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들이닥친다고?”“구원병을 불렀단 말이야?”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3분이면 부족하지 않아? 내가 10분 줄게.”“당신이 부른 사람들이 날 제압한다면 내가 기꺼이 무릎을 꿇겠어!”“그렇지만 그들이 날 제압하지 못한다면 그때는 당신 부자가 함께 내 앞에 무릎 꿇어야 할 거야!”여수혁과 여영창의 얼굴이 동시에 일그러졌고 둘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흉악한 미소를 입에 걸었다.그들이 불러들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쾅!”10분도 채 되지 않아 룸의 문을 발로 뻥 차며 누군가가 들이닥쳤다.무도복을 입은 남녀들이 싸늘한 표정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머리를 길게 기른 중년 남자가 맨 앞에 서 있었고 그의 얼굴에는 칼로 베인 듯 왼쪽 눈꼬리에서 오른쪽 턱까지 기다란 칼자국이 나 있었다.이 칼자국은 그의 외모를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패기 넘치는 인물로 보이게 만들었다.한눈에 봐도 보통 인물이 아닌 것이 느껴졌다.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 사람을 쳐다보았고 뒤에 있던 하구봉이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하현, 이 사람은 페낭 무맹주 심무해야.”하현은 그의 말을 듣고 살짝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여수혁 부자가 딱 이 정도 수준일 거라는 걸 짐작한 듯한 얼굴이었다.하현은 앞으로 나설 것까지도 없다고 생각되어서 소파에 기대어 앉아 아직 깨지지 않은 술병을 집어 들고 스스로 잔에 따라 맛을 보기 시작했다.“맹주 어르신, 오셨습니까?!”심무해가 사람을 데리고 나타나자 여수혁과 여영창 부자가 앞으로 나서며 공손히 인사했다.여영창은 말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여수혁이 이를 갈며 조심스럽게 말했다.“맹주님, 늦은 밤에 폐를 끼쳐서 정말 죄송합니다.”“하지만 저희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어느 멍청한 놈이 나타나서 우리 페낭 무맹을 존경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 형제 수십 명을 만신창이로 만들었고 제 아버지조차도 다치게 했어요.”“지금 페낭 전체
”당신 뒤에 누가 있냐고 물었어! 하지만 그건 내가 건드려서는 안 될 인물을 건드릴까 봐 두려워서가 아니라 당신 뒤에 있는 사람들을 모조리 파헤치려고 그러는 거야.”“그들에게도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하니까 말이야!”심무해는 어느 누가 와도 그 자리에서 깔아뭉개 버릴 수 있다는 듯 패기 넘치는 모습이었다.하현은 술을 한 모금 마시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정말 페낭 무맹주는 패기가 아주 넘치군요!”“잘못 들은 말은 아니었나 봅니다. 그래, 이제 깔아뭉갤 준비는 다 된 겁니까?”심무해는 냉랭한 얼굴로 말했다.“그래, 얼마든지!”“맞서 싸울 텐가?”“맞서 싸우고 싶다면 얼마든지 저항해 봐!”“우리 페낭 무맹이 얼마나 대단한지 몸소 보여주지!”심무해는 하현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이놈을 일으켜 세워 당장 고개를 쳐들게 해!”이 장면을 본 예쁘장한 여자들은 하나같이 눈이 휘둥그레졌다.심무해의 패기에 깜짝 놀란 그녀들은 역시 페낭 무맹주는 상남자 중의 상남자라며 감탄의 눈빛을 자아냈다.하현은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채 담담한 눈빛으로 심무해를 힐끗 쳐다보았다.두 눈동자에는 경멸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하현의 모습을 본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은 일제히 코웃음을 쳤다.헛!지금이 어느 때인데 저런 건방을 떨고 있는 거야?!이놈은 죽는 게 뭔지 모르는 놈이 틀림없어!여수혁도 사납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하 씨! 지금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허풍을 떨고 있는 거야?”“죽고 싶어 환장했어?!”여수혁 일행들이 토해 내는 분노의 외침 속에서도 심무해는 하현의 얼굴을 빤히 주시하고만 있었다.순간 온몸이 살짝 요동치며 그의 안색이 일그러졌다.페낭 무맹주인 그가 하현의 얼굴을 모를 리 없었다.남양 무맹이 얼마 전 특별히 자신에게 보낸 자료에서 분명히 본 얼굴이었다.자료 속에는 하현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고 모든 편의를 다 봐주라는 당부의 말도 함께 있었다.순간 심무해는 주변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건
