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352화

작가: 윤지
유남준은 다급히 당근을 밥과 함께 입에 떠넣었다.

옆에 앉은 예찬이는 그 당근이 제 입안에 들어간 것도 아닌데 보고는 몸서리를 쳤다.

저렇게 맛없는 당근을 한꺼번에 다 먹어 치우다니. 쓰레기 아빠에 대해 감탄이 절로 나왔다.

당근을 깨끗이 비운 유남준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와이프가 해주는 밥은 그게 뭐든 다 맛있어요.”

박민정은 천천히 시선을 거둬들였다.

와이프라는 호칭에 연지석의 기분은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젓가락으로 유남준의 밥그릇에 반찬을 또 얹어주며 그가 말했다.

“이 당근 볶음은 내가 한 거예요. 그렇지, 민정아?”

“아... 응, 그렇지.”

박민정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그러나 한편 유남준이 골탕먹는 듯한 처지에 놓이자 왠지 우습기도 하고 속이 약간 후련한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항상 고고한 부잣집 도련님한테서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었다.

당근을 집어 또 한 번 그의 밥그릇에 올려놨다.

“맛있으면 많이 먹어요.”

유남준의 밥그릇 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당근을 보며 예찬이는 동공 지진을 일으켰다.

갑자기 유남준이 너무 불쌍해 보였다.

“아저씨, 당근 좋아하면 제 것도 드릴게요.”

천진난만한 얼굴의 예찬이는 마음속에 작은 악마가 살고 있었다.

‘쓰레기 아빠, 날 탓하지 마요. 사나이는 독하고 모진 맛이 있어야 하는 거래요.’

자기 밥그릇 안에 있는 당근을 유남준한테 넘겨놓으려 하는 그때, 유남준이 귀신같이 알고 시선을 그아이한테로 돌렸다.

“예찬아, 오늘 유치원에서 뭘 배웠어?”

예찬이의 손에 쥐고 있는 젓가락이 당근을 잔뜩 집은 채 유남준한테로 향하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때 유남준은 계속하여 말을 이었다.

“너도 당근 좋아하지? 내 것 다 너 줄까?”

예찬이가 즉시 거절 의사를 표하려는데 유남준이 또 입을 열었다.

“민정아. 너 모르지, 오늘 예찬이가...”

“아, 네! 당근 다 제게 주세요. 저 당근 좋아해요.”

예찬이는 유남준의 밥그릇에 담긴 당근을 얼른 다 집어와 자기 밥그릇에 담았다.

박민정과 은정숙은 경악한
잠긴 챕터
GoodNovel에서 계속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관련 챕터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353화

    다음 날 아침, 죽을 끓이려던 박민정은 어제 음식하고 남은 당근 몇 개가 하나도 남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오랫동안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한 그녀는 다른 재료로 대체할 수밖에 없었다.유남준은 아침 댓바람부터 병원에 간다고 나가고 없었다....어두컴컴한 지하실 내에서, 연지석은 천천히 눈을 떴다.그의 팔다리는 의자에 묶여 있고 이마에는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온몸에 나 있는 상처는 소금물에 적셔진 것처럼 이루 말할 수 없이 아팠다.맞은편에서 갑자기 소리가 들려왔다.“대표님, 저 자식 꽤 솜씨가 있던 데요. 열다섯 명 불렀는데 모두 다쳤어요. 저것도겨우겨우 묶어둔 거예요.”서다희가 유남준한테 말했다.그 소리를 따라 연지석이 고개를 들어보니 유남준이 나른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자신을 마주하고 있었다. 기척이 들리자 서다희는 바로 유남준한테 알려줬다.“저놈 깼어요.”연지석은 일이 생겼을 때부터 유남준의 소행이겠거니 예상하였다. 그가 박민정을 찾아온 건 그 누구도 알지 못하니 해외에 있는 세력은 용의선상에서 배제할 수 있었다. 다만 국내는 안정된 편이다 보니 그도 조심을 기울이지 않아 보디가드를 대동시키지 않았다.“유남준, 날 여기로 잡아 오면 민정이가 다시 널 받아줄 거 같아?”연지석은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싸늘한 미소를 흘렸다.“너랑 다시 같이 잘 해볼 생각이었으면 나와 애를 낳지도 않았어.”유남준의 잘생긴 얼굴이 삽시에 굳어버렸다.“그래? 그럼 만약 네가 이 세상에 없다면?”“아이가 아빠를 잃게 되면 민정이가 널 더 미워하지 않을까?”연지석은 매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그도 같은 남자로서 또 다른 남자의 마음을 어떻게 하면 더 세게 후벼팔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의 말이 유남준의 정곡을 찔렀다. 하나 유남준은 이대로 그를 놔줄 생각이 없었다.수하들이 연지석을 향해 무참하게 발길질을 했다. 연지석은 입을 꾹 다물고 신음조차도 내지 않았다.서다희는 연지석을 보며 그가 보기와 다르게 깡이 있다는 걸 느꼈다. 남의 와이프를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354화

