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련의 일들을 처리한 하현은 자신의 거처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이튿날 아침, 양유훤이 와서 하현과 함께 아침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그때, 한 경비원이 한달음에 달려왔다.“하현, 입구에 한 남자가 왔는데 양손에 깁스를 하고 있습니다.”“이름이 여수혁이라고 했고 두 분께 사죄하러 왔다고 합니다.”하현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사죄를 하러 왔다? 재미있군.”양유훤은 어리둥절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하룻밤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여수혁이 하현에게 사죄를 하러 온 것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똑똑한 여자였다.속으로는 여러 생각이 오갔지만 내색하지 않고 옅은 미소만 지을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 가서 얼굴이나 보자구!”하현은 두유 한 잔을 들고 마시면서 대문 쪽으로 걸어갔다.마당에는 화려한 옷차림을 한 남자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그는 양손에 깁스를 한 채 등 뒤에 싸리나무 가지를 메고 무릎을 꼿꼿이 꿇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어젯밤 미성 주점에서 보였던 의기양양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눈앞에 있는 여수혁에겐 부잣집 도련님의 풍모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눈두덩이 푸르덩덩하게 부풀어 있는 초췌한 모습인 것으로 보아 그는 밤새 한숨도 못 잔 것임이 분명했다.하현이 걸어 나오는 모습과 동시에 그의 곁에 양유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여수혁의 눈가에는 경련이 파르르 일었다.그는 하현이 어젯밤 미성 주점으로 사람을 보내 왜 자신을 유인했는지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그래서 어젯밤 밤새 죄를 인정하고 아침 일찍 하현에게 달려온 것이었다.너무 일찍 오면 하현이 아침 휴식을 하는 데 방해할 수도 있고 또 너무 늦으면 자신의 사죄가 아침 10시를 넘기게 되어 버릴까 봐 적당히 시간을 봐서 온 것이었다.하현은 잠시 여수혁을 위아래로 훑어본 뒤 두유를 한 모금 마시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여수혁, 이 아침에 무슨 할 말이 있어서 온 거야?”
강직하고 굳센 양유훤의 심성으로 미루어 봤을 때 이미 그녀의 마음속엔 양 씨 가문에 대한 어떤 정도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그렇다고 해도 여수혁의 말을 듣게 되자 그녀가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하현은 여수혁에게 물러가라고 한 후 양유훤에게 일단은 양제명 곁에서 푹 쉬라고 말했다.그리고 나서 그는 양유훤을 대신해 그다음 일을 직접 처리하기 시작했다.이미 예전에 양 씨 가문에서 조제하던 상처치료제의 제조법도 알았고 게다가 동결된 양유훤의 자산도 단시간에 찾아올 수 있게 되었다.그렇다면 지금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가능한 한 빨리 양유훤을 도와 회사를 정식으로 만들어 이름하여 양가백약을 시판해야 한다.회사 운영이 정상 궤도에 오르고 양유훤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긴다면 모든 상황이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라고 하현은 믿었다.양유훤한테 비서 연락처를 받은 하현은 핸드폰으로 몇 가지 메시지를 보낸 뒤 임무를 수행했다.그날 오후 하현이 외출을 하려고 나섰을 때 갑자기 그의 핸드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핸드폰을 본 하현이 얼른 전화를 받았고 맞은편에서는 약간 어색한 대하어가 흘러왔다.전화를 건 사람은 여자였다.“하현 핸드폰 맞습니까? 전 양 사장님의 비서입니다. 아침에 당신이 지시하신 일은 제가 이미 일부 처리했습니다!”“말씀하신 사무실도 이미 준비해 뒀습니다. 독립된 사무 빌딩에 한 층을 다 쓸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했습니다.”그러다가 비서는 약간 우물쭈물하기 시작했다.“그런데, 저기...”“내가 말했지만 지금부터 양 사장의 일은 곧 내 일이야.”“그러니 어려워하지 말고 어서 말해 봐.”하현은 시원시원하게 말했다.“혹시 돈이 부족한 거라면 말해.”“어려운 일이 있으면 나한테 그냥 말하면 돼.”전화기 맞은편에 있던 비서는 하현이 이렇게 시원시원하게 나올 줄은 생각하지 못한 듯 어리둥절해하며 말을 흐렸다가 차근차근 말을 하기 시작했다.“제가 방금 사업자 등록을 하려고 했더니 그쪽에서 양가백
