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구봉이 이렇게 고집하자 강옥연도 더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하현의 명령은 여수혁을 잡아오라는 것이었다.이런 사소한 일에 많은 인력을 동원한다면 하현이 그들의 능력을 의심할지도 모른다.그들 일행 다섯 명은 2층 룸에 앉았다.룸은 큰 편이 아니지만 세련되게 꾸며져 있었고 창가 자리에서는 아래층 댄스 플로어를 볼 수 있어서 술집 전경이 대충 한눈에 들어왔다.이곳에 앉아 좋은 술을 맛보고 미녀들의 몸을 끈적한 눈으로 감상하고 있노라면 누구나 황제가 된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손님, 뭘로 주문해 드릴까요?”하구봉과 강옥연 일행이 자리에 앉자마자 간호사 복장을 한 종업원이 요염한 몸놀림으로 나타났다.간호사 복장 아래 아찔한 그물 스타킹 사이사이로 보이는 늘씬한 각선미가 보는 이의 가슴을 벌렁거리게 만들었다.“만약 내가 드래곤 세트를 주문한다면 오늘 밤 나와 놀아줄 수 있어?”하구봉은 흑심을 가득 품은 눈빛으로 종업원의 허벅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그리고 오른손을 내밀며 스스럼없이 종업원의 허벅지를 주무르기 시작했다.“물론이죠!”“하지만 나와 하룻밤 보내려면 최소 두 세트는 주문해야 해요!”“두 세트? 세 세트로 하지!”“오늘 퇴근하고 나면 나랑 2박 3일은 놀아줘야 해, 알았지?”하구봉은 통 큰 사람처럼 흔쾌히 손을 흔들며 다리를 꼰 뒤 일부러 강옥연을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참, 한 가지 더.”“내 여동생이 내가 힘이 좀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아서 말이야!”“내가 어느 술집을 가든 사장이 와서 나랑 술잔을 기울인다고 했는데 잘 안 믿는 거야!”“그래서 말인데. 내가 세 세트 주문하면 사장이 와서 나랑 건배해 줄 수 있을까? 내 체면 좀 세워 줘!”말을 하면서 하구봉은 알록달록한 지폐 뭉치를 꺼내 종업원의 옷에 쑤셔 넣었다.이 모습을 본 강옥연의 미간이 차갑게 굳었지만 하구봉이 일부러 그런 행동을 하는 거란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도 잠자코 있었다.“고마워요, 사장님!”종업원
문이 열리자 수십 명의 남자들이 들이닥쳐 순식간에 룸 안을 빼곡히 메웠다.선두에 선 남자는 골프채를 들고 있었는데 흉악한 얼굴에 풍기는 살벌한 기운이 사람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하구봉은 얼굴이 싸늘해지며 자신도 모르게 내뱉었다.“건방진 놈! 우리가 여기서 술 마시고 있는 게 안 보여?”“뭘 하려는 거야?”“어? 뭐 하려고?”“뭘 할 거냐고?”앞장섰던 남자는 쓸데없는 말 대신 오른손을 휙휙 휘두르며 경멸의 표정을 지었다.“당연히 죽이러 왔지!”수십 명의 남자들이 동시에 앞으로 돌진하며 손에 쥔 골프채를 계속 휘둘렀다.장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술을 마신 하구봉은 몸이 나른해져서 즉각적인 반응을 할 수 없었다.오히려 강옥연이 긴 다리로 앞에 있는 탁자를 걷어차서 몇 명의 사내들을 내리쳤다.자신들의 계획이 이미 발각된 것을 알아차린 강옥연이 얼른 소리쳤다.“얼른 도망가!”“퍽!”말이 끝나가도 전에 앞장섰던 남자는 몸을 휘두르며 강옥연의 몸을 걷어찼다.정말로 고수다운 몸놀림이었다.강옥연도 몸놀림이 좋았지만 상대가 안 될 정도로 걷어차여 비명을 지르고 코너로 굴러갔다.“강옥연!”하구봉은 안색이 급변해서 주변에 있던 사내들을 몇 번이고 걷어차 넘어뜨렸지만 기습하던 남자가 휘두르는 맥주병에 머리를 심하게 맞았다.‘따깍’하는 소리와 함께 하구봉의 몸이 흔들거렸다.그가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야구 방망이가 그의 무릎을 세게 후려치는 소리가 들렸다.결국 하구봉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남자들은 모두 무술을 익힌 사람들이고 싸워 본 경험도 풍부한 것이 틀림없었다.함부로 상대하다가는 실력이 막강한 하구봉에게 반격을 당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만반의 준비를 한 것이었다.하구봉, 강옥연, 그리고 그들의 세 부하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널브러졌다.좁은 룸에서 하구봉은 술을 마신 상태였고 그만큼 반응이 느려 30%도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그는 반격할 힘