    이웃이 보기에는 유남준이 건넨 것이 그저 종이 쪼가리에 불과해 혹시 미친 건 아닐지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박민정이 들어오자 이웃 아주머니는 그녀를 잡아끌고 말했다."새댁 남편이 생긴 건 멀쩡한데 성격이 좀 이상한 것 같아. 아까 야채 가져다줄 때 돈이 아니라 종이 쪼가리를 주면서 우리 보고 알아서 숫자 적으라고 하더라니까."이웃 아주머니는 유남준이 미친놈 같다고는 하지 않고 애써 돌려 말했다. 박민정은 아주머니가 오해했음을 알지만 뭐라고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유남준의 성격이 이상하다는 말에 동조했다."채소 고마워요 아주머니. 다음엔 그 사람 말고 저 기다렸다가 받으세요.""그래."이웃 아주머니는 웃으며 박민정이 집에 들어가는 걸 보고서야 자리를 떴다.어쩌다 저런 아가씨가 눈이 멀고 정신까지 이상한 사람한테 시집을 간 걸까, 전에 박민정이 재벌 집 아가씨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상대도 재벌이라 뭐 정략결혼 그런 건가 하는 생각들을 하며 아주머니도 집으로 향했다.박민정은 윤우를 보러 병원에 갔다가 오는 길이었다. 그리고 산부인과에 들러 검사도 하고 모든 것이 정상이라는 말을 듣고 집에 들어오는데 마침 유남준이 주방에서 서성이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보이지도 않으면서 뭘 하겠다고 그러는지 손은 몇 번이나 데일 뻔해 보는 사람이 더 아슬아슬했다."뭐해요 지금?""밥하잖아."유남준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을 하며 설탕을 소금으로 착각한 채 쏟아 넣고 있었다."그거 설탕이에요. 소금이 아니라..."그 말에 유남준은 잠시 멈칫하고는 말했다."여기 전에는 소금이었잖아.""어제저녁 하다가 위치를 옮겼어요. 이리 줘요. 내가 할게요."눈도 보이지 않는 사람을 힘들게 하기 싫었던 박민정이 제가 하겠다고 나섰지만 유남준은 박민정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고 계속 요리를 하고 있었다."앞으로 밥은 내가 다해."어젯밤 연지석과 박민정이 주방에서 다정하게 요리하는 모습만 생각하면 치가 떨려 당장이라고 전용 요리사를 불러오고 싶었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355화

    박민정이 이번에 신림현으로 돌아온 건 은정숙의 마지막을 고향에서 함께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유감을 남기고 싶지 않아 왔던 곳에서 유남준과 유앤케이에 이렇게 발목이 잡혀버릴 줄은 미처 몰랐었다.박민정은 생각하길 그만두고 진서연에게 말했다."다음 곡은 크리스마스에 낼 거야."사실 곡은 진작에 써둔 상태였지만 아직 몇몇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어 좀 더 수정단계를 거쳐야 했다."알겠습니다."진서연을 키보드를 두드리며 말했다."그럼 지금 바로 인터넷에 카운트 다운 올릴게요.""그래."박민정이 유명해진 뒤로 그녀가 쓰는 곡들은 친한 친구에게 선물하는 게 아니면 항상 먼저 SNS에 카운트 다운을 올려뒀었다. 그리고 그걸 본 다른 소속사 아티스트들이 러브콜을 보내고 진서연은 그 사이에서 협상을 진행해 곡을 발표하는 과정을 거쳤다.저번에는 회사 재정 상황이 좋지 않아 박민정이 직접 용 사장을 찾아 곡을 주었었지만 지금은 또 재정이 다시 좋아졌으니 박민정은 회사의 원래 지침대로 하기로 했다.박민정은 제시한 액수에 따라 곡을 주는 게 아니라 이 노래를 부를 사람과 자신이 쓴 곡의 케미를 제일 중시했기에 돈이 많다고 무조건 박민정의 곡을 살 수 있는 건 아니었다.박민정의 신곡이 크리스마스에 나온다는 소식은 발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실시간 검색에 10위에 올랐다.해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는 이슈였다.이지원도 이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매니저에게 연락해 곡을 받아내라고 했지만 사실 이지원 말고도 곡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았고 또 그들은 돈도 권력도 더 막강한 사람이기에 곡을 받아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그때 모스크바에서 발레공연을 마친 한 여자가 백조마냥 사뿐히 계단을 내려와 딱 봐도 부자처럼 보이는 한 남자 앞에 섰다."아빠, 뉴스 봤어요? 나 그분 노래 갖고 싶어요."여자의 얼굴은 박민정과 많이 닮아 보였다.기업가처럼 보이는 남자는 제일 사랑하는 딸의 부탁에 웃으며 대답했다."그래, 우리 소현이가 갖고 싶은 건 아빠가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356화

