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왕정민 뒤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래사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오래되고 화려한 왕조의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이 시대에 이런 장면이 나오는 것은 분명 기이하고 신비롭다. 한참 뒤에 왕정민이 손을 흔들자 곁에 있던 누군가가 오래된 사냥용 활을 건냈다. 그가 활을 구부려 쏘았는데 그건 화살이 아니라 작살이었다. 우레와 같은 소리와 함께 잠시 후 바다 위에 피의 물결이 한 조각 떠올랐다. 왕 세자만의 사냥이 끝났다. 그는 사냥용 활을 내려놓고 정교하게 수 놓아진 손수건으로 손바닥을 여러 번 닦은 뒤에야 고개를 들고 뒤를 바라보며 말했다. “모두 일어서.”“감사합니다. 세자님!”한 무리의 사람들이 여전히 두 손을 늘어뜨리고 일제히 일어섰다. 겉모습은 하민석에 비해 다소 커 보였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왕가의 크고 작은 일들을 차례로 나와서 보고하고 있다. 매 문서는 거대한 자본 사슬과 자원의 배급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 방면에서 왕가는 비록 하씨 가문의 체격에 비할 수는 없었지만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왕가의 현재 저력은 남원의 일류 가문 중 으뜸이라 할 수 있었다. 크고 작은 일을 거의 다 처리한 후 왕태민은 한 가지 작은 일을 떠올리며 말했다.“그 일은 어떻게 돼가고 있어?”그에게 있어서 이것은 파리 한 마리를 죽이는 일과 같이 작은 일이었다. 그러나 이 일은 하씨 가문의 한 분이 시키신 일이니 왕 세라라도 신경을 좀 써야 했다. 비록 왕가는 하씨 가문과 얽매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왕정민은 총명한 사람이라 와신상담의 이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칩거하면서 기다려야 했다. 왜냐하면 하씨 가문과 같은 존재와 직면해야 했기 때문이다. 명중을 시켜야지 그렇지 않으면 왕가는 순식간에 무너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하씨 집안이 일러 준 작은 일에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작은 일까지도 그는 전부 직접 관여하였다. 왕태민은 지금 일어나 두 손은 늘어뜨리고 이마에 식은 땀
“예전 같았으면 확실히 대단했겠지……”왕정민은 웃었다.“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지……”“그럼 세자님의 말씀은……”왕태민은 허리를 굽히고 얼굴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왕정민의 눈동자 속이 다채로운 색들로 번쩍이더니 이내 담담하게 말했다. “남원에 세자는 하나밖에 없어.”“나 왕 세자, 하 세자도 존재할 필요가 없지.”지금 왕씨 집안 사람들의 눈동자에는 감격의 빛이 가득했다.여러 해 동안 칩거한 끝에 드디어 세자가 움직이게 되었나?왕정민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서서 대모산 쪽을 바라 보았다. 확고한 뜻과 의지가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해도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아무리 험난한 길이라도 끈기 있게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국엔 이뤄낼 것이다.……다음 날, 대모산 리조트 프로젝트 공사장의 임시 사무실. 설민혁과 설지연 두 사람이 함께 설은아를 찾아왔다.설은아는 두 사람을 보며 물었다.“왜? 무슨 일 있어?”“듣기로 길바닥 보스가 최근에 프로젝트 공사장에 와서 귀찮게 했다며? 설 회장이 해결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해서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있는지 보려고 왔어.” 설민혁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실력 있게 있을 처리해야지! 이렇게 작은 일로 길바닥 사람들을 놀라게 하다니, 설은아, 너 정말 쓰레기구나!”설지연도 지금 비웃으며 입을 열었다. 설은아는 위아래도 두 사람을 잠시 훑어본 뒤에야 웃으며 말했다.“두 분 정말 재주가 좋으시네요. 남원에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길바닥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내 회사에 와서 문제를 일으키게 하다니.” “내가 과연 너희들을 잘못 본 게 아니었어.”“그럴 리가 있나? 너도 알다시피 우리가 남원에 온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길바닥 사람들과 연락을 할 수 있었겠어?”설민혁은 한마디로 부정했다. “근데 어젯밤에 누가 나한테 알려줬어. 우리 프로젝트 공사현장에 일이 생겼다고. 나는 우리 대모산 리조트 프로젝트가 걱정되는 것뿐이