”퍽퍽퍽!”주위에 있던 사내들이 일제히 술병을 들고 하구봉을 향해 덤벼들었다.하구봉은 몇 번을 간신히 막아냈지만 결국 술병에 맞아 바닥에 쓰러졌다.“퍽!”선두에 있던 남자가 직접 골프채를 들고 하구봉의 등을 강타한 것이다.하구봉은 ‘악'하는 소리와 함께 피를 한 모금 내뿜고 그대로 주저앉아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켰다.“그만! 그만!”강옥연이 머리가 헝클어진 채 포효했다.“당신들 이렇게 함부로 하다가 나중에 후회할 거야!”“퍽!”앞에 있던 남자가 강옥연의 얼굴에 뺨을 한 대 갈겼다.“후회?”“당신들을 이대로 두는 게 더 후회될 거 같은데!”“똑똑히 들어! 당신네 대하인들은 우리 페낭에선 아무것도 아니야!”“돈푼깨나 있다고 우리 페낭에 와서 위세 좀 부려도 된다고 생각한 모양인데, 어림도 없어!”“게다가 뭐? 여수혁이 여기 와서 같이 건배를 하라고?”“우리 형님을 엿 먹이려는 거지? 그래서 우리 형님이 일찌감치 말했던 거야. 대하인들이 찾아오면 볼 것도 없이 밟아 주라고!”“쳐! 어서 죽여버려!”이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 있던 수십 명의 사내들이 음흉하게 웃으며 악랄하게 움직였다.강옥연도 예외일 수 없었다.그녀는 수차례 뺨을 맞았을 뿐만 아니라 옷이 찢어져 살갗이 그대로 드러나 버렸다.몇몇 사내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강옥연의 옷을 마구 벗기려고 했다.피를 토하던 하구봉은 몸을 던져 이 사내들을 밀어내고 강옥연의 앞을 가로막았다.“당신들! 여기서 손 떼지 않으면 나중에 분명 후회하게 될 거야!”하구봉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이렇게 억울하고 분한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속이 터질 것 같았다.“후회?”선두에 선 남자는 서늘한 미소를 잠시 보이다가 차가운 얼굴빛으로 말했다.“내가 이 바닥에 오래 살면서도 후회란 게 뭔지 모르고 산 사람이야!”“게다가 우리 여수혁 형님 뒤에 누가 있는지 당신들 모르지?”“페낭 무맹, 남양 무맹이 우리 형님을 지지하고 있어!”“그런 거
”뭐? 당신한테?”“흥! 남자한테는 관심 없어!”남자는 언짢은 얼굴로 쪼그리고 앉아 하구봉의 얼굴을 툭툭 건드리고는 일어나서 허리띠를 풀었다.“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매끈하고 아주 청순해. 내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이야.”“이 여자가 당신한테 그렇게 소중한 존재라고 하니 당신 면전에서 내가 이 여자를 어떻게 올라타는지 보여줄게. 그래야 당신도 뭔가 같이 참여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것 아냐...”말을 마친 남자는 험상궂은 얼굴로 웃으며 앞으로 한 발짝 나섰고 부하들에게 강옥연의 엉덩이를 치켜 들어 올리라고 손짓했다.“저리 가! 꺼지라구!”“나한테서 썩 꺼져!”강옥연은 끊임없이 몸부림쳤다.“당신들 그야말로 무법천지군! 이러다간 당신들 나중에 좋은 꼴 못 볼 거야!”선두에 선 남자는 강옥연의 검은 스타킹을 찢으며 독살스러운 미소를 지었다.“남녀가 사랑하다 죽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이 어디 있겠어? 흐흐!”“퍽!”사내들이 징그러운 얼굴로 허리띠를 풀고 있던 그때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렸다.곧이어 사람 그림자가 번개처럼 들이닥쳤다.“퍽퍽퍽!”입구에 있던 몇몇 사내들은 미처 피할 겨를도 없이 발길질에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하현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앞에 있던 남자 세 명을 날려버렸다.“앗!”처참한 비명이 여기저기서 들려왔고 걷어차인 사람들은 벽에 부딪혀 일어나지도 못한 채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섬뜩한 살기를 띠며 날아온 하현은 모든 사람들을 오싹하게 얼려버렸고 순식간에 공포에 벌벌 떨게 만들었다.“퍽퍽퍽!”하현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앞으로 돌진했다.그가 앞으로 나올 때마다 험상궂은 사내들은 그의 손바닥에 스치거나 발에 걷어차이거나 했다.우락부락하고 키가 큰 사내들은 피를 토하며 날아가 땅바닥에 쓰러져 비명을 질렀다.죽지는 않았지만 죽는 것보다 더 괴로운 고통에 시달려야만 했다.하현이 나타난 것을 본 우두머리 사내는 낯빛이 살짝 일그러진 채 냉소를 흘렸다.