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퍽_____”대도 경수는 뺨을 한 대 크게 후려쳤다. 바로 설민혁의 얼굴로 날아와 머리가 어질어질 해 빙빙 돌았다.그러나 지금 그는 감히 손을 대거나 반격을 하지 못하고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 “선생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눈이 멀어서……”“무슨 시키실 것이 있으신지, 말씀만 하세요……”설민혁은 정말 무서웠다. 대도 경수는 이런 인물이었다. 그를 가지고 놀다 죽이는 건 그야말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방금 설은아 앞에서 날뛰었지만 지금 대도 경수의 신분을 알아보고는 설설 기었다. 설지연도 울지 않는 매미처럼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그는 비록 곧 왕가에 시집갈 사람이라 신분이 평범치 않았다. 하지만 그녀도 두려웠다!이런 곳에서 만에 하나 길바닥 사람들이 그녀를 짓밟으면 그녀가 무슨 자격으로 왕가에 시집을 가겠는가? 그래서 그녀는 지금 설민혁 보다 더 두려워했다. 대도 경수가 설민혁을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설은아 앞에서 두 손을 늘어뜨리고 깍듯하고 공손하게 말했다.“설 회장님, 방금 이 두 사람이 회장님께 소란을 피웠습니까? 만약에 그런 거라면 제가 지금 이 두 사람을 당장 물고기 밥으로 던져버리겠습니다.” 이 말을 꺼내자 설민혁과 설지연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이 길바닥의 보스는 정말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설민혁은 조금 괜찮아졌지만, 설지연은 바로 붕괴됐다. “은아야, 나는 왕가에 시집갈 사람이야. 내가 나중에 설씨 집안의 백이 돼 줄 거야. 나는 여기서 사고를 당할 수 없어. 나 좀 봐줘.”설지연은 설은아의 손을 잡고 입을 열었다. 설은아는 차갑게 그녀를 노려보았지만 잠시 후 한숨을 쉬었다. 이 두 사람이 지나치게 굴어도 모두 가족이었다. 지금 이들이 설은아에게 악랄하게 굴어도 그녀는 정말 독한 마음을 먹을 수 없었다. 설은아가 명령을 내리지 않는 것을 보고 대도 경수는 다시 설민혁의 뺨을 한대 후려 치고 나서야 허리
“그래.”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원래 슬기에게 차를 한 대 보내달라고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자신이 요즘 계속 지시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아 슬기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너무 바빴다. 지금 유소미가 자신을 데리고 가준다 하니 그녀의 차에 그냥 타기만 하면 되었다. 하현이 차에 오르는 것을 보고 유소미는 마음속으로 은근히 기뻐했다. 지금 그녀의 눈에 하현은 겸손한 부자였다. 남원에서 이런 부자들은 비록 많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적지도 않았다. 많은 부자들이 아직도 슬리퍼에 잠옷을 입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나?어쨌든 그들은 돈이 많으니 뭘 하든 다 맞다.차가 조용히 차고를 빠져나갔다. 유소미는 한편으로는 차를 몰면서 한편으로는 호기심 많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하현, 너 3년 전에 데릴사위가 되는 게 그렇게 쉽진 않았지?”“설마, 너 무슨 큰 일을 계속 준비해온 거야? 하늘로 높이 날아오를 준비?”하현은 좀 의아해 했다. 처음으로 어떤 사람이 그의 3년 간의 행적에 의심을 품은 것이었다.정말 한참 만에 처음으로 어떤 사람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응, 내가 확실히 작은 장사를 하고 있기는 해.”하현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너 3년 동안 무슨 장사를 했길래 아무렇지 않게 4백억을 쓸 수 있어?”유소미는 비록 운전을 하고 있었지만 초롱초롱한 아름다운 눈이 하현에게 줄곧 머물러 있었다. “사람들에게 경호비라도 내라고 해야지……”하현이 말했다. 그가 한 말도 틀리지 않았다. 그는 여러 해 동안 많은 것들을 준비했다. 매년 이 아래 사람들은 적지 않은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 경호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흠______”“어쩐지!”유소미는 찬 숨을 내쉬며 하현이 길바닥의 보스와 분명 어울려 지냈을 것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분명 지위가 굉장히 높은 부류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그녀에게 길바닥은 아예 다른 세상이었다. 어쩐지 그래서 그녀가 몇 년 동안
