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퍽퍽퍽!”주위에 있던 사내들이 일제히 술병을 들고 하구봉을 향해 덤벼들었다.하구봉은 몇 번을 간신히 막아냈지만 결국 술병에 맞아 바닥에 쓰러졌다.“퍽!”선두에 있던 남자가 직접 골프채를 들고 하구봉의 등을 강타한 것이다.하구봉은 ‘악'하는 소리와 함께 피를 한 모금 내뿜고 그대로 주저앉아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켰다.“그만! 그만!”강옥연이 머리가 헝클어진 채 포효했다.“당신들 이렇게 함부로 하다가 나중에 후회할 거야!”“퍽!”앞에 있던 남자가 강옥연의 얼굴에 뺨을 한 대 갈겼다.“후회?”“당신들을 이대로 두는 게 더 후회될 거 같은데!”“똑똑히 들어! 당신네 대하인들은 우리 페낭에선 아무것도 아니야!”“돈푼깨나 있다고 우리 페낭에 와서 위세 좀 부려도 된다고 생각한 모양인데, 어림도 없어!”“게다가 뭐? 여수혁이 여기 와서 같이 건배를 하라고?”“우리 형님을 엿 먹이려는 거지? 그래서 우리 형님이 일찌감치 말했던 거야. 대하인들이 찾아오면 볼 것도 없이 밟아 주라고!”“쳐! 어서 죽여버려!”이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 있던 수십 명의 사내들이 음흉하게 웃으며 악랄하게 움직였다.강옥연도 예외일 수 없었다.그녀는 수차례 뺨을 맞았을 뿐만 아니라 옷이 찢어져 살갗이 그대로 드러나 버렸다.몇몇 사내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강옥연의 옷을 마구 벗기려고 했다.피를 토하던 하구봉은 몸을 던져 이 사내들을 밀어내고 강옥연의 앞을 가로막았다.“당신들! 여기서 손 떼지 않으면 나중에 분명 후회하게 될 거야!”하구봉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이렇게 억울하고 분한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속이 터질 것 같았다.“후회?”선두에 선 남자는 서늘한 미소를 잠시 보이다가 차가운 얼굴빛으로 말했다.“내가 이 바닥에 오래 살면서도 후회란 게 뭔지 모르고 산 사람이야!”“게다가 우리 여수혁 형님 뒤에 누가 있는지 당신들 모르지?”“페낭 무맹, 남양 무맹이 우리 형님을 지지하고 있어!”“그런 거
”뭐? 당신한테?”“흥! 남자한테는 관심 없어!”남자는 언짢은 얼굴로 쪼그리고 앉아 하구봉의 얼굴을 툭툭 건드리고는 일어나서 허리띠를 풀었다.“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매끈하고 아주 청순해. 내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이야.”“이 여자가 당신한테 그렇게 소중한 존재라고 하니 당신 면전에서 내가 이 여자를 어떻게 올라타는지 보여줄게. 그래야 당신도 뭔가 같이 참여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것 아냐...”말을 마친 남자는 험상궂은 얼굴로 웃으며 앞으로 한 발짝 나섰고 부하들에게 강옥연의 엉덩이를 치켜 들어 올리라고 손짓했다.“저리 가! 꺼지라구!”“나한테서 썩 꺼져!”강옥연은 끊임없이 몸부림쳤다.“당신들 그야말로 무법천지군! 이러다간 당신들 나중에 좋은 꼴 못 볼 거야!”선두에 선 남자는 강옥연의 검은 스타킹을 찢으며 독살스러운 미소를 지었다.“남녀가 사랑하다 죽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이 어디 있겠어? 흐흐!”“퍽!”사내들이 징그러운 얼굴로 허리띠를 풀고 있던 그때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렸다.곧이어 사람 그림자가 번개처럼 들이닥쳤다.“퍽퍽퍽!”