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43화

Author: 윤지
와인에 약을 탄 박민정은 어깨가 반쯤 드러나는 요염한 민소매 잠옷으로 갈아입고 유남준에게 다가가 술을 따랐다.

“받으세요.”

유남준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한눈에 바라보며 그녀가 건네는 잔을 받아 들었지만 마시지 않았다.

“열 살 때 고향에서 진주로 왔어. 그때 처음 만났고.”

순간 박민정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유남준이 두 사람의 첫 만남을 기억하고 있을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최대한 티를 내지 않고 술잔을 다시 그의 앞으로 밀었다.

하지만 유남준은 그녀가 민 술잔을 다시 박민정 앞으로 들이밀며 말했다.

“네가 먼저 마셔!”

약을 탄 잔 속의 술을 보며 박민정은 순간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지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잔을 들고 바로 마셨다.

목구멍으로 흘러 들어가는 술은 그렇게 맵고 쓸 수가 없었다.

그녀는 만약 자기가 마시지 않으면 유남준이 분명 의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랫동안 사업에 몸담은 유남준은 눈치가 빨라 조금이라도 허점을 보이면 바로 알아채기 때문이다.

박민정은 다시 술잔에 술을 따라 유남준 앞에 놓았다.

“유 대표님, 이제 당신 차례예요.”

유남준은 손목 마디마디가 뚜렷이 보이는 긴 손으로 잔을 들어 살랑살랑 흔들었지만 계속 마시지 않았다.

그는 여유 있는 눈빛으로 박민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뭐가 그리 급해, 우리 추억부터 먼저 회상해야지.”

추억?

십여 년의 추억을 어찌 하룻밤에 다 말할 수 있겠는가?

박민정은 예쁜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실내는 분명 에어컨을 시원하게 켠 상태였지만 그녀의 이마에서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 손바닥을 계속 꼬집으며 정신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녀는 맑은 눈으로 유남준을 깊이 바라보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앞으로 추억할 시간은 많아요. 오늘은 시간도 늦었는데 여기서 쉬다 가시지 않을래요?”

박민정은 말을 하면서 백옥 같은 손으로 술잔을 들어 유남준의 앞에 내밀었다.

그녀도 자기가 이렇게 행동하는 게 맞는지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어렵게 얻은 기회, 절대 이대로 놓치고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44화

    정민기는 얇은 잠옷을 입고 온몸이 흠뻑 젖은 채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박민정을 발견했다. 그녀의 손과 다리는 이미 새빨갛게 할퀸 상처들로 가득했다. 그는 재빨리 물을 잠그고 가운을 집어 박민정의 보일 듯 말 듯 한 몸을 가렸다.“괜찮으세요?”그의 목소리는 그리 낮은 편은 아니었으나 박민정의 귀에는 그저 희미하게 들릴 뿐이었다.뒤늦게 정신을 차린 박민정은 창백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괜찮아요”“제가 병원까지 모셔다드릴게요.”정민기가 허리를 굽혀 그녀를 안으려 하자 그녀는 옆으로 피하며 말했다.“안 돼요. 진주에 있는 모든 병원은 전부 김씨 가문의 손아귀에 있어요. 그리고 김인우도 내가 돌아온 것을 이미 알고 있고요. 혹시라도 내가 약을 먹은 것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김인우는 분명 유남준에게 말할 거예요. 유남준이 술에 약을 탔다는 걸 알면 앞으로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할 거예요.”그녀는 겨우겨우 긴 말을 끝냈다.4년 전, 그녀는 자기를 죽은 사람으로 만들었다.연지석의 도움이 없었다면 절대 김인우를 속일 수 없었을 것이다.연지석이 곁에 없는 지금, 그녀가 병원에 간다면 그쪽 사람들은 분명 김인우에게 가장 먼저 알릴 것이다.박민정이 병원을 가지 않고 혼자 이겨내겠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정민기는 욕실에 들어오기 전, 거실 바닥에 쏟아진 술을 보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 짐작하게 되었다. 그는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하지만 지금 민정 씨 몸 상태가...”“얼음 좀 가져다주세요.”“네. 알겠어요.”정민기는 주방에 들어가 냉장고에서 얼음을 가져왔다.얼음 한 봉지를 통째로 욕조 안에 넣자 살을 에는 듯한 차가움이 박민정의 달아오른 몸을 그나마 편하게 했다.정민기는 또 의약 상자를 가져와 그녀 옆에 놓았다.“고마워요.” 박민정은 진심 어린 말투로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정민기는 아무 말도 없이 욕실을 나가 그녀가 정리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면서 연지석에게 그녀의 안부도 전해줬다.몇 시간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45화

