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은 동그란 얼굴의 여형사를 휙 쳐다보며 말했다.“만약 원가령의 모친과 원가령이 이 자리에 없었다면 내 손안에 있는 이 증거를 당신들이 없애버리지 않고 고이 간직하게 해 주었을까?”동그란 얼굴의 여형사는 흠칫 놀라며 자신도 모르게 옆에 있는 대머리 팀장을 쳐다보았다.대머리 수사팀장은 하현을 매섭게 쏘아보다가 얼른 머리를 숙였다.하현은 이제 원 씨 가문을 뒷배로 둔 사람이 되었고 확실한 증거도 있으니 경찰 당국으로서도 그를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30분 후 하현은 경찰서에서 무사히 풀려났다.원가령 모친과 원가령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풀려날 수 있었겠지만 어쨌거나 두 사람이 옆에서 도와준 건 사실이기 때문에 하현은 깍듯한 목소리로 말했다.“부인, 원가령. 고맙습니다!”“이 일은 잊지 않겠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식사라도 대접하겠습니다!”원가령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하현, 페낭에서 내가 뒷배가 되어줄게.”“우리 엄마는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원 씨 가문 둘째 딸이야. 페낭이나 남양에선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지!”원천신은 원가령의 말을 듣고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며 말했다.“가령아, 쓸데없는 말 하지 마!”“하현이 무사히 빠져나온 건 큰 잘못이 없기 때문이야.”“정말로 죄가 있었다면 내가 아무리 역량이 뛰어나다고 해도 절대 그를 빼내올 수 없지.”“우리 원 씨 가문 권력은 이런 일에 쓰라고 있는 게 아니야.”원천신의 말속에 희미한 경고의 메시지를 읽은 하현이 담담하게 웃었다.그는 원래 원가령에게 득을 볼 생각도 없었으므로 이에 개의치 않았다.“어쨌든 오늘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다음에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제 능력껏 최선을 다해서 돕겠습니다.”원천신은 이 말을 듣고 한쪽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렸다.원 씨 가문은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이며 최근에는 대하에서 막 부상하고 있는 천일 그룹과도 연을 맺었다.
하현이 원천신의 이런 마음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하현은 개의치 않을 것이다.어쨌든 어머니가 자식을 보호하는 한 방법이니 당연한 일이다.그는 명함을 받아 챙겼다.바로 그때 원천신이 갑자기 입을 가리고 가벼운 기침을 두 번 했다.순간 하현은 무의식적으로 원천신의 가슴팍을 바라보았다.하현의 눈이 자신의 가슴팍을 향하는 것을 본 원천신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가 어떤 신분인가?대하의 어중이떠중이가 감히 건방진 눈빛을 할 수 있는가?하현이 자신의 딸을 구해 준 사람이 아니었다면 벌써 원천신의 손바닥이 하현의 얼굴을 스쳤을 것이다.“부인, 제게 이렇게 친절히 대해 주셨는데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하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부인, 혹시 무슨 무학을 수련하셨습니까? 제가 보기에 부인이 수련하신 무학에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수련을 잠시 중단하시거나 아예 수련을 끊으시거나 하지 않으면 오래 살지 못하실 듯 보입니다!”“하현!”원가령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하현이 양제명을 치료했다는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정말이야?”“엄마, 하현은 대단한 사람이야. 하현의 말을 들어야 해!”원천신은 희미하게 눈을 치켜뜨고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당신 눈썰미가 이렇게 좋을 줄 몰랐군. 내가 몸을 좀 튼튼하게 하기 위해 몇 년 동안 무학을 배웠다는 걸 알아차리다니.”“그러고 보니 당신도 대단한 고수 같은데?”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고수까지는 못 됩니다. 부인과 비슷한 처지죠.”“부인께서는 지금 무술을 연마하느라 폐를 상하신 듯합니다. 빨리 수련을 멈추시거나 아니면 아예 그만두시는 게 좋겠습니다.”“그렇지 않으면 나중엔 고칠 약이 없을지도 모릅니다!”“절 못 믿으시겠다면 병원에서 사진이라도 찍어 보세요.”하현은 그녀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자신이 알아봐 줄 수 있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원천신이