“퍽_____”대도 경수는 뺨을 한 대 크게 후려쳤다. 바로 설민혁의 얼굴로 날아와 머리가 어질어질 해 빙빙 돌았다.그러나 지금 그는 감히 손을 대거나 반격을 하지 못하고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 “선생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눈이 멀어서……”“무슨 시키실 것이 있으신지, 말씀만 하세요……”설민혁은 정말 무서웠다. 대도 경수는 이런 인물이었다. 그를 가지고 놀다 죽이는 건 그야말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방금 설은아 앞에서 날뛰었지만 지금 대도 경수의 신분을 알아보고는 설설 기었다. 설지연도 울지 않는 매미처럼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그는 비록 곧 왕가에 시집갈 사람이라 신분이 평범치 않았다. 하지만 그녀도 두려웠다!이런 곳에서 만에 하나 길바닥 사람들이 그녀를 짓밟으면 그녀가 무슨 자격으로 왕가에 시집을 가겠는가? 그래서 그녀는 지금 설민혁 보다 더 두려워했다. 대도 경수가 설민혁을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설은아 앞에서 두 손을 늘어뜨리고 깍듯하고 공손하게 말했다.“설 회장님, 방금 이 두 사람이 회장님께 소란을 피웠습니까? 만약에 그런 거라면 제가 지금 이 두 사람을 당장 물고기 밥으로 던져버리겠습니다.” 이 말을 꺼내자 설민혁과 설지연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이 길바닥의 보스는 정말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설민혁은 조금 괜찮아졌지만, 설지연은 바로 붕괴됐다. “은아야, 나는 왕가에 시집갈 사람이야. 내가 나중에 설씨 집안의 백이 돼 줄 거야. 나는 여기서 사고를 당할 수 없어. 나 좀 봐줘.”설지연은 설은아의 손을 잡고 입을 열었다. 설은아는 차갑게 그녀를 노려보았지만 잠시 후 한숨을 쉬었다. 이 두 사람이 지나치게 굴어도 모두 가족이었다. 지금 이들이 설은아에게 악랄하게 굴어도 그녀는 정말 독한 마음을 먹을 수 없었다. 설은아가 명령을 내리지 않는 것을 보고 대도 경수는 다시 설민혁의 뺨을 한대 후려 치고 나서야 허리
“그래.”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원래 슬기에게 차를 한 대 보내달라고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자신이 요즘 계속 지시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아 슬기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너무 바빴다. 지금 유소미가 자신을 데리고 가준다 하니 그녀의 차에 그냥 타기만 하면 되었다. 하현이 차에 오르는 것을 보고 유소미는 마음속으로 은근히 기뻐했다. 지금 그녀의 눈에 하현은 겸손한 부자였다. 남원에서 이런 부자들은 비록 많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적지도 않았다. 많은 부자들이 아직도 슬리퍼에 잠옷을 입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나?어쨌든 그들은 돈이 많으니 뭘 하든 다 맞다.차가 조용히 차고를 빠져나갔다. 유소미는 한편으로는 차를 몰면서 한편으로는 호기심 많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하현, 너 3년 전에 데릴사위가 되는 게 그렇게 쉽진 않았지?”“설마, 너 무슨 큰 일을 계속 준비해온 거야? 하늘로 높이 날아오를 준비?”하현은 좀 의아해 했다. 처음으로 어떤 사람이 그의 3년 간의 행적에 의심을 품은 것이었다.정말 한참 만에 처음으로 어떤 사람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응, 내가 확실히 작은 장사를 하고 있기는 해.”하현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너 3년 동안 무슨 장사를 했길래 아무렇지 않게 4백억을 쓸 수 있어?”유소미는 비록 운전을 하고 있었지만 초롱초롱한 아름다운 눈이 하현에게 줄곧 머물러 있었다. “사람들에게 경호비라도 내라고 해야지……”하현이 말했다. 그가 한 말도 틀리지 않았다. 그는 여러 해 동안 많은 것들을 준비했다. 매년 이 아래 사람들은 적지 않은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 경호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흠______”“어쩐지!”유소미는 찬 숨을 내쉬며 하현이 길바닥의 보스와 분명 어울려 지냈을 것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분명 지위가 굉장히 높은 부류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그녀에게 길바닥은 아예 다른 세상이었다. 어쩐지 그래서 그녀가 몇 년 동안