    이지원은 조금 전 유남준의 마지막 말을 듣고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워낙 생각이 많은 서다희는 그녀의 물음에 한두 마디 야유를 퍼부었지만, 박민정이 돌아왔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알리지 않았다.눈치 빠른 이지원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속으로 서다희를 욕하며 유남준에게 다가갔다.“오빠, 명절이 곧 다가온다고 어머님이 오늘 저녁에 같이 밥 먹자고 했어요.”이지원이 말하는 어머님은 바로 유남준의 어머니이다.분명 또 두 사람이 빨리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라는 말을 하기 위함일 것이다. 유남준은 고개도 들지 않고 한 마디 툭 내뱉었다.“알았어.”그의 대답을 들은 이지원은 사무실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저 오늘은 별일 없으니 여기서 기다릴게요.”하루 종일?유남준은 그녀를 힐끗 보며 한마디 했다.“그렇게 한가해?”이지원은 순간 멈칫했지만 이내 태연한 얼굴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편 유남준은 그녀의 대답이 떨어지기도 전에 말을 이었다. “나는 일할 때 남이 옆에 있는 거 안 좋아해.”그의 말에 이지원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그저 한마디만 내뱉었다.“그럼, 밖에서 기다릴게요.”유남준이 더 이상 대꾸하지 않자 이지원은 내키지 않은 얼굴로 대표이사실을 나섰다.유남준의 차갑게 거절하는 얼굴은 예전에 사귀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늘 변함이 없었다.이런 사람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박민정뿐일 것이다.기분 전환을 위해 밖으로 나간 이지원은 김인우의 사무실이 텅 비어 있는 것을 보고 비서에게 물었다.“인우 오빠 요즘 안 오나요?”“요즘 집안 어르신들이 김 대표님에게 결혼 준비를 하라고 해서 못 왔어요.”비서는 사실대로 대답했다.결혼?이지원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김인우는 이지원 때문에 집안 어르신들이 안배한 혼사를 거절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요즘 집안 어르신들이 한창 김인우의 결혼 준비를 한다는 말에 이지원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씁쓸했다.“상대방이 누군데요?”이지원은 궁금한 마음에 비서에게 물었다.비서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46화

    고아로서 어릴 때부터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이었다.김인우의 말은 그녀가 처음 재벌 2세들과 합류했을 때 얼마나 많은 추태를 부렸는지, 몇 년 전에 얼마나 창피했는지를 상기시켜 주었다."내가 유씨 가문의 며느리가 되면 누가 나를 무시할지 보자!”이지원이 박민정을 언급하지 않은 걸 보니 그녀가 돌아온 걸 모르는 것 같았다.김인우는 9번 공관 밖에서 계속 기다렸다."도련님, 민정 씨는 오늘 내내 안 나오셨어요. 제가 가서 문을 두드려볼까요?"보디가드는 그를 기다리게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김인우는 거절했다."아뇨, 그냥 여기서 기다릴게요.”어제 박민정이 돌아왔다는 것을 알고 나서 그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설렘을 느꼈고 즉시 그녀를 찾아가 그해의 일을 묻고 싶었다.하지만 그가 박민정을 괴롭혔을 때를 생각하면 그는 감히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 한번 기다리기 시작하니 벌써 두 시간이 지났다.박민정은 어젯밤에 얼음물에 샤워해서 오늘 감기에 걸린 듯 머리가 어지러웠다. 정민기가 그녀에게 약을 사줬는데 마신 후에도 여전히 몸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외투를 걸치고 어제의 긁힌 상처를 가리고 밖에서 기분 전환을 하려고 공관을 나왔다. 여름인데도 긴 옷에 긴 바지를 입고 있는 그녀는 덥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의사는 어젯밤 일로 그녀를 다시 병원에 입원시킬 뻔했다고 말했다. 앞으로 천천히 신중하게 의논해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멀지 않은 곳에 주차된 차를 눈치채지 못한 박민정이 그대로 지나가려 하자 김인우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어... 민정아.”박민정은 걸음을 멈추고 그를 돌아보며 멍하니 있었다.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김인우는 곧장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가에 이르러서는 다 사라져 버렸다."그동안 잘 지냈니?”‘잘 지냈냐고?'그녀가 마음속으로 냉소를 지었다.‘내가 잘 못 지내지 않기를 가장 바라는 사람이 아닌가?'그녀는 입술을 꼭 오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47화

    박민정은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남자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죄송합니다만 몇 년 전에 아팠던 적이 있어서 많은 사람과 일을 기억하지 못해요.”말을 마친 박민정은 돌아서서 공관으로 돌아갔다. 김인우의 큰 몸집은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기억이 안 난다고?'그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감명을 받지 못했다. 보디가드도 도련님이 이렇게 넋이 나가시는 걸 처음 보기 때문에 앞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공관으로 돌아와 소파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박민정은 에스토니아 공항에서 절친 조하랑이 미리 비행기 표를 끊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오늘 밤이면 진주시에 도착할 것이었다. 그리고 박예찬도 인터넷에서 같은 비행기 표를 사서 몰래 비행기에 올랐다.저녁 7시에 조하랑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박민정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 그녀는 트렁크 높이도 안 되는 운동복 차림에 마스크와 모자까지 쓴 박예찬이 뒤따라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자신보다 더 큰 캐리어를 끌고 있었다. 다른 이들의 이상한 시선에 조하랑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사람들의 비난 소리가 높았다."엄마가 어떻게 아이한테 저렇게 큰 가방을 끌고 다니게 할 수 있지.”"90년대 엄마들은 기가 막히네.”"저런 사람은 엄마가 될 자격이 없어.”‘이상하네, 왜 다들 날 잡아먹으려는 것 같지?'박예찬의 진지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나서야 그녀는 큰일이 났다는 것을 알았다."엄마, 걸을 때 전화하면 안 돼요.”조하랑은 자신이 언제 아들을 낳았는지 궁금했다. 커다란 상자를 끌고 마스크와 모자를 쓴 채 빛이 나는 순진한 눈망울을 돌아보던 그녀는 하마터면 발을 동동 구를 뻔했다.욕을 하고 싶은데 할 수 없었다. 만약 박민정이 그녀의 아들이 몰래 따라온다는 것을 알았다면 미쳐버릴 것이 틀림없었다.공항의 많은 사람은 몰랐지만 그의 말을 듣고 순간 마음이 아프면서 사랑스럽기도 했다."귀여워, 철이 든 아가야.”"내 아들이었으면 좋겠다.”"이렇게 무책임한 엄마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48화

