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1132화

작가: 윤지
방성원은 유남준이 또 아들을 낳을까 걱정하며 말했다.

“안되겠다. 그냥 아이들을 데려와야 하나?”

방성원이 유남준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며 방을 왔다 갔다 하자 유남준은 그를 말리기보다 이득과 손해를 분석해 주었다.

“설인하가 무슨 무리한 짓을 하지 않을 거라면 가도 괜찮겠지.”

방성원은 그 말에 결국 포기하고는 설인하가 산후조리를 마치면 다시 찾아가 천천히 이야기해 보기로 했다.

“그럼 여기에 대해 박민정에게 말할까?”

“말하지 마. 설인하가 너를 그렇게 싫어하는데 네가 박민정에게 설인하와의 관계를 알려주면 나중에 설인하가 알았을 때 박민정을 탓할 게 뻔해.”

유남준은 박민정의 진심이 오해받는 상황을 원치 않았다.

“게다가 네가 박민정을 못 믿을 이유가 없잖아. 설인하가 너의 아내인지 아닌지와 상관없이 박민정은 설인하를 잘 돌봐줄 거야.”

방성원도 박민정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네 말이 맞아.”

“그리고 너도 이제 하루 밤낮으로 고생했으니 좀 쉬어.”

유남준이 덧붙였다.

“그래.”

방성원은 설인하와 아이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 밤새 잠을 못 자며 여기저기 찾아다녔기에 모녀가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안심했다.

박 씨 가문 저택에서 설인하는 박민정의 정체가 궁금했다.

이 집에는 경호원 외에 여자와 아이들만 있었다.

“박민정 씨, 혹시 이혼한 거예요?”

설인하는 박민정이 음식을 가져다줄 때 참지 못하고 물었다.

박민정은 잠시 멈칫하며 생각한 후 대답했다.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설인하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말했다.

“미안해요. 그냥 궁금해서...”

“아니에요. 괜찮아요.”

박민정은 설인하의 말을 끊고 물었다.

“다른 궁금한 점이라도 있어요?”

박민정이 자신에게 이렇게 잘 대해주는데도 의심했던 자신이 미안했던 설인하는 즉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뇨, 더는 없어요. 정말 고마워요.”

그녀는 젓가락을 들어 식사를 시작했다.

방성원에게 오랜 시간 갇혀 지낸 탓에 외
잠긴 챕터
GoodNovel에서 계속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관련 챕터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133화

    박민정은 그녀를 흘겨보며 말했다. “걱정 마요. 저는 원래 반항하는 게 특기예요. 형님이 나가라고 할수록 더 안 나갈 거예요.” 그 말을 마치고는 최현아를 지나쳤다. 최현아는 화가 나 손을 꽉 쥐며 불만 가득한 얼굴로 유성혁의 사무실로 향했다. “그 여자 도대체 뭐예요? 아직도 잘 버티고 있다니, 제대로 압박을 주기나 했어요?” 유성혁은 약간 당황해하며 말했다. “물론이지. 내가 이전의 모든 골칫거리를 다 박민정에게 던져줬어. 지금도 버티고 있는 거라면 끈질기게 버티는 거겠지.” 최현아는 의기양양하게 자리에 앉아 말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박민정이 여러 건의 해외 대형 계약을 성사시키더라고요. 덕분에 우리 부서가 접수하니까 아주 쉬워졌어요.” “그 여자는 신경 쓰지 말고 내가 뭘 샀는지 봐봐.” 유성혁은 최현아에게 무언가 들킬까 두려워 서둘러 선물을 건넸다. 최현아가 선물을 받아들여다 보니 2억 원 상당의 비취 목걸이였다. “참 예쁘네요. 오늘 무슨 날이길래 이런 걸 줘요?” 유성혁은 박민정에게 줄 돈을 마련하기 위해 최현아의 사비를 쓰려는 속셈이었지만 이를 감췄다. “당신과 함께하는 날은 매일이 기념일이잖아. 선물 당연히 줘야지.” 그는 또다시 최현아에게 말했다. “사실 요즘 관심 있는 프로젝트가 하나 있는데 시드 자금이 좀 필요해.” “얼마나 필요해요?” “한 1000억 정도?” “그렇게나 많이요?” 최현아는 의심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나도 사비를 마련해놨어. 그러니 3, 4억 정도만 좀 지원해 주면 나중에 꼭 갚을게.” 유성혁은 계속해서 애원했다. 하지만 최현아도 눈치가 있어 유성혁이 사업에 능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기에 결국 200억만 주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간 최현아는 남편이 준 선물을 자랑하며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역시 결혼 잘해야 돼. 남편이 직접 골라준 선물이야. 우리의 매일이 기념일이래.” 이 소식을 본 많은 사람이 좋아요 와 축하한다는 댓글을 달았다. 하지만 속으로 유성혁의 본성을 아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134화