여영창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맹주 어르신. 이 자식은 허풍이나 떠는 놈인데 왜 스스로 뺨을 때리십니까?”“퍽!”여영창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심무해는 손을 들어 여영창의 얼굴을 날려버렸다.여영창은 대리석 벽에 부딪혀 한참을 일어나지 못하다가 억울한 듯 입을 열었다.“맹주! 왜 날 때리는 겁니까?”화려한 옷차림을 한 남녀들도 깜짝 놀란 표정으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심무해는 분명히 여수혁과 여영창을 도와주러 왔는데 왜 자신의 뺨을 때리고 이제는 여영창의 얼굴까지 때리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러자 여수혁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맹주 어르신,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거 아니세요? 어르신이 때릴 사람은 이놈이지 제 아버지가 아닙니다...”“퍽!”여수혁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심무해는 바로 손바닥을 들어 여수혁을 옆으로 밀쳐 날려버리고 여영창의 뺨을 때렸다.여 씨 부자가 한 줄로 나란히 쓰러지고 말았다.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 광경을 지켜보며 입을 열었다.“맹주, 페낭 무맹에서 위신이 많이 떨어졌나 봅니다.”“스스로 뺨까지 때렸는데 아랫사람들은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오히려 맹주를 의심하기까지 하고 말이죠!”“참 실망스럽습니다.”말을 마치며 하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냉담한 눈빛으로 말했다.“하구봉, 가지.”하현이 일어서는 것을 보자 심무해는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어서 스스로 뺨을 때려!”“에?!”장내에 있던 사람들은 어이가 없었다.잠시 머릿속의 회로가 뒤죽박죽 엉킨 것처럼 뭐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자기 뺨을 때리라고! 못 알아들었어?”“내가 직접 일일이 뺨을 때려야 되겠어?”심무해는 고함을 지르더니 순간 홱 돌아서서 페낭 무맹 제자들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다른 페낭 무맹 제자들은 어리둥절해하다가 이 모습을 보고 자신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페낭 무맹에서 명령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하고 금지 사항은 절대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여기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심무해는 공손히 입을 열었다.“하현, 제가 잘못 가르쳐서 이렇게 폐를 끼치게 되었습니다.”하현은 술잔을 손에 들고 빙글빙글 흔든 다음 한 모금 마신 뒤 입을 열었다.“맹주, 폐를 끼쳤다 한마디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십니까?”하현의 감히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위엄 서린 태도로 말했다.“맹주, 대체 뭐 하는 겁니까?”여수혁이 참지 못하고 울부짖었다.“어떻게 이따위 대하놈에게 고개를 숙이십니까?”“뭘 그렇게 무서워하시냐고요?”“양유훤이란 천한 년이 키우는 기둥서방에 불과한 남자입니다!”“이전에 양유훤이 양 씨 가문과 찢어지지 않았을 때는 양 씨 가문이 겁이 났죠!”“하지만 지금 양유훤은 양 씨 가문과 찢어졌어요. 우리가 저놈을 두려워할 이유가 뭐 있습니까?”“양제명 때문입니까? 저놈이 그를 치료했다고 주장하지만 양제명이 저놈을 위해서 나선 적은 없었어요!”“제가 보기에 이건 속임수입니다.”“그러니 우리는 이놈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요!”여수혁은 심무해가 하현의 뒤에 있는 양유훤과 양제명을 두려워해서 이렇게 행동하는 줄 알았다.그래서 그는 하현이 별로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는 사람임을 심무해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퍽!”여수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심무해는 몸을 뒤로 힘껏 젖히고 달려와 그를 발로 걷어찼다.종이 인형처럼 날아간 여수혁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여영창에게 떨어졌다.연이어 부자가 얻어맞은 꼴이 된 것이다.“퍽!”“눈은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야? 남양 무맹 감찰관도 못 알아본단 말이냐구!”“퍽!”“하루 종일 놀기만 하고 남녀가 패를 이뤄 사람들을 괴롭힐 줄만 알다니! 정말 페낭 무맹 체면이 말이 아니야!”“퍽!”“계속해서 감찰관님을 화나게 만들고 있어. 