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에 있던 양 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한목소리로 말했다.만약 양유훤이 여수혁에게 시집간다면 위기에 처한 양 씨 가문으로서는 무수한 이점이 있다는 것을 그들은 분명히 알고 있는 듯했다.이런 마당에 양유훤의 개인적인 감정이 그들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페낭 무맹과 혼인해서 인척이 된다면 확실한 연줄이 생긴다는 뜻이다.그러면 양 씨 가문에는 크나큰 이득이 있을 거라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강력한 지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앞으로 평생을 편안히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게 된다!따라서 지금 이 순간 양유훤의 개인적인 감정은 전혀 의미가 없다.양유훤이 어떻게 될지는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 전혀 아니었다.사람들은 모두 각자 자신의 이익과 이득만을 생각하며 양유훤이 어서 빨리 단념하고 여수혁의 처소로 달려가기를 간절히 바랐다.마치 양유훤이 공공의 적이 되어 버린 듯한 분위기를 틈타 양호남은 간사한 미소를 흘리며 큰소리로 말했다.“양유훤, 당신은 이 사태가 된 것에 대해서 제대로 해명하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 여수혁한테 시집가야 해. 당신을 낳고 길러 준 가문에 그 정도는 해야지. 더 무슨 할 말이 있어?”양 씨 가문 사람들은 하나같이 험악한 표정으로 양유훤을 노려보았다.수년 동안 가문을 떠나 있던 양유훤은 마치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사람들 등쌀에 떠밀려 억지로 집을 떠나야만 했던 그때.순간 양유훤은 쓴웃음을 지었다.양 씨 가문은 조금도 변한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여전히 사람을 잡아먹을 듯 못살게 굴었다.이런 가문에 무슨 희망이 남았다고 미련을 두었던가!다 부질없는 생각이었다.“뭐 하는 거야? 어서 혼인계약서에 서명하지 않고?”양유훤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한 것을 보고 노부인은 자신의 계략이 곧 성공할 것이라고 여겼다.그녀는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는 심정으로 마지막 수를 두었다.“내가 방금 집사더러 경찰서 팀장을
그들은 그럴 자격이 없다!하현의 말을 들은 양 씨 가문 사람들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갑자기 폭소를 터뜨렸다.양 씨 가문 사람들은 비아냥거리는 얼굴로 하현을 쳐다보았다.얼뜨기 같은 남자가 이런 말을 하다니, 정말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했다.양 씨 가문 사람들은 수백 명이었고 양유훤 쪽에는 단 한 사람뿐이었다.한 사람이 감히 몇 백 명을 상대로 자격이 없다고 말하다니!이 무슨 헛소리인가?사람들은 하현의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닐까 의심했다.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무식한 말을 내뱉지는 않았을 것이다.양 씨 가문 사람들은 사나운 눈초리로 하현을 흘겨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들은 많이 봤지만 이렇게 잘난 척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는 눈빛이었다.지금 그들의 눈에 비치는 하현은 어릿광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양유훤은 살짝 어리둥절해하며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그제야 하현은 빙긋 웃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양유훤, 한 가문이 굳건하게 존재할 수 있기 위해서는 사람 수가 많고 적은 게 중요한 게 아니야. 가문의 강인함에 달려 있는 거지.”“어차피 이 사람들은 양 씨 가문 자격이 없으니 내가 당신을 남양에서, 페낭에서 유일한 양 씨 가문 사람으로 만들어 줄게!”“한 달 안에 당신은 남양에서 유일한 양 씨 가문 사람이 될 거야!”양유훤은 화들짝 놀라며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었다.“내 생각엔 아마 양제명 어르신도 이걸 원하실 거야.”하현은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말을 내뱉었다.양유훤은 하현의 마지막 말을 듣고 어금니를 살짝 깨물며 나지막이 말했다.“그래, 내가 남양의 유일한 양 씨 가문 사람이 되겠어!”이때 경찰서 형사팀장이 나타났다.양 씨 가문 집사가 그에게 다가가 몇 마디 수군거렸고 곧이어 키가 큰 형사팀장은 허리에 차고 있던 무기를 뽑아 들고 한심하다는 듯 눈을 내리깔고 하현에게 다가왔다.하현과 양유훤