    박민호가 그 이야기를 꺼내자 박민정은 퇴근 준비를 하며 가방을 챙겼다. “민호야, 원래 유남우와 윤소현은 약혼한 사이였잖아. 둘이 결혼하는 건 당연한 일이야.” “어떻게 당연한 일이야? 둘째 형이 진짜 좋아하는 사람은 누나야! 지금 누나가 마음을 돌리면 당장 결혼을 취소할 거라고!” 박민호는 유남우가 윤소현과 결혼해 그녀가 아들을 낳게 되면 자신은 더 이상 그에게서 관심을 받지 못할까 걱정하고 있었다. 박민정은 그의 속내를 이해했다. “민호야, 넌 이제 어른이야. 앞으로는 모든 일을 스스로 해결할 줄 알아야 해. 우리 평생을 다른 사람에게 의지할 수는 없어.” 박민호는 말을 잃고 그 자리에 서서 박민정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박민정이 떠난 후 그의 눈에는 싸늘한 기운이 깃들었다. “뭘 그리 잘났다고 잘난 척이야! 내가 너라면 차라리 유남우의 첩이라도 될 텐데!” 박민호는 자료 뭉치를 들고 자리를 떠났다. 그는 이 모든 장면을 아직 퇴근하지 않은 5팀 직원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5팀의 내통자는 박민호가 박민정에게 한 말을 최현아에게 전했고 최현아는 이를 듣고 웃으며 이 소식을 윤소현에게 다시 알렸다. 이 이야기를 들은 윤소현은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 “박민호, 정말 살아남고 싶지 않은 모양이네! 아빠와 소송을 벌이는 것도 모자라 박민정에게 유남우를 꼬시라고 말했다고?” 윤소현은 한창 새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던 중이었고 드레스룸에서 전화를 걸어 지시했다. “박민호에게 아주 철저히 본때를 보여줘.” 윤소현은 박민호를 동생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최근 계속 결혼 준비로 바빴지만 기회가 생긴다면 박민호를 철저히 매장시켜버리고 싶었다. 옷을 갈아입고 나가자 멀리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는 유남우가 보였다. “남우 씨.” 윤소현이 그를 부르자 유남우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말했다. “다 입어봤어?” “네, 이 드레스가 더 예쁜 것 같지 않아요?” 윤소현은 기대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유남우는 고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135화

    박민호는 박 씨 본사를 나와 돌아가던 중 몇 대의 차에 의해 길 한복판에서 가로막혔다. 그는 당황스러워했지만 곧 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다가오는 것을 보고 사태를 파악했다. 서둘러 창문을 닫고 경찰에 신고를 하면서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박민정이 떠올랐다. “누나, 제발 와서 나 좀 구해줘! 누군가 내 목숨을 노리고 있어!” 박민호는 자신을 이렇게 대놓고 위협하는 이들이 상당한 배후를 지닌 사람들일 것이라 직감했다. 비록 똑똑하진 않지만 그를 노리고 있는 이는 분명 윤 씨 가문 사람임을 알고 있었다. 박민정은 전화를 받자마자 그쪽에서 들려오는 차를 부수는 소음과 남자들의 위협적인 외침을 들을 수 있었다. “빨리 나와! 안 그럼 널 죽여버릴 거야!” 박민호는 차 안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겉보기엔 허세를 부리느라 비싼 차를 샀지만 그 덕분에 장비가 좋은 차 안에 있어 버틸 수 있었다. “누나, 들리지? 제발 나 좀 구해줘. 가능하면 둘째 형도 불러와.” 그는 박민정의 능력이 크게 뛰어나다고 믿진 않았지만 그녀의 뒤에 유남우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박민정은 바로 일어서서 말했다. “주소를 보내줘. 지금 바로 갈게.” 박민호는 곧바로 위치를 보냈다. 박민정은 망설임 없이 정민기를 불러 사람들을 데리고 가도록 했다. 박민호는 전화가 끊긴 후 박민정이 반드시 와서 자신을 구해주길 빌었다. 만약 그가 이대로 죽는다면 절대 편히 눈을 감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차 밖에서는 사람들이 여전히 차량을 두드리고 있었고 박민호는 온몸을 떨면서 평생 저지른 좋고 나쁜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는 정말 후회스러웠다. 그동안 그토록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렇게 박민정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한편, 박민정도 차를 타고 박민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녀가 있는 곳이 박민호가 사고가 난 곳에서 가깝긴 했지만 임신 중인 그녀는 자신이 나설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136화