입구에 있던 몇몇 사내들은 미처 피할 겨를도 없이 발길질에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하현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앞에 있던 남자 세 명을 날려버렸다.“앗!”처참한 비명이 여기저기서 들려왔고 걷어차인 사람들은 벽에 부딪혀 일어나지도 못한 채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섬뜩한 살기를 띠며 날아온 하현은 모든 사람들을 오싹하게 얼려버렸고 순식간에 공포에 벌벌 떨게 만들었다.“퍽퍽퍽!”하현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앞으로 돌진했다.그가 앞으로 나올 때마다 험상궂은 사내들은 그의 손바닥에 스치거나 발에 걷어차이거나 했다.우락부락하고 키가 큰 사내들은 피를 토하며 날아가 땅바닥에 쓰러져 비명을 질렀다.죽지는 않았지만 죽는 것보다 더 괴로운 고통에 시달려야만 했다.하현이 나타난 것을 본 우두머리 사내는 낯빛이 살짝 일그러진 채 냉소를 흘렸다.“오늘 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우두머리 남자는 눈꺼풀이 펄쩍 뛰었고 앞으로 한 발 나서고 싶었지만 자신의 몸이 마음처럼 말을 듣지 않고 계속 떨고 있음을 발견했다.남자는 간신히 용기를 내어 하현을 노려보며 말했다.“이, 이놈아! 도대체 넌 누구야?”우두머리 남자는 페낭 무맹에서 수년간 수련했었다.그런데 어떻게 자신이 이런 고수를 못 봤을 수가 있겠는가?지금까지 수도 없는 고수들을 만나봤지만 하현처럼 순식간에 해치우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퍽!”하현은 쓸데없는 말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바로 발로 남자를 걷어차 버렸다.우두머리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저항했지만 ‘따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손이 부러지고 말았다.이후 그의 몸은 붕 떠서 대리석 기둥에 그대로 부딪힌 후 바닥에 주저앉았다.눈코입 구멍이란 구멍에선 피가 쏟아졌다.그는 말을 하고 싶어도 도저히 괴로워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너무 무시무시했다!하현의 무서운 실력을 목도한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누군가 무적이 어떤 거냐고 묻는다면 지금 하현의 몸놀림이 바로 그것이라 답할 것이다.하현의 매서운 기운에 장내는 조용해졌고 비명을 지르던 사람들도 차츰 눈치를 살피며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하현은 강옥연의 곁으로 가서 자신의 외투를 벗어 그녀의 몸에 걸쳐 주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다들 괜찮아?”강옥연은 멍하니 하현을 쳐다보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괜찮아.”하구봉은 미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하현, 이런 꼴을 보여서 미안해.”“이번에는 내가 너무 방심했어. 사람을 좀 더 많이 배치했어야 했어. 그리고 도수 높은 양주를 마시는 바람에 내가 내 발목을 잡는 꼴이 되었어.”하구봉에게는 뼈아픈 교훈이 아닐 수 없었다.그가 페낭의 여수혁을 너무 얕봤던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체면이 깎이는 것은 그렇다 쳐도 하현이 직접 나서게 만든 것은 부하로서 불합격이다.“이건 창피한 일이 아니야. 상대는 오십 명에 육박해.