첫째, 다들 하현이 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둘째, 다들 하현이 유소미의 조수석에서 내릴 거라고는 더더구나 생각지 못했다.오늘 남원 동창회라 김겨울이나 서울에 있는 동창생들은 모두 오지 못했다. 그래서 다들 지금 약간 놀랐다.“어? 이거 하현 하 도련님 아니야? 당시에 우리 학교에서 풍운아였잖아!”가장 먼저 난국을 타파한 사람은 매우 활기차 보이는 남자였다. 그는 전에 하현과 다른 반이었다. 다른 반의 대표, 고진석이었다. 하지만 그는 학교 다닐 때 하현에게 주눅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졸업한지 몇 년이 지났고, 그도 그런대로 나쁘지 않게 지내고 있었다. 듣기로 한 기업의 중위권이 되어 연간 수입이 이미 몇 억은 되었다. 그는 오늘 BMW 7 시리즈를 몰고 와 아주 체면이 섰다. 오늘 밤 동창회에 나온 남자들 중에 그는 꽤 잘 지내는 편이었다. 하현이 미소를 지었다. 인사를 한 셈인데, 사실 그는 고진석과 원래 관계가 여물지 않았다. “하현아, 우리는 네가 못 나올 줄 알았어!”“맞아, 우리가 듣기로 네가 서울에서 다른 사람의 데릴사위가 됐다고 들었거든. 매일 장모님 발도 씻겨 드리고 화장실 청소를 한다고……”“뜻밖에도 네 아내가 너를 동창회에 보내 준걸 보니 너 오늘 청소는 다 했구나?”다른 몇몇 학생들은 눈을 마주치며 가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물론 다들 동창생이라 예의를 갖추기는 했지만, 말속에 담겨있는 비아냥 거리는 냄새는 숨길 수가 없었다. 고진석은 기침을 하면서 다른 사람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하현이 뭘 하든 자기가 선택하는 거지.”“오늘 여기 다들 동창으로 모였으니 기분 나쁜 얘기는 하지 말자!”사실 방금 안에서 이 사람들은 모두 하현이 데릴사위가 된 일에 대해 비웃었다. 그가 감히 정말 동창회에 올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그래! 하현은 늘 인물이었으니 동창회에 오는 게 당연하지!”“오늘 밤 너희들 하현에게 술을 너무
하현이 대학에 다닐 때가 마침 하씨 가문이 다시 부상하기 시작한 절대 절명의 시기였다. 그 시절에 그는 맨손으로 20조의 제국을 만들고, 많은 일들을 했었다. 비록 이 동창들은 그가 도대체 뭘 하는지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당시에 하현은 너무 조용했지만 누가 봐도 재벌 2세나 부자집 도련님으로 보이긴 했다.더군다나 그는 용모가 평범하지 않았기에 그에게 대시하는 여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 때 이미 조숙한 하현은 어찌 그런 어린 꼬마들이 눈에 들어 왔겠는가? 이렇게 차츰차츰 그는 오히려 학교의 유명 인물로 떠올랐다.하지만 대학 졸업 후 첫해는 그가 하씨 가문을 다시 강남의 최정상으로 회복시킨 그 해에 하씨 가문에 내란이 일어났다. 하씨 대문호 어르신의 지시 하에 하현은 권력을 양보하라고 강요 당했다. 이제 막 부상한 하씨 가문이 다시 무너지지 않도록 하현은 한창 전성기일 때 결단하고 물러났다. 하지만 동기들이 보기에 하현은 가세가 기울어 다른 사람의 데릴사위가 된 것으로 보여졌다.그 후 한때 화려했던 인물은 누구나 몇 마디씩 욕하는 길 건너 쥐 꼴이 되었다. 특히 하현은 적지 않은 여신급 여학생들이 쫓아 다녔기 때문에 남학생들은 그에게 더욱 질투하며 질책했었다. “그 당시에 재벌 2세란 놈도 결과가 좋지는 않네. 지금 보니 데릴사위가 됐어!” “데릴사위도 사람인가? 나 같으면 길에서 구걸을 하더라도 데릴사위가 되지는 않았을 텐데!” “가장 관건은 오늘 동창회에 얼굴을 내밀고 참석한다는 거야. 정말 뻔뻔하다!”“설마 우리한테 돈 빌리러 온 건 아니겠지? 모두 조심해!”“……”여러 가지 의론이 분분한 가운데 이 사람들은 하현에게 질투하며 뒤에서 몰래 나쁜 짓을 꾸미고 있었다. 지금 겨우 발산할 기회를 찾았으니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돈많은 남자만을 좋아하는 가난한 여학생들은 지금 다행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애당초 하현을 따라가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이런 폐물과