하현은 여형사를 무시하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노부인을 바라보았다.“노부인, 두고 보시죠.”“원래 양 씨 가문의 일은 나와 무관했습니다.”“그런데 당신들은 내 친구를 강제로 시집보내려고 했고 날 도와준 양제명 어르신을 독살하려 했죠. 그리고 날 경찰서로 잡아넣으려고 하고 있어요....”“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기억하고 있겠습니다.”하현은 또박또박 상대의 뇌리에 박히듯이 말했다.“경찰서에서 나오면 이 모든 것을 열 배, 백 배로 갚아드리지요.”“양 씨 가문의 명예를 단번에 실추시켜 드리죠. 그리고 당신 손으로 직접 양호남의 다리를 부러뜨리며 내 앞에 사죄하도록 만들 겁니다!”하현은 양호남 같은 쓰레기를 자기 손으로 직접 손쓸 마음이 없었다.양 씨 집안 같은 가문은 단번에 칼로 찌르고 복수하는 것보다 서서히 말려 죽이는 편이 훨씬 더 효과가 크다.“할머니가 내 다리를 부러뜨린다고? 대하놈이! 당신 지금 무슨 헛꿈을 꾸고 있는 거야?”양호남은 코웃음을 쳤다.“경찰서에서 어떻게 나올지나 잘 궁리해.”“경찰서에 가서 감옥에 가게 되면 우리 양 씨 가문의 미움을 사는 게 어떤 건지 잘 알게 될 거야.”노부인은 냉랭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 지팡이 위에 손을 얹고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양유훤, 하현. 너희들은 곧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게 될 거야.”하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더 이상 노부인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이 나머지 일을 처리하겠으니 양유훤은 그만 별채로 돌아가 기다리라고 말했다.양유훤은 침울한 기색을 드러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그녀와 양 씨 가문은 이제 완전히 결별하게 되었음을 실감했다.하지만 지금은 그녀가 양 씨 가문을 상대할 만큼 막강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냉정을 유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지금은 돌아가 자금과 인력을 차출하는 게 우선이었다.그러자 그녀는 하현의 신변이 걱정되기 시작했다.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늘 하현의 곁에 있
눈앞의 대머리 팀장이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보자 하현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이곳에는 법도 정의도 없다는 걸 하현은 마침내 완전히 깨닫게 된 것이다.하지만 상대가 이렇게 나오는 게 오히려 낫다.그래야 나중에 이런 관계를 이용할 때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웃어?! 날 놀리는 거야?”하현이 계속 웃는 모습을 보고 대머리 팀장은 자신이 모욕당했다고 느꼈다.그는 탁자를 세게 치며 소리쳤다.“개자식! 경고하는데 이곳에선 법과 정의가 무엇보다 우선인 곳이야!”“헛소리 또 지껄이다간 당장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거야!”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좋아, 난 당신들의 그 말을 기다렸어.”“양 씨 가문이 먼저 사람을 때렸기 때문에 내가 반격을 했다면 당신들 믿겠어?”동그란 얼굴의 여형사와 대머리 형사는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이내 코웃음을 쳤다.“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점잖은 신사들이야. 배운 사람들이고.”“그런 그들이 당신한테 먼저 손을 댔다고?”하현은 침착하고 입을 열었다.“그들은 양유훤을 여수혁에게 강제로 시집보내기 위해 먼저 사람을 때렸어.”“협박했다는 거야?”동그란 얼굴의 여형사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여수혁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 페낭에서는 아주 유명한 거물이야!”“그런 사람과 결혼한다는 건 이곳 페낭 여자들이 모두 꿈꾸는 일이야!”“그게 양 씨 가문이 양유훤을 협박할 일이야?”“게다가 아무리 협박한다고 해도 이건 양 씨 집안의 일이야. 당신과 무슨 상관이냐고?”이때 동그란 얼굴의 여형사는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자, 어서 빨리 사람을 때린 사실이나 인정해! 당신을 얼른 감옥에 보내야 우리도 퇴근할 거 아니야?!”하현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그렇게 독단적으로 말하지 말지! 스스로 결론을 다 정해 놓고 말하면 안 되지, 안 그래?”여형사는 얼굴이 싸늘해졌다.“나한테 지금 가
원가령은 이전에 이신욱의 괴롭힘에 당해 큰일 날 뻔했었는데 하현이 그녀를 구해 준 이후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비록 그때 이신욱이 먹인 약에 원가령이 완전히 취해 있었지만 하현이 생명의 은인이란 사실은 또렷이 기억한다.그래서 지금 하현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예전과는 조금 달라졌다.막무가내로 그를 무시하던 자세가 아니었다.그러나 원가령의 옆에 서 있는 여인은 금테 안경을 쓰고 나이는 마흔이 훌쩍 넘어 보였지만 세련된 얼굴에 호리호리한 몸매가 눈길을 끌었다.단지 그녀의 매서운 눈빛에선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보통 남자들은 그녀 앞에서 고개도 들지 못할 아우라가 풍겼다.“안녕하세요.”원가령은 두 형사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하현에게 다가갔다.“하현, 당신이 왜 여기에 있어?”“엄마, 이 사람이 하현이야. 날 구해 준 사람. 날 구하기 위해 사람을 때렸던 거야.”원가령은 병원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양유훤과도 연락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양 씨 집안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모르는 상태였다.원가령의 말에 동그란 얼굴의 여형사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원가령의 말을 듣고 하현이 그녀한테 큰 은혜를 베풀었단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게다가 원가령은 원 씨 가문 원천신의 딸이었다.