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훤아, 네가 자유롭게 연애하며 진정한 사랑을 추구한다는 거 나도 잘 알고 있어!”“하지만 넌 우리 가문의 후예로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동시에 가문의 흥망성쇠에도 책임을 져야 해!”“난 네가 이전에 한 일은 아무것도 따지지 않겠어!”“그리고 네가 출가하더라도 양 씨 가문 큰집의 수장 자리는 여전히 너의 것이라는 걸 약속할 수 있어!”노부인은 매우 도량이 큰 사람처럼 말했다.“여수혁한테 시집만 간다면 집안에 큰일을 하나 이루는 것과 동시에 우리 가문에는 막강한 인척이 하나 더 생기는 거야!”“저런 소인배가 널 따라다니는데 설마 정말로 널 사랑하는 거라고 생각하니?”“그저 우리 가문의 권세가 탐이 났을 뿐일 거야.”“가문의 어른으로서 내가 저 소인배에게 십억을 주마. 그 돈을 가지고 대하로 돌아가라고 해!”“그리고 이 일은 이것으로 정리하자꾸나!”“이견은 없겠지?!”양유훤의 안색이 싹 변했다.양호남은 냉소를 흘리며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양유훤, 들었어?”“노부인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시잖아! 옛날 일은 물론이고 이런 남자를 데려온 것도 묻지 않으시겠다잖아!”“게다가 돈까지 줘서 이 남자를 내보내겠다고 하시고!”“넌 할머니가 이렇게 관대하게 해 주시는 것에 감사해야 해.”“얼른 대답해. 버스 떠나고 손 흔들어 봐야 아무 소용없어!”“할머니가 너한테 이렇게까지 해 주시다니 우린 네가 너무 부러울 지경이야!”양신이가 음흉하게 웃으며 말을 보태었다.“맞아. 여수혁은 성격이 좀 비뚤어지고 여자를 난폭하게 다루는 면이 있지만.”“너한테만은 진심이잖아.”“네가 어떻게 그런 진실한 사랑을 거절할 수 있겠어?”“가족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승낙해야지!”양유훤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할머니, 어떻게 이랬다저랬다 할 수가 있어요?”“분명히 하현이 전화를 걸어 이 일을 해결했잖아요!”“그런데 아무 증거도 없이 이 일이 여수혁의 공이라고 치켜세우다니! 그러시면 안 돼요!”
양유훤은 무의식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수많은 양 씨 가문 사람들이 냉소를 연발하며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양호남은 더욱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양유훤, 볼 것도 없어. 아무도 저 쓸모없는 놈을 믿지 않아...”양신이도 냉소를 흘리며 거들었다.“너만 저런 사악한 사람이 능력이 있다고 믿고 있어. 순진하긴!”염소 수염을 기른 집안의 어른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보탰다.“양유훤, 정신 차려. 아무리 낮이라지만 이렇게 허무맹랑한 꿈은 꾸지 않아.”하현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아니, 양유훤의 편에 서는 사람조차 없었다.양유훤은 지금까지 자신이 집안을 위해 선의로 한 일이 모두 헛수고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그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비틀거리며 몇 걸음 뒷걸음질쳤다.하현은 얼른 그녀에게 다가가 부축하며 나지막이 말했다.“괜찮아?”“어, 괜찮아.”양유훤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추스른 뒤 노부인을 바라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할머니, 정말로 이 친손녀의 말을 조금도 믿지 않는 거예요?”양유훤은 양 씨 가문 사람들에게 아직도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는 듯했다.“내가 방금 그렇게 설명했는데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어?”노부인이 코웃음을 치면서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화를 내었다.“이 일을 누가 해결했는지 그게 그렇게 중요하니?”“어차피 누가 했든 저놈은 아닐 거야! 분명해!”“난 이미 너한테 할 수 있는 만큼 다 했어. 퇴로를 마련해 주기까지 했어!”“여수혁과 결혼하겠다고만 약속한다면 저놈에게는 십억을 주고 너는 계속 큰집의 수장이 되는 거야!”“예전에 쌓아 두었던 원한은 깨끗이 청산해!”말을 마치며 노부인은 누군가에게 손짓을 했다.“어서 빨리 혼인계약서에 서명해!”“들었어? 못 들었어? 할머니가 자비를 베풀어 너희 연놈들에게 기회를 주는 거라구!”앙호남이 거들고 나섰다.“혼인계약서에 서명하고 어서 여수혁에게 시집가! 그러면 저
