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는 얇은 잠옷을 입고 온몸이 흠뻑 젖은 채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박민정을 발견했다. 그녀의 손과 다리는 이미 새빨갛게 할퀸 상처들로 가득했다. 그는 재빨리 물을 잠그고 가운을 집어 박민정의 보일 듯 말 듯 한 몸을 가렸다.“괜찮으세요?”그의 목소리는 그리 낮은 편은 아니었으나 박민정의 귀에는 그저 희미하게 들릴 뿐이었다.뒤늦게 정신을 차린 박민정은 창백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괜찮아요”“제가 병원까지 모셔다드릴게요.”정민기가 허리를 굽혀 그녀를 안으려 하자 그녀는 옆으로 피하며 말했다.“안 돼요. 진주에 있는 모든 병원은 전부 김씨 가문의 손아귀에 있어요. 그리고 김인우도 내가 돌아온 것을 이미 알고 있고요. 혹시라도 내가 약을 먹은 것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김인우는 분명 유남준에게 말할 거예요. 유남준이 술에 약을 탔다는 걸 알면 앞으로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할 거예요.”그녀는 겨우겨우 긴 말을 끝냈다.4년 전, 그녀는 자기를 죽은 사람으로 만들었다.연지석의 도움이 없었다면 절대 김인우를 속일 수 없었을 것이다.연지석이 곁에 없는 지금, 그녀가 병원에 간다면 그쪽 사람들은 분명 김인우에게 가장 먼저 알릴 것이다.박민정이 병원을 가지 않고 혼자 이겨내겠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정민기는 욕실에 들어오기 전, 거실 바닥에 쏟아진 술을 보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 짐작하게 되었다. 그는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하지만 지금 민정 씨 몸 상태가...”“얼음 좀 가져다주세요.”“네. 알겠어요.”정민기는 주방에 들어가 냉장고에서 얼음을 가져왔다.얼음 한 봉지를 통째로 욕조 안에 넣자 살을 에는 듯한 차가움이 박민정의 달아오른 몸을 그나마 편하게 했다.정민기는 또 의약 상자를 가져와 그녀 옆에 놓았다.“고마워요.” 박민정은 진심 어린 말투로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정민기는 아무 말도 없이 욕실을 나가 그녀가 정리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면서 연지석에게 그녀의 안부도 전해줬다.몇 시간
이지원은 조금 전 유남준의 마지막 말을 듣고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워낙 생각이 많은 서다희는 그녀의 물음에 한두 마디 야유를 퍼부었지만, 박민정이 돌아왔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알리지 않았다.눈치 빠른 이지원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속으로 서다희를 욕하며 유남준에게 다가갔다.“오빠, 명절이 곧 다가온다고 어머님이 오늘 저녁에 같이 밥 먹자고 했어요.”이지원이 말하는 어머님은 바로 유남준의 어머니이다.분명 또 두 사람이 빨리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라는 말을 하기 위함일 것이다. 유남준은 고개도 들지 않고 한 마디 툭 내뱉었다.“알았어.”그의 대답을 들은 이지원은 사무실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저 오늘은 별일 없으니 여기서 기다릴게요.”하루 종일?유남준은 그녀를 힐끗 보며 한마디 했다.“그렇게 한가해?”이지원은 순간 멈칫했지만 이내 태연한 얼굴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편 유남준은 그녀의 대답이 떨어지기도 전에 말을 이었다. “나는 일할 때 남이 옆에 있는 거 안 좋아해.”그의 말에 이지원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그저 한마디만 내뱉었다.“그럼, 밖에서 기다릴게요.”유남준이 더 이상 대꾸하지 않자 이지원은 내키지 않은 얼굴로 대표이사실을 나섰다.유남준의 차갑게 거절하는 얼굴은 예전에 사귀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늘 변함이 없었다.이런 사람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박민정뿐일 것이다.기분 전환을 위해 밖으로 나간 이지원은 김인우의 사무실이 텅 비어 있는 것을 보고 비서에게 물었다.“인우 오빠 요즘 안 오나요?”“요즘 집안 어르신들이 김 대표님에게 결혼 준비를 하라고 해서 못 왔어요.”비서는 사실대로 대답했다.결혼?이지원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김인우는 이지원 때문에 집안 어르신들이 안배한 혼사를 거절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요즘 집안 어르신들이 한창 김인우의 결혼 준비를 한다는 말에 이지원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씁쓸했다.“상대방이 누군데요?”이지원은 궁금한 마음에 비서에게 물었다.비서
고아로서 어릴 때부터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이었다.김인우의 말은 그녀가 처음 재벌 2세들과 합류했을 때 얼마나 많은 추태를 부렸는지, 몇 년 전에 얼마나 창피했는지를 상기시켜 주었다."내가 유씨 가문의 며느리가 되면 누가 나를 무시할지 보자!”이지원이 박민정을 언급하지 않은 걸 보니 그녀가 돌아온 걸 모르는 것 같았다.김인우는 9번 공관 밖에서 계속 기다렸다."도련님, 민정 씨는 오늘 내내 안 나오셨어요. 제가 가서 문을 두드려볼까요?"보디가드는 그를 기다리게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김인우는 거절했다."아뇨, 그냥 여기서 기다릴게요.”어제 박민정이 돌아왔다는 것을 알고 나서 그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설렘을 느꼈고 즉시 그녀를 찾아가 그해의 일을 묻고 싶었다.하지만 그가 박민정을 괴롭혔을 때를 생각하면 그는 감히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 한번 기다리기 시작하니 벌써 두 시간이 지났다.박민정은 어젯밤에 얼음물에 샤워해서 오늘 감기에 걸린 듯 머리가 어지러웠다. 