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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화

Penulis: 윤지
고영란은 의심하지 않고 박예찬에게 다가와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그럼 집이 어디인지 기억해? 할머니가 데려다줄까?”

이렇게 상냥하고 친절한 고영란은 박예찬을 놀라게 했다.

엄마는 할머니에 대해 말한 적이 없지만 이미 조사해 보았다.

고영란, 고 씨 집안의 아가씨, 커리어우먼이다.

할아버지에게 시집간 뒤로는 할아버지가 가정을 돌보지 않아 혼자 아들을 키우느라 한 번도 웃는 얼굴을 한 적이 없다.

박예찬이 멍해 있을 때 고영란이 또 입을 열었다.

“아버지나 어머니의 전화번호를 기억한다면 할머니가 전화해 줄게.”

박예찬은 정신을 차리고 그녀에게 배꼽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간선도로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주시겠어요? 버스 타고 돌아가는 방법을 알고 있어요.”

이렇게 예의 바르고 똑똑한 아이는 고영란의 마음에 더욱 들었다..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만약 남준이가 말을 잘 들었다면 그녀의 손자도 아마 이렇게 컸을 텐데.

“알았어, 타. 할머니가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줄게.”

친할머니니까 나쁜 사람일 걱정도 없고 차에 올라타서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고 했다.

차에 올라탄 후.

고영란은 참지 못하고 박예찬과 넋두리를 하기 시작했다.

“할머니, 여기 사세요? 별장이 정말 커요.”

고영란은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 아들 집이야. 나는 여기 안 살아.”

박예찬은 말을 이었다.

“그럼 손자 보러 오신 거 맞죠?”

손자 이야기를 꺼내자 고영란의 안색이 변했다.

“아휴, 할머니는 아직 손자가 없어. 만약 생기면 황궁보다 더 큰 별장에 살게 할 거야.”

고영란은 농담이 아니었다. 만약 앞에 있는 아이가 친손자인 것을 안다면 그녀는 틀림없이 아이에게 가장 좋고 호화로운 삶을 줄 것이다.

박민정이 유씨 집안에 시집오자마자 고영란은 어린이 놀이공원, 어린이 자동차 경기장, 어린이 스키장 및 기타 어린이를 위한 특별한 놀이 장소를 만들었다.

유남준의 아버지는 일 년 내내 밖에서 어린 여자를 끼고 살았고 유남준은 커서 자기만의 사업을 가졌다.

집에 혼자 있는 고영란은 너무 외로워서 자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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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49화

    유남준은 고개를 들어 박민정을 바라보았다.“왜 찾아왔어?”박민정은 고영란이 자신에게 준 백지수표를 유남준 앞에 내밀었다.“수표 주면서 떠나라고 했어요.”유남준은 수표를 바라보며 말했다. “동의했어?”수표에 금액만 적으면 박민정은 유남준에게 빚진 돈을 바로 갚을 수 있다.박민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당신과 이미 계약을 맺었으니 당연히 안 받았어요.”지금 떠나면 어떻게 셋째를 가지고 또 윤우를 구하겠는가?박민정은 수표를 유남준에게 건네줬다.“돌려줄게요.”유남준은 그것을 받아들고 힐끗 쳐다보더니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다시 그윽하게 박민정의 얼굴을 바라봤다. “잘했어. 당신이 이 수표에 금액을 적었어도 내가 돈을 안 줬을 거야.”‘그녀가 떠날 수 있다는 희망을 완전히 소멸시켜 버려야겠다.’ 그 말을 듣고 박민정은 주먹을 꽉 쥐었다.유남준은 따뜻한 손수건으로 손을 닦고 일어나 그녀 앞에 다가왔다. 박민정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유남준의 손이 그녀의 목에 닿았는데 아직 알레르기가 하나도 낫지 않았다.“약 발랐어?”유남주의 변덕스러운 성격은 박민정을 매우 불편하게 했다.그녀는 슬그머니 비키며 말했다.“발랐어요.”미세한 움직임도 그의 눈을 피해 가지 못했다. 유남준이 강제로 건드리려 할 때 현관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이 시간에 누구지?’거실의 어색한 분위기에 박민정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문 열게요.”유남준을 피해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을 열러 갔다.한여름 밤의 서늘한 바람 속에서 이지원은 옅은 색의 잠옷을 입고 눈 밑에 눈물이 그렁그렁하여 문 앞에 서 있었다.박민정이 문을 연 것을 보고 눈빛이 조금 흔들리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남준 씨를 만나러 왔어요.”이렇게 연약한 미녀여야 유남준과 김인우의 마음을 동시에 사로잡을 수 있구나.시선을 거두고 뒤돌아보니 유남준이 이미 걸어오고 있었다.이지원은 그를 보자마자 코끝이 찡해지며 눈물을 흘렸다.“남준 오빠.”그녀가 이 시간에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50화