말을 마치며 여수혁은 왠지 꺼림칙한 기운이 느껴져 얼굴을 살짝 비틀며 말을 이었다.“능력이 있으면 한 번 더 해 보시지?!”“퍽!”하현은 손바닥을 휘둘러 우두머리 남자의 뺨을 때렸다.“자, 한 번 더 했어. 이제 어쩔 거야?”“개자식! 건방진 놈!”여수혁은 하현이 우두머리 남자의 뺨을 때리는 것을 보고 분노에 차올라 이성을 잃을 지경이었다.이건 그야말로 도발이었다.몇몇 예쁘장한 여자들은 하현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틀림없이 어느 시골 촌뜨기일 거라고 생각했다.촌놈 하나가 여수혁을 감히 도발해?이건 죽자고 덤비는 꼴이었다.여기는 페낭이었고 페낭 중에서도 가장 번화가에 위치한 클럽이었다.여수혁의 뒤에는 페낭 무맹과 남양 무맹이 버티고 있다.외지에서 온 촌놈이 감히 여수혁과 싸우려 들어?무슨 이런 장난을 치는 거야?드라마라도 감히 이렇게는 찍을 수 없을 것이다!하현은 우두머리 남자를 바닥에 넘어뜨린 후 그의 이마에 발을 올리며 차갑게 말했다.“그래, 나 오늘 밤 좀 건방지게 굴어 보려고.”“너 이 자식!”여수혁이 앞으로 나서며 부하들에게 불을 환하게 켜라고 손짓을 하는 순간 그의 얼굴이 얼음처럼 굳어버렸다.“너, 너, 또 너야!”“좋아! 너 이 자식, 잘 만났어. 안 그래도 벼르고 있었는데!”“오늘 내가 제대로 지옥의 맛을 보여주지!”여수혁의 얼굴에는 음산한 미소가 번졌다.“여기가 어디라고 와? 흥! 아주 간이 배 밖에 나온 놈이군!”“또 나를 건드려?!”“난 원래 양유훤 그 천한 것을 처리한 후에 네놈을 찾아가려고 했어!”“그랬는데 아주 제 발로 이리 찾아왔군!”옆에 서 있던 여영창은 눈 밑을 두툼하게 모으며 차가운 눈길로 하현을 응시했다.그는 여수혁의 말을 듣고 하현이 자신의 아들을 이 지경으로 만든 자임을 알아차린 듯했다.하현은 여수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날 찾아오려고 했다고?”“왜? 나한테 무릎 꿇고 용서를 빌려고?”
귀한 아들의 말에 여영창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런 다음 그는 앞으로 나가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여영창은 손을 뻗어 여수혁이 건네주는 담배를 받아 불을 붙이고는 한 모금 깊게 빨아당기며 눈을 가늘게 뜨고 희미한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이봐, 당신이 내 아들을 이렇게 만들었어?”“흥! 꽤 대단한 녀석이군!”“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어. 그리고 날 어르신이라 불러!”“그리고 두 손을 잘라!”“참, 당신 주변의 여자들은 남겨두고 우리 부자의 시중을 들게 해!”“그렇지 않으면 오늘 밤 당신은 죽어서 저 태평양 속으로 가라앉게 될 거야!”거만하기로는 여영창이 여수혁보다 한 수 위였다.하현은 엷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여영창 부맹주, 맞죠? 당신은 페낭 무맹의 부맹주이고 신분도 높은 사람입니다.”“그런데 이렇게 원칙 없이 행동하다니요?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법도 아랑곳하지 않겠다구요?”“내가 왜 당신 아들을 저렇게 만들었는지는 묻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여영창은 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차갑게 말했다.“당신이 무슨 이유로 내 아들을 저렇게 만들었든 감히 내 아들을 건드렸다는 사실만으로도 나한테 덤빈 거나 마찬가지야!”“나한테 덤볐다는 건 우리 페낭 무맹한테 덤볐다는 것이고!”“감히 여기서 나한테 법 같은 소리 하지 마!”“페낭에서는 내가 바로 법이야!”여수혁도 냉소를 흘리며 거들었다.“하 씨! 지난번에 병원에서는 우연히 양유훤을 만났기 때문에 내가 당신 체면을 봐준 거야!”“그래서 당신이 겨우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거라구!”“하지만 오늘은 아버지도 오셨고 하니 양 씨 가문 사람들이 온다고 해도 절대 봐주는 일이 없을 거야!”“게다가 이제 당신과 양유훤은 양 씨 가문과도 사이가 틀어졌잖아?!”“감히 양유훤이 이곳에 온다면 그 여자도 같이 해치워 버리는 거지!”말을 마치며 여수혁의 얼굴에는 거만하고 통쾌한 미소가 떠올랐다.지난번에는 체면을 많이 구겼지만