주위에 있던 양 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한목소리로 말했다.만약 양유훤이 여수혁에게 시집간다면 위기에 처한 양 씨 가문으로서는 무수한 이점이 있다는 것을 그들은 분명히 알고 있는 듯했다.이런 마당에 양유훤의 개인적인 감정이 그들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페낭 무맹과 혼인해서 인척이 된다면 확실한 연줄이 생긴다는 뜻이다.그러면 양 씨 가문에는 크나큰 이득이 있을 거라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강력한 지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앞으로 평생을 편안히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게 된다!따라서 지금 이 순간 양유훤의 개인적인 감정은 전혀 의미가 없다.양유훤이 어떻게 될지는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 전혀 아니었다.사람들은 모두 각자 자신의 이익과 이득만을 생각하며 양유훤이 어서 빨리 단념하고 여수혁의 처소로 달려가기를 간절히 바랐다.마치 양유훤이 공공의 적이 되어 버린 듯한 분위기를 틈타 양호남은 간사한 미소를 흘리며 큰소리로 말했다.“양유훤, 당신은 이 사태가 된 것에 대해서 제대로 해명하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 여수혁한테 시집가야 해. 당신을 낳고 길러 준 가문에 그 정도는 해야지. 더 무슨 할 말이 있어?”양 씨 가문 사람들은 하나같이 험악한 표정으로 양유훤을 노려보았다.수년 동안 가문을 떠나 있던 양유훤은 마치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사람들 등쌀에 떠밀려 억지로 집을 떠나야만 했던 그때.순간 양유훤은 쓴웃음을 지었다.양 씨 가문은 조금도 변한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여전히 사람을 잡아먹을 듯 못살게 굴었다.이런 가문에 무슨 희망이 남았다고 미련을 두었던가!다 부질없는 생각이었다.“뭐 하는 거야? 어서 혼인계약서에 서명하지 않고?”양유훤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한 것을 보고 노부인은 자신의 계략이 곧 성공할 것이라고 여겼다.그녀는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는 심정으로 마지막 수를 두었다.“내가 방금 집사더러 경찰서 팀장을
그들은 그럴 자격이 없다!하현의 말을 들은 양 씨 가문 사람들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갑자기 폭소를 터뜨렸다.양 씨 가문 사람들은 비아냥거리는 얼굴로 하현을 쳐다보았다.얼뜨기 같은 남자가 이런 말을 하다니, 정말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했다.양 씨 가문 사람들은 수백 명이었고 양유훤 쪽에는 단 한 사람뿐이었다.한 사람이 감히 몇 백 명을 상대로 자격이 없다고 말하다니!이 무슨 헛소리인가?사람들은 하현의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닐까 의심했다.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무식한 말을 내뱉지는 않았을 것이다.양 씨 가문 사람들은 사나운 눈초리로 하현을 흘겨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들은 많이 봤지만 이렇게 잘난 척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는 눈빛이었다.지금 그들의 눈에 비치는 하현은 어릿광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양유훤은 살짝 어리둥절해하며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그제야 하현은 빙긋 웃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양유훤, 한 가문이 굳건하게 존재할 수 있기 위해서는 사람 수가 많고 적은 게 중요한 게 아니야. 가문의 강인함에 달려 있는 거지.”“어차피 이 사람들은 양 씨 가문 자격이 없으니 내가 당신을 남양에서, 페낭에서 유일한 양 씨 가문 사람으로 만들어 줄게!”“한 달 안에 당신은 남양에서 유일한 양 씨 가문 사람이 될 거야!”양유훤은 화들짝 놀라며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었다.“내 생각엔 아마 양제명 어르신도 이걸 원하실 거야.”하현은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말을 내뱉었다.양유훤은 하현의 마지막 말을 듣고 어금니를 살짝 깨물며 나지막이 말했다.“그래, 내가 남양의 유일한 양 씨 가문 사람이 되겠어!”이때 경찰서 형사팀장이 나타났다.양 씨 가문 집사가 그에게 다가가 몇 마디 수군거렸고 곧이어 키가 큰 형사팀장은 허리에 차고 있던 무기를 뽑아 들고 한심하다는 듯 눈을 내리깔고 하현에게 다가왔다.하현과 양유훤
하현은 여형사를 무시하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노부인을 바라보았다.“노부인, 두고 보시죠.”“원래 양 씨 가문의 일은 나와 무관했습니다.”“그런데 당신들은 내 친구를 강제로 시집보내려고 했고 날 도와준 양제명 어르신을 독살하려 했죠. 그리고 날 경찰서로 잡아넣으려고 하고 있어요....”“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기억하고 있겠습니다.”하현은 또박또박 상대의 뇌리에 박히듯이 말했다.“경찰서에서 나오면 이 모든 것을 열 배, 백 배로 갚아드리지요.”“양 씨 가문의 명예를 단번에 실추시켜 드리죠. 그리고 당신 손으로 직접 양호남의 다리를 부러뜨리며 내 앞에 사죄하도록 만들 겁니다!”하현은 양호남 같은 쓰레기를 자기 손으로 직접 손쓸 마음이 없었다.양 씨 집안 같은 가문은 단번에 칼로 찌르고 복수하는 것보다 서서히 말려 죽이는 편이 훨씬 더 효과가 크다.“할머니가 내 다리를 부러뜨린다고? 대하놈이! 당신 지금 무슨 헛꿈을 꾸고 있는 거야?”양호남은 코웃음을 쳤다.“경찰서에서 어떻게 나올지나 잘 궁리해.”“경찰서에 가서 감옥에 가게 되면 우리 양 씨 가문의 미움을 사는 게 어떤 건지 잘 알게 될 거야.”