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이어, 최건은 손을 날려 하현의 얼굴에 뺨을 때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하현은 번개같이 빠른 손 동작으로 그의 손목을 덥석 잡은 뒤 세게 틀어 주었다.“퍽______”동시에 하현은 최건의 무릎을 걷어 찼다. 최건은 돼지 멱따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하현 앞에 무릎을 꿇었다. “털썩______”하현은 또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이번에는 최건의 인플루언서 여자친구의 뺨을 때리고 바로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방금 이 두 사람은 높은 기세로 자기들이 천왕인 것처럼 굴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두 사람 다 하현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현 너 뭐 하는 거야? 너 감히 최건에게 손찌검을 하다니? 너 죽고 싶은 거야?”“하현 너 미쳤어?”“하현, 너 이 하극상!”이때, 고진석을 비롯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앞으로 나오며 고함을 쳤다. 결국 하현은 닥치는 대로 재떨이를 들고 ‘쾅’하며 최건의 이마에 내리 찍었다. 순간, 피가 튀겼다. “으악______”최건은 이마를 감싸 쥐고 땅에 주저 앉았다. 이 피비린내 나는 광경은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모두들 멈춰 서서 불가사의한 얼굴로 하현을 바라보았다. 유소미도 놀라 벌벌 떨었는데 그녀는 이 일이 이런 결과를 초래하게 될 줄은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현은 쭈그리고 앉아 손을 뻗어 최건의 얼굴을 때리며 말했다. “내가 10분 줄게. 네 아버지에게 와서 사과 하시라고 해. 그렇지 않으면 오늘 내가 너를 불구로 만들어 버릴 거야.”최건은 원망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숙이고 재빨리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저 맞았어요. 스카이 라운지에 있어요. 빨리 와서 저 좀 구해주세요!”맞은 편에서 알아보기도 전에 하현은 핸드폰을 자기 맘대로 받아 들고 웃으며 말했다. “최서국씨죠? 제가 10분 드릴게요! 맞다, 이제 9분 남았네요. 와서 사과하지 않으면 당신의 귀한 아들은 불구가 될 겁니다.”말을 마치
하현은 유소미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내가 왜 도망쳐, 나는 그의 아버지가 나한테 사과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유소미는 바로 할 말을 잃었다. 지금 이 순간에 무슨 말을 해야 좋을 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녀의 눈에 하현은 더 이상 날뛰지 못할 정도로 오만한 지경이 되었다. 10분도 안 돼 스카이 라운지 앞에 승용차 한 대가 오더니 곧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이닥치는 것이 보였다.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최건은 흥분하기 시작했다.그의 아버지가 오셨다!진정한 권력자!그 사람 앞에서 하현 같은 데릴사위는 아무것도 아니다!사실 최건 뿐만 아니라 고진석과 사람들도 지금 기대하는 얼굴이었다. 이런 거물은 평소에 만날 자격도 없는데 오늘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곧 한 무리의 사람들이 뛰어들어왔는데, 어떤 중년의 남성이 앞장서서 들어왔다. 딱 봐도 귀티가 나고 범상치 않은 기세가 있었다. 그의 뒤에 따라 오는 적지 않은 사람들은 분명 그의 직원들일 것이다. 선두에 선 사람이 바로 최서국이다. 지금 그는 얼굴에 노기를 띠고 있었다. 특별히 자신의 아들이 땅에 엎드려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의 안색은 순간 극도로 안 좋아졌다. “아버지, 구해주세요. 이 데릴사위가 감히 저를 때렸어요!”“불구로 만들어 버려요! 반드시 불구로 만들어 버려야 해요!”최건은 큰 소리로 입을 열며 피에 굶주린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최건이었다. 누군가 뒤에서 욕만 해도 한바탕 혼을 내야 할 판인데.지금 이 놈이 감히 나를 때리다니, 넌 죽었다.최서국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최건을 바라보다가 냉랭하게 말했다.“누구야?”“이 사람이요! 이 데릴사위!”고진석은 앞으로 나서며 어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최서국은 인상을 쓰며 누가 감히 자신의 아들을 때렸는지 정말 궁금해 했다.약간의 원한과 노기를 띤 그의 시선이 하현에게로 떨어지는 순간, 곧 이어 그