첫째, 다들 하현이 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둘째, 다들 하현이 유소미의 조수석에서 내릴 거라고는 더더구나 생각지 못했다.오늘 남원 동창회라 김겨울이나 서울에 있는 동창생들은 모두 오지 못했다. 그래서 다들 지금 약간 놀랐다.“어? 이거 하현 하 도련님 아니야? 당시에 우리 학교에서 풍운아였잖아!”가장 먼저 난국을 타파한 사람은 매우 활기차 보이는 남자였다. 그는 전에 하현과 다른 반이었다. 다른 반의 대표, 고진석이었다. 하지만 그는 학교 다닐 때 하현에게 주눅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졸업한지 몇 년이 지났고, 그도 그런대로 나쁘지 않게 지내고 있었다. 듣기로 한 기업의 중위권이 되어 연간 수입이 이미 몇 억은 되었다. 그는 오늘 BMW 7 시리즈를 몰고 와 아주 체면이 섰다. 오늘 밤 동창회에 나온 남자들 중에 그는 꽤 잘 지내는 편이었다. 하현이 미소를 지었다. 인사를 한 셈인데, 사실 그는 고진석과 원래 관계가 여물지 않았다. “하현아, 우리는 네가 못 나올 줄 알았어!”“맞아, 우리가 듣기로 네가 서울에서 다른 사람의 데릴사위가 됐다고 들었거든. 매일 장모님 발도 씻겨 드리고 화장실 청소를 한다고……”“뜻밖에도 네 아내가 너를 동창회에 보내 준걸 보니 너 오늘 청소는 다 했구나?”다른 몇몇 학생들은 눈을 마주치며 가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물론 다들 동창생이라 예의를 갖추기는 했지만, 말속에 담겨있는 비아냥 거리는 냄새는 숨길 수가 없었다. 고진석은 기침을 하면서 다른 사람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하현이 뭘 하든 자기가 선택하는 거지.”“오늘 여기 다들 동창으로 모였으니 기분 나쁜 얘기는 하지 말자!”사실 방금 안에서 이 사람들은 모두 하현이 데릴사위가 된 일에 대해 비웃었다. 그가 감히 정말 동창회에 올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그래! 하현은 늘 인물이었으니 동창회에 오는 게 당연하지!”“오늘 밤 너희들 하현에게 술을 너무
하현이 대학에 다닐 때가 마침 하씨 가문이 다시 부상하기 시작한 절대 절명의 시기였다. 그 시절에 그는 맨손으로 20조의 제국을 만들고, 많은 일들을 했었다. 비록 이 동창들은 그가 도대체 뭘 하는지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당시에 하현은 너무 조용했지만 누가 봐도 재벌 2세나 부자집 도련님으로 보이긴 했다.더군다나 그는 용모가 평범하지 않았기에 그에게 대시하는 여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 때 이미 조숙한 하현은 어찌 그런 어린 꼬마들이 눈에 들어 왔겠는가? 이렇게 차츰차츰 그는 오히려 학교의 유명 인물로 떠올랐다.하지만 대학 졸업 후 첫해는 그가 하씨 가문을 다시 강남의 최정상으로 회복시킨 그 해에 하씨 가문에 내란이 일어났다. 하씨 대문호 어르신의 지시 하에 하현은 권력을 양보하라고 강요 당했다. 이제 막 부상한 하씨 가문이 다시 무너지지 않도록 하현은 한창 전성기일 때 결단하고 물러났다. 하지만 동기들이 보기에 하현은 가세가 기울어 다른 사람의 데릴사위가 된 것으로 보여졌다.그 후 한때 화려했던 인물은 누구나 몇 마디씩 욕하는 길 건너 쥐 꼴이 되었다. 특히 하현은 적지 않은 여신급 여학생들이 쫓아 다녔기 때문에 남학생들은 그에게 더욱 질투하며 질책했었다. “그 당시에 재벌 2세란 놈도 결과가 좋지는 않네. 지금 보니 데릴사위가 됐어!” “데릴사위도 사람인가? 나 같으면 길에서 구걸을 하더라도 데릴사위가 되지는 않았을 텐데!” “가장 관건은 오늘 동창회에 얼굴을 내밀고 참석한다는 거야. 정말 뻔뻔하다!”“설마 우리한테 돈 빌리러 온 건 아니겠지? 모두 조심해!”“……”여러 가지 의론이 분분한 가운데 이 사람들은 하현에게 질투하며 뒤에서 몰래 나쁜 짓을 꾸미고 있었다. 지금 겨우 발산할 기회를 찾았으니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돈많은 남자만을 좋아하는 가난한 여학생들은 지금 다행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애당초 하현을 따라가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이런 폐물과
