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달 두목은 하현과 변백범을 조롱하는 얼굴로 쳐다보았다. “응, 오늘 밤 우리 둘이서 공사장 안전을 책임질 거야.”하현이 입을 열지 않자, 변백범이 앞으로 나서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이 사람들은 아직 하현과 대화할 자격이 없었다. 건달 두목이 변백범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웃으며 말했다.“보아하니, 너도 길바닥 놈이지? 근데 남원 길바닥에서 유명한 사람들은 내가 다 아는데 너 이제 막 나왔지?”“너 우리가 누군지 알아? 길바닥에서 생활 하려는데 우리와의 사이가 틀어진다면, 결말이 어떻게 될 지는 알고 있겠지?”건달 두목이 지껄였다. “설 회장도 우리를 너무 얕잡아 봤네. 우리를 상대하려면 적어도 이름있는 사람을 찾았어야지. 그래야 앉아서 얘기라도 하지.”“어디서 알지도 못하는 꼬마녀석들이 튀어나와서 우리 앞에서 얼쩡거려?” 건달 두목은 시큰둥한 얼굴로 하현과 변백범을 바라보았다. 그들 쪽은 백 명이 넘었고, 하현 쪽은 두 사람밖에 없었다. 그러니 그가 보기에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가지고 놀다 죽이는 건 시간 문제였다. “자, 시간 낭비하지 말고 이 두 사람을 처리해. 죽이지만 말고!”“가서 지게차를 몰고 와서 두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려버려.”두목 건달은 얼굴에 피비린내가 가득했다. 분명 이런 비슷한 일들을 너무 많이 해봤을 것이다. 그의 부하들은 지금 섬뜩한 웃음을 지으며 걸어나갔다.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두 명을 상대한다고?정말 때리고 싶은 만큼 때릴 수 있었다. 이때, 변백범은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도련님, 이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할까요……?”“못 들었어? 그들이 우리 두 다리를 불구로 만든다잖아.”하현은 가볍게 입을 열었다.“알겠습니다!”변백범도 군말 없이 순간 가볍게 손뼉을 쳤다. 곧 사방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하나같이 검은 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이 사람들은 소리 없이 조용했고,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살기가 느껴졌다.
“이 사람들의 정체를 알아봐.”하현은 나무 말뚝 위에 아무렇게나 앉아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건달 두목은 지금 힘써 버티며 고개를 들고 하현을 노려보며 얼굴에는 불가사의한 기색을 띠고 있었다. 그는 이제 변백범이 방금 남원 길바닥에 들어온 맹렬한 용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이 용은 오히려 하현 앞에서는 온순한 양처럼 공손했다.평범해 보이는 이 청년은 도대체 어떤 제왕인 것인가?변백범은 앞으로 나가 이 건달 두목의 멱살을 잡고 그를 들어올려 공중에 띄웠다. “말할게요. 전부다 말할게요. 대도 경수 형님이 우리를 보낸 거예요!”이 건달은 지금 놀라 오줌을 쌌다. 그의 사람들이 전부 두 다리를 잃었다. 그가 만약 이때 계속 허튼 소리를 한다면 그는 상대방이 그를 직접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믿었다. “경수 형이구나. 그의 체면을 봐서 30분 줄게. 그 안에 나를 찾으라고 해. 내가 직접 그를 찾으러 가게 하지 말고.”변백범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는 하현 앞에서는 비할 데 없이 공손한 부하였다. 하지만 지금 이 건달들 눈에 그의 웃음은 더할 나위 없이 위협적이었고 공포 그 차체였다.“네네, 제가 바로 전화하겠습니다.”이 건달은 곧 오줌을 쌀 것 같았다. 재빨리 전화를 걸었다. 지금 대도 경수는 애인의 품에 안겨 누워있었다. 전화를 받았을 때, 그는 때마침 일을 하고 있었다. 귀찮다는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 그는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뭐하고 있는 지 몰라? 일은 해결 됐어? 그 귀인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형님, 사…… 사고가 났어요……”전화 맞은 편에서 건달의 목소리는 다급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고?”“네, 형님, 빨리 오세요. 우리 모두 당했어요. 그들이 우리를 불구로 만들었어요!”건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가 끊겼다. 대도 경수는 이 상황을 보고, 바로 나왔다. 방을 빠져 나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모든 애들을 데리고 같이 가자
