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은 유소미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내가 왜 도망쳐, 나는 그의 아버지가 나한테 사과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유소미는 바로 할 말을 잃었다. 지금 이 순간에 무슨 말을 해야 좋을 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녀의 눈에 하현은 더 이상 날뛰지 못할 정도로 오만한 지경이 되었다. 10분도 안 돼 스카이 라운지 앞에 승용차 한 대가 오더니 곧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이닥치는 것이 보였다.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최건은 흥분하기 시작했다.그의 아버지가 오셨다!진정한 권력자!그 사람 앞에서 하현 같은 데릴사위는 아무것도 아니다!사실 최건 뿐만 아니라 고진석과 사람들도 지금 기대하는 얼굴이었다. 이런 거물은 평소에 만날 자격도 없는데 오늘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곧 한 무리의 사람들이 뛰어들어왔는데, 어떤 중년의 남성이 앞장서서 들어왔다. 딱 봐도 귀티가 나고 범상치 않은 기세가 있었다. 그의 뒤에 따라 오는 적지 않은 사람들은 분명 그의 직원들일 것이다. 선두에 선 사람이 바로 최서국이다. 지금 그는 얼굴에 노기를 띠고 있었다. 특별히 자신의 아들이 땅에 엎드려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의 안색은 순간 극도로 안 좋아졌다. “아버지, 구해주세요. 이 데릴사위가 감히 저를 때렸어요!”“불구로 만들어 버려요! 반드시 불구로 만들어 버려야 해요!”최건은 큰 소리로 입을 열며 피에 굶주린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최건이었다. 누군가 뒤에서 욕만 해도 한바탕 혼을 내야 할 판인데.지금 이 놈이 감히 나를 때리다니, 넌 죽었다.최서국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최건을 바라보다가 냉랭하게 말했다.“누구야?”“이 사람이요! 이 데릴사위!”고진석은 앞으로 나서며 어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최서국은 인상을 쓰며 누가 감히 자신의 아들을 때렸는지 정말 궁금해 했다.약간의 원한과 노기를 띤 그의 시선이 하현에게로 떨어지는 순간, 곧 이어 그
최서국은 귀담아 듣지도 않고 그저 하현을 쳐다보며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만약 하현이 입을 열지 않으면 최서국은 아마 숨도 쉬지 못할 것이다. “아, 괜찮아. 내 옷이 더러워졌네. 이 옷은 내가 길에서 2천 원 주고 산 가장 좋아하는 옷인데.”하현은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최서국은 무의식적으로 하현을 쳐다보다가 옷이 흠뻑 젖어 있고 차가 얼룩이 진 것이 보였다. 최서국은 화가 나서 갑자기 몸을 곧게 세우고 기세가 충만하여 온 장내를 둘러보며 말했다.“누구야? 누가 여기에 물을 쏟아 부었어!?”그의 부하들은 이 장면을 보고 비록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몰랐지만 상사가 입을 열자 그들도 노기등등하게 소리쳤다.“누구야!?”모두가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 인플루언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인플루언서는 고개를 숙이고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녀는 보통 사람들 앞에서는 기고만장한 기세였지만 최서국 같은 실권을 쥔 거물 앞에서 그녀는 기껏해야 노리개일 뿐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최서국이 화를 내는 것을 보고 그녀는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최서국은 인터넷 스타에게 시선을 떨어뜨리고 또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최건을 보았다. 갑자기 회가 치밀어 올라 최건의 가슴을 걷어찼다.“내가 왜 너 같은 망나니를 낳았을까!”“너는 생매장을 당하지 않으면 나를 쉬게 내버려 두지를 않지!?”“너한테 몇 번이나 말했어! 우리 집안은 관청 사람들이라 일을 조용하게 해야 한다고, 예의를 갖추라고!”“내 말을 귓등으로 들었어?”최서국은 말을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 이 순간 정말 숨이 찰 만큼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걷어찼다. 힘이 빠져서야 주먹을 멈췄다. 최건은 땅바닥에 꿇어앉아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 전혀 모르나?자기 아버지가 생각지도 못하게 자신을 때리다니?자기가 피투성이가 됐는데 아버지는 왜 하현에게 안부를 물으시는 거지?