    "...... "‘이 녀석은 꼬맹이가 아니야.'박예찬은 조하랑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이미 왔는데 걱정하지 마, 이모. 내가 엄마에게 가서 사과할게.”조하랑은 울고 싶었지만 눈물이 나지 않았다. 어린아이한테 당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혼자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 녀석이 혼자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도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너 말 잘 듣고 여기 있어. 민정이한테 전화하고 올게. 그렇지 않으면 민정이랑 할머니가 널 걱정하겠어.”"걱정 마, 내가 할머니랑 같이 가자고 메모 남겨놨어.""..."그녀는 휴대전화를 들고 박민정에게 전화를 걸었다.한편, 박민정은 따뜻한 물 한 잔을 들고 베란다에 앉아 전화를 받았다."하랑아.”조하랑은 뭔가 찔리는 듯한 표정으로 옆에 있는 박예찬를 바라보았다."민정아, 그, 그게…. 서프라이즈 해 주고 싶었는데 그만...”"왜 그래?""나 진주시로 돌아왔어. 지금 공항인데... 예찬이가 날 따라왔…네? 아하하…”박민정의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다.조하랑이 박예찬에게 휴대전화를 건네며 입모양으로 "스스로 해명해"를 외쳤다."엄마, 이모 탓하지 마. 내가 몰래 항공권을 끊고 따라온 거야.”"엄마 혼자 진주시에 있으니까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혼자 몰래 비행기 티켓을 샀다고?'박예찬이 똑똑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린아이가 혼자서 공항에 갈 줄은 몰랐다."박예찬! 엄마가 너한테 했던 말 잊었어?”"엄마가 보고 싶은 걸 어떡해. 걱정도 되고.”박예찬은 대답 대신 이렇게 말했다.박민정은 갑자기 목이 메어 대답하지 못했다. 조하랑도 박예찬이 한 말에 놀라 몸을 웅크리고 앉아 휴대전화를 가져와서 말했다."민정아, 걱정하지 마. 내가 예찬이를 데리고 있을게. 유남준이 예찬이를 발견하지 못하게.”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화를 끊기 전에 그들은 한 음식점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조하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박예찬을 바라보았다. 두 그림자가 함께 공항 밖으로 걸어 나갔다.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49화

    [알겠어.]마침내 일을 그만둔 그를 본 이지원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아줌마가 재촉하셨어요?”유남준의 얇은 입술이 가볍게 열리며 말했다."아니야.”그녀는 무슨 일이냐고 물으려다 입을 닫았다. 그리고는 그의 시선이 창밖으로 간 것을 발견했다. 차량은 금월호텔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벤틀리 한 대에서 한두 명이 내렸다.유남준의 시선은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있어 잘 보이지 않지만 말할 수 없는 익숙함이 느껴지는 그 작은 소년에게로 쏠렸다. 그는 두 사람이 식당 입구에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유남준은 운전 기사에게 말했다."차 세워.”이지원은 좀 이상해서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그는 대답도 하지 않고 문을 밀고 곧장 내려갔다.조하랑이 박예찬을 데리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화장실이 급해서 박민정에게 전화를 걸어 데리러 오라고 했다. 그녀가 문을 나서자 양복 차림의 빳빳한 유남준이 곧장 자신을 향해 걸어왔다.순간적으로 손바닥에 땀이 줄줄 흘러서 그녀는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돌아섰다."우연이네."유남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박민정은 피할 수 없었다. 그녀는 조하랑과 박예찬이 지금 올라오지 않기를 기도했다."유 대표님도 여기 식사하러 오셨나요?"그녀가 한마디 대꾸했다."전 아직 일이 좀 있어서 방해하지 않을게요.”"민정아."막 가려는데 조하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민정의 가슴이 뜨끔했다. 유남준은 계단을 등지고 있었기 때문에 조하랑과 박예찬은 계단을 올라왔을 뿐 유남준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인사를 한 것이었다.그는 소리를 듣고 조하랑과 박예찬을 바라보았다. 박예찬은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그의 까만 눈동자는 유남준에게 이상한 익숙함을 줬다.사방이 갑자기 고요해졌다. 조하랑이 완전히 굳어 있었다. 박민정은 아들이 자신을 부를까 봐 숨을 죽였다."민정 이모, 안녕하세요.”말을 마치고 그는 조하랑의 손을 잡았다."엄마, 배고파. 빨리 이모랑 밥 먹자.”조하랑은 정신을 차렸다."가자, 민정아.”그녀는 박예찬의 손을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50화