    병원에 도착한 후 박민정은 박민호의 수술비를 지불하고 몇 마디 당부의 말을 남기고 떠나려 했다. “누나, 오늘 고마웠어.” 박민호는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비록 평소에는 감사할 줄 모르고 무심했지만 오늘 목숨을 걸고 도움을 준 박민정을 가슴 깊이 기억하게 된 것이다. 박민정은 아무 말 없이 그가 수술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사실 박민호가 어려움에 처했음에도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은 여전히 박형식의 은혜를 잊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병원을 떠난 후 박민정은 정민기에게 물었다. “박민호를 이렇게까지 죽이려 했던 사람이 누구였어요?” 정민기는 윤소현이라고 답했다. 박민정은 깜짝 놀랐다. 윤소현은 박민호와 같은 어머니를 둔 이복누나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런 무자비한 짓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정민기는 주의를 기울여 말했다. “최근 당신도 안전에 유의하셔야 합니다. 윤소현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행동하는 걸 보니 다음엔 당신을 노릴 가능성도 있어요.”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럼 당신이 몇 사람 더 붙여 저를 보호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알겠습니다.” 임신 중인 박민정은 특히 윤소현 같은 위험인물이 언제든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신경이 쓰였다. 집에 돌아오자 박민정은 박윤우와 방은정을 보고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다. 설인하 역시 며칠 동안 이곳에서 요양하면서 몸과 마음이 상당히 좋아졌다. 이제는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박민정과 웃고 떠드는 여유도 생겼다. 박민정은 설인하에게 힘든 육아 대신 충분한 휴식을 취하도록 당부했다. “아직은 충분히 쉬면서 몸을 회복해요. 한 달 후 에너지가 생기면 그때 아이를 돌봐도 늦지 않아요.” 설인하는 박민정의 배려에 고마워하며 말했다. “고마워요. 제 몸이 회복되면 열심히 일할게요.” 설인하는 전에 본인이 했던 얘기를 잊지 않았다. 박민정은 그 말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건 나중에 생각해요.” 이때, 진서연이 박민정에게 다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137화

    치료실에서 나온 후 지금 유남준의 시력은 완전히 회복되었다. “유 형, 상태가 어때?” 방성원이 그가 나오자마자 물었다. “훨씬 좋아졌어.” 김인우와 의사도 따라 나왔다. “방금 유 형에게 뇌 CT 검사를 해봤는데 수술 후 상태가 매우 좋아서 후유증은 더 이상 없을 거야.” “그럼 다행이네.” 방성원이 잠시 머뭇거리며 덧붙였다. “다만 최근에 유남우가 아직도 유 형을 찾고 있는 것 같아. 유남우가 나까지 알아낸 걸 보면 무슨 의도가 있는지 모르겠어.” 김인우는 비웃으며 말했다. “유 형이 이제 다 나았는데 유남우가 뭘 더 할 수 있겠어?” 유남준이 시력을 잃고 기억을 잃었을 때만 유남우가 그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이제 유남준이 회복된 만큼 유남우는 유남준에게 돌아가야 할 자리를 내놓아야 할 때였다. 유남준의 눈빛이 점점 깊어졌다. “내일 가서 유남우를 한 번 만나봐야겠다.” “유 형, 혹시 호산 그룹에 갈 거야?” 김인우는 기대에 찬 표정으로 물었다. 유남우가 호산 그룹을 접수한 이후 김인우의 이름뿐인 부장 자리도 없어진 상태였다. 유남준은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유남우는 언제나 내가 걔 자리를 빼앗았다고 생각하지.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한 이유가 내가 자궁에서 유남우의 영양을 빼앗았기 때문이라면서 자기가 나보다 뛰어났을 거라고 믿고 있어. 내가 유남우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지. 호산 그룹은 그에게 내주겠지만 난 IM 그룹을 이용해 호산 그룹을 짓밟아 유남우가 정말로 나보다 뛰어난지 아닌지 보여줄거야.” 그는 항상 이 동생이 직접 상황을 확인해야 깨닫는다고 생각했다. 김인우도 이 말을 듣고 나니 이 방법이 유남우의 기세를 꺾는 데 효과적일 거라 느꼈다. “근데 유남우가 전에 네 목숨까지 노렸잖아. 그냥 넘어갈 거야?” 김인우는 여전히 불안해했다. 유남준이 당시 완전히 회복하지는 않았지만 자기를 지킬 방법을 알았고 일부러 무심한 척하지 않았다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계산할 거야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138화

    “이상하네. 어디 갔지?” 김인우는 의아해했다. “신경 쓰지 마.” 방성원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박 씨 가문 별장 주변에는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어 방성원이 설인하와 아이를 몰래 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는 단지 멀리서 집 안의 상황을 지켜봤다. 비록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안심이 되었다. 방성원이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자 옆에 있던 김인우는 피곤해졌다. 방성원이 떠나지 않자 결국 김인우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데리러 오라고 전화했다. 그는 다짐했다. 앞으로 이 두 남자를 따라오는 호기심은 절대 품지 않겠다고. 너무 지루했기 때문이다. 박 씨 가문 별장 안에서 박민정은 이미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얕은 잠결에 갑자기 누군가 품으로 그녀를 끌어당기는 느낌에 놀라서 눈을 떴다. 손을 뻗어 침대 옆 불을 켜자 눈앞에 보이는 것은 유남준의 잘생긴 얼굴이었다. “나 지금 꿈꾸고 있는 건가요? 어떻게 들어왔어요?” 유남준은 자신이 담을 넘다가 정민기와 다른 경호원들에게 들킬 뻔했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정민기에게 경호원을 몇 명이나 배치하게 한 거야?” 그는 약간 쉰 목소리로 물었다. “많지 않아요. 이 안에 열 명 정도 있을 거예요. 왜요?” “별일 아냐. 잘했어.” 유남준은 박민정이 신뢰할 만한 사람들을 두고 있는 것에 안심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그녀가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을까 봐 불안해졌다. 그는 그녀를 더욱 꼭 끌어안았다. 박민정은 살짝 몸을 돌리며 말했다. “너무 가까워요. 제 배가 눌려요.” 유남준은 그제야 그녀를 조금 풀어주었는데 이제 박민정의 작은 배가 눈에 띄게 부풀어 있었다. “무슨 일로 온 거예요?” 박민정가 다시 물었다. 유남준은 박민정이 답장을 보내지 않아서 온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유남우가 결혼을 준비하는 거 알아?” 박민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윤소현이 청첩장까지 보냈어요.” 박민정이 가볍게 대답하자 유남준은 왠지 마음이 놓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139화