최서국은 귀담아 듣지도 않고 그저 하현을 쳐다보며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만약 하현이 입을 열지 않으면 최서국은 아마 숨도 쉬지 못할 것이다. “아, 괜찮아. 내 옷이 더러워졌네. 이 옷은 내가 길에서 2천 원 주고 산 가장 좋아하는 옷인데.”하현은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최서국은 무의식적으로 하현을 쳐다보다가 옷이 흠뻑 젖어 있고 차가 얼룩이 진 것이 보였다. 최서국은 화가 나서 갑자기 몸을 곧게 세우고 기세가 충만하여 온 장내를 둘러보며 말했다.“누구야? 누가 여기에 물을 쏟아 부었어!?”그의 부하들은 이 장면을 보고 비록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몰랐지만 상사가 입을 열자 그들도 노기등등하게 소리쳤다.“누구야!?”모두가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 인플루언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인플루언서는 고개를 숙이고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녀는 보통 사람들 앞에서는 기고만장한 기세였지만 최서국 같은 실권을 쥔 거물 앞에서 그녀는 기껏해야 노리개일 뿐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최서국이 화를 내는 것을 보고 그녀는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최서국은 인터넷 스타에게 시선을 떨어뜨리고 또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최건을 보았다. 갑자기 회가 치밀어 올라 최건의 가슴을 걷어찼다.“내가 왜 너 같은 망나니를 낳았을까!”“너는 생매장을 당하지 않으면 나를 쉬게 내버려 두지를 않지!?”“너한테 몇 번이나 말했어! 우리 집안은 관청 사람들이라 일을 조용하게 해야 한다고, 예의를 갖추라고!”“내 말을 귓등으로 들었어?”최서국은 말을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 이 순간 정말 숨이 찰 만큼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걷어찼다. 힘이 빠져서야 주먹을 멈췄다. 최건은 땅바닥에 꿇어앉아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 전혀 모르나?자기 아버지가 생각지도 못하게 자신을 때리다니?자기가 피투성이가 됐는데 아버지는 왜 하현에게 안부를 물으시는 거지?
하현은 최서국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당신이 나를 알아본 것을 봐서 보내 줄게. 나중에 다시는 나를 만나는 일이 없도록 해.”최서국은 대사면을 얻은 듯한 표정으로 즉시 말했다.“반드시!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말을 마치고 그가 손을 한 번 흔들자 한 무리의 부하들이 최건과 그 인플루언서 붙들고 자리를 떠났다. ……이 꿈 같은 장면을 보면서 지금 여기 있는 동문들은 하나같이 꿈 같은 얼굴로 하현이 대체 어떻게 이렇게 한 것인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최서국을 이렇게 두려워하게 만들다니.고진석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말도 안돼. 보잘것없는 데릴사위가 어떻게 그럴 수 있지……”그러고는 구석에 숨어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약 5분 후 고진석은 다시 일어나 두려운 듯이 하현을 쳐다보면서도 어렴풋이 무시하는 마음을 품었다. 곧 현장에 있던 동창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현은 천일 그룹 산하의 기업이 된 설씨 집안의 데릴사위가 되었다. 그의 아내는 전설의 하 세자에게 총애를 받는다고 했다. 하현도 이런 신분 상승 때문에 덩달아 신분이 높아진 것일까?요즘엔 반드시 개를 때리려면 주인을 봐야 한다.하 세자의 신분으로 거기에 두었으니 하현 이 놈이 뜻밖에도 그와 관계가 있고 친분이 있다면 최서국이 그를 두려워할 만 하다. “흥! 자기 마누라가 하 세자와 잤는데도 의기양양해 하다니! 바람 피우는 게 두렵지도 않나?” 고진석은 마음 속으로 경멸하며 욕을 한 마디 내 뱉었지만 겉으로는 감히 표현하지 못했다. 이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전설의 하 세자와 관계를 맺었든 상관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이 상황에서 현장에 있는 이 사람들이 감히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오직 유소미만 의아한 기색이었다. 그녀는 하현이 자신의 아내를 의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신분은 도대체……동창생들이 오해를 하자 유소미는 은근히 기뻐