감찰관님이 자비로우셔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지만 난 절대 당신들을 두고 볼 수가 없어!”순간 심무해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퍽!”여수혁 부자를 때려눕힌 후 심무해는 두 사람을 하현 앞으로 걷어찼다.“감찰관, 이 두 부자가 여러 번 무례를 범한 것 같은데 모두 내 잘못이야. 내가 잘 통솔하지 못한 잘못이라고.”“감찰관이 처리해 주시게.”말을 하는 동안 심무해는 공손한 표정을 지으며 한 치의 소홀함도 보이지 않았다.여수혁은 얼굴이 돼지머리처럼 퉁퉁 부어올라 욱신거렸다.무슨 말을 하려고 해도 도무지 말이 떠오르지도 않아 겁에 질린 눈으로 하현을 힐끔힐끔 쳐다볼 뿐이었다.반면 여영창은 고개를 숙인 채 원망에 가득 찬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두 부자가 하현을 짓밟으려다 되려 된통 당하고 말았으니 어떻게 이 상황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하현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고 그의 눈빛만이 고육지책을 쓰고 있는 심무해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심무해에게 다가간 하현은 그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맹주님이 알아서 사람을 불러 처리하시죠.”“지금은 밤 11시니 동이 트려면 아직 7시간이 남았군요.”“맹주님의 사람됨을 알기에 잠시 시간을 드리는 겁니다.”“내일 아침 10시에 하구봉이 사람을 데리고 페낭 무맹으로 갈 겁니다. 그때 이 사건을 조사할 거구요.”“은혜가 있으면 은혜로 갚고, 원한이 있으면 원한으로 갚아야죠.”“은혜도 원한도 없다면 아마 하구봉은 날 대신해 공명정대하게 감찰관의 직책을 수행할 겁니다. 그동안 페낭 무맹이 나쁜 짓을 얼마나 많이 저질렀는지 샅샅이 들여다보겠죠.”“또한 오늘 밤 있었던 이 일은 아무도 몰라야 합니다.”“나란 사람은 몸을 낮추는 것을 좋아합니다. 몸을 낮추어야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거든요. 맹주, 내 말 알아듣겠습니까?”말을 하면서 하현은 심무해의 어깨를 툭툭 쳤다.“맹주님, 알아서 잘 하시리라 생각합니다.”그 후 그는 하구봉과 강옥연 일행을 데리고 그곳을 떠났다.하현의 말은 담백했지만 여수혁의 마음을 오그라들게 하기 충분했다.아무런 표정 변화
일련의 일들을 처리한 하현은 자신의 거처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이튿날 아침, 양유훤이 와서 하현과 함께 아침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그때, 한 경비원이 한달음에 달려왔다.“하현, 입구에 한 남자가 왔는데 양손에 깁스를 하고 있습니다.”“이름이 여수혁이라고 했고 두 분께 사죄하러 왔다고 합니다.”하현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사죄를 하러 왔다? 재미있군.”양유훤은 어리둥절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하룻밤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여수혁이 하현에게 사죄를 하러 온 것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똑똑한 여자였다.속으로는 여러 생각이 오갔지만 내색하지 않고 옅은 미소만 지을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 가서 얼굴이나 보자구!”하현은 두유 한 잔을 들고 마시면서 대문 쪽으로 걸어갔다.마당에는 화려한 옷차림을 한 남자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그는 양손에 깁스를 한 채 등 뒤에 싸리나무 가지를 메고 무릎을 꼿꼿이 꿇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어젯밤 미성 주점에서 보였던 의기양양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눈앞에 있는 여수혁에겐 부잣집 도련님의 풍모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눈두덩이 푸르덩덩하게 부풀어 있는 초췌한 모습인 것으로 보아 그는 밤새 한숨도 못 잔 것임이 분명했다.하현이 걸어 나오는 모습과 동시에 그의 곁에 양유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여수혁의 눈가에는 경련이 파르르 일었다.그는 하현이 어젯밤 미성 주점으로 사람을 보내 왜 자신을 유인했는지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그래서 어젯밤 밤새 죄를 인정하고 아침 일찍 하현에게 달려온 것이었다.너무 일찍 오면 하현이 아침 휴식을 하는 데 방해할 수도 있고 또 너무 늦으면 자신의 사죄가 아침 10시를 넘기게 되어 버릴까 봐 적당히 시간을 봐서 온 것이었다.하현은 잠시 여수혁을 위아래로 훑어본 뒤 두유를 한 모금 마시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여수혁, 이 아침에 무슨 할 말이 있어서 온 거야?”