하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여비서가 괴롭힘을 당한 상황이 눈앞에 훤히 그려지는 듯했다.머리가 텅텅 빈 부잣집 도련님이라면 이런 스타일의 여자를 누가 마다하겠는가?하현은 앳된 비서를 힐끔 쳐다본 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름이?”“아, 제 이름은 소미담입니다.”비서가 수줍게 입을 열었다.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소 비서, 도대체 어떤 사람이 그런 뻔뻔스러운 말을 입에 담는단 말이야?”소미담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사업자 등록을 심사하는 여세광입니다. 페낭 토박이구요.”“페낭 무맹 여 씨 가문과 한 집안이라 아주 기세가 등등하다고 합니다.”“여기 일 보러 오는 사람들, 특히 남양에 등록하려는 외국 기업들의 비서나 여직원들을 그렇게 괴롭힌다고 들었어요.”“남자한테는 돈을 빼앗고 여자한테는 몸을 탐한 거죠...”여기까지 말한 소비서는 걱정과 두려움이 뒤섞인 눈빛으로 변했다.하현이 이번에 그녀에게 중임을 맡긴 것은 그녀가 잘 처리해 주길 바라서였을 것이다.그런데 연애도 못 해 본 앳된 소녀가 어떻게 이런 일을 받아들일 수가 있겠는가?“그렇다면 여세광은 여 씨 가문 사람인 셈이군?”하현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어쩐지 이렇게 기고만장하더라니. 역시 남양이군.”“가자구. 내가 대신 그놈을 만나지. 남양 부잣집 도련님 면상이 어떤지 똑똑히 보자구!”소미담은 몇 마디 더 충고를 하고 싶었지만 하현의 굳은 표정을 보고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따라 홀로 들어섰다.그녀는 예약 번호표를 들고 하현을 데리고 2층 사무실로 바로 갔다.소미담은 사무실 입구에 서서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도 응답하는 이가 없었다.하지만 안에서는 애교 넘치는 여자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소미담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그녀는 또 한 번 노크를 했으나 역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하현은 이를 보고 무덤덤한 얼굴로 문을 향해 세차게 발길질을 했다.사무실은 고작 10여 평 정도밖
소미담은 억울한 듯 입술을 깨물며 입을 열지 못했다.분명 화는 났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이때 여세광의 옆에 있던 여자가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야! 지금 내가 여 과장님이랑 재미난 시간 보내는 거 안 보여?”“아침 일찍부터 와서 여 과장님을 즐겁게 해 드렸어야지!”“점심때가 다 되어 왔으면서 뽀뽀도 안 해 드리고 있어?”“그러면서 이제 와 여 과장님한테 무슨 볼 일을 보겠다는 거야? 어? 어떻게 일을 처리할 수 있겠냐고?”“내가 만약 너라면 지금 당장 옷 벗고 여 과장님한테 달려들 거야! 그래야 일이 수월해지지!”말을 마치며 여자는 더욱더 여 과장에게 안겨 교태를 부리며 말했다.“여 과장님, 제가 제대로 가르쳤죠?”여자는 소미담을 힐끔 쳐다보며 입을 삐죽거렸다.여 과장은 껄껄 웃으며 여자의 위아래를 더듬으며 능글맞은 웃음을 보였다.“맞아, 당연히 그래야지! 야! 어서 옷부터 벗어 봐! 어디 얼마나 죽여주나 한 번 보자구!”“우리 편안한 자세로 즐겁게 대화하다 보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을 것 같은데, 안 그래?”아리따운 여자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소미담을 쳐다보았다.분명 소미담이 너무 고집부리며 뻣뻣하게 군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처음에는 누구나 옥처럼 깨끗하고 고결한 척하지만 결국 권력에 굴복하게 되는 것이다.하현은 눈빛을 예리하게 흐리며 차갑게 말했다.“이게 바로 페낭 기업청이 기업인을 대하는 태도입니까?”하현은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상대의 더럽고 비열한 행동에 좋은 낯빛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하현을 정면으로 보지 않았던 여세광은 갑자기 안색이 일그러지며 하현을 향해 시선을 돌려 화를 내며 말했다.“넌 또 어느 집 개자식이야?”“당신이 그런 말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내가 무슨 태도를 취하건 당신이 말 할 자격이 있어?”“지금 날 가르치는 거야 뭐야?”“불만 있으면 신고해! 신고하는 번호라도 알려줄까?”여