“이 새끼! 너_____”어떤 깡패 하나가 노기 띤 얼굴로 돌진해 왔다. 생각지도 못하게 변백범이 손을 휘두르자 소매에서 칼날이 튀어나와 그 깡패의 얼굴에 박혔다. 깡패는 얼굴을 가리고 처량하게 슬피 울부짖기 시작했다. 동시에 변백범은 다시 한 번 손을 휘둘렀고 작고 날렵한 칼 한 자루를 손에 잡고 제멋대로 대도 경수의 목을 떠받쳤다. 도둑은 순간 정신을 차렸다.이 순간 눈앞에는 강을 건너온 진정 맹렬한 용이 있었다. 그가 만약 원한다면 언제든지 자신을 없애 버릴 수 있었다. 이 생각에 미치자 대도 경수는 두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할 말이 있으면 좋게 말씀 하세요. 백범 형님, 모두 길바닥 사람들이잖아요. 평소에 자주 만났는데 체면 좀 세워 주시죠?”대도 경수도 바보가 아니었다. 이럴 때 두려워하지 않으면 자신은 정말 죽을 수도 있었다. 변백범은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를 향해 씩 웃더니 손을 한 번 흔들었다. 곧 이어 한 무리의 사람들이 어두움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순식간에 방금 전까지 무력을 과시하며 뽐내던 백 여명의 깡패들이 모두 바닥에 쓰러졌다. 이 속도는 좀 무서울 정도로 빨랐다. 이 건달들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공포가 감돌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지? 어떻게 이렇게 무서운 거지? 이런 부하들을 두다니. 시종일관 담담한 이 젊은이의 정체는 뭐지? “탁탁_____”변백범이 발로 걷어차자, 대도 경수도 땅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지금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이미 변백범과 협상할 아무런 밑천도 없었기 때문이다. 변백범이 그를 혼내주고 싶은 만큼 마음껏 그를 혼낼 수 있었다. 길바닥 사람들이 자신의 사람들을 잔혹한 방법으로 해치웠던 것이 생각났다. 대도 경수는 지금 오줌이 나올 지경이었다. “경수 형, 이 시점에서 계속 입 다물고 있을 거야? 아니면 다 털어 놓을래?”변백범은 쭈그리고 앉아 손을 뻗어 대도 경수의 오른쪽 뺨을 가볍게 쿡쿡 찌르며
하현은 핸드폰을 받아 내용을 살펴봤다. 이것은 낯선 번호였지만 안에는 임무 사항이 있었다. 상대방이 대도 경수에게 시킨 일은 아주 간단했다. 대모산 리조트 프로젝트를 중단시키고, 설은아를 회장 자리에서 내려오게 하라는 것이었다. 하현은 직접 대도 경수의 핸드폰으로 상대방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맞은편에서 나지막하면서도 위엄을 잃지 않는 소리가 들렸다. “경수야, 나한테 직접 전화하지 말라고 했잖아?”“세자가 분부한 일은 어떻게 됐어?”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네가 말한 거야?”“타닥_____”상대방은 재빨리 전화를 끊었다.하현은 다시 전화를 걸지 않고 핸드폰을 바닥에 내던졌다. “도련님, 상대방은 도대체……”“왕씨 집안 사람이야.”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변백범은 의아하게 말했다.“도련님, 뭣 때문에 그렇게 확신을 하세요?”“왜냐면 남원에서 감히 자신을 세자라고 부르는 사람은 딱 둘 뿐이야.” “하 세자……”“그리고 소위 왕 세자……”변백범은 고개를 떨구고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를 할 수 없었다.그는 하현이 한 말의 의미를 아주 분명하게 들었다.남원에는 오직 두 세자가 있는데 상대방의 입에서 ‘세자’라고 하는 말은 분명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신분을 거의 노출시킨 것이다. 하지만 하현이 자신의 신분을 스스로 밝히기 전에 변백범은 감히 더 묻지 못했고 심지어 추측할 용기도 없었다. “하 도련님, 이 사람들은 어떻게 처리 할까요? 전부 강에다 내던져서 물고기 먹이로 줄까요?” 변백범은 화제를 바꾸어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범이 형, 범이 형님, 제발 구해주세요. 다들 길바닥 사람들이잖아요. 제발 저희 좀 살려주세요!”“우리도 강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었어요!”“우리도 원치 않았어요!”땅 바닥에 엎드려 있던 대도 경수는 오줌을 지리고 있었다. 지금 둥둥둥 발버둥을 치며 기어올라 땅이 닳도록 머리를 조아
다음 날.설은아가 아침 일찍 설재석 사람들과 시공을 하러 공사현장에 도착했을 때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 공사장에는 열기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께 철거된 건축물들이 오늘 전부 세워져 있었다. 더 무서운 것은 벽돌을 옮기는 사람들이 다리를 절고 있었고, 모두 문신을 한 살벌한 건달들이었다는 것이다. “이 사람들 그날 그 건달들 아니야?”설은아는 불가사의한 얼굴로 이 광경을 보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 말썽만 부리지 않아도 좋으련만 현장에서 벽돌을 나르다니? 이게 무슨 상황이지?”“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설은아와 사람들은 모두 수상쩍게 생각했다. 이때 검은색 옷을 입은 중년 남성이 달려왔고, 그 뒤로 동생이 따라왔다. 이 장면은 설은아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설은아가 경찰을 부를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대도 경수가 허허 웃으며 입을 벌렸다.