강직하고 굳센 양유훤의 심성으로 미루어 봤을 때 이미 그녀의 마음속엔 양 씨 가문에 대한 어떤 정도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그렇다고 해도 여수혁의 말을 듣게 되자 그녀가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하현은 여수혁에게 물러가라고 한 후 양유훤에게 일단은 양제명 곁에서 푹 쉬라고 말했다.그리고 나서 그는 양유훤을 대신해 그다음 일을 직접 처리하기 시작했다.이미 예전에 양 씨 가문에서 조제하던 상처치료제의 제조법도 알았고 게다가 동결된 양유훤의 자산도 단시간에 찾아올 수 있게 되었다.그렇다면 지금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가능한 한 빨리 양유훤을 도와 회사를 정식으로 만들어 이름하여 양가백약을 시판해야 한다.회사 운영이 정상 궤도에 오르고 양유훤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긴다면 모든 상황이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라고 하현은 믿었다.양유훤한테 비서 연락처를 받은 하현은 핸드폰으로 몇 가지 메시지를 보낸 뒤 임무를 수행했다.그날 오후 하현이 외출을 하려고 나섰을 때 갑자기 그의 핸드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핸드폰을 본 하현이 얼른 전화를 받았고 맞은편에서는 약간 어색한 대하어가 흘러왔다.전화를 건 사람은 여자였다.“하현 핸드폰 맞습니까? 전 양 사장님의 비서입니다. 아침에 당신이 지시하신 일은 제가 이미 일부 처리했습니다!”“말씀하신 사무실도 이미 준비해 뒀습니다. 독립된 사무 빌딩에 한 층을 다 쓸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했습니다.”그러다가 비서는 약간 우물쭈물하기 시작했다.“그런데, 저기...”“내가 말했지만 지금부터 양 사장의 일은 곧 내 일이야.”“그러니 어려워하지 말고 어서 말해 봐.”하현은 시원시원하게 말했다.“혹시 돈이 부족한 거라면 말해.”“어려운 일이 있으면 나한테 그냥 말하면 돼.”전화기 맞은편에 있던 비서는 하현이 이렇게 시원시원하게 나올 줄은 생각하지 못한 듯 어리둥절해하며 말을 흐렸다가 차근차근 말을 하기 시작했다.“제가 방금 사업자 등록을 하려고 했더니 그쪽에서 양가백
하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여비서가 괴롭힘을 당한 상황이 눈앞에 훤히 그려지는 듯했다.머리가 텅텅 빈 부잣집 도련님이라면 이런 스타일의 여자를 누가 마다하겠는가?하현은 앳된 비서를 힐끔 쳐다본 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름이?”“아, 제 이름은 소미담입니다.”비서가 수줍게 입을 열었다.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소 비서, 도대체 어떤 사람이 그런 뻔뻔스러운 말을 입에 담는단 말이야?”소미담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사업자 등록을 심사하는 여세광입니다. 페낭 토박이구요.”“페낭 무맹 여 씨 가문과 한 집안이라 아주 기세가 등등하다고 합니다.”“여기 일 보러 오는 사람들, 특히 남양에 등록하려는 외국 기업들의 비서나 여직원들을 그렇게 괴롭힌다고 들었어요.”“남자한테는 돈을 빼앗고 여자한테는 몸을 탐한 거죠...”여기까지 말한 소비서는 걱정과 두려움이 뒤섞인 눈빛으로 변했다.하현이 이번에 그녀에게 중임을 맡긴 것은 그녀가 잘 처리해 주길 바라서였을 것이다.그런데 연애도 못 해 본 앳된 소녀가 어떻게 이런 일을 받아들일 수가 있겠는가?“그렇다면 여세광은 여 씨 가문 사람인 셈이군?”하현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어쩐지 이렇게 기고만장하더라니. 역시 남양이군.”“가자구. 내가 대신 그놈을 만나지. 남양 부잣집 도련님 면상이 어떤지 똑똑히 보자구!”소미담은 몇 마디 더 충고를 하고 싶었지만 하현의 굳은 표정을 보고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따라 홀로 들어섰다.그녀는 예약 번호표를 들고 하현을 데리고 2층 사무실로 바로 갔다.소미담은 사무실 입구에 서서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도 응답하는 이가 없었다.하지만 안에서는 애교 넘치는 여자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소미담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그녀는 또 한 번 노크를 했으나 역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하현은 이를 보고 무덤덤한 얼굴로 문을 향해 세차게 발길질을 했다.사무실은 고작 10여 평 정도밖
