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 이제 사람을 부르는 거야? 그것도 여수혁을?”하현이 전화를 걸어 사람을 부르는 것을 보고 여자는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다.“여수혁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 여 씨 가문 도련님이야. 페낭 무맹에서도 높은 신분이라고!”“그런데 당신이 여수혁한테 전화를 할 수 있다고?”“누굴 바보로 아는 거야?”“허세를 부리려거든 좀 그럴듯하게 부려야 하지 않겠어?”“괜히 그런 전화나 하면 뭐가 달라져? 거울 보고 주제 파악이나 좀 해!”“당신이 뭔데 여수혁한테 전화한다는 거야? 그럴 수준이나 돼?”여세광은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야! 배짱 하나는 끝내주네! 내 앞에서 그런 허세도 부릴 줄 알고!”“그렇지만 이 사실을 여수혁이 알기라도 한다면 당신은 끝장이야!”“여수혁의 평소 스타일대로라면 감히 자신의 이름을 함부로 거들먹거리는 사람을 당장 무릎 꿇게 만들고 사과하라고 할 거야!”하현은 전화를 끊고 여세광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무릎 꿇고 사과할 일은 없을 거니까.”“그렇지만 당신이 무릎 꿇고 사과할 일은 있을 거야.”무릎을 꿇고 사과를 해?간드러진 여자의 얼굴에 비아냥거리는 미소가 가득 번졌다.“허세를 부리지 않으면 죽겠나 보지?”여세광은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본 뒤 손가락을 뻗어 책상 위를 톡톡 치며 차갑게 말했다.“좋아. 그럼 기다릴게. 당신한테 30분 주지.”“만약 당신이 날 무릎 꿇게 하지 못한다면 내가 당신 무릎을 꿇게 해 만들 거야!”소미담은 일이 이렇게 흘러가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대학을 막 졸업한 여자가 무슨 경험이 있겠는가?그녀는 원래 하현을 데려오면 일을 순조롭게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제야 소미담은 후회가 되었다.자신이 목숨이라도 걸고 여세광의 말에 따랐다면 일을 잘 마쳤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렇지만 연애도 해 본 적 없고 남자 손도 잡아 본 적 없는 자신
양손에 깁스를 하고 머리에 붕대를 감은 여수혁의 발걸음이 비틀거리며 다급하게 다가왔다.그리고 기업청 고위층들이 여수혁의 뒤를 따라다녔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얼굴색이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여수혁, 이사님들.”여수혁 옆에 있던 여자와 다른 직원들은 모두 허둥지둥 물러서며 너 나 할 것 없이 깍듯이 인사를 했다.여수혁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페낭 기업청의 청장과 부청장이며 모두 높은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고위급 사람들의 눈에 여세광을 비롯한 보통 직원들은 단번에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 사람들이었다.여수혁은 이 사람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하현에게 얼른 걸어가 상전을 모시듯 말했다.“하현, 여기 당신을 괴롭히는 사람 있어?”“어느 개자식이 곰쓸개라도 씹어 먹은 거야?”“죽여버리겠어!”여수혁이 하현한테 와서 아첨하듯 떠받드는 모습을 보고 여세광과 여자의 안색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그들은 하현이 정말로 전화 한 통으로 사람을 불러들일 줄은 몰랐다.여수혁은 페낭에서 이 씨 가문, 원 씨 가문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거물이었다!페낭에서 거칠 것이 없는 이런 거물이 어떻게 하현 앞에서는 강아지 마냥 비위를 맞추고 있는 것인가?여세광은 넋이 나간 듯 정신이 멍해졌다.다리에 힘이 빠져 제자리에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아니야. 어떻게 날 괴롭힐 수 있겠어?”하현은 자료를 바닥에 던지고 가볍게 입을 열었다.“다만 내가 남양에는 이렇다 할 자산이 별로 없어서 상처치료제를 좀 팔아서 가족을 부양하고 싶은데 그 일이 잘 안 되어서 말이야.”“여 과장이 여 씨 가문 사람이라고 하길래 당신을 부른 거야.”“내가 그에게서 할 수 없는 일을 여수혁 당신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야.”“그래서 당신한테 전화를 했던 거야. 혹시 밖에서 다른 사람들 한창 괴롭히고 있는데 내가 방해한 건 아니지?”하현의 말을 들은 여수혁은 그를 볼 낯이 없는지 하마터면 무릎을 꿇을 뻔했다.겨우 안색을 추스른 여수혁이