정민기가 그녀에게 약을 사줬는데 마신 후에도 여전히 몸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외투를 걸치고 어제의 긁힌 상처를 가리고 밖에서 기분 전환을 하려고 공관을 나왔다. 여름인데도 긴 옷에 긴 바지를 입고 있는 그녀는 덥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의사는 어젯밤 일로 그녀를 다시 병원에 입원시킬 뻔했다고 말했다. 앞으로 천천히 신중하게 의논해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멀지 않은 곳에 주차된 차를 눈치채지 못한 박민정이 그대로 지나가려 하자 김인우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어... 민정아.”박민정은 걸음을 멈추고 그를 돌아보며 멍하니 있었다.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김인우는 곧장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가에 이르러서는 다 사라져 버렸다."그동안 잘 지냈니?”‘잘 지냈냐고?'그녀가 마음속으로 냉소를 지었다.‘내가 잘 못 지내지 않기를 가장 바라는 사람이 아닌가?'그녀는 입술을 꼭 오
박민정은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남자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죄송합니다만 몇 년 전에 아팠던 적이 있어서 많은 사람과 일을 기억하지 못해요.”말을 마친 박민정은 돌아서서 공관으로 돌아갔다. 김인우의 큰 몸집은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기억이 안 난다고?'그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감명을 받지 못했다. 보디가드도 도련님이 이렇게 넋이 나가시는 걸 처음 보기 때문에 앞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공관으로 돌아와 소파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박민정은 에스토니아 공항에서 절친 조하랑이 미리 비행기 표를 끊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오늘 밤이면 진주시에 도착할 것이었다. 그리고 박예찬도 인터넷에서 같은 비행기 표를 사서 몰래 비행기에 올랐다.저녁 7시에 조하랑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박민정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 그녀는 트렁크 높이도 안 되는 운동복 차림에 마스크와 모자까지 쓴 박예찬이 뒤따라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자신보다 더 큰 캐리어를 끌고 있었다. 다른 이들의 이상한 시선에 조하랑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사람들의 비난 소리가 높았다."엄마가 어떻게 아이한테 저렇게 큰 가방을 끌고 다니게 할 수 있지.”"90년대 엄마들은 기가 막히네.”"저런 사람은 엄마가 될 자격이 없어.”‘이상하네, 왜 다들 날 잡아먹으려는 것 같지?'박예찬의 진지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나서야 그녀는 큰일이 났다는 것을 알았다."엄마, 걸을 때 전화하면 안 돼요.”조하랑은 자신이 언제 아들을 낳았는지 궁금했다. 커다란 상자를 끌고 마스크와 모자를 쓴 채 빛이 나는 순진한 눈망울을 돌아보던 그녀는 하마터면 발을 동동 구를 뻔했다.욕을 하고 싶은데 할 수 없었다. 만약 박민정이 그녀의 아들이 몰래 따라온다는 것을 알았다면 미쳐버릴 것이 틀림없었다.공항의 많은 사람은 몰랐지만 그의 말을 듣고 순간 마음이 아프면서 사랑스럽기도 했다."귀여워, 철이 든 아가야.”"내 아들이었으면 좋겠다.”"이렇게 무책임한 엄마
"...... "‘이 녀석은 꼬맹이가 아니야.'박예찬은 조하랑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이미 왔는데 걱정하지 마, 이모. 내가 엄마에게 가서 사과할게.”조하랑은 울고 싶었지만 눈물이 나지 않았다. 어린아이한테 당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혼자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 녀석이 혼자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도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너 말 잘 듣고 여기 있어. 민정이한테 전화하고 올게. 그렇지 않으면 민정이랑 할머니가 널 걱정하겠어.”"걱정 마, 내가 할머니랑 같이 가자고 메모 남겨놨어.""..."그녀는 휴대전화를 들고 박민정에게 전화를 걸었다.한편, 박민정은 따뜻한 물 한 잔을 들고 베란다에 앉아 전화를 받았다."하랑아.”조하랑은 뭔가 찔리는 듯한 표정으로 옆에 있는 박예찬를 바라보았다."민정아, 그, 그게…. 서프라이즈 해 주고 싶었는데 그만...”"왜 그래?""나 진주시로 돌아왔어. 지금 공항인데... 예찬이가 날 따라왔…네? 아하하…”박민정의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다.조하랑이 박예찬에게 휴대전화를 건네며 입모양으로 "스스로 해명해"를 외쳤다."엄마, 이모 탓하지 마. 내가 몰래 항공권을 끊고 따라온 거야.”"엄마 혼자 진주시에 있으니까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혼자 몰래 비행기 티켓을 샀다고?'박예찬이 똑똑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린아이가 혼자서 공항에 갈 줄은 몰랐다."박예찬! 엄마가 너한테 했던 말 잊었어?”"엄마가 보고 싶은 걸 어떡해. 걱정도 되고.”박예찬은 대답 대신 이렇게 말했다.박민정은 갑자기 목이 메어 대답하지 못했다. 조하랑도 박예찬이 한 말에 놀라 몸을 웅크리고 앉아 휴대전화를 가져와서 말했다."민정아, 걱정하지 마. 내가 예찬이를 데리고 있을게. 유남준이 예찬이를 발견하지 못하게.”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화를 끊기 전에 그들은 한 음식점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조하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박예찬을 바라보았다. 두 그림자가 함께 공항 밖으로 걸어 나갔다.