왕씨네. 자신의 반지를 만지작거리던 왕정민이 반지를 내려 놓은 후에야 공손한 얼굴을 하고 있는 어떤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세자님, 전에 우리가 보냈던 사람이 돌아왔습니다.”“들여 보내.”왕 세자의 얼굴에는 뭔가 흥미로운 표정이 역력했다. 얼마 후 고진석이 공손한 얼굴로 들어왔다. 이때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닥에 바로 무릎을 꿇고 땅에 얼굴을 대고 차분한 소리로 말했다. “왕세자님을 뵙습니다.” “일은 어떻게 됐어?”왕정민이 입을 열었다. 고진석이 말했다.“세자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설씨 집안의 데릴사위를 만났습니다.”“그는 확실히 기고 만장하고 너무 날뛰는 것 같았는데 제가 보기엔……”“어때?”왕정민이 말했다. “제가 보기에 이 데릴사위는 분명 어떤 특출난 부분이 없었습니다. 그가 가장 잘하는 것은 좋은 아내를 얻어서 그 힘을 빌릴 줄 아는 거였습니다……”“어?” 왕정민은 웃었다.“그럼 네 생각엔, 그가 전설의 하 세자일거 같아?”“그 사람이요?”고진석은 웃었다. “세자님, 제가 그 데릴사위와 대학 동창인데 대학 다닐 때는 제멋대로 날뛰고 다녔지만 지금은 남의 데릴사위가 되고 나서 꼴이 말이 아닙니다!”“이런 사람이 만약 하 세자라면 감히 제가 하민석이라고도 말 할 수 있습니다!”분명 고진석은 하 세자의 일을 결코 모르지 않았다. 그는 적어도 하 세자가 하민석 때문에 3년 동안 숨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왕정민이 웃었다. “당당한 하 세자, 숨어서 3년 동안 다른 사람의 데릴사위가 되는 건 확실히 그의 성격에 맞지 않지!”“이제 보니 그가 이렇게 설씨 집안을 보살펴 준 게 설은아가 그의 내통녀라서 그런 건가?”고진석이 비웃는 얼굴로 말했다. “제가 추측하기로는 그 데릴사위는 지금 자기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도 모를 겁니다!” 왕정민은 얼굴색이 계속 바뀌었다. 잠시 후 손에 있던 반지를 살짝 돌리며 말했다.“그래, 가봐!”잠시 후
같은 시각.대모산 뒷편, 백운별원 한 가운데. 하민석은 의자에 앉아 지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의 앞에 멀지 않은 곳에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고 서있는 그림자 하나가 있었다.만약 하현의 동창생이었다면 이 사람이 최서국이라는 것을 알아봤을 것이다. 하현 앞에서 상갓집 개 한 마리 같았던 최서국은 지금 안색이 훨씬 차분해졌다. “모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3번 말해봐……”하민석은 마침내 눈을 뜨고 어떤 생각에 잠긴 듯 입을 열었다. 최서국은 방금 이미 이 상황을 3번이나 말했지만 지금 그는 감히 거절하지 못하고 기억을 더듬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3번을 말했다. 하민석은 줄곧 조용히 듣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네가 보기에 내 큰형이 3년 전에 비해 지금 어떤 거 같아?”최서국은 한참 동안 숙고한 끝에 조심스럽게 말했다. “3년 전, 하…… 그 사람은 지나치게 뽐내며 자신을 과시했다면, 지금은 예전의 기세는 이미 없어진 것 같아 보였어요……”“어? 어떻게 그렇게 생각해?”하민석은 더욱 흥분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 사람은 더 침착해졌고 더 위험해진 것 같아 보였어요……”최서국은 머뭇거리다가 잠시 후에야 이를 갈며 말했다. “3년 전의 수단으로는 어쩌면 그를 상대할 수 없을 것 같아요……”“그럼 우리가 준비한 그 선물을 그에게 보내줘.”하민석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최서국은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긴 복도에서 빠져 나와서야 그는 몸을 똑바로 세우고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그 사람이든 하민석이든 최서국의 눈에는 모두 넘을 수 없는 산봉우리였다. 용과 뱀이 교전하면 진짜 용이 누군지 가릴 수 있다. 하지만 최서국은 어느 편에 설 자격도 없었다. 3년 전 그는 하민석을 선택했다. 3년 후 그는 계속 하민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스마트 밸리.하현은 아직도 일을
“그래, 알겠어.”전화를 끊은 뒤.하현은 제일 먼저 천일 그룹 회장실로 갔다. 슬기에게 하던 모든 일을 멈추고 이 일을 철저히 조사하도록 했다. 슬기도 당시 박재민을 알고 있었는데 그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몹시 놀라며 바로 나가 조사를 했다.30분쯤 지나자 슬기가 창백한 얼굴로 돌아왔다.“잘 알아봤어?”하현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잘 알아봤습니다.”슬기는 차분하게 말했다.“3년 전, 회장님이 급하게 남원을 떠나시고 3일 후, 박재민은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하민석이야?”하현은 차갑게 입을 열었다.“하민석이 아니라 왕씨 집안입니다.”슬기가 말했다.“왕씨 집안, 그때 자신의 입장을 나타내기 위해 자진해서 박재민에게 손을 댔습니다.”“왕가.”하현은 손에 들고 있는 찻잔을 으스러뜨렸다.“회장님, 흥분하지 마세요. 왕가도 이전의 왕가가 아니에요. 왕정민도 이전의 왕정민이 아니고요.”“지금의 왕가는 강남의 일류 가문 중에서도 최고라 상대하지 않는 것이 좋아요.”슬기는 약간 걱정스러운 듯이 입을 열었다.하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닷가 쪽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박재민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고 내가 가장 아끼는 형제야.”