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혁은 옆집 설전룡의 저택으로 막 돌아왔을 때 류혜진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너무 기뻤다. 류혜진이 먼저 집으로 오라고 전화를 했기 때문이다. 동혁은 류혜진이 이미 화가 풀린 줄 알았다. 그래서 곧바로 옆집인 하늘 거울 저택으로 달려갔다. “어머니, 저 돌아왔어요. 식사하셨어요? 안 드셨으면 제가 할게요!” 동혁은 기뻐하며 세화의 이모인 류혜연 가족에게도 인사했다. 하지만 류혜연 가족은 동혁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먹긴 뭘 먹어? 동혁이 넌 세화랑 같이 우선 가정법원부터 가서 일부터 처리하자. 내가 같이 가마.” 류혜진이 마침 위층에서 내려왔는데 손에 든 서류 봉투를 직접 동혁에게 건네며 말했다. 세화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엄마, 저희가 가정법원에 가서 뭘 해요?” 동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서류봉투에 든 결혼증명서, 호적등본 같은 서류들을 보고 이미 류혜진의 뜻을 알아차렸다. 게다가 H시에 돌아오자마자 선우설리로부터 보고받은 강오그룹 소식까지 종합해 보니 동혁은 류혜진이 이렇게까지 나오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뭘 하긴, 당연히 정식으로 이혼해야지!” 류혜진은 세화를 노려보았다.세화는 그 즉시 동혁이 가족들과 연루될까 봐 류혜진이 동혁과 자신을 이혼시켜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서두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 제가 R시에서 말했잖아요. 전 안 가요!” 세화는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 “이건 고집부린다고 다 되는 게 아니야.” 세화가 고집이 세다는 것을 알고 류혜진은 아예 설득할 생각도 없었다. 그녀는 인상을 쓰고 동혁을 쳐다보았다. “동혁이, 네가 한번 말해봐라. 불행한 건 너 혼자면 됐지, 세화도 너와 함께 불행했으면 좋겠어?” “세화만 한평생 평안하기만 하다면, 이 세상의 모든 불운이 제게 오더라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어요!” 동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세화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동혁 씨, 그런 소리는 하지도 마...” “넌 조용히 해!” 류혜진은
자신의 비서에게 이런 일을 돕게 할 때마다 동혁은 항상 좀 창피했다. 선우설리는 비서로서 프로정신이 있어서 별다른 감정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대답했다. [회장님, 잘 알겠습니다.] 30분도 안 되어 동혁의 전화가 울렸다. 하세량의 전화였다. [이 선생님, 가정법원을 닫으라는 것이 시간을 끌기 위해서 인가요?] “맞아요.” [제게 방법이 있는데, 국가에서 최근에 이혼조정기 법을 제정했습니다. 앞으로 부부가 이혼하려면 신청 후 한 달이 지나야 정식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이 법은 내년에야 시행되기 때문에 아직 몇 달 남았습니다.] [이 선생님의 신분으로 말만 조금 전하면 위에서 조기 시행을 선포할 겁니다.] 동혁은 듣자마자 괜찮은 생각이라고 느꼈다. ‘이혼조정기 법이라, 나에게 지금 절대적으로 필요한 법이야.’ ‘앞으로 어머니는 또다시 어려움이 생기면 나에게 다시 세화와 이혼하라고 할 거야.’ ‘이 한 달간의 조정기간이면 모든 일을 다 잘 정리할 수 있지.’ 동혁은 기뻐하며 말했다. “시장님, 설전룡에게 연락해 즉시 전신부 사람들을 바로 윗분들에게 보내 이 법을 시행하도록 해주세요.” 동혁이 휴대폰을 내려놓자 세화가 눈시울을 붉히며 걸어 나왔다. 류혜진은 세화가 고집을 부려 안 갈까 봐 마치 범인을 호송하듯 그녀의 뒤를 따라왔다. 류혜연 가족을 불러 함께 세화를 지켜보게도 했다. 류혜연 가족은 당연히 세화가 동혁과 이혼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렇게 해야 백천기에게 기회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집 안에서 이미 백천기에게 연락해 이 일을 말했다. 백천기는 N도에 갔다가 H시로 오는 길이었다.이 소식을 들은 백천기는 시속 180 킬로미터퍼로 운전 속도를 높였다. 마치 세화와 동혁이 이혼하면 그는 그 자리에서 바로 세화와 결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세화가 차에 타자 동혁이 휴지를 건넸다. “자, 눈 좀 닦아. 화장 다 지워지겠어.” “동혁 씨는 나와 이혼하는 게 그렇게 좋아?” 휴지
