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유훤은 무의식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수많은 양 씨 가문 사람들이 냉소를 연발하며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양호남은 더욱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양유훤, 볼 것도 없어. 아무도 저 쓸모없는 놈을 믿지 않아...”양신이도 냉소를 흘리며 거들었다.“너만 저런 사악한 사람이 능력이 있다고 믿고 있어. 순진하긴!”염소 수염을 기른 집안의 어른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보탰다.“양유훤, 정신 차려. 아무리 낮이라지만 이렇게 허무맹랑한 꿈은 꾸지 않아.”하현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아니, 양유훤의 편에 서는 사람조차 없었다.양유훤은 지금까지 자신이 집안을 위해 선의로 한 일이 모두 헛수고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그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비틀거리며 몇 걸음 뒷걸음질쳤다.하현은 얼른 그녀에게 다가가 부축하며 나지막이 말했다.“괜찮아?”“어, 괜찮아.”양유훤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추스른 뒤 노부인을 바라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할머니, 정말로 이 친손녀의 말을 조금도 믿지 않는 거예요?”양유훤은 양 씨 가문 사람들에게 아직도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는 듯했다.“내가 방금 그렇게 설명했는데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어?”노부인이 코웃음을 치면서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화를 내었다.“이 일을 누가 해결했는지 그게 그렇게 중요하니?”“어차피 누가 했든 저놈은 아닐 거야! 분명해!”“난 이미 너한테 할 수 있는 만큼 다 했어. 퇴로를 마련해 주기까지 했어!”“여수혁과 결혼하겠다고만 약속한다면 저놈에게는 십억을 주고 너는 계속 큰집의 수장이 되는 거야!”“예전에 쌓아 두었던 원한은 깨끗이 청산해!”말을 마치며 노부인은 누군가에게 손짓을 했다.“어서 빨리 혼인계약서에 서명해!”“들었어? 못 들었어? 할머니가 자비를 베풀어 너희 연놈들에게 기회를 주는 거라구!”앙호남이 거들고 나섰다.“혼인계약서에 서명하고 어서 여수혁에게 시집가! 그러면 저
주위에 있던 양 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한목소리로 말했다.만약 양유훤이 여수혁에게 시집간다면 위기에 처한 양 씨 가문으로서는 무수한 이점이 있다는 것을 그들은 분명히 알고 있는 듯했다.이런 마당에 양유훤의 개인적인 감정이 그들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페낭 무맹과 혼인해서 인척이 된다면 확실한 연줄이 생긴다는 뜻이다.그러면 양 씨 가문에는 크나큰 이득이 있을 거라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강력한 지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앞으로 평생을 편안히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게 된다!따라서 지금 이 순간 양유훤의 개인적인 감정은 전혀 의미가 없다.양유훤이 어떻게 될지는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 전혀 아니었다.사람들은 모두 각자 자신의 이익과 이득만을 생각하며 양유훤이 어서 빨리 단념하고 여수혁의 처소로 달려가기를 간절히 바랐다.마치 양유훤이 공공의 적이 되어 버린 듯한 분위기를 틈타 양호남은 간사한 미소를 흘리며 큰소리로 말했다.“양유훤, 당신은 이 사태가 된 것에 대해서 제대로 해명하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 여수혁한테 시집가야 해. 당신을 낳고 길러 준 가문에 그 정도는 해야지. 더 무슨 할 말이 있어?”양 씨 가문 사람들은 하나같이 험악한 표정으로 양유훤을 노려보았다.수년 동안 가문을 떠나 있던 양유훤은 마치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사람들 등쌀에 떠밀려 억지로 집을 떠나야만 했던 그때.순간 양유훤은 쓴웃음을 지었다.양 씨 가문은 조금도 변한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여전히 사람을 잡아먹을 듯 못살게 굴었다.이런 가문에 무슨 희망이 남았다고 미련을 두었던가!다 부질없는 생각이었다.“뭐 하는 거야? 어서 혼인계약서에 서명하지 않고?”양유훤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한 것을 보고 노부인은 자신의 계략이 곧 성공할 것이라고 여겼다.그녀는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는 심정으로 마지막 수를 두었다.“내가 방금 집사더러 경찰서 팀장을