“그가 나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는 걸 오늘 내가 알았으니 그 왕씨 집안은 장례를 치르게 될 거야.” 하현은 사소해서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당연한 일인 듯 엄중한 말투로 말했다. 슬기는 심호흡을 하며 대뜸 말했다.“회장님, 되도록 빨리 왕가의 모든 상황을 정확히 조사하겠습니다. 결정해주시면 움직이겠습니다.”“얼마나 걸릴까?”하현은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일주일이요. 일주일 정도 왕가의 모든 일을 정확히 조사해서 해야 차질이 없을 것 같습니다.”슬기는 숙고하고 난 뒤 입을 열었다. “슬기, 고생했어.”하현은 슬기를 깊이 쳐다보았다. “이 일 후에 내가 보상해줄게.”……이튿날.슬기의 수행 하에 하현은 박
하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문제가 있네! 내 기억으로 재민이의 부모님은 공기업 직원으로 계셔서 복지 주택이 있어야 할 텐데 어떻게 이런 시골 같은 곳에서 살 수가 있어?”슬기는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아마 왕가가 꾸민 짓일 거예요. 기업들이 감히 그의 명령을 거절하지 못하고 집을 거둬들였는데 제가 듣기로 부모님의 퇴직금도 모두 정지된 것으로 압니다!”“부모님은 어쩔 수 없이 시골에서 사셨는데 듣기로 폐품을 주워 생활하신다고 합니다.”하현의 안색이 변했다.왕가, 너무 지나쳤어! 아마 이 두 노인이 복수할 힘이 없지 않았다면 그들은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이 일에 있어서는 하민석보다 왕가가 더 흉악하다!왕가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가자! 가서 한 번 보자! 재민이의 부모님은 내 부모님이야! 누가 감히 그를 건드렸는지 봐야겠어!”하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슬기는 놀란 얼굴이었다. 그녀는 하현이 이렇게 격분하는 것을 오랫동안 보지 못했었다. 하현이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대도 경수가 많은 무리들을 데리고 와서 무덤을 수리했다. 함께 온 사람은 역시 변백범이었다. 양쪽의 인원을 합치면 적어도 몇 백 명은 되었다. 필경 하현이 방금 화를 냈으니 슬기는 자연히 제일 먼저 이 일을 처리해야 했다. ……남원의 시골은 더럽고 오수가 넘쳐나 곳곳에 악취가 풍겼다. 남원과 같은 기상을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모르는 사람은 이 곳이 전설의 빈민가인 줄 알 것이다. 사실 여기는 바로! 물고기와 용이 한데 뒤섞여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공기업 사람들도 이 곳은 전혀 관여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이곳은 도시의 어두 운 곳, 회색지대였다.일자리가 적어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노출된 옷차림에 촌스러운 화장을 한 여자들도 골목 어귀에 서 있었다. 골목 곳곳에 쓰레기가 널려 있어 토할 것 같은 냄새가 났다. 하현은 이따금씩 자신의 심장
이때 왕인걸은 남을 괴롭히던 습성을 드디어 드러내며 사나운 진면목을 가감 없이 표출했다.그의 말이 떨어지자 몇몇 사나운 친구들은 모두 맥주병을 들고 다가와 하현의 머리를 깨뜨릴 준비를 했다.설은아는 깜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지금 뭐 하는 거야?”“당신들, 함부로 굴면 관청에 신고할 거야!”“신고?”예쁜 종업원이 냉소를 흘렸다.“신고가 먹힌다면 내가 성을 갈겠어!”“경찰서는 모두 우리 왕 도련님 사람들이야!”“경찰서에 신고는커녕!”“당신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부탁해 봐도 아무 소용없어!”“설은아, 괜찮아. 내가 처리할게.”하현은 전화를 걸려던 설은아를 제지했고 냉담한 시선으로 왕인걸을 쳐다보았다.“스스로 용서를 구할 기회를 정말로 포기할 작정이야?”왕인걸은 냉소를 지으며 피가 섞인 침을 바닥에 내뱉었다.“용서를 구하라고? 당신이 나한테 그런 말할 자격이나 된다고 생각해?”“그래? 내가 그런 자격이 없는 건가?”하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손가락으로 튕겨 한 번에 왕인걸의 이마에 올려놓았다.“이젠 어때? 이만하면 내가 자격이 되는 건가?”“무슨 허튼수작이야?!”왕인걸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이마를 찌푸렸다.“이게 뭐야?”“명함?”“이게 날 밟을 수 있는 자격이라는 거야?”“당신은 당신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세자라도 돼? 아님 부잣집 도련님?”이번엔 예쁜 종업원이 나섰다.“명함 한 장으로 우리 왕 도련님을 겁주려고?”“막장 드라마를 너무 본 거 아니야? 당신이 막장 드라마 주인공인 줄 알아?”왕인걸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이마에 있던 명함을 집어 들어 찢을 준비를 했다.그러나 그가 찢으려고 했을 때 눈가에 예기치 못한 잔광이 비치기 시작했다.그가 유심히 명함을 보는 순간 전선에 온몸이 닿은 것처럼 찌릿하고 전율이 솟아올랐다.간민효.간결하고 명료한 이 이름 석 자가 왕인걸의 온몸을 벌벌 떨게 만들었다.간민효의 명함을?!게다