“이동혁 씨 그게 무슨 뜻이죠?” 백천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동혁은 별다른 표정 없이 말했다. “제가 내 아내와 이혼하러 왔는데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이길래 이렇게 급하게 온 건가요? 제 아내가 우는 걸 보며 비웃기라도 하려고요?” “쓸데없이 시비 걸지 마세요. 전 세화를 보고 전혀 비웃을 뜻이 없어요!” 백천기는 마음이 아파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는 세화를 보며 급히 부인했다. “비웃으려고 한 게 아니면요? 왜 이렇게 급하게 온 건가요?” “난 단지 세화를 대신해서 당신에게 한마디 해주려고 온 겁니다.” 백천기는 웃으며 승자의 자세로 여유 있게 말을 했다. “이제 헤어지게 됐으니 각자 잘 살라고요.” 백천기는 이 말이 세화와 동혁의 현재 상태에 매우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백천기 씨, 그럼 나도 한 가지 전할 말이 있어요.” 동혁도 웃었다. “예, 기꺼이 듣죠.” 백천기는 시원하게 대답했는데, 어쨌든 동혁이 무슨 말을 하든 오늘 동혁과 세화가 이혼하는 결말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혁이 담담하게 말했다. “오늘 이혼은 못 합니다.” 백천기는 깜짝 놀랐지만, 다시 시큰둥하게 콧방귀를 뀌었다. “동혁 씨, 지금 저를 놀리는 겁니까? 당신과 세화가 가정법원까지 와서 아직 이혼을 할 수 없다니요?” 그는 손을 뻗어 업무 창구를 가리켰다. “저 이혼한 분들 안 보이나요? 저분들은 아직 이혼을 못 한 겁니까?” “제가 못 한다고 하면 못 하는 겁니다. 아마 국가에서 세화와의 이혼을 허락하지 않을지도 모르죠.” 동혁이 웃으며 한마디 했다. 그러자 류혜연 가족들까지 웃음을 터뜨렸다. “이동혁, 당신 너무 마지막까지 발악하는 거 아니야? 국가가 둘의 이혼을 허락하지 않는다니 당신이 무슨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아?” “당신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지 마!” 동혁의 말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다들 동혁이 습관적으로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백천기도 동혁의 말에 웃었고, 갑자기 휴대폰을 꺼
“조 원장님, 괜찮으세요?” 조서산이 이유 없이 무릎을 꿇은 것을 보고 사람들은 급히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 백천기가 말했다. “조 원장님, 방금 너무 급하게 오시느라 몸이 좀 불편하신 거 같은데, 좀 쉬었다 천천히 하시죠. 이혼 처리는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되니까요.” “이, 이...” 조서산은 동혁을 쳐다보고는 두렵고 너무 놀라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조 원장님께서도 저 사람을 아시나요?” 백천기가 의아한 듯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조서산의 동혁을 보는 눈빛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의심스럽게 동혁을 보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백천기의 눈에 동혁은 여전히 평범하고 아무 일에도 쓸모없는 사람으로만 보였다. “네, 알죠, 뵌 적이 있어요.” 조서산은 동혁이 자신의 반응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자세한 말은 하지 못하고 대충 얼버무리며 식은땀을 흘렸다. ‘알고 보니 그냥 본 적이 있는 거였군.’ 백천기는 더 깊게 생각하지 않고 말했다. “원장님께서 힘드시니까, 그냥 직원들한테 처리하라고 시키시고 좀 쉬시지요.” “아, 그게...” 백천기가 이혼 처리를 계속 언급하자 난처한 조서산은 지금 속으로 백천기를 죽이고 싶었다. “조 원장님, 도련님이 시키면 그래도 하시면 됩니다.” 바로 그때 동혁의 농담 섞인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두려운 조서산은 갑자기 동공이 움츠러들더니 입을 크게 벌렸다. “제가 어찌, 감히...” 조서산의 목소리에는 이미 울음까지 섞여 있었다 그는 지금 이곳에 온 것을 너무나 후회하고 있다. ‘백천기 때문에 온 건데, 이 선생님의 일에 끼어들게 되다니.’ ‘저 백천기가 날 죽으려고 하는 거야.’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세요.” 동혁은 직접 손에 들고 있던 각 종 서류들이 든 봉투를 그의 몸에 던졌다. 백천기가 갑자기 화를 내며 소리쳤다. “이동혁, 당신 이게 무슨 태도인가요? 조 원장님께 존중심을 보여야지, 아무 신분도 아니면서 감히 손에 든 물건을