“오늘 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우두머리 남자는 눈꺼풀이 펄쩍 뛰었고 앞으로 한 발 나서고 싶었지만 자신의 몸이 마음처럼 말을 듣지 않고 계속 떨고 있음을 발견했다.남자는 간신히 용기를 내어 하현을 노려보며 말했다.“이, 이놈아! 도대체 넌 누구야?”우두머리 남자는 페낭 무맹에서 수년간 수련했었다.그런데 어떻게 자신이 이런 고수를 못 봤을 수가 있겠는가?지금까지 수도 없는 고수들을 만나봤지만 하현처럼 순식간에 해치우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퍽!”하현은 쓸데없는 말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바로 발로 남자를 걷어차 버렸다.우두머리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저항했지만 ‘따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손이 부러지고 말았다.이후 그의 몸은 붕 떠서 대리석 기둥에 그대로 부딪힌 후 바닥에 주저앉았다.눈코입 구멍이란 구멍에선 피가 쏟아졌다.그는 말을 하고 싶어도 도저히 괴로워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너무 무시무시했다!하현의 무서운 실력을 목도한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누군가 무적이 어떤 거냐고 묻는다면 지금 하현의 몸놀림이 바로 그것이라 답할 것이다.하현의 매서운 기운에 장내는 조용해졌고 비명을 지르던 사람들도 차츰 눈치를 살피며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하현은 강옥연의 곁으로 가서 자신의 외투를 벗어 그녀의 몸에 걸쳐 주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다들 괜찮아?”강옥연은 멍하니 하현을 쳐다보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괜찮아.”하구봉은 미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하현, 이런 꼴을 보여서 미안해.”“이번에는 내가 너무 방심했어. 사람을 좀 더 많이 배치했어야 했어. 그리고 도수 높은 양주를 마시는 바람에 내가 내 발목을 잡는 꼴이 되었어.”하구봉에게는 뼈아픈 교훈이 아닐 수 없었다.그가 페낭의 여수혁을 너무 얕봤던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체면이 깎이는 것은 그렇다 쳐도 하현이 직접 나서게 만든 것은 부하로서 불합격이다.“이건 창피한 일이 아니야. 상대는 오십 명에 육박해.
말을 마치며 여수혁은 왠지 꺼림칙한 기운이 느껴져 얼굴을 살짝 비틀며 말을 이었다.“능력이 있으면 한 번 더 해 보시지?!”“퍽!”하현은 손바닥을 휘둘러 우두머리 남자의 뺨을 때렸다.“자, 한 번 더 했어. 이제 어쩔 거야?”“개자식! 건방진 놈!”여수혁은 하현이 우두머리 남자의 뺨을 때리는 것을 보고 분노에 차올라 이성을 잃을 지경이었다.이건 그야말로 도발이었다.몇몇 예쁘장한 여자들은 하현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틀림없이 어느 시골 촌뜨기일 거라고 생각했다.촌놈 하나가 여수혁을 감히 도발해?이건 죽자고 덤비는 꼴이었다.여기는 페낭이었고 페낭 중에서도 가장 번화가에 위치한 클럽이었다.여수혁의 뒤에는 페낭 무맹과 남양 무맹이 버티고 있다.외지에서 온 촌놈이 감히 여수혁과 싸우려 들어?무슨 이런 장난을 치는 거야?드라마라도 감히 이렇게는 찍을 수 없을 것이다!하현은 우두머리 남자를 바닥에 넘어뜨린 후 그의 이마에 발을 올리며 차갑게 말했다.“그래, 나 오늘 밤 좀 건방지게 굴어 보려고.”“너 이 자식!”여수혁이 앞으로 나서며 부하들에게 불을 환하게 켜라고 손짓을 하는 순간 그의 얼굴이 얼음처럼 굳어버렸다.“너, 너, 또 너야!”“좋아! 너 이 자식, 잘 만났어. 안 그래도 벼르고 있었는데!”“오늘 내가 제대로 지옥의 맛을 보여주지!”여수혁의 얼굴에는 음산한 미소가 번졌다.“여기가 어디라고 와? 흥! 아주 간이 배 밖에 나온 놈이군!”“또 나를 건드려?!”“난 원래 양유훤 그 천한 것을 처리한 후에 네놈을 찾아가려고 했어!”“그랬는데 아주 제 발로 이리 찾아왔군!”옆에 서 있던 여영창은 눈 밑을 두툼하게 모으며 차가운 눈길로 하현을 응시했다.그는 여수혁의 말을 듣고 하현이 자신의 아들을 이 지경으로 만든 자임을 알아차린 듯했다.하현은 여수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날 찾아오려고 했다고?”“왜? 나한테 무릎 꿇고 용서를 빌려고?”