“설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도 경수라고 합니다!”“이틀 동안 저희 동생들이 눈뜬 장님들이라 당신들께 폐를 끼쳤습니다! 오늘 사과하러 왔습니다!”“어젯밤에 제가 이미 얘네들을 혼내줬고 밤에 이전에 헐었던 것들을 세워놨습니다!”“그리고 제 밑에 있는 5백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은 지금부터 모두 귀사의 자원 봉사자로 누구도 공사장에 와서 소란을 피우지 않도록 할 것을 보장합니다!”“맞아요! 저희는 돈 안 받아요!”대도 경수는 자신에게 그렇게 예의 차릴 필요 없다는 듯 정의감에 넘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장면을 본 설은아는 어리둥절했다. 상대방이 이렇게 열정적이니 그녀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뒤이어 대도 경수는 다시 공손한 얼굴로 공사를 훼손한 위자료라며 현금 4백 억을 가지고 왔다. 이 장면을 보고 설은아는 너무 얼떨떨했다. 하지만 전에 시공팀에 큰 손실이 있었고 이 돈은 시공팀에게 배상하기에 딱 좋았기 때문에 설은아도 거절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설은아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며 말했다.“너 도대체 무슨
그때, 왕정민 뒤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래사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오래되고 화려한 왕조의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이 시대에 이런 장면이 나오는 것은 분명 기이하고 신비롭다. 한참 뒤에 왕정민이 손을 흔들자 곁에 있던 누군가가 오래된 사냥용 활을 건냈다. 그가 활을 구부려 쏘았는데 그건 화살이 아니라 작살이었다. 우레와 같은 소리와 함께 잠시 후 바다 위에 피의 물결이 한 조각 떠올랐다. 왕 세자만의 사냥이 끝났다. 그는 사냥용 활을 내려놓고 정교하게 수 놓아진 손수건으로 손바닥을 여러 번 닦은 뒤에야 고개를 들고 뒤를 바라보며 말했다. “모두 일어서.”“감사합니다. 세자님!”한 무리의 사람들이 여전히 두 손을 늘어뜨리고 일제히 일어섰다. 겉모습은 하민석에 비해 다소 커 보였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왕가의 크고 작은 일들을 차례로 나와서 보고하고 있다. 매 문서는 거대한 자본 사슬과 자원의 배급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 방면에서 왕가는 비록 하씨 가문의 체격에 비할 수는 없었지만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왕가의 현재 저력은 남원의 일류 가문 중 으뜸이라 할 수 있었다. 크고 작은 일을 거의 다 처리한 후 왕태민은 한 가지 작은 일을 떠올리며 말했다.“그 일은 어떻게 돼가고 있어?”그에게 있어서 이것은 파리 한 마리를 죽이는 일과 같이 작은 일이었다. 그러나 이 일은 하씨 가문의 한 분이 시키신 일이니 왕 세라라도 신경을 좀 써야 했다. 비록 왕가는 하씨 가문과 얽매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왕정민은 총명한 사람이라 와신상담의 이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칩거하면서 기다려야 했다. 왜냐하면 하씨 가문과 같은 존재와 직면해야 했기 때문이다. 명중을 시켜야지 그렇지 않으면 왕가는 순식간에 무너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하씨 집안이 일러 준 작은 일에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작은 일까지도 그는 전부 직접 관여하였다. 왕태민은 지금 일어나 두 손은 늘어뜨리고 이마에 식은 땀
“예전 같았으면 확실히 대단했겠지……”왕정민은 웃었다.“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지……”“그럼 세자님의 말씀은……”왕태민은 허리를 굽히고 얼굴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왕정민의 눈동자 속이 다채로운 색들로 번쩍이더니 이내 담담하게 말했다. “남원에 세자는 하나밖에 없어.”“나 왕 세자, 하 세자도 존재할 필요가 없지.”지금 왕씨 집안 사람들의 눈동자에는 감격의 빛이 가득했다.여러 해 동안 칩거한 끝에 드디어 세자가 움직이게 되었나?왕정민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서서 대모산 쪽을 바라 보았다. 확고한 뜻과 의지가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해도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아무리 험난한 길이라도 끈기 있게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국엔 이뤄낼 것이다.……다음 날, 대모산 리조트 프로젝트 공사장의 임시 사무실. 설민혁과 설지연 두 사람이 함께 설은아를 찾아왔다.설은아는 두 사람을 보며 물었다.“왜? 무슨 일 있어?”“듣기로 길바닥 보스가 최근에 프로젝트 공사장에 와서 귀찮게 했다며? 