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남준은 다급히 당근을 밥과 함께 입에 떠넣었다. 옆에 앉은 예찬이는 그 당근이 제 입안에 들어간 것도 아닌데 보고는 몸서리를 쳤다. 저렇게 맛없는 당근을 한꺼번에 다 먹어 치우다니. 쓰레기 아빠에 대해 감탄이 절로 나왔다.당근을 깨끗이 비운 유남준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와이프가 해주는 밥은 그게 뭐든 다 맛있어요.”박민정은 천천히 시선을 거둬들였다.와이프라는 호칭에 연지석의 기분은 바닥으로 가라앉았다.젓가락으로 유남준의 밥그릇에 반찬을 또 얹어주며 그가 말했다.“이 당근 볶음은 내가 한 거예요. 그렇지, 민정아?”“아... 응, 그렇지.”박민정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그러나 한편 유남준이 골탕먹는 듯한 처지에 놓이자 왠지 우습기도 하고 속이 약간 후련한 것 같기도 했다.아무튼 항상 고고한 부잣집 도련님한테서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었다.당근을 집어 또 한 번 그의 밥그릇에 올려놨다. “맛있으면 많이 먹어요.”유남준의 밥그릇 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당근을 보며 예찬이는 동공 지진을 일으켰다. 갑자기 유남준이 너무 불쌍해 보였다.“아저씨, 당근 좋아하면 제 것도 드릴게요.”천진난만한 얼굴의 예찬이는 마음속에 작은 악마가 살고 있었다. ‘쓰레기 아빠, 날 탓하지 마요. 사나이는 독하고 모진 맛이 있어야 하는 거래요.’자기 밥그릇 안에 있는 당근을 유남준한테 넘겨놓으려 하는 그때, 유남준이 귀신같이 알고 시선을 그아이한테로 돌렸다.“예찬아, 오늘 유치원에서 뭘 배웠어?”예찬이의 손에 쥐고 있는 젓가락이 당근을 잔뜩 집은 채 유남준한테로 향하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이때 유남준은 계속하여 말을 이었다.“너도 당근 좋아하지? 내 것 다 너 줄까?”예찬이가 즉시 거절 의사를 표하려는데 유남준이 또 입을 열었다.“민정아. 너 모르지, 오늘 예찬이가...”“아, 네! 당근 다 제게 주세요. 저 당근 좋아해요.”예찬이는 유남준의 밥그릇에 담긴 당근을 얼른 다 집어와 자기 밥그릇에 담았다.박민정과 은정숙은 경악한
다음 날 아침, 죽을 끓이려던 박민정은 어제 음식하고 남은 당근 몇 개가 하나도 남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오랫동안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한 그녀는 다른 재료로 대체할 수밖에 없었다.유남준은 아침 댓바람부터 병원에 간다고 나가고 없었다....어두컴컴한 지하실 내에서, 연지석은 천천히 눈을 떴다.그의 팔다리는 의자에 묶여 있고 이마에는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온몸에 나 있는 상처는 소금물에 적셔진 것처럼 이루 말할 수 없이 아팠다.맞은편에서 갑자기 소리가 들려왔다.“대표님, 저 자식 꽤 솜씨가 있던 데요. 열다섯 명 불렀는데 모두 다쳤어요. 저것도겨우겨우 묶어둔 거예요.”서다희가 유남준한테 말했다.그 소리를 따라 연지석이 고개를 들어보니 유남준이 나른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자신을 마주하고 있었다. 기척이 들리자 서다희는 바로 유남준한테 알려줬다.“저놈 깼어요.”연지석은 일이 생겼을 때부터 유남준의 소행이겠거니 예상하였다. 그가 박민정을 찾아온 건 그 누구도 알지 못하니 해외에 있는 세력은 용의선상에서 배제할 수 있었다. 다만 국내는 안정된 편이다 보니 그도 조심을 기울이지 않아 보디가드를 대동시키지 않았다.“유남준, 날 여기로 잡아 오면 민정이가 다시 널 받아줄 거 같아?”