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천천히 시즌 호텔 앞에서 멈춰 섰다.조하랑은 차 안에서 호텔 안을 들여다봤는데 마음이 복잡했다.그녀는 억지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박예찬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박민정도 뒤따라 내려왔다.박예찬은 시계를 바라보고 시간이 됐는데 왜 아직 아무도 안 오는지 의아해했다. 돈을 받고 싶지 않은 건가? 이렇게 책임감이 없어도 되는 건지 싶었다.만약 리뷰를 남길 수 있다면 무조건 낮은 점수를 매겼을 것이다.조하랑은 원래도 박예찬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저 어린 아이일 뿐인데 어떻게 강연우보다 더 멋진 파트너를 찾아줄 수 있겠는가?“민정아, 나 너무 긴장돼.”조하랑은 고개를 돌려 박민정을 바라보았다.박민정은 앞으로 다가와서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겁내지 마. 내가 여기 있잖아.”수년 동안 조하랑은 강연우 때문에 다른 남자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녀에게 호감을 갖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모두 거절했다.한국으로 돌아온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강연우를 찾아가는 것이었는데, 그를 찾았을 때는 이미 여자 친구가 있는 상태였다.이제 두 사람은 결혼을 앞두고 있고 강연우는 조하랑에게 청첩장까지 보냈다. 심장이 찢기는 느낌이었다.박민정의 위로를 받은 조하랑은 마침내 한 걸음 내딛고 호텔로 들어섰다.연회가 열리는 로비 밖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신랑 신부의 웨딩 사진을 보았다. 사진 속 신부는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강연우의 곁에 꼭 붙어 서있었다.박민정도 신부의 외모를 보았는데 놀랍게도 조하랑과 비슷했다.“신부가 너무 예쁘네.”조하랑은 중얼거렸다.박민정은 더욱 안타깝게 생각했다.“우리 하랑이가 더 예쁜데.”박예찬도 조하랑의 손을 잡았다.“맞아요, 엄마가 더 예뻐요.”‘엄마’라는 말에 정신을 차린 조하랑은 자신을 아끼는 두 사람의 눈을 바라보며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그래, 내가 더 예쁘지. 어서 들어가자.”조하랑은 한 손으로 박예찬을, 다른 한 손으로는 박민정의 손을 잡았다. 옆에 남자가 없어도 괜찮았다.세 사람
강연우의 어머니는 조하랑이 대표님의 딸이니 자신의 아들이 계속 그녀와 연락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은 마음속의 생각을 확실히 하고 강연우 앞에서 전혀 그들 모자의 체면을 봐주지 않았다.“아, 그렇군요. 아줌마는 정말 대단한 어머니네요. 아들이 결혼하는데 애인을 찾아주시고 말이에요. 며느리가 될 분은 이 사실을 알고 있어요?”박민정은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덧붙였다.“우리 하랑이는 아드님에게 마음이 남아 있어서 결혼식에 참석하러 온 게 아니라 아줌마네 가족이 다른 집의 착한 딸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걱정돼서 왔어요.”그렇게 말한 후 박민정은 강연우를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강 변호사,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죠. 어머님이 저런 말씀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시는데 당신이 변호사라는 호칭을 들을 자격이 있나요?” 박민정은 여기 오기 전에 강연우의 부모님이 이런 사람일 줄은 몰랐고 그저 강연우가 정 없는 사람이란 것만 알고 있었다.강연우는 박민정의 말을 듣고 자신의 어머니에게 말했다.“엄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전 평생 해인이랑만 함께할 거고, 해인이만 사랑할 거예요.”박민정의 뒤에 서 있던 조하랑은 그 말을 듣고 갑자기 예전의 자신이 그저 그가 놀다 버린 장난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한때 강연우와 함께 허름한 호텔에서 보냈던 시간이 떠올랐다. 그가 자신을 껴안으며 말했던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나 강연우는 이번 생에 오직 조하랑과 함께할 것이며, 그녀만을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다.”조하랑은 감정을 억누르며 그에게 따지지 않으려고 애썼다.강연우의 어머니는 아들의 말을 듣고는 박민정을 매섭게 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내 아들이 이렇게 뛰어난데 여자 몇 명 만나는 게 뭐가 문제야? 요즘 어떤 회사 대표가 여자 한 명밖에 없어? 어떤 사람은 포기하지 못하겠지. 내 아들을 떠나면 누가 저 놀다 버린 년을 만나려 고 하겠어?”강연우의 어머니는 조하랑과 강연우가 오래 전에 이미 호텔도 다니며 함