하현의 말을 듣고 이미 돌아섰던 필립 선생의 발걸음이 순간 멈칫했다.먹으면 죽는다고?하현의 말을 들은 원천신 일행은 모두 깜짝 놀라 무의식적으로 앞에 놓인 계란을 보았다.필립 같은 셰프가 차려준 귀족 음식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고?이럴 수가?!처음에 경악했던 일행들은 겨우 정신을 차렸다.분명 하현이 눈도장을 확실히 찍으려고 뭔가 속임수를 쓰는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하현, 무슨 말을 하는 거야?!”“필립 선생님이 누군지 알아? 그는 노국 궁정에서 일했어. 지금 노국 황실에서 일하는 셰프들은 모두 그의 제자들이야!”“그가 만든 요리가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거야?”“당신이 이렇게 거리낌 없이 함부로 지껄이는 건 필립 선생님뿐만 아니라 노국 황실을 모독하는 거야!”“보잘것없는 촌놈이, 감히 뭐라도 된 것 마냥 지껄이다니?!”“당신 같은 사람이 트러플이 뭔지나 알아? 캐비아가 뭔지나 아냐고?”“사과해! 어서 당장 무릎 꿇고 사과해!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오늘 멀쩡한 몸으로 못 나갈 줄 알아!”원천신 일행들은 모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하현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필립 선생님은 요리사일 뿐만 아니라 고귀한 노국 귀족이었다!이런 거물을 감히 촌뜨기놈이 모욕을 하다니!절대 가만히 내버려둘 수 없는 일이다!만약 필립 선생님이 화가 나서 앞으로 이곳에 오지 않는다면 그녀들은 어디 가서 노국 황실의 음식을 맛볼 수 있겠는가?이 말을 페낭 사람들이 듣는다면 배꼽이 떨어져라 비웃을 것이다!엉터리 상처치료제나 파는 하현이 감히 분수도 모르고 신선이나 되는 줄 입을 놀리는 것인가?“이봐, 사람이 되먹지 못하면 말이야. 맨날 잘난 척만 하고 자기가 모든 걸 다 안다고 생각하지. 지금 당신은 자신이 완전히 뭐라도 된 줄 알지!”원천신은 매서운 눈빛으로 차갑게 말했다.“얼른 무릎 꿇고 사과해. 그렇지 않으면 필립 선생님이 사람을 부를 필요도 없이 내가 먼저 당신을 여기서 내쫓을 테니까!”“
원천신의 말을 들은 원가령은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허투루 내뱉은 말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다.자기가 하현과 사귄다고 한 것은 화가 나서 한 말일 뿐이었다.딸의 표정을 본 원천신은 딸이 자신의 말에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마지막 회심의 일격을 날려 이 일을 마무리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평생을 함께 하는 것은 차치하고, 지금 당장 그는 이 귀족 음식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도 모르잖아! 칼과 포크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 수가 없지!”“이런 상식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너와 평생 함께 할 수가 있겠니?”“정말로 평생 남자 뒤치다꺼리나 하며 살고 싶어서 그래?”“너 정말 그런 생활을 견딜 수 있겠니?”원가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현과 자신의 생활습관이 확실히 다를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평생 고달픈 인생을 살라니, 그녀는 정말이지 참을 수가 없었다.바로 그때 머리를 빈틈없이 빗어 넘긴 채 연미복을 입은 금발의 파란 눈에 나이 지긋한 웨이터가 음식을 들고나왔다.뚜껑이 달린 뜨거운 철판이 원천신 앞에 놓였다.뚜껑 속에서는 버터가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향긋한 냄새를 풍겼다.코를 자극하는 향긋한 냄새가 불어와 사람들의 식욕을 마구 끌어당겼다.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웨이터가 입을 열었다.“부인, 제가 가장 잘 하는 노국의 귀족 음식입니다.”“오늘 여기 모이신 아름다운 분들에게 특별히 선사하는 음식이니 천천히 즐기시길 바랍니다.”이 말을 듣고 지금까지 노기가 가득 서렸던 원천신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어올랐다.그녀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띤 채 존경의 눈빛으로 말했다.“존경하는 필립 선생님, 이렇게 환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다른 여자들도 모두 방긋 웃으며 화답했다.“감사합니다. 필립 선생님. 이런 귀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니 영광입니다.”필립 선생은 기분 좋은 듯 환한 미소를 보이며 두 손을 뒷짐진 채 거만한 표정을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뻔뻔하게 원가령이랑 사귀고 싶어서가 아닙니다.”“전 단지 당신에게 말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원가령은 당신 딸이지만 혼자서 충분히 설 수 있는 사람입니다.”“원가령은 온전한 자신의 삶이 있어요.”“자신의 삶을 선택할 권리가 있고요.”“당신이 저더러 여기서 물러나라면 그러겠습니다. 아무래도 괜찮아요.”“그러나 오직 원가령 입에서 그 말이 나와야 합니다. 원가령이 그렇게 말하면 저는 두말없이 바로 물러가겠습니다.”“만약 원가령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전 여기서 물러나지 않을 겁니다.”“그녀가 절 이 식사에 초대했기 때문이죠. 당신도 아니고 이 여자들도 아니죠!”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원가령을 대신해 이 단순한 논리를 조목조목 따졌다.