하현은 최서국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당신이 나를 알아본 것을 봐서 보내 줄게. 나중에 다시는 나를 만나는 일이 없도록 해.”최서국은 대사면을 얻은 듯한 표정으로 즉시 말했다.“반드시!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말을 마치고 그가 손을 한 번 흔들자 한 무리의 부하들이 최건과 그 인플루언서 붙들고 자리를 떠났다. ……이 꿈 같은 장면을 보면서 지금 여기 있는 동문들은 하나같이 꿈 같은 얼굴로 하현이 대체 어떻게 이렇게 한 것인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최서국을 이렇게 두려워하게 만들다니.고진석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말도 안돼. 보잘것없는 데릴사위가 어떻게 그럴 수 있지……”그러고는 구석에 숨어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약 5분 후 고진석은 다시 일어나 두려운 듯이 하현을 쳐다보면서도 어렴풋이 무시하는 마음을 품었다. 곧 현장에 있던 동창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현은 천일 그룹 산하의 기업이 된 설씨 집안의 데릴사위가 되었다. 그의 아내는 전설의 하 세자에게 총애를 받는다고 했다. 하현도 이런 신분 상승 때문에 덩달아 신분이 높아진 것일까?요즘엔 반드시 개를 때리려면 주인을 봐야 한다.하 세자의 신분으로 거기에 두었으니 하현 이 놈이 뜻밖에도 그와 관계가 있고 친분이 있다면 최서국이 그를 두려워할 만 하다. “흥! 자기 마누라가 하 세자와 잤는데도 의기양양해 하다니! 바람 피우는 게 두렵지도 않나?” 고진석은 마음 속으로 경멸하며 욕을 한 마디 내 뱉었지만 겉으로는 감히 표현하지 못했다. 이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전설의 하 세자와 관계를 맺었든 상관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이 상황에서 현장에 있는 이 사람들이 감히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오직 유소미만 의아한 기색이었다. 그녀는 하현이 자신의 아내를 의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신분은 도대체……동창생들이 오해를 하자 유소미는 은근히 기뻐
왕씨네. 자신의 반지를 만지작거리던 왕정민이 반지를 내려 놓은 후에야 공손한 얼굴을 하고 있는 어떤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세자님, 전에 우리가 보냈던 사람이 돌아왔습니다.”“들여 보내.”왕 세자의 얼굴에는 뭔가 흥미로운 표정이 역력했다. 얼마 후 고진석이 공손한 얼굴로 들어왔다. 이때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닥에 바로 무릎을 꿇고 땅에 얼굴을 대고 차분한 소리로 말했다. “왕세자님을 뵙습니다.” “일은 어떻게 됐어?”왕정민이 입을 열었다. 고진석이 말했다.“세자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설씨 집안의 데릴사위를 만났습니다.”“그는 확실히 기고 만장하고 너무 날뛰는 것 같았는데 제가 보기엔……”“어때?”왕정민이 말했다. “제가 보기에 이 데릴사위는 분명 어떤 특출난 부분이 없었습니다. 그가 가장 잘하는 것은 좋은 아내를 얻어서 그 힘을 빌릴 줄 아는 거였습니다……”“어?” 왕정민은 웃었다.“그럼 네 생각엔, 그가 전설의 하 세자일거 같아?”“그 사람이요?”고진석은 웃었다. “세자님, 제가 그 데릴사위와 대학 동창인데 대학 다닐 때는 제멋대로 날뛰고 다녔지만 지금은 남의 데릴사위가 되고 나서 꼴이 말이 아닙니다!”“이런 사람이 만약 하 세자라면 감히 제가 하민석이라고도 말 할 수 있습니다!”분명 고진석은 하 세자의 일을 결코 모르지 않았다. 그는 적어도 하 세자가 하민석 때문에 3년 동안 숨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왕정민이 웃었다. “당당한 하 세자, 숨어서 3년 동안 다른 사람의 데릴사위가 되는 건 확실히 그의 성격에 맞지 않지!”“이제 보니 그가 이렇게 설씨 집안을 보살펴 준 게 설은아가 그의 내통녀라서 그런 건가?”고진석이 비웃는 얼굴로 말했다. “제가 추측하기로는 그 데릴사위는 지금 자기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도 모를 겁니다!” 왕정민은 얼굴색이 계속 바뀌었다. 잠시 후 손에 있던 반지를 살짝 돌리며 말했다.“그래, 가봐!”잠시 후