호텔의 어느 한 방 안에서는 홀 현장 라이브를 띠우고 있었다.서다희는 어리둥절했다.“박예찬은 왜 또 조하랑의 아들이 된 거지?”유남준은 진주시로 온 다음 서다희더러 몰래 박민정을 지키고 있으라고 했다. 그리고 이건 보호 차원에서 시키는 일이지 절대 미행이 아니라고 했다.그래서 경호원들이 아래 결혼식장에서 박민정 일행을 찍고 있어서 목소리가 아주 잘 들렸다.유남준은 서다희의 말을 듣고도 전혀 이상하게 생가가지 않았다. 두 사람은 절친이니 아들을 빌리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그런데 ‘아빠’라니? 진주시에서 가장 센 사람이라면 자신이 등장할 차례인 건가?하지만 지금은 볼 수 없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아들은 빌릴 수 있어도 남편은 절대 안 된다. 다른 여자의 남편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그래서 유남준은 서다희에게 지시했다.“내려가서 지금 이 일 좀 수습해 봐.”박민정의 친구는 그의 친구이기도 했다. 그러니 친구가 다른 사람에게 괴롭힘 당하는 걸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네, 알겠습니다.”강연우는 변호사가 맞지만 돈으로 해결 못하는 것은 없다.아래층 결혼식장에서.신랑 측 손님과 신부 측 손님들은 모두 문 앞에서 발생한 일 때문에 놀라서 구경하려고 모여들었다.강연우는 깜짝 놀라 어머니를 부축하여 일으켰다.강연우 어머니는 조하랑에게 이렇게 큰 아들이 있는 줄은 몰랐고 이제 알게 되자 갑자기 마음을 바꿨다.두 사람은 연애를 했었고 아들은 이제야 결혼하는데 조하랑에게 이렇게 큰 아들이 있었다니.지난번에 조하랑을 만난 건 작년이었다. 눈앞에 있는 이 아이는 네 살 쯤 돼 보이는데, 그렇다면 조하랑이 아들이 있는 상황에서 그녀의 아들 강연우를 만났다는 뜻이다.“진주시에서 가장 강한 남자라고? 네 엄마가 너를 속인 것 같구나.”강연우 어머니는 박예찬에게 말했다.“네 아빠가 널 버린 거 아니니? 그래서 네 엄마가 내 아들에게 집착하는 거 같구나. 너희에게 말하는데, 내 아들은 너희 모자를 받아줄 만만한 사람이 아니야.”강연우
박예찬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 사람은 어떻게 내가 보낸 초대장을 가진 거지?’게다가 자신의 실속을 챙기려 하다니,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그에게 맞춰줄 수밖에 없다.“아빠, 말씀하신 것이 다 맞아요.”이 순간 세 사람이 함께 서 있는걸 보면 정말로 한 가족 같았다.강연우는 눈앞의 아름다운 장면을 바라보며 눈이 부셨다.하지만 그는 겉으로는 무덤덤하게 말했다.“도련님, 죄송합니다. 접대가 부족했습니다.”김인우는 그 말을 듣고는 실눈을 뜨고 뼛속까지 차가울듯한 눈빛으로 바라봤다.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접대만 부족한 게 아닙니다. 당신들은 제 아내와 아들을 모욕했습니다. 이건 어떻게 갚겠습니까?”“당신은 변호사죠? 자신의 소송에서는 이길 자신이 있나요?”김 씨 가문에게 강연우를 없애려 한다면 마치 하찮은 개미를 죽이는 것처럼 쉬웠다.강연우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죄송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김인우는 그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조하랑, 예찬, 그리고 박민정에게 말했다. “우리 돌아가요, 이런 결혼식에는 참석할 필요 없어요.”사람들은 그들이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강연우의 잘생긴 미간을 좁혔다. 김인우를 아는 사람 중에서 돈이 조금 있는 친척들은 결혼식에 더 참석할 엄두를 못 내고 모두 핑계를 대며 자리를 떠났다. 강연우의 어머니가 그들을 막으며 말했다. “식사도 안 하고 왜 가려고들 하십니까?” 그중 한 사람이 불만을 토로했다. “김씨 가문을 건드렸는데, 누가 감히 여기서 식사를 하겠어요.”강연우의 어머니는 자신이 매우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더욱 확실히 알게 되었다. 호텔을 나서는 길에 김인우와 조하랑은 함께 걸었고 그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예찬이가 내 아들이 아니라고 하다니요. 말해봐요, 내가 친자 확인을 할 때 어디에 손을 썼어요?”김인우는 친자 확인을 할 때 조하랑이 박예찬을 찾아왔던 것을 기억했다. 하여 그는 전 과정에 문제가 없었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김인우는 세 사람이 떠나는 걸 바라보면서 잘생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네.”그는 다시 차에 앉았다.이때 호화로운 차 안에는 흰머리가 가득한 노신사가 있었다. “너 이 쓸모없는 녀석, 사람들이 차에 안 타는데 넌 왜 쫓아가지 않니? 끈질기게 굴 줄 몰라?”말하는 사람은 바로 김인우의 할아버지로, 그의 결혼 문제에 정말 마음을 썼다.오늘 김인우가 우연히 박예찬이 쓴 쪽지를 언급하며 아빠를 찾는 말을 할아버지가 들었다.할아버지는 꼭 여기에 와야 한다고 했고 가지 않으면 반쯤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했다.그래서 김인우가 구원하러 온 것이다.“제가 그렇게 끈질기게 굴 사람이에요?” 김인우가 말했다.