그는 원천신의 말과 행동으로 미뤄 보아 그녀가 통제욕이 아주 강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차렸다.만약 그녀가 계속 이렇게 하도록 내버려두면 원가령의 인생이 그녀의 모친 때문에 망가질 수도 있었다.그래서 하현은 원가령의 친구로서 원천신에게 이 점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그는 다른 점에 관해서는 추호도 나설 생각이 없었다.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고 있던 원가령의 눈엔 어느새 뭉클함이 묻어나오고 있었다.하현이 이렇게 자신을 존중해 주고 기꺼이 자신을 대신해 이런 말을 해 줄 줄은 몰랐다.심지어 자신의 어머니 같은 거물을 상대하면서도 조금도 비굴하지 않았다.순간 원가령은 마음속에서 안타까운 한숨이 터져 나왔다.만약 하현의 가문이 형편없지 않았다면 그녀는 정말 하현을 선택했을 것이고 의리로라도 그에게 시집을 갔을 것이다.마치 자신에게 훈계를 늘어놓는 듯한 하현의 말을 듣고 원천신의 눈빛이 서늘해졌다.그녀는 하현 같은 사람들을 높이 평가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오히려 경멸하는 마음이 용솟음쳤다.대단한 가문 도련님이 이런 말을 했다면 그건 당연한 일로 받아들일 수 있다.하지만 빈털터리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웃음거리밖에 되
”가령아, 내 말 좀 들어봐!”“네가 최선을 다해 상처치료제 시판을 도운 덕택에 그가 우리 레벨에 들어왔다고 치자!”“그렇지만 문제는 그가 들어왔다고 해도 어울리지 않을 거라는 거야. 그의 몸에서 나는 약냄새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멀리하게 만들 거야!”“그리고 심지어 네 엄마, 네 가문 모두 너의 선택 때문에 남양의 웃음거리가 될 거야!”“가령아, 원 씨 가문까지는 생각하지 않더라도 네 엄마를 생각해야지, 안 그래?”“원 씨 가문에서 네 엄마가 얼마나 힘든데 너까지 이러면 네 엄마가 얼마나 더 곤란해지겠니?”원가령이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가운데 또 다른 여자가 부채질을 하며 거들었다.그녀의 시선은 하현에게로 향했다.“사람이 분수를 알아야지.”“당신이 상처치료제를 팔고 싶다면 우리가 가령이 얼굴을 봐서라도 얼마든지 주문해 줄 수 있어.”“당신이 엉터리 가짜약을 팔고 싶다면 그냥 팔면 되지만 헛된 꿈을 꾸진 마. 엉터리 약 하나 판다고 우리 상류사회로 비집고 들어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이 세상에는 당신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있어.”“당신이 태어날 때 가지지 못한 것은 절대 평생 가질 수 없어.”“무슨 말인지 알겠어?”말을 마친 여자는 방긋 웃으며 라피트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그녀는 자신이 한 말이 상대를 충분히 설득시켰다고 생각했다.상류사회 출신이라는 것이 모든 것을 말해 준다.하현은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다.여자들의 빈정거림에 화를 내는 대신 그저 무덤덤한 표정으로 일관했다.그녀들도 어쨌든 원가령을 생각해서 이런 말을 했을 테니 어느 정도 원가령을 보호하기 위한 배려라고 볼 수도 있었다.원가령이 자신을 위해 도와준 것을 생각한다면 이 여자들의 이런 험한 말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그는 여자들이 얼마든지 훈계를 늘어놓도록 내버려두었다.그러나 하현이 별로 따지고 싶지 않은 듯 심드렁한 자세를 보이자 원천신의 눈빛이 매서워졌다.그가 그녀들을 얕보고
원천신은 의미심장한 눈초리로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은행 카드가 테이블 위에 놓이자 옆에 있던 여자들은 비아냥거리는 미소를 입가에 떠올렸다.그때 하현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오늘 식사 초대는 핑계였던 것이다.사람들 앞에서 있는 대로 하현에게 망신을 주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그러나 문제는 하현이 원가령에게 남녀의 마음을 조금도 품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쌍방이 친구가 된 것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일 뿐이었다.오늘 여기에 그가 온 것은 며칠 동안 원가령이 너무 고생했기 때문에 이 기회에 원천신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어서였다.심지어 그는 우윤식에게 천일 그룹이 원천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도록 당부할 참이었다.그러나 원천신은 하현이 품은 선의를 와장창 깨부수는 태도를 보였다.게다가 경멸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아 하현의 마음을 언짢게 만들었다.사실 원천신이 이런 말을 하건 어쨌건 하현은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어쨌든 그와 원가령은 아무 사이도 아니었기 때문에 자초지종을 설명하면 끝이었다.