    “어디에 있어?” 유남우가 물었다. 도우미는 입구를 가리켰다. “바로 문 앞에 있습니다.” 유남우는 곧장 문 쪽으로 뛰어갔고 고영란도 그 뒤를 따랐다. 유남우는 유남준이 돌아오면 틀림없이 허름한 몰골일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나가 보니 차 안에서 깔끔하게 차려입고 앉아 있는 그를 발견했다. ‘혹시 유남준이 정신을 차린 건가?’ “형.” 곧 고영란도 다가와 유남준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남준아, 너 괜찮니?” 유남준은 이미 시력을 회복했지만 두 사람이 그 사실을 모르게 했다. “당신 누구야? 날 만지지 마.” “남준아, 나 네 엄마야.” 고영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잘 있던 아들이 어떻게 이렇게 변해버렸을까? 그때 차에서 방성원이 내렸다. “이모, 며칠 전 길에서 쓰러진 유 형을 발견해 데리고 있었어요. 한동안 깨어나지 않아 걱정했는데 마침 형을 찾고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야 데려왔습니다. 죄송합니다.” 고영란은 방성원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구나. 성원아.” 유남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유남준이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죽이려 했던 일을 폭로할까 봐 두려웠다. 방성원은 유남우의 일거수일투족을 눈여겨보며 속으로 의문을 품었다. 어째서 친동생이 이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 “맞아요. 의사가 진찰한 결과 유 형의 현재 지능은 어린아이 수준이라고 하니 가족들이 곁에서 함께해 주셔야 할 겁니다.” 고영란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그러고는 유남우에게 말했다. “남우야, 우리 네 형을 옛 저택으로 데려가자. 그곳에 우리도 있으니 네 형도 좀 더 즐거워할 거야.” 유남우는 반대할 수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좋아요.” 그는 손을 뻗어 유남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형, 내 집으로 데려갈게.” 유남준은 그의 손을 뿌리치며 외쳤다. “나를 만지지 마!” 유남우의 몸이 굳었다. 결국 고영란이 유남준을 유 씨 가문의 저택으로 데려갔다. 유남준이 미쳤다는 소문은 있었지만 이제 유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140화

    고영란은 손자를 돌보는 일에 꽤 관심이 있었다. 평소 그녀는 부인들과 차를 마시거나 피부 관리를 하고 가끔 중요한 회의에 참석하는 것 외에는 거의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네, 연우를 데리고 가서 며칠 동안 놀게 할게요.” 박연우를 데려가면 박민정은 두 곳을 오가느라 바쁘지 않을 것이다. “좋아, 오늘 중요한 회의가 있다면서? 내가 참석하고 회의가 끝난 후 너희와 함께 돌아갈게.” 고영란의 눈빛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네.” 박민정은 고영란이 회의에 참석하게 된다면 오늘 더 흥미로운 상황이 펼쳐질 것 같아 기대가 됐다. 박민정은 8시 반에 호산 그룹에 도착했고 회의 자료를 준비하던 중 유남우에게 불려갔다. “민정아, 큰형 일에 대해 들었지?”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침에 어머니께서 말씀해 주셨어요. 남준 씨를 찾으셨다더군요. 연우를 데리고 옛 저택에 가서 남준 씨를 돌보라고 하셨어요.” “오늘 아침에 너에게 전화했는데 형의 실종에 대해 얘기하려고 했었어. 그런데 금방 돌아오다니 정말 절묘한 타이밍이네.” 유남우가 말했다. ‘전화?’ 박민정은 의아해하며 대답했다. “제가 왜 당신의 전화를 받지 못했죠?” “아마 너무 일찍이라 아직 자고 있었던 것 같아. 반쯤 잠에 취해 전화를 끊었을지도 몰라.” 유남우는 그녀가 핑계를 댈 만한 이유를 얘기했다. 그 말을 듣고 박민정은 문득 아침에 유남준이 했던 ‘스팸 전화’ 발언이 떠올랐다. 유남우를 ‘스팸 전화’라고 칭하다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한 걸까? 박민정은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마도 그랬나 봅니다.” 잠시 후 문밖에서 홍주영이 문을 두드렸다. “둘째 도련님, 곧 회의가 시작됩니다.” “좋아.” 유남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갔다. 오늘은 영업부의 월간 실적 보고가 있는 날이었다. 최근 영업부장 자리에 새로운 인물이 들어왔기에 유남우는 그 성과에 대해 걱정이 있었다. 그는 할아버지에