    박예찬의 작은 얼굴이 잘 익은 사과같이 더 빨개졌다.그는 기침을 두어 번 하고 목소리를 낮추었다."엄마, 난 어린아이가 아니야. 게다가 이모도 있는데.”이 말 때문에 방금 유남준때문에 파괴되었던 분위기가 정상으로 돌아와 떠들썩해졌다.조하랑은 처음으로 박예찬이 부끄러워하는 것을 보고 놀리기 시작했다."엉덩이를 맞은 적이 있었구나!""아니거든!”이런 박예찬이야말로 어린아이 같았다. 박민정은 다급하게 해명하는 아들을 보며 화가 사그라들었다. 박예찬과 박윤우는 하늘이 준 보배라서 그녀가 전혀 화를 낼 수 없었다. 그리고 여기로 오는 길에 그녀는 생각했다.‘나는 계속 유남준을 피할 수 있지만 두 아들도 계속 숨어 있어야 해? 분명 아무 잘못도 없는데 왜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없고 집이 있어도 돌아갈 수 없는 거지?'그리고 오늘 이 갑작스러운 상황은 그녀로 하여금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 결정하게 했다.밥을 먹을 때, 조하랑이 사람을 찾아서 박예찬을 돌려보내려고 건의했다가 박민정에게 거절당했다."생각해 봤는데 계속 숨어 있는 게 최선의 해결 방법은 아닌 것 같아.”"예찬이를 여기에 남아 있게 하도록 결정했어.”"남준 씨도 이미 예찬이를 보았고 예찬이가 네 아들이라고 생각하니까 걱정할 것 없어.”"조금 있다가 할머니께 거기서 윤우를 돌보라고 말씀드릴게. 예찬이는 나와 함께 진주시 있다가 진전이 있으면 다시 돌아가자.”조하랑도 이에 동의했다."할머니 쪽에는 간병인이 있지만 어르신 한 명이 두 아이를 돌보기엔 벅차. 예찬이가 남아 있으면 너랑 같이 있을 수도 있고.”"남준 씨가 알아도 겁낼 것 없어 나랑 연지석이 있잖아.”"나도 있어, 엄마. 내가 꼭 엄마랑 윤우를 지켜줄게.”박예찬이 말했다.박민정과 조하랑이 그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그래.""그럼 내가 먼저 예찬이를 데리고 갈게. 네가 임신하기 전에 예찬이는 먼저 나랑 같이 있고. 네가 그를 만나고 싶을 때 내 쪽으로 와."조하랑이 말했다. 지금은 이럴 수밖에 없었다. 박민정은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51화

    박예찬은 그녀의 말을 듣고 순결을 지키지 못한다는 생각만 들었다.얼마 후 그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바로 자기 방으로 가서 쉬었다....한편, 고씨 저택.경호원은 유남준에게 박민정이 식당에서 밥을 먹은 후 공관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전했다.그리고 그의 심드렁한 모습은 이지원과 고영란의 눈에 그대로 비쳤다.“지원아, 너 오늘 어렵게 온 건데 그냥 여기서 자고 가. 내일 우리 남편도 돌아올 거야. 널 만나고 싶어 하셔.”유명준은 사랑꾼 탕아로 쉰 살이 넘었건만 정을 여기저기 뿌리고 다니며 좀처럼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이지원은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유남준은 그녀들 사이의 대화에 무관심했고 아무렇게나 음식을 먹고는 의자에서 일어나 식탁을 떠났다.“어디 가니, 남준아?”고영란이 궁금해하며 물었다.“집 갑니다.”그녀는 더욱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었다.‘거긴 남준이가 예전에 결혼한 뒤 박민정과 함께 살던 곳인데 무슨 집 이긴 집이야?’“오늘은 여기 머물러 있어라. 내일 네 아버지가 돌아올 테니, 너와 지원이의 혼사도 상의해보자꾸나.”‘혼사?’유남준의 깊은 눈동자에 차가운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저 아직 이혼하지도 않았는데, 무슨 혼사에요?”그러자 고영란은 갑자기 마음 한쪽이 꽉 막히는 것 같았다.한쪽에 있는 이지원은 안색이 변하지 않았지만, 젓가락을 쥔 손이 저절로 조여졌다.‘박민정이 죽은 지가 언젠데, 이혼하고 말고가 그렇게 중요한가?’이윽고 유남준이 발걸음을 돌려 밖으로 걸어갔고 이지원이 그의 뒤를 따랐다.“오빠!”유남준은 발걸음을 멈추었고 이지원은 서둘러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오빠, 내가 뭐 잘못했어요? 왜 지금까지도 나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거예요? 오빠가 박민정이랑 결혼한 후로 지금까지 나 8년 동안 오빠 기다렸어요.”이지원은 눈가에 눈물을 머금고 말을 이어갔다.“내가 오빠한테 어울리지 않을까 봐 줄곧 노력해 왔고, 어렵게 지금 이 자리에 서게 된 건데... 이제야 감히 오빠한테 다가갈 수