설 회장이 해결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해서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있는지 보려고 왔어.” 설민혁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실력 있게 있을 처리해야지! 이렇게 작은 일로 길바닥 사람들을 놀라게 하다니, 설은아, 너 정말 쓰레기구나!”설지연도 지금 비웃으며 입을 열었다. 설은아는 위아래도 두 사람을 잠시 훑어본 뒤에야 웃으며 말했다.“두 분 정말 재주가 좋으시네요. 남원에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길바닥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내 회사에 와서 문제를 일으키게 하다니.” “내가 과연 너희들을 잘못 본 게 아니었어.”“그럴 리가 있나? 너도 알다시피 우리가 남원에 온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길바닥 사람들과 연락을 할 수 있었겠어?”설민혁은 한마디로 부정했다. “근데 어젯밤에 누가 나한테 알려줬어. 우리 프로젝트 공사현장에 일이 생겼다고. 나는 우리 대모산 리조트 프로젝트가 걱정되는 것뿐이
“퍽_____”대도 경수는 뺨을 한 대 크게 후려쳤다. 바로 설민혁의 얼굴로 날아와 머리가 어질어질 해 빙빙 돌았다.그러나 지금 그는 감히 손을 대거나 반격을 하지 못하고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 “선생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눈이 멀어서……”“무슨 시키실 것이 있으신지, 말씀만 하세요……”설민혁은 정말 무서웠다. 대도 경수는 이런 인물이었다. 그를 가지고 놀다 죽이는 건 그야말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방금 설은아 앞에서 날뛰었지만 지금 대도 경수의 신분을 알아보고는 설설 기었다. 설지연도 울지 않는 매미처럼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그는 비록 곧 왕가에 시집갈 사람이라 신분이 평범치 않았다. 하지만 그녀도 두려웠다!이런 곳에서 만에 하나 길바닥 사람들이 그녀를 짓밟으면 그녀가 무슨 자격으로 왕가에 시집을 가겠는가? 그래서 그녀는 지금 설민혁 보다 더 두려워했다. 대도 경수가 설민혁을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설은아 앞에서 두 손을 늘어뜨리고 깍듯하고 공손하게 말했다.“설 회장님, 방금 이 두 사람이 회장님께 소란을 피웠습니까? 만약에 그런 거라면 제가 지금 이 두 사람을 당장 물고기 밥으로 던져버리겠습니다.” 이 말을 꺼내자 설민혁과 설지연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이 길바닥의 보스는 정말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설민혁은 조금 괜찮아졌지만, 설지연은 바로 붕괴됐다. “은아야, 나는 왕가에 시집갈 사람이야. 내가 나중에 설씨 집안의 백이 돼 줄 거야. 나는 여기서 사고를 당할 수 없어. 나 좀 봐줘.”설지연은 설은아의 손을 잡고 입을 열었다. 설은아는 차갑게 그녀를 노려보았지만 잠시 후 한숨을 쉬었다. 이 두 사람이 지나치게 굴어도 모두 가족이었다. 지금 이들이 설은아에게 악랄하게 굴어도 그녀는 정말 독한 마음을 먹을 수 없었다. 설은아가 명령을 내리지 않는 것을 보고 대도 경수는 다시 설민혁의 뺨을 한대 후려 치고 나서야 허리
이때 왕인걸은 남을 괴롭히던 습성을 드디어 드러내며 사나운 진면목을 가감 없이 표출했다.그의 말이 떨어지자 몇몇 사나운 친구들은 모두 맥주병을 들고 다가와 하현의 머리를 깨뜨릴 준비를 했다.설은아는 깜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지금 뭐 하는 거야?”“당신들, 함부로 굴면 관청에 신고할 거야!”“신고?”예쁜 종업원이 냉소를 흘렸다.“신고가 먹힌다면 내가 성을 갈겠어!”“경찰서는 모두 우리 왕 도련님 사람들이야!”“경찰서에 신고는커녕!”“당신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부탁해 봐도 아무 소용없어!”“설은아, 괜찮아. 내가 처리할게.”하현은 전화를 걸려던 설은아를 제지했고 냉담한 시선으로 왕인걸을 쳐다보았다.“스스로 용서를 구할 기회를 정말로 포기할 작정이야?”왕인걸은 냉소를 지으며 피가 섞인 침을 바닥에 내뱉었다.“용서를 구하라고? 당신이 나한테 그런 말할 자격이나 된다고 생각해?”“그래? 내가 그런 자격이 없는 건가?”하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손가락으로 튕겨 한 번에 왕인걸의 이마에 올려놓았다.“이젠 어때? 이만하면 내가 자격이 되는 건가?”“무슨 허튼수작이야?!”왕인걸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이마를 찌푸렸다.“이게 뭐야?”“명함?”“이게 날 밟을 수 있는 자격이라는 거야?”“당신은 당신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세자라도 돼? 아님 부잣집 도련님?”이번엔 예쁜 종업원이 나섰다.“명함 한 장으로 우리 왕 도련님을 겁주려고?”“막장 드라마를 너무 본 거 아니야? 당신이 막장 드라마 주인공인 줄 알아?”왕인걸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이마에 있던 명함을 집어 들어 찢을 준비를 했다.그러나 그가 찢으려고 했을 때 눈가에 예기치 못한 잔광이 비치기 시작했다.그가 유심히 명함을 보는 순간 전선에 온몸이 닿은 것처럼 찌릿하고 전율이 솟아올랐다.간민효.간결하고 명료한 이 이름 석 자가 왕인걸의 온몸을 벌벌 떨게 만들었다.간민효의 명함을?!게다