    유남준은 이지원을 뿌리쳤다.“남준 오빠, 고마워요.”감격스럽게 말한 이지원은 득의양양하게 박민정을 돌아봤다.박민정은 유남준에게 시집간 것을 후회했고, 그에게 시집가지 않으면 어떠한 조건도 제시할 수 있고, 또 대부분 동의한다는 것을 알았다.애초에 위험을 무릅쓰고 고영란을 구한 사람이 자신이라니 정말 다행이다...박민정은 차가운 표정으로 이지원이 눈앞에서 자랑하는 것을 바라봤다.두원의 크고 많은 방 중에서 이지원은 안방에서 가장 가까운 방을 선택했는데 그 속뜻은 자명했다.이지원이 방을 정리하러 갔을 때, 박민정도 방으로 돌아갈 준비했다.유남준은 거실에 앉아서 그녀를 불렀다.“이리 와.”박민정은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모른 채 다가갔다.“무슨 일이에요?”유남준은 박민정의 안색을 살폈다.그는 줄곧 결혼 후 그녀가 말하기를, 두원은 앞으로 두 사람의 보금자리이며 친척과 친구 외에는 다른 여자가 절대 올 수 없다고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화 안 났어?”그가 이지원의 요구를 동의한 것은 첫째는 진짜 죽을까 봐 두려웠고 둘째는 박민정의 태도를 보고 싶어서였다.유남준은 박민정이 개의치 않는다는 것을 믿지 않았는데 그녀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돈을 다 갚으면 이혼하기로 약속했잖아요. 왜 화내야 해요?”유남준은 목이 메었다.“계속 그 태도를 유지하기를 바라.”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오늘 약속있어서 저녁에 안들어올거야.”이지원은 자기가 온갖 궁리를 다해서 어렵게 남았는데 유남준이 떠날줄 몰랐다.이지원은 박민정의 방 앞에 가서 문을 두드렸다.박민정은 헛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곡을 계속 쓸 생각이었는데 또 방해꾼이 나타날 줄이야. 그녀는 오늘 더이상 악보를 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박민정은 일어서서 문을 열었다.여름인데도 긴팔에 긴 바지를 입은 박민정을 바라보던 이지원은 목에 있는 붉은 발진을 발견했다.박씨 집안의 지원을 받았던 이지원은 예전에 자주 박씨 집안에 가서 밥을 먹었는데 예전에 박민정이 실수로 해산물을 먹었을때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5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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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52화

    박민정의 답을 본 이지원이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했다.「오빠, 오빠가 민정 씨랑 무슨 사이인진 몰라도 민정 씨 절대 보통 아니에요.」「못 믿으시겠으면 오늘 밤 열 시, 사거리 카페로 오세요.」반드시 유남준이 보는 데서 박민정의 속내를 드러내고 말겠다 다짐한 이지원이었다.박민정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간단하게 씻고 거실로 나왔는데 유남준은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보는 중이었다.발소리를 들은 유남준이 이지원에게서 온 메시지를 지우고 박민정을 봤다.“나가서 밥 먹자.”분명 식탁에 음식이 있는 걸 본 박민정은 의아했지만 별생각 없이 따라나갔다.식당에는 아침에 먹기 적절한 음식이 가득이었고 박민정은 그중 좋아하는 것 몇 가지만 골라 먹기 시작했다. 이에 유남준이 박민정의 행동을 주시했다.“나한테 할 말 없어?”“무슨 말이요?”박민정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이지원과의 일을 떠올렸다.“됐어.”유남준도 더 묻지는 않았다.박민정은 최근 너무 한가한 유남준 때문에 그가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오해를 할 것만 같았다.얼마 걸리지 않아 밥을 다 먹은 둘을 기사가 회사까지 데려다주었다. 같은 사무실에서 각자 일을 시작했건만 박민정은 전혀 곡이 써지지 않았고 결국 슬금슬금 유남준의 책상으로 다가갔다.“나가고 싶어요.”“그래.”서류를 넘기던 손이 멈췄다.유남준이 이렇게까지 순순히 대답할 줄 몰랐던 박민정은 당황스러웠다.사무실을 나가기 전에 박민정이 덧붙였다.“저 오늘 일이 있어서 조금 늦을 것 같아요.”유남준의 눈빛이 의미심장해졌다. 잠깐 박민정의 얼굴을 살피던 유남준의 얇은 입술이 달싹였다.“무슨 일?”“개인사정이요.”박민정이 비밀인 양 말했다.딱잘라 말하는 박민정에 조금 당황한 유남준의 목소리가 한순간에 얼음장 같아졌다.“경고하는데, 무슨 짓을 하든 날 화나게만 하지 마.”그의 말을 통해 박민정은 이지원이 일러바쳤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그런데 조금 이상하기도 했다. 유남준은 이런 일을 참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53화