자신의 소중한 아들의 말에 표정이 싸늘해진 여영창이 눈초리를 가늘게 뽑으며 말했다.“이봐, 난 원래 내 아들의 아버지인 입장에서 좋은 말로 당신을 타이르려고 했어!”“당신 같은 사람한테는 무력을 쓰는 것도 아깝거든.”“하지만 지금도 후회할 줄 모르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다니!”“그렇다면 내가 당신을 좀 업신여겨도 날 탓하지는 못하겠지! 잘 알아둬. 우리 여 씨 집안의 미움을 사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라고!”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영창은 천천히 코트를 벗어 옆에 있던 여자에게 건넨 뒤 목을 좌우로 비틀며 상대를 위협하는 동작을 취했다.주위에서 수많은 갈채가 흘러나왔다.이들은 여영창이 손을 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그런데 지금 운 좋게 그 귀한 광경을 보게 되었으니 당연히 박수갈채를 보내야 한다.여영창은 주위에서 들려오는 갈채에 진정하라는 듯 손을 흔든 뒤 한 걸음 내디뎠다.한걸음에 바로 하현에게 다가선 여영창은 한 발을 더 힘차게 내디뎠다.그 힘과 세력이 가히 입이 쩍 벌어질 만큼 출중했다.“쾅!”순간 여영창은 조금의 자비도 베풀지 않겠다는 듯 온 힘을 다해 공격했다.여영창의 눈에 하현은 죽는 게 뭔지도 모르는 피 끓는 애송이에 불과했던 것이다.자기 아들의 두 손을 부러뜨렸을 뿐만 아니라 오늘 밤 감히 자신의 구역에 와서 난동을 부리다니 가만히 두면 도저히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었다.그는 단번에 하현을 무너뜨리고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어 평생 침대에 누워 비명이나 지르는 신세로 만들어 줄 참이었다.여영창의 공격에 하현이 꼼짝도 하지 않고 서서 놀란 듯 어리둥절한 모습만 보이자 주위의 예쁘장한 여자들은 모두 코웃음을 쳤다.그녀들은 하현이 곧 죽을 것이고 끔찍한 결말을 맞이할 거라고 생각했다.여수혁은 소파에 잠자코 다리를 꼬고 앉아 하현의 끔찍한 결말을 기다리고 있었다.그가 두 손이 이렇게 되지 않았더라면 당장에라도 하현에게 덤벼들었을 것이다.“조심해!”하현이 여영창에게 당하게 될까
하현의 움직임이 너무 빨라서 여수혁 일행은 하나같이 얼굴색이 급변했고 자신들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여영창도 속으로는 깜짝 놀랐다.왜냐하면 하현의 깔끔한 손놀림에 지금까지는 본 적 없는 강한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다.“죽여...”순간 여영창은 피하려고 해도 이미 늦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는 울부짖으며 두 손으로 온몸을 감쌌다.하지만 하현 앞에서는 아무 소용없는 짓이었다.여영창이 온몸을 감싸는 순간 하현의 손바닥은 이미 번개처럼 여영창의 얼굴에 떨어졌다.“퍽!”찰지고 낭랑한 소리에 여영창은 얼굴이 따끔거리고 아파서 눈앞이 캄캄해졌다.그는 한 방에 힘없이 뒤로 넘어져 뒤에 있던 그의 사람들을 그대로 덮쳐 버렸다.십여 명이 모두 한꺼번에 바닥에 엎어졌고 하나같이 낭패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었다.여수혁도 그들 사이에서 깁스를 한 두 손을 덜덜 떨며 고통에 몸부림쳤다.그는 주변의 부축이 없으면 일어설 수도 없는 신세였다.여영창은 대리석 벽면에 균열을 가하며 부딪혔고 몸이 천천히 미끄러지다 바닥에 널브러졌다.그의 얼굴에 죽을 것 같은 고통의 그림자가 내려앉았다.하현을 기다리고 있는 끔찍한 결말을 구경하려고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예쁘장한 여자들은 이 광경을 보고 깜짝 놀라 입이 딱 벌어졌다.그녀들은 마치 계란을 통째로 삼킨 것처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여수혁은 벌벌 떨며 겨우 일어섰다.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하현을 상대로 이렇게 무참히 쓰러질 줄은 몰랐다.여영창이 누군가?수십 년 동안 무술을 익힌 고수가 아니었던가?그런 자신의 아버지가 어떻게 이런 꼴을 당할 수가 있는가?여수혁은 재빨리 자신의 부하들에게 눈짓을 하며 뒤로 가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하현도 이 모습을 보았지만 막을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무덤덤한 표정으로 이수혁을 바라보며 말했다.“여수혁, 당신도 나한텐 상대가 되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당신 아버지도 안 되겠는데? 응?”