[알겠어.]마침내 일을 그만둔 그를 본 이지원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아줌마가 재촉하셨어요?”유남준의 얇은 입술이 가볍게 열리며 말했다."아니야.”그녀는 무슨 일이냐고 물으려다 입을 닫았다. 그리고는 그의 시선이 창밖으로 간 것을 발견했다. 차량은 금월호텔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벤틀리 한 대에서 한두 명이 내렸다.유남준의 시선은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있어 잘 보이지 않지만 말할 수 없는 익숙함이 느껴지는 그 작은 소년에게로 쏠렸다. 그는 두 사람이 식당 입구에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유남준은 운전 기사에게 말했다."차 세워.”이지원은 좀 이상해서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그는 대답도 하지 않고 문을 밀고 곧장 내려갔다.조하랑이 박예찬을 데리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화장실이 급해서 박민정에게 전화를 걸어 데리러 오라고 했다. 그녀가 문을 나서자 양복 차림의 빳빳한 유남준이 곧장 자신을 향해 걸어왔다.순간적으로 손바닥에 땀이 줄줄 흘러서 그녀는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돌아섰다."우연이네."유남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박민정은 피할 수 없었다. 그녀는 조하랑과 박예찬이 지금 올라오지 않기를 기도했다."유 대표님도 여기 식사하러 오셨나요?"그녀가 한마디 대꾸했다."전 아직 일이 좀 있어서 방해하지 않을게요.”"민정아."막 가려는데 조하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민정의 가슴이 뜨끔했다. 유남준은 계단을 등지고 있었기 때문에 조하랑과 박예찬은 계단을 올라왔을 뿐 유남준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인사를 한 것이었다.그는 소리를 듣고 조하랑과 박예찬을 바라보았다. 박예찬은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그의 까만 눈동자는 유남준에게 이상한 익숙함을 줬다.사방이 갑자기 고요해졌다. 조하랑이 완전히 굳어 있었다. 박민정은 아들이 자신을 부를까 봐 숨을 죽였다."민정 이모, 안녕하세요.”말을 마치고 그는 조하랑의 손을 잡았다."엄마, 배고파. 빨리 이모랑 밥 먹자.”조하랑은 정신을 차렸다."가자, 민정아.”그녀는 박예찬의 손을
박예찬의 작은 얼굴이 잘 익은 사과같이 더 빨개졌다.그는 기침을 두어 번 하고 목소리를 낮추었다."엄마, 난 어린아이가 아니야. 게다가 이모도 있는데.”이 말 때문에 방금 유남준때문에 파괴되었던 분위기가 정상으로 돌아와 떠들썩해졌다.조하랑은 처음으로 박예찬이 부끄러워하는 것을 보고 놀리기 시작했다."엉덩이를 맞은 적이 있었구나!""아니거든!”이런 박예찬이야말로 어린아이 같았다. 박민정은 다급하게 해명하는 아들을 보며 화가 사그라들었다. 박예찬과 박윤우는 하늘이 준 보배라서 그녀가 전혀 화를 낼 수 없었다. 그리고 여기로 오는 길에 그녀는 생각했다.‘나는 계속 유남준을 피할 수 있지만 두 아들도 계속 숨어 있어야 해? 분명 아무 잘못도 없는데 왜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없고 집이 있어도 돌아갈 수 없는 거지?'그리고 오늘 이 갑작스러운 상황은 그녀로 하여금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 결정하게 했다.밥을 먹을 때, 조하랑이 사람을 찾아서 박예찬을 돌려보내려고 건의했다가 박민정에게 거절당했다."생각해 봤는데 계속 숨어 있는 게 최선의 해결 방법은 아닌 것 같아.”"예찬이를 여기에 남아 있게 하도록 결정했어.”"남준 씨도 이미 예찬이를 보았고 예찬이가 네 아들이라고 생각하니까 걱정할 것 없어.”"조금 있다가 할머니께 거기서 윤우를 돌보라고 말씀드릴게. 예찬이는 나와 함께 진주시 있다가 진전이 있으면 다시 돌아가자.”조하랑도 이에 동의했다."할머니 쪽에는 간병인이 있지만 어르신 한 명이 두 아이를 돌보기엔 벅차. 예찬이가 남아 있으면 너랑 같이 있을 수도 있고.”"남준 씨가 알아도 겁낼 것 없어 나랑 연지석이 있잖아.”"나도 있어, 엄마. 내가 꼭 엄마랑 윤우를 지켜줄게.”박예찬이 말했다.박민정과 조하랑이 그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그래.""그럼 내가 먼저 예찬이를 데리고 갈게. 네가 임신하기 전에 예찬이는 먼저 나랑 같이 있고. 네가 그를 만나고 싶을 때 내 쪽으로 와."조하랑이 말했다. 지금은 이럴 수밖에 없었다. 박민정은