연지석은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싸늘한 미소를 흘렸다.“너랑 다시 같이 잘 해볼 생각이었으면 나와 애를 낳지도 않았어.”유남준의 잘생긴 얼굴이 삽시에 굳어버렸다.“그래? 그럼 만약 네가 이 세상에 없다면?”“아이가 아빠를 잃게 되면 민정이가 널 더 미워하지 않을까?”연지석은 매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그도 같은 남자로서 또 다른 남자의 마음을 어떻게 하면 더 세게 후벼팔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의 말이 유남준의 정곡을 찔렀다. 하나 유남준은 이대로 그를 놔줄 생각이 없었다.수하들이 연지석을 향해 무참하게 발길질을 했다. 연지석은 입을 꾹 다물고 신음조차도 내지 않았다.서다희는 연지석을 보며 그가 보기와 다르게 깡이 있다는 걸 느꼈다. 남의 와이프를
이웃이 보기에는 유남준이 건넨 것이 그저 종이 쪼가리에 불과해 혹시 미친 건 아닐지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박민정이 들어오자 이웃 아주머니는 그녀를 잡아끌고 말했다."새댁 남편이 생긴 건 멀쩡한데 성격이 좀 이상한 것 같아. 아까 야채 가져다줄 때 돈이 아니라 종이 쪼가리를 주면서 우리 보고 알아서 숫자 적으라고 하더라니까."이웃 아주머니는 유남준이 미친놈 같다고는 하지 않고 애써 돌려 말했다. 박민정은 아주머니가 오해했음을 알지만 뭐라고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유남준의 성격이 이상하다는 말에 동조했다."채소 고마워요 아주머니. 다음엔 그 사람 말고 저 기다렸다가 받으세요.""그래."이웃 아주머니는 웃으며 박민정이 집에 들어가는 걸 보고서야 자리를 떴다.어쩌다 저런 아가씨가 눈이 멀고 정신까지 이상한 사람한테 시집을 간 걸까, 전에 박민정이 재벌 집 아가씨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상대도 재벌이라 뭐 정략결혼 그런 건가 하는 생각들을 하며 아주머니도 집으로 향했다.박민정은 윤우를 보러 병원에 갔다가 오는 길이었다. 그리고 산부인과에 들러 검사도 하고 모든 것이 정상이라는 말을 듣고 집에 들어오는데 마침 유남준이 주방에서 서성이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보이지도 않으면서 뭘 하겠다고 그러는지 손은 몇 번이나 데일 뻔해 보는 사람이 더 아슬아슬했다."뭐해요 지금?""밥하잖아."유남준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을 하며 설탕을 소금으로 착각한 채 쏟아 넣고 있었다."그거 설탕이에요. 소금이 아니라..."그 말에 유남준은 잠시 멈칫하고는 말했다."여기 전에는 소금이었잖아.""어제저녁 하다가 위치를 옮겼어요. 이리 줘요. 내가 할게요."눈도 보이지 않는 사람을 힘들게 하기 싫었던 박민정이 제가 하겠다고 나섰지만 유남준은 박민정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고 계속 요리를 하고 있었다."앞으로 밥은 내가 다해."어젯밤 연지석과 박민정이 주방에서 다정하게 요리하는 모습만 생각하면 치가 떨려 당장이라고 전용 요리사를 불러오고 싶었