”사람들이 들이닥친다고?”“구원병을 불렀단 말이야?”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3분이면 부족하지 않아? 내가 10분 줄게.”“당신이 부른 사람들이 날 제압한다면 내가 기꺼이 무릎을 꿇겠어!”“그렇지만 그들이 날 제압하지 못한다면 그때는 당신 부자가 함께 내 앞에 무릎 꿇어야 할 거야!”여수혁과 여영창의 얼굴이 동시에 일그러졌고 둘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흉악한 미소를 입에 걸었다.그들이 불러들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쾅!”10분도 채 되지 않아 룸의 문을 발로 뻥 차며 누군가가 들이닥쳤다.무도복을 입은 남녀들이 싸늘한 표정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머리를 길게 기른 중년 남자가 맨 앞에 서 있었고 그의 얼굴에는 칼로 베인 듯 왼쪽 눈꼬리에서 오른쪽 턱까지 기다란 칼자국이 나 있었다.이 칼자국은 그의 외모를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패기 넘치는 인물로 보이게 만들었다.한눈에 봐도 보통 인물이 아닌 것이 느껴졌다.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 사람을 쳐다보았고 뒤에 있던 하구봉이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하현, 이 사람은 페낭 무맹주 심무해야.”하현은 그의 말을 듣고 살짝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여수혁 부자가 딱 이 정도 수준일 거라는 걸 짐작한 듯한 얼굴이었다.하현은 앞으로 나설 것까지도 없다고 생각되어서 소파에 기대어 앉아 아직 깨지지 않은 술병을 집어 들고 스스로 잔에 따라 맛을 보기 시작했다.“맹주 어르신, 오셨습니까?!”심무해가 사람을 데리고 나타나자 여수혁과 여영창 부자가 앞으로 나서며 공손히 인사했다.여영창은 말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여수혁이 이를 갈며 조심스럽게 말했다.“맹주님, 늦은 밤에 폐를 끼쳐서 정말 죄송합니다.”“하지만 저희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어느 멍청한 놈이 나타나서 우리 페낭 무맹을 존경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 형제 수십 명을 만신창이로 만들었고 제 아버지조차도 다치게 했어요.”“지금 페낭 전체
이의진도 눈살을 찌푸리며 거들었다.“하현, 내 말 잘 들어! 지금 당장 사과해!”“그리고 무릎 꿇어!”“그렇지 않으면 공사장에서 벽돌 나를 생각은 하지도 마!”“당신은 그냥 굶어 죽어!”하현은 이 씨 남매가 하는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덤덤한 표정으로 오만방자한 사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3분, 고명원에게 어서 와서 차를 따르라고 해.”“나 하현이 말했다고 전해.”“어서 어서 서두르는 게 좋을 거야. 시간을 넘길 시엔 차를 따르는 걸로 해결될 일이 아니야.”이영산을 비롯한 이 씨 가족들은 하나같이 겁에 질려 얼굴빛이 새까맣게 변했다.하현이 이렇게 고명원을 도발하는 것은 그들을 불구덩이로 집어넣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이놈이 이 씨 가족들을 데리고 같이 죽으려고 작정한 거야?“야! 당신이 뭔데? 감히 고 사장님을 오라 마라, 차를 따르라 마라 하는 거야?”장발의 사내는 냉랭한 눈빛으로 말했다.“사는 게 지겨워?”장발의 사내는 여차하면 하현을 밟아 죽일 듯 눈을 부라렸다.그때 온몸에 거즈를 두른 남자가 뒤에서 들어왔다.알고 보니 소항 회관에서 하현과 충돌한 그 남자였다.