“새 공지라니요?” 조서산은 어리둥절했다. 시 가정법원과 중앙 가정법원 사이에는 거쳐야 할 몇 단계들이 있었다. ‘아무리 새 공지가 있더라도 순서대로 한 단계씩 내려오는 데 우리 쪽으로 직접적으로 공지가 날아왔다고?’ ‘특별히 중요하고 긴급한 일이 아니면 그럴 일이 없을 텐데, 무슨 일이지?’ “이전에 국가에서 통과시킨 이혼조정기 법 조항인데, 원래 내년 1월부터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직원이 도저히 믿기 어렵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데 방금 중앙 가정법원에서 공지하기를 지금 당장 시행하라고 합니다.” “이혼조정기? 그게 무슨 법이야?” 류혜진 등이 모두 멍해졌다. “네, 여사님, 이제부터 이혼 처리를 바로 할 수 없고, 먼저 신청을 한 후 한 달 뒤에야 정식 처리를 할 수 있다는 법입니다.” 조서산은 말하면서 시선을 동혁에게 돌렸다. 동혁의 표정은 담담해 그 어떤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고위층에 계신 분들이 이 새로운 법을 앞당겨 시행하라 지시했을 거야.’ ‘그리고 그 일은 앞에 있는 이 선생님과 관련이 있을 거고.’ ‘말이 곧 법이 이라더니.’ ‘말 한마디로 바로 법이 시행된다니.’ ‘저 이 선생님의 힘이 어디까지인지 상상도 할 수 없네!’ 류혜진은 초조했다. ‘지금 한 달을 더 기다리라고?’ ‘난 1분도 기다릴 수 없는데?’ “천기야?” 류혜진은 고개를 돌려 백천기를 바라보았다. ‘공지의 내용이 분명하더라도 당연히 천기가 원장님께 먼저 세화의 이혼을 처리해 달라고 부탁할 수 있을 거야.’ 백천기도 당연히 이혼 처리가 뒤로 미뤄지지 않기를 바랐다. “조 원장님, 법 조항 시행 공지는 방금 받는 것이니 지금 시행하나 1분 후에 시행하나 아무런 차이가 없잖아요? 시행하는 게 약간 늦는다고 아무도 추궁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원장님, 제 부탁을 들어준다고 생각하시고 먼저 좀 처리해 주세요.” 평소였다면. 백천기가 신세를 지게 하는 것은 조서산에게 정말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동혁이 이 자리
지금 화가 나 외친 사람은 동혁이 아니다. 바로 세화였다. 그녀는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나 두 눈에서 분노의 불을 뿜으며 백천기를 노려 보았다. “동혁 씨의 말이 맞아. 내가 동혁 씨와 이혼을 하든 말든 그건 너와 상관없는 일이야!” 백천기는 놀라며 주먹도 들어갈 만큼 입이 크게 벌어졌다. 그는 세화가 동혁을 위해 나서서 자신에게 소리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전에 않던 막말까지 내게 하다니!’ 세화는 백천기를 무시하고 동혁을 바라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이 이혼조정기 같은 건 필요 없어.” “한 달 동안 생각할 필요도 없이 난 지금도 동혁 씨와 이혼하지 않을 거라고 말할 수 있어.” 류혜진이 다급하게 말했다. “세화야, 너 우리 가족을 죽일 작정이야? 너 동혁이가 어떤 사람을 건드렸는지 알아? 네가 이렇게 충동적으로 말할 때가 아니야.” “엄마, 제가 충동적으로 말하는 것 같아요?” “엄마가 어찌 생각하든 상관없어요. 그래요. 그냥 제가 충동적으로 결정했다고 생각하세요.” 세화는 류혜진을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분명 동혁 씨가 무고한 사람인 건 동혁 씨와 나 그리고 가족들도 다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왜 동혁 씨를 버려서 나쁜 사람에게 선처를 구하려고 하는 거죠?” 류혜진은 세화의 질문에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나천일이 우리 가족에게 복수할 거라고.” “그건, 걱정 마세요. 제가 직접 나천일을 처리할 거니까요.” 동혁이 갑자기 담담하게 말했다. ‘이혼을 미루는 것은 단지 임시방편일 뿐이야.’ ‘그간 어머니의 성격으로 볼 때 강오그룹의 일이 처리되지 않으면 한 달 내내 소란을 피우실 거야.’ “네 능력으로?” 류혜진은 오히려 동혁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경찰에서 네게 문제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아무 힘도 없는 넌 아직도 구치소에 있었을 거야.” “거기에 지금 나천일은 눈에 뵈는 게 없어. 너에게 반드시 죄를 뒤집어 씌우겠다고 난리인데, 네가 이제 와서 그 사람을 어떻게 할
“자, 힘들이지 않고 내 경쟁자 하나를 해결했으니 축하하자고.” 나천일은 직접 술잔을 앞에 있는 현성태에게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형님.” 현성태는 잔을 받아 한 모금 마시고는 웃으며 말했다. “사실 형님은 아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심천미가 죽었지만 그녀의 절친인 진세화도 훌륭한 물건입니다.” “듣자 하니, 그 여자는 바보 이동혁과 결혼한 뒤 아직 잠자리를 같이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나천일의 눈에서 탐욕의 빛이 번쩍였다. 그는 비록 세화와 만난 적은 없지만 그녀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 ‘확실히 절세의 미인이긴 했어. 심천미와는 좀 다른 매력이랄까?’ 나천일에게 반응이 있자 그의 비위를 맞추려는 현성태는 계속 웃으며 말했다. “형님께서 그 여자를 갖고 싶다면 이번이 기회예요.” “그 여자의 바보 남편, 이동혁의 목숨 걸고 협박하면 순순히 형님의 침대로 올라갈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럴 수 없어.” 