같은 시각.대모산 뒷편, 백운별원 한 가운데. 하민석은 의자에 앉아 지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의 앞에 멀지 않은 곳에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고 서있는 그림자 하나가 있었다.만약 하현의 동창생이었다면 이 사람이 최서국이라는 것을 알아봤을 것이다. 하현 앞에서 상갓집 개 한 마리 같았던 최서국은 지금 안색이 훨씬 차분해졌다. “모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3번 말해봐……”하민석은 마침내 눈을 뜨고 어떤 생각에 잠긴 듯 입을 열었다. 최서국은 방금 이미 이 상황을 3번이나 말했지만 지금 그는 감히 거절하지 못하고 기억을 더듬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3번을 말했다. 하민석은 줄곧 조용히 듣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네가 보기에 내 큰형이 3년 전에 비해 지금 어떤 거 같아?”최서국은 한참 동안 숙고한 끝에 조심스럽게 말했다. “3년 전, 하…… 그 사람은 지나치게 뽐내며 자신을 과시했다면, 지금은 예전의 기세는 이미 없어진 것 같아 보였어요……”“어? 어떻게 그렇게 생각해?”하민석은 더욱 흥분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 사람은 더 침착해졌고 더 위험해진 것 같아 보였어요……”최서국은 머뭇거리다가 잠시 후에야 이를 갈며 말했다. “3년 전의 수단으로는 어쩌면 그를 상대할 수 없을 것 같아요……”“그럼 우리가 준비한 그 선물을 그에게 보내줘.”하민석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최서국은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긴 복도에서 빠져 나와서야 그는 몸을 똑바로 세우고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그 사람이든 하민석이든 최서국의 눈에는 모두 넘을 수 없는 산봉우리였다. 용과 뱀이 교전하면 진짜 용이 누군지 가릴 수 있다. 하지만 최서국은 어느 편에 설 자격도 없었다. 3년 전 그는 하민석을 선택했다. 3년 후 그는 계속 하민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스마트 밸리.하현은 아직도 일을
“그래, 알겠어.”전화를 끊은 뒤.하현은 제일 먼저 천일 그룹 회장실로 갔다. 슬기에게 하던 모든 일을 멈추고 이 일을 철저히 조사하도록 했다. 슬기도 당시 박재민을 알고 있었는데 그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몹시 놀라며 바로 나가 조사를 했다.30분쯤 지나자 슬기가 창백한 얼굴로 돌아왔다.“잘 알아봤어?”하현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잘 알아봤습니다.”슬기는 차분하게 말했다.“3년 전, 회장님이 급하게 남원을 떠나시고 3일 후, 박재민은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하민석이야?”하현은 차갑게 입을 열었다.“하민석이 아니라 왕씨 집안입니다.”슬기가 말했다.“왕씨 집안, 그때 자신의 입장을 나타내기 위해 자진해서 박재민에게 손을 댔습니다.”“왕가.”하현은 손에 들고 있는 찻잔을 으스러뜨렸다.“회장님, 흥분하지 마세요. 왕가도 이전의 왕가가 아니에요. 왕정민도 이전의 왕정민이 아니고요.”“지금의 왕가는 강남의 일류 가문 중에서도 최고라 상대하지 않는 것이 좋아요.”슬기는 약간 걱정스러운 듯이 입을 열었다.하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닷가 쪽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박재민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고 내가 가장 아끼는 형제야.”“그가 나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는 걸 오늘 내가 알았으니 그 왕씨 집안은 장례를 치르게 될 거야.” 하현은 사소해서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당연한 일인 듯 엄중한 말투로 말했다. 슬기는 심호흡을 하며 대뜸 말했다.“회장님, 되도록 빨리 왕가의 모든 상황을 정확히 조사하겠습니다. 결정해주시면 움직이겠습니다.”“얼마나 걸릴까?”하현은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일주일이요. 일주일 정도 왕가의 모든 일을 정확히 조사해서 해야 차질이 없을 것 같습니다.”슬기는 숙고하고 난 뒤 입을 열었다. “슬기, 고생했어.”하현은 슬기를 깊이 쳐다보았다. “이 일 후에 내가 보상해줄게.”……이튿날.슬기의 수행 하에 하현은 박