여세광의 옆에 있던 여자가 이 말을 듣고 어딘가로 전화를 하려고 했다.“아니, 아니, 아닙니다. 여 과장님, 오해십니다. 모든 것이 오해입니다...”소미담은 겁을 잔뜩 먹은 얼굴이었다.그녀는 페낭 토박이였기 때문에 여세광 같은 사람에게 미움을 사면 어떤 결과가 뒤따르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녀는 얼른 앞으로 나서서 90도로 고개를 숙였다.“여 과장님, 하현은 항성과 도성에서 왔습니다. 성의를 가지고 왔으니 잘 부탁드립니다.”“일이 성사되면 섭섭하지 않게 보수를 챙겨 드리겠습니다.”“보수? 네 동생이라도 바칠 건가? 집어치워!”여 과장은 소미담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경멸하는 눈초리를 보냈다.“내가 확실하게 이익을 볼 전망이 없으면 시도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거 몰라?”“일이 성사가 된 후?”“지금도 제대로 일을 할 줄 모르는데 일이 성사가 되면 잘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품으라고? 지금? 나한테?”여세광의 눈에 비열함과 탐욕스러움이 가득 차올랐다.청순 글래머 스타일인 눈앞의 여자를 데려간다면 그는 오늘 밤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이다.그리고 현장에는 아무도 없으니 아무 거리낌 없이 행동해도 상관없었다.하현은 한 발 내디디며 소미담의 앞을 가로막고 여세광을 향해 거침없이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다.“여 과장, 맞지?”“마지막으로 묻겠어. 오늘 우리를 괴롭히기로 작정한 거야?”“우리 체면도 봐주지 않을 작정인 거지?”여세광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괴롭혀? 체면?”“당신 같이 하찮은 사람을 내가 뭐 하러 괴롭혀? 당신이 그럴 자격이 된다고 생각해?”“겨우 상처치료제나 파는 회사 체면을 내가 왜 봐줘야 하지?”“잘 들어!”“이 직함 말고도 내 뒤엔 여 씨 가문이 있어. 그리고 페낭 무맹이라는 큰 뒷배가 있다고!”“내가 당신들의 사업자 등록을 승인하지 않은 것은 당신들의 양가백약이 예전의 양씨백약과 너무 비슷하기 때문이야.”“가짜약을 팔려고 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단 말이지.”
”흥! 이제 사람을 부르는 거야? 그것도 여수혁을?”하현이 전화를 걸어 사람을 부르는 것을 보고 여자는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다.“여수혁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 여 씨 가문 도련님이야. 페낭 무맹에서도 높은 신분이라고!”“그런데 당신이 여수혁한테 전화를 할 수 있다고?”“누굴 바보로 아는 거야?”“허세를 부리려거든 좀 그럴듯하게 부려야 하지 않겠어?”“괜히 그런 전화나 하면 뭐가 달라져? 거울 보고 주제 파악이나 좀 해!”“당신이 뭔데 여수혁한테 전화한다는 거야? 그럴 수준이나 돼?”여세광은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야! 배짱 하나는 끝내주네! 내 앞에서 그런 허세도 부릴 줄 알고!”“그렇지만 이 사실을 여수혁이 알기라도 한다면 당신은 끝장이야!”“여수혁의 평소 스타일대로라면 감히 자신의 이름을 함부로 거들먹거리는 사람을 당장 무릎 꿇게 만들고 사과하라고 할 거야!”하현은 전화를 끊고 여세광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무릎 꿇고 사과할 일은 없을 거니까.”“그렇지만 당신이 무릎 꿇고 사과할 일은 있을 거야.”무릎을 꿇고 사과를 해?간드러진 여자의 얼굴에 비아냥거리는 미소가 가득 번졌다.“허세를 부리지 않으면 죽겠나 보지?”여세광은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본 뒤 손가락을 뻗어 책상 위를 톡톡 치며 차갑게 말했다.“좋아. 그럼 기다릴게. 당신한테 30분 주지.”“만약 당신이 날 무릎 꿇게 하지 못한다면 내가 당신 무릎을 꿇게 해 만들 거야!”소미담은 일이 이렇게 흘러가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대학을 막 졸업한 여자가 무슨 경험이 있겠는가?그녀는 원래 하현을 데려오면 일을 순조롭게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제야 소미담은 후회가 되었다.자신이 목숨이라도 걸고 여세광의 말에 따랐다면 일을 잘 마쳤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렇지만 연애도 해 본 적 없고 남자 손도 잡아 본 적 없는 자신
양손에 깁스를 하고 머리에 붕대를 감은 여수혁의 발걸음이 비틀거리며 다급하게 다가왔다.그리고 기업청 고위층들이 여수혁의 뒤를 따라다녔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얼굴색이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여수혁, 이사님들.”여수혁 옆에 있던 여자와 다른 직원들은 모두 허둥지둥 물러서며 너 나 할 것 없이 깍듯이 인사를 했다.여수혁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페낭 기업청의 청장과 부청장이며 모두 높은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고위급 사람들의 눈에 여세광을 비롯한 보통 직원들은 단번에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 사람들이었다.여수혁은 이 사람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하현에게 얼른 걸어가 상전을 모시듯 말했다.“하현, 여기 당신을 괴롭히는 사람 있어?”“어느 개자식이 곰쓸개라도 씹어 먹은 거야?”“죽여버리겠어!”