아무 말도 없이 이 장면을 지켜보던 하현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청장님 마음 이해합니다.”청장은 손바닥을 휘둘러 여세광의 얼굴을 수차례 더 때린 뒤 냉랭하게 말했다.“어서 하 선생님한테 사과하지 못해?!”“하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여세광은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며 굽신거렸다.“잘못했습니다. 선생님 일은 바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하현은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무릎 꿇고 말해.”“들었어 못 들었어? 무릎 꿇고 말해!”하현의 말을 듣고 여수혁은 대략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여수혁은 이를 악물고 한 발로 여세광을 발로 차며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여 씨 가문이 하마터면 하현에게 폭삭 주저앉을 뻔했는데 감히 이 자식이 하현을 괴롭히다니!한차례 발길질에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여수혁은 몇 번을 더 여세광을 향해 발길질을 했다.여세광은 얼굴이 부어올랐지만 일어서지도 저항하지도 않고 밀려오는 고통을 견뎠다.이 광경을 보고 있던 하현은 여수혁의 발길질이 더 이어지면 여세광이 기절할 것 같아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렸다.“우선은 그만 때려.”여세광은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일을 다 처리한 후에 때려도 늦지 않아.”하현은 덤덤한 목소리로 말하면서도 여세광에겐 눈길도 주지 않았다.이 말에 얼굴이 새까맣게 타들어간 여세광은 어떤 말대꾸도 저항도 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바닥에 있는 자료들을 주워 모은 뒤 책상으로 올라가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하현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무덤덤한 눈빛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만약 자신이 남양에서 아무런 뒷배도 없었다면 이런 하찮은 사람들에게까지 무시를 당하며 피를 토했을지도 모른다.이러니 평소에 일을 보러 온 기업인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당했을까?가히 짐작하고도 남을 정도였다.그러나 남양의 업무 스타일이 어쨌든 그것은 하현과 무관하며 남양 관청을 대신해 이 부조리를 정리하기도 성가신
소미담도 자신의 부족한 경험 때문에 하현이 힘들게 되었다는 걸 알고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하현, 제가 경험이 부족해서 힘들게 해 드렸습니다.”하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무실 문을 나섰다.그가 막 차를 잡으려고 나왔을 때 갑자기 길모퉁이 한 상점으로 시선이 떨어졌다.이곳은 예전에 대형 명품숍이었는데 남양인들한테 별로 구매력이 없다는 이유로 지금은 문을 닫았다.그리고 가게 입구에도 ‘임대’라는 플래카드가 크게 걸려 있었다.하현은 몇 번을 유심히 눈길을 준 후에야 고개를 끄덕였다.“몫이 아주 좋군. 만약 우리 양가백약의 플래그십 스토어로 만들 수 있다면 분명 효과가 좋을 거야!”소미담도 이 가게의 지리적 위치가 매우 좋다는 것을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문제없습니다. 제가 바로 관리사무소에 연락해서 임대를 알아보겠습니다.”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임대하지 말고 그냥 사. 돈이 부족하면 나한테 말하고.”기세도 등등한 데다 돈까지 많은 하현이 소미담에게 혓바닥을 살짝 내밀며 깨방정 같은 모습을 보이자 그녀는 하현이 진정한 ‘보스'라는 생각이 들었다.하현은 말을 마치며 택시를 잡으려고 손을 흔들자 운행하던 택시들이 일제히 멈춰 섰다.게다가 운전기사들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일제히 사무실 건물 꼭대기에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그들의 시선을 따라 하현도 시선을 돌려보았다.순간 그는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건물 꼭대기 난간 가장자리에 한 여자가 넋을 잃고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여자는 금방이라도 발을 헛디뎌 건물 아래로 추락할 것 같았다.소미담은 이 모습을 보고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행인들은 하나같이 위를 가리키며 호들갑을 떨었고 몇몇은 핸드폰을 들어 관청에 신고하려고 했다.하현은 잠시 눈을 희미하게 모으더니 순간 안색이 변했다.투신하려는 사람이 그가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다!원가령!하현은 많은 것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바로 옥상으로 돌진했다.위에는 이미
