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정은 어리둥절했고, 저쪽에서 조석천이 외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아이의 아빠가 누구야? 내가 죽여버릴 거다!!!”뒤이어 꽃병과 가구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박예찬도 그 소리를 듣고 급히 말했다.“엄마, 통화 그만해요. 하랑 이모 보러 가야겠어요. 할아버지한테 때리지 말라고 해야죠.”“... 그래.”박예찬은 전화를 끊고 방 안에서 나왔다.조하랑이 배 째라는 식으로 소파에 누워 있고, 조석천은 화를 내며 물건을 깨부쉈다.꽃병을 떨어뜨리긴 했지만 모두 주의를 기울여 딸을 다치게 하지 않았다.“아빠, 그만 물어봐요. 애 아빠가 누군지 나도 몰라요. 오며 가며 스치듯 만난 사람이에요.”조하랑이 하품을 했다.“그러니까 나한테 김인우 씨 소개시켜주는 거 그만하고 소개팅도 시키지 마요. 부잣집 도련님이 애가 있는 여자를 받아줄 리 없으니까요.”조석천은 아기의 아빠가 누군지도 모른다는 말에 체면이 바닥을 치는 것 같았다.“좋은 건 다 놔두고 나쁜 것만 배우네! 내가 이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녀. 너 오늘 내가 죽인다! 저놈이 누구의 아이인지 모른다고 했지? 모르면 버려야지!”조석천이 손을 들어 조하랑의 얼굴에 내리치려던 순간 박예찬은 곧바로 앞으로 나아가 조석천의 외투를 잡아당겼다.“할아버지, 엄마 때리지 마세요. 화가 나면 차라리 저를 때리세요.”아이는 당당하게 가슴을 쑥 내밀며 말했고 조석천은 자신의 다리만큼도 크지 않은 아이가 어른스럽게 나서는 모습에 마음이 녹아내렸다.“아가야, 방으로 돌아가. 할아버지는 엄마를 때리려는 게 아니라...”조석천은 잠시 멈칫했다.“그냥 어깨를 두드려주는 거야.”말을 마친 그는 조하랑을 세차게 두드렸다.조하랑은 눈을 흘겼다. 늘 엄격하기만 했던 아빠가 예찬에게 이렇게 다정할 줄은 정말 몰랐다.“그럼 할아버지, 저를 보내실 거예요?”박예찬의 큰 눈이 조석천을 빤히 바라보았다.조석천이 이렇게 착한 아이를 어디다 버리겠나.“아가, 네가 잘못 들은 거야. 밖에 있는 길고양이를 말한 거지 너를
박민정은 예전처럼 애교를 부리는 게 아닌 조심스러움이 스며든 박윤우의 목소리를 들으며 곧바로 설명했다.“엄마가 오늘 너무 바빠서 전화하는 걸 깜빡했어. 미안해, 내일 보러 갈게, 알았지?”이 말을 들은 박윤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다정하게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괜찮아요, 엄마 바쁘잖아요. 난 병원에서 잘 지내고 있으니까 굳이 올 필요는 없어요.”예전 같았으면 박윤우는 분명 박민정에게 곁에 있어 달라고 애교를 부렸을 텐데 지금은 예찬이처럼 어른스러워졌다.이 말을 들은 박민정은 유난히 마음이 아팠다.그리고 조용히 내일은 꼭 윤우를 만나러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두 사람은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다가 전화를 끊은 박민정은 소파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그때 눈앞에 키가 큰 인물이 서서 빛을 가리고 있었다.박민정은 살짝 찡그린 채 눈을 떴고, 언제 왔는지 근처에 서 있는 유남준을 보았다.“무슨 일 있어요?”박민정이 의아하게 말했다.“저녁 먹기 전에 정말 산책 다녀온 거야?”유남준이 물었고 박민정은 말하고 싶지 않았다.“네, 왜요?” “아니야.”유남준은 그 말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그는 자리를 뜨자마자 경호원을 불러 감시카메라를 확인했다.역시나 오늘 주변의 모든 감시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그럼 더 멀리 있는 곳을 확인해 봐.”“네.”유남준이 경호원이 알아낸 모든 차량 정보를 받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모두 인근 차량이었고 차 주인의 정보가 나왔다.차량 중 한 대는 유앤케이 그룹 소유였다.유남준은 부하들에게 차량을 구체적으로 조사하라고 지시했고 녹화 영상이 나오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유남준은 서다희에게 열어보라고 했고, 차 안에 유남우가 앉아 있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서다희는 어떻게 된 일인지 몰랐지만 유남준에게 유남우의 소식을 전했다.유남준은 아무 말 없이 듣고 전화를 끊었다.박민정은 샤워를 마치고 나와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는데 방 문을 열자마자 유남준이 방 안에 앉아 있는 것