원천신은 비록 원 씨 가문 둘째 딸이지만 사생아로 태어나서 집안에서 완전히 소외되었다.그러나 원 씨 가문은 어쨌든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였다.이런 일개 수사팀장이 미움을 살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하현이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금테 안경을 쓴 여인은 하현을 빤히 쳐다본 후 원가령을 향해 입을 열었다.“가령아, 수사관님들이 사건을 처리하고 있으니 방해하지 마!”그녀가 바로 원 씨 가문 둘째 딸 원천신이었다.그녀 자신이 젊은 시절 몹쓸 남자에게 잘못 시집간 경험이 있기 때문에 딸의 말을 듣자마자 그녀는 경계의 눈빛을 드러내었다.원가령은 그제야 탁자 위에 하현의 손이 묶여 있는 것을 보고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하
남자친구?약혼자?이 두 단어를 듣고 하현은 하마터면 커피를 내뿜을 뻔했다.옆에서 거들먹거리던 두 수사관들도 지금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현을 주시했다.그들은 아무리 둘러보아도 하현에게서 특별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그들 중 누구도 하현이 양 씨 가문의 여인과 원 씨 가문 여인을 휘어잡을 만큼 큰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원천신도 어안이 벙벙하긴 마찬가지였다.잠시 후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타이르듯 말했다.“가령아, 이 사람이 진짜 네 남자친구든 아니면 약혼자든 어쨌든 죄를 지은 사람을 두둔할 순 없어!”원천신은 원 씨 가문에서의 자신의 처지를 잘 아는 것이 분명했다.비록 밖에서는 큰소리치며 군림하지만 조금이라도 분별없이 행동했다가는 순식간에 원 씨 가문의 비난을 한몸에 받을 것이다.원천신은 원 씨 가문 사람들에게 그런 빌미를 주고 싶지 않았다.원가령은 한껏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하현에게 말했다.“하현, 억울하다고 말해! 당신 같이 좋은 사람이 어떻게 아무렇게나 사람을 때릴 수 있겠어?”“당신이 때렸다고 해도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야!”동그란 얼굴의 여형사는 헛기침을 하며 끼어들었다.“우리도 당신 남자친구, 혹은 약혼자가 무죄이길 바랍니다. 하지만 양 씨 가문에 그렇게 많은 목격자들이 있으니 함부로 놓아줄 수가 없어요!”대머리 수사팀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보태었다.“맞아요. 완전히 무죄라는 실질적인 증거가 없는 한 누가 와도 보석으로 풀려날 수는 없어요!”자신의 말에 힘을 실어 넣기 위해서 대머리 남자는 배를 내밀고 더욱더 강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정총화 총경이 와도 소용없어요!”두 수사관이 생각지도 못하게 강경한 입장을 보이자 원가령은 머뭇거리며 하현에게 물었다.“하현, 정말 양 씨 가문 사람을 때렸어?”“그것도 먼저 때린 거야?”원천신은 눈을 내리깔고 하현을 내려다보다 원가령의 손을 잡아채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가령아, 사람
하현은 동그란 얼굴의 여형사를 휙 쳐다보며 말했다.“만약 원가령의 모친과 원가령이 이 자리에 없었다면 내 손안에 있는 이 증거를 당신들이 없애버리지 않고 고이 간직하게 해 주었을까?”동그란 얼굴의 여형사는 흠칫 놀라며 자신도 모르게 옆에 있는 대머리 팀장을 쳐다보았다.대머리 수사팀장은 하현을 매섭게 쏘아보다가 얼른 머리를 숙였다.하현은 이제 원 씨 가문을 뒷배로 둔 사람이 되었고 확실한 증거도 있으니 경찰 당국으로서도 그를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30분 후 하현은 경찰서에서 무사히 풀려났다.원가령 모친과 원가령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풀려날 수 있었겠지만 어쨌거나 두 사람이 옆에서 도와준 건 사실이기 때문에 하현은 깍듯한 목소리로 말했다.“부인, 원가령. 고맙습니다!”“이 일은 잊지 않겠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식사라도 대접하겠습니다!”원가령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하현, 페낭에서 내가 뒷배가 되어줄게.”“우리 엄마는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원 씨 가문 둘째 딸이야. 페낭이나 남양에선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지!”원천신은 원가령의 말을 듣고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며 말했다.“가령아, 쓸데없는 말 하지 마!”“하현이 무사히 빠져나온 건 큰 잘못이 없기 때문이야.”“정말로 죄가 있었다면 내가 아무리 역량이 뛰어나다고 해도 절대 그를 빼내올 수 없지.”“우리 원 씨 가문 권력은 이런 일에 쓰라고 있는 게 아니야.”원천신의 말속에 희미한 경고의 메시지를 읽은 하현이 담담하게 웃었다.그는 원래 원가령에게 득을 볼 생각도 없었으므로 이에 개의치 않았다.“어쨌든 오늘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다음에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제 능력껏 최선을 다해서 돕겠습니다.”원천신은 이 말을 듣고 한쪽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렸다.원 씨 가문은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이며 최근에는 대하에서 막 부상하고 있는 천일 그룹과도 연을 맺었다.