하지만 문제는 거지를 내쫓듯이 막무가내로 대하는 원천신의 태도가 하현을 적잖이 불쾌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그가 바로 돌아서서 그 자리를 떠나려고 하자 원가령이 오히려 화를 내고 나섰다!그녀는 벌떡 일어서서 다정하게 하현의 팔짱을 끼며 소리를 질렀다.“엄마! 너무한 거 아니야!”“엄마가 하현한테 식사 대접한다고 해서 데려온 거잖아!”“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대할 수 있어?”“게다가 엄마 목숨을 구해 준 사람이야! 기억 안 나? 며칠 전에 하현이 엄마 목숨을 구해 줬잖아!”“나와 이 사람이 맞지 않다고 하더라도 엄마한테는 생명의 은인이잖아! 은혜를 알았으면 보답하는 도리를 보여야 하잖아! 그것도 몰라?”“그리고 하현이 아무리 형편없다고 해도 엄마가 소개한 양호남보다는 훨씬 낫잖아?”“적어도 하현은 양호남 같은 쓰레기는 아니야! 함부로 다른 여자랑 엮이는 파렴치한이 아니라고!”“난 이런 진실
원가령은 안절부절못했다.자신의 어머니가 하현 같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자리에 하현을 데리고 식사를 하러 나왔다는 것이 문제였다.원천신이 하현을 이렇게 내버려두는 것은 정말이지 예의가 아니었다.그러나 원가령은 자신도 이런 자리에서는 함부로 끼어들 수가 없었다.10여 분 동안 이야기를 나눈 후 모두의 화제는 마침내 의도치 않게 끝이 났다.환한 미소를 지으며 수다를 떨었던 원천신의 시선이 그제야 하현에게로 향했다.그녀는 자신의 손목에 찬 까르띠에 손목시계를 보며 힐끔 하현을 바라보았다.뭔가 꿍꿍이가 가득 담긴 눈빛이 그녀의 눈동자를 스쳤다.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의도치 않게 하현에게로 향했다가 별일 아닌 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시선을 거두었다.“하현, 지난번에 당신이 나한테 일깨워준 덕분에 문제를 잘 발견했어.”“아주 고맙게 생각해.”원천신은 무덤덤한 얼굴로 가볍게 입을 열었다.하현 덕분에 폐결핵을 알게 된 건 그저 사소한 일일 뿐이라는 듯 심드렁한 말투였다.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의사의 조언에 따라 앞으로 격렬한 운동은 피하고 몸조리하는 데 신경 쓴다면 완치에 크게 문제가 없기 때문이었다.원천신은 하현이 어쩌다 운이 좋아 그런 걸 발견했다고 생각했다.게다가 그녀의 마음속엔 하현이 불길한 말을 잘하는 사람이어서 폐결핵을 알아차렸다고 여겼다.그래서 원천신은 지금 고맙다고 말은 하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미움이 도사리고 있었다.그리고 가타부타 미동도 없는 하현의 표정과 동작을 보니 원천신은 더욱 그가 못마땅했다.그녀는 자신의 딸이 마땅히 부잣집에 시집가야 한다고 생각했다.천일 그룹과 대성 그룹의 배후에 있는 인물에게 시집갈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젊은 후계자에게는 시집가야 하지 않겠는가?하현 같은 촌뜨기가 어딜 넘봐?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그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은 방금 급하게 산 것이거나 그마저도 자신의 딸이 사 줬을 가능성이 높았다.이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자 원천
하현은 자세히 보려고 눈을 모았고 원천신이 그들의 구심점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남양 스타일의 옷을 입고 새하얀 허벅지를 그대로 드러낸, 그야말로 한눈에 이목을 집중시키는 자태였다.게다가 모인 사람들의 면면이 화려하고 각각의 특색이 분명해 보여서 마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들을 모아 놓은 전시회장 같았다.현장에 있던 남자들도 모두 참지 못하고 이쪽 방향으로 힐끔 눈길을 돌리며 목례를 하고 지나갔다.아쉽게도 그 누구도 함부로 말을 건네지 못했다.원 씨 가문 둘째 아가씨는 페낭에서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보통 남자는 그녀를 감당할 수 없다.일부 부잣집 남자들도 뒷걸음치기 일쑤였다.원천신 같은 여자는 아리따운 장미와도 같았다.아주 매혹적이었지만 자칫하면 가시에 찔려 피를 철철 흘릴 수가 있다.자신 있는 남자가 아니라면 누가 함부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겠는가?“엄마!”원가령이 룸 안으로 들어서며 인사를 했다.“안녕하세요!”“가령이 왔구나!”원천신은 원가령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바로 맨 뒷자리에 있는 곳을 가리키며 담담하게 말했다.“앉아.”말을 마친 후 원천신은 하현은 무시한 채 계속 그녀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하현은 완전히 무시당했다.게다가 룸 안에는 더 앉을 수 있는 의자도 없었다.하현이 얼마나 난처하고 창피해할지 뻔히 눈에 보이는 상황이었다.젊은이가 이런 경우를 당하면 완전히 체면을 잃은 나머지 일부 성깔이 있는 사람은 아예 소매를 뿌리치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갈 것이다.하지만 하현은 내내 담담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SL 그룹에서 3년 동안 산전수전 다 겪은 그에게 새로울 게 뭐 있겠는가?이런 대우를 받은들 그가 안중에 둘 것 같은가?하현은 유유히 핸드폰을 꺼내 룸 안의 문설주에 기대어 뉴스를 보았다.원가령은 이 상황에서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종업원에게 의자를 하나 더 가져다 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원천신의 매서운 눈초리에 감히 입도 뻥긋