    영상을 처음 본 순간부터 박민정은 무대 위에 여자가 꼭 제 어머니 한수민 같다고 여겼다. 어릴 때 한수민을 무척이나 따르던 박민정이 그 무대 영상을 몰래 몇 번이나 돌려봤었다. 한수민도 윤소현이라는 여자처럼 발레리나 출신이었다. "보스님, 보셨어요? 어때요?"박민정은 진서연의 목소리에 그저 닮은 사람이겠지 하며 대답을 했다."무대는 좋네. 근데 난 좀 더 기다려보고 싶어.""알겠어요, 그럼 일단 연락처만 남겨둘게요.""응."전화를 끊은 박민정은 다시 그 영상을 볼 수가 없었다. 그 영상만 보면 어릴 때 한수민을 따라 춤을 배우고 싶다 했을 때 한수민의 조롱 섞인 표정이 떠올랐다."너 같은 귀머거리가 무슨 춤을 배워? 박자는 들을 수 있어? 맞출 수나 있겠니? 나 쪽팔리게 하지 말고 저리 가."박민정에 그에 굴하지 않고 무대에 몇 번이나 올랐고 상도 많이 받았었지만 한수민은 한 번도 칭찬이란 걸 해주지 않았었다."그렇게 열심히 하면 뭐해? 세상일이 노력한다고 다 성공하는 건 아니야. 알긴 하니?"한수민은 경멸 어린 눈길로 박민정을 바라보며 말했다."너 같은 장애인은 장애인 다운 일을 하란 말이야. 헛된 꿈 꾸지 말고. 너는 춤을 출 자격이 없어."한수민의 반복된 조롱에도 박민정은 춤을 포기하지 않았었는데 어느 한번 국제 콩쿠르에서 누가 박민정의 보청기를 가져가 버리는 탓에 무대에 오른 박민정의 귀에는 소음밖에 들리지 않았고 박자를 하나도 맞추지 못해 결국 예선 탈락으로 떨어졌다.그날 집으로 돌아간 한수민은 박민정이 보는 앞에서 발레복이며 신발이며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통에 던지며 말했다."다시는 춤 같은 거 추지 마. 네가 또 춤을 추는 게 내 눈에 보이면 다리를 분질러 버릴 거야."옛날 일들이 떠오른 박민정은 몸을 웅크리고 눈물을 흘렸다.어린 나이에 받았던 수많은 상처들은 아마 평생동안 치유받지 못할 것 같았다.작업실에서 한수민의 한번 또 한 번의 조롱을 견뎌냈던 지난날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훔치던 박민정은 누군가 다가오는 것을 눈치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357화

    가까이 앉은 탓에 유남준은 풍겨오는 박민정의 체취를 맡으며 가슴이 간질거림을 느꼈다."응."유남준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요즘 들어 박민정과의 일들을 꿈으로 자주 꿨는데 그 속에서는 둘의 진한 스킨십도 등장했기에 지금 기분이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지금 나 못 믿는 거야?"유남준의 반응을 보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아 박민정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게 아니고 눈도 안 보이는데 피아노도 치고 악보도 수정해주고 참 대단한 것 같아서요."머뭇거리며 어딘가 슬프게 들리는 말투에서 유남준은 아까 박민정이 울던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난 그래야만 했으니까."박민정은 고개를 들어 유남준을 바라보았다."요즘 꿈을 자주 꿔. 꿈속에서 나는 유씨 집안에서 온갖 사교육이란 사교육은 다 받았어. 그리고 매일 유앤케이 후계자로서의 덕목을 갖춰야 한다고 요구받아 왔고.""그리고 지금은 내가 그렇게 훌륭하지 않으면 어떻게 너랑 뱃속의 우리 아기를 지키겠어?"유남준의 말을 듣고 있던 박민정이 뭐라 해야 할지 몰라 대답을 망설이자 유남준이 박민정을 품에 안으며 말했다."민정아, 우리 다시 시작하자. 나 너 사랑해. 많이 사랑해."기억을 잃지 않았다면 유남준은 평생 하지 않을 말이었다.어릴 때부터 모든 이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온 유남준에게 제일 부족하지 않은 게 사랑이었고 그래서 누군가를 굳이 좋아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받게 될 사랑이니까. 그리고 좋아한다고 해도 그 성격상 그걸 말할 사람은 아니었다.그런 유남준에게서 지금 박민정이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박민정은 깜짝 놀란 나머지 유남준을 밀어내지도 않고 있자 유남준은 그녀를 더 세게 끌어안으며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추려 했다."엄마, 남준 아저씨..."그때 앳된 목소리가 들려오자 정신을 차린 박민정이 유남준을 밀어내고 일어서며 말했다. "예찬이 왔어?"가방을 메고 올라가던 박예찬은 앞뒤로 나란히 내려오는 엄마와 유남준을 보며 어딘가 낯설었지만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358화

    ‘와빙구리’란 자기 몸을 얼음판 위에 뉘여 녹힌 후 잉어를 잡는다는 말이다. 박예찬은 지금 유남준을 일부러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은정숙도 그걸 눈치 채고 막 거절하려는데 유남준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응, 오늘 밤 물고기 잡으러 가려고.”박민정은 의아했다. 유남준은 왜 갑자기 물고기를 잡으려고 하는 걸까?그러나 은정숙은 이렇게 추운 겨울날에 강물이 얼어서 물고기를 잡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이렇게 큰소리를 치다니. 역시 이 세상에 돈으로 해결 못할 건 없다.그날 밤 10시쯤, 누군가 금방 잡은 싱싱한 물고기를 보내왔다. 바로 은정숙이 좋아하는 민물고기였다.유남준이 그 물고기를 박민정에게 건네자 그녀는 바로 가져가서 국을 끓여 어르신께 드렸다. 방금 잡은 물고기라 유난히 싱싱했다.남은 부분은 남겨서 이제 다른 이웃들에게 나눠줄 생각이었다.그러나 박민정은 유남준이 어떻게 물고기를 잡았는지 딱히 궁금하지 않았다. 돈이 많으니 당연히 도와주려는 사람도 많았을 거라 생각했다.그러나 은정숙은 국을 마시려 하지 않았다.“이게 유 대표님이 잡은 거야?”“정확히 말하면 돈 주고 산 거죠.”박민정이 말했다.그러자 은정숙은 고개를 저었다.“대표님에게 빚지고 싶지 않아.”박민정은 그릇을 옆으로 치우고 손을 뻗어 은정숙을 껴안았다.“그런 생각하시지 마세요. 남준 씨가 아줌마 집에서 지내면서 물고기쯤이야 준비해드릴 수도 있죠.”박민정은 은정숙이 자신이 작은 일로 감동하고 유남준에게 미안해할까 봐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다.그녀의 설득에 은정숙은 드디어 국을 먹으려고 했다.“역시 우리 쪽 민물고기가 비린 냄새도 안 나.”은정숙은 이 순간 처음 느껴보는 행복감이 마음속으로 밀려왔다.예전에 그녀는 자신이 나이 들었을 때 이렇게 딸과 손자가 옆에 있어줄 줄은 몰랐다.저녁이 되어 은정숙은 또 국을 마시고는 다시 누워서 잤다.박민정은 나날이 여위어 가는 은정숙의 가냘픈 몸을 보고 마음이 아파 살며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사실 박민정은 은정숙이 떠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359화