남자는 하현의 얼굴을 똑똑히 본 순간 두 눈동자에 두려움이 가득 서린 눈빛으로 온몸을 덜덜 떨었다.그는 장발의 사내에게 얼른 귓속말로 속삭였다.소항 회관에서 그는 하현에게 단번에 걷어차였다.고성양의 손발은 부러졌다.엄도훈은 하현 앞에서 나라님 모시듯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이로 미루어 보아 하현의 신분은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장발의 사내는 남자의 말을 듣고 얼굴을 찌푸리더니 쏜살같이 그의 사람들을 데리고 물러났다.“하현! 당신은 이제 죽었어!”이영산은 하현을 가리키며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의 최후를 한스러워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이따가 일이 생기면 당신 혼자 다 책임져! 절대 우리 끌어들이지 마!”이 씨 가족의 친척들도 모두 사나운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며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았
장리나는 이 말을 듣고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하현, 얼른 형님께 감사하다고 해야지!”“형님이 아니었으면 어디 가서 그렇게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겠어?”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당신은 뭔 말이 그렇게 많아? 그러다 혓바닥 깨물까 봐 겁도 안 나?”“하 씨! 당신 나한테 무슨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당신 정말...”장리나는 하현에게 조롱이 가득 담긴 말을 퍼부으려고 했다.그런데 그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퍽’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발로 문을 차고 들어왔다.차를 마시고 있던 하현은 들고 있던 찻잔을 든 채 눈을 가늘게 뜨고 문 쪽을 바라보았다.곧이어 러닝셔츠를 입은 남자 몇 명이 들이닥쳤다.그들 앞에 서서 담배를 물고 있는 긴 머리의 남자가 눈을 가늘게 뜨고 이 씨 가족들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모두 꺼져! 이 룸은 우리가 접수한다!”이영산은 오늘 아침 마침내 인생의 절정을 맞이했는데 어떻게 이런 꼴을 당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술기운을 내뿜으며 테이블을 세게 쳤다.“무슨 소리야? 우리 아직 다 못 먹었다구!”“우리 장청 캐피털 고 사장님이 여기서 밥을 먹을 건데 당신들 감히 이런 식으로 굴 거야?”시가를 물고 있던 남자는 무심한 듯 이영산을 쳐다보았다.장청 캐피털 고 사장님?고명원?고명원의 이름을 듣자마자 이영산은 술이 확 깨는 듯했다.방금까지의 원망과 분노가 순식간에 사라졌다.무례하다고 느끼던 이 씨 가족들도 장청 캐피털이라는 말을 듣고 모두 겁을 먹었다.고명원은 어쨌든 그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고 절대로 건드릴 수 없는 인물이란 것도 잘 알고 있었다.“그게 어떻게...”이영산은 말할 수 없이 난감한 표정이었다.그는 얼굴을 돌려 주변 친척들을 몇 번이나 쳐다본 뒤 멋쩍은 목소리로 말했다.“저기, 거의 다들 드셨죠?”“고 사장님이 이렇게 내 사업을 챙겨주시고 수백억짜리 프로젝트도 맡겨주셨는데 이 룸을 원하셨다니 드려야죠!”“다