”당신이 내 건강을 걱정해 준 건 고마워. 기회가 되면 건강 검진받으러 갈게!”“하지만 오늘은 이만. 나와 가령이는 먼저 가봐야겠어!”원천신의 눈에 의미심장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그럼 몸조심하고!”하현은 원천신의 의미심장한 표정을 보고 그녀가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부인, 잠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부인을 좀 살펴봐도 되겠습니까?”“됐어, 하현. 내가 면전에서 당신을 내치지 않은 것은 가령이의 체면을 봐서였어!”“아주 고분고분하게 대해주니까 만만하게 보는군!”원천신은 한 걸음 앞으로 나가 단둘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원천신이 화가 난 것을 보고 하현은 한숨을 내쉬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하현의 뒷모습을 보고 원천신은 냉랭한 얼굴로 코웃음을 친 후 원가령을 데리고 도요타 엘파에 올라탔다.원가령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어머니를 당해낼 수는 없었다.“가령아. 그가 널 구해 주고 양호남을 때리긴 했지만!”“양호남과 같은 부류가 아니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니?”“양호남은 예전에 네 남자친구이면서도 널 함정에 빠뜨릴 뻔했는데 하물며 방금 만난 저 사람은 어떻겠어?”“앞으로 연락하지 마! 절대!”원천신은 말을 하면서 긴 다리를 꼬며 냉랭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앞으로 어떤 장소에서든 그가 너의 남자친구라든지 약혼자라든지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돼. 알았니?”“시집을 가더라도 성실하고 진솔한 사람한테 가야지. 저런 사람은 안 돼!”“저런 사람은 사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평범한 친구로 만나는 것도 허락할 수 없어!”원천신은 화가 몹시 난 모양이었다.하현과 양 씨 가문의 원한은 둘째치고 이유 없이 남의 일에 말려드는 것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감히 그녀가 수련하는 무학에 잘못된 것이 있고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니!그녀는 일찌감치 하현에게 호감을 잃었다.젊은 사
원천신이 직접 병원에 가서 검사한 일을 하현은 당연히 알지 못했다.그는 경찰서를 떠난 뒤 바로 양유훤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리고 차를 한 대 불러서 곧바로 양 씨 가문 별채로 향했다.양유훤은 하현이 스스로의 힘으로 빠져나올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그래서 집안 주방장에게 성대한 식사를 준비하게 했다.취조실에서 고생한 하현을 위로하고 보상해 주려는 의도였다.“하현,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양유훤은 하현에게 직접 와인을 한 잔 따라주며 묘한 눈웃음을 지었다.하현이 오늘 양 씨 가문에서 그녀를 유일한 양 씨 가문 일인자로 만들겠다고 한 것에 그녀는 무척 흥미가 있었다.그녀에게도 이렇게 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그렇게 되면 더 이상 양 씨 가문 노부인의 통제를 받을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양 씨 가문의 영광을 다시 회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하현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난 항상 단순하게 일을 해 왔어. 양 씨 가문이 그토록 페낭 무맹과 연을 맺고 싶어 했지만 우리는 그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었어.”“이참에 페낭 무맹이 바로 우리 편에 붙어 들러리가 되도록 해야지.”“페낭 무맹이 우리 편이 되면 페낭 무맹한테 빌붙어 겨우 연명하고 있는 양 씨 가문은 자연스럽게 우리 손아귀에 있게 되는 거야.”“앞으로 페낭은 물론 남양에 이르기까지 양 씨 가문은 당신이 손에 쥐게 되는 거야.”하현은 양 씨 가문의 협박이나 독살 시도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양유훤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당신 말대로 할게. 그렇지만 당신이 혼자 이리저리 뛰는 걸 나도 보고만 있을 순 없지, 안 그래?”하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내 기억이 맞다면 양 씨 가문이 예전에 상처치료제를 만들었었지?”양유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 수십 년 전에 우리 양 씨 가문에서 만든 약은 남양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명했어.”“치명적이지 않은 웬만한 상처에는 일정량만 바르면 바로 지혈이 되고 상처를 아물게