귀한 아들의 말에 여영창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런 다음 그는 앞으로 나가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여영창은 손을 뻗어 여수혁이 건네주는 담배를 받아 불을 붙이고는 한 모금 깊게 빨아당기며 눈을 가늘게 뜨고 희미한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이봐, 당신이 내 아들을 이렇게 만들었어?”“흥! 꽤 대단한 녀석이군!”“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어. 그리고 날 어르신이라 불러!”“그리고 두 손을 잘라!”“참, 당신 주변의 여자들은 남겨두고 우리 부자의 시중을 들게 해!”“그렇지 않으면 오늘 밤 당신은 죽어서 저 태평양 속으로 가라앉게 될 거야!”거만하기로는 여영창이 여수혁보다 한 수 위였다.하현은 엷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여영창 부맹주, 맞죠? 당신은 페낭 무맹의 부맹주이고 신분도 높은 사람입니다.”“그런데 이렇게 원칙 없이 행동하다니요?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법도 아랑곳하지 않겠다구요?”“내가 왜 당신 아들을 저렇게 만들었는지는 묻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여영창은 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차갑게 말했다.“당신이 무슨 이유로 내 아들을 저렇게 만들었든 감히 내 아들을 건드렸다는 사실만으로도 나한테 덤빈 거나 마찬가지야!”“나한테 덤볐다는 건 우리 페낭 무맹한테 덤볐다는 것이고!”“감히 여기서 나한테 법 같은 소리 하지 마!”“페낭에서는 내가 바로 법이야!”여수혁도 냉소를 흘리며 거들었다.“하 씨! 지난번에 병원에서는 우연히 양유훤을 만났기 때문에 내가 당신 체면을 봐준 거야!”“그래서 당신이 겨우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거라구!”“하지만 오늘은 아버지도 오셨고 하니 양 씨 가문 사람들이 온다고 해도 절대 봐주는 일이 없을 거야!”“게다가 이제 당신과 양유훤은 양 씨 가문과도 사이가 틀어졌잖아?!”“감히 양유훤이 이곳에 온다면 그 여자도 같이 해치워 버리는 거지!”말을 마치며 여수혁의 얼굴에는 거만하고 통쾌한 미소가 떠올랐다.지난번에는 체면을 많이 구겼지만
자신의 소중한 아들의 말에 표정이 싸늘해진 여영창이 눈초리를 가늘게 뽑으며 말했다.“이봐, 난 원래 내 아들의 아버지인 입장에서 좋은 말로 당신을 타이르려고 했어!”“당신 같은 사람한테는 무력을 쓰는 것도 아깝거든.”“하지만 지금도 후회할 줄 모르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다니!”“그렇다면 내가 당신을 좀 업신여겨도 날 탓하지는 못하겠지! 잘 알아둬. 우리 여 씨 집안의 미움을 사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라고!”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영창은 천천히 코트를 벗어 옆에 있던 여자에게 건넨 뒤 목을 좌우로 비틀며 상대를 위협하는 동작을 취했다.주위에서 수많은 갈채가 흘러나왔다.이들은 여영창이 손을 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그런데 지금 운 좋게 그 귀한 광경을 보게 되었으니 당연히 박수갈채를 보내야 한다.여영창은 주위에서 들려오는 갈채에 진정하라는 듯 손을 흔든 뒤 한 걸음 내디뎠다.한걸음에 바로 하현에게 다가선 여영창은 한 발을 더 힘차게 내디뎠다.그 힘과 세력이 가히 입이 쩍 벌어질 만큼 출중했다.“쾅!”순간 여영창은 조금의 자비도 베풀지 않겠다는 듯 온 힘을 다해 공격했다.여영창의 눈에 하현은 죽는 게 뭔지도 모르는 피 끓는 애송이에 불과했던 것이다.자기 아들의 두 손을 부러뜨렸을 뿐만 아니라 오늘 밤 감히 자신의 구역에 와서 난동을 부리다니 가만히 두면 도저히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었다.그는 단번에 하현을 무너뜨리고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어 평생 침대에 누워 비명이나 지르는 신세로 만들어 줄 참이었다.여영창의 공격에 하현이 꼼짝도 하지 않고 서서 놀란 듯 어리둥절한 모습만 보이자 주위의 예쁘장한 여자들은 모두 코웃음을 쳤다.그녀들은 하현이 곧 죽을 것이고 끔찍한 결말을 맞이할 거라고 생각했다.여수혁은 소파에 잠자코 다리를 꼬고 앉아 하현의 끔찍한 결말을 기다리고 있었다.그가 두 손이 이렇게 되지 않았더라면 당장에라도 하현에게 덤벼들었을 것이다.“조심해!”하현이 여영창에게 당하게 될까