    차는 천천히 시즌 호텔 앞에서 멈춰 섰다.조하랑은 차 안에서 호텔 안을 들여다봤는데 마음이 복잡했다.그녀는 억지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박예찬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박민정도 뒤따라 내려왔다.박예찬은 시계를 바라보고 시간이 됐는데 왜 아직 아무도 안 오는지 의아해했다. 돈을 받고 싶지 않은 건가? 이렇게 책임감이 없어도 되는 건지 싶었다.만약 리뷰를 남길 수 있다면 무조건 낮은 점수를 매겼을 것이다.조하랑은 원래도 박예찬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저 어린 아이일 뿐인데 어떻게 강연우보다 더 멋진 파트너를 찾아줄 수 있겠는가?“민정아, 나 너무 긴장돼.”조하랑은 고개를 돌려 박민정을 바라보았다.박민정은 앞으로 다가와서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겁내지 마. 내가 여기 있잖아.”수년 동안 조하랑은 강연우 때문에 다른 남자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녀에게 호감을 갖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모두 거절했다.한국으로 돌아온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강연우를 찾아가는 것이었는데, 그를 찾았을 때는 이미 여자 친구가 있는 상태였다.이제 두 사람은 결혼을 앞두고 있고 강연우는 조하랑에게 청첩장까지 보냈다. 심장이 찢기는 느낌이었다.박민정의 위로를 받은 조하랑은 마침내 한 걸음 내딛고 호텔로 들어섰다.연회가 열리는 로비 밖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신랑 신부의 웨딩 사진을 보았다. 사진 속 신부는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강연우의 곁에 꼭 붙어 서있었다.박민정도 신부의 외모를 보았는데 놀랍게도 조하랑과 비슷했다.“신부가 너무 예쁘네.”조하랑은 중얼거렸다.박민정은 더욱 안타깝게 생각했다.“우리 하랑이가 더 예쁜데.”박예찬도 조하랑의 손을 잡았다.“맞아요, 엄마가 더 예뻐요.”‘엄마’라는 말에 정신을 차린 조하랑은 자신을 아끼는 두 사람의 눈을 바라보며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그래, 내가 더 예쁘지. 어서 들어가자.”조하랑은 한 손으로 박예찬을, 다른 한 손으로는 박민정의 손을 잡았다. 옆에 남자가 없어도 괜찮았다.세 사람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360화

    강연우의 어머니는 조하랑이 대표님의 딸이니 자신의 아들이 계속 그녀와 연락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은 마음속의 생각을 확실히 하고 강연우 앞에서 전혀 그들 모자의 체면을 봐주지 않았다.“아, 그렇군요. 아줌마는 정말 대단한 어머니네요. 아들이 결혼하는데 애인을 찾아주시고 말이에요. 며느리가 될 분은 이 사실을 알고 있어요?”박민정은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덧붙였다.“우리 하랑이는 아드님에게 마음이 남아 있어서 결혼식에 참석하러 온 게 아니라 아줌마네 가족이 다른 집의 착한 딸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걱정돼서 왔어요.”그렇게 말한 후 박민정은 강연우를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강 변호사,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죠. 어머님이 저런 말씀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시는데 당신이 변호사라는 호칭을 들을 자격이 있나요?” 박민정은 여기 오기 전에 강연우의 부모님이 이런 사람일 줄은 몰랐고 그저 강연우가 정 없는 사람이란 것만 알고 있었다.강연우는 박민정의 말을 듣고 자신의 어머니에게 말했다.“엄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전 평생 해인이랑만 함께할 거고, 해인이만 사랑할 거예요.”박민정의 뒤에 서 있던 조하랑은 그 말을 듣고 갑자기 예전의 자신이 그저 그가 놀다 버린 장난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한때 강연우와 함께 허름한 호텔에서 보냈던 시간이 떠올랐다. 그가 자신을 껴안으며 말했던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나 강연우는 이번 생에 오직 조하랑과 함께할 것이며, 그녀만을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다.”조하랑은 감정을 억누르며 그에게 따지지 않으려고 애썼다.강연우의 어머니는 아들의 말을 듣고는 박민정을 매섭게 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내 아들이 이렇게 뛰어난데 여자 몇 명 만나는 게 뭐가 문제야? 요즘 어떤 회사 대표가 여자 한 명밖에 없어? 어떤 사람은 포기하지 못하겠지. 내 아들을 떠나면 누가 저 놀다 버린 년을 만나려 고 하겠어?”강연우의 어머니는 조하랑과 강연우가 오래 전에 이미 호텔도 다니며 함