할아버지는 지팡이를 들어 그를 때리려고 했다. “분명히 말하는데 나는 하랑이만 며느리로 인정해. 네가 어떤 방법을 쓰든지, 반드시 하랑이와 결혼해야 해.”조하랑을 처음 본 이후, 주변 사람들을 시켜 이 여자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그녀의 인간관계는 매우 깨끗하다는 것을 알았다. 변호사 자격증이 취소된 후에도 낙심하지 않고 단순한 사무직 일을 하면서도 열심히 살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생각하기에 조하랑이 자신의 손자를 잘 다스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점이었다. 김인우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도대체 조하랑의 무엇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옆에서 그저 동조할 뿐이었다.한편, 서다희는 사건이 성공적으로 해결된 후 유남준에게 결과를 보고하러 갔다. 박민정 일행은 임대 주택에 도착한 후에도 여전히 김인우가 왜 결혼식 현장에 나타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조하랑은 갑자기 지난주에 예찬이 자신을 위해 강연우보다 더 멋진 남자를 찾아주겠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그녀는 박예찬을 바라보았다. “예찬아, 김인우 아저씨가 바로 네가 찾은 더 멋진 남자야?”박예찬은 급히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아니죠.” “그럼 네가 찾은 더 멋진 남자는 어디에 있어?”조하랑의 물음에 박예찬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얼버무렸다.박민정은 두 사람
비서가 언급한 사람은 당연히 박민정이었다. "박민정?" 고영란은 비서를 바라보며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추측을 했지만, 예찬이 박민정의 아들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혹시 예찬의 아빠가 박민정의 어떤 친척이 아닐까?” 비서도 그 말을 듣고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박민정의 어머니와 동생이 진주시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고영란은 한수민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서 급격히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들이 또 우리 유씨 가문의 피를 빨아먹으려고 하지 않을까요?”비서는 한수민이 해외의 부자인 윤 씨 성을 가진 상인과 결혼해 이제 돈 걱정이 없다고 고영란에게 전했다. 고영란은 한수민을 더욱 경멸했다. 그녀가 남자에게 의존해야만 살아남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잠시 다른 주제로 이야기가 옮겨가자 고영란은 예찬의 일을 잊어버렸다. “그런데 남준이는 요즘 어떻게 지내?” “도련님은 거의 외출하지 않고 매일 집에만 있습니다.”비서는 한때 자신만만하고 오만했던 유남준이 이렇게까지 타락한 것을 보고 안타까워했다. 고영란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 애가 내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야. 만약 그 애가 일찍 자식을 가졌다면, 나도 그 애를 그런 외진 곳에 버리지 않았을 거야.”더욱이 그녀는 유남준이 유남우의 가짜 신분을 폭로할까 봐 걱정했다. 그러면 유씨 가문에서 그녀 고영란의 자리가 사라질 것이다. “내일이 바로 동지잖아? 회사에 새로운 계획이 있어?” 비서는 최근의 활동 프로젝트 계획을 모두 고영란에게 보여주었다. “사모님, 최근에 해외 유명 작곡가 민 선생이 새로운 곡을 발표하고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상이 이 곡을 사들일 수 있다면 신규 드라마에 쓰든, 가수에게 주든 모두 큰 인기를 끌 수 있을 겁니다. 전에 이지원의 문제로 주상의 명성이 많이 손상되었잖아요.”“좋아, 그렇게 하도록 해.” 고영란이 대답했다. “네.”... 다음 날 아침 일찍, 박민정은 먼저 예찬을 유치원에 데려다준 후 신림으
“당신 뭐 하는 거야? 놔요.” 박민정이 그를 밀쳐내려 했지만, 유남준은 그녀를 더 꽉 안았다. 그의 손이 박민정의 작은 손을 잡았다. “움직이지 마, 우리 아기 다쳐.”말을 마친 후, 그는 무언가를 떠올렸다. “벌써 거의 3개월이 된 거 아니야? 오늘 산부인과로 가자.” 인제야 산부인과로 갈 생각을 하다니, 박민정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미 했어요. 아기는 건강해요.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아기는 당신 아이가 아니에요.” 유남준은 신경 쓰지 않고 박민정을 안아 들어 계단을 올라갔다. “남준 씨, 내려놔요. 방에 안 갈 거예요.” 박민정이 그의 팔을 세게 꼬집었다. 유남준은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듯 안은 손을 풀지 않았다. 박민정은 요즘 유남준이 점점 더 지나치다고 느꼈다. 