Latest chapter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774화

    방성원도 방은정의 작은 손을 꼭 잡아주고 나서야 그녀는 안심하고 다시 잠에 들었다.그 모습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설인하는 왠지 모르게 씁쓸한 감정이 몰려왔다.그러다가 문득 이혼도 먼저 제안하고 거기에 아이 양육권까지 달라고 한 자신이 너무 이기적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아이도 아빠를 너무 잘 따랐고 방성원도 아이를 많이 예뻐했다.이때, 차가 갑자기 급정거하게 되었는데 설인하가 채 반응도 하기 전에 방성원은 그녀와 방은정을 자기 품에 꼭 안았다.그리고 살벌한 얼굴로 운전 기사에게 물었다.“무슨 일이에요?”“대표님, 죄송합니다. 갑자기 앞에 차가 급정거하는 바람에...”연신 사과하는 운전기사를 보고 방성원이 다시 차분하게 답했다.“천천히 몰아요.”“네.”이 시각 설인하는 여전히 딸과 함께 방성원의 품에 안겨 있었는데 또다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그러다가 문득 그의 두 눈과 마주하게 되었고 두 사람은 한동안 그 상태로 말없이 바라만 보았다.이때, 방은정이 방성원의 옷자락을 잡고 그를 불렀다.“아빠...”방성원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면서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그 뒤로 차는 도로 위를 아주 천천히 달리게 되었는데 이상하게 설인하는 아까부터 심장이 계속 두근거려 창밖을 바라보면서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집에 도착하자마자 방성원은 방은정을 안은 채 앞에서 걸었고 설인하는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도우미는 세 사람이 같이 돌아온 모습을 보고 살짝 긴장한 얼굴로 다가와 물었다.“은정이는 괜찮나요?” “그저 보통 감기래요.”방성원은 아이를 그녀에게 넘기며 말했다.“너무 다행이네요.”여태껏 도우미가 방은정을 계속 돌보고 있었는데 이렇게 예쁜 아이가 아프다고 하니 자신도 걱정되었다.그렇게 도우미는 방은정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이때, 방성원은 한창 출근 준비 중인 설인하를 불러세웠다. “얘기 좀 해.”“뭐?”두 사람은 나란히 집을 나섰고 방성원이 대뜸 그녀에게 물었다.“정말 나랑 이혼하고 싶어?”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773화

    “괜찮아. 할아버지께서 건강검진 받으셨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했대.”조하랑도 병원 의사한테서 들은 얘기였지만 김훈이 미리 시켰단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박예찬은 당장에라도 조하랑에게 모든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게 너무 답답해서 그저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저는 그래도 이모가 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뱃속에 아기도 있잖아요.”순간 조하랑은 깜짝 놀라 단번에 박예찬의 입을 막았다.“예찬아, 이 일은 이모랑도 약속했지? 절대로 할아버지랑 인우 삼촌한테 말하면 안 돼. 알겠지?”그러자 박예찬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말하려면 진작에 말했어요.”‘하긴.’조하랑은 이미 어른이랑 별다를 게 없는 박예찬이 너무 든든했다.“그러면 다행이고. 어른들의 일은 어른이 해결할 테니까 넌 빨리 학교 가.” 박예찬은 자신의 설득에도 조하랑이 고집을 부리니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다른 한편, 김인우는 그제야 박민정의 난청 수술에 관한 일이 떠올라 수술 시간을 확인차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러자 박민정은 서주에 갔다 와서 다시 수술 날짜를 잡겠다고 말했다.순간 오늘 갑자기 서주로 가겠다던 조하랑이 떠올랐는데 사실 지금 그녀가 하는 업무는 온라인 마케팅 부분이라 굳이 출장 갈 필요가 없었다.설령 필요하다고 해도 이렇게나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아 그는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요 며칠 하랑 씨가 뭐 하고 다니는지 잘 지켜봐 봐.”김인우는 모든 일을 안배한 뒤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그러나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방성원, 설인하 부부와 딸 방은정의 모습이 보였다.“성원아, 병원엔 웬일이야?”“아기가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아서 검사하러 왔어.”“그래.”그렇게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더 얘기를 나눈 뒤 헤어졌다.그러다가 김인우는 다시 뒤돌아 방성원네 세 식구의 모습을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문득 자신은 언제쯤 아이가 있을지, 언제쯤 조하랑과 아이와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772화