    박민정은 그저 멀리서 그 밭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아직 있을 줄은 몰랐네...”정민기가 박민정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그곳엔 자유롭고 드넓은 초원을 연상시키는 해당화 밭이 펼쳐져 있었다. 조금 낡아 보이긴 했지만 모든것이 누군가의 손길을 거친듯 생기가 돌지 않는 곳이 없다. 별장의 주인이 정성스레 고심해서 가꾼듯 했다.“여긴?”“옛날에 진주에서 살 때 살던 집이에요.”정민기의 질문에 박민정이 답했다.들어갈 자격이 없어 그저 보기만 해야 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까웠다.“이만 가죠.”박민정이 차에 올라탔고 곧이어 차는 천천히 별장에서 멀어져갔다. 관목숲 사이 어딘가 한 남자가 이상한 모습으로 그녀를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박민정은 그 남자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했다.시내에서 한 바퀴 더 돌던 박민정이 정민기에게 이만 두원에 데려다 달라고 했고 두원에 도착한뒤 그녀는 작업실에서 곡을 썼다.경호원이 박민정의 행적을 모두 유남준에게 알렸고 유남준은 그 카페로 가기 위해 아홉 시 조금 넘은 시각에 출발했다.한편, 박민정도 두원에서 출발하려는 참에 정민기가 메시지를 보냈다.「유남준 씨 차가 역시나 사거리로 가고 있습니다.」두원으로 가기 전, 정민기에게 유남준이 어디로 가는지 지켜봐 달라 했는데 역시 제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이지원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고자질을 좋아했으니.늦은 밤, 카페에는 별다른 사람이 없었다.이지원이 예약한 룸은 야경뷰였고 박민정은 정시에 도착했다.박민정이 원피스에 위에 작은 겉옷 하나를 걸친 이유는 알레르기 때문이었는데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겉옷을 챙겼을 것이다. 밖에 오래 있을 때면 추위를 극도로 타는 체질이기에 여름이더라도 늘 겉옷을 챙겼기 때문이다. 박민정의 분위기와 모습은 시야를 탁 트이게 하기 충분한 모습이었다. 몸매는 결혼하기 전으로 돌아왔고 얼굴은 고상하여 한 번 본 사람은 절대 잊지 못할 모습이었다.이지원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확히는 박민정을 질투한다 하는 게 더 맞았다.한수민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54화