유남준은 그녀를 안고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조심스럽게 침대에 내려놓았다.“말 들어.” 박민정은 말없이 혀를 찼다. 그가 눈이 멀었어도 체력적으로는 자신이 상대되지 않는다는 건 생각지 못했다. 그녀는 정말 피곤함을 느끼고 있었기에 유남준에 대해 더는 신경 쓰지 않고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유남준은 그녀의 규칙적인 숨소리를 듣고 그녀가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한 후에야 방을 나섰다. 서다희는 이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나오는 것을 보고는 차 문을 열었다. 차는 신림현에서 가장 호화로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전국에서 가장 정상급의 정신과 의사들이 그곳에 있었고 많은 장비도 갖추어져 있었다. 유남준은 한 장비에 누워 계속 치료를 받았다. 최근 그의 기억이 점점 더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 어째서인지 기억이 선명해질수록 그는 더욱 외로움을 느꼈다. 어린 시절의 대부분 기억이 회복되면서 그의 머릿속에는 박민정과의 과거가 떠올랐다. 두 사람이 결혼하는 순간, 자신이 속았던 순간, 무수히 많은 사람이 자신을 비웃는 눈빛과 말들이 떠올랐다.갑자기 눈을 번쩍 뜬 유남준의 얼굴엔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유 대표님, 괜찮으십니까?”의사가 급히 물었
유남준이 이렇게 말을 잘 들으니 박민정도 계속 그를 괴롭히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할 뿐이었다.어떤 때는 서다희가 몰래 와서 그 일을 대신하기도 했다.오늘 저녁 식사를 할 때, 유남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저는 일자리를 구했어. 앞으로 집안의 지출은 내가 책임질게.”말을 마치고 그는 박민정이 자신에게 줬던 생활비 카드를 돌려주었다.머릿속에 이미 약간의 기억이 떠올렀으니 이 카드는 자신이 걱정돼서 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박민정은 그가 건네준 은행 카드를 보며 그가 한 말을 의심했다.박예찬이 물었다."아저씨, 무슨 일자리 찾으셨어요?”유남준은 새로운 회사를 차리기 시작했는데 계속 치료를 핑계로 회사에 가는 것도 말이 되지 않기 때문에 솔직하게 말했다."장애인 자선활동에 관련된 일이야."지금은 눈이 보이지 않으니 이 핑계를 쓸 수밖에 없었다.식탁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놀라는 눈치였다.박민정은 유남준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자선하는 것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모두 회사의 명성을 위해서였다.이제 와서 장애인 자선활동에 관련된 일을 선택하다니, 정말 불가사의했다.지금은 그는 이미 변했고 전심전력으로 착하게 살았으니 박민정도 차차 그에 대한 인상을 바꾸기로 했다."당신이 하는 일은 돈이 얼마나 되겠어요, 제 카드를 쓰세요.”지금의 일상 씀씀이는 그녀에게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녀는 전처럼 직업이 없던 그 가정주부가 아니었다."괜찮아."유남준은 카드를 탁자 위에 두고 젓가락질도 하지 않고 떠났다.박민정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가족이 함께 살면 생활비도 일부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었다.이 도리를 깨닫고 그녀도 은행 카드를 다시 가져왔다.다만 그녀는 카드 안의 잔액을 확인하지 않았다. 확인해 보면 알겠지만 그는 카드 안의 돈을 한 푼도 건드리지 않았다.내일은 크리스마스이다.박민정은 이미 진서연과 상의해 이번 곡의 첫 공개는 국내에서 하기
민박집 안, 모두가 아침 식사를 하며 여전히 아찔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자칫하면 모두 목숨을 잃을 뻔했으니.유남준은 대충 식사를 마친 뒤 전화를 받으러 밖으로 나갔다.“누가 한 짓인지 밝혀냈어?”그가 물었다.전화기 너머, 서다희는 무릎 꿇고 있는 무리들을 바라보며 대답했다.“밤에 돌을 캐러 갔을 뿐, 사람을 해치려던 건 아니라고 잡아떼고 있습니다.”한밤중에 돌을 캐러 갔다고?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하지만 이들이 진실을 말하지 않으니 더 캐묻기도 애매했다.“대표님, 전 개인적으로 유석진 쪽이 의심됩니다.” 서다희가 덧붙였다.굳이 조사하지 않아도 유남준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는 표정은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그래. 이놈들은 전부 경찰서로 넘겨.”“알겠습니다.”전화를 끊고 돌아서던 유남준의 시야에 최현아와 그녀의 아들이 탄 차가 들어왔다.최현아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깥에 서 있는 키가 훤칠하고 냉정한 인상의 남자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남준 씨.”그녀는 조심스레 불렀는데 심장이 쿵쾅거렸다.