충격에 휩싸인 양유훤의 얼굴을 보고 하현도 약간 어리둥절했다.세상 일은 정말 어디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다.그러나 어쨌거나 다행한 일이었다.양유훤이 이 조제법으로 약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그렇게 된다면 빠른 시일 내에 남양 3대 가문에 속했던 과거의 영광을 다시 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두 사람이 이 조제법으로 최대한 빨리 약을 생산하는 방법에 대해 얘기하려는 순간 갑자기 양유훤의 핸드폰이 바쁘게 울리기 시작했다.핸드폰을 꺼내 잠시 들여다본 양유훤은 갑자기 안색이 어두워진 채 고개를 돌려 하현을 바라보았다.“하현, 일이 잘 안될 것 같아.”“여수혁이 방금 법원에 내 명의로 된 남양 자산을 모두 동결하는 소송을 제기했어.”“자산이 없으면 물건을 만들고 싶어도...”양유훤은 쓴웃음을 지었다.양 씨 가문 사람들이 이렇게 염치없는 짓까지 할 줄은 몰랐다.양 씨 가문 사람들이 자세한 속사정을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여수혁이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그녀를 고소할 수가 있겠는가?“여수혁, 페낭 무맹...”하현은 양유훤의 말을 듣고 웃으며 손을 뻗어 양유훤의 손에서 전화기를 가져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걱정하지 마. 이 일은 나한테 맡겨.”“양 씨 가문을 손에 쥘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내가 약속했잖아. 난 말한 것은 지키는 사람이야!”...“붕!”밤 10시 정각.페낭의 해변가 술집 거리에 차가 한 대 멈춰 섰다.이어 하구봉이 강옥연을 비롯한 몇 명을 데리고 차에서 내려 거침없이 미성 주점으로 들어섰다.오늘 밤 그들의 임무는 여수혁을 찾는 것이었다.술집에 들어서자마자 사방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다.여수혁이 소유한 이 술집은 장사가 아주 잘 되기로 소문난 곳이었다.홀에는 빈 좌석 하나 보이지 않았고 댄스 플로어에는 남녀가 미친 듯이 몸을 뒤흔들고 있었다.많은 여자들 곁에는 침을 질질 흘리며 손길을 바라는 남자들이 거머리처럼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하구봉이 이렇게 고집하자 강옥연도 더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하현의 명령은 여수혁을 잡아오라는 것이었다.이런 사소한 일에 많은 인력을 동원한다면 하현이 그들의 능력을 의심할지도 모른다.그들 일행 다섯 명은 2층 룸에 앉았다.룸은 큰 편이 아니지만 세련되게 꾸며져 있었고 창가 자리에서는 아래층 댄스 플로어를 볼 수 있어서 술집 전경이 대충 한눈에 들어왔다.이곳에 앉아 좋은 술을 맛보고 미녀들의 몸을 끈적한 눈으로 감상하고 있노라면 누구나 황제가 된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손님, 뭘로 주문해 드릴까요?”하구봉과 강옥연 일행이 자리에 앉자마자 간호사 복장을 한 종업원이 요염한 몸놀림으로 나타났다.간호사 복장 아래 아찔한 그물 스타킹 사이사이로 보이는 늘씬한 각선미가 보는 이의 가슴을 벌렁거리게 만들었다.“만약 내가 드래곤 세트를 주문한다면 오늘 밤 나와 놀아줄 수 있어?”하구봉은 흑심을 가득 품은 눈빛으로 종업원의 허벅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그리고 오른손을 내밀며 스스럼없이 종업원의 허벅지를 주무르기 시작했다.“물론이죠!”“하지만 나와 하룻밤 보내려면 최소 두 세트는 주문해야 해요!”“두 세트? 세 세트로 하지!”“오늘 퇴근하고 나면 나랑 2박 3일은 놀아줘야 해, 알았지?”하구봉은 통 큰 사람처럼 흔쾌히 손을 흔들며 다리를 꼰 뒤 일부러 강옥연을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참, 한 가지 더.”“내 여동생이 내가 힘이 좀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아서 말이야!”“내가 어느 술집을 가든 사장이 와서 나랑 술잔을 기울인다고 했는데 잘 안 믿는 거야!”“그래서 말인데. 내가 세 세트 주문하면 사장이 와서 나랑 건배해 줄 수 있을까? 내 체면 좀 세워 줘!”말을 하면서 하구봉은 알록달록한 지폐 뭉치를 꺼내 종업원의 옷에 쑤셔 넣었다.이 모습을 본 강옥연의 미간이 차갑게 굳었지만 하구봉이 일부러 그런 행동을 하는 거란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도 잠자코 있었다.“고마워요, 사장님!”종업원