“모두들 그만 해.” 유소미는 사람들이 계속 하현을 비웃지 못하게 화제를 돌렸다. 사실 그녀 역시 하현이 부자라는 것을 들추어내는 것이 조심스러웠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유소미의 말을 듣고 적지 않은 동창생들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어쨌든 유소미의 신분이 있으니 다들 감히 그녀의 체면을 떨어뜨릴 수가 없었다. 곧 동창생들은 잇달아 자리에 앉았고, 하현이 앉은 곳 주변에는 아무도 오고 싶어 하지 않았다. 재빨리 유소미는 자진해서 그의 오른편에 앉았고, 뒤이어 유소미와 친했던 여동창생들이 건너와 앉았다. 이렇게 되면 하현은 또 미인들에게 둘러 싸이게 되니 여복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멀지 않은 곳에서 몇 명의 남학생들이 고진석에게로 모여들며 말했다.“진석이 형, 보아하니 우리 존예가 반한 모양이에요! 하현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주었는데도 그를 이렇게 좋아하다니. 오늘 밤 미인을 안고 돌아가기가 쉽지 않겠는데요!” 고진석은 차갑게 말했다.“걱정 마, 내가 설마 데릴사위 따위에게 지겠어?”이때, 하현은 미인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유소미 외에 그 왼편에 또 다른 엄청난 미인 장서진이 앉아 있었다. 장서진는 진정한 엄친딸이었다. 남원의 2류 가문이었지만 그녀는 엄친딸의 성깔이 전혀 없었고, 성격이 너무 좋았다. 그녀는 대학교 때 줄곧 하현에게 약간의 호감을 가지고 있었고 지금도 하현을 무시할 마음이 없었다. “하현, 아니면 이렇게 하자. 우리 집안에서 최근에 사람을 뽑고 있거든. 내가 부장에게 네 자리하나 마련해 달라고 한 번 해볼게. 기본급이 2백 만원이 넘어. 미래 성장 가능성도 좋고.”“만약에 관심 있으면 나한테 연락해.”장서진은 웃음을 머금고 입을 열면서 동시에 하현에게 명함을 한 장 건넸다.“고마워.” 하현은 장서진이 정말 악의 없이 그를 도와주려고 하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이때 그는 명함을 받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반면 유소미는 소리 없이 웃고 있었다. 비록
“장서진, 넌 모를 거야. 최건의 아버지는 지금 대단한 인물이셔. 다들 어찌 감히 그를 기다리지 않을 수 있겠어!”“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잘 나간다 해도 연봉이 20억 정도 하잖아? 최건 앞에서는 귀염둥이 수준이지 않겠어?”과장되게 들리겠지만 이건 사실이다!얼마 후 복도에서 소리가 들렸다. 모두 일어서는데 특별히 고진석이 가장 적극적으로 바로 맨 앞으로 나섰다. 최건은 브랜드 없는 평범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손목에는 오데마피게 로얄오크 시계를 차고 있었다. 금빛 시계줄이 불빛 아래서 눈부시게 빛났다. 그와 같은 사람은 굳이 다른 사치품으로 그의 집안을 돋보이게 할 필요가 없다. 시계 하나로 모든 것을 말해 준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키가 크고 늘씬한 미인가 있었는데 170은 충분히 넘는 키에 딱 봐도 모델 출신 같았다. “최 도련님, 드디어 오셨군요.”고석진이 가장 먼저 다가가 정성스런 표정으로 악수를 청했다. 최건은 아무렇게나 손을 뻗어 악수를 하며 인사치레를 했다. “듣기로 너 요즘 연봉이 몇 억이라며,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구나.”“도련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죠!”고석진은 겸손한 얼굴로 최건 옆에 있는 미인을 쳐다보며 말했다.“최 도련님, 이분은……”“어? 아는 동생이야.”최건은 아무렇게나 둘러댔다. 그로 말할 것 같으면 여자는 그저 노리개일 뿐, 기분이 좋으면 바꾸고, 기분이 안 좋아도 바꿀 수 있었다. 적지 않은 남학생들이 이 여인을 바라보며 눈이 번쩍 뜨였다.“이분은…… 그 유명한 인플루언서잖아! 사진 다운받은 적도 있어!”그 여자는 자신을 아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점점 더 차갑고 거만해졌다. 다른 남학생들은 지금 하나같이 피를 토할 정도로 부러워했다. 인간 대 인간으로 정말 비교가 불가능하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 속 여신으로 품은 그녀가 최건에겐 그저 아는 여동생일 뿐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이 여신이 모든 걸 감수하겠다는 듯 반박조차 하지 않는다
하현 일행이 집복당으로 돌아왔을 때 문 앞에는 이미 십여 대의 관용차가 서 있었다.이 차들은 경찰서 소속인 것도 있었고 주택건설부 소속인 것도 있었고 동사무소 소속인 것도 있었다.말하자면 정부 차원의 합동 집행부가 다 모인 것이다.수십 명의 제복을 입은 남녀들이 집복당을 둘러싸고 저마다 삿대질을 하며 기세등등한 모습을 보였다.채굴기를 몰고 와서 위세를 부리는 사람도 있었다.맨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은 대머리 남자였고 한 사람은 키가 좀 크고 다른 한 사람은 좀 뚱뚱했다.키가 큰 사람은 주택건설부 유니폼을 입고 있었으며 가슴에 새겨진 명패에는 이홍파라는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뚱뚱한 사람은 경찰서의 황택호 형사였다.두 사람은 관청 동기로 알려져 있으며 항상 함께 출동해 각종 불법 건축물과 불법 매장을 소탕했다.오늘 그들의 목표는 바로 집복당이었다.