박민정은 그를 상대하기 싫어 이불을 끌어당겨 자신을 감싼 채 유남준이 옆에 눕도록 내버려두었다.“여기서 잘 거면 이렇게 자요.”불을 끄고 박민정이 잠드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유남준은 그녀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다음 날, 박민정은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남자의 단단한 가슴에 부딪혔다.그녀는 천천히 눈을 뜨고 고개를 뒤로 젖혀 유남준의 잘생긴 얼굴과 마주했다.박민정은 그가 깨어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허겁지겁 그의 품에서 몸을 일으켰고, 곧바로 재킷을 입고 일어났다.막 침실 문을 열고 나오니 은정숙도 이미 깨어있었다.어르신은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민정아, 이리 와. 얘기 좀 하자.”박민정은 은정숙이 분명 오해한 것 같아 민망했다.은정숙을 따라 방으로 돌아온 박민정은 이렇게 설명했다.“어젯밤에 그 사람이 안 가겠다고 고집부린 거예요. 아무 일도 없었어요.”“민정아, 늙은이인 나한테 설명할 필요 없어. 네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난 널 응원할 거야.”박민정이 고개를 끄덕이자 은정숙이 덧붙였다.은정숙은 어쩔 수 없이 말을 잇지 못했다.“유남준이 정말 변한 것 같으니까 이제 잘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우리 같은 기성세대들은 그래도 부부는 원래 상대가 좋다고 생각해. 게다가 너희는 자식도 있잖아.”박민정은 은정숙의 말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묵묵히 듣고 있다가 말했다.“생각해 볼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따 의사 선생님이 오실 테니 좀 쉬고 계세요.”“그래.”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박민정은 의사에게 연락하러 나갔다.그녀가 연락을 마쳤을 때쯤 유남준도 일어나서 아래층으로 내려왔다.“민정아.”박민정은 대꾸하고 싶지 않아 일부러 소리도 내지 않고 무시했다.유남준의 잘생긴 얼굴이 차가워진 채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그는 박민정이 외출한 줄 알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박민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씻으러 갔고 초인종이 울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제야 조하랑은 은정숙이 말한 변했다는 것이 단순히 박민정을 향한 태도라는 것을 깨달았다.하지만 은정숙에게 말하는 유남준의 태도도 확실히 전과 달라졌다.의사 선생님들이 각종 고급 의료 장비까지 가져오자 조하랑은 감탄했다.“민정아, 네가 시킨 거야?”“남준 씨가 의료 장비를 찾는 데 도움을 줬어.” 박민정은 솔직하게 대답했다.자신이 전문의를 고용할 수 있었던 이유가 유남준 덕분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은정숙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유남준은 박민정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다.그는 박민정이 자신에게 신세를 졌다는 이유로 마지못해 곁을 지키는 것을 원치 않았다.그랬기에 은정숙은 더더욱 유남준이 변했다고 확신했다.어르신은 의사에게 병을 보이고 진료를 받으며 반나절을 흘려보냈다.진료가 끝나자 의사가 박민정에게 말했다.“박민정 씨, 나이가 들어 병을 완치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수술을 통해 어르신의 수명을 연장할 수는 있습니다.”“그래요, 수술 일정은 언제로 잡으면 돼요?”“당분간 약을 먹고 그 후에 시간 정하는 걸로 하죠.”의사와 얘기를 마친 후 박민정은 그들을 배웅했다.은정숙은 자신의 건강 상태를 속으로 잘 알고 있었지만 박민정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미소를 지었다. “잘됐네, 난 너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라며 “그래요.”조하랑도 옆에서 그녀를 다독이며 오늘 집안 분위기가 유난히 평화롭고 행복했다.유남준은 오늘 회사에 가야 했기 때문에 의사들이 나가자 그도 함께 나갔다.가는 길에 그는 서다희에게 전화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냈어?”“유남우 씨가 맞습니다.”“내가 뺏으라고 했던 프로젝트는 어떻게 됐어?”“아무 문제 없어요.”서다희는 유남준이 올해가 끝나면 회사를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유남준은 그제야 전화를 끊었다.한편, 조하랑은 박민정을 따라 윤우를 만나러 갔다.그 시각, 병원에서는 윤우가 병상에 누워 얼음장 같은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때 간