    박민정이 일어나 이지원의 앞으로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제가 변했다면서 왜 아직도 예전의 저를 대하듯 하세요? 아직도 지원 씨한테 속을 것 같나요, 제가? 사실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어요. 그냥 지원 씨랑 같은 사람 되기 싫어서 반격하지 않았던 거지."박민정이 룸을 나가며 덧붙였다."다음에는 조금 발전하셨으면 좋겠네요."이지원은 박민정의 안타깝다는 표정이 어딘가 음침해 보여 두렵기 시작했다.카페를 벗어난 박민정이 정민기가 알려 준 자리의 차가 없어진 걸 발견하고 숨을 내쉬었다.문득 유남준이 더 이상 자신이 예전에 좋아하던 그 어린 소년이 아니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그 소년은 속내를 다 드러냈고, 자신에게 잘해 줬다. 물론 의심 같은 것도 하지 않았었다.박민정이 생각에 잠긴 채 차를 타고 떠났다.이지원이 건물을 나와 몇 걸음 채 걷지 않았을 때 어떤 남자가 불쑥 나타나 이지원의 손목을 붙잡고 으슥한 곳으로 갔다."지원아, 보고 싶었어."눈앞의 남자는 수염이 거뭇거뭇했고 눈 밑은 푸르뎅뎅했다. 누가 봐도 잠을 못 잔 사람의 모습이었다."임수호, 여기까지 따라온 거야? 몇 번을 더 얘기해야 해? 난 너랑 LA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고. 정말 날 위한 거면 어서 돌아가."임수호가 상처받은 눈빛으로 말했다."유남준 때문이지? 걘 너한테 마음 없다니까? 널 좋아했다면 진작 결혼했겠지.""그게 뭐? 적어도 내가 원하는 건 줄 수 있는 사람이야."이지원은 흔들리지 않았다."넌 뭘 줄 수 있는데?""난...""지금의 넌 아무것도 못 해."임수호가 이지원의 팔을 단단하게 잡았다."내 회사는 망했지만, 곡은 아직 쓸 수 있어. 너만을 위한 노래를 써 줄게."이지원이 비웃었다."그딴 곡 필요 없어. 넌 재능이 없다고. 언제 인정할래?"임수호의 눈이 빨개졌다."사람이 어떻게... 왜 이렇게 냉정해진 거야. 그때 내가 없었으면 지금의 네가 있을 것 같아? 이제는 내가 널 원한다고!"임수호가 화내는 걸 보더니 이지원이 말투를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55화

    박민정이 별장으로 돌아왔을 때, 유남준은 짙은 잠옷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강렬한 눈빛을 박민정에게 보냈다."재미있었어?""나쁘지 않았어요."유남준이 일어나자 그 몸이 박민정의 시야 반을 가렸다."이지원이 그러던데, 2,000억에 날 팔려 했다고."박민정이 멈칫했다. 분명 다 들었으면서 왜 나한테 또 묻는 건지 의아했다."그런 적 없어요.""그래?"유남준이 몸을 가까이하자 박민정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저랑 지원 씨 사이가 안 좋은 건 아실 테고, 전에 어머님께서 주신 돈도 받지 않았는데 왜 이제 와서 이러는 거예요?"유남준은 박민정의 말을 다 듣고도 쉽사리 믿음이 생기지 않았다.이지원이 박민정에게 자신이 했던 짓을 모두 들킨 게 아니라면 유남준을 부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딱히 더 묻지는 않았다."더 하실 말씀 있어요?"박민정의 등이 벽에 닿았다.그 조심스러운 모습에 유남준의 목울대가 울렁였다.탐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할 때면 정신줄을 꽉 붙잡고 있기 힘들었다."돈은, 준비했어?"이렇게 빨리 달라 할 줄 몰랐던 박민정이 흠칫했다."아직이요.""그럼 내가 제안 하나 하지."유남준이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우린 결혼한 사이인데, 당신이 아내로서의 책임을 다한다면 예물은 당연히 안 줘도 돼."‘아내로서의 책임?’성인인 박민정이 이 뜻을 모를 리가 없었다.얼굴이 삽시간에 달아오른 박민정이 당황한 틈을 타 유남준의 뜨거운 손이 박민정의 얼굴을 쥐고 살살 어루만지기 시작했다."한 번에 200억, 어때?"박민정의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대체 유남준은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인지 짜증이 났다.이 말을 들으니 첫날 반항했음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탐했던 유남준이 떠올랐다."싫어요."박민정이 유남준을 밀어내고는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 문을 잠갔다.품속이 갑자기 텅 비어 버린 유남준은 박민정이 왜 또 화난 건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그는 자신이 아는 여자들 중 오직 박민정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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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5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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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49화