그들은 그럴 자격이 없다!하현의 말을 들은 양 씨 가문 사람들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갑자기 폭소를 터뜨렸다.양 씨 가문 사람들은 비아냥거리는 얼굴로 하현을 쳐다보았다.얼뜨기 같은 남자가 이런 말을 하다니, 정말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했다.양 씨 가문 사람들은 수백 명이었고 양유훤 쪽에는 단 한 사람뿐이었다.한 사람이 감히 몇 백 명을 상대로 자격이 없다고 말하다니!이 무슨 헛소리인가?사람들은 하현의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닐까 의심했다.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무식한 말을 내뱉지는 않았을 것이다.양 씨 가문 사람들은 사나운 눈초리로 하현을 흘겨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들은 많이 봤지만 이렇게 잘난 척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는 눈빛이었다.지금 그들의 눈에 비치는 하현은 어릿광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양유훤은 살짝 어리둥절해하며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그제야 하현은 빙긋 웃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양유훤, 한 가문이 굳건하게 존재할 수 있기 위해서는 사람 수가 많고 적은 게 중요한 게 아니야. 가문의 강인함에 달려 있는 거지.”“어차피 이 사람들은 양 씨 가문 자격이 없으니 내가 당신을 남양에서, 페낭에서 유일한 양 씨 가문 사람으로 만들어 줄게!”“한 달 안에 당신은 남양에서 유일한 양 씨 가문 사람이 될 거야!”양유훤은 화들짝 놀라며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었다.“내 생각엔 아마 양제명 어르신도 이걸 원하실 거야.”하현은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말을 내뱉었다.양유훤은 하현의 마지막 말을 듣고 어금니를 살짝 깨물며 나지막이 말했다.“그래, 내가 남양의 유일한 양 씨 가문 사람이 되겠어!”이때 경찰서 형사팀장이 나타났다.양 씨 가문 집사가 그에게 다가가 몇 마디 수군거렸고 곧이어 키가 큰 형사팀장은 허리에 차고 있던 무기를 뽑아 들고 한심하다는 듯 눈을 내리깔고 하현에게 다가왔다.하현과 양유훤
하현은 여형사를 무시하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노부인을 바라보았다.“노부인, 두고 보시죠.”“원래 양 씨 가문의 일은 나와 무관했습니다.”“그런데 당신들은 내 친구를 강제로 시집보내려고 했고 날 도와준 양제명 어르신을 독살하려 했죠. 그리고 날 경찰서로 잡아넣으려고 하고 있어요....”“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기억하고 있겠습니다.”하현은 또박또박 상대의 뇌리에 박히듯이 말했다.“경찰서에서 나오면 이 모든 것을 열 배, 백 배로 갚아드리지요.”“양 씨 가문의 명예를 단번에 실추시켜 드리죠. 그리고 당신 손으로 직접 양호남의 다리를 부러뜨리며 내 앞에 사죄하도록 만들 겁니다!”하현은 양호남 같은 쓰레기를 자기 손으로 직접 손쓸 마음이 없었다.양 씨 집안 같은 가문은 단번에 칼로 찌르고 복수하는 것보다 서서히 말려 죽이는 편이 훨씬 더 효과가 크다.“할머니가 내 다리를 부러뜨린다고? 대하놈이! 당신 지금 무슨 헛꿈을 꾸고 있는 거야?”양호남은 코웃음을 쳤다.“경찰서에서 어떻게 나올지나 잘 궁리해.”“경찰서에 가서 감옥에 가게 되면 우리 양 씨 가문의 미움을 사는 게 어떤 건지 잘 알게 될 거야.”노부인은 냉랭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 지팡이 위에 손을 얹고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양유훤, 하현. 너희들은 곧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게 될 거야.”하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더 이상 노부인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이 나머지 일을 처리하겠으니 양유훤은 그만 별채로 돌아가 기다리라고 말했다.양유훤은 침울한 기색을 드러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그녀와 양 씨 가문은 이제 완전히 결별하게 되었음을 실감했다.하지만 지금은 그녀가 양 씨 가문을 상대할 만큼 막강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냉정을 유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지금은 돌아가 자금과 인력을 차출하는 게 우선이었다.그러자 그녀는 하현의 신변이 걱정되기 시작했다.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늘 하현의 곁에 있