”원가령, 이번엔 정말 고마워.”하현은 인테리어 인부들에게 담배를 건네면서 작은 조끼를 입고 신이 나서 임시 감독으로 일하는 원가령을 향해 생수를 한 병 건네주었다.“이번에 당신이 없었다면 이 가게를 이렇게 빨리 열 수 없었을 거야.”“고생한 거 알아줬으니 됐어. 나중에 점심이나 사 줘!”원가령은 고개를 들어 맞은편에 있는 양씨백약 간판에 눈길을 돌렸다.“밥 얻어먹으면 내가 신나서 저것보다는 몇 배 더 큰 간판을 걸어줄게. 당신과 유훤이가 만든 양가백약이 대박 터지도록 말이야!”하현은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좋아. 당연히 밥 사야지!”“그렇지만 광고판 같은 건 내가 처리해도 돼!”며칠 전 하현은 원가령과 양호남의 관계에 대해 알게 되었다.양 씨 가문 도련님과 원 씨 가문 아가씨의 결합이라니 환상적인 조합이었다!양호남의 인품에 대해서 하현이 왈가왈부할 것은 아니었다.원가령이 어떤 남자를 선택하든 그것은 오로지 그녀의 자유이다.그래서 하현은 자신이 끼어들 사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잉! 잉!”그때 원가령의 핸드폰이 바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물끄러미 바라보다 전화를 받은 뒤 하현을 향해 빙긋 웃으며 말했다.“하현, 당신은 정말 운이 좋은 것 같아.”“방금 당신한테 완전히 비싼 점심 사 달라고 덤터기 씌우려고 했더니!”“우리 엄마가 방금 전화가 와서 예비 사위인 당신을 만나고 싶다고 하는군!”“어쨌든 당신은 우리 엄마의 병을 집어내며 생명을 구해 줬으니까!”“당신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고 하셔!”이 말을 들은 하현은 갑자기 머리가 아팠다.지난번 만났을 때 원천신의 태도가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그는 자꾸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원가령이 이렇게까지 해 주는데 자기가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하현은 한숨을 푹 내쉬고 현장 감독인 소미담에게 몇 가지 당부한 후 원가령을 따라나섰다....저녁 6시 정각.하현과 원가
”얼마 전 하현이 경찰서에서 풀려나온 것도 그녀와 관계가 있다고 들었어요.”“그녀는 나한테 복수하기 위해 그랬을 거예요.”양호남은 이렇게 말하면서 핸드폰을 열어 사진을 몇 장 보여주었다.그는 원가령과 찍은 사진을 가리키며 이 모든 일이 자신을 화나게 하기 위한 원가령의 복수임을 증명했다.“그렇게 된 거였군.”그제야 노부인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호남아, 할머니가 이런 말을 하려던 건 아니었지만 잘 들어.”“원 씨 가문의 그 여자는 사생아이지만 어쨌든 원 씨 가문 핏줄이야!”“그녀가 일단 하현 옆에 선다면 양유훤 그 불효막심한 것을 도와 우리를 상대하게 될 거야. 그러면 우리로서는 아주 귀찮게 돼.”“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지.”“원 씨 피를 가진 그 여자가 한사코 그들 편에 서려고 한다면 양가백약은 분명 시판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곤경에 처하게 돼!”“그러니 이 모든 걸 막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애초에 될성부른 떡잎의 싹을 싹 잘라버리는 거야!”노부인의 얼굴에 서늘한 기운이 가득 들어찼다.노부인의 말에 양호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할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노부인은 양호남을 희미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호남아, 할머니는 그 사생아가 너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지만 우리 양 씨 가문의 천추의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억울한 일도 하는 수밖에 없어!”“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원 씨 가문 사생아를 빼앗아 오너라!”“네가 그 여자를 빼앗아 양유훤 그 계집애의 모든 계획을 수포로 만들 수만 있다면 넌 우리 양 씨 가문의 당당한 후계자가 되는 거야. 어때? 문제없겠지?!”“우리가 양유훤 그 연놈을 죽인 후에 독살을 하거나 아니면 교통사고로 위장해서 네 약혼녀인 원 씨 가문 사생아를 처리한다면 다 끝나는 거잖아! 얼마나 쉬운 일이냐?!”“그렇게 되면 네가 황실의 공주와 결혼하다고 하더라도 이 할미는 모든 것을 다 내팽개치고 네 편이 될 거야. 어떠냐?”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