노부인은 냉랭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 지팡이 위에 손을 얹고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양유훤, 하현. 너희들은 곧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게 될 거야.”하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더 이상 노부인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이 나머지 일을 처리하겠으니 양유훤은 그만 별채로 돌아가 기다리라고 말했다.양유훤은 침울한 기색을 드러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그녀와 양 씨 가문은 이제 완전히 결별하게 되었음을 실감했다.하지만 지금은 그녀가 양 씨 가문을 상대할 만큼 막강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냉정을 유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지금은 돌아가 자금과 인력을 차출하는 게 우선이었다.그러자 그녀는 하현의 신변이 걱정되기 시작했다.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늘 하현의 곁에 있
눈앞의 대머리 팀장이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보자 하현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이곳에는 법도 정의도 없다는 걸 하현은 마침내 완전히 깨닫게 된 것이다.하지만 상대가 이렇게 나오는 게 오히려 낫다.그래야 나중에 이런 관계를 이용할 때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웃어?! 날 놀리는 거야?”하현이 계속 웃는 모습을 보고 대머리 팀장은 자신이 모욕당했다고 느꼈다.그는 탁자를 세게 치며 소리쳤다.“개자식! 경고하는데 이곳에선 법과 정의가 무엇보다 우선인 곳이야!”“헛소리 또 지껄이다간 당장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거야!”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좋아, 난 당신들의 그 말을 기다렸어.”“양 씨 가문이 먼저 사람을 때렸기 때문에 내가 반격을 했다면 당신들 믿겠어?”동그란 얼굴의 여형사와 대머리 형사는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이내 코웃음을 쳤다.“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점잖은 신사들이야. 배운 사람들이고.”“그런 그들이 당신한테 먼저 손을 댔다고?”하현은 침착하고 입을 열었다.“그들은 양유훤을 여수혁에게 강제로 시집보내기 위해 먼저 사람을 때렸어.”“협박했다는 거야?”동그란 얼굴의 여형사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여수혁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 페낭에서는 아주 유명한 거물이야!”“그런 사람과 결혼한다는 건 이곳 페낭 여자들이 모두 꿈꾸는 일이야!”“그게 양 씨 가문이 양유훤을 협박할 일이야?”“게다가 아무리 협박한다고 해도 이건 양 씨 집안의 일이야. 당신과 무슨 상관이냐고?”이때 동그란 얼굴의 여형사는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자, 어서 빨리 사람을 때린 사실이나 인정해! 당신을 얼른 감옥에 보내야 우리도 퇴근할 거 아니야?!”하현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그렇게 독단적으로 말하지 말지! 스스로 결론을 다 정해 놓고 말하면 안 되지, 안 그래?”여형사는 얼굴이 싸늘해졌다.“나한테 지금 가
원가령은 이전에 이신욱의 괴롭힘에 당해 큰일 날 뻔했었는데 하현이 그녀를 구해 준 이후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비록 그때 이신욱이 먹인 약에 원가령이 완전히 취해 있었지만 하현이 생명의 은인이란 사실은 또렷이 기억한다.그래서 지금 하현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예전과는 조금 달라졌다.막무가내로 그를 무시하던 자세가 아니었다.그러나 원가령의 옆에 서 있는 여인은 금테 안경을 쓰고 나이는 마흔이 훌쩍 넘어 보였지만 세련된 얼굴에 호리호리한 몸매가 눈길을 끌었다.단지 그녀의 매서운 눈빛에선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보통 남자들은 그녀 앞에서 고개도 들지 못할 아우라가 풍겼다.“안녕하세요.”원가령은 두 형사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하현에게 다가갔다.“하현, 당신이 왜 여기에 있어?”“엄마, 이 사람이 하현이야. 날 구해 준 사람. 날 구하기 위해 사람을 때렸던 거야.”원가령은 병원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양유훤과도 연락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양 씨 집안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모르는 상태였다.원가령의 말에 동그란 얼굴의 여형사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원가령의 말을 듣고 하현이 그녀한테 큰 은혜를 베풀었단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게다가 원가령은 원 씨 가문 원천신의 딸이었다.원천신은 비록 원 씨 가문 둘째 딸이지만 사생아로 태어나서 집안에서 완전히 소외되었다.