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쪽이 바로 유 사장님이세요?”진서연은 믿기 어려운지 신분을 확인해 보려고 했다.부자라고 해서 아무리 그래도 50세 이상이라고 예상했지만 이렇게 젊을 줄은 몰랐다.‘유 사장님?’차에서 진서연의 질문을 들은 박민정은 멈칫하고 말았다.뒤이어 부드러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네. 저 맞습니다.”그 목소리는 유남준과 똑같았다.유남준이 많이 부드러워졌다고 해도 이렇게 상냥한 말투로 말한 적은 없었다.박민정은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이어폰 너머에서 진서연은 상대방과 비즈니스를 상의하고 있었다.상대방은 진서연이 요구한 조건이라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흔쾌히 대답했다.주먹을 꽉 쥐고 있던 박민정의 심장이 더욱 빨리 뛰기 시작했다.비즈니스가 거의 끝날 무렵, 진서연은 상대방이 너무 호탕하여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혹시 성함 좀 여쭤봐도 될까요?”진서연은 자리를 떠나기 전 박민정의 요구대로 질문했다.유남우는 잠깐 멈칫하더니 대답했다.“유남준이라고 합니다.”역시나...박민정은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진서연 역시 깜짝 놀라면서 밖에 나오자마자 바로 박민정한테 보고했다.“보스님, 들으셨어요? 미스터리한 존재가 유남준 씨였어요!”해외파 진서연은 유남준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몰랐지만 그가 호산 그룹 대표인 것은 알고 있었다.“정말 저희랑 비즈니스 하고 싶으신가 봐요. 유남준 대표님께서 직접 나서시는 걸 보니. 무슨 조건이든 다 들어주겠다고 하셨다니까요?”진서연은 미남 대표와 오랫동안 이야기했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하지만 박민정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호산 그룹과 비즈니스를 하는 건 나쁘지 않지만 유남우와 함께 일한다는 건...박민정은 아직 대답하지 않았다.이때 진서연이 전화 한 통을 받았다.‘최 여사님이시네요.”박민정은 스피커폰으로 받으라고 눈빛을 보냈다.따라서 진서연은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게 되었다.“최 여사님, 무슨 일 있으세요?”“민 선생님, 제가 고민해 보았는데 제 딸한테 저작권을 넘겨주시면
이지원의 엄마는 포털사이트에 정수미라고 적혀있었다.한 시간 뒤, 박민정이 돈을 써가면서 부탁했던 뒷조사 결과가 나오게 되었다.윤소현은 알려진 인물이라 아주 쉽게 개인정보를 확보할 수 있었다.박민정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그녀와 한수민이 도대체 어떤 사이냐는 것이다.“5년 전 한수민 씨가 외국에서 윤소현 씨 아버지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되면서 윤소현 씨의 새엄마가 되었습니다.”새엄마...전화기 너머 한수민이 딸을 끔찍이 생각하는 모습에 그저 새엄마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은 한수민이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친딸한테도 모질게 구는데 친딸이 아닌 사람한테...“그러면 친모는?”박민정이 물었다.“정수미 씨 말씀이세요? 윤소현 씨의 아버지는 정씨 가문에 데릴사위로 들어간 뒤로 정수미 씨와 사이가 안 좋아져 5년 전에 이혼했습니다. 정수미 씨는 하나뿐인 자식 윤소현 씨를 정말 아끼시고 원하는 걸 모두 다 들어준다고 합니다.”별다른 특별한 정보가 들리지 않자, 박민정은 더는 질문하지 않았다.이때 갑자기 머릿속에 윤소현과 한수민의 비슷한 춤선이 떠오르게 되었다.박민정은 전화를 끊고 의자에 기대어 휴식하기로 했다.이 시각 유남우는 비즈니스가 성사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별로 캐묻지도 않았다.고영란도 이 소식을 접하고 의아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우리보다 돈을 더 많이 챙겨주는 곳이 있다고?”비서가 고개를 흔들었다.“민 선생님과 합작하고 싶으시다고 해서 이미 다른 엔터테인먼트에 언질을 줘놓은 상태입니다. 저희랑 뺏을 자는 없을 것입니다.”“확인해 봐. 도대체 누가 간이 배 밖으로 나왔는지.”“네.”신림현으로 돌아간 박민정은 먼저 박윤우를 잠깐 보고 나서 집으로 돌아갔다.유남준이 아직 돌아오지 않아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은정숙과 수다를 나눌 뿐이었다.신림 병원 밖, 차 안에 앉아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유남준과 서다희였다.“다른 한 아이는 이곳에 있고?”“네. 두 아이의 외모가 똑같지만 박윤우 군은 건강이 안