    “왜요? 혹시 아이 갖고 싶어요?”저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데 과연 조하랑이 뭐라고 할 수 있을까?순간 짜증이 밀려온 조하랑은 미간을 찌푸리고 답했다.“저도 싫어요. 애초에 아기를 잘 돌보는 타입도 아니라서 그냥 말해본 거예요.”그녀는 말하면서도 이불자락을 꽉 쥐었다.동시에 김인우도 그녀의 대답에 적잖이 실망감을 느꼈다.여태껏 조하랑이 박예찬과 잘 놀아주는 모습만 봐서 당연히 그녀가 아이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 솔직한 마음을 속인 채 불편한 상태로 자야 했다.그러나 조하랑은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고 내일은 무조건 할아버지한테 외지로 떠나겠다고 말할 셈이었다.이튿날 아침.두 사람은 모두 일찍 일어났는데 그중 김인우는 확실히 어제보다 안색이 좋아졌다.“깼어요? 언제 시간 있을 때 우리 또 훠궈 먹으러 가요.”김인우는 이제부터 그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 했지만 조하랑은 왠지 그러기 싫어졌다.“아마 내년까지 기다려야겠네요.”식탁 옆에 앉아 있던 김훈이 그녀의 말을 듣고 어리둥절해서 되물었다.“하랑아, 왜 내년까지 기다려?”“할아버지, 마침 말씀드리려던 참이었는데요. 저 서주시에 가서 일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략 1년 반 정도 뒤에 다시 돌아올게요.”조하랑의 말에 김훈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왜 갑자기 그리 멀리 가는데?”이때 조하랑은 박예찬에게 눈빛을 보내며 자신을 도와 몇 마디라도 해주길 바랐다.그러나 지금 박예찬의 머릿속은 온통 김훈의 건강 때문에 누구를 도와줄 처지가 아닌 것 같아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밥만 먹었다.“할아버지, 저는 아직 나이도 어리고 여러 곳에서 많이 도전해 보고 싶어요. 그러니까 부디 허락해 주세요.”조하랑은 활짝 웃으며 그에게 애교를 부렸다.그녀가 김씨 가문으로 시집오고부터 김훈은 조하랑이 원하는 건 모두 들어줬고 단 한 번도 안 된다고 거절한 적이 없었다.그러나 문득 자기 건강을 생각해 보니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그래. 그럼 인우랑

  • 죽기 전엔 못 놔줘   재1771화

    김인우는 살짝 어리둥절했다.집에 있을 때도 매번 셰프에게 평범한 집밥 요리만 주문했던 그녀였기 때문이다.그러자 조하랑이 매운 닭발 하나를 들고 그에게 말했다.“저는 기분이 다운되거나 우울한 일이 있으면 무조건 매운 음식을 먹어줘야 해요.”“먹으면 좀 나아져요?”“당연하죠. 입 안이 얼얼해지면서 온몸이 개운해지거든요. 믿지 못하겠으면 오늘 한번 도전해 보시든지.”말을 마치자마자 조하랑은 그의 접시에 고기 한 점을 덜어줬다.김인우는 거절하는 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젓가락으로 집어서 입에 넣었는데 순간 너무 뜨겁고 매워 허겁지겁 물로 입을 헹궜다.“너무 매운데요? 이런 음식은 건강에도 안 좋을 것 같은데 적게 먹는 게 좋겠어요.”그러자 조하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저도 아는데 가끔 먹는 건 상관없어요.”그녀는 지금 임신 중이라 매일 집에서 해주는 요리를 거의 못 먹는 상황이었는데 오늘 훠궈를 보자마자 갑자기 집 나갔던 입맛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자, 여기 더 먹어요. 이것도 먹다 보면 습관 되거든요.”김인우는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먹기 시작했다.조하랑의 말대로 처음에는 살짝 받아들이기 힘들었는데 먹다 보니 너무 매운 것도 아니었다.그러나 확실히 덥긴 더웠는지 두 사람은 땀도 많이 흘리고 물도 엄청나게 마셨다.어느새 배가 부른 조하랑은 만족스러운 듯 자기 배를 통통 두드렸고 김인우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확실히 이 방법이 효과가 있는 것 같네요.”“당연하죠. 저는 매번 이렇게 스트레스 풀거든요.”말하면서 활짝 웃는 조하랑의 모습을 김인우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없이 빤히 바라보았다.어느새 그의 뜨거운 시선을 느낀 조하랑은 뚝딱거리며 그에게 물었다.“왜 그렇게 봐요?”김인우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헛기침 몇 번 하더니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너무 배불러서 잠깐 멍때린 거지 일부러 본 거 아니에요.”“아, 네네.”조하랑은 그의 대답에 별생각 없이 또 우유 한 잔을 들이켰다.사실 지금 상태로는 가능한 매운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770화

    이 시각, 조하랑은 무작정 핸들은 잡았는데 어디로 가면 좋을지 몰랐다.김인우도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는 것 같아 그저 도로를 따라 앞으로 계속 직진했다.평소 재잘거리기 좋아하던 김인우는 오늘 유난히 조용했고 그저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조하랑은 가는 도중에도 사실 몇 번이고 그를 위로해 보고 싶었지만 끝내 내뱉지 못하고 말을 다시 삼켰다.딱히 위로할 줄 아는 사람도 아니었기에 김인우가 스스로 이 우울함을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앞으로 조금만 가다가 오른쪽으로 가요.”이때, 김인우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네.”그리고 그의 말대로 옆 골목으로 빠지니 어느새 인적이 없는 작은 길이 나왔다.얼마쯤 더 가보니 조하랑은 산 중턱에 있는 묘원을 발견했다.“여기서 세워줘요.”“네.”차가 멈추자마자 김인우가 먼저 내렸고 조하랑은 빠르게 그의 옆으로 다가가 물었다.“여긴 어디예요?”“김씨 가문의 묘지에요.”조하랑은 말없이 그를 따라갔다.그렇게 수많은 묘비를 지나 김인우는 어느 부부의 합장 묘비 앞에 멈춰 섰다.조하랑은 묘비에 걸려있는 왼쪽과 오른쪽 두 장의 흑백 영정사진을 번갈아 보다가 그제야 두 부부의 모습이 김인우와 많이 닮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외모상으로 봤을 때는 겨우 20~30대밖에 안 돼보이는데 생각해 보면 너무 일찍 고인이 된 것 같았다.김인우는 묘비 위의 부모님 사진을 바라보다가 담담하게 그들을 불렀다.“아빠, 엄마.”조하랑은 가만히 서 있다가 앞으로 한 발짝 내딛으며 인사를 건넸다.“아버님, 어머님, 제 이름은 조하랑이고 인우 씨 아내입니다.”두 사람은 결혼한 후에도 김씨 가문의 묘원에는 와본 적이 없었다.김훈은 그녀가 사람이 많은 자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에 추석이나 설 때에도 될수록 친정집에서 가족들과 명절을 쇨 수 있게 배려해 줬다.김인우는 뜬금없는 조하랑의 행동에 어리둥절해서 그녀에게 되물었다.“왜 갑자기...”그러나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조하랑이 먼저 말했다.“뭐가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769화