문이 열리자 수십 명의 남자들이 들이닥쳐 순식간에 룸 안을 빼곡히 메웠다.선두에 선 남자는 골프채를 들고 있었는데 흉악한 얼굴에 풍기는 살벌한 기운이 사람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하구봉은 얼굴이 싸늘해지며 자신도 모르게 내뱉었다.“건방진 놈! 우리가 여기서 술 마시고 있는 게 안 보여?”“뭘 하려는 거야?”“어? 뭐 하려고?”“뭘 할 거냐고?”앞장섰던 남자는 쓸데없는 말 대신 오른손을 휙휙 휘두르며 경멸의 표정을 지었다.“당연히 죽이러 왔지!”수십 명의 남자들이 동시에 앞으로 돌진하며 손에 쥔 골프채를 계속 휘둘렀다.장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술을 마신 하구봉은 몸이 나른해져서 즉각적인 반응을 할 수 없었다.오히려 강옥연이 긴 다리로 앞에 있는 탁자를 걷어차서 몇 명의 사내들을 내리쳤다.자신들의 계획이 이미 발각된 것을 알아차린 강옥연이 얼른 소리쳤다.“얼른 도망가!”“퍽!”말이 끝나가도 전에 앞장섰던 남자는 몸을 휘두르며 강옥연의 몸을 걷어찼다.정말로 고수다운 몸놀림이었다.강옥연도 몸놀림이 좋았지만 상대가 안 될 정도로 걷어차여 비명을 지르고 코너로 굴러갔다.“강옥연!”하구봉은 안색이 급변해서 주변에 있던 사내들을 몇 번이고 걷어차 넘어뜨렸지만 기습하던 남자가 휘두르는 맥주병에 머리를 심하게 맞았다.‘따깍’하는 소리와 함께 하구봉의 몸이 흔들거렸다.그가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야구 방망이가 그의 무릎을 세게 후려치는 소리가 들렸다.결국 하구봉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남자들은 모두 무술을 익힌 사람들이고 싸워 본 경험도 풍부한 것이 틀림없었다.함부로 상대하다가는 실력이 막강한 하구봉에게 반격을 당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만반의 준비를 한 것이었다.하구봉, 강옥연, 그리고 그들의 세 부하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널브러졌다.좁은 룸에서 하구봉은 술을 마신 상태였고 그만큼 반응이 느려 30%도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그는 반격할 힘
”퍽퍽퍽!”주위에 있던 사내들이 일제히 술병을 들고 하구봉을 향해 덤벼들었다.하구봉은 몇 번을 간신히 막아냈지만 결국 술병에 맞아 바닥에 쓰러졌다.“퍽!”선두에 있던 남자가 직접 골프채를 들고 하구봉의 등을 강타한 것이다.하구봉은 ‘악'하는 소리와 함께 피를 한 모금 내뿜고 그대로 주저앉아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켰다.“그만! 그만!”강옥연이 머리가 헝클어진 채 포효했다.“당신들 이렇게 함부로 하다가 나중에 후회할 거야!”“퍽!”앞에 있던 남자가 강옥연의 얼굴에 뺨을 한 대 갈겼다.“후회?”“당신들을 이대로 두는 게 더 후회될 거 같은데!”“똑똑히 들어! 당신네 대하인들은 우리 페낭에선 아무것도 아니야!”“돈푼깨나 있다고 우리 페낭에 와서 위세 좀 부려도 된다고 생각한 모양인데, 어림도 없어!”“게다가 뭐? 여수혁이 여기 와서 같이 건배를 하라고?”“우리 형님을 엿 먹이려는 거지? 그래서 우리 형님이 일찌감치 말했던 거야. 대하인들이 찾아오면 볼 것도 없이 밟아 주라고!”“쳐! 어서 죽여버려!”이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 있던 수십 명의 사내들이 음흉하게 웃으며 악랄하게 움직였다.강옥연도 예외일 수 없었다.그녀는 수차례 뺨을 맞았을 뿐만 아니라 옷이 찢어져 살갗이 그대로 드러나 버렸다.몇몇 사내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강옥연의 옷을 마구 벗기려고 했다.피를 토하던 하구봉은 몸을 던져 이 사내들을 밀어내고 강옥연의 앞을 가로막았다.“당신들! 여기서 손 떼지 않으면 나중에 분명 후회하게 될 거야!”하구봉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이렇게 억울하고 분한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속이 터질 것 같았다.“후회?”선두에 선 남자는 서늘한 미소를 잠시 보이다가 차가운 얼굴빛으로 말했다.“내가 이 바닥에 오래 살면서도 후회란 게 뭔지 모르고 산 사람이야!”“게다가 우리 여수혁 형님 뒤에 누가 있는지 당신들 모르지?”“페낭 무맹, 남양 무맹이 우리 형님을 지지하고 있어!”“그런 거
하현의 말을 듣고 이미 돌아섰던 필립 선생의 발걸음이 순간 멈칫했다.먹으면 죽는다고?하현의 말을 들은 원천신 일행은 모두 깜짝 놀라 무의식적으로 앞에 놓인 계란을 보았다.필립 같은 셰프가 차려준 귀족 음식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고?이럴 수가?!처음에 경악했던 일행들은 겨우 정신을 차렸다.분명 하현이 눈도장을 확실히 찍으려고 뭔가 속임수를 쓰는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하현, 무슨 말을 하는 거야?!”“필립 선생님이 누군지 알아? 그는 노국 궁정에서 일했어. 지금 노국 황실에서 일하는 셰프들은 모두 그의 제자들이야!”“그가 만든 요리가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거야?”“당신이 이렇게 거리낌 없이 함부로 지껄이는 건 필립 선생님뿐만 아니라 노국 황실을 모독하는 거야!”“보잘것없는 촌놈이, 감히 뭐라도 된 것 마냥 지껄이다니?!”“당신 같은 사람이 트러플이 뭔지나 알아? 캐비아가 뭔지나 아냐고?”“사과해! 어서 당장 무릎 꿇고 사과해!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오늘 멀쩡한 몸으로 못 나갈 줄 알아!”