    손연서는 박민정의 말을 듣고도 굳이 사양하지 않았다.“민정 씨, 고마워요.”“우리 사이에 뭘요. 예전에 제가 힘들 때 연서 씨도 도와줬잖아요.” 박민정이 웃으며 말했다.과거 그녀가 윤소현에게 괴롭힘을 당했을 때 손연서가 나서서 힘을 써준 적이 있었다.그렇게 말은 했지만 손연서는 여전히 감동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손연서가 떠난 후, 박민정은 정수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그녀에게 이 이야기를 꺼냈다.정수미는 오씨 가문의 남자들을 가장 혐오했다. 자신의 아내를 소중히 여기기는커녕 정부를 만들어 원래의 배우자를 해치다니. 이런 남자들과 도덕 없는 애인은 마땅히 대가를 치러야 했다.“민정아, 그 여자의 남편 이름이 뭐라고 했지?” 박민정이 기억을 더듬으며 답했다.“오준수예요.”오준수.정수미가 옆에 있던 비서를 바라보자 비서는 바로 떠올렸다.“오현웅 회장의 아들입니다.”“아, 그 사람이구나.”정수미의 눈빛에 냉소가 스쳤다.“그 오준수, 몇 번 본 적 있어. 나한테도 몇 번 찾아온 적 있고. 근데 별 볼 일 없는 놈이야. 그냥 허세뿐인 한량이지.”문득 떠오른 듯, 정수미가 박민정을 보며 말했다.“그런데 내가 그 사람 아버지 체면을 봐서 오씨 가문과 거래를 한 적이 있거든. 네 친구를 돕고 싶다면 계약을 취소하면 돼.”박민정은 정수미가 오준수를 알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그것도 이런 식으로 얽혀 있을 줄이야.“그거 참 잘됐네요. 마침 어떻게 도와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별것도 아닌 일에 머리 쓸 필요 없어.”정수미는 오씨 가문 따위는 거들떠볼 가치도 없다는 듯 무심하게 말했다.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씨 가문이 정씨 가문과 비교하면 동네 구멍가게와 대형 프랜차이즈 마트 정도의 차이였다.“김 원장이 그러잖아. 너 요즘 며칠 푹 쉬어야 한다고. 그러니까 이 일은 다른 사람이 하게 둬.”정수미가 덧붙였다. 그때 옆에 있던 정윤아가 손을 번쩍 들었다.“언니, 내가 해줄게요.”박민정이 대답하기도 전에 정수미가 먼저 찬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48화

    정수미는 자신이 여기 있으면 대화가 불편할 거란 걸 눈치채고 비서에게 밖에 가 햇볕을 쬐겠다고 했다.그녀가 나가자 세 사람은 한결 편해졌다.지원 엄마는 더욱 활기차게 말을 이어갔다.“예찬 엄마, 다음 학기부터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잖아요. 예찬이는 어느 학교로 갈 예정이에요?”박예찬의 학교는 이미 정해져 있었고 박민정은 도한 엄마에게도 초청장을 건넨 적이 있었다. 그녀는 문득 자신에게 아직 한 장 더 남아 있다는 걸 떠올렸다.박민정은 지원 엄마가 이미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말했다.“학교는 이미 정했어요. 혹시 지원이도 같은 학교에 보내고 싶다면 같이 다니게 할까요?”“좋아요!”지원 엄마는 학교가 어디인지 묻지도 않고 흔쾌히 승낙했다.박민정과 유남준이라면 분명 좋은 학교를 선택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그럼 제가 시간 될 때 초청장을 드릴게요.”“고마워요, 예찬 엄마.”지원 엄마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한편, 손연서는 아이가 없어서 대화에 쉽게 끼지 못했다.그녀는 엄마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며 과거 자신이 왜 남의 아이를 키우겠다고 선택했던지 후회스러웠다. 만약 전 남편의 본모습을 일찍 알았더라면 좋은 남자를 만나 지금쯤 자신도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잠시 후, 지원 엄마와 도한 엄마는 집에 일이 있어 먼저 자리를 떴다.손연서는 계속 남아 박민정에게 과일을 깎아 주었다.박민정은 문득 그녀에게 물었다.“지난 1년 동안 어떻게 지냈어요?”기억을 잃은 후로 손연서의 소식을 챙기지 못했던 것이다.손연서는 사과를 깎아 한 조각 건네며 말했다.“괜찮아요. 아주 편해요. 예전보다 훨씬 나아요.”그러다 한숨을 쉬며 덧붙였다.“다만, 이제 와서 좀 후회가 돼요.”“후회요?”“네, 민정 씨가 아이를 키우는 걸 보면 정말 부럽더라고요.”손연서는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런데 전 이제 아이를 가질 수 없어요.”“왜 그런 말을 해요?”박민정은 손연서가 아직 젊은데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게 이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47화