고명원은 앞에 나서진 않았지만 부하들을 시켜 집복당 문을 막도록 하여 이홍파와 황택호 두 사람이 이끌고 있는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다.합동 단속반은 기세가 등등해서 뭐라도 하나 걸리기만 한다면 내부 인테리어 전부를 깡그리 부술 태세였다.이렇게 되면 일이 더 커진다.고명원은 연합 단속반에게 미움을 사는 것은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오직 하현의 집복당이 잘못되어 뭐라고 설명할 말이 없게 될까 그것이 두려웠다.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는 왕인걸도 와 있었다.그는 집복당에 와서 아첨이라도 좀 해 볼까 했는데 마침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하현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왕인걸과 고명원이 뭐라고 설명하려고 했지만 하현은 얼른 손을 흔들며 그들을 제지했다.하현이 입을 열기도 전에 나박하가 합동 단속반에서 나온 두 사람의 손을 잡고 인사를 건넸다.“아이고, 이거 이홍파 팀장님과 황택호 형사님 아닙니까?”“무슨 바람이 불어서 두 분이 함께 우리 집복당엘 다 오셨습니까?”“이 누추한 곳에 두 분이 자리를 빛내주시니 영광입니다.”말을 하면서 나박하
”전부?”이 말을 듣고 강우금의 얼굴에는 비아냥거리는 기색이 역력했다.“여자한테 빌붙어 살면서 꼴에 자기가 재벌 2세인 줄 아나?”“정말 요즘 사람들은 자기 분수를 너무 몰라!”“전부는 고사하고 그의 전 재산을 다 부어도 소남가인 옷 한 벌 못 살 거야. 아니, 양말 한 켤레라도 산다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지겠어!”금정의 스타트업 사장이나 재벌 2세들도 소남가인 브랜드의 옷을 함부로 사지 못한다.그런데 한낱 한량에 불가한 하현이 돈이 어디 있어서 저런 비싼 옷을 산단 말인가?매장의 직원들과 손님들이 좋은 구경거리를 보려고 시선을 집중했다.소남가인 직원들은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살짝 망설였지만 결국 황보정에게 세심한 서비스를 제공해 주었다.곧 황보정은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옷을 모두 골랐다.수십 개의 옷 가방들이 순식간에 매장에 늘어섰다.이게 다 얼마인가?몇십억은 되어 보였다!“삑!”하현은 별일 아닌 듯 단번에 카드를 긁었다.그러자 승인되었다는 소리가 나면서 영수증이 좌르륵 쏟아져 나왔다.“어머?!”순간 소남가인 매장 안팎에선 수군거리는 소리로 소란스러워졌다.주변에 있던 직원들과 손님들은 하현을 쳐다보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황보정에게는 질투와 부러움의 시선들이 쏟아졌다.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하현이 저 많은 옷을 한 번에 결제하다니!그야말로 거부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 이럴 수 없어! 절대로! 이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강우금과 그녀의 매장 직원들은 모두 넋이 나간 듯 멍해졌다.뒤늦은 후회가 쓰나미처럼 밀려와 그녀들을 단번에 쓰러뜨렸다.그들은 도저히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방금까지 그들은 입만 열면 하현을 비난하는 말을 퍼부었다.노점상에나 가서 옷을 사라고 쫓아냈다.그런데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들의 얼굴이 화끈화끈거렸다.역시 가장 난처해하는 사람은 강우금이었다.그녀는 도저히 믿기지
강우금의 말을 들은 손님들은 하나같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옷도 안 사고 민폐만 끼치다니!덜떨어진 저런 사람이 이런 가게를 드나들 수는 없다!정말 재수없어!황보정은 슬쩍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강우금, 당신 같은 점장이 어디 있어요?”“정말로 이런 식으로 사람을 대우할 거예요?”“우리가 정말로 못 살 거라고 생각해요?”“이런 식으로?”강우금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황보정,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에요?”“내가 일부러 이러는 거예요? 당신이 그럴 자격이나 된다고 생각해요?”“난 금정 쇼핑몰 판매율 10위 안에 드는 사람이에요! 연봉이 일억이 넘는다고요!”“흥! 그런데 당신은 뭐죠? 하얗게 세탁한 싸구려 티셔츠 한 장 입고 와서 무슨 부자 행세를 하고 그래요?”“그리고 정말로 옷을 사고 싶으면 다른 데 가서 사세요! 여긴 당신이 살 수 있는 옷이 없어요!”말을 하면서 강우금은 바깥을 가리키며 냉소를 흘렸다.“1킬로미터 정도 나가면 많은 노점상들이 있을 거예요!”“거기 가면 한 벌에 몇 천 원짜리가 널렸을 거라고요!”“그래도 당신이 우리 가게에서 옷을 사고 싶다면 내가 특별히 기회를 주겠어요. 당신이 그래도 집복당 아가씨니만큼 이월된 재고 상품들 중 쓸 만한 것을 권해 줄 수는 있어요.”