하현의 말을 듣고 이미 돌아섰던 필립 선생의 발걸음이 순간 멈칫했다.먹으면 죽는다고?하현의 말을 들은 원천신 일행은 모두 깜짝 놀라 무의식적으로 앞에 놓인 계란을 보았다.필립 같은 셰프가 차려준 귀족 음식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고?이럴 수가?!처음에 경악했던 일행들은 겨우 정신을 차렸다.분명 하현이 눈도장을 확실히 찍으려고 뭔가 속임수를 쓰는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하현, 무슨 말을 하는 거야?!”“필립 선생님이 누군지 알아? 그는 노국 궁정에서 일했어. 지금 노국 황실에서 일하는 셰프들은 모두 그의 제자들이야!”“그가 만든 요리가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거야?”“당신이 이렇게 거리낌 없이 함부로 지껄이는 건 필립 선생님뿐만 아니라 노국 황실을 모독하는 거야!”“보잘것없는 촌놈이, 감히 뭐라도 된 것 마냥 지껄이다니?!”“당신 같은 사람이 트러플이 뭔지나 알아? 캐비아가 뭔지나 아냐고?”“사과해! 어서 당장 무릎 꿇고 사과해!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오늘 멀쩡한 몸으로 못 나갈 줄 알아!”원천신 일행들은 모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하현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필립 선생님은 요리사일 뿐만 아니라 고귀한 노국 귀족이었다!이런 거물을 감히 촌뜨기놈이 모욕을 하다니!절대 가만히 내버려둘 수 없는 일이다!만약 필립 선생님이 화가 나서 앞으로 이곳에 오지 않는다면 그녀들은 어디 가서 노국 황실의 음식을 맛볼 수 있겠는가?이 말을 페낭 사람들이 듣는다면 배꼽이 떨어져라 비웃을 것이다!엉터리 상처치료제나 파는 하현이 감히 분수도 모르고 신선이나 되는 줄 입을 놀리는 것인가?“이봐, 사람이 되먹지 못하면 말이야. 맨날 잘난 척만 하고 자기가 모든 걸 다 안다고 생각하지. 지금 당신은 자신이 완전히 뭐라도 된 줄 알지!”원천신은 매서운 눈빛으로 차갑게 말했다.“얼른 무릎 꿇고 사과해. 그렇지 않으면 필립 선생님이 사람을 부를 필요도 없이 내가 먼저 당신을 여기서 내쫓을 테니까!”“
원천신의 말을 들은 원가령은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허투루 내뱉은 말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다.자기가 하현과 사귄다고 한 것은 화가 나서 한 말일 뿐이었다.딸의 표정을 본 원천신은 딸이 자신의 말에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마지막 회심의 일격을 날려 이 일을 마무리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평생을 함께 하는 것은 차치하고, 지금 당장 그는 이 귀족 음식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도 모르잖아! 칼과 포크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 수가 없지!”“이런 상식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너와 평생 함께 할 수가 있겠니?”“정말로 평생 남자 뒤치다꺼리나 하며 살고 싶어서 그래?”“너 정말 그런 생활을 견딜 수 있겠니?”원가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현과 자신의 생활습관이 확실히 다를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평생 고달픈 인생을 살라니, 그녀는 정말이지 참을 수가 없었다.바로 그때 머리를 빈틈없이 빗어 넘긴 채 연미복을 입은 금발의 파란 눈에 나이 지긋한 웨이터가 음식을 들고나왔다.뚜껑이 달린 뜨거운 철판이 원천신 앞에 놓였다.뚜껑 속에서는 버터가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향긋한 냄새를 풍겼다.코를 자극하는 향긋한 냄새가 불어와 사람들의 식욕을 마구 끌어당겼다.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웨이터가 입을 열었다.“부인, 제가 가장 잘 하는 노국의 귀족 음식입니다.”“오늘 여기 모이신 아름다운 분들에게 특별히 선사하는 음식이니 천천히 즐기시길 바랍니다.”이 말을 듣고 지금까지 노기가 가득 서렸던 원천신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어올랐다.그녀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띤 채 존경의 눈빛으로 말했다.“존경하는 필립 선생님, 이렇게 환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다른 여자들도 모두 방긋 웃으며 화답했다.“감사합니다. 필립 선생님. 이런 귀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니 영광입니다.”필립 선생은 기분 좋은 듯 환한 미소를 보이며 두 손을 뒷짐진 채 거만한 표정을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뻔뻔하게 원가령이랑 사귀고 싶어서가 아닙니다.”“전 단지 당신에게 말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원가령은 당신 딸이지만 혼자서 충분히 설 수 있는 사람입니다.”“원가령은 온전한 자신의 삶이 있어요.”“자신의 삶을 선택할 권리가 있고요.”“당신이 저더러 여기서 물러나라면 그러겠습니다. 아무래도 괜찮아요.”“그러나 오직 원가령 입에서 그 말이 나와야 합니다. 원가령이 그렇게 말하면 저는 두말없이 바로 물러가겠습니다.”“만약 원가령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전 여기서 물러나지 않을 겁니다.”“그녀가 절 이 식사에 초대했기 때문이죠. 당신도 아니고 이 여자들도 아니죠!”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원가령을 대신해 이 단순한 논리를 조목조목 따졌다.