나천일은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그는 음산한 눈빛으로 말했다. “이동혁은 우리 아버지를 모해한 하수인이야. 만약 진세화를 갖기 위해 그놈을 봐준다면, 강오맹의 원로들이 나를 어떻게 보겠어?” “그놈을 죽여 아버지의 원수를 갚은 후에 기회를 봐서 그 여자를 잡아도 늦지 않아.” ‘심천미라는 큰 경쟁자를 해결했으니 곧 강오맹을 장악할 수 있어. 내가 H시의 암흑가 새 은둔 고수이자 대부가 되는 건 시간문제야.’ ‘그렇게만 되면 진세화정도의 일개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손바닥 뒤집듯 쉽지.’ “천일 형님은 역시 현명하십니다. 이동혁을 수습하고 강오맹 사람들의 마음을 얻게 되면 형님의 앞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현성태는 재빠르게 아첨을 했다. 그러나 나천일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지금 강오맹 내부에 골치 아픈 사람이 하나 더 남아있어.” 그 사람은 바로 선도일이다. 그는 강오맹의 명실상부한 고수였다. 다른 암흑가 세력들에게 강오맹은 강력하고 위협적인 살상무기를 보유한 조직으로
잠시 후. “백세종, 네 놈 정말 간이 크구나. 내가 지금 너를 죽일 수도 있는데 두렵지도 않나 보지?” 나천일은 반대편 소파에 앉아 있는 백세종을 차갑게 바라보았다. 그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백세종, 저 놈이 아무도 모르게 강오빌딩에 들어와 나에게 전화를 할 줄이야.’ ‘마치 이미 내가 자신을 만나 줄 거라고 확신한 것 같군.’ 백세종이 웃으며 말했다. “천일 형님이 장 회장의 복수를 하고 강오맹 내부의 인심을 얻고자 한다면 저희 동철 형님을 죽여야 하지요.” “저 백세종, 기껏해야 동철 형님께서 키우시는 개 한 마리에 불과한데 저를 죽인 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나천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백세종 저 놈의 말이 일리 있어.’ 염동철이 지금 여기 있었다면 나천일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손을 써 죽였을 것이다. ‘내가 염동철을 죽이면 숨겨진 고수가 많은 이 강오맹을 장악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야.’ ‘심지어 거만한 그 선도일조차 몸을 낮춰 나를 성심성의껏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염동철은 이곳에 없어.’ ‘여기서 백세종을 죽이는 건 무의미해.’ 나천일은 차갑게 말했다. “난 바보가 아니야. 내가 속아서 함께 선도일을 죽이면, 가장 기뻐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바로 네 형님 염동철이겠지.” “천일 형님, 어쨌든 저희 동철 형님이든 선도일이든 형님은 반드시 둘 중 하나를 죽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형님의 자리는 안정되지 않을 테니까요.” 백세종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어떻게 할지는 형님이 결정하세요.” 나천일의 생각이 깊어졌다. 잠시 후, 그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선도일이 블루산장으로 갔을 때 네 형님 염동철은 불난 집의 개처럼 도망치기 바빴는데 이제 와서 너희들이 정말 그를 죽일 수 있을까?” 백세종은 미소 지었다. ‘나천일이 말이 길어진다는 것은 이미 협력할 의향이 있다는 뜻이지.’ “그건 형님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저희가 장 회장을 죽인 것처
왕범현은 어렸을 때부터 무술을 연마해 왔고 지금껏 상대를 제대로 만난 적이 없었다. 그가 깡패들을 정리하는 건 마치 어른이 아이를 때리는 것과 같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동혁이 때리는 뺨을 피할 수조차 없었다. “비켜!” 왕범현은 팔을 휘둘러 제자들을 밀쳐내고는 다시 몸을 비틀거렸다. 자존심이 강한 그는 급히 무릎을 약간 굽히고 발을 넓게 벌려 똑바로 선 후에야 이를 갈며 동혁을 바라보았다. “이동혁, 네놈이 지금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지 않을 걸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어.” 말을 마치고 그는 옆 테이블 위의 맥주 한 병을 덥석 집어 들었다. “퍽!” 그는 맥주병을 바닥에 던져 산산조각을 냈고 깨진 유리가 바닥에 흩어졌다. “여기 술병들을 모두 깨뜨려.” 왕범현이 배경문 등에게 지시했다. 배경문 등은 그의 의도를 알지 못했지만 순순히 지시에 따랐다. 잠시 후 왕범현의 앞 바닥이 깨진 유리 한 겹으로 뒤덮였다. 왕범현은 동혁을 바라보며 바닥을 가리켰다. “잘 봐둬. 난 네놈을 때려서 여기에 무릎 꿇릴 거니까. 