“하지만 문제는 살 수 있느냐 하는 거예요. 아무리 이월 상품이라고 해도 값이란 게 있는 건데 당신이 살 수 있겠어요?”하현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한 걸음 앞으로 나가 손을 뿌리치며 물건을 카운터에 올렸다.그리고 나서 황보정의 손을 잡고 말했다.“다른 데 가서 사자고!”황보정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바로 하현을 따라 가게를 나섰다.강우금은 이 광경을 보고 냉소적인 목소리로 직원들을 불렀다.“그들이 만진 물건들과 지나간 자리 얼른 소독하고 방향제 뿌려!”“저런 싸구려 인간들이 우리 가게를 더렵히게 놔두면 안 되지!”“뭐라고?”“다른 가게에 가서 산다고? 흥! 아무리 둘러
강우금의 말을 듣고 갑자기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찾은 듯 주변에서 쇼핑하던 사람들이 하현에게 눈을 힐끔거렸다.남자가 돈을 벌어서 가족들 부양할 생각은 하지 않고 부잣집 여자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다니?!정말 염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남자야!“강우금?”황보정은 순간 누군가가 하현을 조롱하는 소리를 듣고 낯빛을 흐리며 말했다.“우리는 여기 옷을 사러 온 것이지 당신의 비아냥 따위를 들으러 온 게 아니에요!”“이런 식으로 손님을 대한다면 당장 당신 회사에 불만을 제기할 거예요!”황보정에게 있어 자신이 모욕당하는 건 아무 일도 아니었다.하지만 하현이 모욕당하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불만을 제기한다고요?” 강우금은 어이없다는 듯 입꼬리를 들썩였다.“황보정, 머리가 어떻게 된 거예요?”“내가 금정 쇼핑몰에서 판매율 10위 안에 드는 점장이라는 걸 몰라서 그래요?”“불만을 제기한다고요? 그게 무슨 소용이라도 있을 것 같아요?”“문제가 뭔지 알아요? 여자한테 빌붙어서 사는 이런 남자들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흥! 당신이 어떻게 불만을 제기하는지 어디 한번 두고 볼게요!”“난 당신을 위해서 이러는 거예요!”“아마 당신이 이 사실을 안다면 나한테 불만을 제기하기는커녕 잘했다고 상이라도 줄 거예요!”“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집복당은 이제 한물간 거 아니에요? 내 앞에서 이럴 자격이나 돼요?”“이 옷, 정말 살 수 있어요?”이를 듣던 몇몇 손님들은 더욱 비아냥거리는 눈빛으로 황보정 일행을 쳐다보았다.그녀들은 하현이 여자한테 빌붙어 있는 것뿐만 아니라 몰락해 가는 집안의 여자의 고혈을 쪽쪽 빨아먹고 있을 줄은 몰랐다.아마 오늘 그의 작전은 십중팔구 실패로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하현은 강우금 같은 여자와 쓸데없는 입씨름을 하며 기분 상하기 싫어서 황보정의 손을 붙잡고 그녀가 마음에 들어 했던 옷을 집어 냉랭하게 말했다.“이 옷으로 합시다. 다른 건 나중에 사죠.”강우금은 하현의 손에
”손님, 아무렇게나 만지면 안 됩니다. 이 옷은 너무 비싸서 더러워지면 팔 수가 없거든요!”황보정이 옷을 꺼내 보려고 손을 뻗었을 때 점장으로 보이는 거만한 여자가 하이힐을 앞세우며 다가와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황보정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정신을 번쩍 차리며 말했다.“아, 죄송합니다. 저 옷 사고 싶은데 좀 꺼내 봐 주세요.”“꺼내 봐 달라고요?”점장은 황보정을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깨끗하게 세탁한 셔츠에 눈길을 모으며 말했다.“정말 살 수 있어요? 꺼내 봐 달라고요?!”“그게 무슨 말이에요?”“우리 황보정이 집복당 손녀인 걸 몰라요?!”황보정 곁에서 가방을 들고 있던 나박하가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버럭 했다.“집복당 손녀?”점장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얼굴 가득 미소를 떠올렸다.부자가 망해도 삼 년은 간다고 했던가!비록 집복당 명성이 예전만 못했지만 점장은 함부로 황보정을 건드릴 용기는 없었다.점장의 목소리를 듣고 하현은 약간 귀에 익다는 생각이 들어 무심결에 고개를 들었다.그는 한눈에 그녀를 알아보았다.진홍민의 절친 중 한 명인 게 분명했다.예전에 진홍헌이 대대적으로 고백했을 때도 이 여자는 현장에 있었다.하현이 자세히 살펴보니 그녀의 가슴에 ‘강우금’이라는 명찰이 붙어 있었다.하지만 이 여자는 자신을 못 알아보는 것을 눈치채고 하현도 더는 쓸데없는 말씨름을 하기 싫어 아예 입을 다물었다.“손님, 어떤 색이 마음에 드시는데요?”“우리 매장에는 다양한 색상들이 있어서 선택할 수 있어요.”강우금은 미소를 지으며 한껏 판매에 열을 올렸다.황보정은 강우금의 말을 듣고 돌아서서 하현의 옷자락을 끌어당겼다.“하현, 여기 와서 좀 봐줘요. 어떤 색이 더 예쁜지.”“예?”“하현?!”강우금은 그제야 하현을 알아보았고 처음에는 살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이내 냉소 가득한 얼굴을 보였다.비록 그날 하현이 진홍헌의 청혼식에서 크게 한판 벌였지만 나중에