”이미 여러 번 기회를 줬는데도 정신을 못 차리다니!”“점점 더 너무해! 전화 한 통도 없고! 선물 한 번 보내지도 않고!”“쓰레기야! 바람둥이 쓰레기!”“다시는 이런 쓰레기 같은 놈한테 기회를 주지 않을 거야!”“계속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원가령은 얇은 입술을 깨물며 억울한 듯 울부짖었다.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언제라도 옥상에서 떨어질 듯 소리를 지르는 원가령의 모습에 경비원들은 모두 긴장해서 온몸이 얼어버렸다.정말로 여자가 뛰어내린다면 책임져야 할 사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순간 한 경비원이 소리쳤다.“안 돼!”“원가령, 뛰어내리면 안 돼. 이렇게 젊은데 뛰어내리면 어떻게 해?”하현은 앞을 밀치고 나와 얼른 입을 열었다.“잊은 거 아니지? 난 당신 남자친구일 뿐만 아니라 약혼자이기도 하잖아!”“당신 어떻게 내 앞에서 다른 남자 때문에 뛰어내릴 생각을 하는 거야?”“뭐?!”하현의 말을 듣고 경비원들은 어안이 벙벙한 채 의아한 눈빛으로 원가령을 쳐다보았다.사람들은 원래 원가령이 사랑을 위해서는 뭐든지 할 수 있는 청순가련한 여자로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한 남자가 뛰어나와 자신을 남자친구, 약혼자라고 주장하며 다른 남자 때문에 생을 마감하려는 그녀를 말리고 있는 것이다.이게...원래 세상에 아무런 미련도 없던 원가령은 비틀거리며 술을 마시다 뛰어내리려고 했다.그러나 그녀는 갑자기 뛰어든 하현의 성난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하현, 우리가 친한 사이긴 그렇다고 사람들 앞에서 날 이렇게 모욕할 순 없어!”“어서 빨리 설명해! 우리 사이는 결백하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사이라구!”하현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원가령, 어디서 그 말을 했는지 잊었어? 경찰서야. CCTV에 다 찍혀 있다구!”“당신이 내 여자친구인지, 내 약혼녀인지 난 언제든 증명해 보일 수 있어! CCTV를 돌려보기만 하면 되는 일이야!”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앗!”“안 돼!”빌딩 경비원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그들은 마치 꽃잎이 휘날리듯 꽃다운 아가씨의 몸이 눈앞에서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았다.“솩!”바로 그 순간 하현의 몸이 순식간에 움직였다!그의 발끝이 땅바닥에서 맹렬하게 튀어나왔다.마치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그의 몸집이 불쑥 떠오른 것이다.번개처럼 순식간에 공간 이동을 한 것처럼 빠른 속도였다.마치 영화에서 특수효과를 입힌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당황한 원가령이 눈을 감고 죽기를 기다리던 순간 힘찬 손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이 모든 것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고 경비원들은 이 모습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너무나 충격적이어서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생사를 한 번 넘나든 원가령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겨우 정신을 차렸다.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고마워!”원가령은 하현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정말로 죽었을 거라는 걸 모를 만큼 멍청하지는 않았다.하현은 원가령을 안아올리며 말했다.“방금 한 말은 신경 쓰지 마. 당신을 구하기 위해 한 말일 뿐이니까.”원가령은 고개를 끄덕였고 몸을 바들바들 떨며 하현의 몸에 기대었다.하현은 아무 생각하지 않고 그녀를 안고 얼른 옥상을 내려왔다.나중에 그녀가 이 일을 마음속에 두고 떨치지 못한 채 또 옥상에서 뛰어내린다고 할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이때 경찰서 사람들도 도착했다.원가령이 무사한 것을 보고 경찰서 팀장들도 가슴을 쓸어내렸다.어쨌든 이곳은 그들의 관할 구역이었다.원가령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들에게도 매우 번거로운 상황이 닥칠 것임이 분명했다.하지만 어쨌거나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으니 기록을 하긴 해야 했다.사람 좋은 하현은 끝까지 원가령과 함께 경찰서에 나설 참이었다.“소 비서, 이 가게 임대해. 돈이 부족하면 전화해, 알았지?”하현이 경찰차에 올라타면서 소미담에게 당부했다.소미담은