    유남준은 떠나지 않고 혼자서 바깥을 서성이고 있었다.“남준아.”김인우가 먼저 다가왔다.“술 한잔하러 갈까?”유남준은 그를 흘겨보았다.“하랑 씨 임신했다며? 무슨 술이야.”“오늘 밤은 우리 없이도 잘 지낼 테니까, 우리도 재미 좀 찾아야지.”김인우는 그렇게 말하며 서다희, 정민기, 방성원을 바라보았다.서다희는 고개를 저었다.“안 돼요. 우리 애가 싫어할 거예요.”방성원도 거들었다.“우리 딸이 내 몸에서 술 냄새 나는 걸 싫어하거든.”정민기는 무표정하게 한마디 했다.“전 술 안 마셔요.”김인우는 입을 달싹였지만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자신만 아직 변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은 이미 좋은 남자친구, 좋은 남편이 되어 있었다.유남준이 그의 어깨를 툭 쳤다.“이제 너도 철들 때가 됐어.”“그냥 심심해서 그런 거지...”서다희가 말했다.“우리 애가 그러더라고요. 심심하면 의미 있는 일을 하라고. 굳이 술 마실 필요 없잖아요. 그렇죠, 대표님?”유남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응, 술은 몸에 안 좋아.”김인우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하나같이 모두 성인군자가 되어 있었다.“그럼 뭐 할 건데? 밤새 여기서 멀뚱멀뚱 서 있을 수도 없잖아.”“그건 네가 알아서 정해야지. 방이라도 하나 마련해서 쉬는 게 좋겠어. 난 그래도 딸 보러 먼저 가볼 생각이야.”방성원이 말했다.“알겠어.”김인우는 바로 옆방을 준비하도록 했다.딱히 할 일이 없는 남자들은 모여서 카드나 한 판 하며 시간을 보냈다.옆방에서는 김인우의 예상대로 모두가 박민정을 위해 오늘 밤만큼은 함께 있기로 했다.다만, 고영란은 두 아이를 데리고 먼저 돌아갔다. 박윤우와 박예찬도 졸음을 참지 못하고 눈을 비비며 유남준을 찾아왔다.유남준이 그들에게 말했다.“너희, 이제 세 살짜리 아기 아니잖아. 알아서 잘 곳 찾아가.”결국 두 아이는 방 한쪽에서 나란히 잠들었다.그 모습을 본 김인우가 감탄했다.“남준아, 유전자 진짜 대단하다. 윤우랑 예찬이, 완전 네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46화

    “그럼 됐어. 약속했으니까 꼭 지키는 거야.”박민정의 눈가에 다정한 미소가 어렸다.연지석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응.”비행기가 곧 이륙할 예정이라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연지석은 짧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다음에 보자.”“그래, 잘 가.”박민정은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마음 한구석에 얹혀 있던 돌덩이가 조금은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지금까지는 늘 자신이 연지석의 도움을 받았지만 이제는 자신도 어느 정도 힘이 생겨 그를 도울 수 있게 되었다.연지석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유남준이 다정하게 박민정의 어깨를 감쌌다.“가자, 우리도 돌아가야지.”“네.”박민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공항을 빠져나왔다.밖으로 나오자 언제부터인가 가늘고 부드러운 빗방울이 흩날리고 있었다.운전기사가 다가와 우산을 건넸고 유남준은 조심스럽게 박민정에게 씌워 주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걸으며 차로 향했다.가는 길에 박민정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가 다시금 분주한 인파를 둘러보았다.지금 그녀는 보청기를 끼지 않고도 주변의 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소리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귀에 들어왔는데 그 순간이 참으로 신기했다.“민정아, 나 하고 싶은 말이 있어.”문득, 유남준이 걸음을 멈추었다.박민정도 따라서 멈춰 서며 그를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았다.“뭔데요?”유남준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사랑해.”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박민정은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참...”사람들이 있는 곳이라 그런지 박민정은 조금 쑥스러워졌다.“갑자기 왜 그래요?”유남준이 미소를 지었다.“그냥, 지금 말하고 싶었어.”“네...”박민정이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좋아해.”“좋아하는 게 다야?”유남준이 장난스럽게 되물으니 박민정은 어쩐지 부끄러워졌다.“그럼 뭐라고 해야 해요? 그냥 좋아하는 거예요.”“그래, 좋아한다는 것도 괜찮지.”유남준이 흐뭇하게 웃었다.박민정이 그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45화