박예찬은 그녀의 말을 듣고 순결을 지키지 못한다는 생각만 들었다.얼마 후 그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바로 자기 방으로 가서 쉬었다....한편, 고씨 저택.경호원은 유남준에게 박민정이 식당에서 밥을 먹은 후 공관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전했다.그리고 그의 심드렁한 모습은 이지원과 고영란의 눈에 그대로 비쳤다.“지원아, 너 오늘 어렵게 온 건데 그냥 여기서 자고 가. 내일 우리 남편도 돌아올 거야. 널 만나고 싶어 하셔.”유명준은 사랑꾼 탕아로 쉰 살이 넘었건만 정을 여기저기 뿌리고 다니며 좀처럼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이지원은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유남준은 그녀들 사이의 대화에 무관심했고 아무렇게나 음식을 먹고는 의자에서 일어나 식탁을 떠났다.“어디 가니, 남준아?”고영란이 궁금해하며 물었다.“집 갑니다.”그녀는 더욱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었다.‘거긴 남준이가 예전에 결혼한 뒤 박민정과 함께 살던 곳인데 무슨 집 이긴 집이야?’“오늘은 여기 머물러 있어라. 내일 네 아버지가 돌아올 테니, 너와 지원이의 혼사도 상의해보자꾸나.”‘혼사?’유남준의 깊은 눈동자에 차가운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저 아직 이혼하지도 않았는데, 무슨 혼사에요?”그러자 고영란은 갑자기 마음 한쪽이 꽉 막히는 것 같았다.한쪽에 있는 이지원은 안색이 변하지 않았지만, 젓가락을 쥔 손이 저절로 조여졌다.‘박민정이 죽은 지가 언젠데, 이혼하고 말고가 그렇게 중요한가?’이윽고 유남준이 발걸음을 돌려 밖으로 걸어갔고 이지원이 그의 뒤를 따랐다.“오빠!”유남준은 발걸음을 멈추었고 이지원은 서둘러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오빠, 내가 뭐 잘못했어요? 왜 지금까지도 나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거예요? 오빠가 박민정이랑 결혼한 후로 지금까지 나 8년 동안 오빠 기다렸어요.”이지원은 눈가에 눈물을 머금고 말을 이어갔다.“내가 오빠한테 어울리지 않을까 봐 줄곧 노력해 왔고, 어렵게 지금 이 자리에 서게 된 건데... 이제야 감히 오빠한테 다가갈 수
박윤우는 그렇게 진서연에게 말하고 여느 때처럼 자신의 라이브 방송 준비에 나섰다.요즘 너무 바쁜 탓에 별로 라이브 방송을 못 했고 많은 아줌마가 박윤우의 방송을 기다리고 있었다.다행히 박윤우는 진서연처럼 직설적이지 않았기에 이렇게 많은 아줌마 팬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진서연은 박윤우가 사라져가는 뒷모습을 보며 그의 말들을 곱씹었지만, 머릿속은 그야말로 혼란스러웠다.‘도대체 왜 인터넷의 나쁜 여자들한테 배워야 한다는 걸까?’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여전히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기로 마음먹었다....얼마 후.조하랑과 김인우와 결혼한다는 소식이 빠르게 퍼졌고 주요 플랫폼을 통해 결혼 소식이 보도되었다.아침 일찍 일어난 박민정도 그 소식을 보았다.이미 결혼이 확정된 이상 그녀는 조하랑은 위해 어떤 결혼 선물을 준비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호산 그룹 본사.며칠 전 결혼식에서 발생한 사건 때문에 오늘 내부 회의를 열어야 했다.박민정이 회사에 들어서자마자 어딘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진서연이 다가와 말했다.“보스, 오늘 회사에 주주들이 엄청 많이 왔더라고요. 심지어 고영란 씨도 왔어요. 듣자하니 이사회 다시 열고 대표직을 바꾸는 걸 논의한다고 하던데요.”박민정은 그 말을 듣고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이제 보니, 유남우의 자리가 정말 위험해진 듯했다.그녀가 앉아 업무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고영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민정아, 잠깐 위로 올라와 줄래?”“네. 알겠습니다.”박민정은 하던 일을 멈추고 위층 회의실로 향했다.회의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이미 유명훈과 유남준의 큰아버지 유석진 일가를 비롯한 주요 주주들이 모두 자리하고 있었다.유남우과 윤소현도 자리에 나와 있었다.윤소현의 얼굴은 잔뜩 어두웠다.고영란은 불안한 표정으로 박민정에게 다가와 말했다.“민정아, 혹시 남준이와 연락할 수 있어? 여기로 오라고 해.”“연락은 해보겠지만 올지는 모르겠네요.”박민정은 휴대전화를 꺼내 유남준에게 전화를