하현은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다른 변고를 피하기 위해 시장 가격에 따라 가게를 매입하려고 했었다.하지만 원가령은 그녀의 것이 곧 하현의 것이라며 자신을 구해 준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고 한사코 고집을 부렸다.게다가 양유훤은 그녀의 절친이었고 양 씨 가문 일이니만큼 그녀는 더더욱 인정과 도리로 이렇게 하고 싶었다.그제야 하현은 원가령의 전 남자친구가 양호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세상이 정말 좁다고 감탄하면서 하현은 원가령을 그냥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곧 가게 인테리어는 기본적인 윤곽이 잡혔고 생산만 잘 따라온다면 바로 오픈할 수 있게 되었다.그런데 갑자기 눈이 번쩍 뜨이게 하는 광경이 보였다.길 건너편에 양씨백약이 있었던 것이다.보아하니 뭔가 기념일 행사를 준비하는 듯 보였다.만약 양가백약의 인테리어 속도가 지금처럼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양씨백약 기념일과 얼추 비슷한 시기에 오픈할 것 같았다.양가백약 간판이 올라가자 그 소식은 양 씨 가문 노부인에게 전해져 그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개자식! 미친놈!”양 씨 가문 대청에서 상석 의자에 앉아 있던 노부인은 상황을 전해 듣고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땅에 세게 내리치며 이를 갈았다.“개자식! 그 천한 것이 지금 어떤 상황이라고?”“감히 양가백약을 내걸어?”“우리랑 지금 해 보겠다는 거야, 뭐야?”“그것도 모자라 우리 가게 맞은편에?”“지금 우리 뺨을 후려치겠다는 거야?”“간이 배 밖에 나온 거야?”양유훤이 이전에 자신과 부딪힌 것을 떠올리자 노부인은 지금이라도 당장 그녀의 뺨을 후려치고 싶었다.그녀는 양유훤과 하현이 어떻게 경찰서에서 풀려나게 되었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할머니, 양유훤과 큰집은 줄곧 나쁜 마음을 품었던 거예요!”“제대로 손에 쥔 것도 없이 우리 양 씨 가문에서 내쫓기자 공개적으로 비난하기 시작했어요!”“아주 마음이 사악하기 그지없어요!”“할머니가 배은망
”얼마 전 하현이 경찰서에서 풀려나온 것도 그녀와 관계가 있다고 들었어요.”“그녀는 나한테 복수하기 위해 그랬을 거예요.”양호남은 이렇게 말하면서 핸드폰을 열어 사진을 몇 장 보여주었다.그는 원가령과 찍은 사진을 가리키며 이 모든 일이 자신을 화나게 하기 위한 원가령의 복수임을 증명했다.“그렇게 된 거였군.”그제야 노부인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호남아, 할머니가 이런 말을 하려던 건 아니었지만 잘 들어.”“원 씨 가문의 그 여자는 사생아이지만 어쨌든 원 씨 가문 핏줄이야!”“그녀가 일단 하현 옆에 선다면 양유훤 그 불효막심한 것을 도와 우리를 상대하게 될 거야. 그러면 우리로서는 아주 귀찮게 돼.”“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지.”“원 씨 피를 가진 그 여자가 한사코 그들 편에 서려고 한다면 양가백약은 분명 시판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곤경에 처하게 돼!”“그러니 이 모든 걸 막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애초에 될성부른 떡잎의 싹을 싹 잘라버리는 거야!”노부인의 얼굴에 서늘한 기운이 가득 들어찼다.노부인의 말에 양호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할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노부인은 양호남을 희미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호남아, 할머니는 그 사생아가 너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지만 우리 양 씨 가문의 천추의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억울한 일도 하는 수밖에 없어!”“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원 씨 가문 사생아를 빼앗아 오너라!”“네가 그 여자를 빼앗아 양유훤 그 계집애의 모든 계획을 수포로 만들 수만 있다면 넌 우리 양 씨 가문의 당당한 후계자가 되는 거야. 어때? 문제없겠지?!”“우리가 양유훤 그 연놈을 죽인 후에 독살을 하거나 아니면 교통사고로 위장해서 네 약혼녀인 원 씨 가문 사생아를 처리한다면 다 끝나는 거잖아! 얼마나 쉬운 일이냐?!”“그렇게 되면 네가 황실의 공주와 결혼하다고 하더라도 이 할미는 모든 것을 다 내팽개치고 네 편이 될 거야. 어떠냐?”노
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만약 내가 간민효랑 그냥 평범한 친구 사이라고 한다면 당신 믿겠어?”설은아의 두 눈에 찬서리가 내려앉았다.“그럼 내가 김탁우랑 그냥 친구 사이일 뿐이라고 한다면 당신 믿겠어?”“그거랑 이거랑은 달라.”설은아의 말을 듣자마자 하현이 되받아쳤다.“뭐가 달라?”설은아도 지지 않고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긴장감을 올렸다.“김탁우가 이 사진을 주었을 때 우리 부부간의 감정을 해칠 수 있다며 약간 망설였었어.”“하지만 지금 보니 이 사진들이 아니었어도 우리 두 사람 사이에는 더 이상 훼손될 감정도 없는 것 같아!”“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해 둘 게 있어!”“내 차는 정비한다고 당신 비서 이시운이 가져갔어.”“그래서 일이 끝난 후 김탁우가 마침 가는 길에 날 데려다준 것뿐이야!”“나와 그 사람은 결백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다고! 누구와는 정말 다르지!”하현은 설은아의 말에 다소 화가 치밀어 올라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난 당신을 믿어. 