밤새 무릎을 꿇고 있어야 갈 수 있어.” “역시 범현이 형, 좋은 생각이에요.” “그래요. 저 데릴사위 놈을 밤새도록 유리 부스러기 위에서 무릎 꿇려요. 저놈 뼈가 단단한지 유리 부스러기가 단단한지 한번 보자고요.” 배경문 등이 모두 흥분하기 시작했다. 반면 현소의 작은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저 왕범현이라는 사람, 형부에게 뺨을 두 대나 맞았는데도 여전히 멀쩡한 걸 보니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 현소는 앞으로 나와 동혁을 잡아당기며 말렸다. “형부, 잠시 물러서요. 제가 아버지한테 전화해 볼게요.” 현소는 왕범현이 경찰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보고 군대에 있는 장영도의 힘으로 그를 제압하려고 했다. 이번에는 현수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동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거 없어. 네 아버지가 H시 군부에서 오시기 전에 왕범현은 이미 내 손에 수십 번 맞아 쓰러질 테니까. 괜히 네 아버지를 부르면
현소도 왕범현의 말에서 살벌함을 느끼고 일이 정말 커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걱정스러운 듯 동혁을 쳐다본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며 말했다. “형부, 제가 경찰에 신고할게요.” “경찰? 그럼 경찰서에서 사람이 오기 전에 네 앞에서 네 형부 팔다리를 부러뜨려야겠네.” 왕범현이 콧방귀를 뀌며 무시하자 현소는 흠칫 놀라며 손을 떨어 하마터면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괜찮아, 이 형부만 믿으면 다 괜찮을 거야.” 동혁은 현소의 어깨를 두드리고 왕범현에게 몸을 돌려 다가갔다. “하하하, 쓸모없는 데릴사위 놈 역시 찌질해. 무릎 꿇으러 오는 거 봐.” “무릎을 꿇을 거면 그 자리에서 잽싸게 꿇고 그 자리에서 형 앞으로 기어와.” 배경문 등이 흥분해서 휘파람을 불며 소리쳤다. 그들은 건방진 데릴사위가 무릎을 꿇으러 다가온다고 생각하고 매우 고소하다고 생각했다. “왕범현, 방금 때려준 그 뺨으로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 같네.” 동혁은 배경문 등을 무시하고 왕범현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왕범현은 처음에 동혁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다가 상대방이 들어 올린 손바닥이 자신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네놈이 감히.”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그는 손을 들어 올려 막으려 했다. ‘아까는 네놈 손이 너무 갑작스러워서 아무런 대응을 못한 거뿐이야.’ 왕범현은 자신의 실력에 대해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대비를 하면 네가 아무리 다시 습격하려고 해도 그냥 실패지.’ 그러나 다음 순간 그 왕범현은 슬픈 현실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왕범현이 설령 대비가 됐다 하더라도 여전히 동혁의 손을 피할 수는 없었다. “짝!”동혁의 손바닥이 왕범현의 뺨을 때렸고, 왕범현의 몸이 다시 가볍게 날아가 부서진 테이블 더미 사이로 세게 떨어져 내렸다. 정적이 흘렀다. 한순간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소란한 소리와 대조되게 2층의 이곳은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마치 모든 시간이
“와... 우리 형부 멋있네.” 지금 왕범현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뺨을 한 대 더 때리겠다고 소리치는 동혁을 보며 현소의 큰 눈에 하트가 떠올랐다. 동시에 그녀는 강한 안정감을 느꼈다. “저 쓸모없는... 이동혁이? 내가 잘못 봤나?” 바닥에 쓰러져 있던 현수는 자신이 본 모든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힘껏 비볐다. 배경문, 현수린 등도 모두 현수와 같은 생각을 했다. 그들은 처음 보는 동혁의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방금 전까지 그들의 눈에. 동혁은 허풍과 허세가 심하지만 실제로는 그저 한없이 찌질한 쓸모없는 데릴사위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들은 현소가 괴롭힘을 당해도 아무런 반응도 못하는 찌질한 인간이라고 동혁을 거리낌 없이 조롱했다. 그러나 동혁은 그들의 조롱을 강한 뺨 한 대로 막아버렸다. 한순간 동혁에 대한 배경문 등의 인식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저렇게 갑자기 범현이 형을 때리다니?’ ‘어떻게 감히?’ ‘범현이 형이 판명철 일당을 거의 반죽게 때리는 걸 봤잖아? 