그러나 원 씨 가문은 어쨌든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였다.이런 일개 수사팀장이 미움을 살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하현이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금테 안경을 쓴 여인은 하현을 빤히 쳐다본 후 원가령을 향해 입을 열었다.“가령아, 수사관님들이 사건을 처리하고 있으니 방해하지 마!”그녀가 바로 원 씨 가문 둘째 딸 원천신이었다.그녀 자신이 젊은 시절 몹쓸 남자에게 잘못 시집간 경험이 있기 때문에 딸의 말을 듣자마자 그녀는 경계의 눈빛을 드러내었다.원가령은 그제야 탁자 위에 하현의 손이 묶여 있는 것을 보고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하
남자친구?약혼자?이 두 단어를 듣고 하현은 하마터면 커피를 내뿜을 뻔했다.옆에서 거들먹거리던 두 수사관들도 지금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현을 주시했다.그들은 아무리 둘러보아도 하현에게서 특별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그들 중 누구도 하현이 양 씨 가문의 여인과 원 씨 가문 여인을 휘어잡을 만큼 큰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원천신도 어안이 벙벙하긴 마찬가지였다.잠시 후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타이르듯 말했다.“가령아, 이 사람이 진짜 네 남자친구든 아니면 약혼자든 어쨌든 죄를 지은 사람을 두둔할 순 없어!”원천신은 원 씨 가문에서의 자신의 처지를 잘 아는 것이 분명했다.비록 밖에서는 큰소리치며 군림하지만 조금이라도 분별없이 행동했다가는 순식간에 원 씨 가문의 비난을 한몸에 받을 것이다.원천신은 원 씨 가문 사람들에게 그런 빌미를 주고 싶지 않았다.원가령은 한껏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하현에게 말했다.“하현, 억울하다고 말해! 당신 같이 좋은 사람이 어떻게 아무렇게나 사람을 때릴 수 있겠어?”“당신이 때렸다고 해도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야!”동그란 얼굴의 여형사는 헛기침을 하며 끼어들었다.“우리도 당신 남자친구, 혹은 약혼자가 무죄이길 바랍니다. 하지만 양 씨 가문에 그렇게 많은 목격자들이 있으니 함부로 놓아줄 수가 없어요!”대머리 수사팀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보태었다.“맞아요. 완전히 무죄라는 실질적인 증거가 없는 한 누가 와도 보석으로 풀려날 수는 없어요!”자신의 말에 힘을 실어 넣기 위해서 대머리 남자는 배를 내밀고 더욱더 강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정총화 총경이 와도 소용없어요!”두 수사관이 생각지도 못하게 강경한 입장을 보이자 원가령은 머뭇거리며 하현에게 물었다.“하현, 정말 양 씨 가문 사람을 때렸어?”“그것도 먼저 때린 거야?”원천신은 눈을 내리깔고 하현을 내려다보다 원가령의 손을 잡아채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가령아, 사람
이때 강우금과 진홍민의 시선이 스테이크 칼을 들고 있는 하현에게로 향했다.“어, 하 씨...”순간 두 여자의 눈빛이 갑자기 멍해졌다.진홍헌도 하현을 알아보았다.그는 자신이 가장 창피한 순간에 하현을 만났다는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이렇게 얼굴이 만신창이가 된 순간에 그와 맞닥뜨리다니!자리를 떠나려던 강우금과 진홍민 두 사람은 한편으로는 이여웅의 팔을 잡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현을 가리키며 작은 입을 가리켜 뭐라고 소곤소곤거렸다.이여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을 이끌고 오만불손한 표정으로 다가왔다.진홍헌은 깜짝 놀라 벌벌 떨었다.상대가 자신을 때릴 것이라고 생각해 화들짝 놀라 허둥지둥 자리를 떠났다.그는 속으로는 화가 들끓었지만 자신이 이여웅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이대로 계속 부딪힌다면 결국 자신은 묻힐 곳도 찾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 신세가 될 것이다.“탁!”하현이 스테이크를 계속 썰려고 하던 순간 이여웅이 갑자기 앞에 있는 의자에 발을 올렸고 의자는 그대로 주저앉았다.하현은 몸을 뒤로 빼면서 주저앉는 의자를 피했다.의자는 땅바닥에 부딪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술잔은 어지러이 널브러졌고 식사는 완전히 엉망이 되었다.“개자식!”나박하가 벌떡 일어났지만 하현이 그를 제지했다.하현은 눈을 지그시 뜨고 이여웅을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아이참, 여웅 오빠, 이게 무슨 짓이지?”이여웅은 담배를 움켜쥐고 긴 연기를 내뿜으며 비아냥거리듯 이죽거렸다.“이봐, 당신이 우리 진홍민과 강우금을 화나게 하고 당혹스럽게 만든 사람이지?”친밀감이 느껴지는 호칭으로 대화를 튼 두 사람을 보고 바닥에 쓰러져 있던 진홍헌은 이 상황이 창피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하현은 담담하게 내뱉었다.“괜히 진홍헌을 잡는 척하지 마. 나랑은 전혀 상관없으니까.”“내 머리릴 짓밟고 싶었지만 나한테 나가떨어질 게 겁이 났어?”“우후!”이여웅은 기괴한 웃음소리를 냈다.