박민정은 문득 예전에 서다희가 자신을 괴롭혔던 일을 떠올렸다.‘10년이 지나도 할 복수는 해야지.’“민정 씨, 정말 맞는 말이에요. 저도 결혼 전 계약서를 더 철저히 준비할게요.”멀리 떨어져 있던 서다희는 갑자기 재채기했다.그는 자신이 박민정에게 살짝 낚였다는 것도 모르고 앞으로 아내의 말을 철저히 들어야 하는 신세가 될 줄도 몰랐다.진서연은 박민정과 민수아, 그리고 설인하까지 모두 결혼했거나 결혼을 준비 중이거나 혹은 이혼을 준비 중이라는 걸 보며 문득 자신만 혼자라는 생각에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었다.“보스, 저 산책 좀 다녀올게요.”“그래. 다녀와.”진서연은 밖으로 나가자마자 막 박윤우와 함께 돌아온 정민기를 보았다.그는 키가 크고 당당한 체격에 주변을 압도하는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진서연은 무의식적으로 그를 몇 번이고 쳐다보았다.정민기는 박윤우를 데리고 그녀 쪽으로 걸어와 아이를 건넸다.“전 이만 가볼게요.”진서연은 멍하니 서서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네?”박윤우는 이미 알아차렸다.‘서연 이모가 아마도 아저씨에게 관심이 있어 보여.’박윤우는 진서연을 돕기로 마음을 먹었다.“아저씨, 저번에 운동 가르쳐 주셨잖아요? 서연 이모랑 같이 아저씨 방에 가서 운동 배우면 안 돼요?”진서연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말했다.“윤우야, 이모는 안 가도 될 것 같은데?”그러자 박윤우는 속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이모는 어쩜 이렇게 눈치가 없지? 내가 이렇게 밀어주는데도 말이야!’“이모, 저랑 같이 가요.”박윤우는 진서연의 손을 꼭 잡고는 의미심장하게 윙크를 보냈다.진서연은 한참 만에 겨우 깨달은 듯 말했다.“어... 어... 그래. 그럼 같이 갈게.”정민기는 이 모습을 보고도 아무 말 없이 두 사람을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갔다.그는 박윤우에게 간단한 운동을 몇 가지 가르치기 시작했다.진서연도 박윤우와 함께 운동을 배우려 했지만 마음은 딴 데로 가 있어서 동작이 하나같이 엉망이었다.정민기는 그런 그녀를 보고
손연서도 자기 부모님이 이렇게 변할 줄은 몰랐다. 그녀는 이혼하려는 마음을 더 단단히 먹을 수 있었다.그녀는 박민정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민정 씨, 고마워요. 제가 마침내 옳은 결정을 내린 것 같아요.]메시지를 본 박민정은 좀 의아해했다.[무슨 결정이요?][오준수랑 이혼하려고요. 앞으로 제 삶을 살 거예요.]손연서가 답장을 보냈다.박민정은 이 메시지를 보자 그녀가 마음을 굳게 먹은 걸 알고 너무 기뻐했다.[진심으로 축하해요.]박민정은 누구보다 잘 안다. 어떤 혼인은 그럴 가치가 없는 것을 말이다. 전에 유남준은 그녀에게 냉담하기만 했지만 오준수는 정말 파렴치한 사람이다.손연서가 밖에서 망신을 당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혼외자를 돌보라고 했다. 심지어 혼외자가 손연서를 괴롭히도록 내버려 두었다. 이런 남자한테 손연서처럼 좋은 아내는 너무 아깝다. 손연서는 이혼하기를 굳게 결심했다. 오준수에게 이혼 서류를 주었는가 하면 언론에도 이혼 사실을 공개하라고 요청했다.그녀는 만회할 여지가 없게 만들려 했다. 반드시 이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설인하는 정리하러 들어와서 박민정의 채팅 내용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민전 씨, 미안한데요. 방금 채팅화면을 보았는데 친구분이 이혼을 준비하고 있어요?”박민정은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런데요. 왜요?”“저도 이혼하고 싶어서요. 이혼은 하려면 어떤 절차가 필요해요?”설인하는 기대 섞인 얼굴로 박민정을 바라보았다.박민정은 순간 멍해졌다.그녀는 방성원을 알고 있고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게다가 설인하는 방성원에게 아이까지 낳아줬다.두 사람 사이에 큰 트러블이 없는데 자기가 이혼 절차를 직접 말해주는 건 다소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인하 씨, 이건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나와요.”“알겠어요.”설인하는 흥분한 표정으로 빨리 청소를 다 하고 핸드폰을 가져서 이혼에 대해 검색했다. “민정 씨, 상대방이 이혼을 원하지 않으면 이혼 소송을 걸 수 있는 거죠?