    김훈은 박예찬이 일찍 철이 들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생각이 깊은 아이일 줄은 몰랐다.“할아버지가 사실대로 말해주면 절대로 하랑 이모랑 우리 인우한테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알겠지?”박예찬은 머뭇거리다가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네.”김훈은 그제야 오늘 병원에서 들은 결과를 말해줬는데 지금 상황이 매우 안 좋다고 했다. 계속 시도 때도 없이 심장이 두근거려서 검사해 보니 심장병이 맞았고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고 했다.그러나 김훈은 여태껏 사람들 앞에서 줄곧 꾀병을 부리는 듯한 행동을 보여줬다.“증조할아버지, 그런데 왜 하랑 이모랑 은우 삼촌한테 비밀로 하나요?”박예찬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김인우가 자기 앞에서 김훈이 얼마나 고집불통인지 불만을 토로하던 모습이 떠올랐다.만약 자기 할아버지가 진짜로 병에 걸렸다는 걸 알면 그런 소리도 못 할 텐데 말이다.그리고 조하랑도 마찬가지다.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김훈에게 알려주면 엄청 기뻐할 텐데 애석하게도 그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바보야, 사람이 늙으면 죽는 게 자연스러운 거야. 그걸 뭣 하러 말해? 말해봤자 괜히 걱정만 시키겠지. 남은 사람이라도 즐겁게 살아야 하지 않겠어?”박예찬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수그렸다.그러자 김훈이 그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말했다.“예찬아, 방금 한 약속은 꼭 지켜야 해. 절대로 두 사람에게 말하면 안 된다. 아니면 이 할아버지가 진짜로 화낼 거야.”“네.”박예찬은 자꾸만 목이 메어와 겨우 답했다....다른 한편.조하랑은 김훈의 부탁대로 김인우의 방문 앞까지는 왔지만 뭐라고 문을 두드려야 할지 막막했다.바로 이때, 방문이 갑자기 열리면서 김인우는 또다시 자기 눈앞에 서 있는 조하랑과 마주하게 되었다.“왜요? 또 무슨 일 있어요?”조하랑은 고개를 저었다가 다시 끄덕였다.“네, 아, 아니요.”혼란스러운 그녀의 대답에 김인우가 미간을 찌푸리고 되물었다.“맞다는 거예요, 아니라는 거예요?”“그, 그게 혹시 지금 어디로 가요?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768화

    “하랑아, 할아버지가 잊어버리고 너한테 말해주지 않았는데 오늘이 인우 부모님 기일이야.”김훈의 말에 조하랑은 그제야 김인우가 오늘 왜 저리도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는지 이해가 갔다.“지금 생각해 보니 작년 이맘때쯤에도 그랬던 것 같네요.”작년에는 김인우한테 별로 관심이 없었을 때라 물어보지도 않았다.김훈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때 인우가 어리기도 했고 또 부모님의 죽음이 커서도 큰 트라우마로 남았나 봐.”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하랑아, 혹시 우리 인우 좀 도와줄 수 있을까?”“나는 인우가 그래도 널 좋아한다고 생각하거든. 가서 그냥 옆에 있어 주기만 해도 돼. 저렇게 방안에 자신을 가두고 있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서 그래. 아무리 평소에는 까불거리고 말하기 좋아한다고 해도 마음이 아주 여린 아이라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거야.”조하랑은 점점 김인우가 안쓰럽게 느껴졌다.사실 그의 어머니는 어릴 적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그러나 아버지는 항상 엄마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도록 그에게 최선을 다해 아낌없는 사랑을 줬다.“네, 제가 노력해 볼게요.”조하랑의 대답에 김훈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그리고 박예찬의 방에 가서 문을 두드렸다.“예찬아.”“증조할아버지, 들어오세요.”김훈은 박예찬의 말에 빠르게 방 안으로 들어가 활짝 웃으며 물었다.“예찬아, 할아버지가 오늘 무슨 선물을 가져왔게?”김훈은 손을 뒤로 감췄으나 박예찬은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바로 답했다.“또 어디서 간식 사 왔어요?”“아이고, 먹는 게 아닌데?”김훈이 장난스레 답했다.“그럼 바둑인가요?”김훈은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아니, 네 연령대에 어울리는 물건이라고 생각해 줄래?”그러나 박예찬은 끝까지 알아맞히지 못했다.김훈은 그제야 싱글벙글해서 손에 감췄던 물건을 내놓았는데 그건 바로 다이아몬드 게임이었다.“우리 보드게임 한판 하자.”박예찬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너처럼 매일 컴퓨터만 보고 있으면 시력 건강에 아주 안 좋아.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767화