”홍민아... 네가... 어떻게...”진홍헌은 자신의 동생도 이여웅에게 찰싹 달라붙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는 화가 나고 어이가 없어서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똑똑해. 아주 똑똑해...”이여웅은 껄껄 웃으며 진홍헌을 쳐다보았다.“진홍헌, 여동생이 외모는 별로지만 아주 똑똑하군.”“내가 당신 총명함을 봐서 함께 데리고 가지!”진홍민은 눈이 번쩍 뜨였다.“여웅 오빠.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영광이에요!”진홍민도 중천그룹이 기울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만약 그녀가 빨리 이여웅 같은 사람을 잡지 않는다면 앞으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없을 것이다.진홍헌은 똥 씹은 얼굴을 했지만 이여웅은 두 여자를 끌어안고 깔깔대며 흡족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가자, 오늘 날 기쁘게 한다면 둘 다 내가 수양딸로 거둘게!”“앞으로 난 의붓아버지로서 매달 일억씩 용돈을 줄게!”“자, 아빠라고 불러!”그러자 진홍민과 강우금은 동시에 입을 모았다.“와! 너무 좋은 아빠다!”진홍민은 이여웅의 강점을 잘 알고 있었다.그리고 강우금도 지금 이 순간 이여웅의 재산이 진홍헌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래서 그녀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여웅의 품에 안긴 것이다.심지어 진홍민은 속으로 조심스레 몇 가지 생각을 떠올리기 시작했다.이여웅을 잘 모신다면 나중에 혹시 그가 가지고 있는 중천그룹 주식이 자신에게 넘어올 수도 있지 않을까 했던 것이다.그러면 자신이 쉽게 중천그룹을 장악할 수 있게 된다.이여웅은 환하게 웃으며 진홍헌을 쳐다보았다.“진홍헌, 당신은 먼저 꺼져!”“오늘 밤 당신 여자친구와 여동생은 돌아가지 않을 거야.”“앞으로 난 당신의 매부이자 동서이자 아버지야...”“하하하하!”말 같지도 않은 이여웅의 말을 들으니 아무리 부잣집 도련님이라도 진홍헌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그는 눈이 벌겋게 달아올라 이를 갈며 말했다.“개자식!”“사람을 이렇게 무시하
”오호! 아주 미녀들이시군!”이여웅의 시선이 강우금에게 쏠려 그녀를 위아래로 바쁘게 훑어보았다.“강우금, 오늘 내가 82년산 마오타이를 가져왔는데 나와 함께 위층에 가서 맛보는 건 어때요?”“참, 미리 말해 두자면 난 다른 사람이 내 체면을 무시하는 걸 제일 싫어해요.”“내 체면을 무시한다는 건 내 얼굴을 사정없이 때리는 거나 마찬가지거든.”말을 하면서 이여웅은 자신의 오른손을 스리슬쩍 강우금의 허벅지 위로 올렸다.“어머, 이거 왜 이래요?!”“나 술 잘 못 마셔요. 기껏해야 두 잔밖에 못 마신다고요...”강우금은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명품 매장에서 퇴출된 후 그녀는 진홍헌의 품에 안겨 그의 여자친구가 되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여자친구로서의 지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그녀는 겉으로는 싫은 척하는 듯했지만 속은 그렇게 싫지만은 않은 듯 한껏 아양 떠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모습에 이여웅은 만족스러운 듯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띠었다.“형님, 이 여자는 내 여자친구입니다...”진홍헌은 이여웅의 오른손을 그녀의 허벅지에서 떼었다.진홍헌은 강우금이 죽고 못살 정도로 좋은 것은 아니지만 다른 남자가 자신의 여자를 빼앗아가는 건 다른 문제였다.게다가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이 사실이 알려지면 진홍헌은 앞으로 금정 바닥에서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형님, 제 체면도 좀 생각해 주세요. 제가 다른 여자들 소개해 드릴게요...”“퍽!”눈앞의 여자에게 한껏 흥미가 끓어올랐던 이여웅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고 조금도 망설임 없이 손을 들어 진홍헌의 얼굴에 내리쳤다.진홍헌은 한방에 온몸을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쳤다.그의 얼굴을 벌겋게 부어올랐고 입가에는 붉은 피가 넘쳐흘렀다.“체면?”“진홍헌이 내 앞에서 무슨 체면이 있어서 세우네 마네 하는 거야?”이여웅은 담배를 깊이 빨아들여 연기를 내뿜고는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다.진홍헌은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형님, 그 여