하현이 원천신의 이런 마음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하현은 개의치 않을 것이다.어쨌든 어머니가 자식을 보호하는 한 방법이니 당연한 일이다.그는 명함을 받아 챙겼다.바로 그때 원천신이 갑자기 입을 가리고 가벼운 기침을 두 번 했다.순간 하현은 무의식적으로 원천신의 가슴팍을 바라보았다.하현의 눈이 자신의 가슴팍을 향하는 것을 본 원천신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가 어떤 신분인가?대하의 어중이떠중이가 감히 건방진 눈빛을 할 수 있는가?하현이 자신의 딸을 구해 준 사람이 아니었다면 벌써 원천신의 손바닥이 하현의 얼굴을 스쳤을 것이다.“부인, 제게 이렇게 친절히 대해 주셨는데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하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부인, 혹시 무슨 무학을 수련하셨습니까? 제가 보기에 부인이 수련하신 무학에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수련을 잠시 중단하시거나 아예 수련을 끊으시거나 하지 않으면 오래 살지 못하실 듯 보입니다!”“하현!”원가령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하현이 양제명을 치료했다는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정말이야?”“엄마, 하현은 대단한 사람이야. 하현의 말을 들어야 해!”원천신은 희미하게 눈을 치켜뜨고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당신 눈썰미가 이렇게 좋을 줄 몰랐군. 내가 몸을 좀 튼튼하게 하기 위해 몇 년 동안 무학을 배웠다는 걸 알아차리다니.”“그러고 보니 당신도 대단한 고수 같은데?”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고수까지는 못 됩니다. 부인과 비슷한 처지죠.”“부인께서는 지금 무술을 연마하느라 폐를 상하신 듯합니다. 빨리 수련을 멈추시거나 아니면 아예 그만두시는 게 좋겠습니다.”“그렇지 않으면 나중엔 고칠 약이 없을지도 모릅니다!”“절 못 믿으시겠다면 병원에서 사진이라도 찍어 보세요.”하현은 그녀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자신이 알아봐 줄 수 있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원천신이
하현은 자세히 보려고 눈을 모았고 원천신이 그들의 구심점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남양 스타일의 옷을 입고 새하얀 허벅지를 그대로 드러낸, 그야말로 한눈에 이목을 집중시키는 자태였다.게다가 모인 사람들의 면면이 화려하고 각각의 특색이 분명해 보여서 마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들을 모아 놓은 전시회장 같았다.현장에 있던 남자들도 모두 참지 못하고 이쪽 방향으로 힐끔 눈길을 돌리며 목례를 하고 지나갔다.아쉽게도 그 누구도 함부로 말을 건네지 못했다.원 씨 가문 둘째 아가씨는 페낭에서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보통 남자는 그녀를 감당할 수 없다.일부 부잣집 남자들도 뒷걸음치기 일쑤였다.원천신 같은 여자는 아리따운 장미와도 같았다.아주 매혹적이었지만 자칫하면 가시에 찔려 피를 철철 흘릴 수가 있다.자신 있는 남자가 아니라면 누가 함부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겠는가?“엄마!”원가령이 룸 안으로 들어서며 인사를 했다.“안녕하세요!”“가령이 왔구나!”원천신은 원가령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바로 맨 뒷자리에 있는 곳을 가리키며 담담하게 말했다.“앉아.”말을 마친 후 원천신은 하현은 무시한 채 계속 그녀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하현은 완전히 무시당했다.게다가 룸 안에는 더 앉을 수 있는 의자도 없었다.하현이 얼마나 난처하고 창피해할지 뻔히 눈에 보이는 상황이었다.젊은이가 이런 경우를 당하면 완전히 체면을 잃은 나머지 일부 성깔이 있는 사람은 아예 소매를 뿌리치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갈 것이다.하지만 하현은 내내 담담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SL 그룹에서 3년 동안 산전수전 다 겪은 그에게 새로울 게 뭐 있겠는가?이런 대우를 받은들 그가 안중에 둘 것 같은가?하현은 유유히 핸드폰을 꺼내 룸 안의 문설주에 기대어 뉴스를 보았다.원가령은 이 상황에서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종업원에게 의자를 하나 더 가져다 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원천신의 매서운 눈초리에 감히 입도 뻥긋