비서는 고개를 저었다.“잘 모르겠어요. 저희가 보낸 사람들도 사진 찍는 데 애를 먹었어요. 박민정 씨 뒤에 도련님 측 사람들이 따라다니고 있어서 우리 쪽 사람들이 가까이 갈 수가 없어요.”전에 박민정과 예찬을 조사하러 보냈던 사람들이 유남준에게 발각된 이후, 고영란은 더욱 조심했고 그곳에 보냈던 사람들은 감히 그들이 사는 곳 근처에도 접근하지 못했다.고영란은 지금 사진을 보니 자신이 모르는 게 아직 더 많은 것 같다.“계속 조사해. 박민정에게 또 어떤 비밀이 있는지 알아내야겠어.”“네.”...한편 박민정과 조하랑은 윤우를 데리고 몇 시간 동안 놀다가 윤우의 몸이 감당할 수 없어 급히 돌아왔다.그들은 설 전에 윤우를 데리러 가기로 약속했고 병원을 나와 차에 앉은 조하랑은 박민정을 위로하지 않을 수 없었다.“배 속의 아기가 태어나 제대혈이 나오면 윤우도 수술받을 수 있어. 수술 끝나면 예찬이처럼 될 수 있을 거야.”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배를 만졌다.“이번엔 아들일지 딸일지 모르겠네.”“딸이면 좋겠네. 그럼 아들딸 다 있는 거잖아. 윤우와 예찬이도 여동생 갖고 싶어 했잖아.” 조하랑이 말했다.물론 박민정도 딸을 원했지만 아들이든 딸이든 둘 다 좋았다.“그런데 하랑아, 넌 어떻게 할 거야?”“뭘 어떻게 해?”“아저씨 쪽은 해결됐어?”박민정은 조하랑이 아직 첫사랑 강연우와의 관계를 극복하지 못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조하랑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창밖을 내다보았다. “모르겠어. 사실 지금 너랑 유남준, 윤우랑 예찬이를 보니까 그냥 아빠 말 듣고 결혼하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해.”“하랑아, 단순히 결혼을 위한 결혼을 하는 건 절대 안 돼.” 박민정이 말하자 조하랑은 한숨을 내쉬었다.“현실에서 대부분 사람들이 그런 거 아니야? 민정아, 지금까지 결혼한 거 후회 안 해?”후회?“유남준과 결혼한 건 후회하지만 윤우와 예찬이를 낳은 건 후회하지 않아. 그래서 네가 진지하게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조하랑은 고개를 저었다.“
“눈사람 만들러 갈래?”유남준이 갑자기 물었다.그는 박민정이 눈을 좋아하고 어린아이처럼 눈사람 만들기를 좋아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예전에는 항상 유치하다고 나무랐었다.박민정은 눈사람을 만들자는 그의 제안을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순간 눈에 이채가 돌았지만 바로 말을 돌렸다.“아니요, 밖이 너무 추운 데다 너무 유치해요.”유남준은 목이 메었다.박민정이 안으로 걸어오며 말했다.“나 좀 쉴 테니까 나가요.”그녀는 유남준이 어젯밤처럼 고집을 부리며 나가지 않을 줄 알았는데 웬일인지 이번에는 순순히 밖으로 나갔다.박민정은 그를 쫓아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곧바로 방 문을 잠그고 무언가로 바리케이드를 쳤다.침대에 누운 그녀는 금세 잠에 빠졌다.다음 날 이른 아침.박민정이 눈을 떴을 때 밖에는 눈이 거의 내리지 않았고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커튼을 열고 씻으러 가려는 순간, 갑자기 눈 속에 무수히 많은 귀여운 눈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놀란 눈으로 통유리창을 열고 발코니로 나간 박민정은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유남준을 발견했다.유난히 복잡한 기분으로 그녀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눈을 밟으며 물었다. “뭐 하는 거예요?”“눈사람 만들어.”유남준의 얇은 입술이 움직이며 마치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하지만 박민정은 남자가 이를 절대적으로 경멸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 저 멀리서 검은색 링컨 차량이 천천히 다가왔다.박민정은 차의 번호판을 알아봤다. 유씨 저택 차량이었다.차가 멈추고 문이 열리자 고영란 옆에 있던 여비서가 마당에 눈사람이 가득한 것을 보고 약간 놀란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시선을 돌려 주위를 둘러보던 그녀는 박민정과 유남준을 발견했고, 유남준이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곧 예의 바른 태도로 그녀는 시선을 거두었다.“박민정 씨, 도련님.”비서는 눈을 밟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사모님께서 앞으로 이틀 후면 둘째 도련님의 약혼식이니 두 분을 모