여수혁이 하현한테 와서 아첨하듯 떠받드는 모습을 보고 여세광과 여자의 안색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그들은 하현이 정말로 전화 한 통으로 사람을 불러들일 줄은 몰랐다.여수혁은 페낭에서 이 씨 가문, 원 씨 가문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거물이었다!페낭에서 거칠 것이 없는 이런 거물이 어떻게 하현 앞에서는 강아지 마냥 비위를 맞추고 있는 것인가?여세광은 넋이 나간 듯 정신이 멍해졌다.다리에 힘이 빠져 제자리에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아니야. 어떻게 날 괴롭힐 수 있겠어?”하현은 자료를 바닥에 던지고 가볍게 입을 열었다.“다만 내가 남양에는 이렇다 할 자산이 별로 없어서 상처치료제를 좀 팔아서 가족을 부양하고 싶은데 그 일이 잘 안 되어서 말이야.”“여 과장이 여 씨 가문 사람이라고 하길래 당신을 부른 거야.”“내가 그에게서 할 수 없는 일을 여수혁 당신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야.”“그래서 당신한테 전화를 했던 거야. 혹시 밖에서 다른 사람들 한창 괴롭히고 있는데 내가 방해한 건 아니지?”하현의 말을 들은 여수혁은 그를 볼 낯이 없는지 하마터면 무릎을 꿇을 뻔했다.겨우 안색을 추스른 여수혁이
아무 말도 없이 이 장면을 지켜보던 하현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청장님 마음 이해합니다.”청장은 손바닥을 휘둘러 여세광의 얼굴을 수차례 더 때린 뒤 냉랭하게 말했다.“어서 하 선생님한테 사과하지 못해?!”“하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여세광은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며 굽신거렸다.“잘못했습니다. 선생님 일은 바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하현은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무릎 꿇고 말해.”“들었어 못 들었어? 무릎 꿇고 말해!”하현의 말을 듣고 여수혁은 대략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여수혁은 이를 악물고 한 발로 여세광을 발로 차며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여 씨 가문이 하마터면 하현에게 폭삭 주저앉을 뻔했는데 감히 이 자식이 하현을 괴롭히다니!한차례 발길질에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여수혁은 몇 번을 더 여세광을 향해 발길질을 했다.여세광은 얼굴이 부어올랐지만 일어서지도 저항하지도 않고 밀려오는 고통을 견뎠다.이 광경을 보고 있던 하현은 여수혁의 발길질이 더 이어지면 여세광이 기절할 것 같아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렸다.“우선은 그만 때려.”여세광은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일을 다 처리한 후에 때려도 늦지 않아.”하현은 덤덤한 목소리로 말하면서도 여세광에겐 눈길도 주지 않았다.이 말에 얼굴이 새까맣게 타들어간 여세광은 어떤 말대꾸도 저항도 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바닥에 있는 자료들을 주워 모은 뒤 책상으로 올라가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하현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무덤덤한 눈빛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만약 자신이 남양에서 아무런 뒷배도 없었다면 이런 하찮은 사람들에게까지 무시를 당하며 피를 토했을지도 모른다.이러니 평소에 일을 보러 온 기업인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당했을까?가히 짐작하고도 남을 정도였다.그러나 남양의 업무 스타일이 어쨌든 그것은 하현과 무관하며 남양 관청을 대신해 이 부조리를 정리하기도 성가신
하현의 말을 듣고 이미 돌아섰던 필립 선생의 발걸음이 순간 멈칫했다.먹으면 죽는다고?하현의 말을 들은 원천신 일행은 모두 깜짝 놀라 무의식적으로 앞에 놓인 계란을 보았다.필립 같은 셰프가 차려준 귀족 음식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고?이럴 수가?!처음에 경악했던 일행들은 겨우 정신을 차렸다.분명 하현이 눈도장을 확실히 찍으려고 뭔가 속임수를 쓰는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하현, 무슨 말을 하는 거야?!”“필립 선생님이 누군지 알아? 그는 노국 궁정에서 일했어. 지금 노국 황실에서 일하는 셰프들은 모두 그의 제자들이야!”“그가 만든 요리가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거야?”“당신이 이렇게 거리낌 없이 함부로 지껄이는 건 필립 선생님뿐만 아니라 노국 황실을 모독하는 거야!”“보잘것없는 촌놈이, 감히 뭐라도 된 것 마냥 지껄이다니?!”“당신 같은 사람이 트러플이 뭔지나 알아? 캐비아가 뭔지나 아냐고?”“사과해! 어서 당장 무릎 꿇고 사과해!