눈앞의 대머리 팀장이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보자 하현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이곳에는 법도 정의도 없다는 걸 하현은 마침내 완전히 깨닫게 된 것이다.하지만 상대가 이렇게 나오는 게 오히려 낫다.그래야 나중에 이런 관계를 이용할 때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웃어?! 날 놀리는 거야?”하현이 계속 웃는 모습을 보고 대머리 팀장은 자신이 모욕당했다고 느꼈다.그는 탁자를 세게 치며 소리쳤다.“개자식! 경고하는데 이곳에선 법과 정의가 무엇보다 우선인 곳이야!”“헛소리 또 지껄이다간 당장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거야!”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좋아, 난 당신들의 그 말을 기다렸어.”“양 씨 가문이 먼저 사람을 때렸기 때문에 내가 반격을 했다면 당신들 믿겠어?”동그란 얼굴의 여형사와 대머리 형사는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이내 코웃음을 쳤다.“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점잖은 신사들이야. 배운 사람들이고.”“그런 그들이 당신한테 먼저 손을 댔다고?”하현은 침착하고 입을 열었다.“그들은 양유훤을 여수혁에게 강제로 시집보내기 위해 먼저 사람을 때렸어.”“협박했다는 거야?”동그란 얼굴의 여형사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여수혁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 페낭에서는 아주 유명한 거물이야!”“그런 사람과 결혼한다는 건 이곳 페낭 여자들이 모두 꿈꾸는 일이야!”“그게 양 씨 가문이 양유훤을 협박할 일이야?”“게다가 아무리 협박한다고 해도 이건 양 씨 집안의 일이야. 당신과 무슨 상관이냐고?”이때 동그란 얼굴의 여형사는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자, 어서 빨리 사람을 때린 사실이나 인정해! 당신을 얼른 감옥에 보내야 우리도 퇴근할 거 아니야?!”하현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그렇게 독단적으로 말하지 말지! 스스로 결론을 다 정해 놓고 말하면 안 되지, 안 그래?”여형사는 얼굴이 싸늘해졌다.“나한테 지금 가
원가령은 이전에 이신욱의 괴롭힘에 당해 큰일 날 뻔했었는데 하현이 그녀를 구해 준 이후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비록 그때 이신욱이 먹인 약에 원가령이 완전히 취해 있었지만 하현이 생명의 은인이란 사실은 또렷이 기억한다.그래서 지금 하현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예전과는 조금 달라졌다.막무가내로 그를 무시하던 자세가 아니었다.그러나 원가령의 옆에 서 있는 여인은 금테 안경을 쓰고 나이는 마흔이 훌쩍 넘어 보였지만 세련된 얼굴에 호리호리한 몸매가 눈길을 끌었다.단지 그녀의 매서운 눈빛에선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보통 남자들은 그녀 앞에서 고개도 들지 못할 아우라가 풍겼다.“안녕하세요.”원가령은 두 형사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하현에게 다가갔다.“하현, 당신이 왜 여기에 있어?”“엄마, 이 사람이 하현이야. 날 구해 준 사람. 날 구하기 위해 사람을 때렸던 거야.”원가령은 병원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양유훤과도 연락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양 씨 집안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모르는 상태였다.원가령의 말에 동그란 얼굴의 여형사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원가령의 말을 듣고 하현이 그녀한테 큰 은혜를 베풀었단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게다가 원가령은 원 씨 가문 원천신의 딸이었다.원천신은 비록 원 씨 가문 둘째 딸이지만 사생아로 태어나서 집안에서 완전히 소외되었다.그러나 원 씨 가문은 어쨌든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였다.이런 일개 수사팀장이 미움을 살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하현이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금테 안경을 쓴 여인은 하현을 빤히 쳐다본 후 원가령을 향해 입을 열었다.“가령아, 수사관님들이 사건을 처리하고 있으니 방해하지 마!”그녀가 바로 원 씨 가문 둘째 딸 원천신이었다.그녀 자신이 젊은 시절 몹쓸 남자에게 잘못 시집간 경험이 있기 때문에 딸의 말을 듣자마자 그녀는 경계의 눈빛을 드러내었다.원가령은 그제야 탁자 위에 하현의 손이 묶여 있는 것을 보고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하