“남준 씨, 왜 혼자 밖에 있어요? 민정이랑 애들은요?”“안에서 밥 먹고 있습니다.”유남준은 냉담하게 답했다.최현아는 어색한 공기를 지우려는 듯 운전기사에게 자신이 호텔에서 포장해 온 음식을 가져오게 했다.“아직 제대로 못 먹었을 것 같아서요. 여기 좀 싸 왔어요.”“괜찮습니다. 이런 건 형수님께서 드시죠.”유남준은 말만 남기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고 최현아는 묘한 허전함을 느꼈다.이때 곁에 있던 아들, 유지훈이 못마땅한 듯 물었다.“엄마, 제가 가져온 음식을 왜 삼촌한테 주려 해요?”최현아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좋은 건 나눠야 하잖니.”하지만 유지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집에 있을 때 그는 엄마가 아빠에게 이렇게 다정하게 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아빠가 밥을 챙겨 먹었는지도 신경 쓰지 않았는데.“엄마, 전 엄마가 이러는 거 싫어요. 앞으로 예찬이 아빠한테 이렇게 잘해주지 마세요. 전 삼촌이 싫
유남준이 나와보니 텐트와 얼마 멀지 않은 곳에 큰 바위가 굴러떨어져 있었고 산사태도 발생한 흔적이 있었다.“위험할뻔했네.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고 사전에 점검하지 않았나?”분명 일부러 이런 짓을 벌인 게 아니라면 절대로 발생할 수 없는 일이다.박민정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살짝 겁을 먹었다.“세상에. 만약 어제 비가 조금만 더 세게 내렸다면 우리 텐트도 분명 물에 잠기거나 바위에 깔렸을 것 같네요.”생각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는데 유남준은 겁에 질린 그녀를 보고 재빨리 다가와 안심시켰다.“우린 하느님이 도와줄 테니까 그런 일은 없을 거야. 걱정하지 마.”박민정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네.”학교 선생님들도 눈앞의 상황에 매우 놀랐다.지금은 비가 그쳤고 아무런 사고도 없었기에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이곳은 분명 최현아가 사전에 사람을 보내서 확인 후에 결정했던 곳인데 어떻게 이렇게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까?만약 이 거대한 바위들과 흙들이 비에 씻겨 산 아래로 굴러떨어졌다면 적어도 몇 집은 이미 큰 부상을 당했을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선생님들도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르는 게 무리인 것 같아 모두가 편안하게 휴식할 수 있도록 오늘 저녁에는 민박집을 예약했다.“너무 좋아요. 이곳에서 자는 것보다 민박집에서 자는 게 훨씬 안전할 것 같네요.”학부모들도 선생님의 아이디어에 저마다 찬성하면서 하나둘씩 짐을 싸기 시작했다.이 시각, 최현아는 진작에 산에서 내려와 혹시나 산사태로 인한 인명피해 뉴스가 뜬 게 없는지 계속 핸드폰으로 확인했다.그러나 아침 9시가 넘었는데도 감감무소식이었다.이때, 유지훈도 진작에 잠에서 깼다가 문득 최현아에게 물었다.“엄마, 저희는 왜 계속 산에 있지 않고 내려왔나요? 저는 배도 안 아픈데.”그의 말에 최현아는 순간 짜증이 밀려왔다.“아무 말도 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선생님께서 오늘에는 더 높은 산에 올라갈 거라고 했단 말이에요. 저도 산에
저녁이 되더니 약간의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점차 빗방울이 굵어졌다.원래 유남준은 오늘 이불을 덮고 자려고 했으나 비가 오니 어쩔 수 없이 다시 침낭에서 자야 했다.박민정은 밖에서 요란하게 들리는 천둥소리가 무서워 이불 안으로 꼭꼭 숨었다.옆에 자기 아들이 누워있어 티는 내지 못하고 있는데 그런 박민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박예찬이 손을 뻗어 그녀의 침낭을 가볍게 두드리며 물었다.“엄마, 나랑 같이 자자.”“응? 왜?”박민정은 갑작스러운 그의 제안에 어리둥절해서 되물었다.“아니면 나랑 같이 잘까? 나 천둥소리가 너무 무서운데.”이때, 유남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박예찬은 원래 자신이 하려던 말을 그에게 뺏긴 게 너무 괘씸해서 그를 도끼눈으로 째려봤다.박민정은 그의 말을 듣고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천둥소리를 무서워한다고요?”“응. 좀 무섭네?”유남준은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는데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박민정은 사람마다 약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유남준같이 돈이나 권력이 있는 사람도 분명 약점이나 두려워하는 게 있을 텐데 저 사람한테는 그게 천둥소리인가 싶었다.“괜찮아요. 잠들면 금방 안 들릴 테니까.”박민정은 아까까지 너무 무서웠지만 같이 얘기를 나누다 보니 좀 괜찮아진 것 같았다.그러나 유남준은 약간 진정된 그녀를 보고는 자신이 세워둔 작전이 물거품으로 돌아간 것 같아 의기소침해졌다가 용기를 내서 다시 물었다.