한동안 집안에 정적이 흘렀고 고영란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맞아, 걔야.”윤소현은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리며 조롱 섞인 말투로 말했다.“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제 새어머니의 딸이에요. 언니인 저도 돌아온 후로 한 번도 못 봤네요.”천 년 묵은 여우에게 가식은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고영란은 윤소현을 집에 들이는 데 동의하기 전 당연히 그녀에 대해 조사했었다. 한수민이 그녀를 어쩌지 못한다는 것과 생모인 정수미의 힘을 알고 나서야 허락한 것이었다.박민정처럼 쓸모없는 며느리는 더 이상 원치 않았다.“앞으로 만날 기회가 많을 거야. 밥 많이 먹어.”고영란은 박민정 얘기는 하고 싶지 않은 듯 가식적인 웃음을 지었다.윤소현은 미래의 시어머니가 맏며느리를 어떻게 대하는지 시험해 본 것이었다. 이제 보니 유씨 가문에 들어오면 경제권은 확실히 장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식사를 마친 윤소현은 유남우를 따라 산책을 나갔다.그녀는 이곳에서 지내라는 고영란의 말을 거절하지 않았다.유남준이 어떤 여자와 결혼했는지도 알고 싶었다.“남우 씨, 형님 말이에요, 제가 다 안타까워요. 박민정 같은 여자는 형님과 전혀 어울리지 않잖아요.”유남우의 걸음이 느려지고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덤덤하게 그녀를 응시했다.“형수님에 대해 잘 아나 봐?”형수님이라는 말에도 윤소현은 오만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쉴 틈 없이 떠들었다.“새어머니로부터 박씨 가문의 딸로 태어나 태어날 때부터 청력이 약하고 잘하는 게 없다고 들었어요. 회사 운영할 줄도 모르고 배운 기술도 없어서 쓸모가 없다네요.”유남준은 약혼녀의 입에서 박민정의 이러한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회사를 운영할 줄 모른다고? 잘하는 것도 없고?자신이 그토록 힘들게 구한 곡이 사실은 박민정이 쉽게 쓴 곡이라는 걸 윤소현은 알까.적어도 박민정은 스스로 회사를 차려 아버지에게 의지해 먹고사는 그녀보다 훨씬 나았다.유남우가 얇은 입술을 달싹였고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럽고 따뜻했지만 어딘가 서늘
유씨 가문 저택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도우미가 와서 문을 열어주었다.“도련님, 박민정 씨, 저녁 준비 다 끝마치고 두 분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유남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도우미에게 물었다.“내 아내를 뭐라고 불렀지?”그는 기억을 잃기 전에 모든 도우미들에게 박민정이 유씨 가문의 사모님이라고 했던 걸 떠올렸다.도우미는 그 말에 고개를 숙이고는 곧바로 말을 바꿨다.“사모님.”유남준이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유남우가 책임자이고 과거에 박민정을 막 대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박민정은 유남준이 자신을 변호할 줄은 몰랐기에 깜짝 놀라면서도 동시에 그에 대한 생각이 조금 더 바뀌었다.두 사람은 함께 차에서 내려 부엌으로 향했다.유남우와 윤소현은 이미 도착했고, 낮에 있었던 일 때문에 윤소현은 어렴풋이 불쾌감을 느꼈다.곧 유남준과 그의 아내를 본 윤소현의 시선은 순식간에 박민정에게 고정됐다.과거 윤소현은 박민정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 채 잠깐 조사만 한 적이 있었다.눈앞의 여자는 자신과 조금 닮아있었지만 박민정의 눈은 맑은 물이 가득 찬 듯 더욱 아름다웠고, 첫눈에 잊을 수 없는 첫인상을 남겼다.박민정이 보청기를 착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윤소현의 내면에 있던 질투심이 조금은 누그러지며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아주버님, 형님.”박민정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그래도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이곳에 와서 그녀도 윤소현을 유심히 살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영상에서 본 모습과 똑같았고 풍기는 분위기마저 한수민과 똑같았다.그 순간 유남우가 두 사람 앞에 다가와 유남준을 불렀다.“형.”유남준은 잘생긴 얼굴에 차가운 기색이 가득했다.“그래.”박민정이 유남준을 도와 자리에 앉자 식사 분위기가 조금 이상해졌다.고영란은 여전히 방에서 유명진에게 오라고 연락하고 있었다.유명진은 기본적으로 중요한 일이 아니면 이곳에 돌아오지 않았다.통화를 끝내고 고영란이 부엌으로 왔다.부엌 안의 네 사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