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오늘 멀쩡한 몸으로 못 나갈 줄 알아!”원천신 일행들은 모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하현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필립 선생님은 요리사일 뿐만 아니라 고귀한 노국 귀족이었다!이런 거물을 감히 촌뜨기놈이 모욕을 하다니!절대 가만히 내버려둘 수 없는 일이다!만약 필립 선생님이 화가 나서 앞으로 이곳에 오지 않는다면 그녀들은 어디 가서 노국 황실의 음식을 맛볼 수 있겠는가?이 말을 페낭 사람들이 듣는다면 배꼽이 떨어져라 비웃을 것이다!엉터리 상처치료제나 파는 하현이 감히 분수도 모르고 신선이나 되는 줄 입을 놀리는 것인가?“이봐, 사람이 되먹지 못하면 말이야. 맨날 잘난 척만 하고 자기가 모든 걸 다 안다고 생각하지. 지금 당신은 자신이 완전히 뭐라도 된 줄 알지!”원천신은 매서운 눈빛으로 차갑게 말했다.“얼른 무릎 꿇고 사과해. 그렇지 않으면 필립 선생님이 사람을 부를 필요도 없이 내가 먼저 당신을 여기서 내쫓을 테니까!”“
원천신의 말을 들은 원가령은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허투루 내뱉은 말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다.자기가 하현과 사귄다고 한 것은 화가 나서 한 말일 뿐이었다.딸의 표정을 본 원천신은 딸이 자신의 말에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마지막 회심의 일격을 날려 이 일을 마무리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평생을 함께 하는 것은 차치하고, 지금 당장 그는 이 귀족 음식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도 모르잖아! 칼과 포크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 수가 없지!”“이런 상식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너와 평생 함께 할 수가 있겠니?”“정말로 평생 남자 뒤치다꺼리나 하며 살고 싶어서 그래?”“너 정말 그런 생활을 견딜 수 있겠니?”원가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현과 자신의 생활습관이 확실히 다를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평생 고달픈 인생을 살라니, 그녀는 정말이지 참을 수가 없었다.바로 그때 머리를 빈틈없이 빗어 넘긴 채 연미복을 입은 금발의 파란 눈에 나이 지긋한 웨이터가 음식을 들고나왔다.뚜껑이 달린 뜨거운 철판이 원천신 앞에 놓였다.뚜껑 속에서는 버터가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향긋한 냄새를 풍겼다.코를 자극하는 향긋한 냄새가 불어와 사람들의 식욕을 마구 끌어당겼다.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웨이터가 입을 열었다.“부인, 제가 가장 잘 하는 노국의 귀족 음식입니다.”“오늘 여기 모이신 아름다운 분들에게 특별히 선사하는 음식이니 천천히 즐기시길 바랍니다.”이 말을 듣고 지금까지 노기가 가득 서렸던 원천신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어올랐다.그녀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띤 채 존경의 눈빛으로 말했다.“존경하는 필립 선생님, 이렇게 환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다른 여자들도 모두 방긋 웃으며 화답했다.“감사합니다. 필립 선생님. 이런 귀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니 영광입니다.”필립 선생은 기분 좋은 듯 환한 미소를 보이며 두 손을 뒷짐진 채 거만한 표정을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뻔뻔하게 원가령이랑 사귀고 싶어서가 아닙니다.”“전 단지 당신에게 말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원가령은 당신 딸이지만 혼자서 충분히 설 수 있는 사람입니다.”“원가령은 온전한 자신의 삶이 있어요.”“자신의 삶을 선택할 권리가 있고요.”“당신이 저더러 여기서 물러나라면 그러겠습니다. 아무래도 괜찮아요.”“그러나 오직 원가령 입에서 그 말이 나와야 합니다. 원가령이 그렇게 말하면 저는 두말없이 바로 물러가겠습니다.”“만약 원가령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전 여기서 물러나지 않을 겁니다.”“그녀가 절 이 식사에 초대했기 때문이죠. 당신도 아니고 이 여자들도 아니죠!”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원가령을 대신해 이 단순한 논리를 조목조목 따졌다.그는 원천신의 말과 행동으로 미뤄 보아 그녀가 통제욕이 아주 강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차렸다.만약 그녀가 계속 이렇게 하도록 내버려두면 원가령의 인생이 그녀의 모친 때문에 망가질 수도 있었다.