하지만 김탁우는 믿지 않아. 그는 좋은 사람이 아니야. 설마 당신이 그것을 눈치 못 챌 리가 없을 텐데?”“하현, 함부로 말하지 마! 김탁우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해!”설은아는 얼굴 가득 노기를 띠며 말했다.“내가 이 사진들을 당신 앞에 내놓은 것은 적어도 당신이 조금이라도 반성하길 바래서였어!”“앞으로 이 들개 같은 여자랑 엮이지 말라고 말이야!”“하지만 당신은 결국 나의 호의는 전혀 헤아리지도 못하고 이런 무의미한 질투까지 하고 있어!”“만약 당신이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우리의 재혼에 대해 엄마한테 잘 말할 수 있는지 그런 거나 궁리해야 하는 거 아니야?!”하현은 냉정을 유지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들이 조건을 내걸었잖아?”“당신을 대구 정 씨 가문 수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그래서 나도 그쪽으로 노력하고 있어...”“뭐?”하
나천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목소리를 낮추어 조심스럽게 말했다.“하현, 주광록은 여섯 은둔가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주 씨 가문 출신이야.”“은둔가 주 씨 가문은 예전에 금정이 수도였던 시절의 왕가였어.”“그래서 금정 은둔가 중에서 주 씨 가문의 권세가 가장 강해.”“주 씨 가문 사람들은 사업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대개가 다 관청이나 관청 산하에 있지.”하현은 생각에 잠긴 듯 살짝 눈썹을 오므렸다.그는 요즘 보이지 않는 세력이 은둔가들을 공격하는 듯한 낌새를 눈치채고 그것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그러나 은둔가 가문들이 자신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아직까지 발견된 것은 없었다.짚이는 데가 있긴 하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나천우 부부와 헤어진 뒤 하현은 다시 집복당으로 돌아가 인테리어 공사하는 것을 둘러보고 몇 가지 풍수적인 사항을 짚어본 뒤 그곳을 떠났다.설 씨 집안으로 돌아온 그는 방에 들어와 창문을 열었다.바로 그때 마세라티 한 대가 집 앞에 멈춰 서는 것이 보였다.차창 아래로 얼굴을 내민 사람은 김탁우였다.곧이어 조수석에서 내리는 설은아의 모습이 보였고 김탁우는 신사다운 점잖은 모습으로 그녀에게 뭐라고 말을 건넸다.이를 본 순간 하현은 눈빛이 차갑게 식었지만 뭐라고 말은 하지 않았다.지금 무슨 말을 해도 설은아는 전혀 들으려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곧 문 앞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방문이 열리자마자 방금 돌아온 설은아가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하현이 창가에 서 있는 것을 본 그녀는 살짝 당황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당신, 방금 다 봤어?”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은아를 쳐다보았다.“그가 당신한테 접근한 것은 분명 다른 의도가 있을 거야.”“다음부턴 만나지 마.”하현이 자신을 힐난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하자 설은아는 갑자기 화가 났다.그녀는 냉랭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며 말했다.“하현, 지금 상당히 선을 넘은 것 같은데!”“잊지
”오늘은 나천우 부부의 체면을 봐서라도 당신과 더 이상의 실랑이는 하지 않을 겁니다!”“하지만 다음엔 절대 이렇게 끝나지 않을 거예요! 그때 가서 후회하는 일 없길 바랍니다!”“나천우, 제수 씨. 나 먼저 갈게요!”“다음에 또 얘기해!”말을 마친 후 주광록은 차 열쇠를 들고 불쾌한 낯빛으로 그 자리를 떠났다.나이도 젊은 사람이 저렇게 건방지게 굴다니!사기꾼 주제에 감히 날 속이려 해?흥!어림도 없지!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뭐? 죽음의 기운?어이가 없어서 원!하현에 대한 분노로 속이 부글부글거리던 주광록은 이참에 하현의 집복당에 대해서 절차상 문제가 없었는지 샅샅이 살펴보기로 마음먹었다.불법적인 부분이 발견되는 즉시 그의 집복당을 당장 문 닫게 만들 작정이었다.앞으로 하현이 자신 앞에 어떤 얼굴로 찾아올지 두고 볼 참이다.“주 부장님!”“형님!”나천우는 양측 사이가 틀어지는 것을 보고 얼른 일어섰다.“형님! 가지 마세요!”“하 대사는 형님을 속이지 않습니다.”“믿어도 된다고요!”“나천우, 나 씨 가문 사람이 되어가지고 어떻게 그렇게 머리가 나빠? 풍수지리술 따위를 믿다니!”주광록은 언짢은 듯 한껏 무시하는 눈빛으로 말했다.“내가 진심으로 충고할게. 이 사기꾼과는 더 이상 왕래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된통 속아서 있는 돈 다 뺏기게 될 거라고!”“사업가로서 이런 근거도 없는 허무맹랑한 말에 의존하지 말고 사업 구상이나 잘 해!”주광록은 분명 나천우 부부까지 원망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말을 마치자마자 주광록은 얼른 뒤돌아서서 그 자리를 떠났다.하현은 한숨을 내쉬었고 각자의 운명이 있음을 느끼며 더 이상 주광록의 일에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하지만 나천우와 임단의 걱정스러운 표정을 보고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쉬며 그들 부부를 따라 쫓아나왔다.하현은 주광록이 검은색 아우디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온통 죽음의 기운이 감돌던 아우디 차체는