”원가령, 이번엔 정말 고마워.”하현은 인테리어 인부들에게 담배를 건네면서 작은 조끼를 입고 신이 나서 임시 감독으로 일하는 원가령을 향해 생수를 한 병 건네주었다.“이번에 당신이 없었다면 이 가게를 이렇게 빨리 열 수 없었을 거야.”“고생한 거 알아줬으니 됐어. 나중에 점심이나 사 줘!”원가령은 고개를 들어 맞은편에 있는 양씨백약 간판에 눈길을 돌렸다.“밥 얻어먹으면 내가 신나서 저것보다는 몇 배 더 큰 간판을 걸어줄게. 당신과 유훤이가 만든 양가백약이 대박 터지도록 말이야!”하현은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좋아. 당연히 밥 사야지!”“그렇지만 광고판 같은 건 내가 처리해도 돼!”며칠 전 하현은 원가령과 양호남의 관계에 대해 알게 되었다.양 씨 가문 도련님과 원 씨 가문 아가씨의 결합이라니 환상적인 조합이었다!양호남의 인품에 대해서 하현이 왈가왈부할 것은 아니었다.원가령이 어떤 남자를 선택하든 그것은 오로지 그녀의 자유이다.그래서 하현은 자신이 끼어들 사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잉! 잉!”그때 원가령의 핸드폰이 바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물끄러미 바라보다 전화를 받은 뒤 하현을 향해 빙긋 웃으며 말했다.“하현, 당신은 정말 운이 좋은 것 같아.”“방금 당신한테 완전히 비싼 점심 사 달라고 덤터기 씌우려고 했더니!”“우리 엄마가 방금 전화가 와서 예비 사위인 당신을 만나고 싶다고 하는군!”“어쨌든 당신은 우리 엄마의 병을 집어내며 생명을 구해 줬으니까!”“당신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고 하셔!”이 말을 들은 하현은 갑자기 머리가 아팠다.지난번 만났을 때 원천신의 태도가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그는 자꾸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원가령이 이렇게까지 해 주는데 자기가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하현은 한숨을 푹 내쉬고 현장 감독인 소미담에게 몇 가지 당부한 후 원가령을 따라나섰다....저녁 6시 정각.하현과 원가
”얼마 전 하현이 경찰서에서 풀려나온 것도 그녀와 관계가 있다고 들었어요.”“그녀는 나한테 복수하기 위해 그랬을 거예요.”양호남은 이렇게 말하면서 핸드폰을 열어 사진을 몇 장 보여주었다.그는 원가령과 찍은 사진을 가리키며 이 모든 일이 자신을 화나게 하기 위한 원가령의 복수임을 증명했다.“그렇게 된 거였군.”그제야 노부인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호남아, 할머니가 이런 말을 하려던 건 아니었지만 잘 들어.”“원 씨 가문의 그 여자는 사생아이지만 어쨌든 원 씨 가문 핏줄이야!”“그녀가 일단 하현 옆에 선다면 양유훤 그 불효막심한 것을 도와 우리를 상대하게 될 거야. 그러면 우리로서는 아주 귀찮게 돼.”“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지.”“원 씨 피를 가진 그 여자가 한사코 그들 편에 서려고 한다면 양가백약은 분명 시판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곤경에 처하게 돼!”“그러니 이 모든 걸 막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애초에 될성부른 떡잎의 싹을 싹 잘라버리는 거야!”노부인의 얼굴에 서늘한 기운이 가득 들어찼다.노부인의 말에 양호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할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노부인은 양호남을 희미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호남아, 할머니는 그 사생아가 너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지만 우리 양 씨 가문의 천추의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억울한 일도 하는 수밖에 없어!”“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원 씨 가문 사생아를 빼앗아 오너라!”“네가 그 여자를 빼앗아 양유훤 그 계집애의 모든 계획을 수포로 만들 수만 있다면 넌 우리 양 씨 가문의 당당한 후계자가 되는 거야. 어때? 문제없겠지?!”“우리가 양유훤 그 연놈을 죽인 후에 독살을 하거나 아니면 교통사고로 위장해서 네 약혼녀인 원 씨 가문 사생아를 처리한다면 다 끝나는 거잖아! 얼마나 쉬운 일이냐?!”“그렇게 되면 네가 황실의 공주와 결혼하다고 하더라도 이 할미는 모든 것을 다 내팽개치고 네 편이 될 거야. 어떠냐?”노