“모두들 그만 해.” 유소미는 사람들이 계속 하현을 비웃지 못하게 화제를 돌렸다. 사실 그녀 역시 하현이 부자라는 것을 들추어내는 것이 조심스러웠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유소미의 말을 듣고 적지 않은 동창생들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어쨌든 유소미의 신분이 있으니 다들 감히 그녀의 체면을 떨어뜨릴 수가 없었다. 곧 동창생들은 잇달아 자리에 앉았고, 하현이 앉은 곳 주변에는 아무도 오고 싶어 하지 않았다. 재빨리 유소미는 자진해서 그의 오른편에 앉았고, 뒤이어 유소미와 친했던 여동창생들이 건너와 앉았다. 이렇게 되면 하현은 또 미인들에게 둘러 싸이게 되니 여복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멀지 않은 곳에서 몇 명의 남학생들이 고진석에게로 모여들며 말했다.“진석이 형, 보아하니 우리 존예가 반한 모양이에요! 하현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주었는데도 그를 이렇게 좋아하다니. 오늘 밤 미인을 안고 돌아가기가 쉽지 않겠는데요!” 고진석은 차갑게 말했다.“걱정 마, 내가 설마 데릴사위 따위에게 지겠어?”이때, 하현은 미인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유소미 외에 그 왼편에 또 다른 엄청난 미인 장서진이 앉아 있었다. 장서진는 진정한 엄친딸이었다. 남원의 2류 가문이었지만 그녀는 엄친딸의 성깔이 전혀 없었고, 성격이 너무 좋았다. 그녀는 대학교 때 줄곧 하현에게 약간의 호감을 가지고 있었고 지금도 하현을 무시할 마음이 없었다. “하현, 아니면 이렇게 하자. 우리 집안에서 최근에 사람을 뽑고 있거든. 내가 부장에게 네 자리하나 마련해 달라고 한 번 해볼게. 기본급이 2백 만원이 넘어. 미래 성장 가능성도 좋고.”“만약에 관심 있으면 나한테 연락해.”장서진은 웃음을 머금고 입을 열면서 동시에 하현에게 명함을 한 장 건넸다.“고마워.” 하현은 장서진이 정말 악의 없이 그를 도와주려고 하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이때 그는 명함을 받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반면 유소미는 소리 없이 웃고 있었다. 비록
“장서진, 넌 모를 거야. 최건의 아버지는 지금 대단한 인물이셔. 다들 어찌 감히 그를 기다리지 않을 수 있겠어!”“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잘 나간다 해도 연봉이 20억 정도 하잖아? 최건 앞에서는 귀염둥이 수준이지 않겠어?”과장되게 들리겠지만 이건 사실이다!얼마 후 복도에서 소리가 들렸다. 모두 일어서는데 특별히 고진석이 가장 적극적으로 바로 맨 앞으로 나섰다. 최건은 브랜드 없는 평범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손목에는 오데마피게 로얄오크 시계를 차고 있었다. 금빛 시계줄이 불빛 아래서 눈부시게 빛났다. 그와 같은 사람은 굳이 다른 사치품으로 그의 집안을 돋보이게 할 필요가 없다. 시계 하나로 모든 것을 말해 준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키가 크고 늘씬한 미인가 있었는데 170은 충분히 넘는 키에 딱 봐도 모델 출신 같았다. “최 도련님, 드디어 오셨군요.”고석진이 가장 먼저 다가가 정성스런 표정으로 악수를 청했다. 최건은 아무렇게나 손을 뻗어 악수를 하며 인사치레를 했다. “듣기로 너 요즘 연봉이 몇 억이라며,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구나.”“도련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죠!”고석진은 겸손한 얼굴로 최건 옆에 있는 미인을 쳐다보며 말했다.“최 도련님, 이분은……”“어? 아는 동생이야.”최건은 아무렇게나 둘러댔다. 그로 말할 것 같으면 여자는 그저 노리개일 뿐, 기분이 좋으면 바꾸고, 기분이 안 좋아도 바꿀 수 있었다. 적지 않은 남학생들이 이 여인을 바라보며 눈이 번쩍 뜨였다.“이분은…… 그 유명한 인플루언서잖아! 사진 다운받은 적도 있어!”그 여자는 자신을 아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점점 더 차갑고 거만해졌다. 다른 남학생들은 지금 하나같이 피를 토할 정도로 부러워했다. 인간 대 인간으로 정말 비교가 불가능하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 속 여신으로 품은 그녀가 최건에겐 그저 아는 여동생일 뿐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이 여신이 모든 걸 감수하겠다는 듯 반박조차 하지 않는다