“이쪽으로 좀 오지 않을래?”그의 말에 박민정은 침낭 안에서 몸을 이리저리 구르다가 마침 박예찬의 침낭에 딱 붙게 되었다. 박예찬이 흐뭇해하던 찰나에 또다시 유남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예찬이는 천둥소리가 안 무섭지?”박예찬은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빠르게 답했다.“당연하죠. 남자로서 어떻게 천둥소리 따위를 무서워하겠어요? 제가 보호해 줄 테니까 안심하세요.”“그럼 네가 침낭 끝에 자면서 우리를 보호해 줄래?”유남준의 말에 박예찬은 그제야 그의 꾀에 넘어갔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박민정의
박민정은 뜬금없이 자기 앞으로 내미는 음식을 보고 어리둥절해서 물었다.“뭐예요?”“형수가 담아줬는데 안에 고기도 있더라고. 아까 잘 못 먹던데 이거라도 먹어.”최현아는 마침 그의 뒤를 따라왔다가 마지막 한마디를 똑똑히 듣게 되었는데 순간 뜨겁게 불타올랐던 마음에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차갑게 식었다.유남준이 자기한테 마음이 있어서 호의를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는데 자기 마음을 이용해서 박민정에게 애정 공세 할 줄은 몰랐다.“남준 씨는 참 다정한 남편이네요. 제가 가져다준 음식을 그대로 민정 씨에게 줄 만큼.”말속에 가시가 돋혀 있었다.솔직히 저녁 식사가 부실했던 건 사실이었고 양도 적은 데다가 온통 채소뿐이라 박민정은 진작에 허기져 있었다.그가 건네준 음식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다시 최현아를 보고는 막 거절하려는데 유남준이 다시 말을 이었다.“빨리 먹어. 너무 늦게 먹으면 건강에 안 좋으니까.”박민정은 그의 닦달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최현아에게도 인사를 건넸다.“형님, 그럼 감사히 먹을게요.”최현아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겨우 답했다.“많이 먹어요.”그리고 한껏 어두워진 얼굴로 뒤돌아서더니 낮은 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둬. 먹다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잖아!”최현아는 원래 유남준이 자기 마음을 받아주면 이따가 이 남자만 살려주려고 마음먹었다.그러나 이제 보니 그럴 필요 없이 그냥 세 가족을 모두 죽여버리면 될 것 같았다.그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두 주먹을 꽉 쥐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편했다....박민정은 도시락에 담긴 다양한 음식을 보고는 순식간에 식욕이 올라왔다.“와, 너무 맛있겠다.”그리고 다시 반찬들을 가지런히 모으더니 두 사람에게 활짝 웃으며 말했다.“예찬아, 남우 씨, 너무 많아서 저 혼자는 다 못 먹을 것 같은데 우리 같이 먹어요.”뜬금없이 자신을 남우라고 부르는 모습에 살짝 언짢아졌지만 그래도 티를 낼 수 없었다.“그래.”그렇게 세 사람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맛있는
오늘 저녁은 학교에서 준비해 줬다.사실 물고기를 잡아서 점심 식사를 해결해야 했는데 다들 많이 잡지 못한 바람에 식사가 조금 부실했다.하여 저녁 식사 시간이 돌아오니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에너지 소모가 많았던 탓에 음식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지게 되었다.유지훈은 밥을 먹으면서도 계속 박예찬을 신경 썼다.그리고 내심 박예찬 주변에 친구가 많은 게 부러웠지만 이제 와서 그에게 붙는 건 자존심이 상했다.한편, 최현아는 오늘 밤 분명 무슨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에 너무 긴장되어 밥도 잘 넘어가지 않았다.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박민정 쪽을 바라보았는데 세 가족이 화기애애해 보이는 모습에 또다시 질투심이 마구 피어올랐다.저녁 식사가 다 끝난 뒤 각자 돌아가서 쉬고 있는데 최현아가 어느새 유남준의 곁에 다가오더니 그에게 말을 걸었다.“남준 씨, 음식은 입에 잘 맞았나요? 제가 음식을 따로 싸 왔는데 괜찮으시면 좀 드실래요?”그러나 유남준은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괜찮습니다.”어제랑 다르게 차가운 그의 태도 때문에 최현아는 순간 멍해졌다.분명 어제 자신이 땀을 닦아줘도 가만히 있던 사람인데 왜 갑자기 태도가 바뀌었나 싶었다.“그래도 제가 남준 씨 형수인데 너무 체면 차릴 필요 없어요. 제가 금방 가지고 올게요.”최현아는 유남준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재빨리 음식 가지러 달려갔다.그저 유남준이 혹시나 주변 사람들이 보고 오해할까 봐 철벽친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은 박예찬과 무료함을 달래려 잡초를 뽑고 있다가 무심결에 최현아와 유남준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박예찬에게 물었다.“저 두 사람은 지금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까?”박예찬은 박민정이 풀 뽑기를 좋아하는 줄 알고 열심히 같이 뽑다가 문득 그녀의 뜬금없는 물음에 고개를 들어보니 유남준이 또 다른 여자랑 시시덕거리고 있었다.“엄마, 내가 가서 물어보고 올게.”“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하나는 유남준의 좋은 시간을 방해할 것 같아서였고 다른 하나는 괜히 박예찬이 가서 물어보면 마치 그