    그리고 곧바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어차피 조하랑과 엄마의 비밀은 어느 정도 다 알고 있었다.겨우 거실에 두 사람만 남게 되자 조하랑은 더는 못 참고 입을 열었다.“민정아, 나 인우 씨랑 할아버지한테 아직 임신 사실을 말하지 않았어.”“왜?”박민정은 조하랑의 몸을 보더니 이제 어느 정도 임산부인 티가 난다고 생각했다.그러자 조하랑이 머뭇거리며 답했다.“인우 씨 태도가 계속 애매하더라고. 그리고 이런 부잣집 도련님에 대해 솔직히 믿음이 안가.”지금까지 딱 한번 연애를 해봤는데 그때 호되게 당한 뒤로는 아무리 결혼했다고 해도 여전히 남자에 대한 경계심이 높았다.“그런데 이런 일은 숨긴다고 숨겨지는 게 아니잖아.”“그러니까.”조하랑은 깊은 한숨을 쉬더니 박민정을 보며 물었다.“민정아, 예찬이가 그러던데 너희 가족 모두 서주에 간다면서? 나도 따라가면 안 될까?”“뭐?”박민정이 깜짝 놀라 그녀에게 되물었다.“서주에 가서 뭐 하려고?”“일단 서주로 일하러 간다고 하고 1년 반 정도 있다가 다시 돌아오려고.”조하랑은 여전히 김인우가 아이를 빼앗아 갈까 봐 두려워했다.그녀의 말에 박민정은 그제야 조하랑이 홀로 아이를 낳은 뒤 다시 돌아올 계획이란 걸 알아챘다.“과연 할아버지께서 널 보내줄까?”“걱정하지 마. 할아버지쯤이야 가볍게 구슬릴 수 있어. 나를 제일 아끼는 분이라 반드시 허락할 거야.”“그래. 결정되면 알려줘.”조하랑은 둘도 없는 친구이기에 박민정도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돕고 싶었다.“민정아, 고마워.”말을 마치자마자 조하랑은 박민정을 꼭 안아줬는데 그런 그녀가 안쓰러워 박민정은 그녀의 등을 토닥여줬다.“아무리 그래도 태어날 아이의 미래도 잘 생각해 봐야 해. 혹시나 아빠가 필요할 수도 있잖아...”박민정은 여태껏 겪었던 자기 경험담을 모두 말해줬다.그러자 그녀는 박민정을 더욱 꽉 끌어안으며 답했다.“응, 그럴게.”두 사람은 얼마간 이야기를 더 나누다가 박민정이 그만 집에 가려는데 마침 김훈이 돌아왔다.그리고 박민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766화

    얼마 지나지 않아 고급 차 한 대가 그들 앞에 세워지더니 고영란이 두 동생을 데리고 차에서 내렸다.“어머님.”고영란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민정아.”이때, 정수미가 말소리를 듣고 눈을 뜨자 고영란은 빠르게 그녀에게 다가왔다.“사돈.”마침 두 사람은 나이도 비슷했고 같은 또래다 보니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박민정도 옆에서 네 명의 아이와 놀아줬다.“어, 어마마...”두 동생은 아직 말이 서툴렀지만 박민정은 오히려 그게 듣기 좋았다.이때, 갑자기 핸드폰이 울려 확인해 보니 조하랑이었다.“민정아.”“무슨 일이야?”“혹시 지금 우리 집으로 좀 와 줄 수 있어?”떨리는 소리로 묻는 조하랑의 모습에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든 박민정은 빠르게 답했다.“응. 바로 갈게.”그리고 고영란과 정수미에게도 김씨 가문으로 간다고 말하자 박예찬이 냉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엄마, 저도 같이 가고 싶어요.”“그래.”그렇게 박민정은 박예찬을 데리고 김씨 가문으로 가는 차에 올라탔다.도착해보니 조하랑은 진작에 대문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고 두 사람이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무슨 일인지 인우 씨가 하루 종일 혼자 방안에서 꼼짝도 안 하고 있어. 불러도 대답 없고.”“할아버지는?”“오늘 병원에 검사받으러 가셨는데 괜히 할아버지까지 걱정 끼쳐드리고 싶지 않아.”박민정은 일단 조하랑과 같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그리고 김인우의 방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조하랑은 다시 조심스레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인우 씨, 문 좀 열어봐요. 민정이랑 예찬이가 놀러 왔어요.”박민정이 왔다는 말에 방안에서 의자를 끄는 소리가 들려왔다.그제야 방안의 인기척을 느낀 조하랑은 다시 그에게 물었다.“혹시 무슨 일 있어요?”“한번 나와봐요.”지금까지 김인우와 같이 살면서도 이런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오래 기다린 끝에 마침내 방문이 열리면서 김인우의 모습이 보였는데 다크써클이 턱까지 내려온 얼굴에 수염까지 덥수룩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