최신 챕터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626화

    민박집 안, 모두가 아침 식사를 하며 여전히 아찔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자칫하면 모두 목숨을 잃을 뻔했으니.유남준은 대충 식사를 마친 뒤 전화를 받으러 밖으로 나갔다.“누가 한 짓인지 밝혀냈어?”그가 물었다.전화기 너머, 서다희는 무릎 꿇고 있는 무리들을 바라보며 대답했다.“밤에 돌을 캐러 갔을 뿐, 사람을 해치려던 건 아니라고 잡아떼고 있습니다.”한밤중에 돌을 캐러 갔다고?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하지만 이들이 진실을 말하지 않으니 더 캐묻기도 애매했다.“대표님, 전 개인적으로 유석진 쪽이 의심됩니다.” 서다희가 덧붙였다.굳이 조사하지 않아도 유남준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는 표정은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그래. 이놈들은 전부 경찰서로 넘겨.”“알겠습니다.”전화를 끊고 돌아서던 유남준의 시야에 최현아와 그녀의 아들이 탄 차가 들어왔다.최현아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깥에 서 있는 키가 훤칠하고 냉정한 인상의 남자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남준 씨.”그녀는 조심스레 불렀는데 심장이 쿵쾅거렸다.“남준 씨, 왜 혼자 밖에 있어요? 민정이랑 애들은요?”“안에서 밥 먹고 있습니다.”유남준은 냉담하게 답했다.최현아는 어색한 공기를 지우려는 듯 운전기사에게 자신이 호텔에서 포장해 온 음식을 가져오게 했다.“아직 제대로 못 먹었을 것 같아서요. 여기 좀 싸 왔어요.”“괜찮습니다. 이런 건 형수님께서 드시죠.”유남준은 말만 남기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고 최현아는 묘한 허전함을 느꼈다.이때 곁에 있던 아들, 유지훈이 못마땅한 듯 물었다.“엄마, 제가 가져온 음식을 왜 삼촌한테 주려 해요?”최현아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좋은 건 나눠야 하잖니.”하지만 유지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집에 있을 때 그는 엄마가 아빠에게 이렇게 다정하게 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아빠가 밥을 챙겨 먹었는지도 신경 쓰지 않았는데.“엄마, 전 엄마가 이러는 거 싫어요. 앞으로 예찬이 아빠한테 이렇게 잘해주지 마세요. 전 삼촌이 싫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625화

    유남준이 나와보니 텐트와 얼마 멀지 않은 곳에 큰 바위가 굴러떨어져 있었고 산사태도 발생한 흔적이 있었다.“위험할뻔했네.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고 사전에 점검하지 않았나?”분명 일부러 이런 짓을 벌인 게 아니라면 절대로 발생할 수 없는 일이다.박민정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살짝 겁을 먹었다.“세상에. 만약 어제 비가 조금만 더 세게 내렸다면 우리 텐트도 분명 물에 잠기거나 바위에 깔렸을 것 같네요.”생각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는데 유남준은 겁에 질린 그녀를 보고 재빨리 다가와 안심시켰다.“우린 하느님이 도와줄 테니까 그런 일은 없을 거야. 걱정하지 마.”박민정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네.”학교 선생님들도 눈앞의 상황에 매우 놀랐다.지금은 비가 그쳤고 아무런 사고도 없었기에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이곳은 분명 최현아가 사전에 사람을 보내서 확인 후에 결정했던 곳인데 어떻게 이렇게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까?만약 이 거대한 바위들과 흙들이 비에 씻겨 산 아래로 굴러떨어졌다면 적어도 몇 집은 이미 큰 부상을 당했을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선생님들도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르는 게 무리인 것 같아 모두가 편안하게 휴식할 수 있도록 오늘 저녁에는 민박집을 예약했다.“너무 좋아요. 이곳에서 자는 것보다 민박집에서 자는 게 훨씬 안전할 것 같네요.”학부모들도 선생님의 아이디어에 저마다 찬성하면서 하나둘씩 짐을 싸기 시작했다.이 시각, 최현아는 진작에 산에서 내려와 혹시나 산사태로 인한 인명피해 뉴스가 뜬 게 없는지 계속 핸드폰으로 확인했다.그러나 아침 9시가 넘었는데도 감감무소식이었다.이때, 유지훈도 진작에 잠에서 깼다가 문득 최현아에게 물었다.“엄마, 저희는 왜 계속 산에 있지 않고 내려왔나요? 저는 배도 안 아픈데.”그의 말에 최현아는 순간 짜증이 밀려왔다.“아무 말도 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선생님께서 오늘에는 더 높은 산에 올라갈 거라고 했단 말이에요. 저도 산에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624화