그는 원천신의 말과 행동으로 미뤄 보아 그녀가 통제욕이 아주 강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차렸다.만약 그녀가 계속 이렇게 하도록 내버려두면 원가령의 인생이 그녀의 모친 때문에 망가질 수도 있었다.그래서 하현은 원가령의 친구로서 원천신에게 이 점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그는 다른 점에 관해서는 추호도 나설 생각이 없었다.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고 있던 원가령의 눈엔 어느새 뭉클함이 묻어나오고 있었다.하현이 이렇게 자신을 존중해 주고 기꺼이 자신을 대신해 이런 말을 해 줄 줄은 몰랐다.심지어 자신의 어머니 같은 거물을 상대하면서도 조금도 비굴하지 않았다.순간 원가령은 마음속에서 안타까운 한숨이 터져 나왔다.만약 하현의 가문이 형편없지 않았다면 그녀는 정말 하현을 선택했을 것이고 의리로라도 그에게 시집을 갔을 것이다.마치 자신에게 훈계를 늘어놓는 듯한 하현의 말을 듣고 원천신의 눈빛이 서늘해졌다.그녀는 하현 같은 사람들을 높이 평가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오히려 경멸하는 마음이 용솟음쳤다.대단한 가문 도련님이 이런 말을 했다면 그건 당연한 일로 받아들일 수 있다.하지만 빈털터리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웃음거리밖에 되
”가령아, 내 말 좀 들어봐!”“네가 최선을 다해 상처치료제 시판을 도운 덕택에 그가 우리 레벨에 들어왔다고 치자!”“그렇지만 문제는 그가 들어왔다고 해도 어울리지 않을 거라는 거야. 그의 몸에서 나는 약냄새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멀리하게 만들 거야!”“그리고 심지어 네 엄마, 네 가문 모두 너의 선택 때문에 남양의 웃음거리가 될 거야!”“가령아, 원 씨 가문까지는 생각하지 않더라도 네 엄마를 생각해야지, 안 그래?”“원 씨 가문에서 네 엄마가 얼마나 힘든데 너까지 이러면 네 엄마가 얼마나 더 곤란해지겠니?”원가령이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가운데 또 다른 여자가 부채질을 하며 거들었다.그녀의 시선은 하현에게로 향했다.“사람이 분수를 알아야지.”“당신이 상처치료제를 팔고 싶다면 우리가 가령이 얼굴을 봐서라도 얼마든지 주문해 줄 수 있어.”“당신이 엉터리 가짜약을 팔고 싶다면 그냥 팔면 되지만 헛된 꿈을 꾸진 마. 엉터리 약 하나 판다고 우리 상류사회로 비집고 들어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이 세상에는 당신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있어.”“당신이 태어날 때 가지지 못한 것은 절대 평생 가질 수 없어.”“무슨 말인지 알겠어?”말을 마친 여자는 방긋 웃으며 라피트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그녀는 자신이 한 말이 상대를 충분히 설득시켰다고 생각했다.상류사회 출신이라는 것이 모든 것을 말해 준다.하현은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다.여자들의 빈정거림에 화를 내는 대신 그저 무덤덤한 표정으로 일관했다.그녀들도 어쨌든 원가령을 생각해서 이런 말을 했을 테니 어느 정도 원가령을 보호하기 위한 배려라고 볼 수도 있었다.원가령이 자신을 위해 도와준 것을 생각한다면 이 여자들의 이런 험한 말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그는 여자들이 얼마든지 훈계를 늘어놓도록 내버려두었다.그러나 하현이 별로 따지고 싶지 않은 듯 심드렁한 자세를 보이자 원천신의 눈빛이 매서워졌다.그가 그녀들을 얕보고
원천신은 의미심장한 눈초리로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은행 카드가 테이블 위에 놓이자 옆에 있던 여자들은 비아냥거리는 미소를 입가에 떠올렸다.그때 하현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오늘 식사 초대는 핑계였던 것이다.사람들 앞에서 있는 대로 하현에게 망신을 주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그러나 문제는 하현이 원가령에게 남녀의 마음을 조금도 품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쌍방이 친구가 된 것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일 뿐이었다.오늘 여기에 그가 온 것은 며칠 동안 원가령이 너무 고생했기 때문에 이 기회에 원천신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어서였다.심지어 그는 우윤식에게 천일 그룹이 원천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도록 당부할 참이었다.그러나 원천신은 하현이 품은 선의를 와장창 깨부수는 태도를 보였다.게다가 경멸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아 하현의 마음을 언짢게 만들었다.사실 원천신이 이런 말을 하건 어쨌건 하현은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어쨌든 그와 원가령은 아무 사이도 아니었기 때문에 자초지종을 설명하면 끝이었다.