“아이고, 이 자식은 정말 운도 좋지. 최 도련님이 마음을 써주다니!”“근데 최 도련님이 예상하신 대로 이 뻔뻔한 자식이 정말 왔어요!”고진석은 그 자리에 있던 하현 쪽을 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최 도련님이 오셨는데 너 인사도 안 해? 하현, 너 최 도련님을 무시하는 거야?”최건은 웃을 듯 말 듯 하며 말했다.“아니야 아니야, 내가 송구스럽지!”“그 당시에 하현은 우리 학교 풍운아였잖아. 우리 아버지도 기억하시더라. 하현이랑 같이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셨었는데……”“어떻게 데릴사위가 되는 법을 배웠지?”“하하하……”이 말을 듣자, 모두들 한 바탕 웃었다. 어떤 사람이 하현을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하현, 너 왜 멍하니 있어? 높으신 분이 너를 기억하고 있다는 말 못 들었어?”“빨리 와서 최 도련님 신발 좀 닦아드려, 이렇게 해야 최 도련님이 너한테 밥 한 입이라도 주시지!”“맞아! 설마 너 정말 평생 기둥서방으로 살 생각은 아니지? 네가 그러고도 남자냐?”“……”한 무리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입을 열며 하현에게 좋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사실 그들은 모두 하현을 농담거리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하현은 꿈쩍도 하지 않고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오히려 그의 옆에 있던 유소미와 장서진 두 사람이 일어섰다. 최건의 신분은 너무 특별해서 그녀들도 감히 그에게 무례하게 굴진 못했다. 유소미는 심지어 하현에게 몰래 발길질을 했다. 그녀는 하현이 돈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건달이라는 것도. 하지만 문제는 지금 그가 마주하고 있는 사람이 최건이라는 것이다.“하현, 너 아직 앉아서 뭐해? 어서 일어나!”“최 도련님이 너보고 일어나라고 직접 입을 열어야 되겠어?”적지 않은 남학생들이 질투심과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하현을 향해 외쳤다. 고진석도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하현, 최 도련님께 어서 일어나서 인사해. 너 너무 무례한 거 아니야?”하현은
장내는 조용하기 그지 없었다. 모두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필경 최건을 화나게 하는 일은 절대 좋은 결말을 볼 수가 없다. 다들 지금 하현 이 폐물과 연루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오직 하현만이 지금 꼼짝도 않고 냉담한 얼굴로 최건을 투명인간 취급했다. 사실 데릴사위가 된 하현은 말할 것도 없고 당시 재벌 2세였던 하현이라 해도 최건의 안중엔 없었다. 요즘은 돈보다 권력이 더 쓸모가 있다! 하현은 여전히 차를 마시며 최건을 한 번 쳐다보지도 않았다. 최건의 눈꼬리가 살짝 올라가자 그의 곁에 있던 여자 친구가 갑자기 앞으로 나오더니 탁자 위에 있던 찻잔을 들어 올려 하현의 몸에 쏟아 부었다. “도련님의 말을 못 알아듣겠어? 도련님이 꺼지라고 하시잖아! 그냥 꺼져! 너는 나갈 자격조차 없어. 알겠어?”인플루언서 여자친구가 팔짱을 끼고 차갑게 입을 열었다. 이러한 갑작스런 장면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사태가 이 지경에까지 이를 줄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고진석의 눈빛이 번뜩였다. 바로 원만하게 수습을 하며 말했다. “하현, 너 빨리 최 도련님께 사과하고, 오늘 일은 그냥 넘어 가는 걸로 하자!”“모두 동창생이니 최 도련님도 너를 곤란하게 하지는 않을 거야!”“맞아! 네가 무릎 꿇고 사과하기만 하면 무슨 큰 일이 나겠어? 최 도련님 같은 어른은 관대하시니……”“맞아, 빨리 무릎 꿇어!”“개처럼 기어 보는 것도 좋고!”이때 모두 하현을 향해 욕을 퍼부었는데 마치 하현이 잘못한 사람인 것 같았다. 유소미와 장서진 두 사람은 할말을 잃고 의아한 얼굴로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분명히 잘못한 건 최건과 그의 여자 친구 아니었나? 하현이 왜 물벼락을 맞았지?그래 놓고는 지금 하현한테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하라고?법이 있기는 한 건가?하지만 문제는 최건의 신분이 아주 높다는 것이다. 그가 지금 하현에게 뺨을 한 대 때렸다 해도 사람들은 그가 잘못한 게 없