최신 챕터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468화

    박민정의 머릿속은 온통 혼란으로 가득했다.심각한 정신 문제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해외 대기업들과 협력할 수 있지?그녀는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지는 기분이었다.“민정아, 무슨 생각해?”유남우가 차에 올라탄 그녀를 보고 조용히 묻자 박민정이 고개를 저었다.“별거 아니에요.”유남우는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박민정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빼며 물었다.“혹시 저한테 뭔가 숨기고 있는 거 없어요?”이 말에 유남우의 목젖이 떨렸다.“민정아, 날 믿어줘. 내가 너를 해칠 리 없잖아.”박민정도 그가 자신을 해치지 않을 거라는 건 알았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그가 분명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요즘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보려고 했는데 정말 기억이 흐릿해요.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했죠? 그런데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질 않아요. 그리고 정숙 아줌마에 대해서도...”유남우는 마음이 조마조마했다.“기억이 안 나면 그냥 잊어버려. 굳이 떠올리려고 하지 마.”그는 다시 박민정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박민정은 이번에도 피했다.유남우는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지난 1년 넘게 쌓아온 노력이 허물어질까 봐 두려웠다.‘여기서 모든 걸 망칠 순 없어.’“전에 네가 꽃밭을 보고 싶다고 했던 거 기억나? 그래서 내가 비행기 표를 준비했어. 게다가 꽃으로 가득한 저택도 한 채 샀는데 정말 아름다워.”그는 비행기 표를 꺼내 박민정에게 내밀었다.박민정이 표를 들여다보니 출발 시간은 오늘 새벽이었다.“이렇게 갑작스럽게 떠난다고요?”유남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응, 여기 환경이 네 회복에 좋지 않은 것 같아. 의사도 그랬잖아. 치료를 조금만 더 받으면 기억이 돌아올 거라고. 그때는 더 이상 과거를 물어볼 필요도 없을 거야.”박민정이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부여잡았다.“어쩌다가 교통사고로 기억이 이렇게 되어버렸을까요.”“자, 피곤할 텐데 이제 좀 쉬어.”박민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눈을 감자마자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467화

    또 부부라니?박민정의 눈에 의심이 가득했다.‘혹시 이 남자, 머리가 좀 이상한 거 아니야?’“저기요, 혹시 뭔가 착각하신 거 아닌가요? 제가 어떻게 당신의 아내일 수 있어요?”그녀의 말에 유남준은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그녀를 깊이 바라보았는데 그 눈빛엔 떠날 기색이 없었다.“우린 단순히 결혼한 사이가 아니야. 아이만 네 명이나 있잖아. 이 모든 걸 잊어버린 거야?”‘결혼에, 아이가 넷이라니!’박민정의 얼굴에 더욱 큰 충격이 스쳤다.“유남준 씨, 농담하지 마세요. 저한테 애가 있는지 없는지는 제가 제일 잘 알아요!”유남준은 그녀의 이런 반응에 마음이 저려왔다.“유남우가 대체 너한테 뭘 한 거야? 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건데?”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휴대폰을 들어 증거를 보여주겠다는 듯 전화를 걸었다.“지금 바로 윤우와 예찬이에게 전화해 볼게. 직접 보고 나서도 믿기 어려우면 그때 말해.”영상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화면 속 아이가 소리쳤다.“나쁜 아빠, 왜 전화했어요?”유남준이 먼저 전화를 걸어온 건 처음이라 여덟 살의 박윤우는 놀라움과 의아함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그런데 그 뒤로 보이는 박민정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이 커졌다.“엄마! 엄마! 엄마, 진짜 엄마에요? 나 꿈꾸고 있는 거 아니죠? 정말 엄마 맞아요?”아이가 흥분해서 소리치자 박민정의 머릿속은 더 혼란스러웠다.“네가... 내 아들이라고?”박윤우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 슬픈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엄마, 무슨 말이에요? 전 당연히 엄마 아들이죠. 설마 절 잊은 건 아니죠? 아니면 장난치는 거예요?”박민정의 눈앞에 나타난 이 귀여운 소년은 그녀의 상상을 넘어섰다. 그녀는 믿을 수 없는 듯 유남준을 바라보며 물었다.“분명 당신이 꾸민 일이죠, 그렇죠?”그러나 화면 속 박윤우는 계속 울먹였다.“엄마, 왜 그래요? 아픈 거예요? 나쁜 아빠, 엄마 얼른 데려와요. 저랑 형, 동생들도 엄마 너무 보고 싶어요.”유남준은 다급한 박윤우를 진정시키며 말했다.“알겠으니까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466화