    저녁이 되더니 약간의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점차 빗방울이 굵어졌다.원래 유남준은 오늘 이불을 덮고 자려고 했으나 비가 오니 어쩔 수 없이 다시 침낭에서 자야 했다.박민정은 밖에서 요란하게 들리는 천둥소리가 무서워 이불 안으로 꼭꼭 숨었다.옆에 자기 아들이 누워있어 티는 내지 못하고 있는데 그런 박민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박예찬이 손을 뻗어 그녀의 침낭을 가볍게 두드리며 물었다.“엄마, 나랑 같이 자자.”“응? 왜?”박민정은 갑작스러운 그의 제안에 어리둥절해서 되물었다.“아니면 나랑 같이 잘까? 나 천둥소리가 너무 무서운데.”이때, 유남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박예찬은 원래 자신이 하려던 말을 그에게 뺏긴 게 너무 괘씸해서 그를 도끼눈으로 째려봤다.박민정은 그의 말을 듣고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천둥소리를 무서워한다고요?”“응. 좀 무섭네?”유남준은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는데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박민정은 사람마다 약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유남준같이 돈이나 권력이 있는 사람도 분명 약점이나 두려워하는 게 있을 텐데 저 사람한테는 그게 천둥소리인가 싶었다.“괜찮아요. 잠들면 금방 안 들릴 테니까.”박민정은 아까까지 너무 무서웠지만 같이 얘기를 나누다 보니 좀 괜찮아진 것 같았다.그러나 유남준은 약간 진정된 그녀를 보고는 자신이 세워둔 작전이 물거품으로 돌아간 것 같아 의기소침해졌다가 용기를 내서 다시 물었다.“이쪽으로 좀 오지 않을래?”그의 말에 박민정은 침낭 안에서 몸을 이리저리 구르다가 마침 박예찬의 침낭에 딱 붙게 되었다. 박예찬이 흐뭇해하던 찰나에 또다시 유남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예찬이는 천둥소리가 안 무섭지?”박예찬은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빠르게 답했다.“당연하죠. 남자로서 어떻게 천둥소리 따위를 무서워하겠어요? 제가 보호해 줄 테니까 안심하세요.”“그럼 네가 침낭 끝에 자면서 우리를 보호해 줄래?”유남준의 말에 박예찬은 그제야 그의 꾀에 넘어갔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박민정의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623화

    박민정은 뜬금없이 자기 앞으로 내미는 음식을 보고 어리둥절해서 물었다.“뭐예요?”“형수가 담아줬는데 안에 고기도 있더라고. 아까 잘 못 먹던데 이거라도 먹어.”최현아는 마침 그의 뒤를 따라왔다가 마지막 한마디를 똑똑히 듣게 되었는데 순간 뜨겁게 불타올랐던 마음에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차갑게 식었다.유남준이 자기한테 마음이 있어서 호의를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는데 자기 마음을 이용해서 박민정에게 애정 공세 할 줄은 몰랐다.“남준 씨는 참 다정한 남편이네요. 제가 가져다준 음식을 그대로 민정 씨에게 줄 만큼.”말속에 가시가 돋혀 있었다.솔직히 저녁 식사가 부실했던 건 사실이었고 양도 적은 데다가 온통 채소뿐이라 박민정은 진작에 허기져 있었다.그가 건네준 음식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다시 최현아를 보고는 막 거절하려는데 유남준이 다시 말을 이었다.“빨리 먹어. 너무 늦게 먹으면 건강에 안 좋으니까.”박민정은 그의 닦달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최현아에게도 인사를 건넸다.“형님, 그럼 감사히 먹을게요.”최현아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겨우 답했다.“많이 먹어요.”그리고 한껏 어두워진 얼굴로 뒤돌아서더니 낮은 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둬. 먹다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잖아!”최현아는 원래 유남준이 자기 마음을 받아주면 이따가 이 남자만 살려주려고 마음먹었다.그러나 이제 보니 그럴 필요 없이 그냥 세 가족을 모두 죽여버리면 될 것 같았다.그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두 주먹을 꽉 쥐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편했다....박민정은 도시락에 담긴 다양한 음식을 보고는 순식간에 식욕이 올라왔다.“와, 너무 맛있겠다.”그리고 다시 반찬들을 가지런히 모으더니 두 사람에게 활짝 웃으며 말했다.“예찬아, 남우 씨, 너무 많아서 저 혼자는 다 못 먹을 것 같은데 우리 같이 먹어요.”뜬금없이 자신을 남우라고 부르는 모습에 살짝 언짢아졌지만 그래도 티를 낼 수 없었다.“그래.”그렇게 세 사람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맛있는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622화