”여수혁?”하현은 여음채를 쳐다보며 차가운 미소를 띠었다.“그가 이 병원 대주주인 동시에 당신의 뒷배라고?”“그래! 알고 나니 이제야 겁이 나?”“무서운 줄 알면 이제 무릎 꿇고 내 신발 밑창을 핥아!”“그리고 다리를 부러뜨리고 이십억을 배상해! 그러면 여수혁도 당신한테 살길을 열어줄지도 모르지!”“그렇지 않으면 당신 오늘 재수 없을 줄 알아!”여음채는 경멸하는 기색을 한껏 드러내었다.하현이 남양 무맹과 여수혁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전혀 별 볼 일 없는 존재라고 여겼던 것이 분명했다.강옥연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하현에게 말했다.“하현, 여수혁은 남양 무맹주가 총애하는 제자야.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페낭 무맹의 부문주라서 건드리기가 쉽지 않아.”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어릿광대일 뿐이야.”“뭐? 어릿광대?”하현의 말에 여음채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누가 당신한테 그런 용기를 줬는지 모르겠군! 흥!”“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이 사람은 페낭 무맹의 부맹주 아들이야!”“이 사람은 페낭 무맹 장로가 아주 아끼는 제자라구!”“게다가 남양 무맹이 페낭 무맹에 파견한 제자라고!”“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딜 가나 거칠 것이 없는 사람들이야. 그뿐만 아니라 실력도 비할 데 없어!”화려한 옷차림의 남녀 예닐곱 명이 걸어와 소리치며 하현을 향해 멸시하는 눈빛을 보이며 비아냥거렸다.“야, 너 오늘 큰일 났어! 아주 재수 옴 붙은 날이라고! 우리가 당신 목숨뿐만 아니라 가죽까지 싹 벗겨버릴 거거든! 하하하!”이 사람들은 하현이 무슨 도마 위에 올려진 생선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원하는 대로 칼질을 해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험한 말을 마구 내뱉었다.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들은 더욱 경멸하는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 같은 외지인이 감히 그들 같은 거물들한테 입을 놀리다니 정말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망나니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하현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이 광경을 보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외지인 관광객 주제에 너무 오만하고 포악하지 않는가?진 반장이 이미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나려는데 여전히 권세를 믿고 남을 괴롭히려고 하다니, 이건 지나친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진 반장은 얼굴을 가리고 일어나 하현의 의기양양한 얼굴을 잠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도대체 이놈의 정체가 뭔지 알 길이 없어 진 반장은 순간 분노했지만 애써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젊은이, 당신 너무 심한 거 아니야?”“퍽!”하현은 손바닥을 휘둘러 또다시 뺨을 때리며 냉담하게 말했다.“그렇게 대단하게 나한테 큰소리쳤다는 건 잘못을 하면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도리도 잘 안다는 뜻 아니셨나?”“이렇게 간단한 이치도 몰라?”진 반장은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갈았다.생각 같아서는 하현을 죽이고 싶었지만 결국 그는 소리 없이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미안해! 잘못했어!”그는 하현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구봉이 전화를 건 정종화 총경이 두려운 것이 분명했다.감히 이런 상황에서 어찌 그가 하현을 상대로 싸울 수 있겠는가?상대방의 사과를 들은 후에야 하현은 앞으로 나와 그의 오른쪽 얼굴을 툭툭 건드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꺼져!”