원천신 일행들은 모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하현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필립 선생님은 요리사일 뿐만 아니라 고귀한 노국 귀족이었다!이런 거물을 감히 촌뜨기놈이 모욕을 하다니!절대 가만히 내버려둘 수 없는 일이다!만약 필립 선생님이 화가 나서 앞으로 이곳에 오지 않는다면 그녀들은 어디 가서 노국 황실의 음식을 맛볼 수 있겠는가?이 말을 페낭 사람들이 듣는다면 배꼽이 떨어져라 비웃을 것이다!엉터리 상처치료제나 파는 하현이 감히 분수도 모르고 신선이나 되는 줄 입을 놀리는 것인가?“이봐, 사람이 되먹지 못하면 말이야. 맨날 잘난 척만 하고 자기가 모든 걸 다 안다고 생각하지. 지금 당신은 자신이 완전히 뭐라도 된 줄 알지!”원천신은 매서운 눈빛으로 차갑게 말했다.“얼른 무릎 꿇고 사과해. 그렇지 않으면 필립 선생님이 사람을 부를 필요도 없이 내가 먼저 당신을 여기서 내쫓을 테니까!”“
원천신의 말을 들은 원가령은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허투루 내뱉은 말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다.자기가 하현과 사귄다고 한 것은 화가 나서 한 말일 뿐이었다.딸의 표정을 본 원천신은 딸이 자신의 말에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마지막 회심의 일격을 날려 이 일을 마무리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평생을 함께 하는 것은 차치하고, 지금 당장 그는 이 귀족 음식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도 모르잖아! 칼과 포크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 수가 없지!”“이런 상식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너와 평생 함께 할 수가 있겠니?”“정말로 평생 남자 뒤치다꺼리나 하며 살고 싶어서 그래?”“너 정말 그런 생활을 견딜 수 있겠니?”원가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현과 자신의 생활습관이 확실히 다를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평생 고달픈 인생을 살라니, 그녀는 정말이지 참을 수가 없었다.바로 그때 머리를 빈틈없이 빗어 넘긴 채 연미복을 입은 금발의 파란 눈에 나이 지긋한 웨이터가 음식을 들고나왔다.뚜껑이 달린 뜨거운 철판이 원천신 앞에 놓였다.뚜껑 속에서는 버터가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향긋한 냄새를 풍겼다.코를 자극하는 향긋한 냄새가 불어와 사람들의 식욕을 마구 끌어당겼다.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웨이터가 입을 열었다.“부인, 제가 가장 잘 하는 노국의 귀족 음식입니다.”“오늘 여기 모이신 아름다운 분들에게 특별히 선사하는 음식이니 천천히 즐기시길 바랍니다.”이 말을 듣고 지금까지 노기가 가득 서렸던 원천신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어올랐다.그녀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띤 채 존경의 눈빛으로 말했다.“존경하는 필립 선생님, 이렇게 환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다른 여자들도 모두 방긋 웃으며 화답했다.“감사합니다. 필립 선생님. 이런 귀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니 영광입니다.”필립 선생은 기분 좋은 듯 환한 미소를 보이며 두 손을 뒷짐진 채 거만한 표정을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뻔뻔하게 원가령이랑 사귀고 싶어서가 아닙니다.”“전 단지 당신에게 말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원가령은 당신 딸이지만 혼자서 충분히 설 수 있는 사람입니다.”“원가령은 온전한 자신의 삶이 있어요.”“자신의 삶을 선택할 권리가 있고요.”“당신이 저더러 여기서 물러나라면 그러겠습니다. 아무래도 괜찮아요.”“그러나 오직 원가령 입에서 그 말이 나와야 합니다. 원가령이 그렇게 말하면 저는 두말없이 바로 물러가겠습니다.”“만약 원가령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전 여기서 물러나지 않을 겁니다.”“그녀가 절 이 식사에 초대했기 때문이죠. 당신도 아니고 이 여자들도 아니죠!”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원가령을 대신해 이 단순한 논리를 조목조목 따졌다.그는 원천신의 말과 행동으로 미뤄 보아 그녀가 통제욕이 아주 강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차렸다.만약 그녀가 계속 이렇게 하도록 내버려두면 원가령의 인생이 그녀의 모친 때문에 망가질 수도 있었다.그래서 하현은 원가령의 친구로서 원천신에게 이 점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그는 다른 점에 관해서는 추호도 나설 생각이 없었다.