”개자식! 감히 날 때려?!”이때 왕인걸이 얼굴을 가린 채 비틀거리며 기어올랐다.그는 얼굴 가득 원망과 흉악함으로 뒤덮인 채 하현을 향해 이를 갈며 격노했다.“넌 이제 죽었어!”“넌 이제 끝이야!”몇몇 불량한 친구들도 잡아먹을 듯 눈빛을 사납게 이글거리며 하현과 설은아를 노려보았다.분명 이 두 사람은 오늘 여기서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예쁜 종업원도 얼른 양복 차림의 사나운 남자 십여 명을 불렀다.아마도 식당 경비원들인 것 같았다.하현은 이 사람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테이블 위에 있는 차를 집어 들고 단숨에 들이마신 후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아직도 무릎을 꿇고 사과할 기회가 있어.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당신들 손은 부러질 거야!”하현의 말을 듣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코웃음을 쳤다.사람들은 모두 하현처럼 허여멀건한 사람이 감히 자신들을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금정이란 곳은 힘이나 능력 좀 있다고 함부로 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금정 같은 대도시에서는 역량, 인맥, 배경, 출신, 권력, 지위 그 모든 것이 갖춰져야 어느 정도 어깨에 힘깨나 줄 수 있다.하현이 감히 부잣집 도련님을 건드렸으니 아마 목숨을 부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촌뜨기! 넌 이제 죽었어!”예쁜 종업원이 노여움을 금치 못하는 표정으로 말했다.“네가 무슨 자격으로 우리 왕 도련님이랑 싸운단 말이야!”“왕 도련님이 누군지 알기나 해?”“왕 도련님은 금정 간 씨 가문 산하의 명성 필름 사장님이야.”“그는 금정 간 씨 가문의 먼 친척이야. 어떻게 당신 같은 촌놈이 모욕을 줄 수 있겠어?!”“못 들어봤어?”“옛날 왕사당 앞에 평범한 백성들이 드나들었다는 말 말이야!”예쁜 종업원은 화가 난 표정으로 말했다.왕인걸은 탑클래스 인물이었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금정 사 씨 가문과 관계가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얼뜨기 한 놈이 왕인걸을 함부로 발로
하현의 말이 떨어지자 장내가 조용해졌고 모두들 멍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의심하며 자신의 귀를 후벼팠다.이 말이 왕인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모두가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그런데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도 모를 촌뜨기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어불성설 아닌가?왕인걸도 놀라서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재미있군. 내 앞에서 이렇게 날뛰는 사람은 오랫동안 없었어.”“당신이 처음은 아니지만, 단연코 가장 재미있는 사람이야.”“이렇게 하지. 무릎 꿇고 머리를 세 번 조아리고 물러가.”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거기에 세 번 더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을 꿇어.”하현의 말을 들은 왕인걸의 얼굴에는 더욱더 비아냥거리는 기색이 더해졌다.이 촌뜨기가 지금 누구랑 말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한 건가?“왕인걸, 이놈이 전혀 체면을 세워 주지 않는군!”“뭐? 왕인걸한테 머리를 세 번 조아리라고? 네놈이 무덤에 들어가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없을 거야!”“왕인걸, 이놈이 이렇게 뻔뻔스럽게 나오니 하늘과 땅이 얼마나 무서운지 죽는 게 뭔지 직접 알려줘야 할 것 같은데?!”한 무리의 불량배들이 모두 호들갑을 떨며 한마디씩 덧붙였다.그들은 조금도 거리낄 것이 없는 사람처럼 험한 말을 마구 내뱉었다.왕인걸은 무리들의 비아냥거리는 말을 듣고 이대로 있는 것은 너무 창피하다고 생각했다.결국 왕인걸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하현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개자식! 더 이상 네놈 체면 따위 생각할 필요 없어! 당장 네놈을 죽여버릴 거야!”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왕인걸은 손바닥을 휘둘러 하현의 얼굴과 코를 때리려고 했다.그러나 그의 손바닥이 막 튀어나왔을 때 하현이 재빨리 손바닥을 휘둘렀다.“퍽!”낭랑한 소리가 울려퍼짐과 동시에 왕인걸은 얼굴이 따끔거리고 눈앞이 캄캄해지며 온몸이 멍해져 오는 것 같았다.그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다른