이렇게 오랫동안 울분을 삼키다 보니 손연서는 정말 지긋지긋했다.손씨 가문에 남자가 없어서 딸이 가문을 망치게 할까 봐 손연서와 오준수의 혼인을 강요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녀도 이렇게 오래 참지 않았을 것이다.이제 그녀는 박민정이 말한 대로 자신을 위해 살 것이다.오준수는 그녀가 건넨 이혼 서류를 보고 표정이 굳어졌는데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나랑 이혼한다고.? 장난해?”그가 밖에서 여자를 찾고 아이까지 생겼는데도 이혼 얘기를 꺼내지 않았던 사람이 갑자기 왜 이러는 것인지 몰랐다. 손연서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장난치는 거 아니니까 서류 잘 봐. 문제없으면 이혼하자.”그녀도 이제 2년이 지나면 서른이 된다. 더는 아까운 청춘을 오씨 가문에서 억울함을 당하면서 보낼 수는 없다.그녀도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를 찾거나 좋은 정자를 사서 자신의 아이를 갖고 싶어 했다. “손연서, 너희 부모님도 네가 이러는 줄 알아?”오준수는 그녀의 부모님이 그녀의 약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그녀는 부모님의 말씀을 아주 잘 듣는다.그러나 그의 생각이 틀렸다. 손연서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나는 어른이고 내 결혼을 책임질 수 있어. 이런 일에 왜 부모님 얘기가 나오는데?”“너!”오준수는 손을 들어 그녀를 때리려고 했다.손연서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때려봐. 당장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받고 경찰에 신고할 테니까. 그건 너도 싫지?”그녀의 말을 듣고서야 오준수는 천천히 손을 내렸다. 손연서가 왜 이렇게 빨리 변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그래, 이혼하면 되잖아. 절대 후회하지 마.”후회하지 말라는 말을 듣고 손연서는 너무 웃겼다. 정말 이혼하면 후회는커녕 춤을 추고 싶은 심정인데 말이다. 오준수는 그동안 손연서의 사랑을 받아왔다. 갑자기 이혼하자고 하니 그는 이혼 서류를 검토했다. 서류에 아무 문제 없는 것을 보고 바로 사인했다.“내일 바로 이혼하러 가자고.”“그래.”손연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고는 비서보고
“내가 없었으면 경기에서 이기기 힘들지 않았나?”유남준은 박민정에게 기대어 말했다. 다행히 지금은 자가용을 타고 있어서 다행이지, 버스 안이었다면 많은 사람이 빨갛게 달아오른 박민정의 얼굴을 봤을 것이다.“남준 씨는 필요 없죠. 아빠로서 당연히 아이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도와야죠.”그녀는 중얼거렸다.하지만 유남준은 계속 떼를 썼다. “안 돼, 나도 상을 줘야 해.”상을 달라는 그의 말을 듣고 박민정은 다가오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가슴이 점점 빠르게 뛰었다.그녀가 어찌할 바를 모르자 박예찬이 기분이 언짢아 말했다. “그럼 앞으로 인우 아저씨보고 가족 행사에 같이 가달라고 할게요.”그는 박윤우처럼 유남준을 도우려 하지 않았다. 유남준이 말이 없자 박예찬은 질투심에 겨워 그를 쳐다보았다. “어때요? 아저씨.”두 사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유남준은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됐어.”박민정도 덩달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박예찬이었다.유치원에 도착한 후, 선생님이 몇 가지 일을 더 얘기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그러자 방성원이 다가와 물었다. “남준아, 형수랑 같이 가? 간단한 식사라도 같이하면 안 될까?”박민정이 대답했다. “안 될 것 같아요.”그녀는 이제 방성원과 설인하의 관계를 아는데 그를 집으로 데려간다면 설인하는 분명 화를 낼 것이다.방성원이 이렇게 자진해서 나온 건 처음인데 거절당해서 실망했다.김인우는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우리 집에 가서 먹자.”예찬이도 박민정과 작별인사를 했다. “엄마, 집에서 비타민 잘 챙겨 먹어. 알았지?”“알겠어.”박민정은 그와 손을 흔들며 작별했다.옆에서 지켜보던 손연서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자기도 벌써 자기의 자식이 있어야 하는데 하며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남편 오준수는 한 번도 그녀를 제대로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아이를 갖는 것은 더욱 불가능한 일이다. “민정 씨는 좋겠어요. 남편도 너무 좋고 아들