하지만 문제는 거지를 내쫓듯이 막무가내로 대하는 원천신의 태도가 하현을 적잖이 불쾌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그가 바로 돌아서서 그 자리를 떠나려고 하자 원가령이 오히려 화를 내고 나섰다!그녀는 벌떡 일어서서 다정하게 하현의 팔짱을 끼며 소리를 질렀다.“엄마! 너무한 거 아니야!”“엄마가 하현한테 식사 대접한다고 해서 데려온 거잖아!”“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대할 수 있어?”“게다가 엄마 목숨을 구해 준 사람이야! 기억 안 나? 며칠 전에 하현이 엄마 목숨을 구해 줬잖아!”“나와 이 사람이 맞지 않다고 하더라도 엄마한테는 생명의 은인이잖아! 은혜를 알았으면 보답하는 도리를 보여야 하잖아! 그것도 몰라?”“그리고 하현이 아무리 형편없다고 해도 엄마가 소개한 양호남보다는 훨씬 낫잖아?”“적어도 하현은 양호남 같은 쓰레기는 아니야! 함부로 다른 여자랑 엮이는 파렴치한이 아니라고!”“난 이런 진실
원가령은 안절부절못했다.자신의 어머니가 하현 같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자리에 하현을 데리고 식사를 하러 나왔다는 것이 문제였다.원천신이 하현을 이렇게 내버려두는 것은 정말이지 예의가 아니었다.그러나 원가령은 자신도 이런 자리에서는 함부로 끼어들 수가 없었다.10여 분 동안 이야기를 나눈 후 모두의 화제는 마침내 의도치 않게 끝이 났다.환한 미소를 지으며 수다를 떨었던 원천신의 시선이 그제야 하현에게로 향했다.그녀는 자신의 손목에 찬 까르띠에 손목시계를 보며 힐끔 하현을 바라보았다.뭔가 꿍꿍이가 가득 담긴 눈빛이 그녀의 눈동자를 스쳤다.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의도치 않게 하현에게로 향했다가 별일 아닌 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시선을 거두었다.“하현, 지난번에 당신이 나한테 일깨워준 덕분에 문제를 잘 발견했어.”“아주 고맙게 생각해.”원천신은 무덤덤한 얼굴로 가볍게 입을 열었다.하현 덕분에 폐결핵을 알게 된 건 그저 사소한 일일 뿐이라는 듯 심드렁한 말투였다.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의사의 조언에 따라 앞으로 격렬한 운동은 피하고 몸조리하는 데 신경 쓴다면 완치에 크게 문제가 없기 때문이었다.원천신은 하현이 어쩌다 운이 좋아 그런 걸 발견했다고 생각했다.게다가 그녀의 마음속엔 하현이 불길한 말을 잘하는 사람이어서 폐결핵을 알아차렸다고 여겼다.그래서 원천신은 지금 고맙다고 말은 하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미움이 도사리고 있었다.그리고 가타부타 미동도 없는 하현의 표정과 동작을 보니 원천신은 더욱 그가 못마땅했다.그녀는 자신의 딸이 마땅히 부잣집에 시집가야 한다고 생각했다.천일 그룹과 대성 그룹의 배후에 있는 인물에게 시집갈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젊은 후계자에게는 시집가야 하지 않겠는가?하현 같은 촌뜨기가 어딜 넘봐?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그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은 방금 급하게 산 것이거나 그마저도 자신의 딸이 사 줬을 가능성이 높았다.이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자 원천
하현은 자세히 보려고 눈을 모았고 원천신이 그들의 구심점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남양 스타일의 옷을 입고 새하얀 허벅지를 그대로 드러낸, 그야말로 한눈에 이목을 집중시키는 자태였다.게다가 모인 사람들의 면면이 화려하고 각각의 특색이 분명해 보여서 마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들을 모아 놓은 전시회장 같았다.현장에 있던 남자들도 모두 참지 못하고 이쪽 방향으로 힐끔 눈길을 돌리며 목례를 하고 지나갔다.아쉽게도 그 누구도 함부로 말을 건네지 못했다.원 씨 가문 둘째 아가씨는 페낭에서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보통 남자는 그녀를 감당할 수 없다.일부 부잣집 남자들도 뒷걸음치기 일쑤였다.원천신 같은 여자는 아리따운 장미와도 같았다.아주 매혹적이었지만 자칫하면 가시에 찔려 피를 철철 흘릴 수가 있다.자신 있는 남자가 아니라면 누가 함부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겠는가?“엄마!”원가령이 룸 안으로 들어서며 인사를 했다.“안녕하세요!”“가령이 왔구나!”원천신은 원가령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바로 맨 뒷자리에 있는 곳을 가리키며 담담하게 말했다.“앉아.”말을 마친 후 원천신은 하현은 무시한 채 계속 그녀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하현은 완전히 무시당했다.게다가 룸 안에는 더 앉을 수 있는 의자도 없었다.하현이 얼마나 난처하고 창피해할지 뻔히 눈에 보이는 상황이었다.젊은이가 이런 경우를 당하면 완전히 체면을 잃은 나머지 일부 성깔이 있는 사람은 아예 소매를 뿌리치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갈 것이다.하지만 하현은 내내 담담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SL 그룹에서 3년 동안 산전수전 다 겪은 그에게 새로울 게 뭐 있겠는가?이런 대우를 받은들 그가 안중에 둘 것 같은가?하현은 유유히 핸드폰을 꺼내 룸 안의 문설주에 기대어 뉴스를 보았다.원가령은 이 상황에서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종업원에게 의자를 하나 더 가져다 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원천신의 매서운 눈초리에 감히 입도 뻥긋