    “월급 정산하고 당장 꺼져요!” 제임스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네...”그 직원은 이렇게 쉽게 직장을 잃을 줄은 몰랐고 자신이 저지른 일을 후회하며 고개를 숙였다.주영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로 서 있었고 잠시 후 창백해진 얼굴로 다시 변명했다.“사장님, 정말로 박민정이 먼저 손을 댔습니다!”제임스는 더욱 분노하며 소리쳤다.“주 비서가 여기 버젓이 서 있는 것도 어이가 없는데, 지금 당장 사모님께 사과해요! 그렇지 않으면 나를 적으로 돌리는 셈입니다.”주영리는 눈가가 붉어졌지만 제임스를 적으로 돌릴 자신은 없었다.하지만 그녀는 박민정에게 사과하는 일이 너무 억울하고 치욕스러웠다.박민정도 유남준이 이렇게까지 영향력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의 가벼운 한마디가 사장까지 움직이게 하다니, 예상 밖의 상황이었다.주영리는 어쩔 수 없이 박민정을 향해 다가가 말했다.“죄송합니다, 유 사모님. 다 제 잘못이니 너그럽게 용서해 주세요.”박민정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진동하는 휴대폰을 들었다. 화면에는 병원에서 보내온 검사 결과가 떠 있었는데 물컵 안에서 약물의 잔여물이 발견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모든 것이 사실로 밝혀지자 박민정이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죄송합니다’로 다 해결된다면 경찰은 왜 필요하겠어요?”그녀는 사람들 앞에서 주영리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휴대폰을 들어 신고 전화를 걸었다.제임스는 조금 의아했다. 이런 싸움 문제는 경찰을 부르는 것보다 내부에서 해결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그러나 박민정이 그쪽을 향해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하자 모든 사람들이 놀라 입을 다물었다.“어제 밤 회사 동료가 제게 약을 탄 음료를 건네고 저를 어떤 남자의 방으로 보냈어요. 여기에 관련 CCTV 영상과 병원의 감정서가 있습니다.”이 말을 들은 직원들은 웅성거리며 속닥이기 시작했다.“세상에... 어제 밤 민정 씨가 자발적으로 최 사장을 따라간 줄 알았는데, 사실이 아니었다니?”“주 비서가 이런 짓까지 하다니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465화

    “지금 이게 무슨 짓들이에요? 주 비서, 왜 먼저 손을 댄 겁니까?” 제임스가 단호한 목소리로 질책하자 주영리는 억울한 표정으로 먼저 변명했다.“사장님, 먼저 손을 댄 건 박민정이에요. 저는 단지 방어를 했을 뿐입니다.”제임스는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어서 손부터 놔요!”주영리는 마지못해 박민정을 풀어주면서 둘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위협했다.“오늘은 운이 좋았네. 두고 봐, 회사에 계속 있는 한 내 손에서 벗어나진 못할 거야.”박민정은 주영리와 다른 여자가 잡아당겨 흐트러진 옷을 정리한 뒤, 자리에 앉았다.‘병원에서 감정 결과만 나오면 누가 회사를 떠날지 뻔히 알겠지.’방금 두 여자를 상대한 탓에 박민정의 손과 얼굴에는 긁힌 자국이 남아 있었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상처를 처리하며 사장과 유남준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한편, 주영리는 키 크고 잘생긴 유남준을 보고 자연스레 다가갔다.“사장님, 이분은 누구신가요?”제임스가 대답하기도 전에 유남준은 주영리를 쳐다보지도 않고 곧장 박민정에게 걸어갔다.박민정의 얼굴과 손에 난 상처를 보자 그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흔들렸다.“그 여자 말고 또 누가 너한테 손댔어?”박민정은 그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순간 그의 깊은 눈동자 속에 빠져들어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그녀는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그 이유를 정확히 짚어낼 수 없었다.박민정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그 사이 주영리가 다가왔다.“아, 유 대표님이시군요! 방금은 오해였어요. 근데 박민정 씨 그렇게 무고하지 않아요. 방금 제 뺨을 두 대나 때렸어요.”주영리는 유남준을 보자 심장이 쿵쿵 뛰었다.‘이렇게 잘생기고 돈도 많은 남자라니. 좀 더 얘기 나눠봐야겠어.’그러나 유남준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내 아내가 누구를 때리든 무슨 문제가 됩니까?”아내?주영리는 멍해졌다.박민정도 놀라며 속으로 생각했다.‘내가 언제 이 사람 아내가 됐지? 난 남우 오빠 여자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464화

    주영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멀지 않은 곳에서 최 사장이 거대한 트럭에 치여 십 미터나 튕겨 나간 것이다. 그의 상태를 보니 살아남는다고 해도 불구가 될 게 뻔했다.주영리는 두려움에 온몸이 떨렸다.밖은 순식간에 사람들로 북적였고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정신을 차린 주영리는 생각했다.‘최 사장이 이런 일을 당했으니 이제 협력이 취소될 일은 없겠지.’불안과 안도의 감정을 동시에 품고 그녀는 서둘러 위층으로 올라갔다.“주 비서님, 무슨 일이에요?”동료들은 그녀를 둘러싸며 묻기 시작했는데 저마다 기대에 찬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주영리가 회사에서 쫓겨날 거라고 믿고 그녀의 자리와 권력을 탐내는 듯한 눈빛이었다.이 회사에 진정한 우정 따위는 없었다. 모두가 경쟁자일 뿐, 주영리가 쫓겨나면 비서 자리는 새로운 사람이 차지할 터였다.얼굴이 창백해진 주영리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아까 최 사장님이 나가다가... 트럭에 치였어요.”“뭐라고요?”사람들은 충격에 휩싸였다.박민정 역시 믿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사람이 그렇게 사고를 당했다니.잠시 후, 아래층에서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몇몇 직원들은 구경하려고 달려 나갔고 돌아온 이들은 안타까워하며 수군거렸다.“진짜 크게 당했어. 이미 손쓸 방법도 없대. 세상에, 이렇게 될 줄이야.”그 중 한 사람이 박민정을 향해 말했다.“박 비서, 그래도 마음은 좀 쓰이겠네.”박민정이 냉소적으로 대꾸했다.“마음 쓸 이유가 없어요. 최 사장님과 저,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요.”“아무 사이도 아니라고?”직원들은 이 말을 듣고 비웃기 시작했다.“참, 사람 너무 냉정하다. 오늘 아침까지 그 사람 차 타고 출근하더니 이제 와서 아무 사이가 아니라고 발뺌해?”“그래도 한때 서로 좋았을 텐데 이렇게 단칼에 끝내는 것도 참 매정하네.”그들의 말은 점점 더 독설로 변했다.하지만 박민정은 이들의 조롱에 신경 쓰지 않았다.그때 주영리가 박민정 앞으로 다가왔다.“최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463화