최현아의 표정은 유달리 보기 흉했다.그녀는 목소리를 낮춰 주변에 있던 엄마들에게 말했다. “무서울 게 뭐예요? 지금의 유남준은 아무것도 없고 호산 그룹의 대표도 아니에요.”엄마들은 그녀의 말을 완전히 믿지 못했다.누군가가 말했다. “그 사람이 정말 아무런 힘이 없다면 저 사람들의 남편들은 왜 저렇게 겁에 질린 거예요?”최현아는 순간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도 유남준이 무슨 수를 썼길래 회사 사장들이 저렇게 의기소침해서 도망갔는지 몰랐다.“현아 씨, 친척 관계잖아요. 그냥 사이좋게 지내요.”“맞아요. 화기애애한 게 좋죠.”그녀들은 모두 눈치채서 더는 최현아를 돕지 않고 박민정을 비롯한 사람들을 팀에 불러들이려 했다.심지어 자진해서 박민정과 팀을 하려는 사람도 있었다. “아니면 다시 팀을 짜든가요.”“좋아요, 좋아요.”사람들의 태도가 이렇게 빨리 변하는 것을 보고 최현아는 화가 났다.그녀는 오늘 아침 일찍 많은 돈을 써서 선물을 샀는데 말이다. 이 사람들은 정말 뻔뻔스럽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이제 와서 어찌할 방법도 없다.다시 팀을 짜기 시작했다. 박민정은 다른 엄마 몇 명과 팀을 짜서 경기를 시작했다.유남준은 예찬이와 나란히 서서 한쪽 다리를 묶었다.“절대 제 발목을 잡아선 안 돼요.”박예찬이 진지하게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 때문에 그는 질투했다.자기가 어른이라면 이런 일은 유남준이 아니라 자기가 해결할 거로 생각했다.아쉽게도 그는 너무 어렸다.유남준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기고 싶어? 내가 이기는 방법을 하나 알려줄게.”박예찬이 물었다. “무슨 방법이요?”“이따가 경기 시작하면 그냥 내 다리를 꽉 안아. 내가 혼자 갈게. 그러면 절대 지지 않을 거야. ”박예찬은 그 화면을 상상하다가 말했다. “싫어요! 흥.”유남준은 자기 아들의 성격이 자신을 많이 닮은 것을 안다.사실 박예찬은 다른 아이들보다 아이큐나 체력이 뛰어났고 유남준도 다른 엄마 아빠들보다 실력이 좋다.이 게임은 예상대로 그들
김인우처럼 눈치가 없는 사람도 이 사람들이 일부러 예찬이한테 이러는 거라는 걸 눈치챘다. 그는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제 일어날 일을 기대하고 있었다. 감히 유남준의 아내와 아이를 괴롭히다니, 이 사람들이 정말 간이 부었다고 생각했다. 유남준은 오면서 사람들 속에 있는 최현아를 보고 이 일은 틀림없이 그녀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는 다시 방금 말을 한 몇 사람을 보았다.“그린파워의 최연준, 실버라인의 채빈, 에코미디어의 고태민, 피스월드의 노직.”그는 네 사람의 이름을 말했다.그 네 명은 자기의 이름이 불려서 어리둥절해서 하다가 물었다.“우리를 알아요?”유남준은 대답하지 않고 뒤 따라오는 서다희에게 물었다. “적었어?”“적었어요.”서다희가 말했다.유남준은 원래 한 번만 봐도 잊지 않는다. 이 사람들을 다시 알아보고 기억할 필요가 없다.보통 그가 업무 중에 본 다른 회사 정보라면 바로 기억할 수 있다.서다희는 이런 능력이 없어서 유남준의 말을 듣고 이 사람들의 이름을 적었다.“뭐 하는 거예요?”그 남자들은 유남준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건지 몰랐다. 김인우는 볼거리가 있으리라 생각했다.그 사람들은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김인우에게 명함을 주러 왔다. “인우 씨, 안녕하세요. 이건 제 명함입니다.”김인우는 그 남자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고 명함도 받지 않았다.그 사람은 민망했지만 감히 화를 내지 못하고 묵묵히 명함을 거두어들였다.“선생님, 시간 끌지 말고 경기를 시작하죠. 회사에 일이 있어서 빨리 가봐야 해요.”최연준이 말했다.선생님은 좀 난처해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그런데 이때 최연준의 핸드폰이 울렸다. 회사 비서의 전화였다. 그는 불만이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내가 이런 활동에 안 오겠다고 했잖아. 봐봐, 회사에서 또 전화 오잖아.”그는 매우 바쁜 척을 했다. 이것을 본 그의 아내도 뭔가 미안함을 느껴서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최연준이 전화를 받은 지 1분도 안 돼