하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문제가 있네! 내 기억으로 재민이의 부모님은 공기업 직원으로 계셔서 복지 주택이 있어야 할 텐데 어떻게 이런 시골 같은 곳에서 살 수가 있어?”슬기는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아마 왕가가 꾸민 짓일 거예요. 기업들이 감히 그의 명령을 거절하지 못하고 집을 거둬들였는데 제가 듣기로 부모님의 퇴직금도 모두 정지된 것으로 압니다!”“부모님은 어쩔 수 없이 시골에서 사셨는데 듣기로 폐품을 주워 생활하신다고 합니다.”하현의 안색이 변했다.왕가, 너무 지나쳤어! 아마 이 두 노인이 복수할 힘이 없지 않았다면 그들은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이 일에 있어서는 하민석보다 왕가가 더 흉악하다!왕가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가자! 가서 한 번 보자! 재민이의 부모님은 내 부모님이야! 누가 감히 그를 건드렸는지 봐야겠어!”하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슬기는 놀란 얼굴이었다. 그녀는 하현이 이렇게 격분하는 것을 오랫동안 보지 못했었다. 하현이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대도 경수가 많은 무리들을 데리고 와서 무덤을 수리했다. 함께 온 사람은 역시 변백범이었다. 양쪽의 인원을 합치면 적어도 몇 백 명은 되었다. 필경 하현이 방금 화를 냈으니 슬기는 자연히 제일 먼저 이 일을 처리해야 했다. ……남원의 시골은 더럽고 오수가 넘쳐나 곳곳에 악취가 풍겼다. 남원과 같은 기상을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모르는 사람은 이 곳이 전설의 빈민가인 줄 알 것이다. 사실 여기는 바로! 물고기와 용이 한데 뒤섞여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공기업 사람들도 이 곳은 전혀 관여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이곳은 도시의 어두 운 곳, 회색지대였다.일자리가 적어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노출된 옷차림에 촌스러운 화장을 한 여자들도 골목 어귀에 서 있었다. 골목 곳곳에 쓰레기가 널려 있어 토할 것 같은 냄새가 났다. 하현은 이따금씩 자신의 심장
건달 두목은 무의식적으로 몸을 돌려 하현의 엄숙한 얼굴을 쳐다보았다. “넌 누구야? 감히 날 막다니? 죽고 싶어?”건달은 위협하며 말했다.“털컥______”하현은 마음대로 힘을 주더니 건달의 팔뚝을 바로 부러뜨렸다. 그런 뒤 그의 아랫배를 발로 차더니 이 건달들을 사정없이 걷어찼다. 건달들은 엎드려 끊임없이 발버둥을 치면서 비명만 질러댈 뿐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다. 다른 건달 몇 명이 화난 표정으로 달려 들었으나 하현이 세 번 걷어차자 모두 날아가 버렸다. 그들이 울부짖으며 물러가자 오히려 건달 두목은 큰 소리로 말했다. “이 늙은이, 네가 감히 사람을 불러! 너 기다려! 너 오늘 죽었어!”“용이 형님이 곧 올 거야! 그 때가면 너희들은 너희 죽은 아들과 함께 묻히게 될 거야!”이 건달들은 떠났지만 박재민의 부모는 눈을 감고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지난 3년 동안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을 충분히 겪었다. 이런 곳에서 살다 보면 사회의 밑바닥을 알 수 있다. 그들은 폐품을 모아 그것으로 살아갈 뿐이었는데 그 시골의 끝자락에서 성진용이 끊임없이 지원비를 받아갔다. 소위 이 용이 형님은 수하에 수십 명의 건달들이 있어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다. 듣자 하니 그의 수중에 여러 명의 인질들이 있다고 했지만 아무도 경찰에 신고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 마을 주민들은 모두 순순히 그에게 지원비를 지불해야 했다. 누가 안내거나 늦게 내면 분명 한 대 맞을 것이다. 지금 누군가가 용이 형님의 동생을 때렸으니, 잠시 후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이때, 부들부들 떨던 박경태는 자기도 모르게 말이 튀어 나왔다.“형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곳은 당신 같은 분이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 빨리 가세요! 그렇지 않으면 곧 떠날 수 없을 지도 몰라요!”이 지경까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지만 박경태의 마음씨는 여전히 좋았다. 다른 사람들과 연루되고 싶지 않은 것이 분명