그런데도 감히 나서서 형을 때렸다고? 저런 놈이?’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서? 아니면 이미 미쳐서 자기가 죽을 줄도 모르는 건가?’ 배경문 등은 동혁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둘씩 앞으로 나서 동혁을 꾸짖었다. “범현이 형이 현소를 마음에 들어 하는 건 현소에게 영광이야. 그런데 쓸모없는 데릴사위인 네놈이 감히 형을 때려? 정말 죽고 싶나 보구나?” “오빠에게 감히 손을 대다니? 넌 그 결과가 뭔지 생각해 본 적이 있어?” “범현이 형이 아버지의 무술학교에서 아무렇게나 수천 명의 무술 수련생들을 데려올 수 있다는 거 알아? 넌 이제 죽은 거야. 오늘 아무도 네놈을 구할 수 없어.” “당장 이리 와서 무릎을 꿇고 형에게 사과하고, 스스로 네 뺨을 후려갈기면 어쩌면 용서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 배경문 등은 미친 듯이 떠들어댔다. 그들의 눈에 동혁은 이미 반쯤 죽을 사람과 같았다. ‘범현이 형을 저리 화나게 했으니 죽지 않더라도
“내 말이 틀렸어? 이게 다 저 이동혁 때문에 일어난 일이야. 누나는 괜히 엮인 거고. 그런데도 계속 이동혁 편을 들겠다는 거야?” 현수는 경멸하는 눈빛으로 동혁을 쏘아보았다. “이 찌질한 놈이 어떻게 했는지 봐봐. 그저 뒤에 숨어서 끽소리도 못하고 있잖아.” “누나는 이런 인간을 그렇게 감싸주고 싶어?” 현소와 현수 남매가 말다툼을 벌이자 지켜보던 배경문 등이 또 한바탕 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아주 쇼를 해라. 처남은 매형을 넘긴다고 하고 그 누나는 형부를 감싸고.” “그런데 저 형부라는 인간은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없네.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 맞는구먼.” “하하, 저 데릴사위 놈이 겁에 질려서 그런 거겠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동혁을 또 비아냥거렸다. “그만, 입 닥쳐.” 왕범현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사람들의 말을 멈추게 하고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현소를 응시했다. “봤지? 이런 인간이 바로 네가 그렇게 보호하고 싶은 형부야. 놈에 비하면 나 왕범현이 훨씬 남자답지 않아?” “내가 다시 네게 내 정식 여자친구가 될 기회를 줄게. 그러면 앞으로 H시에서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않을 거야.” “하하하.” 왕범현은 거만하게 웃기 시작했다. 그는 예전에도 이런 심리적 설득으로 많은 순진한 여자들을 사로잡았었다. 현소는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꿈 깨요. 난 죽어도 당신의 여자친구는 되지 않을 거니까.” 왕범현은 웃음소리를 뚝 그치더니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할 수 없네. 네가 정말 끝까지 그렇게 고집을 부릴 수 있는지 한번 봐주지.” 왕범현이 바로 현소에게 다가갔다. 현수가 재차 말리려 했다. “스승님, 이 제자의 얼굴을 봐서라도 제발...” “꺼져!” 왕범현은 발로 현수를 차서 바닥에 쓰러뜨렸고 현수는 고통을 느끼며 비명을 질렀다. “현소야, 날 받아줘. 네게 오늘 좋은 밤을 약속할게. 하하하.” 다음 순간 왕범현이 현소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어 그녀의 부드러운 얼굴을 만지려고 했
현수린의 말을 들은 현소의 작은 얼굴이 분노로 붉게 상기되었다. 그녀는 왕범현이 정말 그런 음흉한 속셈이 있는 줄 몰랐다. ‘그러니까 형부를 괴롭히고 그 기회에 나를 자기와 잠자리하게 하겠다고? 그런 천한 여자들이나 하는 일을 내게 하라고 하는 거야?’ “흥, 그런 징그러운 일을 어떻게 해요?” 현소는 현수린을 노려보며 말했다. “전 당신 같이 싸구려가 아니에요. 목적을 위해서 쉽게 남자와 잠자리하는 그런 여자가 아니라고요.” 현소의 말은 현수린을 욕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현수린의 화장을 한 얼굴이 불쾌함으로 일그러졌다. “상황이 이런데도 고고하게 순결을 고집하다니, 그럼 네 형부 팔다리가 부러지는 수밖에 더 있겠어?” 현수린이 비웃으며 말했다. “겉으로는 자기 형부를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기 이익이 걸리니까 역시 뒤로 물러나는 군.” 현수린만큼 말주변이 좋지 않은 현소는 전혀 그녀에게 반박할 수 없었다. 그저 고개를 들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동혁을 바라볼 뿐이었다. “형부!” 현소의 목소리에는 억울함이 가득했다. “저 여자 말은 신경 쓸 거 없어. 넌 형부인 나를 생각해 주는 좋은 사람이라는 걸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동혁은 현소의 눈물을 닦아주고 웃으며 말했다. “누군가를 생각해 준다는 핑계로 자신의 깨끗한 몸을 가져다가 망치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야.” “그리고 누군가가 널 그렇게 만들고 싶은 이유는 그 사람의 몸이 이미 더러워졌기 때문이야. 