진 반장은 그의 무리들을 데리고 쏜살같이 꽁무니를 뺐다.그리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들은 하현이 진 반장을 내쫓을 만큼 강력한 힘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진 반장 일행이 꽁무니를 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진 반장의 얼굴까지 때렸다.“내가 당신을 얕잡아 본 것 같군. 당신이 이렇게 큰 뒷배를 뒀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진 반장이 황급히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여음채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 냉소를 흘렸다.“그렇지만 똑똑히 들어. 당신 뒤에 얼마나 큰 거물이 있든 간에!”“페낭 병원의 뒷배가 훨씬 강할 거야!”“날 건드려?! 흥! 두고 봐! 당신은 죽
선두에 선 남자를 보자 여음채는 안색이 환해졌다.그리고 나서 얼른 다정하게 남자의 팔짱을 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진 반장님, 마침 잘 오셨어요. 바로 저 자식이에요. 저 자식은 우리가 의료 윤리를 중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때린다고 호도하고 있어요.”“게다가 내 아랫배까지 걷어찼다구요!”“저놈을 반드시 감옥에 가둬 주세요. 그 안에서 제대로 반성할 수 있게요.”여음채는 하현을 가리키며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었다.부일민 일행도 모두 큰소리로 맞장구를 치며 하현이 억지를 부린다고 한마디씩 보탰다.“뭐? 감히 병원에서 원장님을 때려요?”“대낮에 그런 짓을 한단 말이에요?”“법도 뭣도 없답니까?”진 형사는 하현의 얼굴을 주시했고 곧바로 그가 남양인이 아니란 걸 눈치챘다.그러자 얼굴이 싸늘하게 바뀌며 비아냥거렸다.“이봐, 어서 저놈을 데려가! 모질게 심문해! 지독하게 조사해!”“감히 반항한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법으로 다스려!”하현은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진 형사를 쳐다보았다.“당신은 어쨌든 형사반 반장이면 경찰서를 대표해서 일을 해야죠. 무슨 일이 생겼으면 제대로 조사를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일을 어떻게 하든 당신 같은 사람이 날 가르칠 건 아니지!”“당신이 먼저 사람을 치고 법을 어겼어. 그러니 법 집행자로서 당신을 연행하는 건 당연한 거야!”“물론 당신도 저항하는 길을 택할 수 있어!”“하지만 저항한 결과는 내가 당신을 한 방에 죽이는 거야!”진 반장은 언성을 높였고 눈을 부릅뜨고 하현의 얼굴을 툭툭 건드리려고 손을 내밀었다.하현은 손을 들어 진 반장의 오른손을 막은 뒤 담담하게 하구봉을 쳐다보며 말했다.“전화 걸어.”하구봉은 어리둥절해하다가 곧바로 하현이 말하는 뜻을 알아차리고 얼른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전화기 건너편에 냉랭한 목소리가 전해오자 하구봉은 핸드폰을 진 반장에게 건네주었다.“당신의 직속 상사가 전화를 받아
하현은 여음채의 말을 듣고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페낭은 정말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곳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이렇게 공공연하게 정경유착이 만연할 줄이야!하현의 표정을 살피던 여음채는 순간 하현이 겁을 먹은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자 여음채는 다시 의기양양한 기운을 내뿜으며 이를 악물고 하현을 냉소적으로 바라보았다.“왜? 무서워?”“이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겠어?”“지금이라도 용서를 빌면 봐줄 수도 있어. 아직 늦지 않았다구.”“그렇지 않으면 당신을 기다리는 건 억세게 불행한 일들뿐일 거야!”말을 하는 동안 여음채는 부일민에게 손짓을 하며 다른 의료진과 경호원들을 모두 불러들여 하현 일행을 겹겹이 에워쌌다.기세등등하게 하현 일행을 노려보고 있는 그들 무리는 당장이라도 덤벼들 듯 사나운 모습이었다.이 광경을 본 여음채는 더욱 득의만만해져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이봐, 이제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려. 