설은아는 안색이 약간 변하며 무슨 말을 하려다가 하현에게 제지당했다.그가 오늘 여기 온 것은 이영산이 도대체 어떻게 기고만장한 허풍을 떠는지 보기 위해서였다.이제 막 좋은 볼거리가 시작되었는데 못하게 막아서면 얼마나 무례한 일인가!이영산의 부모도 소리를 듣고 와서 눈동자에 살벌한 눈빛을 떠올린 채 주시하고 있었다.데릴사위인 주제에 우리 아들의 경사를 축하하는 자리에 와서 재를 뿌리겠다는 것인가?!하현이 아니었으면 자신의 아들에게 아내가 하나 더 생겨 설 씨 가문의 모든 자산을 손에 넣었을지도 모른다.“아이고, 이게 누구야? 바로 그 전설의 데릴사위 아니야?!”“보기엔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어쩜 저렇게 머리가 안 돌아갈까?!”“머리가 좋았으면 노점에서 사 온 무 따위를 장모에게 선물했을까?! 흥!”“게다가 우리 영산이가 선물한 그림을 감히 가짜라고 모욕하다니!”“당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꼴같잖게 센 척하기는!”이영산은 그동안 설 씨 가문에서 있었던 일을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포장해서 이 씨 일가들에게 한껏 허풍을 떤 것이 분명했다.장리나는 당연히 이영산의 편이니 이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설은아는 이영산이 이렇게 낯짝이 두꺼울 줄은 몰랐다.순간 그녀는 참지 못하고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뭔가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은데요!”“됐어! 뭐가 어떻게 되고 저렇게 되고 상관없어!”“사람은 자기 분수를 알고 그 분수에 맞게 행동해야 하는 거야!”“자기 것이 아니라면 노력해서 얻을 생각을 해야지!”이 씨 가문 둘째 할아버지는 경험자 같은 자태로 말을 이었다.“젊은이, 내가 자네라면 지금쯤 순순히 설 씨 집안을 떠나 경비원이라도 해서 스스로 생활할 수 있게 했을 거야. 그게 데릴사위보다는 훨씬 나아!”“자네가 그러는 걸 자네 조상이 알면 무덤에서도 벌떡 일어날 거야!”하현은 웃으며 말했다.“맞는 말씀입니다. 딱 봐도 데릴사위 경험자로서 하시는 말씀이신 듯하군요!”“뭐?
”물론 두 사람이 오늘의 이 성과를 이룬 데는 여러 친척들, 어른들, 형제, 자매들의 도움 덕분이었습니다!”“저와 제 남편이 이런 연회를 마련한 것은 여러분에게 감사하기 위해서입니다.”이영산의 부친은 거만한 자세로 껄껄 웃으며 일어섰다.“여러분, 오늘은 마음 편히 즐겁게 먹고 마시길 바랍니다!”“필요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말씀하세요!”“82년산 마오타이든 뭐든 원하는 만큼 준비해 뒀으니까요!”이영산도 의기양양한 얼굴로 일어섰다.“부모님, 여기 어르신들, 형제, 자매 여러분!”“오늘 저를 축하하기 위해 이 자리를 빛내 주셔서 고맙습니다.”“저 이영산, 절대 그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건배!”말을 마치며 그는 호탕한 얼굴로 술 한 잔을 마셨다.“영산이와 의진이가 능력이 있었던 거죠. 그러니 이렇게 빨리 출세할 수 있었던 거구요! 앞으로 우리 친척들 좀 많이 살펴 주세요!”“맞아요. 이렇게 젊은 나이에 이런 대단한 성과를 거두다니! 정말 대단해요!”“장청 캐피털 일을 따내다니! 그게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요?!”“성월TV도 마찬가지예요! 배후에 금정 간 씨 가문이 떡 받치고 있는 곳이죠! 따라서 이것은 금정 간 씨 가문과 연줄을 맺은 거나 마찬가지예요!”“이제 우리 이 씨 가문이 완전히 떴어요!”친척들은 하나같이 영광스러운 얼굴로 이영산 남매를 바라보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늘어놓았다.항렬이 가장 높은 둘째 할아버지가 테이블을 탁 치며 큰소리로 말했다.“자손을 낳으려거든 이영산 같은 아들을 낳아야지!”“우리 이 씨 가문에 이영산이 있으니 이제 우리 가문은 더 높은 곳으로 갈 일만 남은 거야!”이에 이영산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입에 내걸며 호탕하게 웃었다.“둘째 할아버지, 숙모님, 숙부님. 과찬이십니다!”“저와 제 여동생이 아무리 능력이 있다손 치더라도 우리가 이 씨 가족이라는 사실은 바꿀 수 없습니다!”“이 씨 가문에 꼭 보답하겠습니다!”이어 이의진도 곱게 화장한 얼굴