친구를 하자는 말을 특히 강조하며 왕인걸은 흐뭇하게 웃으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알렸다.그 말속에는 친구 이상의 음흉한 관계를 의미하는 낌새가 다분히 느껴져 그를 따르던 짐승 같은 남자들이 히죽히죽 웃었다.하지만 왕인걸은 마치 해야 할 말을 정상적으로 했을 뿐이라는 듯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그는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하현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했다.설은아는 왕인걸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하현을 향해 차가운 눈빛만 쏘았다.“이제 다 먹었어? 그럼 가자.”이 광경을 본 여자 종업원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고약한 년! 왜 이렇게 자꾸 잘난 척하는 거야?!”“왕인걸이 스스로 발걸음을 했는데 아직도 고고한 척 콧대를 세우는 거야?!”“당신 옆에 있는 그 사람이 그렇게 값어치가 나가는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거냐고!”“왕 도련님이 화를 내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무서운 일이 벌어질 거야!”“자자,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해. 위협하지 마. 미녀 앞에선 상냥하게 굴어야지!”왕인걸은 여자 종업원에게 손을 내저은 다음 손에 든 와인잔을 흔들며 소금에 절인 채소와 생선볶음을 뒤적거리고 있던 하현을 보고 웃었다.“저기 선생님, 난 당신의 여자가 마음에 들어요!”“대충 다 먹었으면 저리 썩 꺼져 주시죠! 어서요!”“이렇게 예쁜 여자는 못 참죠!”“사람은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해요!”말을 하면서 왕인걸은 자신의 포르쉐 열쇠와 금정 별장 출입카드를 꺼내어 하현 앞에 놓았다.이 모습을 본 한 무리의 불량배들은 모두 껄껄 웃으며 하현을 비웃었다.한 방에 보내버리는군!완전히 더는 큰소리치지 못하도록 쇄기를 박는 거지!눈앞의 얼뜨기는 아마 800년을 분투해도 저런 물건은 손에 넣지 못할 거야!예전에 왕인걸이 이렇게 나오자 보통 남자들은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겁에 질렸었다.사회 경험이 좀 있는 남자라면 다 알 것이다.이런 물건을 가진 남자에게 함부로 저항할 수 없다는 걸 말
”손님, 다시 한번 자세히 보세요!”“손님 옆에 있는 남자가 밥 먹는 거 말고 뭘 할 줄 알겠어요?”“보세요! 지금도 아무 거절도 못 하잖아요!”“그런데 왕 도련님은 어때요? 손님 옆에 있는 저 남자보다 몇천 배는 더 좋죠! 만약 손님이 이 기회를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할 거예요!”말을 하면서 여자 종업원은 하현에게 눈을 내리깔았다.그녀는 줄곧 하현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궁상스럽기 짝이 없는 이 남자를 무시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녀의 눈에 금정에서 가장 가치가 있는 남자는 오직 왕인걸이었다.설은아는 더 이상 여자 종업원과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 홧김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저리 꺼져요!”여자 종업원도 냉소를 흘리며 지지 않고 대꾸했다.“손님, 정말 어지간하시네요!”“그렇게 있는 척하면 뭐가 좋아요? 무슨 소용이 있냐구요?”설은아는 찬바람이 쌩쌩 부는 목소리로 말했다.“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당신 사장한테 말해서 당신을 해고해 버릴 거예요! 두고 보세요!”바로 그때 이들의 모습을 흐릿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던 왕인걸이 와인잔을 움켜쥐고 천천히 걸어왔다.걸을 때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얼마나 당차고 당당한지 보는 사람들마저 숨이 막힐 정도였다.그의 길을 막고 있던 일부 손님들은 얼른 길을 내주었다.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을 일부러 만들 필요가 없다고 느낀 것이다.왕인걸은 마치 원하는 것은 모두 손에 넣겠다는 듯 거만하고 당당하게 걸어왔다.그를 따르던 무리들도 지금 히죽히죽 웃으며 다가왔다.“쯧쯧쯧, 결국 왕인걸이 이렇게 여자를 빼앗는군!”“자고로 왕인걸의 눈에 띈 여자가 도망갈 곳이 어디 있겠어? 순순히 그의 품에 안기는 게 능사지!”“예전에 청순미녀라고 이름을 날리던 어린 스타가 처음에는 왕인걸한테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었지.”“그러다가 나중에 어떻게 되었어? 왕인걸이 모든 지원을 끊자 결국엔 그에게 기어들어왔지.”“그리고 자기가 여신급 여자를 데리고 다니는 줄 알고 왕
