바라는 것도 없어. 굳이 너를 재벌 집에 시집 보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뜻이야. 하지만 네 미래도 생각해야지. 아무 걱정 없이, 특히 돈 걱정 없이 살기 위해서는 재벌 집으로 들어가는 게 최고야.”“너도 알잖아. 우리 집은 그냥 졸부일 뿐이야. 돈 없을 때를 생각해 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릴 무시했는지. 엄마랑 아빠는 네가 그렇게 살길 원하지 않아.”조석천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묻어났다.그의 아내가 세상을 뜨게 된 것도 치료비가 부족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그것이 트라우마로 남은 탓에 조석천은 가난할지도 모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항상 갖고 있었다. 자신의 딸이 혹시라도 가난한 남자 때문에 고생하지는 않을까 무서웠다.그 남자가 성공을 거둔다고 해도 단순한 도박에 불과했으니 말이다.조하랑 역시 아버지가 이런 짓을 한 이유는 자신을 위해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해도 아버지의 행동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알겠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돌발행동 같은 건 할 생각 없으니까요. 지금은 조금 혼자 있고 싶네요.”말을 마친 조하랑은 전화를 끊었다.갑자기 끊긴 전화에 조석천은 다시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조하랑의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방법이 없었던 그는 결국 김인우에게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혼자 거리를 배회하던 조하랑은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그녀는 밀려오는 죄책감에 파묻혀 있었다. 눈앞에 강연우가 있다면 당장이라도 따져 묻고 싶었다. 왜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는지, 왜 본인을 정말 쓰레기로 여기게 했는지.얼마나 걸었을까. 돌아가기 싫었던 조하랑은 아무 곳에나 자리를 잡고 앉았다.혹시라도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걸려올까 봐 휴대폰 전원을 꺼두었고, 아직도 다시 켤 용기가 나지 않았고, 연락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387화

    그 말에 강연우는 주먹을 쥔 손에 힘을 주며 가까스로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다.“그런 말은 왜 한 거야?”고개를 잠시 떨어뜨린 황예지는 대답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우리 내일 이혼하자.”또 이혼 그 소리.강연우의 목울대가 일렁였다.“예지야, 내가 얘기했을 텐데. 죽음은 있어도 이혼은 절대 없을 거라고.”황예지가 불안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강연우는 그녀를 위로해주고 싶었다.“걱정하지 마. 난 정말 하랑이랑 다시 시작할 생각이 없어. 우리 둘이 잘살아가면 돼. 내가 너 잘 챙겨줄게.”말을 마친 강연우는 황예지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어떤 사람이나 일은 한 번 놓친 순간, 다시는 손에 넣을 수 없게 된다.황예지는 공허하고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강연우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어쩌면 강연우가 정말 자신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계속 자신을 챙겨주며 살겠다는 말을 할까?...조하랑은 넋 나간 사람처럼 정처 없이 거리를 걷고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렸다.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들어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아빠.”딸이 재벌 집에 시집간다는 생각에 하루하루를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던 조석천이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야, 우리 딸?”“그때, 아빠는 정말 강연우를 죽일 생각이셨어요?”그 말에 조석천의 심장이 철렁했다.이미 결혼까지 한 강연우가 그 일을 딸에게 얘기해줄 리 없다고 굳게 믿어왔건만, 결국...조하랑이 재벌 집에 시집간다는 것을 안 강연우가 중간에서 뭐라도 뜯어먹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게 분명했다.“하랑아, 아빠 말 좀 들어 봐. 강연우 그 쓰레기 자식은 신경 안 써도 돼, 그럴 가치가 없는 놈이야. 지금은 김인우랑 할 결혼식에만 집중해. 그게 제일 중요한 일이니까.”그는 애써 말을 돌렸다.조석천의 말에 조하랑의 눈빛은 한층 더 공허해졌다.“아빠, 일단 대답부터 해주실래요? 왜 강연우가 갑자기 실종됐었는지, 그리고 다시 나타난 강연우가 왜 갑자기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386화

    휴대폰을 쥐고 있던 조하랑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솔직히 말하자면 그녀는 강연우의 결혼식에 참석하긴 했어도 그와 결혼하는 신부가 누구인지, 이름은 무엇인지, 얼굴은 어떻게 생겼는지 볼 생각은 없었다.저도 모르게 본인과 신부를 픽하면 시도 때도 없이 그 기억이 불쑥 나타나 자신을 괴롭힐까 봐 두려웠다.자신을 강연우의 아내라고 소개하는 황예지를 보며 조하랑은 한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왜 저를 만나고 싶으셨던 건데요?”조하랑이 겨우 입을 뗐다.“하랑 씨와 연우 사이에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연우 대신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래요. 그러니까 제발 한 번만 만나주시면 안 될까요?”황예지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내일모레가 당장 결혼식인 상황에 조하랑은 그녀의 부탁을 거절해야만 했다. 하지만 너무 간절하면서도 진지한 황예지의 목소리에 조하랑은 홀린 듯 대답했다.“알겠어요.”두 사람의 약속 장소는 한 평범한 식당이었다.조하랑은 여리여리하면서도 차분한 분위기의 황예지를 바라보며 자신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안녕하세요.”조하랑은 먼저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황예지도 그런 조하랑의 인사에 함께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인사를 받아주었고, 두 사람은 마주 본 상태로 한 테이블 앞에 착석했다.“저한테 하실 말씀이 뭐죠?”조하랑은 자리에 앉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황예지는 대답 대신, 가방에서 병원 진단서를 꺼내 조하랑의 앞에 내밀었다. 그녀가 내민 진단서에는 황예지의 남은 수명이 3년밖에 안 된다는 검사 결과가 적혀있었다.조하랑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단서를 바라보았다.젊은 나이에 이렇게나 큰 병에 걸렸다는 것이 안쓰러웠다.조하랑이 곧장 입을 열었다.“걱정 마요, 저는 연우랑 아무 사이 아니니까. 저도 곧 결혼할 예정이에요.”그녀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황예지 괜한 오해를 하는 일이 없길 바라서였다.황예지는 그런 조하랑을 보며 그녀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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