흥미로워하는 이여웅의 눈빛을 본 순간 진홍헌의 눈꺼풀이 펄쩍 뛰어올랐다.그는 방금 일부러 이여웅이 들어오는 것을 못 본 척했는데 상대가 말을 걸어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금정 부잣집 도련님 망신은 혼자 다 시켜 놓고 어째서 이 형님한테 인사도 안 하는 거야?”“인사하는 법도 못 배웠어?!”“아주 정말 거만하군그래!”말을 하는 동안 이여웅은 자신의 사람들을 데리고 진홍헌 앞에 다가와 손을 뻗어 그의 오른쪽 얼굴을 툭툭 건드렸다.자기 세상인 것처럼 한껏 떠들고 있던 진홍헌은 이여웅이 자신의 얼굴을 툭툭 치는데도 화를 내지 못했다.“아, 형님, 제가 몰라봐서 죄송합니다.”비록 진홍헌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가 이여웅을 상당히 꺼려 한다는 걸 알아차렸다.이여웅과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이 영 마뜩잖은 눈치였다.“오호, 중천그룹 진홍헌이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었어?”“이 이여웅을 못 본 척할 정도로?”“눈이 나쁜 거야? 아니면 대놓고 날 무시하는 거야?”이여웅은 진홍헌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기분 나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제가 어떻게 그런 마음을 품겠어요? 형님, 너그럽게 봐주세요.”평소에 어디서도 당당하던 진홍헌이었지만 지금 이여웅 앞에서는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고 애써 웃음을 쥐어 짜내었다.하현의 얼굴에 더욱 짙은 의혹의 빛이 떠오르자 나박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당신이 모르는 게 있어요. 진화개발은 중천그룹 주식의 50%에서 60%정도를 가지고 있어요. 이는 당시 중천그룹이 진화개발에게 막대한 투자금을 빌렸기 때문이에요.”“그래서 다른 사람 앞에서는 큰소리치는 중천그룹도 진화개발 앞에서는 아무 소리도 못해요.”“듣자 하니 진홍헌이 당신 처제를 마음에 두었다고 하더군요. 아마 대구 정 씨 가문의 보호를 받고 싶어서 그랬을 거예요.”“그렇지 않으면 중천그룹이 진화개발에 합병될 수도 있거든요.”하현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저렇게 처량한 신세가 된 데에는 다 이유
하현이 뭔가 떠오른 듯 갑자기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그날 간민효가 비행기에서 총기를 가진 누군가에게 당했을 때, 그것도 완연결이 한 짓인가?”“맞아요. 얼마 전 간민효가 공격을 받은 것도 아마 대부분 완연결과 관련이 있어요.”“보아하니 해골파가 손을 쓴 것 같던데 배후에는 아마 완연결이 있었을 거예요. 확실해요.”엄도훈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겉으로 보기엔 일련의 사건들이 서로 아무 관련이 없는 독립된 일처럼 보였지만 하나하나 실마리를 풀고 보니 그 사건들이 모두 얽히고설켜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하현은 골똘히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했다.“보아하니 내가 이번에 금정에 온 건 정말 잘한 일인 것 같아.”그가 금정에 오자마자 장생전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니!하현은 자신이 운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장생전이 운이 나쁜 것인지 알 수 없었다.“자, 그 얘긴 이제 그만하지.”하현은 손을 뻗어 엄도훈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이제 어디 갈 거야? 내가 데려다줄게.”엄도훈이 몸을 곧게 펴며 정중하게 말했다.“죄송하지만 형님, 임페리얼 빌딩에 좀 데려다주실 수 있습니까?”30분 후, 차는 임페리얼 빌딩에 도착했다.이곳은 금정의 랜드마크 중 하나였다.아래 4층까지는 대형 쇼핑몰이고 위층은 오피스텔이었다.이곳에 입주한 회사들은 모두 금정의 대기업들이었다.엄도훈은 비록 정신이 몽롱하고 피곤했지만 그래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전용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하현은 따라 들어가지 않고 시계를 슬쩍 본 뒤 나박하를 데리고 아래층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가서 식사를 했다.그러나 두 사람이 앉아서 막 식사를 주문하려고 했을 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레스토랑 문을 벌컥 차며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하현은 자신도 모르게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한 남자와 두 여자를 보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남자는 진홍헌이었고 여자는 그의 여동생 진홍민, 그리고 전에 황보정에게 옷을 사 주다가 싸움이 벌어진 강우금이었다.“정말