유남준은 묵묵히 더는 질문하지 않았다.박민정도 대충 에둘러대고 방으로 들어갔다.두 날 뒤면 신정 연휴라 유남준은 출근하지 않다고 되었고 박예찬도 등교할 필요가 없었다.박민정은 유남준을 작은 방으로 데려갔다.“할 말이 있어요.”그녀는 밖에서 박예찬이 엿듣고 있는 것을 몰랐다.“무슨 일인데?”덩치가 큰 유남준은 대부분의 불빛을 가로막게 되었다.“오랫동안 고민해 보았는데 저희 먼저 이혼하는 것이 좋겠어요.”유남준이 기억 상실된 틈을 타 이혼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었지만, 아이를 잃을 수는 없었다.유남준은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를 한참 동안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박민정은 그가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이렇게 말했다.“남준 씨가 사랑하는 사람은 제가 아니라 예쁜 탤런트 분이세요. 서로 첫사랑이기도 하고요. 만약 지금 저랑 이혼하면 그분이 남준 씨를 다시 받아들일 거예요. 그래야 기억이 회복되었을 때 후회하지 않죠.”유남준은 박민정의 밑도 끝도 없는 거짓말을 듣게 되었다.그동안 대부분의 기억이 회복되었기 때문에 그때 왜 이지원과 연애하게 되었는지도 알고 있었다.고영란을 구해줘서, 그리고 연애할 나이가 되어서였기 때문이다.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고 심지어 손도 잡아보지 못했다.하지만 박민정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유남준은 대부분의 기억을 회복했다고 실토할 수가 없었다. 그랬다간 박민정이 더욱 이혼하겠다고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유남준은 서다희한테서 이혼하려던 당시 동영상을 받아보고 박민정이 이혼을 목적으로 공개적으로 외도를 인정하고 이것을 빌미로 이혼을 협박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박민정은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더니 말했다.“만약 아직 고민된다면 제가 매달 2억 4천만 원의 양육비를 드릴게요. 어떠세요?”유남준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다.‘양육비? 2억 4천만 원? 도대체 날 뭐로 보는 거야?’유남준은 돈 얘기에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민정아, 네가 행복해지기만
서다희가 알아차리지 못할까 봐 유남준은 한마디 더 보탰다.“이혼하기 싫어서 수 쓰는 걸로 오해받고 싶지 않아.”그제야 서다희는 대뜸 어떻게 된 건지 눈치챘다. ‘사모님이 또 이혼 얘길 꺼낸 모양이군... 대표님도 참 가지가지 하시네.’몸에 항상 지니고 다니는 태블릿을 꺼내어 보며 서다희는 중얼중얼 계산하기 시작했다.“유남우 씨가 대표님의 주식과 자산만 양도했을 뿐 부채는 포함하지 않았거든요. 만약 유남우 씨가 책임지지 않는다면 대표님이 전에 인수했던 많은 프로젝트를 전부 합산하면 최소 2조 원은 될 겁니다.”서다희는 구체적인 내용이 적힌 태블릿을 박민정한테 보여주었다. 그 모든 걸 보고 박민정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이 많은 돈을 갚으려면 내가 곡을 몇 개나 써야 하는 거야? 아니, 왜 내가 갚아야 해? 내가 빚진 것도 아닌데.’그녀는 입술을 오므리며 내키지 않는 기색이 역력했다.“민정아, 걱정 마. 내가 꼭 일을 열심히 해서 이 빚을 다 갚을 거야.”열심히 일을 해?유남준이 지금 하고 있는 장애인 자원봉사 하는 일로는 아마 다음 생까지 갚아도 다 갚을 수 없을 것이다.“어쨌든 이 일 빨리 해결했으면 좋겠어요. 어머님을 찾아가든 유남우 씨를 찾아가든 말이에요.”고영란은 그래도 한수민과는 결이 다른 사람이니 아들이 곤경에 빠졌는데 나 몰라라 하지는 않을 거란 걸 박민정은 알고 있다. “알겠어.”일단 한고비 넘긴 듯하여 유남준은 흔쾌히 대답했다.그들의 대화를 전부 엿듣고 있던 예찬이는 유남준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전에 유남준의 계좌를 해킹해 돈을 훔칠 때 봤던 계좌 내 잔액이 얼마나 긴 숫자였는지 아직도 잊히지 않는데 그 많은 돈이 다 비었다고?예찬이는 얼른 자기 방으로 들어가 조사해 보았다.이상하게도 전의 그 계좌에는 정말로 땡전 한 푼 남지 않았다.“기억만 잃은 게 아니라 바보가 돼버린 거야?”슬슬 자신과 엄마의 앞날에 대하여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어느 날 자신도 사고가 난다면 쓰레기 아빠처럼 바보가 되지 않을까?엄마