하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맞습니다. 바로 이 차 열쇠입니다. 당신 차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괜찮으시다면 차를 좀 보여주시겠습니까?”하현의 말을 듣고 주광록은 피식하고 웃었다.하지만 고위직에 있는 그는 이런 이유로 함부로 욕설을 퍼부을 수는 없었다.단지 그는 한숨을 내쉬며 나천우를 쳐다보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나 사장, 당신이 소개한 이 친구가 농담을 꽤나 잘 하는군.”“오늘은 처음 만난 자리라 농담하는 걸로 알고 더 이상 따지지 않겠어.”“하지만 다음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야.”나천우가 또 이런 사람을 소개한다면 그때는 정말 가만두지 않겠다는 엄포의 말이었다.나천우는 흔들림 없는 하현의 근엄한 표정을 보며 잠시 망설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주 부장님, 하 대사는 농담을 늘어놓는 사람이 아닙니다!”“조심스럽게 충고를 드리자면 그의 말을 귀담아들으시는 게 좋을 거예요.”만약 금정 지맥도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나천우 부부도 하현이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하현이 이렇게 진지하게 말하는 것을 보니 나천우 부부는 오히려 하현의 말에 더 믿음이 확고해졌다.임단은 하현에게 빠르게 메시지를 보냈다.주된 내용은 그들에게 있어 주광록은 인성 좋은 형님이니 어떻게 해서든 그를 좀 도와달라는 것이었다.주광록이 꽤나 청렴한 관리임을 눈치챈 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광록을 쳐다보았다.“주 부장님, 제 말이 거슬렸다면 너그러이 이해해 주십시오. 하지만 들어봐 주시길 권합니다.”“혹시 최근에 이 차를 가지고 묘지를 가 본 적 있거나 어떤 불길한 물건을 본 적 있으세요?”“아니요!”주광록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이 차는 최근에 새로 산 차예요. 최근에는 몰고 다닌 적도 없어요.”“난 묘지에 가 본 적도 없고, 불길한 물건을 본 적도 없어요.”“말하자면 이 차는 오늘 처음 운전한 겁니다!”“평소에 차 열쇠를
나천우는 주광록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장난스럽게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형님, 사양하지 마세요.”“하현, 이 형님 좀 봐줘!”“이 형님이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라 그래!”주광록은 어쩔 수 없이 나천우의 체면을 생각해 몸을 곧게 펴며 말했다.“알았어. 자, 그럼 하 대사 좀 봐 보세요!”방금 두 사람이 악수를 했을 때 하현은 주광록의 몸에 죽음의 기운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죽음의 기운이 무엇을 뜻하는가?간단히 말해서 사람의 운이 극도로 떨어졌다는 것이다.겉으로 보기에 그의 몸은 여전히 건강한 듯했지만 사람 전체에 생기가 뚝 떨어진 것이다.죽음의 기운은 보통 임종을 앞둔 노인에게만 나타난다.하지만 오래 살지 못할 운명의 사람들에게도 나타날 수 있다.염라대왕이 데려가겠다고 마음먹으면 누가 거역할 수 있겠는가?바로 이런 불길한 기운이 죽음의 기운인 것이다.하현이 자세히 주광록의 얼굴을 보니 역시나 온몸이 죽음의 기운으로 뒤덮여 있었다.만약 그가 관직에 몸담고 있지 않았더라면 아마 이미 열흘이나 보름 전에 죽었을 것이다.관운이 그를 그나마 비호해 주었기 때문이다.다만 관운이 그를 지켜주었다고 하더라도 일단 죽음의 기운이 퍼지면 결국 주광록은 목숨을 잃을 것이다.한참을 주광록에게 시선을 깊숙이 고정했던 하현은 그의 손에 차량 열쇠가 들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아마도 아우디 A8인 것 같았다.하현의 눈에는 바로 이 열쇠가 불길한 기운의 집합체로 보였다.지금 이 순간도 죽음의 기운이 계속 퍼져 주광록의 몸을 갉아먹고 있었다.하현은 잠시 눈초리를 가늘게 뽑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주 부장님, 숨김없이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제가 보기엔 부장님은 지금 죽어가고 있습니다.”“아마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을 듯합니다.”“게다가 이 불길한 기운은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겁니다. 최근 주변 사람들에게 잦은 사고가 발생했거나 심각한 병이 덮쳤을 겁니다.”“