하현은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다른 변고를 피하기 위해 시장 가격에 따라 가게를 매입하려고 했었다.하지만 원가령은 그녀의 것이 곧 하현의 것이라며 자신을 구해 준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고 한사코 고집을 부렸다.게다가 양유훤은 그녀의 절친이었고 양 씨 가문 일이니만큼 그녀는 더더욱 인정과 도리로 이렇게 하고 싶었다.그제야 하현은 원가령의 전 남자친구가 양호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세상이 정말 좁다고 감탄하면서 하현은 원가령을 그냥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곧 가게 인테리어는 기본적인 윤곽이 잡혔고 생산만 잘 따라온다면 바로 오픈할 수 있게 되었다.그런데 갑자기 눈이 번쩍 뜨이게 하는 광경이 보였다.길 건너편에 양씨백약이 있었던 것이다.보아하니 뭔가 기념일 행사를 준비하는 듯 보였다.만약 양가백약의 인테리어 속도가 지금처럼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양씨백약 기념일과 얼추 비슷한 시기에 오픈할 것 같았다.양가백약 간판이 올라가자 그 소식은 양 씨 가문 노부인에게 전해져 그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개자식! 미친놈!”양 씨 가문 대청에서 상석 의자에 앉아 있던 노부인은 상황을 전해 듣고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땅에 세게 내리치며 이를 갈았다.“개자식! 그 천한 것이 지금 어떤 상황이라고?”“감히 양가백약을 내걸어?”“우리랑 지금 해 보겠다는 거야, 뭐야?”“그것도 모자라 우리 가게 맞은편에?”“지금 우리 뺨을 후려치겠다는 거야?”“간이 배 밖에 나온 거야?”양유훤이 이전에 자신과 부딪힌 것을 떠올리자 노부인은 지금이라도 당장 그녀의 뺨을 후려치고 싶었다.그녀는 양유훤과 하현이 어떻게 경찰서에서 풀려나게 되었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할머니, 양유훤과 큰집은 줄곧 나쁜 마음을 품었던 거예요!”“제대로 손에 쥔 것도 없이 우리 양 씨 가문에서 내쫓기자 공개적으로 비난하기 시작했어요!”“아주 마음이 사악하기 그지없어요!”“할머니가 배은망
”앗!”“안 돼!”빌딩 경비원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그들은 마치 꽃잎이 휘날리듯 꽃다운 아가씨의 몸이 눈앞에서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았다.“솩!”바로 그 순간 하현의 몸이 순식간에 움직였다!그의 발끝이 땅바닥에서 맹렬하게 튀어나왔다.마치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그의 몸집이 불쑥 떠오른 것이다.번개처럼 순식간에 공간 이동을 한 것처럼 빠른 속도였다.마치 영화에서 특수효과를 입힌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당황한 원가령이 눈을 감고 죽기를 기다리던 순간 힘찬 손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이 모든 것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고 경비원들은 이 모습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너무나 충격적이어서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생사를 한 번 넘나든 원가령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겨우 정신을 차렸다.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고마워!”원가령은 하현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정말로 죽었을 거라는 걸 모를 만큼 멍청하지는 않았다.하현은 원가령을 안아올리며 말했다.“방금 한 말은 신경 쓰지 마. 당신을 구하기 위해 한 말일 뿐이니까.”원가령은 고개를 끄덕였고 몸을 바들바들 떨며 하현의 몸에 기대었다.하현은 아무 생각하지 않고 그녀를 안고 얼른 옥상을 내려왔다.나중에 그녀가 이 일을 마음속에 두고 떨치지 못한 채 또 옥상에서 뛰어내린다고 할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이때 경찰서 사람들도 도착했다.원가령이 무사한 것을 보고 경찰서 팀장들도 가슴을 쓸어내렸다.어쨌든 이곳은 그들의 관할 구역이었다.원가령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들에게도 매우 번거로운 상황이 닥칠 것임이 분명했다.하지만 어쨌거나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으니 기록을 하긴 해야 했다.사람 좋은 하현은 끝까지 원가령과 함께 경찰서에 나설 참이었다.“소 비서, 이 가게 임대해. 돈이 부족하면 전화해, 알았지?”하현이 경찰차에 올라타면서 소미담에게 당부했다.소미담은