그러자 유남준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더니 대답했다.“어떤 잘못인지 봐야겠지. 너와 같은 경우라면 감옥에 보내지 않을 거야.”차고 넘치는 게 돈인데 돈으로 해결하면 될 거 아니겠는가.하지만 예찬이는 유남준이 아들 대신 감옥에 갈 거라는 뜻으로 받아들여 왠지 모를 이상한 감정이 피어올랐다.그때 문어귀에서 박민정이 밥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와 둘은 더 대화를 이어가지 않고 방문을 나섰다.부자가 방안에서 걸어 나오는 평화로운 모습을 보니 박민정은 마음의 동요를 느꼈다.예찬이는 유남준과 사이즈만 다를 뿐 닮아도 너무 닮아있었다.다른 사람과 한 침대를 쓰기 싫어하는 예찬이가 저번에 유남준과 같이 자고 싶다고 했던 일이 불쑥 떠오르며, 박민정은 유남준한테 아이에 대한 일을 털어놓는 게 어떨지 고민했다.어찌 되었든 둘은 부자지간이고 천륜이니, 예찬이도 당연히 속으로 아빠를 원하고 있겠지만, 단지 그녀가 속상해하는 것이 싫어 내색을 안 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저녁 식사가 끝난 뒤, 박민정은 진서연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보스님, 라이브 영상 빨리 확인해 보세요. 한수민이 춤추고 있어요.”박민정이 즉시 방으로 돌아가 컴퓨터를 켜니 역시나 진서연의 말이 맞았다.영상 속에서 무용복 차림을 한 한수민이 춤을 추고 있었는데 나이로 인한 처진 뱃살과 나잇살은 감출 수가 없었다.젊었을 때 한수민이 무대에 서기만 하면 무수한 관객들이 열렬한 환호성과 찬사를 보냈지만 지금은 몇몇 나이 지긋한 영감들이나 댓글을 달고 있었다.가끔 젊은 사람들도 댓글을 달긴 했는데 전부 나이 먹고 주책이네, 꼴불견이네, 하는 비하의 발언들뿐이었다.그걸 지켜보며 박민정은 오랫동안 쌓였던 불만과 억울함이 풀리면서 속이 후련해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 한수민이 저러고 있는 이유는 그녀의 또 다른 딸을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그 딸한테는 다른 엄마가 또 한 명 있다.“너무 불쌍하네요. 한때 이름을 날렸던 유명 무용가가 현재 라이브 방송에 나와 춤을 추는데 분위
말이 입가에서 맴도는 그 순간 윤소현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앞으로 이러지 마세요. 물론 날 위해 그랬다는 걸 알지만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건 싫어요.”윤소현이 그래도 자신을 맘에 두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 한소민은 하려던 말을 도로 삼켜버렸다. 이때 윤소현은 한소민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엄마, 내가 인터넷에서 검색해 봤는데 엄마한테 딸이 하나 더 있던데? 박민정이라고?”한수민이 그 말을 듣고 잠깐 멍해 있는 사이에 윤소현은 계속하여 말을 이었다.“걔가 유남준한테 시집갔다면서요?”윤소현이 관심 갖는 사람은 사실 유남준이었다. 진주시에서 그와 견줄만한 인물이 몇명이나 되겠는가.“나 그 사람 알고 싶은데 엄마가 좀 도와줄 수 없어요?”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한수민은 한눈에 알아챘다.딸한테 어울릴만한 사람은 유남준밖에 없다고 한수민 역시 동감하는 바였다.“엄마도 유남준을 본지가 꽤 됐는데 네가 보고 싶다면 어떻게든 만나게 해줄게.”유남준이 박민정한테 끌린다면 박민정과 비슷한 외양을 가진 윤소현한테도 끌릴 거라 한수민은 생각했다. 게다가 윤소현은 박민정에 비해 나은 점이 한둘이 아니니 말이다.그렇게 되면 한수민은 여전히 유남준의 장모이다.“엄마 진짜 최고야.”윤소현은 한수민의 팔을 애교스럽게 흔들며 아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였다....신정이 다가오자마자 폭발적인 뉴스가 터졌다.“호산 그룹 대표 유남준 씨는 자신의 회사 지분을 전부 동생 유남우 씨한테 양도할 뿐만 아니라 호산 그룹 향후의 모든 사안을 유남우 씨한테 일임하기로 결정 내렸다고 전해졌습니다... 유남준 씨 가족의 말에 따르면, 교통사고 후 유남준 씨의 건강이 완쾌되지 않아 현재 병원에서 몸조리 중이라고 합니다...”뉴스가 나오자 유남준에 관한 기사가 바로 실시간 검색어 1, 2, 3위를 차지했다.네티즌들은 그제야 그한테 쌍둥이 동생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더 신기한 것은 두 형제가 얼마나 똑같게 생겼는지 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이다.유씨 가문의