나천우의 말을 들은 주광록은 다 이해한다는 듯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어르신도 참 강경한 스타일이시지.”“예전에는 나한테도 방법을 좀 생각해 봐 달라고 하셨었지. 아는 명의들 좀 소개해 달라고.”“하지만 아쉽게도 내가 아는 사람들은 다 당신이 아는 사람들이었어.”분명 주광록은 은둔가 나 씨 가문과 사이가 좋은 것 같았다.그렇지 않았더라면 나천우의 아버지가 그에게 그런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임단은 주광록에게 손수 차를 한 잔 따라주며 말했다.“많이 애써 주신 거 다 알아요.”주광록은 자리에 앉은 뒤 나천우 부부를 조심스럽게 쳐다보며 싱긋 웃었다.“그런데 두 분이 이렇게 느긋하게 차도 마시러 나올 기분이 되었다니, 아마 문제가 해결된 모양이지?”“하하하! 확실히 해결되긴 했죠!””안 그랬으면 주 부장님의 혜안이 밝았다고 할 수 없죠, 안 그래요?”“그리고 이 모든 게 다 하 대사 덕분입니다.”“주 부장님, 제가 소개해 드리죠.”“이분은 저와 형제나 다름없고 저의 귀인이자 뛰어난 풍수지리사, 하현입니다!”“또한 우리 부부의 오랜 골치거리였던 아픈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나천우는 하현을 향해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하현, 이분은 금정 관청 주택건설부 부장님이신 주광록, 내 형님이나 마찬가지야.”“앞으로 금정개발에 무슨 어려움이 있거나 누군가 집복당을 괴롭히는 일이 있다면.”“언제든지 주 부장님한테 전화해. 그러면 그가 모든 걸 책임지고 해결해 줄 거야! 장담해!”하현은 나천우가 자신을 위해 금정의 인맥을 소개해 준 것임을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다지 탐탁지는 않았지만 오른손을 내밀며 미소를 지었다.“주 부장님, 안녕하세요.”주광록도 하현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정중하게 말했다.두 사람의 손바닥이 닿은 순간 하현의 안색이 살짝 일그러졌다.그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뜨고 주광록을 바라보았다.죽음의 기운?한창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주광록의 몸에서 죽음의
하현의 말에 임단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원래 이 일을 몰래 진행하려고 했었다.그런데 하현의 조언을 듣고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몰래 땅을 취하려고 하면 상대는 이 땅에 뭔가 좋은 점이 있다고 생각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해 훼방을 놓으려 할지도 모른다.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금정개발이 이여웅과 경쟁하기 위해 완전히 악수를 두는 어리석은 짓을 했다고 손가락질하며 정신 나갔다고 생각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최소한의 대가로 이 쓰레기 매립장을 차지할 수 있다.가장 중요한 것은 이렇게 하면 사람들의 충분한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것이다.금정 화원 유적지를 찾는 순간 이 프로젝트는 홍보도 없이 단숨에 유명해질 수 있다.임단의 눈에 감격에 겨운 빛이 가득 흘러넘쳤다.그녀는 하현이 크게 화를 낼 줄 알았다.그런데 그는 진작부터 그녀를 도울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임단으로서는 정말로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양측 사이에 일어난 약간의 오해가 풀렸을 즈음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웅웅웅!”식사가 반쯤 이루어졌을 때 나천우의 핸드폰이 갑자기 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그는 잠시 핸드폰을 들고 전화를 받은 뒤 빠르게 자신의 위치를 알렸다.“하현, 잠시 후에 아주 중요한 인물이 올 거야.”“당신이 이래저래 사람을 만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하지만 이 사람은 알고 있으면 당신의 풍수관에도 큰 도움이 될 거야!”“만약 그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면 앞으로 당신은 금정에서 훨씬 운신의 폭이 커질 거야.”하현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나천우를 힐끔 쳐다보았다.은둔가의 나 씨 가문 나천우가 이렇게 진지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상당한 신분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누군데?”나천우는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조금 있으면 알게 될 거야.”약 30분이 지나자 노크 소리가 들렸고 임단이 다가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나천우, 아, 제수씨도 계셨네요? 이제 두 분의 사업이 크게