”여수혁?”하현은 여음채를 쳐다보며 차가운 미소를 띠었다.“그가 이 병원 대주주인 동시에 당신의 뒷배라고?”“그래! 알고 나니 이제야 겁이 나?”“무서운 줄 알면 이제 무릎 꿇고 내 신발 밑창을 핥아!”“그리고 다리를 부러뜨리고 이십억을 배상해! 그러면 여수혁도 당신한테 살길을 열어줄지도 모르지!”“그렇지 않으면 당신 오늘 재수 없을 줄 알아!”여음채는 경멸하는 기색을 한껏 드러내었다.하현이 남양 무맹과 여수혁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전혀 별 볼 일 없는 존재라고 여겼던 것이 분명했다.강옥연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하현에게 말했다.“하현, 여수혁은 남양 무맹주가 총애하는 제자야.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페낭 무맹의 부문주라서 건드리기가 쉽지 않아.”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어릿광대일 뿐이야.”“뭐? 어릿광대?”하현의 말에 여음채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누가 당신한테 그런 용기를 줬는지 모르겠군! 흥!”“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이 사람은 페낭 무맹의 부맹주 아들이야!”“이 사람은 페낭 무맹 장로가 아주 아끼는 제자라구!”“게다가 남양 무맹이 페낭 무맹에 파견한 제자라고!”“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딜 가나 거칠 것이 없는 사람들이야. 그뿐만 아니라 실력도 비할 데 없어!”화려한 옷차림의 남녀 예닐곱 명이 걸어와 소리치며 하현을 향해 멸시하는 눈빛을 보이며 비아냥거렸다.“야, 너 오늘 큰일 났어! 아주 재수 옴 붙은 날이라고! 우리가 당신 목숨뿐만 아니라 가죽까지 싹 벗겨버릴 거거든! 하하하!”이 사람들은 하현이 무슨 도마 위에 올려진 생선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원하는 대로 칼질을 해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험한 말을 마구 내뱉었다.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들은 더욱 경멸하는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 같은 외지인이 감히 그들 같은 거물들한테 입을 놀리다니 정말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망나니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하현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이 광경을 보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외지인 관광객 주제에 너무 오만하고 포악하지 않는가?진 반장이 이미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나려는데 여전히 권세를 믿고 남을 괴롭히려고 하다니, 이건 지나친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진 반장은 얼굴을 가리고 일어나 하현의 의기양양한 얼굴을 잠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도대체 이놈의 정체가 뭔지 알 길이 없어 진 반장은 순간 분노했지만 애써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젊은이, 당신 너무 심한 거 아니야?”“퍽!”하현은 손바닥을 휘둘러 또다시 뺨을 때리며 냉담하게 말했다.“그렇게 대단하게 나한테 큰소리쳤다는 건 잘못을 하면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도리도 잘 안다는 뜻 아니셨나?”“이렇게 간단한 이치도 몰라?”진 반장은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갈았다.생각 같아서는 하현을 죽이고 싶었지만 결국 그는 소리 없이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미안해! 잘못했어!”그는 하현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구봉이 전화를 건 정종화 총경이 두려운 것이 분명했다.감히 이런 상황에서 어찌 그가 하현을 상대로 싸울 수 있겠는가?