어서 사과하고 내 신발 밑창을 개처럼 깨끗이 핥아!”“그렇지 않으면 당장 오늘 밤부터 감옥에서 썩어야 할 거야!”강옥연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떠올랐다.하구봉은 콧방귀를 뀌며 시큰둥한 반응으로 일관했다.주위의 구경꾼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하현에게 다가올 불운을 생각하며 탄식했다.아무리 거세게 싸운다고 해도 경찰관들 앞에서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설마 하현 일행은 법이라도 어기려는 건가?하현은 냉담한 얼굴로 여음채의 얼굴에 시선을 던졌다가 이내 평온한 표정이 되었다.“내가 감옥에 갈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의료 윤리를 중시하지 않는 건 그렇다 쳐. 그런데 어떻게 이익만 챙기고 인명을 돌보지 않는 거야?”“멀쩡한 병원이 사기꾼 소굴이 되어 관광객을 속이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군.”“당신들 오늘 잘 만났어. 당신들은 이제 좋은 날 끝났어.”“이 병원, 망하게 해 줄게.”하현의 말을 들은 부일민과 예쁘장한 간호사들은 모두 코웃음을 쳤다.그녀들은 허
잠시 후 넋이 나간 듯 멍하던 여음채는 겨우 제정신을 차렸다.그녀는 배를 움켜쥐고 일어나 하현을 노려보며 말했다.“개자식! 감히 날 걷어차?”“내 엄마가 누군지 알아?”“당신은 누구야? 의료 윤리를 저버린 원장 아니야?”하현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때린 건 당신이야.”“뭐?”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하현의 목소리와 행동에 여음채는 화가 치밀어 올라 하현을 가리키며 호통쳤다.“모두 저놈을 죽여!”“일이 터지면 내가 다 수습할 거야!”그녀의 말에 수십 명의 건장한 경호원들이 사납게 웃으며 하현을 에워쌌다.강옥연은 이런 막무가내 인사를 본 적이 없었다.병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막무가내라니 정말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결국 강옥연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조심해!”그녀의 말을 들은 부일민은 냉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우리 원장님한테 미움을 산 사람은 살아남지 못해!”예쁘장한 간호사들은 앳된 얼굴로 눈을 흘기며 거들었다.“흥! 조심해 봤자 소용없어! 죽어야 해!”주위를 둘러보던 환자와 의료진들도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탄식하듯 깊은 한숨을 쉬었다.여음채의 인품이 별로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었지만 그녀의 영향력과 인맥은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다.이 페낭 병원에서 누가 감히 그녀한테 대들 수 있겠는가?아무 물정 모르는 외지에서 온 관광객이 하필 여음채를 건드리다니!이게 무슨 바보 같은 짓인가?이때 선두에 선 경호원은 음흉한 미소를 흘리며 하현에게 다가왔다.그는 고개를 옆으로 까딱까딱 꺾으며 광분한 사냥개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이놈아! 감히 여기서 소란을 피워? 여기가 어디라고? 눈을 어디다 둔 거야?”“퍽!”“앗!”경호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현은 듣기 귀찮다는 듯이 손바닥을 휘둘러 그를 내동댕이쳤다.맨 앞에 있던 경호원은 눈앞이 캄캄해졌고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져 기절하고 말았다.기절했어?!이 광경을 보고 놀
앞뒤 사리를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여음채의 모습에 강옥연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뭐가 모욕이에요?”“당신들은 환자를 구하고 비용을 청구해야 하는데 환자를 구하기는커녕 무슨 스타가 나타났다고 부리나케 쫓아다니지 않았냐구요?!”“응급실에 30분씩이나 방치해 놓고 이제 와서 보증금은 돌려주지 못하겠다니요?”“당신들 같은 병원이 무슨 의료 윤리 의식이 있겠어요?”“병원이 아니라 사기 소굴이에요!”강옥연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식약청에 고소할 거예요!”하현은 침착한 눈빛으로 여음채의 표정을 살피다가 하구봉에게 원가령의 안전을 보호하라는 손짓을 했다.