그래서 하현은 원가령의 친구로서 원천신에게 이 점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그는 다른 점에 관해서는 추호도 나설 생각이 없었다.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고 있던 원가령의 눈엔 어느새 뭉클함이 묻어나오고 있었다.하현이 이렇게 자신을 존중해 주고 기꺼이 자신을 대신해 이런 말을 해 줄 줄은 몰랐다.심지어 자신의 어머니 같은 거물을 상대하면서도 조금도 비굴하지 않았다.순간 원가령은 마음속에서 안타까운 한숨이 터져 나왔다.만약 하현의 가문이 형편없지 않았다면 그녀는 정말 하현을 선택했을 것이고 의리로라도 그에게 시집을 갔을 것이다.마치 자신에게 훈계를 늘어놓는 듯한 하현의 말을 듣고 원천신의 눈빛이 서늘해졌다.그녀는 하현 같은 사람들을 높이 평가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오히려 경멸하는 마음이 용솟음쳤다.대단한 가문 도련님이 이런 말을 했다면 그건 당연한 일로 받아들일 수 있다.하지만 빈털터리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웃음거리밖에 되
”가령아, 내 말 좀 들어봐!”“네가 최선을 다해 상처치료제 시판을 도운 덕택에 그가 우리 레벨에 들어왔다고 치자!”“그렇지만 문제는 그가 들어왔다고 해도 어울리지 않을 거라는 거야. 그의 몸에서 나는 약냄새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멀리하게 만들 거야!”“그리고 심지어 네 엄마, 네 가문 모두 너의 선택 때문에 남양의 웃음거리가 될 거야!”“가령아, 원 씨 가문까지는 생각하지 않더라도 네 엄마를 생각해야지, 안 그래?”“원 씨 가문에서 네 엄마가 얼마나 힘든데 너까지 이러면 네 엄마가 얼마나 더 곤란해지겠니?”원가령이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가운데 또 다른 여자가 부채질을 하며 거들었다.그녀의 시선은 하현에게로 향했다.“사람이 분수를 알아야지.”“당신이 상처치료제를 팔고 싶다면 우리가 가령이 얼굴을 봐서라도 얼마든지 주문해 줄 수 있어.”“당신이 엉터리 가짜약을 팔고 싶다면 그냥 팔면 되지만 헛된 꿈을 꾸진 마. 엉터리 약 하나 판다고 우리 상류사회로 비집고 들어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이 세상에는 당신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있어.”“당신이 태어날 때 가지지 못한 것은 절대 평생 가질 수 없어.”“무슨 말인지 알겠어?”말을 마친 여자는 방긋 웃으며 라피트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그녀는 자신이 한 말이 상대를 충분히 설득시켰다고 생각했다.상류사회 출신이라는 것이 모든 것을 말해 준다.하현은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다.여자들의 빈정거림에 화를 내는 대신 그저 무덤덤한 표정으로 일관했다.그녀들도 어쨌든 원가령을 생각해서 이런 말을 했을 테니 어느 정도 원가령을 보호하기 위한 배려라고 볼 수도 있었다.원가령이 자신을 위해 도와준 것을 생각한다면 이 여자들의 이런 험한 말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그는 여자들이 얼마든지 훈계를 늘어놓도록 내버려두었다.그러나 하현이 별로 따지고 싶지 않은 듯 심드렁한 자세를 보이자 원천신의 눈빛이 매서워졌다.그가 그녀들을 얕보고
원천신은 의미심장한 눈초리로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은행 카드가 테이블 위에 놓이자 옆에 있던 여자들은 비아냥거리는 미소를 입가에 떠올렸다.그때 하현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오늘 식사 초대는 핑계였던 것이다.사람들 앞에서 있는 대로 하현에게 망신을 주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그러나 문제는 하현이 원가령에게 남녀의 마음을 조금도 품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쌍방이 친구가 된 것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일 뿐이었다.오늘 여기에 그가 온 것은 며칠 동안 원가령이 너무 고생했기 때문에 이 기회에 원천신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어서였다.심지어 그는 우윤식에게 천일 그룹이 원천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도록 당부할 참이었다.그러나 원천신은 하현이 품은 선의를 와장창 깨부수는 태도를 보였다.게다가 경멸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아 하현의 마음을 언짢게 만들었다.사실 원천신이 이런 말을 하건 어쨌건 하현은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어쨌든 그와 원가령은 아무 사이도 아니었기 때문에 자초지종을 설명하면 끝이었다.하지만 문제는 거지를 내쫓듯이 막무가내로 대하는 원천신의 태도가 하현을 적잖이 불쾌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그가 바로 돌아서서 그 자리를 떠나려고 하자 원가령이 오히려 화를 내고 나섰다!그녀는 벌떡 일어서서 다정하게 하현의 팔짱을 끼며 소리를 질렀다.“엄마! 너무한 거 아니야!”“엄마가 하현한테 식사 대접한다고 해서 데려온 거잖아!”“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대할 수 있어?”“게다가 엄마 목숨을 구해 준 사람이야! 기억 안 나? 며칠 전에 하현이 엄마 목숨을 구해 줬잖아!”“나와 이 사람이 맞지 않다고 하더라도 엄마한테는 생명의 은인이잖아! 은혜를 알았으면 보답하는 도리를 보여야 하잖아! 그것도 몰라?”“그리고 하현이 아무리 형편없다고 해도 엄마가 소개한 양호남보다는 훨씬 낫잖아?”“적어도 하현은 양호남 같은 쓰레기는 아니야! 함부로 다른 여자랑 엮이는 파렴치한이 아니라고!”“난 이런 진실