그래서 너까지 끌어들여 자신처럼 만들고 싶기 때문이지.” “한마디로 저 여자는 단지 너를 질투해서 그러는 거야.” “응응, 형부 말이 맞아요.”현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름 안심했다. 동혁은 현수린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어 보았고, 동혁의 말을 들은 그녀는 화가 나서 표정이 일그러졌다. 현수린이 고개를 돌려 왕범현에게 소리쳤다. “범현이 오빠, 저 인간들에게 더 이상 쓸데없는 말 할 필요 없잖아요? 그냥 바로 손을 봐주세요. 그리고 현소, 저년도 그저 순
“아래층에서 술을 마신다고? 알았어.” 오반석이 몇 마디를 하고서 전화를 끊고 왕범현에게 말했다. “아래층에서 친구 몇 명이 기다리고 있어서 먼저 좀 내려가야 할거 같아.” “왕 사장이 나 대신에 고생 좀 해줘. 나중에 이번 일은 내가 후하게 갚아줄게.” 말을 마친 오반석은 동혁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돌아서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내가 왕 사장의 솜씨를 본 적이 있지. 역시 용비무술학교 교장 왕용비의 아들답게 깡패 몇 명을 상대하는 게 아주 우스웠어.’ ‘이동혁, 저놈이 상대가 될 리 없지.’ “범현이 형, 빨리 손 좀 봐줘요. 일단 저 데릴사위 놈 무릎부터 꿇려 놓고 보자고요.” “맞아요. 저흰 아까부터 저 쓸모없는 인간이 눈에 거슬리던 참이었어요.” 오반석이 떠나자 배경문, 현수린 등은 소란을 피우며 왕범현이 동혁을 패는 모습을 보고 싶어 안달을 냈다. “하하, 급할 거 없어.” 왕범현은 웃는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담담한 눈빛으로 동혁을 바라보았다. “쓸데없는 놈 하나 처리하는 건, 아무 때나 상관없어. 어쨌든 저놈은 도망갈 수도 없으니까.” 전혀 아무렇지 않은 말투는 마치 동혁을 도마 위의 도살 직전의 생선과 고기로 여기는 것 같았다. 순간 모두들 멍해졌다. ‘범현이 형은 이동혁을 지금 처리하지 않고 또 뭘 하고 싶은 거지?’ “난 그전에 다른 얘기를 좀 하고 싶거든.” 왕범현은 실실 웃으며 작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현소에게 시선을 돌려 말했다. “현소야, 방금 반석 도련님의 말을 너도 들었지? 나보고 네 형부를 혼내 주라네.” “그럼, 넌 뭐라 하고 싶은 말 없어?” 방금 동혁이 모든 사람들의 공격을 받을 때 오직 현소만이 동혁을 지키려고 했다. 이 모든 과정을 눈여겨본 왕범현은 현소가 마음속에서 동혁을 의지하는 게 매우 클거라고 생각했다. 왕범현은 보자마자 현소에게 반했고 청순하고 매력적인 그녀를 차지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제멋대로 날뛰는 데만 익숙해서 여자에게 구애하는 방법을 쓸 줄 몰랐다. 그저 마
“하하하.” 오반석은 아무 거리낌 없이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오한민이 이씨 가문으로부터 독립하겠다는 자신의 마음을 내비친 뒤부터 오반석의 마음속에는 이씨 가문에 대한 경외감이 줄어들었다. 그는 한때 이씨 가문의 도련님이었던 동혁을 모욕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하하하.”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웃기 시작했다. 배경문은 경멸의 눈초리로 동혁을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발톱 빠진 호랑이 신세라는 거잖아요. 이씨 가문 도련님이라는 신분이 없으니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죠.” “어쩐지 그러니 처갓집에 기대서 사는 데릴사위 신세가 됐지.”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빈정대며 경멸 가득한 눈빛으로 동혁을 바라보았다. 동혁에게 한바탕 모욕을 주고 나니 속이 한결 시원해진 오반석은 그제야 용건이 생각났다. 그는 혼자 술을 잔에 따른 후 천천히 말했다. “이동혁, 오늘 내가 널 만나러 온 건, 사실 우리 아버지 대신 경고를 하려는 거야.” “전에 아버지는 이씨 가문을 대신해서 네놈에게 이천성을 N도로 돌려보내고 무릎 꿇고 사죄할 3일의 시간을 주었어.” “내일이 그 마지막 날인데 아직 아무런 조처도 없는 걸 보니 한번 호되게 당하고 싶은 건가?” 여기까지 말한 오반석은 갑자기 날카로운 눈빛으로 동혁을 응시하며 압박했다. “아니면 우리 아버지의 말을 무시한 건가?” 다른 사람들도 오반석이 오늘 밤 동혁을 만나러 온 목적을 알게 되었다. 순식간에 동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동정으로 변했다. ‘명문가 이씨 가문에서 쫓겨난 도련님이 이제는 이씨 가문에 무릎 꿇고 사죄하라는 요구까지 받다니, 너무 비참하게 만드는 거 아니야?’ 현소도 이제야 이 일을 알게 되었고 그녀조차 동혁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왜 대답이 없지? 뭐라 말 좀 하지 그래?” 동혁이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 말없는 것을 보고 오반석은 불만스럽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동혁은 편안한 자세로 바꾸더니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네가 나 대신 잘 대답