    옆에서 지켜보던 정수미가 박민정이 병상에서 일어나려 하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민정아, 어디 가려고?”“친구 만나러요.”“지금은 푹 쉬어야 할 때야.”정수미가 걱정스레 만류했다.“며칠 후에 만나면 안 돼?”하지만 박민정은 고개를 저었다.“안 돼요. 그 친구가 곧 해외로 떠나거든요.”연지석에게 진 빚이 너무 많았다. 이번에도 배웅하지 않는다면 정말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았다.“그래. 대신 조심해야 해.”정수미는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박민정이 갑자기 이런 결정을 내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다.“네.”박민정은 짧게 대답하고 병실을 나섰다.밖에서는 유남준과 정윤아가 기다리고 있었다.“언니, 어디 가려고요?”정윤아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지금은 쉬어야 하는데.”“좀 있다가 설명할게. 지금은 시간이 없어.”박민정이 이렇게 말하며 유남준을 바라보았다.“남준 씨, 지석이가 출국한대요. 지금 공항에 있어요.”그녀는 가장 중요한 신뢰를 지키고 싶었다. 어디를 가는지, 무엇을 하려는지 숨기고 싶지 않았다.유남준은 바로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차로 데려다줄게.”“정말요?”박민정은 망설였다. 두 사람 사이에는 과거에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기 때문이다.“당연하지. 별일도 아닌데 뭘.”유남준은 가볍게 대답하며 차 쪽으로 걸어갔다.“가자.”“네.” 박민정이 웃으며 따라갔다.차에 오르자 유남준은 공항으로 향하며 물었다.“갑자기 왜 떠나는 거야?”박민정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원래 진주시에 온 것도 국내 사업 관련 일이 있어서였어요. 그런데 내가 실종되면서 오래 머물렀던 거죠. 아마 이제 가족 쪽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요.”“그럼 제대로 인사해야겠네.”유남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네.”박민정은 그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기분 나쁘진 않아요?”유남준은 미소를 지었다.“예전이라면 그랬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예전에는 연지석과 박민정 사이에 뭔가 있다고 생각했다.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44화

    연지석은 한참을 그 자리에서 머물렀다.차를 몰고 떠났다가 다시 되돌아왔다. 인사도 없이 떠나는 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그는 휴대폰을 꺼내 박민정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민정아, 나 집에 가려고. 너한테 인사하려고 연락했어. 지금 몇 병동에 있어? 잠깐 보러 갈게.]하지만 메시지를 보낸 후, 한참이 지나도 답장이 오지 않았다.한편, 박민정은 수술을 마친 뒤 처음으로 상태를 점검하는 날이었다. 실을 제거하고 청력을 확인하는 중요한 검사들이 진행됐다. 의사들이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고 김인우 역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실 그는 백 퍼센트 확신하지 못했다. 과연 박민정의 청력이 완전히 회복될 수 있을까.박민정은 눈을 감은 채 손을 살짝 떨고 있었다.오랜 세월, 그녀는 늘 이렇게 생각했다.‘만약 내가 정상적인 청력을 되찾는다면 어떤 기분일까?’이제 그 기회가 왔으니 누구보다 떨리고 누구보다 기대됐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모든 장비들이 제거되었고 그녀의 귀에 미세한 소음이 울렸다. 그건 수술 도구들이 부딪히는 소리였다. “들려?” 김인우가 최대한 조심스럽게 묻자 박민정은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순간, 눈가가 촉촉해졌다.“네. 들려요.”그녀의 대답에 김인우의 눈빛이 환하게 빛났다.“잘됐어! 정말 잘됐어. 수술이 성공했어.”그는 한 마디 한 마디 또박또박 말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박민정도 고개를 끄덕였다.“당분간 푹 쉬어야 해. 무리하면 안 돼.” 김인우가 급히 덧붙였다.“이제 테스트를 좀 해볼게요.”“네.”김인우는 간단한 청력 검사를 진행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완전히 정상 수준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보청기가 필요 없는 상태였다.“아주 좋아. 앞으로 조심해서 관리하고 정기적으로 검사만 받으면 문제없을 거야.”검사를 마친 뒤, 박민정은 병실 밖으로 나왔고 거기엔 유남준, 정수미, 정윤아가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모두가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어때요, 김 선생님?”정수미가 다급히 물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43화