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고 있던 원가령의 눈엔 어느새 뭉클함이 묻어나오고 있었다.하현이 이렇게 자신을 존중해 주고 기꺼이 자신을 대신해 이런 말을 해 줄 줄은 몰랐다.심지어 자신의 어머니 같은 거물을 상대하면서도 조금도 비굴하지 않았다.순간 원가령은 마음속에서 안타까운 한숨이 터져 나왔다.만약 하현의 가문이 형편없지 않았다면 그녀는 정말 하현을 선택했을 것이고 의리로라도 그에게 시집을 갔을 것이다.마치 자신에게 훈계를 늘어놓는 듯한 하현의 말을 듣고 원천신의 눈빛이 서늘해졌다.그녀는 하현 같은 사람들을 높이 평가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오히려 경멸하는 마음이 용솟음쳤다.대단한 가문 도련님이 이런 말을 했다면 그건 당연한 일로 받아들일 수 있다.하지만 빈털터리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웃음거리밖에 되
”가령아, 내 말 좀 들어봐!”“네가 최선을 다해 상처치료제 시판을 도운 덕택에 그가 우리 레벨에 들어왔다고 치자!”“그렇지만 문제는 그가 들어왔다고 해도 어울리지 않을 거라는 거야. 그의 몸에서 나는 약냄새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멀리하게 만들 거야!”“그리고 심지어 네 엄마, 네 가문 모두 너의 선택 때문에 남양의 웃음거리가 될 거야!”“가령아, 원 씨 가문까지는 생각하지 않더라도 네 엄마를 생각해야지, 안 그래?”“원 씨 가문에서 네 엄마가 얼마나 힘든데 너까지 이러면 네 엄마가 얼마나 더 곤란해지겠니?”원가령이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가운데 또 다른 여자가 부채질을 하며 거들었다.그녀의 시선은 하현에게로 향했다.“사람이 분수를 알아야지.”“당신이 상처치료제를 팔고 싶다면 우리가 가령이 얼굴을 봐서라도 얼마든지 주문해 줄 수 있어.”“당신이 엉터리 가짜약을 팔고 싶다면 그냥 팔면 되지만 헛된 꿈을 꾸진 마. 엉터리 약 하나 판다고 우리 상류사회로 비집고 들어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이 세상에는 당신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있어.”“당신이 태어날 때 가지지 못한 것은 절대 평생 가질 수 없어.”“무슨 말인지 알겠어?”말을 마친 여자는 방긋 웃으며 라피트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그녀는 자신이 한 말이 상대를 충분히 설득시켰다고 생각했다.상류사회 출신이라는 것이 모든 것을 말해 준다.하현은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다.여자들의 빈정거림에 화를 내는 대신 그저 무덤덤한 표정으로 일관했다.그녀들도 어쨌든 원가령을 생각해서 이런 말을 했을 테니 어느 정도 원가령을 보호하기 위한 배려라고 볼 수도 있었다.원가령이 자신을 위해 도와준 것을 생각한다면 이 여자들의 이런 험한 말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그는 여자들이 얼마든지 훈계를 늘어놓도록 내버려두었다.그러나 하현이 별로 따지고 싶지 않은 듯 심드렁한 자세를 보이자 원천신의 눈빛이 매서워졌다.그가 그녀들을 얕보고
원천신은 의미심장한 눈초리로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은행 카드가 테이블 위에 놓이자 옆에 있던 여자들은 비아냥거리는 미소를 입가에 떠올렸다.그때 하현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오늘 식사 초대는 핑계였던 것이다.사람들 앞에서 있는 대로 하현에게 망신을 주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그러나 문제는 하현이 원가령에게 남녀의 마음을 조금도 품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쌍방이 친구가 된 것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일 뿐이었다.오늘 여기에 그가 온 것은 며칠 동안 원가령이 너무 고생했기 때문에 이 기회에 원천신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어서였다.심지어 그는 우윤식에게 천일 그룹이 원천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도록 당부할 참이었다.그러나 원천신은 하현이 품은 선의를 와장창 깨부수는 태도를 보였다.게다가 경멸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아 하현의 마음을 언짢게 만들었다.사실 원천신이 이런 말을 하건 어쨌건 하현은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어쨌든 그와 원가령은 아무 사이도 아니었기 때문에 자초지종을 설명하면 끝이었다.하지만 문제는 거지를 내쫓듯이 막무가내로 대하는 원천신의 태도가 하현을 적잖이 불쾌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그가 바로 돌아서서 그 자리를 떠나려고 하자 원가령이 오히려 화를 내고 나섰다!그녀는 벌떡 일어서서 다정하게 하현의 팔짱을 끼며 소리를 질렀다.“엄마! 너무한 거 아니야!”“엄마가 하현한테 식사 대접한다고 해서 데려온 거잖아!”“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대할 수 있어?”“게다가 엄마 목숨을 구해 준 사람이야! 기억 안 나? 며칠 전에 하현이 엄마 목숨을 구해 줬잖아!”“나와 이 사람이 맞지 않다고 하더라도 엄마한테는 생명의 은인이잖아! 은혜를 알았으면 보답하는 도리를 보여야 하잖아! 그것도 몰라?”“그리고 하현이 아무리 형편없다고 해도 엄마가 소개한 양호남보다는 훨씬 낫잖아?”“적어도 하현은 양호남 같은 쓰레기는 아니야! 함부로 다른 여자랑 엮이는 파렴치한이 아니라고!”“난 이런 진실