”안녕하세요.”하현과 설은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곱게 화장을 한 종업원이 82년산 라피트 한 병을 들고 다가왔다.“저분이 두 분께 드리는 것이니 받아주세요.”종업원은 설은아와 하현이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귀한 82년산 라피트 한 병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술을 보냈어요? 82년산 라피트를?”하현과 설은아는 모두 약간 어리둥절해하면서 종업원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았다.지방시에서 옷을 맞춰 입은 멋진 남자가 와인잔을 살짝 들어 보였다.그는 젊고 멋있고 부유해 보였다.딱 봐도 금정에서 성공한 사람 같았다.그리고 그의 곁에는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 몇 명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다.순간 그들은 하현과 설은아를 바라보며 뭔가를 기대하는 눈빛이었다.하현이 입을 열기도 전에 설은아가 주저하지 않고 냉랭하게 말했다.“죄송하지만 난 저분을 몰라요. 그러니 이거 가져가세요!”“그게...”설은아의 차가운 눈빛에 여자 종업원은 눈썹을 찡그리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손님, 손님 뜻은 알겠지만 왕 씨 가문 도련님이 다른 사람한테 이렇게 대하는 건 아주 드물어요. 그러니 저분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게 좋을 거예요.”“어쨌든 금정에 왔으니 저분이 젊고 잘생기고 부유하다는 걸 모르진 않을 테니까요!”“많은 여자들이 저분한테 시선 한 번 받으려고 해도 좀체 기회가 없었다구요!”“저분이 와인을 한 병 주셨어요. 그것도 82년산 라피트 한 병을요! 설마 당신들은 이게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모르는 건 아니겠죠?”“정말 이해가 안 되네요. 왜 거절하시는 거예요?”예쁜 종업원은 설은아가 배려라는 걸 너무 모른다고 생각한 듯했다.보아하니 왕 씨 가문 도련님은 이곳의 단골이고 신분이 범상치 않으며 이 여자 종업원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모양이었다.이것은 어린아이라 하더라도 단번에 알 수 있는 것이었다.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의 앞에 있는 안줏거리를 씹었다.계속 먹자니 맛이 나쁘지 않았다.방금 비행기
저녁 6시, 금정 쇼핑센터 맞은편에 있는 금정 포장마차.포장마차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곳은 금정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 중 하나이고 매일 수천 번까지 번호가 매겨진다고 한다.그리고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는 모두 각양각색의 고급 차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설은아는 진작부터 하현을 이곳에 데리고 와서 식사를 하려고 마음먹었다.그래서 그녀는 가방에서 번호표를 꺼냈을 때 적잖이 놀랐다.두 사람이 차를 세우고 금정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서자 저녁 식사가 절정인 이때 화려한 옷을 입은 손님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설은아는 종업원에게 번호표를 제시했고 두 사람은 미리 남겨둔 자리로 안내되었다.이 과정에서 설은아는 사람들의 시선을 확 끌었다.화장을 곱게 하고 팔과 허벅지를 드러낸 여자들과 달리 설은아는 별로 화장기도 없지만 외모나 기질로 보아 모든 사람들을 압도하기 충분했다.예쁜 여자를 옆에 둔 남자들도 설은아를 힐끔힐끔 쳐다보았고 눈에선 뜨거운 시선이 광선처럼 빛났다.이 사람들 중에는 금정의 부잣집 2세들도 있었고 이제 막 사업에 분투해 성공 가도에 진입한 사람들도 있었다.물론 의기양양하고 패기 넘치는 스타트업 종사자들도 많았다.기질과 스타일로 볼 때 이 사람들은 하현을 앞서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그래서 설은아 옆에 있는 하현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야유를 보냈다.그러나 설은아는 이 사람들을 무시하고 자리에 앉은 후 테이블 사이사이를 지나가는 주문 기계에 몇 가지 특별 요리를 주문한 다음 손을 뻗어 하현에게 차를 따라주었다.모처럼 부드러운 여인의 손길을 느끼며 하현은 술을 한잔 마신 뒤 설은아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샤넬의 코트를 입은 그녀는 늘씬하고 매력적인 몸매를 가졌다.여기에 옥처럼 빛나는 외모와 가끔 다리를 꼴 때마다 흘러내리는 미끈한 각선미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달나게 했다.하현은 설은아가 사업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면서 더욱 눈부시게 빛나는 슈퍼우먼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는 찻잔