황보정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하현은 앞에 놓인 다과를 말끔하게 먹은 뒤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좋아. 그럼 이 일은 이렇게 잘 마무리되었으니 나중에 쇼핑몰에 가서 옷이나 몇 벌 사자고!”“앞으로 내 대변인이 될 사람이니 말끔하게 보여야지.”“우리가 하려는 프로젝트는 대단히 수준 높은 프로젝트거든. 당신이 앞으로 접촉할 사람들은 모두 부유하거나 지위가 높거나 하니까 절대 무시당하지 않도록 준비를 단단히 해야지!”하현은 오늘의 이 결정을 그냥 기분 내키는 대로 내린 것이 아니었다.현재 임단은 이미 금정 화원에 있는 쓰레기 매립장 인수 일을 착수했다.비록 세간에서는 임단이 머리가 나쁘다는 소문이 돌고 있지만 하현은 금정 화원의 유적지가 발굴되는 순간 프로젝트 전체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 것이라는 걸 확신했다.이러한 전제하에 황보정이 자신의 대변인이 되어 일하겠다는데 멋진 옷 몇 벌 사 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황보정이 비록 풍수사로서 인정은 받았지만 방값이 꽤나 비쌌고 수입은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이전에 저축해 두었던 돈은 의사를 구하는 데 거의 써 버렸기 때문에 정말로 수중에 남은 돈이 얼마 되지 않았다.황보정은 한참 예쁘게 꾸밀 나이였지만 제대로 된 번듯한 옷도 몇 벌 없었다.하현은 이 기회를 빌어 황보정에게 옷도 몇 벌 장만해 주고 살아갈 발판도 마련해 주고 싶었다.황보정은 공손하게 머리를 숙여 나지막이 말했다.“하현, 아직 입을 만한 옷이 있어요. 살 필요까진 없다고 생각하는데요...”“왜? 안 사게?”옆에 있던 나박하는 차를 마시며 껄껄 웃었다.“하현이 옷을 사 준다고 하잖아!”“우리가 말끔하게 차려입지 않으면 하현의 체면이 깎여!”“이제 하현은 금정 제일의 풍수지리사로 불리게 되었어!”“그런데 우리 같은 사람들이 너무 허름하게 입으면 손님들이 우리 대사님의 실력을 의심할 거야!”“그러니 사양하지 마. 잠시 후에 우
다음날 아침 일찍 하현은 방을 나섰다.설은아의 방문을 지나칠 때 그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두 사람이 또다시 다투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거실에 와 보니 최희정은 핸드폰을 들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하현이 지나가자 그녀는 눈을 흘기며 슬쩍 곁눈질할 뿐 똑바로 쳐다보지도 않았다.미간에는 그를 향한 마뜩잖은 기색이 가득했다.최희정은 어젯밤 설은아와 하현의 말다툼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그래서 그의 뻔뻔함과 노여움을 눈빛으로 드러낸 것이다.하현도 최희정을 힐끗 쳐다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나 문을 나서려는 순간 최희정이 우다금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소리를 들었다.하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최희정이 우다금과 연락을 하고 있다고?지난번 저지른 일로 우다금은 따끔하게 혼이 나야 했었다.하지만 그다지 큰일이 아니라서 하현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바로 차를 타고 집복당으로 갔다.“하현, 아침은 먹었어요?”집복당 입구에 도착해 보니 언제 일어났는지 벌써 황보정이 나와 있었다.그녀의 눈은 이미 완전히 회복되었고 이제는 집복당 일을 하기 시작했다.하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황보정은 방긋 웃으며 말했다.“다과를 좀 만들었는데 한번 먹어 볼래요?”황보정은 오늘 짧은 잔꽃 무늬 치마를 입고 긴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긴 고운 자태였고 걸을 때 슬쩍슬쩍 보이는 하얀 다리는 눈부시게 빛났다.특히 그녀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하현은 싱그러운 젊은의 기운을 물씬 느꼈다.아찔해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그가 말했다.“그럼 감사히 먹어 볼게.”“감사할 사람은 나예요. 내 눈을 낫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몸도 정상으로 돌려놓았잖아요!”황보정은 동작이 재빨랐다.“안타깝게도 할아버지는 내가 남들 관상을 봐주는 일을 허락하지 않으세요. 내가 박명해서 다른 사람들의 관상을 계속 봐준다면 결국 내가 천기를 누설할 거라고 하셨어요.”“이번엔 다행히 당신을 만나서 살았지만 다