    오늘 저녁은 학교에서 준비해 줬다.사실 물고기를 잡아서 점심 식사를 해결해야 했는데 다들 많이 잡지 못한 바람에 식사가 조금 부실했다.하여 저녁 식사 시간이 돌아오니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에너지 소모가 많았던 탓에 음식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지게 되었다.유지훈은 밥을 먹으면서도 계속 박예찬을 신경 썼다.그리고 내심 박예찬 주변에 친구가 많은 게 부러웠지만 이제 와서 그에게 붙는 건 자존심이 상했다.한편, 최현아는 오늘 밤 분명 무슨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에 너무 긴장되어 밥도 잘 넘어가지 않았다.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박민정 쪽을 바라보았는데 세 가족이 화기애애해 보이는 모습에 또다시 질투심이 마구 피어올랐다.저녁 식사가 다 끝난 뒤 각자 돌아가서 쉬고 있는데 최현아가 어느새 유남준의 곁에 다가오더니 그에게 말을 걸었다.“남준 씨, 음식은 입에 잘 맞았나요? 제가 음식을 따로 싸 왔는데 괜찮으시면 좀 드실래요?”그러나 유남준은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괜찮습니다.”어제랑 다르게 차가운 그의 태도 때문에 최현아는 순간 멍해졌다.분명 어제 자신이 땀을 닦아줘도 가만히 있던 사람인데 왜 갑자기 태도가 바뀌었나 싶었다.“그래도 제가 남준 씨 형수인데 너무 체면 차릴 필요 없어요. 제가 금방 가지고 올게요.”최현아는 유남준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재빨리 음식 가지러 달려갔다.그저 유남준이 혹시나 주변 사람들이 보고 오해할까 봐 철벽친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은 박예찬과 무료함을 달래려 잡초를 뽑고 있다가 무심결에 최현아와 유남준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박예찬에게 물었다.“저 두 사람은 지금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까?”박예찬은 박민정이 풀 뽑기를 좋아하는 줄 알고 열심히 같이 뽑다가 문득 그녀의 뜬금없는 물음에 고개를 들어보니 유남준이 또 다른 여자랑 시시덕거리고 있었다.“엄마, 내가 가서 물어보고 올게.”“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하나는 유남준의 좋은 시간을 방해할 것 같아서였고 다른 하나는 괜히 박예찬이 가서 물어보면 마치 그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621화

    오후가 되니 날씨가 약간 흐려지기 시작했다.박민정네는 산언덕에 앉아 바람도 쐬고 구운 생선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박예찬은 특별히 물고기 한 마리를 남기더니 조동민에게 주며 말했다.“아마 오래 살지는 못할 거야.”그의 말에 조동민은 활짝 웃으며 답했다.“예찬아, 고마워. 넌 참 착한 아이야.”그 모습을 옆에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박민정은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자기 아들이 너무 따뜻한 사람이라 앞으로도 친구 사귀는 건 문제없겠다고 생각되었다.“고작 고기 한 마리 가지고 뭘.”박예찬은 아직 칭찬받는 게 익숙하지 않은 듯 쑥스러워했다.조동민은 고맙기는 한데 오늘 발생했던 일 때문에 계속 마음이 불안했다.“민정 이모, 혹시 오늘 일은 진짜로 제가 잘못한 걸까요?”어린아이의 세계는 그저 흑과 백으로 단조롭게 나뉘어져 있을 것이다.하여 당연히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여겼는데 자기더러 사과하라던 아버지 때문에 많이 혼란스러웠다.박민정은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그에게 말했다.“이모는 동민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넌 단지 자신의 권익을 보호하고 있었을 뿐, 유지훈이 먼저 잘못한 거지.”그녀의 말에 조동민은 더욱 억울한 얼굴로 되물었다.“그런데 저희 아빠는 왜 저더러 사과하라고 했을까요?”“그건 어른들의 세계에는 옳고 그름만이 있는 게 아니거든. 이건 네가 나중에 어른이 되면 다 이해가 될 거야.”조동민은 그제야 뭔가 깨달은 듯 그녀에게 답했다.“저도 알 건 알아요. 저희 아빠는 지훈이네 엄마가 무서웠던 거예요. 저희 부모님은 항상 저에게 유지훈에게 잘 보여야 우리 집안 사업도 잘되고 나중에 돈도 많이 벌 거라고 습관처럼 말하셨어요.”그의 말에 박민정은 순간 가슴이 아려왔다.‘이렇게 어린아이가 그런 말 때문에 얼마나 부담감을 느꼈을까?’그녀는 어떻게 조동민을 위로했으면 좋을지 몰라 그저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그러나 조동민은 고개를 들고 박민정을 빤히 바라보며 다시 단호하게 말했다.“이모, 저 오늘부로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620화

    한가영은 한껏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박민정을 힐끔 바라보았다.그리고 박민정이 한마디 하자마자 장연수도 빠르게 거들었다.“최 회장님, 다 아이들 일이고 누구도 피해 본 사람이 없는데 이쯤 하시죠.”몇몇 학부모들도 최현아를 말리기 시작했다.“아이가 이 정도로 우는 걸 보면 분명 잘못했다는 걸 깨달았을 겁니다.”“맞아요.”최현아는 두 주먹을 꽉 쥔 채 어두운 얼굴로 가만히 서서 생각해 보았는데 보는 눈이 이리도 많은데 계속 아이를 혼내기도 뭐한 것 같았다.“그럼 오늘 일은 여기서 끝내겠는데 다음부터는 절대 이런 일이 없어야 할 겁니다.”조민혁은 심장이 다 타들어 갔다가 겨우 입을 열어 인사를 건넸다.“역시나 최 회장님은 아량이 깊으십니다.”한가영은 일이 이대로 마무리되자 단번에 조민혁을 옆으로 밀쳤다.“어떻게 여동생보다도 간이 작아요? 이런 사람이랑 결혼한 제가 멍청이네요.”부모님이 자기 앞에서 다투기 시작하자 조동민은 더욱 마음이 불편했다.자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가 벌어졌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박민정 덕분에 사건이 종료된 뒤 조동민은 박예찬과 놀기 시작했다. 두 아이는 박민정 뒤만 졸졸 따라다니다가 박민정은 조하랑에게 전화를 걸어 조동민과 잠깐 통화하게 했다.조동민은 화면 속의 조하랑을 보자마자 갑자기 서러움에 눈물이 왈칵 터졌고 조하랑은 겨우 그를 달래서 울음이 그쳤다.“민정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아직 아이라 표현 능력이 제한되어 있어서 조하랑은 자기 조카가 뭔가 억울함을 당했다고는 느꼈어도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아직 알지 못했다.하여 박민정은 오늘 있었던 일을 그대로 조하랑에게 알려줬고 그녀는 듣자마자 불같은 화를 냈다.“최현아라는 사람 진짜 너무하네! 이렇게 어린아이더러 동급생 아이한테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시켰다고? 제정신으로 한 말인가 싶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당장에라도 그 여자 가면을 벗겨버리는 건데!”조하랑은 씩씩거리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우리 오빠는 진짜 쓸모없는 인간이라니까.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619화