이때 간민효는 하현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져서 잔뜩 호기심이 솟아올랐다.그녀는 다시 하현에게 조금 더 다가가 그의 귀에 대고 입김을 불어넣으며 말했다.“하현, 오늘 밤 시간 있어? 같이 밥 한 끼 할까?”“고맙지만 오늘 밤 하현은 시간이 없어!”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설은아가 마침내 더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그녀는 하이힐을 신고 당당하게 걸어와 하현을 자신 쪽으로 잡아당겨 팔짱을 끼고 만면에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하현은 오늘 밤 나와 함께 저녁을 먹을 거거든.”간민효는 설은아를 보고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말했다.“설은아, 이 사람이 그 능력 없는 네 전남편이야?”하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비슷한 외모에 비슷한 나이대의 두 여인을 쳐다보았다.설은아와 간민효가 아는 사이?하지만 두 사람이 아는 사이인 것이 정상이었다.모두 금정에서 내로라하는 정상급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모를 수가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설은아는 간민효에게 무슨 설명을 하기도 귀찮아서 얼른 하현을 끌고 VIP 출구로 나와 자신의 빨간 페라리로 들어갔다.그 후 그녀가 가속페달을 밟자 차는 굉음을 내며 쌩하니 그 자리를 떠났다.갑자기 혼자가 된 간민효는 멍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조수석에 탄 하현은 안전벨트를 매면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오랜만에 만난 전처, 아니 와이프라고 해야 하나?이런 어색하고 떨떠름한 자리라니!차는 금정 국제공항을 빠져나왔고 하현이 금정의 가을빛을 감상할 사이도 없이 설은아는 거칠게 차를 몰았다.그리고 가속페달을 사정없이 밟으며 그녀는 떠보는 듯 입을 열었다.“간민효, 예쁘고 상냥하지?”맞는 말이었다.간민효는 전신급에 달하는 독술을 가졌으면서도 아름답고 성격도 시원시원했다.그리고 몇 시간 동안 함께 지내면서 하현은 그녀의 기질이 참 따뜻하고 상냥하다는 것도 알았다.그러나 차 안을 뒤덮은 질투의 불길을 느끼며 하현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간민효가 어느 정도 사람 좋고 매력적이라는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비행기는 어느새 금정 국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하현과 간민효는 함께 VIP 통로를 걸었다.얼핏 보면 두 사람이 한 쌍의 연인처럼 보였다.이에 간민효의 뒤를 따르던 양복 차림의 남자는 못마땅한지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두 사람은 공항의 VIP 출구에 다다랐고 간민효는 하현을 향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현,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지만 가는 길까지 내가 데려다줄게.”하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야. 비행기 탔을 때 이미 아내한테 내 일정을 보냈어.”“아마 마중 나올 거야.”“아내?”‘아내’ 라는 말을 들은 간민효는 어리둥절해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하현의 네 번째 손가락을 쳐다보았다.반지가 없었다.간민효의 눈빛을 알아차린 하현이 입을 열었다.“아, 이제 전처라고 봐야지.”하현의 말을 듣고 간민효는 그제야 소리 없이 웃었고 한층 더 하현에게 관심이 생기는 것 같았다.“하현, 당신에게 아내가 있든 없든 간에 내가 말했듯이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해. 금정에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게.”“자, 우리 작별의 포옹이라도 해!”이 말을 들은 몇 명의 사내들이 모두 순식간에 고개를 빳빳이 들고 하나같이 험악한 얼굴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자, 다음에 또 봐!”하현도 험악한 표정의 남자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앞으로 나가 간민효와 포옹을 나누고 그녀의 귀에 대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참, 마침 내가 무학에 어느 정도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당신 몸에 뭔가 병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아마 십중팔구는 입신에 이르는 독술과 관련이 있을 거야.”“그래서 말인데 내가 필요할 땐 언제든 연락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도와줄게.”말을 하면서 하현은 쪽지 한 장을 여자의 가슴에 쑤셔 넣었다.이 행동은 예의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행동을 함으로써 하현은 침착하게 기운의 광선을 통과해서 여자의 심맥을 보호했다.“내 병을 눈치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