박민정이 이번에 신림현으로 돌아온 건 은정숙의 마지막을 고향에서 함께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유감을 남기고 싶지 않아 왔던 곳에서 유남준과 유앤케이에 이렇게 발목이 잡혀버릴 줄은 미처 몰랐었다.박민정은 생각하길 그만두고 진서연에게 말했다."다음 곡은 크리스마스에 낼 거야."사실 곡은 진작에 써둔 상태였지만 아직 몇몇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어 좀 더 수정단계를 거쳐야 했다."알겠습니다."진서연을 키보드를 두드리며 말했다."그럼 지금 바로 인터넷에 카운트 다운 올릴게요.""그래."박민정이 유명해진 뒤로 그녀가 쓰는 곡들은 친한 친구에게 선물하는 게 아니면 항상 먼저 SNS에 카운트 다운을 올려뒀었다. 그리고 그걸 본 다른 소속사 아티스트들이 러브콜을 보내고 진서연은 그 사이에서 협상을 진행해 곡을 발표하는 과정을 거쳤다.저번에는 회사 재정 상황이 좋지 않아 박민정이 직접 용 사장을 찾아 곡을 주었었지만 지금은 또 재정이 다시 좋아졌으니 박민정은 회사의 원래 지침대로 하기로 했다.박민정은 제시한 액수에 따라 곡을 주는 게 아니라 이 노래를 부를 사람과 자신이 쓴 곡의 케미를 제일 중시했기에 돈이 많다고 무조건 박민정의 곡을 살 수 있는 건 아니었다.박민정의 신곡이 크리스마스에 나온다는 소식은 발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실시간 검색에 10위에 올랐다.해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는 이슈였다.이지원도 이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매니저에게 연락해 곡을 받아내라고 했지만 사실 이지원 말고도 곡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았고 또 그들은 돈도 권력도 더 막강한 사람이기에 곡을 받아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그때 모스크바에서 발레공연을 마친 한 여자가 백조마냥 사뿐히 계단을 내려와 딱 봐도 부자처럼 보이는 한 남자 앞에 섰다."아빠, 뉴스 봤어요? 나 그분 노래 갖고 싶어요."여자의 얼굴은 박민정과 많이 닮아 보였다.기업가처럼 보이는 남자는 제일 사랑하는 딸의 부탁에 웃으며 대답했다."그래, 우리 소현이가 갖고 싶은 건 아빠가
영상을 처음 본 순간부터 박민정은 무대 위에 여자가 꼭 제 어머니 한수민 같다고 여겼다. 어릴 때 한수민을 무척이나 따르던 박민정이 그 무대 영상을 몰래 몇 번이나 돌려봤었다. 한수민도 윤소현이라는 여자처럼 발레리나 출신이었다. "보스님, 보셨어요? 어때요?"박민정은 진서연의 목소리에 그저 닮은 사람이겠지 하며 대답을 했다."무대는 좋네. 근데 난 좀 더 기다려보고 싶어.""알겠어요, 그럼 일단 연락처만 남겨둘게요.""응."전화를 끊은 박민정은 다시 그 영상을 볼 수가 없었다. 그 영상만 보면 어릴 때 한수민을 따라 춤을 배우고 싶다 했을 때 한수민의 조롱 섞인 표정이 떠올랐다."너 같은 귀머거리가 무슨 춤을 배워? 박자는 들을 수 있어? 맞출 수나 있겠니? 나 쪽팔리게 하지 말고 저리 가."박민정에 그에 굴하지 않고 무대에 몇 번이나 올랐고 상도 많이 받았었지만 한수민은 한 번도 칭찬이란 걸 해주지 않았었다."그렇게 열심히 하면 뭐해? 세상일이 노력한다고 다 성공하는 건 아니야. 알긴 하니?"한수민은 경멸 어린 눈길로 박민정을 바라보며 말했다."너 같은 장애인은 장애인 다운 일을 하란 말이야. 헛된 꿈 꾸지 말고. 너는 춤을 출 자격이 없어."한수민의 반복된 조롱에도 박민정은 춤을 포기하지 않았었는데 어느 한번 국제 콩쿠르에서 누가 박민정의 보청기를 가져가 버리는 탓에 무대에 오른 박민정의 귀에는 소음밖에 들리지 않았고 박자를 하나도 맞추지 못해 결국 예선 탈락으로 떨어졌다.그날 집으로 돌아간 한수민은 박민정이 보는 앞에서 발레복이며 신발이며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통에 던지며 말했다."다시는 춤 같은 거 추지 마. 네가 또 춤을 추는 게 내 눈에 보이면 다리를 분질러 버릴 거야."옛날 일들이 떠오른 박민정은 몸을 웅크리고 눈물을 흘렸다.어린 나이에 받았던 수많은 상처들은 아마 평생동안 치유받지 못할 것 같았다.작업실에서 한수민의 한번 또 한 번의 조롱을 견뎌냈던 지난날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훔치던 박민정은 누군가 다가오는 것을 눈치