유남준은 공식 석상에 거의 나타나지 않아 어떤 엄마는 그가 누군지 모른다.하지만 김인우 같은 부잣집 도련님은 보통 사람이라도 그의 얼굴을 알고 있다.“저 사람 김인우 아니야?”“옆에 있는 사람은 방성원이야!”“이 사람들이 왜 왔지? 맨 앞에 있는 남자는 누구지? 낯이 익은데?”최현아의 시선은 세 사람에게 머물었는데 숨을 쉬지 못할 정도였다.유남준이 왔다니, 그것도 김인우와 방성원이랑 같이 말이다. 김인우는 몇 걸음 앞으로 걸어가 박예찬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다.박예찬은 눈살을 찌푸리며 피했다."이놈아, 머리를 쓰다듬는 것도 안 돼? 그리고 활동에 참석하는데 왜 나랑 하랑 이모한테 말도 안 한 거야?”김인우가 물었다.박예찬은 일부러 그런 것이다. 한 명의 아이는 보호자를 제일 많아서 두 명밖에 데려갈 수 없다. 김인우와 하랑 이모한테 말하면 엄마와 같이 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들 김인우의 말을 듣고 여기에 온 것을 후회했다. 특히 몇몇 아이 아빠들 말이다.눈앞의 이 아이가 김인우의 아들인가 하는 생각에 그들은 식은땀을 흘렸다. 최현아의 말 몇 마디 때문에 박민정을 비롯한 사람을 괴롭히고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한 것에 후회했다.박민정은 유남준이 진짜로 올 줄은 몰랐다. 그것도 방성원과 김인우까지 데리고 말이다.유남준은 이미 그녀의 앞으로 다가왔다.“좀 늦었어. 이 두 놈이 계속 따라오겠다고 해서 말이야.”유남준이 말했다.김인우는 억울해서 말했다.“나랑 하랑 씨가 그렇게 오랫동안 예찬이를 돌보았잖아. 친자 행사가 있다는데 당연히 와야지.”유남준은 어이가 없었다.방성원은 당연히 예찬이를 보러 온 것이 아니다.설인하가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간 지 보름 정도 지났다. 그는 오늘 이 기회를 타서 박민정을 따라 함께 자기 아내와 딸을 보러 가고 싶어 했다. “그냥 와서 구경 좀 하려고. 뭐 필요한 거 있나 보면서.”방성원이 말했다.김인우와 유남준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선생님은 예찬이 쪽에 잘생긴 남자 세 명이 한꺼번에 온
선생님이 다가와서는 의아해서 물었다. “예찬 어머니, 왜 혼자 여기에 서서 계세요? 팀 안 짜세요?”박민정은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말했다. “선생님 사람들이 저희랑 팀을 짜려 하지 않아요.”“네...”선생님은 난처해하더니 다른 팀에게 물어보았다.그 팀의 엄마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우리 팀은 이미 사람이 찼어요.”그리고 몇 명의 아이 아빠도 왔는데 모두 최현아에게 빌붙고 싶어 해서 말했다.“선생님, 팀을 짜지 못한 사람들은 경기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맞아요. 어차피 이미 인원수가 충분하잖아요.”“몇 분은 그냥 쉬세요. 게다가 임신 중인데 경기는 무리이지 않나요?” 한 남자가 박민정의 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박민정은 당연히 자신이 경기를 못 한다는 것을 안다.“저 말고 다른 엄마들은 경기에 나갈 수 있잖아요. 어떻게 못 나가게 막을 수 있어요?”그녀가 나서서 말했다.그러자 남자는 비아냥거렸다. “그냥 경기일 뿐이잖아요. 굳이 당신들이 참석하지 않아도 되잖아요?”다른 엄마들도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시간 낭비하지 말고 시작하자고요.”최현아는 옆에 서서 박민정을 비롯한 그녀의 라인의 사람들이 망신을 당하는 모습을 만족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선생님은 조금 난처해했다. “아니면 여러분 팀당 한 명씩만 더하세요. 이렇게 하면 딱 맞을 거예요.”총 네 팀이고 남은 사람도 네 명이니 말이다. “딱 맞다니요. 이분은 임신했으니까 대회 나가기 불편하잖아요. 누구 팀에 가면 그 팀이 질 게 뻔하죠.”한 여자의 목소리였다.다른 사람들도 맞장구를 쳤다.홀로 있는 네 명의 엄마와 네 명의 아이들이 함께 있으니 유난히 눈에 띄었다.예찬이를 제외한 나머지 세 아이는 분명히 기분이 언짢았다.“엄마...”지원이는 엄마의 옷깃을 잡아당겼다.손연서는 이 사람들이 정말 사람을 너무 무시한다고 느꼈지만 사실 그렇게 경기를 하고 싶어서도 아니다. 다 아이들을 위해서이다.“민정 씨, 됐어요.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