”풍수?”“하 대사?”“풍수관?”설은아는 명함을 움켜쥐고 노기 어린 얼굴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제대로 된 일을 하지는 않고 강호의 사기꾼이 되겠다는 거야?”“내가 당신을 이렇게나 오래 알고 지냈는데 당신이 풍수지리술을 안다는 걸 어떻게 몰랐을까?”“풍수를 보는 일이 얼마나 진지하고 엄숙한 일인지 알아?”“몇 마디 말로 사람들을 속이며 돈을 벌 수 있는 게 아니야!”“자칫 잘못하다간 많은 사람들을 죽게 하기도 하는 거야! 알기나 해?”하현의 명함에 적힌 직함을 보면서 설은아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집복당, 아홉 대째 내려오는 대단한 실력, 주역 대사...하현은 자신의 본업에는 조금도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남원이나, 무성, 대구에서는 하현이 정말로 실력이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금정에 와서 하현과 간민효가 친밀하게 지내더니 지금 눈앞에 내놓은 명함이라는 것을 보고 설은아는 슬슬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이전에 하현이 보여준 모든 것은 자신을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닐까?지난 모든 것은 하현이 설 씨 가문을 설득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허상 같은 것이었다!그리고 이 허상을 만든 장본인은 하현이 밖에서 만나고 있는 간민효임이 틀림없다!금정 간 씨 가문의 간민효는 이 모든 것을 해낼 능력이 있는 여자이다.바닥에 널브러진 사진들이 그것들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증거들이다!분노한 설은아를 보며 하현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우선, 그런 눈빛으로 날 쳐다볼 필요가 없어.”“난 당신한테 말할 수 있어. 나와 간민효는 금정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처음 알게 되었어.”“과거의 모든 일은 그녀와 아무 상관이 없어.”“둘째, 그녀와 난 그저 평범한 친구일 뿐이야. 당신한테 하나하나 말하긴 어렵지만 지금 함께 몇 가지 일을 처리하고 있어.”“셋째, 내가 풍수관을 연 것은 나름의 목적이 있어서야. 내가 개업을 할 수 있다는 건 나 스스로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이 있다는 걸 의
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만약 내가 간민효랑 그냥 평범한 친구 사이라고 한다면 당신 믿겠어?”설은아의 두 눈에 찬서리가 내려앉았다.“그럼 내가 김탁우랑 그냥 친구 사이일 뿐이라고 한다면 당신 믿겠어?”“그거랑 이거랑은 달라.”설은아의 말을 듣자마자 하현이 되받아쳤다.“뭐가 달라?”설은아도 지지 않고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긴장감을 올렸다.“김탁우가 이 사진을 주었을 때 우리 부부간의 감정을 해칠 수 있다며 약간 망설였었어.”“하지만 지금 보니 이 사진들이 아니었어도 우리 두 사람 사이에는 더 이상 훼손될 감정도 없는 것 같아!”“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해 둘 게 있어!”“내 차는 정비한다고 당신 비서 이시운이 가져갔어.”“그래서 일이 끝난 후 김탁우가 마침 가는 길에 날 데려다준 것뿐이야!”“나와 그 사람은 결백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다고! 누구와는 정말 다르지!”하현은 설은아의 말에 다소 화가 치밀어 올라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난 당신을 믿어. 하지만 김탁우는 믿지 않아. 그는 좋은 사람이 아니야. 설마 당신이 그것을 눈치 못 챌 리가 없을 텐데?”“하현, 함부로 말하지 마! 김탁우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해!”설은아는 얼굴 가득 노기를 띠며 말했다.“내가 이 사진들을 당신 앞에 내놓은 것은 적어도 당신이 조금이라도 반성하길 바래서였어!”“앞으로 이 들개 같은 여자랑 엮이지 말라고 말이야!”“하지만 당신은 결국 나의 호의는 전혀 헤아리지도 못하고 이런 무의미한 질투까지 하고 있어!”“만약 당신이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우리의 재혼에 대해 엄마한테 잘 말할 수 있는지 그런 거나 궁리해야 하는 거 아니야?!”하현은 냉정을 유지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들이 조건을 내걸었잖아?”“당신을 대구 정 씨 가문 수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그래서 나도 그쪽으로 노력하고 있어...”“뭐?”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