원가령은 안절부절못했다.자신의 어머니가 하현 같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자리에 하현을 데리고 식사를 하러 나왔다는 것이 문제였다.원천신이 하현을 이렇게 내버려두는 것은 정말이지 예의가 아니었다.그러나 원가령은 자신도 이런 자리에서는 함부로 끼어들 수가 없었다.10여 분 동안 이야기를 나눈 후 모두의 화제는 마침내 의도치 않게 끝이 났다.환한 미소를 지으며 수다를 떨었던 원천신의 시선이 그제야 하현에게로 향했다.그녀는 자신의 손목에 찬 까르띠에 손목시계를 보며 힐끔 하현을 바라보았다.뭔가 꿍꿍이가 가득 담긴 눈빛이 그녀의 눈동자를 스쳤다.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의도치 않게 하현에게로 향했다가 별일 아닌 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시선을 거두었다.“하현, 지난번에 당신이 나한테 일깨워준 덕분에 문제를 잘 발견했어.”“아주 고맙게 생각해.”원천신은 무덤덤한 얼굴로 가볍게 입을 열었다.하현 덕분에 폐결핵을 알게 된 건 그저 사소한 일일 뿐이라는 듯 심드렁한 말투였다.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의사의 조언에 따라 앞으로 격렬한 운동은 피하고 몸조리하는 데 신경 쓴다면 완치에 크게 문제가 없기 때문이었다.원천신은 하현이 어쩌다 운이 좋아 그런 걸 발견했다고 생각했다.게다가 그녀의 마음속엔 하현이 불길한 말을 잘하는 사람이어서 폐결핵을 알아차렸다고 여겼다.그래서 원천신은 지금 고맙다고 말은 하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미움이 도사리고 있었다.그리고 가타부타 미동도 없는 하현의 표정과 동작을 보니 원천신은 더욱 그가 못마땅했다.그녀는 자신의 딸이 마땅히 부잣집에 시집가야 한다고 생각했다.천일 그룹과 대성 그룹의 배후에 있는 인물에게 시집갈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젊은 후계자에게는 시집가야 하지 않겠는가?하현 같은 촌뜨기가 어딜 넘봐?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그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은 방금 급하게 산 것이거나 그마저도 자신의 딸이 사 줬을 가능성이 높았다.이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자 원천
하현은 자세히 보려고 눈을 모았고 원천신이 그들의 구심점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남양 스타일의 옷을 입고 새하얀 허벅지를 그대로 드러낸, 그야말로 한눈에 이목을 집중시키는 자태였다.게다가 모인 사람들의 면면이 화려하고 각각의 특색이 분명해 보여서 마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들을 모아 놓은 전시회장 같았다.현장에 있던 남자들도 모두 참지 못하고 이쪽 방향으로 힐끔 눈길을 돌리며 목례를 하고 지나갔다.아쉽게도 그 누구도 함부로 말을 건네지 못했다.원 씨 가문 둘째 아가씨는 페낭에서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보통 남자는 그녀를 감당할 수 없다.일부 부잣집 남자들도 뒷걸음치기 일쑤였다.원천신 같은 여자는 아리따운 장미와도 같았다.아주 매혹적이었지만 자칫하면 가시에 찔려 피를 철철 흘릴 수가 있다.자신 있는 남자가 아니라면 누가 함부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겠는가?“엄마!”원가령이 룸 안으로 들어서며 인사를 했다.“안녕하세요!”“가령이 왔구나!”원천신은 원가령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바로 맨 뒷자리에 있는 곳을 가리키며 담담하게 말했다.“앉아.”말을 마친 후 원천신은 하현은 무시한 채 계속 그녀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하현은 완전히 무시당했다.게다가 룸 안에는 더 앉을 수 있는 의자도 없었다.하현이 얼마나 난처하고 창피해할지 뻔히 눈에 보이는 상황이었다.젊은이가 이런 경우를 당하면 완전히 체면을 잃은 나머지 일부 성깔이 있는 사람은 아예 소매를 뿌리치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갈 것이다.하지만 하현은 내내 담담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SL 그룹에서 3년 동안 산전수전 다 겪은 그에게 새로울 게 뭐 있겠는가?이런 대우를 받은들 그가 안중에 둘 것 같은가?하현은 유유히 핸드폰을 꺼내 룸 안의 문설주에 기대어 뉴스를 보았다.원가령은 이 상황에서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종업원에게 의자를 하나 더 가져다 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원천신의 매서운 눈초리에 감히 입도 뻥긋