    “지훈아, 우리 동민이가 먼저 때린 건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무릎을 꿇리는 건 아니라고 봐.”조동민의 아버지 조민혁이 말했다.그리고 어머니 한가영도 다시 최현아에게 애원했다.“최 회장님, 작은 오해로 아이에게 무릎 꿇고 사과시키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최현아는 고작 조 씨 가문 따위가 자신에게 반항하는 모습이 너무 기분이 언짢았다.또한 두 사람은 박민정의 친구이자 조하랑의 친척이라는 사실에 더욱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만약 사과할 수 없다면 법원에 고소해야겠네요.”말이 고소지, 분명 다른 방법으로 조씨 가문을 괴롭힐 게 뻔했다.그래도 한가영은 자기 아들이 이런 수모를 겪게 내버려둘 수 없어 재빨리 조동민을 품에 안았다.이 시각, 조동민은 아주 큰 충격에 빠져 있었다.분명 잘못한 사람은 유지훈인데 왜 자신이 무릎을 당연하게 꿇어야 하는지, 왜 어른끼리 저런 대화를 하고 있는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엄마, 저는 잘못하게 없어요.”순간 목이 메어왔다.한가영도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그저 조민혁만 바라보았다.그러나 조민혁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조씨 가문의 세력으로는 최씨 가문이나 유씨 가문에게 전혀 상대가 되지 못했다.“동민아, 미안하다!”괜히 아이 하나 때문에 큰 집안을 말아먹을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자기 아들을 무릎 꿇리게 해야 했다.한가영은 순간 마음이 바닥으로 내려앉는 것 같았다.자기 남편이 아무리 무능력하다고 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고 이렇게까지 무례하게 구는 데도 가만히 있을 줄은 몰랐다.그러다가 문득 시선이 자기도 모르게 박민정에게로 향했다.“민정 씨, 제발 저희를 좀 도와줘요. 민정 씨는 하랑 씨 친구잖아요. 하랑이는 동민이 고모예요.”조동민은 어렸을 적부터 조하랑을 이모라고 불렀는데 그러면 여태껏 잘못 부른 것이다.느닷없는 부탁에 박민정은 순간 눈앞의 아이가 조하랑의 조카라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있었다.조동민도 어느새 한껏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이때 최현아의 떨떠름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618화

    온갖 잡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하던 이때 그녀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화면을 확인해 보니 시아버지인 유석진이었고 재빨리 구석 쪽으로 가서 통화버튼을 눌렀다.“오늘 저녁에 호우주의보가 떴던데 남준이랑 민정이 모두 거기에 있어?”“네.”“그러면 산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아주 자연스럽겠지?”유석진이 묻는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최현아는 다급히 그에게 설명했다.“여기에는 다른 학부모님들과 선생님들도 계세요.”“난 그저 유남준이랑 박민정만 사라진다면 다른 사람이 죽거나 말거나 아무 관심이 없어.”유석진의 말대로 그는 다른 사람이 죽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최현아는 핸드폰을 손에 꼭 쥐더니 눈길은 자기도 모르게 유남준에게로 향했다.“알겠어요. 그럼 준비되면 알려주세요.”“그래. 너랑 지훈이는 꼭 안전에 주의해야 한다.”“네.”말을 마치자마자 최현아는 전화를 끊었다.그러다가 머릿속에서는 진짜로 유남준과 박민정이 사고 나는 걸 가만히 지켜봐야 하는지 온갖 잡생각으로 뒤엉켜있었다.박민정은 그다지 걱정되지 않지만 몰래 마음을 두고 있는 유남준이 이대로 죽는 건 아쉬웠다.두통이 몰려오던 이때,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왁자지껄한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한 무리의 어린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마치 싸우고 있는 듯했다.이때 여교사 한 명이 최현아에게 다급히 달려왔다.“지훈이 어머님, 빨리 가보셔야겠어요. 지훈이가 다른 아이랑 지금 싸움 났거든요.”이건 선생님들이 관여를 안 하는 게 아니라 워낙 유지훈의 부모님이 극성이라는 소문이 있어 감히 먼저 말리지 못했다.또한 유씨 가문의 세력만 봐도 선생님들 쪽에서 밉보이는 행동을 절대로 하면 안 되는 처지였다.“누가 감히 내 아들을 때려?”최현아가 빠르게 싸움 현장에 달려와 보니 유지훈과 조하랑의 조카인 조동민이 한창 주먹다짐하고 있었다.그러나 유지훈은 조동민보다 덩치가 한참 작았기에 전혀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내 물고기 당장 물어내! 우리 아빠가 직접 잡은 물고기인데 물어내라고!”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