”개자식! 감히 날 때려?!”이때 왕인걸이 얼굴을 가린 채 비틀거리며 기어올랐다.그는 얼굴 가득 원망과 흉악함으로 뒤덮인 채 하현을 향해 이를 갈며 격노했다.“넌 이제 죽었어!”“넌 이제 끝이야!”몇몇 불량한 친구들도 잡아먹을 듯 눈빛을 사납게 이글거리며 하현과 설은아를 노려보았다.분명 이 두 사람은 오늘 여기서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예쁜 종업원도 얼른 양복 차림의 사나운 남자 십여 명을 불렀다.아마도 식당 경비원들인 것 같았다.하현은 이 사람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테이블 위에 있는 차를 집어 들고 단숨에 들이마신 후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아직도 무릎을 꿇고 사과할 기회가 있어.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당신들 손은 부러질 거야!”하현의 말을 듣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코웃음을 쳤다.사람들은 모두 하현처럼 허여멀건한 사람이 감히 자신들을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금정이란 곳은 힘이나 능력 좀 있다고 함부로 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금정 같은 대도시에서는 역량, 인맥, 배경, 출신, 권력, 지위 그 모든 것이 갖춰져야 어느 정도 어깨에 힘깨나 줄 수 있다.하현이 감히 부잣집 도련님을 건드렸으니 아마 목숨을 부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촌뜨기! 넌 이제 죽었어!”예쁜 종업원이 노여움을 금치 못하는 표정으로 말했다.“네가 무슨 자격으로 우리 왕 도련님이랑 싸운단 말이야!”“왕 도련님이 누군지 알기나 해?”“왕 도련님은 금정 간 씨 가문 산하의 명성 필름 사장님이야.”“그는 금정 간 씨 가문의 먼 친척이야. 어떻게 당신 같은 촌놈이 모욕을 줄 수 있겠어?!”“못 들어봤어?”“옛날 왕사당 앞에 평범한 백성들이 드나들었다는 말 말이야!”예쁜 종업원은 화가 난 표정으로 말했다.왕인걸은 탑클래스 인물이었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금정 사 씨 가문과 관계가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얼뜨기 한 놈이 왕인걸을 함부로 발로
하현의 말이 떨어지자 장내가 조용해졌고 모두들 멍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의심하며 자신의 귀를 후벼팠다.이 말이 왕인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모두가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그런데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도 모를 촌뜨기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어불성설 아닌가?왕인걸도 놀라서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재미있군. 내 앞에서 이렇게 날뛰는 사람은 오랫동안 없었어.”“당신이 처음은 아니지만, 단연코 가장 재미있는 사람이야.”“이렇게 하지. 무릎 꿇고 머리를 세 번 조아리고 물러가.”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거기에 세 번 더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을 꿇어.”하현의 말을 들은 왕인걸의 얼굴에는 더욱더 비아냥거리는 기색이 더해졌다.이 촌뜨기가 지금 누구랑 말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한 건가?“왕인걸, 이놈이 전혀 체면을 세워 주지 않는군!”“뭐? 왕인걸한테 머리를 세 번 조아리라고? 네놈이 무덤에 들어가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없을 거야!”“왕인걸, 이놈이 이렇게 뻔뻔스럽게 나오니 하늘과 땅이 얼마나 무서운지 죽는 게 뭔지 직접 알려줘야 할 것 같은데?!”한 무리의 불량배들이 모두 호들갑을 떨며 한마디씩 덧붙였다.그들은 조금도 거리낄 것이 없는 사람처럼 험한 말을 마구 내뱉었다.왕인걸은 무리들의 비아냥거리는 말을 듣고 이대로 있는 것은 너무 창피하다고 생각했다.결국 왕인걸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하현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개자식! 더 이상 네놈 체면 따위 생각할 필요 없어! 당장 네놈을 죽여버릴 거야!”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왕인걸은 손바닥을 휘둘러 하현의 얼굴과 코를 때리려고 했다.그러나 그의 손바닥이 막 튀어나왔을 때 하현이 재빨리 손바닥을 휘둘렀다.“퍽!”낭랑한 소리가 울려퍼짐과 동시에 왕인걸은 얼굴이 따끔거리고 눈앞이 캄캄해지며 온몸이 멍해져 오는 것 같았다.그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다른