하현은 희미한 시선으로 말했다.“장생전?”“네, 맞아요. 장생전이요.”엄도훈은 하현이 이를 짐작했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자세한 내막을 캐묻지 않고 장생전에 관해 세심하게 설명을 이어갔다.“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여섯 은둔가의 조상이 모두 제왕을 지냈기 때문에 신선을 찾아 장생전에 대해 알아보고 또한 그것을 꿈꿨다고 합니다.”“왕조가 멸망한 후 이러한 일들은 자연스럽게 후손들의 손에 넘어갔죠.”“여섯 은둔가들이 손에 쥐고 있는 비밀들을 모을 수만 있다면 분명 장생전을 만날 수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그런데 문제는 이 세상에 장생이 어디 있겠냐는 것입니다.”“제가 아는 한 여섯 은둔가가 가진 비밀은 사실 가문에만 전승되어 오던 것입니다.”“절대 다른 곳에 누설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죠.”“그래서 완연결이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지 알게 된 여섯 은둔가는 간민효의 지도 아래 완연결을 토벌하였습니다.”“완연결은 하룻밤 사이에 강인하고 야심찬 인물에서 포로로 전락하였고 수많은 그의 부하들도 사상을 입게 되었습니다.”“다만 감옥으로 압송되는 과정에서 그의 차가 납치되었습니다.”“그 순간 우리는 그가 장생전에서 왔다는 걸 알게 되었죠.”말을 마치고 난 엄도훈은 심하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분명 장생전을 입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은 매우 흥미로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여섯 은둔가가 이 상황에서 서로 연합한 것은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왜 간민효가 손을 썼을까?”엄도훈은 의아한 듯 눈을 살짝 찡긋거리며 말했다.“말하자면 완연결이 운이 나빴다고 할 수 있죠. 그에게는 아들이 있었는데 늘 간민효에게 관심을 가졌어요. 간민효를 차지하려고 여러 번 시도를 했고요.”“처음에는 간민효도 그를 무시하고 말았는데 나중에는 화가 나서 여섯 은둔가와 연합을 하고 나섰어요...”하현은 이 말을 듣고 눈초리를 가늘게 늘어뜨렸다.간민효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걸 알긴 했지만 이렇
완연결은 장생전에서 지위가 낮지 않았고 당시 금정 지부 수장이었다.지금 땅바닥에 널브러진 사람들은 모두 그의 수하에 있는 유능한 인재들이었고 모두 일등 고수들이었다.그런데 이 사람들이 하현과 맞붙어 제대로 방어도 해 보지 못하고 널브러졌다니?!하현은 엄도훈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상관하지 않고 얼른 부상 상태를 처리한 후 일어섰다.“됐어. 다친 곳은 기껏해야 3일 정도면 다 나을 거야. 시간 되면 한의사한테 찾아가서 약이나 몇 첩 지어서 컨디션 조절해.”엄도훈은 그제야 정신을 번쩍 자리고는 안간힘을 쓰며 일어섰다.“형님, 진심으로 말씀드립니다.”“지금부터 언제든지 제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해 주세요.”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별말을 다 하는군. 별거 아니야. 게다가 여기서 만나자고 한 건 나니까 나한테도 책임이 있어.”“그건 그렇고 여기는 당신 사람들을 좀 시켜서 정리하라고 해.”“당신은 나랑 함께 같이 가자고. 아니면 여기서 기다릴 거야?”“아니요. 같이 가시죠.”엄도훈은 주변을 휘익 둘러보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형님, 어떻게 이런 곳에서 날 보자고 하셨어요?”“내 추측이 맞다면 이곳은 아마 예전에도 험악한 곳이었을 텐데요.”“이곳은 금정 전체에서도 가장 흉악한 곳이에요!”“여기서 만나자고 할 줄 알았더라면 아마 죽어도 안 왔을 거예요.”엄도훈은 이 사실을 미리 떠올리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깊이 후회했다.“흉악한 곳? 이곳은 그냥 버려진 흉가 아니야?”엄도훈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형님, 예전에 관청의 최고 책임자가 이곳이 마음에 들어서 여름에 피서를 하기 위한 별장을 짓고 싶어 했죠...”“결국 반쯤 지어졌을 때 땅속에 있던 큰 무덤을 건드리게 되었고 일하던 사람들은 온데간데없이 소식이 끊겼다고 합니다...”“그러고 나서 이곳은 봉쇄되어서 아무도 들어갈 수 없게 되었고요!”“엽기적인 사건을 띄워 조회수라도 올려 볼까 했던 블로거들이 탐험하러 왔다고 들었는데 전부