”이미 여러 번 기회를 줬는데도 정신을 못 차리다니!”“점점 더 너무해! 전화 한 통도 없고! 선물 한 번 보내지도 않고!”“쓰레기야! 바람둥이 쓰레기!”“다시는 이런 쓰레기 같은 놈한테 기회를 주지 않을 거야!”“계속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원가령은 얇은 입술을 깨물며 억울한 듯 울부짖었다.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언제라도 옥상에서 떨어질 듯 소리를 지르는 원가령의 모습에 경비원들은 모두 긴장해서 온몸이 얼어버렸다.정말로 여자가 뛰어내린다면 책임져야 할 사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순간 한 경비원이 소리쳤다.“안 돼!”“원가령, 뛰어내리면 안 돼. 이렇게 젊은데 뛰어내리면 어떻게 해?”하현은 앞을 밀치고 나와 얼른 입을 열었다.“잊은 거 아니지? 난 당신 남자친구일 뿐만 아니라 약혼자이기도 하잖아!”“당신 어떻게 내 앞에서 다른 남자 때문에 뛰어내릴 생각을 하는 거야?”“뭐?!”하현의 말을 듣고 경비원들은 어안이 벙벙한 채 의아한 눈빛으로 원가령을 쳐다보았다.사람들은 원래 원가령이 사랑을 위해서는 뭐든지 할 수 있는 청순가련한 여자로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한 남자가 뛰어나와 자신을 남자친구, 약혼자라고 주장하며 다른 남자 때문에 생을 마감하려는 그녀를 말리고 있는 것이다.이게...원래 세상에 아무런 미련도 없던 원가령은 비틀거리며 술을 마시다 뛰어내리려고 했다.그러나 그녀는 갑자기 뛰어든 하현의 성난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하현, 우리가 친한 사이긴 그렇다고 사람들 앞에서 날 이렇게 모욕할 순 없어!”“어서 빨리 설명해! 우리 사이는 결백하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사이라구!”하현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원가령, 어디서 그 말을 했는지 잊었어? 경찰서야. CCTV에 다 찍혀 있다구!”“당신이 내 여자친구인지, 내 약혼녀인지 난 언제든 증명해 보일 수 있어! CCTV를 돌려보기만 하면 되는 일이야!”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소미담도 자신의 부족한 경험 때문에 하현이 힘들게 되었다는 걸 알고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하현, 제가 경험이 부족해서 힘들게 해 드렸습니다.”하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무실 문을 나섰다.그가 막 차를 잡으려고 나왔을 때 갑자기 길모퉁이 한 상점으로 시선이 떨어졌다.이곳은 예전에 대형 명품숍이었는데 남양인들한테 별로 구매력이 없다는 이유로 지금은 문을 닫았다.그리고 가게 입구에도 ‘임대’라는 플래카드가 크게 걸려 있었다.하현은 몇 번을 유심히 눈길을 준 후에야 고개를 끄덕였다.“몫이 아주 좋군. 만약 우리 양가백약의 플래그십 스토어로 만들 수 있다면 분명 효과가 좋을 거야!”소미담도 이 가게의 지리적 위치가 매우 좋다는 것을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문제없습니다. 제가 바로 관리사무소에 연락해서 임대를 알아보겠습니다.”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임대하지 말고 그냥 사. 돈이 부족하면 나한테 말하고.”기세도 등등한 데다 돈까지 많은 하현이 소미담에게 혓바닥을 살짝 내밀며 깨방정 같은 모습을 보이자 그녀는 하현이 진정한 ‘보스'라는 생각이 들었다.하현은 말을 마치며 택시를 잡으려고 손을 흔들자 운행하던 택시들이 일제히 멈춰 섰다.게다가 운전기사들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일제히 사무실 건물 꼭대기에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그들의 시선을 따라 하현도 시선을 돌려보았다.순간 그는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건물 꼭대기 난간 가장자리에 한 여자가 넋을 잃고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여자는 금방이라도 발을 헛디뎌 건물 아래로 추락할 것 같았다.소미담은 이 모습을 보고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행인들은 하나같이 위를 가리키며 호들갑을 떨었고 몇몇은 핸드폰을 들어 관청에 신고하려고 했다.하현은 잠시 눈을 희미하게 모으더니 순간 안색이 변했다.투신하려는 사람이 그가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다!원가령!하현은 많은 것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바로 옥상으로 돌진했다.위에는 이미