    연지석은 잠시 말없이 있었다.“홍 비서가 처음엔 몰랐지만 이제 알고 나서 후회하는 건가?”“그건 아니야. 그냥 우리 두 사람이 약혼한 이후로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 나보고 배신하지 말라고. 만약 다른 여자가 생기면 미리 한마디만 해 달래.” 하민재의 말에 연지석은 서류를 넘기면서 무심히 말했다. “괜찮은 여자 같은데?”“형은 이게 이상하다고 생각 안 해?”하민재가 되묻자 연지석은 한숨을 내쉬었다. “난 연애 전문가가 아니지만 네가 전에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잊었어? 홍 비서는 너한테 아무 감정도 없다고 했잖아. 너무 기대하지 마. 실망하는 건 결국 너야.”그 한마디가 꿈속에서 허우적거리던 하민재를 깨웠다. 그제야 왜 자신이 불편했는지 깨달았다.“형, 솔직히 말해서... 나, 주영 씨를 좋아하는 것 같아.”홍주영과 함께 지내면서 비로소 알았다. 그동안 자신이 했던 연애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좋아한다면 노력해. 먼저 네 자신부터 바로잡고.”“하지만 주영 씨는 유남우를 좋아하잖아...”그 한마디에 연지석도 말없이 입을 다물었다.하민재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형, 왜 우리가 좋아하는 여자들은 다 유씨 형제랑 얽히는 걸까?”더 이상 서류를 볼 기분이 없었던 연지석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나는 이미 놓았어. 하지만 너는 다르잖아. 이미 홍 비서와 약혼까지 했으니까 널 선택한 거야.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잠시 말을 멈췄던 연지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난 곧 해외에 가서 일을 처리해야 해. 여긴 네가 좀 맡아줘.”“알았어.”하민재는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었고 반대편에서도 연지석이 전화를 끊었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설인하의 자리로 갔다.“인하 씨, 민정이 수술은 어떻게 됐어요?”설인하는 그제야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아마 오늘이면 수술이 성공했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연지석이 묻지 않았다면 그녀는 잊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오늘 퇴근 후 시간이 나면 병원에 가서 박민정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42화

    홍주영은 그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하지 못하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그제야 하민재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정리를 시작했다.혼자 소파에 앉은 홍주영은 침실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연스레 유남우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그녀는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민재가 지금 자신에게 잘해주는 것도 그저 일시적인 신선함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예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여자들은 하나같이 자신과는 전혀 다른 부류였으니까.하지만 이제 그녀도 나이가 찼고 결혼해야 할 때가 됐으며 무엇보다 할머니를 안심시켜야 했다.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홍주영은 노트북을 꺼내 업무를 시작했다. 일에 몰두하자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얼마나 지났을까. 침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드니 하민재가 기대에 찬 얼굴로 걸어나오며 말했다.“주영 씨, 와서 좀 봐요. 내가 잘 정리했는지 확인해줘요.”홍주영은 노트북을 닫으며 사실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는 않아서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로 향했다.문을 넘는 순간, 그녀는 깜짝 놀랐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수선했던 방이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바닥에 놓여 있던 여행 가방도 사라져 있었다.“주영 씨 옷도 전부 정리해서 옷장에 넣어뒀어요.”하민재가 옷장 앞에 서서 문을 활짝 열자 안에는 가지런히 개켜진 옷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계절별로 정리된 옷들이 걸려 있었고 색상과 종류에 따라 완벽하게 분류되어 있었다.홍주영은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이걸 어떻게 한 거예요?”이런 정리는 능숙한 사람도 쉽지 않다. 그런데 명문가 출신인 하민재가 직접 했다고?“그냥 만족하다고만 해주면 안 돼요?”그가 칭찬을 바라는 듯 바라보자 홍주영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만족해요. 내가 하는 것보다 훨씬 낫네요.”자신도 믿기 힘들 정도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난장판이었던 방이 이렇게 변할 줄이야.“그럼 됐어요.”“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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