상대방의 사과를 들은 후에야 하현은 앞으로 나와 그의 오른쪽 얼굴을 툭툭 건드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꺼져!”진 반장은 그의 무리들을 데리고 쏜살같이 꽁무니를 뺐다.그리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들은 하현이 진 반장을 내쫓을 만큼 강력한 힘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진 반장 일행이 꽁무니를 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진 반장의 얼굴까지 때렸다.“내가 당신을 얕잡아 본 것 같군. 당신이 이렇게 큰 뒷배를 뒀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진 반장이 황급히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여음채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 냉소를 흘렸다.“그렇지만 똑똑히 들어. 당신 뒤에 얼마나 큰 거물이 있든 간에!”“페낭 병원의 뒷배가 훨씬 강할 거야!”“날 건드려?! 흥! 두고 봐! 당신은 죽
선두에 선 남자를 보자 여음채는 안색이 환해졌다.그리고 나서 얼른 다정하게 남자의 팔짱을 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진 반장님, 마침 잘 오셨어요. 바로 저 자식이에요. 저 자식은 우리가 의료 윤리를 중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때린다고 호도하고 있어요.”“게다가 내 아랫배까지 걷어찼다구요!”“저놈을 반드시 감옥에 가둬 주세요. 그 안에서 제대로 반성할 수 있게요.”여음채는 하현을 가리키며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었다.부일민 일행도 모두 큰소리로 맞장구를 치며 하현이 억지를 부린다고 한마디씩 보탰다.“뭐? 감히 병원에서 원장님을 때려요?”“대낮에 그런 짓을 한단 말이에요?”“법도 뭣도 없답니까?”진 형사는 하현의 얼굴을 주시했고 곧바로 그가 남양인이 아니란 걸 눈치챘다.그러자 얼굴이 싸늘하게 바뀌며 비아냥거렸다.“이봐, 어서 저놈을 데려가! 모질게 심문해! 지독하게 조사해!”“감히 반항한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법으로 다스려!”하현은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진 형사를 쳐다보았다.“당신은 어쨌든 형사반 반장이면 경찰서를 대표해서 일을 해야죠. 무슨 일이 생겼으면 제대로 조사를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일을 어떻게 하든 당신 같은 사람이 날 가르칠 건 아니지!”“당신이 먼저 사람을 치고 법을 어겼어. 그러니 법 집행자로서 당신을 연행하는 건 당연한 거야!”“물론 당신도 저항하는 길을 택할 수 있어!”“하지만 저항한 결과는 내가 당신을 한 방에 죽이는 거야!”진 반장은 언성을 높였고 눈을 부릅뜨고 하현의 얼굴을 툭툭 건드리려고 손을 내밀었다.하현은 손을 들어 진 반장의 오른손을 막은 뒤 담담하게 하구봉을 쳐다보며 말했다.“전화 걸어.”하구봉은 어리둥절해하다가 곧바로 하현이 말하는 뜻을 알아차리고 얼른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전화기 건너편에 냉랭한 목소리가 전해오자 하구봉은 핸드폰을 진 반장에게 건네주었다.“당신의 직속 상사가 전화를 받아
하현은 여음채의 말을 듣고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페낭은 정말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곳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이렇게 공공연하게 정경유착이 만연할 줄이야!하현의 표정을 살피던 여음채는 순간 하현이 겁을 먹은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자 여음채는 다시 의기양양한 기운을 내뿜으며 이를 악물고 하현을 냉소적으로 바라보았다.“왜? 무서워?”“이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겠어?”“지금이라도 용서를 빌면 봐줄 수도 있어. 아직 늦지 않았다구.”“그렇지 않으면 당신을 기다리는 건 억세게 불행한 일들뿐일 거야!”말을 하는 동안 여음채는 부일민에게 손짓을 하며 다른 의료진과 경호원들을 모두 불러들여 하현 일행을 겹겹이 에워쌌다.기세등등하게 하현 일행을 노려보고 있는 그들 무리는 당장이라도 덤벼들 듯 사나운 모습이었다.이 광경을 본 여음채는 더욱 득의만만해져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이봐, 이제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려. 