”이런 살인술은 기이하긴 하지만 나한테는 어린아이들 소꿉장난이나 마찬가지지.”하현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여전히 담담했다.“단 3분 만에 내가 당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어.”요염한 여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하현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우리 문제를 해결해 주는 대가로 엄도훈을 풀어 달라는 거지? 그렇지?”하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로서는 지금 손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어쨌든 어렵게 장생전과 관련된 몇 개의 실마리를 찾았는데 만약 그들이 죽기라도 하면 얼마나 낭패스러운가?죽은 사람을 앞에 두고 어떻게 진술을 받아낼 수 있겠는가?“아주 매력적인 조건이지만 아쉽게도 난 당신한테 동의할 수 없어.”요염한 여자는 차가운 얼굴로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렸다.“하지만 우릴 생각해 준 당신의 마음이 가상해서 나중에 우리가 당신을 죽일 때는 고통이 길지 않게 단번에 죽여 줄게.”하현은 이 말을 듣고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그는 요염한 여자가 자신이 내건 조건을 승낙할 줄 알았다.그녀가 아무리 엄도훈에게 깊은 원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목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는가?하지만 상대방이 헌신짝 버리듯 하현의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보아 사혈이 막힌 그들의 상태는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인 행위였음이 분명했다.기꺼이 사혈을 틀어막은 것이다.그들을 이 지경에까지 만든 사람은 보통 잔인하고 냉혹한 사람이 아닌 것이 틀림없다.그렇지 않았더라면 이 사람들이 이렇게 철저하게 무릎을 꿇지는 않았을 것이다.간단히 말해서 사혈을 봉인해야 그들이 살 수 있는 것이다.사혈이 풀린다면 그들은 반드시 죽을 것이다.그래서 하현의 제안은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난 당신들과 싸우고 싶지 않았어.”“그런데 아쉽게 되었군!”“아쉬울 것 없어!”요염한 여자가 당차게 내뱉으며 웃었다.“당신은 이곳에 와서 몰래 염탐만 해도 될 일이었어.
요염한 여인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우리 완연결 선생 뒤에 누가 있는지 당신은 상상도 하지 못할 거야.”“당신 같은 사람이 우리 완연결 선생을 상대할 자격이 된다고 생각해? 순진하기는!”“내 말은 그러니까, 순순히 운명을 받아들이란 거야. 발버둥치지 말고. 왜냐? 그래 봐야 아무 소용없으니까.”“당신을 도와줄 동료들이 지금 옆에 없는 걸 탓할 필요도 없어. 왜냐하면 간민효가 여기 있었다면 그녀도 무릎을 꿇었을 테니까.”말을 하면서 여자는 쭈그리고 앉아 엄도훈에게 주사를 놓으려고 했다.“꿈도 꾸지 마!”엄도훈은 버럭 소리를 질렀고 순간 바닥에 흩어져 있던 유리 파편을 얼른 집어 자신의 목을 향했다.다른 사람의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훨씬 낫다!“퍽!”여자는 긴 다리를 휘둘러 유리 파편을 들고 있던 엄도훈의 손을 발로 차서 날려 버렸다.그런 다음 한 발을 엄도훈의 가슴에 짓누르며 주사기를 엄도훈의 몸에 찌르려고 했다.“아이 참...”그때 어디선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하현은 두 손을 뒷짐지고 유유히 걸어 나왔다.이 일은 원래 그와 무관했지만 상대방이 하는 말에 이 일이 간민효와 장생전과도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그로서도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어쨌든 그가 금정에 있는 가장 큰 목적 중 하나이기도 했다.하현이 나오는 것을 보고 요염한 여자와 그녀의 일행들은 눈살을 찌푸리다 이내 굳어졌다.가장 중요한 순간에, 이런 흉가에 누군가 나타날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 분명했다.순간 그들은 총과 칼, 쇠몽둥이들을 들어 올려 하현을 겨냥했다.요염한 여인이 입을 열었다.“당신 누구야?”여자가 말을 하는 동안 그녀의 일행들은 빠르게 흩어져 하현의 퇴로를 막아서며 잡아먹을 듯 사나운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엄도훈은 그제야 누가 왔는지 알아보았다.그도 처음에는 구원자가 나타난 줄 알고 기뻐했으나 이내 걱정스러운 얼굴로 소리쳤다.“형님, 어서 도망가세요! 이놈들은 보통 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