이 말을 들은 오반석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 순간 자신이 동혁의 앞에서 겁을 먹었음을 깨닫자 오반석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예전에 태백산장에서 동혁에게 하루에 두 번 맞은 것은 그의 마음속에서 여전히 지울 수 없는 고통이었다. 지금 동혁이 그 일을 면전에서 언급하는 바람에 오반석의 체면이 또다시 구겨졌다. 왕범현은 이런 오반석을 보고 속으로 웃었다. ‘아, 반석 도련님이 저 데릴사위 놈에게 한번 당한 적이 있었구먼.’ ‘어쩐지 내가 도련님에게 이동혁과 무슨 원한이 있냐고 물었을 때, 대충 얼버무리며 그냥 이동혁을 혼내주라고 하더라니.’ 웃음은 그저 웃음일 뿐 왕범현은 이때 자신이 누구를 도와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동혁이라고 했나? 죽고 싶지 않으면 자리를 보며 까불어야지.” 왕범현은 고개를 들고 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반석 도련님의 아버지는 리성투자회사의 부사장이야. 네놈처럼 처갓집에 기대서 밥이나 축내는 데릴사위가 모욕할 수 있는 분이 아니라는 거지. 그러니 당장 반석 도련님께 사과해.” “우와.” 왕범현의 말을 듣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한바탕 탄성을 질렀다. 모두 오반석의 신분 배경을 듣고 놀란 것이었다 최근 3대 가문이 몰락하면서 리성투자회사가 H시에 진출해 수많은 사업들을 벌였다. 리성투자회사에서 투자한 회사는 많은 H시 사람들에게 화젯거리가 되었다. 이슈를 몰고 다니는 엄청난 자본의 회사인 만큼 H시의 시장 하세량조차도 눈치를 살피며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이 때문에 리성투자회사 부사장의 아들이라는 신분은 모두가 우러러보는 위치였다. “이야, 리성투자회사의 반석 도련님을 다 보네.” “오늘 반석 도련님과 이렇게 만나 술을 마시게 돼 영광이에요.” 그러자 배경문 등이 앞을 다투어 오반석에게 아부했다.여자들은 눈을 모두 초롱초롱하게 뜨고 오반석을 쳐다보았다. 여자들 중에서 자신이 가장 예쁘다고 생각한 현수린이 애교스럽게 말했다. “도련님, 아마 H시에 오
“범현 오빠가 제때에 손을 써서 이 쓸모없는 인간의 음모대로 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야.” “그래, 모두 범현 형에게 감사해야 해. 오빠가 아니었다면 저 데릴사위가 방금 미친 듯이 저 형님을 도발했으니 오늘 누군가는 반쯤 죽었을 거야.” 모두들 저마다 한 마디씩 하면서 동혁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깎아내렸다. 심지어 동혁이 아까 판명철 등을 제지해 그들을 구한 것조차도 동혁이 보복을 노리고 판명철을 도발한 것이라며 음모라고까지 했다. “형부, 이 언니오빠들 좀 봐요. 아주 열받아 죽겠어요.” 배경문 등의 뻔뻔스러움에 현소는 화가 나서 온몸이 떨렸고, 큰 눈에 눈물이 맺혀 촉촉하게 변했다. 동혁이 현소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현소야, 쓰레기 같은 인간들에게 일일이 화낼 필요 없어.” “약자는 보통 남을 깎아내려야 자신이 높아진다고 생각하니까.” “저런 착각 속 인간들은 현실에서 언제나 패배자로 살 수밖에 없어.” “그저 파리 몇 마리가 귓가에서 윙윙거린다고 생각하고 그냥 무시해 버려.” “굳이 말을 섞어서 너까지 저런 인간들 같은 사람으로 전락하지 말고.” 동혁의 말을 듣고 현소는 마음을 다잡았고, 그녀의 작은 얼굴을 들어 동혁을 우러러보며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현장이 잠시 조용해졌다. 그것은 마치 폭풍이 닥치기 전에 잠잠한 것과 같았다. 배경문 등은 분노하여 폭발했다. “와, 저 아내집에 얹혀 살며 공짜밥이나 얻어먹는 쓸모없는 놈이, 다들 무시하는 개보다 못한 데릴사위 주제에 지금 누굴 가리켜 그딴 헛소리야?” “가소로워서. 데릴사위 놈이 자기가 정말 패배자인지도 모르고, 우리에게 패배자라니.” “가서 거울보고 자기 주제파악이나 해. 우리랑 말도 섞을 수 없는 쓸모없는 인간 주제에 어딜 감히.” “...”처갓집에서 미움받는 데릴사위에게 멸시를 당한 배경문 등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잠시 멍해졌다 정신을 차린 배경문 등은 자신들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듣기 싫은 말로 동혁을 욕했다. 현소는 동혁 대신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