    박민정은 물컵을 챙긴 뒤 보안실로 향해 CCTV 영상을 확인했다.그녀는 경비에게 적지 않은 돈을 건넸고 곧바로 어제 퇴근 후의 영상을 확보할 수 있었다.영상 속에서 주영리가 자신의 물컵에 뭔가를 넣는 모습이 선명히 찍혀 있었다.‘좋아, 아주 좋아.’증거는 충분했다.하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박민정은 일부러 화장실에 간 척하며 병원으로 향했다. 물컵 속 남은 물을 감식 의뢰하기 위해서였다.컵에 남아 있는 물에 약물이 들어 있는지 확실히 알아야 했으니까.병원을 다녀오는 데까지 시간이 꽤 걸렸고 회사 내에서는 이를 두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생겼다.“보란 듯이 대놓고 결근이네. 뭐, 이제는 최 사장님 같은 백이 있으니까 다 무시하나 봐. 화장실 간다더니 한 시간은 넘게 있었을걸?”질투 어린 목소리가 사방에서 속삭였지만 박민정은 이런 말을 신경 쓸 리 없었다.한편, 주영리는 책상 한쪽에 앉아 있었지만 마냥 긴장을 풀지 못했다.직속 상사인 제임스가 아까 말하기를, 곧 최 사장님이 회사를 방문한다고 했고 게다가 이번에는 자신을 직접 찾겠다고도 했다.주영리는 두려움에 휩싸였다.설마 최 사장이 박민정의 말을 듣고 그녀의 편을 들어 자신에게 복수하려는 건 아닐까?그녀는 불안에 휩싸여 일조차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았다.결국, 최 사장이 들어왔다.그러나 그의 표정은 심상치 않았다.“주 비서, 당장 이리 와!”최 사장이 큰 소리로 외쳤다.주영리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휴게실로 들어가는 동안에도 불안한 마음에 손이 떨렸다.밖에서는 사람들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모두 최 사장이 박민정을 위해 직접 나선 거라고 생각하며 조금 전까지 박민정을 험담하던 사람들도 입을 꾹 다물었다.박민정 역시 이 상황을 지켜보며 속으로 비웃었다.‘참 간사하네.’휴게실.최 사장은 들어오자마자 주영리에게 일방적으로 쏟아내기 시작했다.“너, 네가 어제 나를 죽일 뻔한 거 알아?”주영리는 멍한 표정으로 되물었다.“최 사장님, 무슨 말씀이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462화

    주영리는 우유를 마시며 비웃듯 고개를 끄덕였다.“참나, 그때 밥 먹을 때는 얼마나 고상한 척하던데. 뒤에서는 그렇게 더러운 짓을 하고 있었네요.”옆에 있던 동료가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그렇게 말하지 마요. 어쩌면 이제 최 사모님이 됐을지도 모르잖아요. 괜히 건드렸다가 큰일 난다고요.”주영리는 조롱하듯 덧붙였다.“흥, 그 여자가 사모님 자리랑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세상에 예쁜 여자는 넘쳐나는데 고작 그런 애가? 겁낼 거 없어요.”다른 여직원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맞아요. 겨우 그런 걸로 뭐가 무섭다고. 하!”주영리는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그때 누군가 외쳤다.“어? 저거 봐, 한정판 벤틀리잖아! 혹시 회사에 또 대형 고객이 온 거야?”그 말을 듣자마자 모두의 시선이 그 차로 향했다.그리고 곧이어 그 차에서 내리는 박민정을 보고는 다들 말을 잃었다.주영리는 한순간 멍해졌지만 금방 상황을 파악했다.“봤죠? 저거 분명 최 사장님 차일 거예요.”곁에 있던 동료가 주영리를 치켜세우듯 말했다.“주 비서님, 진짜 대단하네요. 역시 사람 보는 눈이 있어요. 저 여자 진짜 못됐네요.”박민정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사람들 사이에 있는 주영리를 발견했다.그녀는 손을 꽉 쥐며 숨을 고르려 애썼다.주영리는 원래 박민정이 자신에게 보복할까 봐 걱정했지만 지금 박민정이 고급 차에서 내리는 걸 보고 같은 부류라고 착각했다.뻔뻔하게도 주영리는 박민정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민정 씨, 어제 재미있었어요? 나한테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고맙다고요?”박민정의 손이 번개처럼 빠르게 올라가더니 주영리의 얼굴에 따귀를 날렸다.팍! 소리가 울리며 주변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돌렸다.주영리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아파서 믿기지 않는다는 듯 박민정을 바라보았다.“날 쳤어요? 내가 아니었으면 오늘 민정 씨가 그 고급 차 타고 출근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천한 주제에 겉으로만 고상한 척하려고?”주변 동료들이 이 장면을 지켜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461화