친구를 하자는 말을 특히 강조하며 왕인걸은 흐뭇하게 웃으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알렸다.그 말속에는 친구 이상의 음흉한 관계를 의미하는 낌새가 다분히 느껴져 그를 따르던 짐승 같은 남자들이 히죽히죽 웃었다.하지만 왕인걸은 마치 해야 할 말을 정상적으로 했을 뿐이라는 듯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그는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하현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했다.설은아는 왕인걸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하현을 향해 차가운 눈빛만 쏘았다.“이제 다 먹었어? 그럼 가자.”이 광경을 본 여자 종업원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고약한 년! 왜 이렇게 자꾸 잘난 척하는 거야?!”“왕인걸이 스스로 발걸음을 했는데 아직도 고고한 척 콧대를 세우는 거야?!”“당신 옆에 있는 그 사람이 그렇게 값어치가 나가는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거냐고!”“왕 도련님이 화를 내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무서운 일이 벌어질 거야!”“자자,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해. 위협하지 마. 미녀 앞에선 상냥하게 굴어야지!”왕인걸은 여자 종업원에게 손을 내저은 다음 손에 든 와인잔을 흔들며 소금에 절인 채소와 생선볶음을 뒤적거리고 있던 하현을 보고 웃었다.“저기 선생님, 난 당신의 여자가 마음에 들어요!”“대충 다 먹었으면 저리 썩 꺼져 주시죠! 어서요!”“이렇게 예쁜 여자는 못 참죠!”“사람은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해요!”말을 하면서 왕인걸은 자신의 포르쉐 열쇠와 금정 별장 출입카드를 꺼내어 하현 앞에 놓았다.이 모습을 본 한 무리의 불량배들은 모두 껄껄 웃으며 하현을 비웃었다.한 방에 보내버리는군!완전히 더는 큰소리치지 못하도록 쇄기를 박는 거지!눈앞의 얼뜨기는 아마 800년을 분투해도 저런 물건은 손에 넣지 못할 거야!예전에 왕인걸이 이렇게 나오자 보통 남자들은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겁에 질렸었다.사회 경험이 좀 있는 남자라면 다 알 것이다.이런 물건을 가진 남자에게 함부로 저항할 수 없다는 걸 말
”손님, 다시 한번 자세히 보세요!”“손님 옆에 있는 남자가 밥 먹는 거 말고 뭘 할 줄 알겠어요?”“보세요! 지금도 아무 거절도 못 하잖아요!”“그런데 왕 도련님은 어때요? 손님 옆에 있는 저 남자보다 몇천 배는 더 좋죠! 만약 손님이 이 기회를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할 거예요!”말을 하면서 여자 종업원은 하현에게 눈을 내리깔았다.그녀는 줄곧 하현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궁상스럽기 짝이 없는 이 남자를 무시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녀의 눈에 금정에서 가장 가치가 있는 남자는 오직 왕인걸이었다.설은아는 더 이상 여자 종업원과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 홧김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저리 꺼져요!”여자 종업원도 냉소를 흘리며 지지 않고 대꾸했다.“손님, 정말 어지간하시네요!”“그렇게 있는 척하면 뭐가 좋아요? 무슨 소용이 있냐구요?”설은아는 찬바람이 쌩쌩 부는 목소리로 말했다.“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당신 사장한테 말해서 당신을 해고해 버릴 거예요! 두고 보세요!”바로 그때 이들의 모습을 흐릿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던 왕인걸이 와인잔을 움켜쥐고 천천히 걸어왔다.걸을 때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얼마나 당차고 당당한지 보는 사람들마저 숨이 막힐 정도였다.그의 길을 막고 있던 일부 손님들은 얼른 길을 내주었다.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을 일부러 만들 필요가 없다고 느낀 것이다.왕인걸은 마치 원하는 것은 모두 손에 넣겠다는 듯 거만하고 당당하게 걸어왔다.그를 따르던 무리들도 지금 히죽히죽 웃으며 다가왔다.“쯧쯧쯧, 결국 왕인걸이 이렇게 여자를 빼앗는군!”“자고로 왕인걸의 눈에 띈 여자가 도망갈 곳이 어디 있겠어? 순순히 그의 품에 안기는 게 능사지!”“예전에 청순미녀라고 이름을 날리던 어린 스타가 처음에는 왕인걸한테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었지.”“그러다가 나중에 어떻게 되었어? 왕인걸이 모든 지원을 끊자 결국엔 그에게 기어들어왔지.”“그리고 자기가 여신급 여자를 데리고 다니는 줄 알고 왕