”원가령, 이번엔 정말 고마워.”하현은 인테리어 인부들에게 담배를 건네면서 작은 조끼를 입고 신이 나서 임시 감독으로 일하는 원가령을 향해 생수를 한 병 건네주었다.“이번에 당신이 없었다면 이 가게를 이렇게 빨리 열 수 없었을 거야.”“고생한 거 알아줬으니 됐어. 나중에 점심이나 사 줘!”원가령은 고개를 들어 맞은편에 있는 양씨백약 간판에 눈길을 돌렸다.“밥 얻어먹으면 내가 신나서 저것보다는 몇 배 더 큰 간판을 걸어줄게. 당신과 유훤이가 만든 양가백약이 대박 터지도록 말이야!”하현은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좋아. 당연히 밥 사야지!”“그렇지만 광고판 같은 건 내가 처리해도 돼!”며칠 전 하현은 원가령과 양호남의 관계에 대해 알게 되었다.양 씨 가문 도련님과 원 씨 가문 아가씨의 결합이라니 환상적인 조합이었다!양호남의 인품에 대해서 하현이 왈가왈부할 것은 아니었다.원가령이 어떤 남자를 선택하든 그것은 오로지 그녀의 자유이다.그래서 하현은 자신이 끼어들 사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잉! 잉!”그때 원가령의 핸드폰이 바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물끄러미 바라보다 전화를 받은 뒤 하현을 향해 빙긋 웃으며 말했다.“하현, 당신은 정말 운이 좋은 것 같아.”“방금 당신한테 완전히 비싼 점심 사 달라고 덤터기 씌우려고 했더니!”“우리 엄마가 방금 전화가 와서 예비 사위인 당신을 만나고 싶다고 하는군!”“어쨌든 당신은 우리 엄마의 병을 집어내며 생명을 구해 줬으니까!”“당신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고 하셔!”이 말을 들은 하현은 갑자기 머리가 아팠다.지난번 만났을 때 원천신의 태도가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그는 자꾸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원가령이 이렇게까지 해 주는데 자기가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하현은 한숨을 푹 내쉬고 현장 감독인 소미담에게 몇 가지 당부한 후 원가령을 따라나섰다....저녁 6시 정각.하현과 원가
”얼마 전 하현이 경찰서에서 풀려나온 것도 그녀와 관계가 있다고 들었어요.”“그녀는 나한테 복수하기 위해 그랬을 거예요.”양호남은 이렇게 말하면서 핸드폰을 열어 사진을 몇 장 보여주었다.그는 원가령과 찍은 사진을 가리키며 이 모든 일이 자신을 화나게 하기 위한 원가령의 복수임을 증명했다.“그렇게 된 거였군.”그제야 노부인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호남아, 할머니가 이런 말을 하려던 건 아니었지만 잘 들어.”“원 씨 가문의 그 여자는 사생아이지만 어쨌든 원 씨 가문 핏줄이야!”“그녀가 일단 하현 옆에 선다면 양유훤 그 불효막심한 것을 도와 우리를 상대하게 될 거야. 그러면 우리로서는 아주 귀찮게 돼.”“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지.”“원 씨 피를 가진 그 여자가 한사코 그들 편에 서려고 한다면 양가백약은 분명 시판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곤경에 처하게 돼!”“그러니 이 모든 걸 막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애초에 될성부른 떡잎의 싹을 싹 잘라버리는 거야!”노부인의 얼굴에 서늘한 기운이 가득 들어찼다.노부인의 말에 양호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할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노부인은 양호남을 희미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호남아, 할머니는 그 사생아가 너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지만 우리 양 씨 가문의 천추의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억울한 일도 하는 수밖에 없어!”“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원 씨 가문 사생아를 빼앗아 오너라!”“네가 그 여자를 빼앗아 양유훤 그 계집애의 모든 계획을 수포로 만들 수만 있다면 넌 우리 양 씨 가문의 당당한 후계자가 되는 거야. 어때? 문제없겠지?!”“우리가 양유훤 그 연놈을 죽인 후에 독살을 하거나 아니면 교통사고로 위장해서 네 약혼녀인 원 씨 가문 사생아를 처리한다면 다 끝나는 거잖아! 얼마나 쉬운 일이냐?!”“그렇게 되면 네가 황실의 공주와 결혼하다고 하더라도 이 할미는 모든 것을 다 내팽개치고 네 편이 될 거야. 어떠냐?”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