    유남우의 온화한 얼굴이 잠시 굳어졌다.“그래? 정말 우연이네.”그는 여태껏 박민정을 잘 감춰왔지만 예상치 못한 우연으로 두 사람이 이렇게 마주칠 줄은 몰랐다.이게 유남준에게 행운인지, 아니면 불행인지 그는 알 수 없었다.“어쨌든 형의 겉모습에 속아선 안 돼. 그리고 회사에서 누군가 너를 노리고 있다면 진작에 나에게 말했어야지.”유남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자 박민정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뭐든 오빠한테 의지하고 싶지는 않아요. 저도 제힘으로 해내고 싶어요.”그러면서 그녀는 고개를 들어 유남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전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 제발 그대로 둘 수 없어요? 회사 문제는 제가 알아서 해결할게요.”주영리가 감히 자신을 함부로 대하다니, 그녀는 반드시 주영리에게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부탁이에요.” 박민정은 손을 뻗어 유남우의 팔을 붙잡았다.“제발, 도와줘요. 네?”박민정의 간절한 애원이었지만 유남우는 난감한 얼굴로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안 돼. 난 네가 걱정돼서 안심할 수가 없어.”박민정의 마음이 순식간에 무너졌다.“하지만 저는 이 일이 정말 필요해요.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왜 꼭 떠나야 하는 거예요? 그냥 오빠 형 문제잖아요. 그걸 가지고 저를 강요할 순 없잖아요?”유남우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다.“그만하자. 알겠어. 회사 문제는 정리할 시간을 줄게. 하지만 그 뒤엔 같이 떠날 거야.”박민정의 눈빛은 실망으로 가득 찼다.지난 1년간 그녀는 모든 걸 유남우에게 맞춰왔다.그를 사랑했으니까.하지만 겨우 이 작은 부탁조차 들어주지 않다니.박민정이 말을 잃고 침묵하자 유남우는 그녀가 화가 난 것을 눈치채고 달래듯 말했다.“화내지 마. 다른 곳으로 가도 네가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줄게.”그렇게 말한 뒤 그는 입을 가리고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박민정이 원래는 그를 무시하려 했지만 기침 소리에 마음이 약해졌다.“왜 이렇게 심하게 기침해요? 혹시 병이 재발한 거 아니에요?”유남우는 그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460화

    박민정은 처음으로 유남우에게 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녀는 유남우를 부축하며 유남준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저기요, 형이라는 사람은 원래 동생을 보살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오빠가 몸이 약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실 텐데, 어떻게 오빠를 때릴 수 있어요? 게다가 외부인이 있는 자리에서 체면 하나 세워주지 않고요.”박민정은 이렇게 지나치게 차가운 형을 본 적이 없었다.그녀의 꾸짖음에 유남준은 마치 목이 막힌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오빠, 우리 그냥 가요.”박민정은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로 유남우에게 말했다.“그래.”두 사람이 나가는 모습을 유남준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그는 순간적으로 막는 것도 잊은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예전에 자신만을 사랑하던 그녀가 이제는 다른 남자를 이렇게 따뜻하게 대하고 있다니, 믿을 수 없었다.한편 최 사장의 정보를 모두 조사한 서다희는 돌아오는 길에 사모님과 대표님이 함께 나가는 장면을 보았다.그는 막 부르려던 찰나, 대표님이 방에서 지친 모습으로 나오는 걸 보고 멈췄다.“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죠?”서다희는 한 걸음씩 유남준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대표님, 어젯밤 그 뚱뚱한 남자에 대해 알아냈습니다. 성은 최씨라고 하더군요. 본토에서 활동하는 무역상입니다.”잠시 생각에 잠겼던 유남준이 고개를 들었다.“뭐 해야 할지는 알겠지?”“네.” 서다희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사람을 붙여서 민정이와 유남우를 따라가게 해.”“유... 유남우 도련님이요?”서다희는 놀랐고 그제야 모든 게 이해되었다. 아까 대표님을 봤다고 생각했는데 대표님 동생이었다.하지만 박민정이 왜 유남우와 함께 떠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는 더는 묻지 않고 명령을 받고 자리를 떠났다.박민정은 유남우와 함께 돌아오는 길 내내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많이 아프죠? 병원에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그의 입가에는 아직도 피가 묻어 있었다.그러나 유남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괜찮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