아무 말도 없이 이 장면을 지켜보던 하현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청장님 마음 이해합니다.”청장은 손바닥을 휘둘러 여세광의 얼굴을 수차례 더 때린 뒤 냉랭하게 말했다.“어서 하 선생님한테 사과하지 못해?!”“하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여세광은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며 굽신거렸다.“잘못했습니다. 선생님 일은 바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하현은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무릎 꿇고 말해.”“들었어 못 들었어? 무릎 꿇고 말해!”하현의 말을 듣고 여수혁은 대략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여수혁은 이를 악물고 한 발로 여세광을 발로 차며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여 씨 가문이 하마터면 하현에게 폭삭 주저앉을 뻔했는데 감히 이 자식이 하현을 괴롭히다니!한차례 발길질에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여수혁은 몇 번을 더 여세광을 향해 발길질을 했다.여세광은 얼굴이 부어올랐지만 일어서지도 저항하지도 않고 밀려오는 고통을 견뎠다.이 광경을 보고 있던 하현은 여수혁의 발길질이 더 이어지면 여세광이 기절할 것 같아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렸다.“우선은 그만 때려.”여세광은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일을 다 처리한 후에 때려도 늦지 않아.”하현은 덤덤한 목소리로 말하면서도 여세광에겐 눈길도 주지 않았다.이 말에 얼굴이 새까맣게 타들어간 여세광은 어떤 말대꾸도 저항도 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바닥에 있는 자료들을 주워 모은 뒤 책상으로 올라가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하현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무덤덤한 눈빛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만약 자신이 남양에서 아무런 뒷배도 없었다면 이런 하찮은 사람들에게까지 무시를 당하며 피를 토했을지도 모른다.이러니 평소에 일을 보러 온 기업인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당했을까?가히 짐작하고도 남을 정도였다.그러나 남양의 업무 스타일이 어쨌든 그것은 하현과 무관하며 남양 관청을 대신해 이 부조리를 정리하기도 성가신
양손에 깁스를 하고 머리에 붕대를 감은 여수혁의 발걸음이 비틀거리며 다급하게 다가왔다.그리고 기업청 고위층들이 여수혁의 뒤를 따라다녔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얼굴색이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여수혁, 이사님들.”여수혁 옆에 있던 여자와 다른 직원들은 모두 허둥지둥 물러서며 너 나 할 것 없이 깍듯이 인사를 했다.여수혁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페낭 기업청의 청장과 부청장이며 모두 높은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고위급 사람들의 눈에 여세광을 비롯한 보통 직원들은 단번에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 사람들이었다.여수혁은 이 사람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하현에게 얼른 걸어가 상전을 모시듯 말했다.“하현, 여기 당신을 괴롭히는 사람 있어?”“어느 개자식이 곰쓸개라도 씹어 먹은 거야?”“죽여버리겠어!”여수혁이 하현한테 와서 아첨하듯 떠받드는 모습을 보고 여세광과 여자의 안색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그들은 하현이 정말로 전화 한 통으로 사람을 불러들일 줄은 몰랐다.여수혁은 페낭에서 이 씨 가문, 원 씨 가문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거물이었다!페낭에서 거칠 것이 없는 이런 거물이 어떻게 하현 앞에서는 강아지 마냥 비위를 맞추고 있는 것인가?여세광은 넋이 나간 듯 정신이 멍해졌다.다리에 힘이 빠져 제자리에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아니야. 어떻게 날 괴롭힐 수 있겠어?”하현은 자료를 바닥에 던지고 가볍게 입을 열었다.“다만 내가 남양에는 이렇다 할 자산이 별로 없어서 상처치료제를 좀 팔아서 가족을 부양하고 싶은데 그 일이 잘 안 되어서 말이야.”“여 과장이 여 씨 가문 사람이라고 하길래 당신을 부른 거야.”“내가 그에게서 할 수 없는 일을 여수혁 당신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야.”“그래서 당신한테 전화를 했던 거야. 혹시 밖에서 다른 사람들 한창 괴롭히고 있는데 내가 방해한 건 아니지?”하현의 말을 들은 여수혁은 그를 볼 낯이 없는지 하마터면 무릎을 꿇을 뻔했다.겨우 안색을 추스른 여수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