가까이 앉은 탓에 유남준은 풍겨오는 박민정의 체취를 맡으며 가슴이 간질거림을 느꼈다."응."유남준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요즘 들어 박민정과의 일들을 꿈으로 자주 꿨는데 그 속에서는 둘의 진한 스킨십도 등장했기에 지금 기분이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지금 나 못 믿는 거야?"유남준의 반응을 보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아 박민정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게 아니고 눈도 안 보이는데 피아노도 치고 악보도 수정해주고 참 대단한 것 같아서요."머뭇거리며 어딘가 슬프게 들리는 말투에서 유남준은 아까 박민정이 울던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난 그래야만 했으니까."박민정은 고개를 들어 유남준을 바라보았다."요즘 꿈을 자주 꿔. 꿈속에서 나는 유씨 집안에서 온갖 사교육이란 사교육은 다 받았어. 그리고 매일 유앤케이 후계자로서의 덕목을 갖춰야 한다고 요구받아 왔고.""그리고 지금은 내가 그렇게 훌륭하지 않으면 어떻게 너랑 뱃속의 우리 아기를 지키겠어?"유남준의 말을 듣고 있던 박민정이 뭐라 해야 할지 몰라 대답을 망설이자 유남준이 박민정을 품에 안으며 말했다."민정아, 우리 다시 시작하자. 나 너 사랑해. 많이 사랑해."기억을 잃지 않았다면 유남준은 평생 하지 않을 말이었다.어릴 때부터 모든 이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온 유남준에게 제일 부족하지 않은 게 사랑이었고 그래서 누군가를 굳이 좋아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받게 될 사랑이니까. 그리고 좋아한다고 해도 그 성격상 그걸 말할 사람은 아니었다.그런 유남준에게서 지금 박민정이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박민정은 깜짝 놀란 나머지 유남준을 밀어내지도 않고 있자 유남준은 그녀를 더 세게 끌어안으며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추려 했다."엄마, 남준 아저씨..."그때 앳된 목소리가 들려오자 정신을 차린 박민정이 유남준을 밀어내고 일어서며 말했다. "예찬이 왔어?"가방을 메고 올라가던 박예찬은 앞뒤로 나란히 내려오는 엄마와 유남준을 보며 어딘가 낯설었지만
‘와빙구리’란 자기 몸을 얼음판 위에 뉘여 녹힌 후 잉어를 잡는다는 말이다. 박예찬은 지금 유남준을 일부러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은정숙도 그걸 눈치 채고 막 거절하려는데 유남준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응, 오늘 밤 물고기 잡으러 가려고.”박민정은 의아했다. 유남준은 왜 갑자기 물고기를 잡으려고 하는 걸까?그러나 은정숙은 이렇게 추운 겨울날에 강물이 얼어서 물고기를 잡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이렇게 큰소리를 치다니. 역시 이 세상에 돈으로 해결 못할 건 없다.그날 밤 10시쯤, 누군가 금방 잡은 싱싱한 물고기를 보내왔다. 바로 은정숙이 좋아하는 민물고기였다.유남준이 그 물고기를 박민정에게 건네자 그녀는 바로 가져가서 국을 끓여 어르신께 드렸다. 방금 잡은 물고기라 유난히 싱싱했다.남은 부분은 남겨서 이제 다른 이웃들에게 나눠줄 생각이었다.그러나 박민정은 유남준이 어떻게 물고기를 잡았는지 딱히 궁금하지 않았다. 돈이 많으니 당연히 도와주려는 사람도 많았을 거라 생각했다.