”무덤에 가서 단련을 해요?”노인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대사님, 저는 일찍 일어나서 산책을 하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기껏해야 옆에 있는 공원에 가는 거예요. 무덤에 가지 않습니다!”“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가장 꺼리는 거예요!”노인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무덤에 가 본 적이 없는 그가 왜?하현은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그럼 길에서 현금을 주운 적이 있습니까? 그 안에 조심스럽게 접힌 종이가 있어서 혹시 그 종이를 들고 장수를 빌어 달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까?”노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하현은 노인을 자세히 응시했지만 음기는 이미 사라졌기 때문에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어딘가에서 음기에 접했을 수도 있습니다.”“그러니 돌아가셔서 계속 조심하세요. 어르신의 체질로 봤을 때 해가 뜨기 전에는 외출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하현의 말을 들은 노인 부부는 삼만 원을 남기고 떠났다.하현은 의아한 듯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가 아직 남아 있는 손님들의 문제를 해결했다.다행히 이 손님들은 기본적인 택일에 관한 문제를 가지고 왔기 때문에 시간을 많이 잡아먹지도 않았다.거의 정오가 다 되었을 무렵 하현은 나박하에게 전화를 걸어 금정 남쪽 편에 있는 금공관으로 갔다.두 사람이 예약한 방에 막 도착하자마자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던 나천우와 임단이 일어섰다.임단은 직접 하현에게 차를 따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어제 당신이 금정개발을 위해 방법을 강구해 주었는데 내가 별로 반응을 보여주지 못했어!”“게다가 당신이 써 준 종이에 물까지 묻혀 망가뜨리다니!”“다 내 잘못이야.”나천우도 미안한 얼굴로 말을 덧붙였다.“당신이 한 말이 자꾸 떠올랐어. 젊은 나이에 풍수지리술을 이해한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해.”“금정의 지맥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지금까지 금정의 그 수많은 대사들은 좋은 물건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결국 당신이 발견했어!”“당신한테 정말
”다만...”화성봉은 종이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이 지맥도에서 가장 중요한 곳에 물이 묻어 잘 보이지 않습니다...”“이곳은 공중 정원의 유적지가 있었던 곳입니다.”“그런데 이곳의 좌표가 없으면 우리는 그 지점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금정 화원의 진위 여부를 세상에 증명할 방법이 없습니다...”안타까워하는 화성봉의 말을 듣고 현장에 있던 임원들의 시선이 갑자기 임단에게 쏠렸다.은연중에 그들의 얼굴에는 불만의 기색이 슬몃슬몃 떠올랐다.“우선, 내가 전화해서 하현에게 물어보겠습니다...”임단은 곤혹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다음 날 아침.일찍부터 집복당에서 인테리어를 지켜보던 하현은 나천우와 임단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그들은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며 점심을 함께 하자고 하현에게 청했다.하현은 금정개발에 관련한 일임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리고 거절하지 않았다.서둘러 황보정에게 자신의 일들을 맡긴 뒤 그는 떠날 채비를 했다.그러나 하현이 문을 나서기도 전에 장용호가 당황한 얼굴로 걸어 들어왔다.“대사님, 큰일 났습니다. 누가 쓰러졌어요.”“우리 집복당 앞에서 사람이 쓰러졌어요.”“그는 최근 며칠 동안 밤마다 유령을 보고 잠을 이루지 못해서 견디다 못해 이곳으로 왔다고 했어요.”“줄을 서라고 했더니 결국 기절해서 입에 거품까지 물었어요...”장용호는 은근히 다행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가 손을 쓰는 도중에 쓰러지기라도 했다면 자신에게 오명이 씌였을 터였기 때문이다.하현은 그의 말을 듣자마자 서둘러 로비로 다시 들어갔다.로비에는 예닐곱 명의 손님들이 회색 가운을 입은 노인을 둘러싸고 있었다.노인은 완전히 기절한 채 가끔 경련을 일으키며 입가에 흰 거품을 물고 있었다.그의 옆에는 아내로 보이는 사람이 통곡을 하고 있었다.“안 죽는다고 버티더니 결국 이렇게 되었잖아요?”“진작에 집복당에 가자고 했건만 괜찮다고 그렇게 버티더니 이게 뭐예요? 시간만 끌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