”안녕하세요.”하현과 설은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곱게 화장을 한 종업원이 82년산 라피트 한 병을 들고 다가왔다.“저분이 두 분께 드리는 것이니 받아주세요.”종업원은 설은아와 하현이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귀한 82년산 라피트 한 병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술을 보냈어요? 82년산 라피트를?”하현과 설은아는 모두 약간 어리둥절해하면서 종업원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았다.지방시에서 옷을 맞춰 입은 멋진 남자가 와인잔을 살짝 들어 보였다.그는 젊고 멋있고 부유해 보였다.딱 봐도 금정에서 성공한 사람 같았다.그리고 그의 곁에는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 몇 명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다.순간 그들은 하현과 설은아를 바라보며 뭔가를 기대하는 눈빛이었다.하현이 입을 열기도 전에 설은아가 주저하지 않고 냉랭하게 말했다.“죄송하지만 난 저분을 몰라요. 그러니 이거 가져가세요!”“그게...”설은아의 차가운 눈빛에 여자 종업원은 눈썹을 찡그리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손님, 손님 뜻은 알겠지만 왕 씨 가문 도련님이 다른 사람한테 이렇게 대하는 건 아주 드물어요. 그러니 저분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게 좋을 거예요.”“어쨌든 금정에 왔으니 저분이 젊고 잘생기고 부유하다는 걸 모르진 않을 테니까요!”“많은 여자들이 저분한테 시선 한 번 받으려고 해도 좀체 기회가 없었다구요!”“저분이 와인을 한 병 주셨어요. 그것도 82년산 라피트 한 병을요! 설마 당신들은 이게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모르는 건 아니겠죠?”“정말 이해가 안 되네요. 왜 거절하시는 거예요?”예쁜 종업원은 설은아가 배려라는 걸 너무 모른다고 생각한 듯했다.보아하니 왕 씨 가문 도련님은 이곳의 단골이고 신분이 범상치 않으며 이 여자 종업원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모양이었다.이것은 어린아이라 하더라도 단번에 알 수 있는 것이었다.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의 앞에 있는 안줏거리를 씹었다.계속 먹자니 맛이 나쁘지 않았다.방금 비행기
저녁 6시, 금정 쇼핑센터 맞은편에 있는 금정 포장마차.포장마차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곳은 금정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 중 하나이고 매일 수천 번까지 번호가 매겨진다고 한다.그리고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는 모두 각양각색의 고급 차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설은아는 진작부터 하현을 이곳에 데리고 와서 식사를 하려고 마음먹었다.그래서 그녀는 가방에서 번호표를 꺼냈을 때 적잖이 놀랐다.두 사람이 차를 세우고 금정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서자 저녁 식사가 절정인 이때 화려한 옷을 입은 손님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설은아는 종업원에게 번호표를 제시했고 두 사람은 미리 남겨둔 자리로 안내되었다.이 과정에서 설은아는 사람들의 시선을 확 끌었다.화장을 곱게 하고 팔과 허벅지를 드러낸 여자들과 달리 설은아는 별로 화장기도 없지만 외모나 기질로 보아 모든 사람들을 압도하기 충분했다.예쁜 여자를 옆에 둔 남자들도 설은아를 힐끔힐끔 쳐다보았고 눈에선 뜨거운 시선이 광선처럼 빛났다.이 사람들 중에는 금정의 부잣집 2세들도 있었고 이제 막 사업에 분투해 성공 가도에 진입한 사람들도 있었다.물론 의기양양하고 패기 넘치는 스타트업 종사자들도 많았다.기질과 스타일로 볼 때 이 사람들은 하현을 앞서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그래서 설은아 옆에 있는 하현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야유를 보냈다.그러나 설은아는 이 사람들을 무시하고 자리에 앉은 후 테이블 사이사이를 지나가는 주문 기계에 몇 가지 특별 요리를 주문한 다음 손을 뻗어 하현에게 차를 따라주었다.모처럼 부드러운 여인의 손길을 느끼며 하현은 술을 한잔 마신 뒤 설은아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샤넬의 코트를 입은 그녀는 늘씬하고 매력적인 몸매를 가졌다.여기에 옥처럼 빛나는 외모와 가끔 다리를 꼴 때마다 흘러내리는 미끈한 각선미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달나게 했다.하현은 설은아가 사업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면서 더욱 눈부시게 빛나는 슈퍼우먼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는 찻잔