어서 사과하고 내 신발 밑창을 개처럼 깨끗이 핥아!”“그렇지 않으면 당장 오늘 밤부터 감옥에서 썩어야 할 거야!”강옥연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떠올랐다.하구봉은 콧방귀를 뀌며 시큰둥한 반응으로 일관했다.주위의 구경꾼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하현에게 다가올 불운을 생각하며 탄식했다.아무리 거세게 싸운다고 해도 경찰관들 앞에서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설마 하현 일행은 법이라도 어기려는 건가?하현은 냉담한 얼굴로 여음채의 얼굴에 시선을 던졌다가 이내 평온한 표정이 되었다.“내가 감옥에 갈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의료 윤리를 중시하지 않는 건 그렇다 쳐. 그런데 어떻게 이익만 챙기고 인명을 돌보지 않는 거야?”“멀쩡한 병원이 사기꾼 소굴이 되어 관광객을 속이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군.”“당신들 오늘 잘 만났어. 당신들은 이제 좋은 날 끝났어.”“이 병원, 망하게 해 줄게.”하현의 말을 들은 부일민과 예쁘장한 간호사들은 모두 코웃음을 쳤다.그녀들은 허
잠시 후 넋이 나간 듯 멍하던 여음채는 겨우 제정신을 차렸다.그녀는 배를 움켜쥐고 일어나 하현을 노려보며 말했다.“개자식! 감히 날 걷어차?”“내 엄마가 누군지 알아?”“당신은 누구야? 의료 윤리를 저버린 원장 아니야?”하현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때린 건 당신이야.”“뭐?”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하현의 목소리와 행동에 여음채는 화가 치밀어 올라 하현을 가리키며 호통쳤다.“모두 저놈을 죽여!”“일이 터지면 내가 다 수습할 거야!”그녀의 말에 수십 명의 건장한 경호원들이 사납게 웃으며 하현을 에워쌌다.강옥연은 이런 막무가내 인사를 본 적이 없었다.병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막무가내라니 정말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결국 강옥연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조심해!”그녀의 말을 들은 부일민은 냉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우리 원장님한테 미움을 산 사람은 살아남지 못해!”예쁘장한 간호사들은 앳된 얼굴로 눈을 흘기며 거들었다.“흥! 조심해 봤자 소용없어! 죽어야 해!”주위를 둘러보던 환자와 의료진들도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탄식하듯 깊은 한숨을 쉬었다.여음채의 인품이 별로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었지만 그녀의 영향력과 인맥은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다.이 페낭 병원에서 누가 감히 그녀한테 대들 수 있겠는가?아무 물정 모르는 외지에서 온 관광객이 하필 여음채를 건드리다니!이게 무슨 바보 같은 짓인가?이때 선두에 선 경호원은 음흉한 미소를 흘리며 하현에게 다가왔다.그는 고개를 옆으로 까딱까딱 꺾으며 광분한 사냥개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이놈아! 감히 여기서 소란을 피워? 여기가 어디라고? 눈을 어디다 둔 거야?”“퍽!”“앗!”경호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현은 듣기 귀찮다는 듯이 손바닥을 휘둘러 그를 내동댕이쳤다.맨 앞에 있던 경호원은 눈앞이 캄캄해졌고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져 기절하고 말았다.기절했어?!이 광경을 보고 놀
앞뒤 사리를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여음채의 모습에 강옥연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뭐가 모욕이에요?”“당신들은 환자를 구하고 비용을 청구해야 하는데 환자를 구하기는커녕 무슨 스타가 나타났다고 부리나케 쫓아다니지 않았냐구요?!”“응급실에 30분씩이나 방치해 놓고 이제 와서 보증금은 돌려주지 못하겠다니요?”“당신들 같은 병원이 무슨 의료 윤리 의식이 있겠어요?”“병원이 아니라 사기 소굴이에요!”강옥연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식약청에 고소할 거예요!”