그러나 은정숙은 국을 마시려 하지 않았다.“이게 유 대표님이 잡은 거야?”“정확히 말하면 돈 주고 산 거죠.”박민정이 말했다.그러자 은정숙은 고개를 저었다.“대표님에게 빚지고 싶지 않아.”박민정은 그릇을 옆으로 치우고 손을 뻗어 은정숙을 껴안았다.“그런 생각하시지 마세요. 남준 씨가 아줌마 집에서 지내면서 물고기쯤이야 준비해드릴 수도 있죠.”박민정은 은정숙이 자신이 작은 일로 감동하고 유남준에게 미안해할까 봐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다.그녀의 설득에 은정숙은 드디어 국을 먹으려고 했다.“역시 우리 쪽 민물고기가 비린 냄새도 안 나.”은정숙은 이 순간 처음 느껴보는 행복감이 마음속으로 밀려왔다.예전에 그녀는 자신이 나이 들었을 때 이렇게 딸과 손자가 옆에 있어줄 줄은 몰랐다.저녁이 되어 은정숙은 또 국을 마시고는 다시 누워서 잤다.박민정은 나날이 여위어 가는 은정숙의 가냘픈 몸을 보고 마음이 아파 살며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사실 박민정은 은정숙이 떠
차는 천천히 시즌 호텔 앞에서 멈춰 섰다.조하랑은 차 안에서 호텔 안을 들여다봤는데 마음이 복잡했다.그녀는 억지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박예찬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박민정도 뒤따라 내려왔다.박예찬은 시계를 바라보고 시간이 됐는데 왜 아직 아무도 안 오는지 의아해했다. 돈을 받고 싶지 않은 건가? 이렇게 책임감이 없어도 되는 건지 싶었다.만약 리뷰를 남길 수 있다면 무조건 낮은 점수를 매겼을 것이다.조하랑은 원래도 박예찬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저 어린 아이일 뿐인데 어떻게 강연우보다 더 멋진 파트너를 찾아줄 수 있겠는가?“민정아, 나 너무 긴장돼.”조하랑은 고개를 돌려 박민정을 바라보았다.박민정은 앞으로 다가와서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겁내지 마. 내가 여기 있잖아.”수년 동안 조하랑은 강연우 때문에 다른 남자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녀에게 호감을 갖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모두 거절했다.한국으로 돌아온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강연우를 찾아가는 것이었는데, 그를 찾았을 때는 이미 여자 친구가 있는 상태였다.이제 두 사람은 결혼을 앞두고 있고 강연우는 조하랑에게 청첩장까지 보냈다. 심장이 찢기는 느낌이었다.박민정의 위로를 받은 조하랑은 마침내 한 걸음 내딛고 호텔로 들어섰다.연회가 열리는 로비 밖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신랑 신부의 웨딩 사진을 보았다. 사진 속 신부는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강연우의 곁에 꼭 붙어 서있었다.박민정도 신부의 외모를 보았는데 놀랍게도 조하랑과 비슷했다.“신부가 너무 예쁘네.”조하랑은 중얼거렸다.박민정은 더욱 안타깝게 생각했다.“우리 하랑이가 더 예쁜데.”박예찬도 조하랑의 손을 잡았다.“맞아요, 엄마가 더 예뻐요.”‘엄마’라는 말에 정신을 차린 조하랑은 자신을 아끼는 두 사람의 눈을 바라보며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그래, 내가 더 예쁘지. 어서 들어가자.”조하랑은 한 손으로 박예찬을, 다른 한 손으로는 박민정의 손을 잡았다. 옆에 남자가 없어도 괜찮았다.세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