남자친구?약혼자?이 두 단어를 듣고 하현은 하마터면 커피를 내뿜을 뻔했다.옆에서 거들먹거리던 두 수사관들도 지금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현을 주시했다.그들은 아무리 둘러보아도 하현에게서 특별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그들 중 누구도 하현이 양 씨 가문의 여인과 원 씨 가문 여인을 휘어잡을 만큼 큰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원천신도 어안이 벙벙하긴 마찬가지였다.잠시 후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타이르듯 말했다.“가령아, 이 사람이 진짜 네 남자친구든 아니면 약혼자든 어쨌든 죄를 지은 사람을 두둔할 순 없어!”원천신은 원 씨 가문에서의 자신의 처지를 잘 아는 것이 분명했다.비록 밖에서는 큰소리치며 군림하지만 조금이라도 분별없이 행동했다가는 순식간에 원 씨 가문의 비난을 한몸에 받을 것이다.원천신은 원 씨 가문 사람들에게 그런 빌미를 주고 싶지 않았다.원가령은 한껏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하현에게 말했다.“하현, 억울하다고 말해! 당신 같이 좋은 사람이 어떻게 아무렇게나 사람을 때릴 수 있겠어?”“당신이 때렸다고 해도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야!”동그란 얼굴의 여형사는 헛기침을 하며 끼어들었다.“우리도 당신 남자친구, 혹은 약혼자가 무죄이길 바랍니다. 하지만 양 씨 가문에 그렇게 많은 목격자들이 있으니 함부로 놓아줄 수가 없어요!”대머리 수사팀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보태었다.“맞아요. 완전히 무죄라는 실질적인 증거가 없는 한 누가 와도 보석으로 풀려날 수는 없어요!”자신의 말에 힘을 실어 넣기 위해서 대머리 남자는 배를 내밀고 더욱더 강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정총화 총경이 와도 소용없어요!”두 수사관이 생각지도 못하게 강경한 입장을 보이자 원가령은 머뭇거리며 하현에게 물었다.“하현, 정말 양 씨 가문 사람을 때렸어?”“그것도 먼저 때린 거야?”원천신은 눈을 내리깔고 하현을 내려다보다 원가령의 손을 잡아채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가령아, 사람
하현은 동그란 얼굴의 여형사를 휙 쳐다보며 말했다.“만약 원가령의 모친과 원가령이 이 자리에 없었다면 내 손안에 있는 이 증거를 당신들이 없애버리지 않고 고이 간직하게 해 주었을까?”동그란 얼굴의 여형사는 흠칫 놀라며 자신도 모르게 옆에 있는 대머리 팀장을 쳐다보았다.대머리 수사팀장은 하현을 매섭게 쏘아보다가 얼른 머리를 숙였다.하현은 이제 원 씨 가문을 뒷배로 둔 사람이 되었고 확실한 증거도 있으니 경찰 당국으로서도 그를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30분 후 하현은 경찰서에서 무사히 풀려났다.원가령 모친과 원가령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풀려날 수 있었겠지만 어쨌거나 두 사람이 옆에서 도와준 건 사실이기 때문에 하현은 깍듯한 목소리로 말했다.“부인, 원가령. 고맙습니다!”“이 일은 잊지 않겠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식사라도 대접하겠습니다!”원가령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하현, 페낭에서 내가 뒷배가 되어줄게.”“우리 엄마는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원 씨 가문 둘째 딸이야. 페낭이나 남양에선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지!”원천신은 원가령의 말을 듣고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며 말했다.“가령아, 쓸데없는 말 하지 마!”“하현이 무사히 빠져나온 건 큰 잘못이 없기 때문이야.”“정말로 죄가 있었다면 내가 아무리 역량이 뛰어나다고 해도 절대 그를 빼내올 수 없지.”“우리 원 씨 가문 권력은 이런 일에 쓰라고 있는 게 아니야.”원천신의 말속에 희미한 경고의 메시지를 읽은 하현이 담담하게 웃었다.그는 원래 원가령에게 득을 볼 생각도 없었으므로 이에 개의치 않았다.“어쨌든 오늘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다음에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제 능력껏 최선을 다해서 돕겠습니다.”원천신은 이 말을 듣고 한쪽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렸다.원 씨 가문은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이며 최근에는 대하에서 막 부상하고 있는 천일 그룹과도 연을 맺었다.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