유남준은 점심때 임시로 일이 있다고 밖에 나갔다.소파에 앉아 도도한 말투로 말하는 고영란을 보며 박민정은 입가에 냉소를 지었다.“남준 씨를 여기에 버린 것도 어머님 아니세요? 무슨 자격으로 제가 어떻게 돌봤는지를 비난하는 거예요? 굶어 죽거나 얼어 죽지 않게 한 것만으로도 이미 제가 할 부부의 의무는 다했다고 봐요.”고영란은 말문이 턱 막혀 한참 말이 없다가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남준이 어디 있니? 지금 바로 걔 데리고 가야겠어.”이미 유남우가 회사를 거의 장악했고 주식과 자산도 양도 절차를 마친 판국이라, 문중의 어른들과 손아랫사람들이 유남준이 힘들게 일군 기반을 빼앗아 갈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유남준을 집으로 데려갈 때가 된 것이다.“전 안 돌아갈 거예요.”문밖으로부터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유남준은 언제 돌아왔는지, 검은 롱 코트를 입고 문 앞에 서 있었다. 흑요석처럼 까만 눈동자는 고요한 호숫물과도 같았다.그렇게 훌륭했던 아들이 한순간에 장님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직도 받아들일 수 없는 고영란은 천천히 걸어들어오는 유남준을 보며 얼른 일어나 그를 부축하려 했지만, 유남준은 그녀의 손길을 강하게 거부했다.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허공에 멈춰있는 자신의 두 손을 보며 고영란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남준아, 너 아직도 엄마한테 화 난 거니? 엄마도 다 우리 집을 위해서야. 네 아빠는 아무 일에도 신경 안 쓰는데 나까지 손 놓고 있으면, 네가 지금껏 일군 회사는 남이 차지하게 되는 거야. 그럴 바엔 남우한테 맡기는 게 낫지 않겠니? 이제 네가 몸이 다 나으면 다시 너한테 돌려주라고 할게.”유남준의 기억은 회복할 수 있지만 눈은 그럴 수 없다는 걸 고영란은 알고 있었다. 의사는 유남준이 교통사고 후 외상성 시신경 손상으로 평생을 어둠 속에서 살아야만 한다고 말했다.유남준은 그녀의 말을 듣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남우한테 가서 말해요. 내가 가만 놔두지 않을 거니까 기다리고 있으라고.”어릴 적의 기억을 이미
고영란은 손을 꽉 그러쥐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목소리를 낮추어 박민정한테 말했다.“너랑 얘가 결혼한 지 이제 몇 년째니? 그동안 네가 후사를 봤더라면 내가 남준이를 대신할 사람을 왜 급히 찾았겠니?”가족 기업의 대를 이을 대표가 아이가 없다는 게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네가 날 훈계할 자격 있니? 자기 자식 안 아낄 부모가 어디 있어?”고영란은 이 말 한마디를 내던지고 떠나갔다.박민정은 제 자리에 선 채, 왠지 모르게 슬퍼졌다.그녀의 어머니는 한 번도 친딸인 자신을 아껴준 적이 없었다. 그래서 방금 오지랖 넓게 나섰던 것이다. 멍하니 서 있는데 뒤에 있는 유남준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고마워, 민정아.”유남준의 지금처럼 기분이 좋았던 적이 없다.정신을 차린 박민정은 그한테 잡힌 손을 서둘러 빼냈다.“고마워할 거 없어요. 아까는 당신이 불쌍해 보여서 순간 감정이 격해져서 그랬던 거예요. 다른 이유 없어요.”말을 마치고 바로 은정숙의 방으로 향했다.아래층에서 생긴 기척 때문에 혹여나 은정숙이 깨어났을지도 모른다.다행히 예찬이는 정민기와 물건 사러 나갔기에 고영란과 마주치지 않았다....한편, 고영란은 돌아가는 길에 머리가 아파 관자놀이를 눌렀다.박민정이 이젠 대놓고 시어머니인 그녀와 대들고 훈계질까지 할 줄 몰랐다.미간을 짓누르며 짜증 섞인 어조로 기사한테 빨리 가라고 다그쳤다.마침 중심가를 지나가고 있던 터라 차가 막혀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답답한 고영란은 차창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한 익숙한 작은 인영이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예찬이?! 쟤가 왜 저기 있어?”기사한테 차를 세우라 하고 얼른 차에서 내려 예찬이의 뒤를 쫓았다.요즘 일이 너무 많았지만 예찬이의 신상에 대해서는 늘 조사하고 있었다.전에 예찬이가 강연우의 아들인 줄 알았는데 강연우한테 물어보니 아니라고 했다. 또 자세히 조사한 결과, 조하랑은 외국에 간 뒤 남자친구를 사귄 적이 없고 주변 이성과의 관계도 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