오후가 되니 날씨가 약간 흐려지기 시작했다.박민정네는 산언덕에 앉아 바람도 쐬고 구운 생선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박예찬은 특별히 물고기 한 마리를 남기더니 조동민에게 주며 말했다.“아마 오래 살지는 못할 거야.”그의 말에 조동민은 활짝 웃으며 답했다.“예찬아, 고마워. 넌 참 착한 아이야.”그 모습을 옆에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박민정은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자기 아들이 너무 따뜻한 사람이라 앞으로도 친구 사귀는 건 문제없겠다고 생각되었다.“고작 고기 한 마리 가지고 뭘.”박예찬은 아직 칭찬받는 게 익숙하지 않은 듯 쑥스러워했다.조동민은 고맙기는 한데 오늘 발생했던 일 때문에 계속 마음이 불안했다.“민정 이모, 혹시 오늘 일은 진짜로 제가 잘못한 걸까요?”어린아이의 세계는 그저 흑과 백으로 단조롭게 나뉘어져 있을 것이다.하여 당연히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여겼는데 자기더러 사과하라던 아버지 때문에 많이 혼란스러웠다.박민정은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그에게 말했다.“이모는 동민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넌 단지 자신의 권익을 보호하고 있었을 뿐, 유지훈이 먼저 잘못한 거지.”그녀의 말에 조동민은 더욱 억울한 얼굴로 되물었다.“그런데 저희 아빠는 왜 저더러 사과하라고 했을까요?”“그건 어른들의 세계에는 옳고 그름만이 있는 게 아니거든. 이건 네가 나중에 어른이 되면 다 이해가 될 거야.”조동민은 그제야 뭔가 깨달은 듯 그녀에게 답했다.“저도 알 건 알아요. 저희 아빠는 지훈이네 엄마가 무서웠던 거예요. 저희 부모님은 항상 저에게 유지훈에게 잘 보여야 우리 집안 사업도 잘되고 나중에 돈도 많이 벌 거라고 습관처럼 말하셨어요.”그의 말에 박민정은 순간 가슴이 아려왔다.‘이렇게 어린아이가 그런 말 때문에 얼마나 부담감을 느꼈을까?’그녀는 어떻게 조동민을 위로했으면 좋을지 몰라 그저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그러나 조동민은 고개를 들고 박민정을 빤히 바라보며 다시 단호하게 말했다.“이모, 저 오늘부로
한가영은 한껏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박민정을 힐끔 바라보았다.그리고 박민정이 한마디 하자마자 장연수도 빠르게 거들었다.“최 회장님, 다 아이들 일이고 누구도 피해 본 사람이 없는데 이쯤 하시죠.”몇몇 학부모들도 최현아를 말리기 시작했다.“아이가 이 정도로 우는 걸 보면 분명 잘못했다는 걸 깨달았을 겁니다.”“맞아요.”최현아는 두 주먹을 꽉 쥔 채 어두운 얼굴로 가만히 서서 생각해 보았는데 보는 눈이 이리도 많은데 계속 아이를 혼내기도 뭐한 것 같았다.“그럼 오늘 일은 여기서 끝내겠는데 다음부터는 절대 이런 일이 없어야 할 겁니다.”조민혁은 심장이 다 타들어 갔다가 겨우 입을 열어 인사를 건넸다.“역시나 최 회장님은 아량이 깊으십니다.”한가영은 일이 이대로 마무리되자 단번에 조민혁을 옆으로 밀쳤다.“어떻게 여동생보다도 간이 작아요? 이런 사람이랑 결혼한 제가 멍청이네요.”부모님이 자기 앞에서 다투기 시작하자 조동민은 더욱 마음이 불편했다.자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가 벌어졌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박민정 덕분에 사건이 종료된 뒤 조동민은 박예찬과 놀기 시작했다. 두 아이는 박민정 뒤만 졸졸 따라다니다가 박민정은 조하랑에게 전화를 걸어 조동민과 잠깐 통화하게 했다.조동민은 화면 속의 조하랑을 보자마자 갑자기 서러움에 눈물이 왈칵 터졌고 조하랑은 겨우 그를 달래서 울음이 그쳤다.“민정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아직 아이라 표현 능력이 제한되어 있어서 조하랑은 자기 조카가 뭔가 억울함을 당했다고는 느꼈어도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아직 알지 못했다.하여 박민정은 오늘 있었던 일을 그대로 조하랑에게 알려줬고 그녀는 듣자마자 불같은 화를 냈다.“최현아라는 사람 진짜 너무하네! 이렇게 어린아이더러 동급생 아이한테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시켰다고? 제정신으로 한 말인가 싶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당장에라도 그 여자 가면을 벗겨버리는 건데!”조하랑은 씩씩거리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우리 오빠는 진짜 쓸모없는 인간이라니까.