이때 간민효는 하현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져서 잔뜩 호기심이 솟아올랐다.그녀는 다시 하현에게 조금 더 다가가 그의 귀에 대고 입김을 불어넣으며 말했다.“하현, 오늘 밤 시간 있어? 같이 밥 한 끼 할까?”“고맙지만 오늘 밤 하현은 시간이 없어!”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설은아가 마침내 더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그녀는 하이힐을 신고 당당하게 걸어와 하현을 자신 쪽으로 잡아당겨 팔짱을 끼고 만면에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하현은 오늘 밤 나와 함께 저녁을 먹을 거거든.”간민효는 설은아를 보고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말했다.“설은아, 이 사람이 그 능력 없는 네 전남편이야?”하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비슷한 외모에 비슷한 나이대의 두 여인을 쳐다보았다.설은아와 간민효가 아는 사이?하지만 두 사람이 아는 사이인 것이 정상이었다.모두 금정에서 내로라하는 정상급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모를 수가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설은아는 간민효에게 무슨 설명을 하기도 귀찮아서 얼른 하현을 끌고 VIP 출구로 나와 자신의 빨간 페라리로 들어갔다.그 후 그녀가 가속페달을 밟자 차는 굉음을 내며 쌩하니 그 자리를 떠났다.갑자기 혼자가 된 간민효는 멍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조수석에 탄 하현은 안전벨트를 매면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오랜만에 만난 전처, 아니 와이프라고 해야 하나?이런 어색하고 떨떠름한 자리라니!차는 금정 국제공항을 빠져나왔고 하현이 금정의 가을빛을 감상할 사이도 없이 설은아는 거칠게 차를 몰았다.그리고 가속페달을 사정없이 밟으며 그녀는 떠보는 듯 입을 열었다.“간민효, 예쁘고 상냥하지?”맞는 말이었다.간민효는 전신급에 달하는 독술을 가졌으면서도 아름답고 성격도 시원시원했다.그리고 몇 시간 동안 함께 지내면서 하현은 그녀의 기질이 참 따뜻하고 상냥하다는 것도 알았다.그러나 차 안을 뒤덮은 질투의 불길을 느끼며 하현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간민효가 어느 정도 사람 좋고 매력적이라는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비행기는 어느새 금정 국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하현과 간민효는 함께 VIP 통로를 걸었다.얼핏 보면 두 사람이 한 쌍의 연인처럼 보였다.이에 간민효의 뒤를 따르던 양복 차림의 남자는 못마땅한지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두 사람은 공항의 VIP 출구에 다다랐고 간민효는 하현을 향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현,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지만 가는 길까지 내가 데려다줄게.”하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야. 비행기 탔을 때 이미 아내한테 내 일정을 보냈어.”“아마 마중 나올 거야.”“아내?”‘아내’ 라는 말을 들은 간민효는 어리둥절해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하현의 네 번째 손가락을 쳐다보았다.반지가 없었다.간민효의 눈빛을 알아차린 하현이 입을 열었다.“아, 이제 전처라고 봐야지.”하현의 말을 듣고 간민효는 그제야 소리 없이 웃었고 한층 더 하현에게 관심이 생기는 것 같았다.“하현, 당신에게 아내가 있든 없든 간에 내가 말했듯이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해. 금정에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게.”“자, 우리 작별의 포옹이라도 해!”이 말을 들은 몇 명의 사내들이 모두 순식간에 고개를 빳빳이 들고 하나같이 험악한 얼굴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자, 다음에 또 봐!”하현도 험악한 표정의 남자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앞으로 나가 간민효와 포옹을 나누고 그녀의 귀에 대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참, 마침 내가 무학에 어느 정도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당신 몸에 뭔가 병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아마 십중팔구는 입신에 이르는 독술과 관련이 있을 거야.”“그래서 말인데 내가 필요할 땐 언제든 연락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도와줄게.”말을 하면서 하현은 쪽지 한 장을 여자의 가슴에 쑤셔 넣었다.이 행동은 예의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행동을 함으로써 하현은 침착하게 기운의 광선을 통과해서 여자의 심맥을 보호했다.“내 병을 눈치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