아마도 강옥연의 강경함에 여음채는 일을 처리하기가 좀 곤란해졌다고 느꼈을 것이다.여음채는 눈빛이 서늘해지더니 달려오는 수십 명의 경비원들에게 하현 일행을 포위하라고 손짓하며 지시했다.이어 그녀는 경멸하는 표정으로 긴 다리를 뻗으며 다가와 말했다.“우리 페낭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고 잘못을 하면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해.”“무릎을 꿇고 잘못을 인정해. 그리고 내 신발 밑창을 깨끗이 핥아. 그뿐만 아니라 우리 부일민 의사에게 십억을 배상해. 그러면 이 일은 이대로 덮어 두겠어!”“더 이상 일을 크게 만들지 마.”“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당신들은 칠흑 같은 남양 감옥에 갇히게 될 거야!”“1년 반 동안 안에서 통곡만 하다가 세월을 보내게 될 거라고!”분명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했다.여음채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아주 능수능란했다.어떤 외국인이라도 감히 페낭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는 자는 모두 이런 꼴을 당했을 것이다.부일민 일행은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린 채 고소하다는 듯 히죽거렸다.큰소리 뻥뻥 치더니 하현이 아주 제대로 걸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페낭 거물도 아닌데 감히 페낭 병원에 와서 행패를 부려?하늘이 얼마나 높고 땅이 얼마나 두꺼운지 모르는 거지!강옥연은 한기를 가득 품은 목소리로 소리쳤다.“당신들은 아주 법도 뭣도
응급실에 있던 원가령은 아직도 술에 취한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원래 같았으면 벌써 위를 씻고 상처를 치료해야 했었지만 의료진은 그녀를 병상에 눕혀만 놓고 방치한 것이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뻗어 원가령의 위를 몇 번 누른 다음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하구봉에게 쓰레기통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원가령은 술을 모두 토한 뒤에야 비로소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강옥연에게 응급실의 소독약으로 간단하게 원가령의 상처 부위만 소독한 뒤 휠체어를 구해 원가령을 실었다.그리고 하현 일행은 떠날 준비를 했다.이때 문밖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남양 말로 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분명 경비원들이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구봉에게 눈빛을 보냈고 하구봉은 지체 없이 한 걸음 내디디며 한 발로 세게 문을 걷어찼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응급실 문이 벌컥 열렸다.예닐곱 명의 건장한 경비원이 뛰어들려다가 튕겨나가는 부일민과 부딪혀 난장판이 되었다.비슷한 시각 복도 끝 쪽에서는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어딘가 낯이 익어 보이는 여자가 맨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몸매가 유려했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으며 걸어왔다.앳된 간호사 몇 명은 이 여자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이 중년 여자는 페낭 병원에서 제일 영향력이 센 원장, 여음채였기 때문이다.여음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우리 병원에서 소란을 피워? 눈도 없어?”“원장님, 외지 사람들이 와서 억지를 부리고 있어요. 우리가 의술의 도리를 저버렸다고 하면서 사람을 때리고 응급실 문을 발로 차고 있어요.”“우리는 모두 들어가서 환자를 치료하려고 하는데 환자를 마음대로 데려가려고 합니다!”“이건 아주 우릴 무시하는 거죠!”넘어져 있던 부일민은 여음채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하현 일행의 행동을 가리키며 고자질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