하현은 침착한 눈빛으로 여음채의 표정을 살피다가 하구봉에게 원가령의 안전을 보호하라는 손짓을 했다.아마도 강옥연의 강경함에 여음채는 일을 처리하기가 좀 곤란해졌다고 느꼈을 것이다.여음채는 눈빛이 서늘해지더니 달려오는 수십 명의 경비원들에게 하현 일행을 포위하라고 손짓하며 지시했다.이어 그녀는 경멸하는 표정으로 긴 다리를 뻗으며 다가와 말했다.“우리 페낭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고 잘못을 하면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해.”“무릎을 꿇고 잘못을 인정해. 그리고 내 신발 밑창을 깨끗이 핥아. 그뿐만 아니라 우리 부일민 의사에게 십억을 배상해. 그러면 이 일은 이대로 덮어 두겠어!”“더 이상 일을 크게 만들지 마.”“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당신들은 칠흑 같은 남양 감옥에 갇히게 될 거야!”“1년 반 동안 안에서 통곡만 하다가 세월을 보내게 될 거라고!”분명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했다.여음채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아주 능수능란했다.어떤 외국인이라도 감히 페낭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는 자는 모두 이런 꼴을 당했을 것이다.부일민 일행은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린 채 고소하다는 듯 히죽거렸다.큰소리 뻥뻥 치더니 하현이 아주 제대로 걸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페낭 거물도 아닌데 감히 페낭 병원에 와서 행패를 부려?하늘이 얼마나 높고 땅이 얼마나 두꺼운지 모르는 거지!강옥연은 한기를 가득 품은 목소리로 소리쳤다.“당신들은 아주 법도 뭣도
응급실에 있던 원가령은 아직도 술에 취한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원래 같았으면 벌써 위를 씻고 상처를 치료해야 했었지만 의료진은 그녀를 병상에 눕혀만 놓고 방치한 것이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뻗어 원가령의 위를 몇 번 누른 다음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하구봉에게 쓰레기통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원가령은 술을 모두 토한 뒤에야 비로소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강옥연에게 응급실의 소독약으로 간단하게 원가령의 상처 부위만 소독한 뒤 휠체어를 구해 원가령을 실었다.그리고 하현 일행은 떠날 준비를 했다.이때 문밖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남양 말로 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분명 경비원들이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구봉에게 눈빛을 보냈고 하구봉은 지체 없이 한 걸음 내디디며 한 발로 세게 문을 걷어찼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응급실 문이 벌컥 열렸다.예닐곱 명의 건장한 경비원이 뛰어들려다가 튕겨나가는 부일민과 부딪혀 난장판이 되었다.비슷한 시각 복도 끝 쪽에서는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어딘가 낯이 익어 보이는 여자가 맨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몸매가 유려했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으며 걸어왔다.앳된 간호사 몇 명은 이 여자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이 중년 여자는 페낭 병원에서 제일 영향력이 센 원장, 여음채였기 때문이다.여음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우리 병원에서 소란을 피워? 눈도 없어?”“원장님, 외지 사람들이 와서 억지를 부리고 있어요. 우리가 의술의 도리를 저버렸다고 하면서 사람을 때리고 응급실 문을 발로 차고 있어요.”“우리는 모두 들어가서 환자를 치료하려고 하는데 환자를 마음대로 데려가려고 합니다!”“이건 아주 우릴 무시하는 거죠!”넘어져 있던 부일민은 여음채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하현 일행의 행동을 가리키며 고자질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