원가령은 안절부절못했다.자신의 어머니가 하현 같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자리에 하현을 데리고 식사를 하러 나왔다는 것이 문제였다.원천신이 하현을 이렇게 내버려두는 것은 정말이지 예의가 아니었다.그러나 원가령은 자신도 이런 자리에서는 함부로 끼어들 수가 없었다.10여 분 동안 이야기를 나눈 후 모두의 화제는 마침내 의도치 않게 끝이 났다.환한 미소를 지으며 수다를 떨었던 원천신의 시선이 그제야 하현에게로 향했다.그녀는 자신의 손목에 찬 까르띠에 손목시계를 보며 힐끔 하현을 바라보았다.뭔가 꿍꿍이가 가득 담긴 눈빛이 그녀의 눈동자를 스쳤다.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의도치 않게 하현에게로 향했다가 별일 아닌 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시선을 거두었다.“하현, 지난번에 당신이 나한테 일깨워준 덕분에 문제를 잘 발견했어.”“아주 고맙게 생각해.”원천신은 무덤덤한 얼굴로 가볍게 입을 열었다.하현 덕분에 폐결핵을 알게 된 건 그저 사소한 일일 뿐이라는 듯 심드렁한 말투였다.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의사의 조언에 따라 앞으로 격렬한 운동은 피하고 몸조리하는 데 신경 쓴다면 완치에 크게 문제가 없기 때문이었다.원천신은 하현이 어쩌다 운이 좋아 그런 걸 발견했다고 생각했다.게다가 그녀의 마음속엔 하현이 불길한 말을 잘하는 사람이어서 폐결핵을 알아차렸다고 여겼다.그래서 원천신은 지금 고맙다고 말은 하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미움이 도사리고 있었다.그리고 가타부타 미동도 없는 하현의 표정과 동작을 보니 원천신은 더욱 그가 못마땅했다.그녀는 자신의 딸이 마땅히 부잣집에 시집가야 한다고 생각했다.천일 그룹과 대성 그룹의 배후에 있는 인물에게 시집갈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젊은 후계자에게는 시집가야 하지 않겠는가?하현 같은 촌뜨기가 어딜 넘봐?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그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은 방금 급하게 산 것이거나 그마저도 자신의 딸이 사 줬을 가능성이 높았다.이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자 원천
하현은 자세히 보려고 눈을 모았고 원천신이 그들의 구심점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남양 스타일의 옷을 입고 새하얀 허벅지를 그대로 드러낸, 그야말로 한눈에 이목을 집중시키는 자태였다.게다가 모인 사람들의 면면이 화려하고 각각의 특색이 분명해 보여서 마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들을 모아 놓은 전시회장 같았다.현장에 있던 남자들도 모두 참지 못하고 이쪽 방향으로 힐끔 눈길을 돌리며 목례를 하고 지나갔다.아쉽게도 그 누구도 함부로 말을 건네지 못했다.원 씨 가문 둘째 아가씨는 페낭에서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보통 남자는 그녀를 감당할 수 없다.일부 부잣집 남자들도 뒷걸음치기 일쑤였다.원천신 같은 여자는 아리따운 장미와도 같았다.아주 매혹적이었지만 자칫하면 가시에 찔려 피를 철철 흘릴 수가 있다.자신 있는 남자가 아니라면 누가 함부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겠는가?“엄마!”원가령이 룸 안으로 들어서며 인사를 했다.“안녕하세요!”“가령이 왔구나!”원천신은 원가령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바로 맨 뒷자리에 있는 곳을 가리키며 담담하게 말했다.“앉아.”말을 마친 후 원천신은 하현은 무시한 채 계속 그녀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하현은 완전히 무시당했다.게다가 룸 안에는 더 앉을 수 있는 의자도 없었다.하현이 얼마나 난처하고 창피해할지 뻔히 눈에 보이는 상황이었다.젊은이가 이런 경우를 당하면 완전히 체면을 잃은 나머지 일부 성깔이 있는 사람은 아예 소매를 뿌리치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갈 것이다.하지만 하현은 내내 담담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SL 그룹에서 3년 동안 산전수전 다 겪은 그에게 새로울 게 뭐 있겠는가?이런 대우를 받은들 그가 안중에 둘 것 같은가?하현은 유유히 핸드폰을 꺼내 룸 안의 문설주에 기대어 뉴스를 보았다.원가령은 이 상황에서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종업원에게 의자를 하나 더 가져다 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원천신의 매서운 눈초리에 감히 입도 뻥긋