“지훈아, 우리 동민이가 먼저 때린 건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무릎을 꿇리는 건 아니라고 봐.”조동민의 아버지 조민혁이 말했다.그리고 어머니 한가영도 다시 최현아에게 애원했다.“최 회장님, 작은 오해로 아이에게 무릎 꿇고 사과시키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최현아는 고작 조 씨 가문 따위가 자신에게 반항하는 모습이 너무 기분이 언짢았다.또한 두 사람은 박민정의 친구이자 조하랑의 친척이라는 사실에 더욱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만약 사과할 수 없다면 법원에 고소해야겠네요.”말이 고소지, 분명 다른 방법으로 조씨 가문을 괴롭힐 게 뻔했다.그래도 한가영은 자기 아들이 이런 수모를 겪게 내버려둘 수 없어 재빨리 조동민을 품에 안았다.이 시각, 조동민은 아주 큰 충격에 빠져 있었다.분명 잘못한 사람은 유지훈인데 왜 자신이 무릎을 당연하게 꿇어야 하는지, 왜 어른끼리 저런 대화를 하고 있는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엄마, 저는 잘못하게 없어요.”순간 목이 메어왔다.한가영도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그저 조민혁만 바라보았다.그러나 조민혁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조씨 가문의 세력으로는 최씨 가문이나 유씨 가문에게 전혀 상대가 되지 못했다.“동민아, 미안하다!”괜히 아이 하나 때문에 큰 집안을 말아먹을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자기 아들을 무릎 꿇리게 해야 했다.한가영은 순간 마음이 바닥으로 내려앉는 것 같았다.자기 남편이 아무리 무능력하다고 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고 이렇게까지 무례하게 구는 데도 가만히 있을 줄은 몰랐다.그러다가 문득 시선이 자기도 모르게 박민정에게로 향했다.“민정 씨, 제발 저희를 좀 도와줘요. 민정 씨는 하랑 씨 친구잖아요. 하랑이는 동민이 고모예요.”조동민은 어렸을 적부터 조하랑을 이모라고 불렀는데 그러면 여태껏 잘못 부른 것이다.느닷없는 부탁에 박민정은 순간 눈앞의 아이가 조하랑의 조카라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있었다.조동민도 어느새 한껏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이때 최현아의 떨떠름
온갖 잡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하던 이때 그녀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화면을 확인해 보니 시아버지인 유석진이었고 재빨리 구석 쪽으로 가서 통화버튼을 눌렀다.“오늘 저녁에 호우주의보가 떴던데 남준이랑 민정이 모두 거기에 있어?”“네.”“그러면 산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아주 자연스럽겠지?”유석진이 묻는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최현아는 다급히 그에게 설명했다.“여기에는 다른 학부모님들과 선생님들도 계세요.”“난 그저 유남준이랑 박민정만 사라진다면 다른 사람이 죽거나 말거나 아무 관심이 없어.”유석진의 말대로 그는 다른 사람이 죽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최현아는 핸드폰을 손에 꼭 쥐더니 눈길은 자기도 모르게 유남준에게로 향했다.“알겠어요. 그럼 준비되면 알려주세요.”“그래. 너랑 지훈이는 꼭 안전에 주의해야 한다.”“네.”말을 마치자마자 최현아는 전화를 끊었다.그러다가 머릿속에서는 진짜로 유남준과 박민정이 사고 나는 걸 가만히 지켜봐야 하는지 온갖 잡생각으로 뒤엉켜있었다.박민정은 그다지 걱정되지 않지만 몰래 마음을 두고 있는 유남준이 이대로 죽는 건 아쉬웠다.두통이 몰려오던 이때,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왁자지껄한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한 무리의 어린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마치 싸우고 있는 듯했다.이때 여교사 한 명이 최현아에게 다급히 달려왔다.“지훈이 어머님, 빨리 가보셔야겠어요. 지훈이가 다른 아이랑 지금 싸움 났거든요.”이건 선생님들이 관여를 안 하는 게 아니라 워낙 유지훈의 부모님이 극성이라는 소문이 있어 감히 먼저 말리지 못했다.또한 유씨 가문의 세력만 봐도 선생님들 쪽에서 밉보이는 행동을 절대로 하면 안 되는 처지였다.“누가 감히 내 아들을 때려?”최현아가 빠르게 싸움 현장에 달려와 보니 유지훈과 조하랑의 조카인 조동민이 한창 주먹다짐하고 있었다.그러나 유지훈은 조동민보다 덩치가 한참 작았기에 전혀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내 물고기 당장 물어내! 우리 아빠가 직접 잡은 물고기인데 물어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