”원가령, 이번엔 정말 고마워.”하현은 인테리어 인부들에게 담배를 건네면서 작은 조끼를 입고 신이 나서 임시 감독으로 일하는 원가령을 향해 생수를 한 병 건네주었다.“이번에 당신이 없었다면 이 가게를 이렇게 빨리 열 수 없었을 거야.”“고생한 거 알아줬으니 됐어. 나중에 점심이나 사 줘!”원가령은 고개를 들어 맞은편에 있는 양씨백약 간판에 눈길을 돌렸다.“밥 얻어먹으면 내가 신나서 저것보다는 몇 배 더 큰 간판을 걸어줄게. 당신과 유훤이가 만든 양가백약이 대박 터지도록 말이야!”하현은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좋아. 당연히 밥 사야지!”“그렇지만 광고판 같은 건 내가 처리해도 돼!”며칠 전 하현은 원가령과 양호남의 관계에 대해 알게 되었다.양 씨 가문 도련님과 원 씨 가문 아가씨의 결합이라니 환상적인 조합이었다!양호남의 인품에 대해서 하현이 왈가왈부할 것은 아니었다.원가령이 어떤 남자를 선택하든 그것은 오로지 그녀의 자유이다.그래서 하현은 자신이 끼어들 사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잉! 잉!”그때 원가령의 핸드폰이 바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물끄러미 바라보다 전화를 받은 뒤 하현을 향해 빙긋 웃으며 말했다.“하현, 당신은 정말 운이 좋은 것 같아.”“방금 당신한테 완전히 비싼 점심 사 달라고 덤터기 씌우려고 했더니!”“우리 엄마가 방금 전화가 와서 예비 사위인 당신을 만나고 싶다고 하는군!”“어쨌든 당신은 우리 엄마의 병을 집어내며 생명을 구해 줬으니까!”“당신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고 하셔!”이 말을 들은 하현은 갑자기 머리가 아팠다.지난번 만났을 때 원천신의 태도가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그는 자꾸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원가령이 이렇게까지 해 주는데 자기가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하현은 한숨을 푹 내쉬고 현장 감독인 소미담에게 몇 가지 당부한 후 원가령을 따라나섰다....저녁 6시 정각.하현과 원가
”얼마 전 하현이 경찰서에서 풀려나온 것도 그녀와 관계가 있다고 들었어요.”“그녀는 나한테 복수하기 위해 그랬을 거예요.”양호남은 이렇게 말하면서 핸드폰을 열어 사진을 몇 장 보여주었다.그는 원가령과 찍은 사진을 가리키며 이 모든 일이 자신을 화나게 하기 위한 원가령의 복수임을 증명했다.“그렇게 된 거였군.”그제야 노부인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호남아, 할머니가 이런 말을 하려던 건 아니었지만 잘 들어.”“원 씨 가문의 그 여자는 사생아이지만 어쨌든 원 씨 가문 핏줄이야!”“그녀가 일단 하현 옆에 선다면 양유훤 그 불효막심한 것을 도와 우리를 상대하게 될 거야. 그러면 우리로서는 아주 귀찮게 돼.”“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지.”“원 씨 피를 가진 그 여자가 한사코 그들 편에 서려고 한다면 양가백약은 분명 시판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곤경에 처하게 돼!”“그러니 이 모든 걸 막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애초에 될성부른 떡잎의 싹을 싹 잘라버리는 거야!”노부인의 얼굴에 서늘한 기운이 가득 들어찼다.노부인의 말에 양호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할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노부인은 양호남을 희미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호남아, 할머니는 그 사생아가 너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지만 우리 양 씨 가문의 천추의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억울한 일도 하는 수밖에 없어!”“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원 씨 가문 사생아를 빼앗아 오너라!”“네가 그 여자를 빼앗아 양유훤 그 계집애의 모든 계획을 수포로 만들 수만 있다면 넌 우리 양 씨 가문의 당당한 후계자가 되는 거야. 어때? 문제없겠지?!”“우리가 양유훤 그 연놈을 죽인 후에 독살을 하거나 아니면 교통사고로 위장해서 네 약혼녀인 원 씨 가문 사생아를 처리한다면 다 끝나는 거잖아! 얼마나 쉬운 일이냐?!”“그렇게 되면 네가 황실의 공주와 결혼하다고 하더라도 이 할미는 모든 것을 다 내팽개치고 네 편이 될 거야. 어떠냐?”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