”원가령, 이번엔 정말 고마워.”하현은 인테리어 인부들에게 담배를 건네면서 작은 조끼를 입고 신이 나서 임시 감독으로 일하는 원가령을 향해 생수를 한 병 건네주었다.“이번에 당신이 없었다면 이 가게를 이렇게 빨리 열 수 없었을 거야.”“고생한 거 알아줬으니 됐어. 나중에 점심이나 사 줘!”원가령은 고개를 들어 맞은편에 있는 양씨백약 간판에 눈길을 돌렸다.“밥 얻어먹으면 내가 신나서 저것보다는 몇 배 더 큰 간판을 걸어줄게. 당신과 유훤이가 만든 양가백약이 대박 터지도록 말이야!”하현은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좋아. 당연히 밥 사야지!”“그렇지만 광고판 같은 건 내가 처리해도 돼!”며칠 전 하현은 원가령과 양호남의 관계에 대해 알게 되었다.양 씨 가문 도련님과 원 씨 가문 아가씨의 결합이라니 환상적인 조합이었다!양호남의 인품에 대해서 하현이 왈가왈부할 것은 아니었다.원가령이 어떤 남자를 선택하든 그것은 오로지 그녀의 자유이다.그래서 하현은 자신이 끼어들 사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잉! 잉!”그때 원가령의 핸드폰이 바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물끄러미 바라보다 전화를 받은 뒤 하현을 향해 빙긋 웃으며 말했다.“하현, 당신은 정말 운이 좋은 것 같아.”“방금 당신한테 완전히 비싼 점심 사 달라고 덤터기 씌우려고 했더니!”“우리 엄마가 방금 전화가 와서 예비 사위인 당신을 만나고 싶다고 하는군!”“어쨌든 당신은 우리 엄마의 병을 집어내며 생명을 구해 줬으니까!”“당신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고 하셔!”이 말을 들은 하현은 갑자기 머리가 아팠다.지난번 만났을 때 원천신의 태도가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그는 자꾸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원가령이 이렇게까지 해 주는데 자기가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하현은 한숨을 푹 내쉬고 현장 감독인 소미담에게 몇 가지 당부한 후 원가령을 따라나섰다....저녁 6시 정각.하현과 원가
”얼마 전 하현이 경찰서에서 풀려나온 것도 그녀와 관계가 있다고 들었어요.”“그녀는 나한테 복수하기 위해 그랬을 거예요.”양호남은 이렇게 말하면서 핸드폰을 열어 사진을 몇 장 보여주었다.그는 원가령과 찍은 사진을 가리키며 이 모든 일이 자신을 화나게 하기 위한 원가령의 복수임을 증명했다.“그렇게 된 거였군.”그제야 노부인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호남아, 할머니가 이런 말을 하려던 건 아니었지만 잘 들어.”“원 씨 가문의 그 여자는 사생아이지만 어쨌든 원 씨 가문 핏줄이야!”“그녀가 일단 하현 옆에 선다면 양유훤 그 불효막심한 것을 도와 우리를 상대하게 될 거야. 그러면 우리로서는 아주 귀찮게 돼.”“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지.”“원 씨 피를 가진 그 여자가 한사코 그들 편에 서려고 한다면 양가백약은 분명 시판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곤경에 처하게 돼!”“그러니 이 모든 걸 막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애초에 될성부른 떡잎의 싹을 싹 잘라버리는 거야!”노부인의 얼굴에 서늘한 기운이 가득 들어찼다.노부인의 말에 양호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할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노부인은 양호남을 희미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호남아, 할머니는 그 사생아가 너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지만 우리 양 씨 가문의 천추의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억울한 일도 하는 수밖에 없어!”“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원 씨 가문 사생아를 빼앗아 오너라!”“네가 그 여자를 빼앗아 양유훤 그 계집애의 모든 계획을 수포로 만들 수만 있다면 넌 우리 양 씨 가문의 당당한 후계자가 되는 거야. 어때? 문제없겠지?!”“우리가 양유훤 그 연놈을 죽인 후에 독살을 하거나 아니면 교통사고로 위장해서 네 약혼녀인 원 씨 가문 사생아를 처리한다면 다 끝나는 거잖아! 얼마나 쉬운 일이냐?!”“그렇게 되면 네가 황실의 공주와 결혼하다고 하더라도 이 할미는 모든 것을 다 내팽개치고 네 편이 될 거야. 어떠냐?”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