이튿날 아침, 밤잠을 설친 하현은 방을 나서자마자 설은아의 차에 몸을 실었다.차에 오르자마자 그녀는 하현을 원망하기 시작했다.분명 오늘 이영산이 밥을 사기로 했다고 어제 다 얘기를 했는데 결국 하현은 이렇게 늦게 일어난 것이다.설은아의 스포츠카에 올라타서야 하현은 알게 되었다.이영산이 요 며칠 동안 무슨 개똥 같은 운이 그렇게 좋았는지 수천억짜리 공사를 수주했고 그와 함께 신분이 순식간에 치솟았다는 것이다.그리고 그의 여동생, 이의진도 직장에서 순풍에 돛 단 듯 승진하며 겹경사를 맞았다고 했다!최희정과 설재석 부부도 원래 이 자리에 참석하려고 했지만 임시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설은아를 대표로 내세웠다.설은아가 온다는 소식을 들은 이영산은 하현을 콕 집어 말하며 꼭 데려오라고 했다.말하자면 자신의 높아진 위상을 하현에게 보여줌으로써 코를 납작하게 할 셈인 것이다.하현도 이영산이 절대 좋은 마음으로 자신을 부른 게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상관없었다.설은아가 참석하라고 하니 함께 가 보는 것이다.낮 12시.하현과 설은아가 홍궁관 2번 룸에 도착했다.룸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안에는 커다란 테이블 다섯 개가 놓여 있어서 한 번에 오십 명 정도가 함께 식사할 수 있었다.테이블당 최소 몇백만 원이 든다고 하니 이영산이 떼돈을 벌었다는 얘기가 나올 만도 했다.테이블에는 사람들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었고 화색이 가득한 그들의 얼굴은 상류층 자태 그대로의 모습이었다.설은아는 낮은 목소리로 이 사람들이 모두 이 씨 집안사람들이라고 하현에게 설명했다.이 씨 집안은 삼류 가문이었지만 그 수는 적지 않았다.게다가 금정 토박이였기 때문에 항상 자신들의 지위가 높다고 생각하며 한껏 자존심을 치켜세우고 다녔다.설은아와 하현의 등장은 이 씨 집안사람들의 관심조차 끌지 못했다.이영산의 친부모는 이 자리를 주최한 장본인이지만 하현을 보고는 고개만 살짝 끄덕이며 거만하기 짝이 없는 자태로 문 바로 앞자리를
하현은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괜찮아. 내가 엄도훈의 목숨을 구해 줬으니 그는 나한테 신세를 진 셈이야.”말을 마치며 하현은 화제를 바꾸었다.“참, 대구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집안이나 되면서 왜 갑자기 자금난이 생긴 거야?”“그리고 왜 나한테 한마디도 안 했어?”하현은 이미 돌아가는 상황을 다 파악하고 있었다.원래 아홉 번째 집안에는 아무런 자금 문제가 없었다.하지만 설은아가 상석에 앉게 되자 대구 정 씨 가문의 일부 친족들이 불만을 품었고 그들은 비밀리에 물밑으로 많은 일을 벌여 원래 가문의 자금이었던 돈의 일부를 소리 소문도 없이 빼내었다.아홉 번째 집안이 가장 규모가 컸기 때문에 자금이 유출된 후 여기저기 구멍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설은아는 최선을 다해 구멍을 메워보려 했지만 아무리 해 봐도 해결할 수가 없었다.특히 그녀는 금정에 온 후 대구 정 씨 가문이 벌여 놓은 난장판을 떠안아 자금에 대한 압박이 더욱 커졌다.설은아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은행에 두 배의 이자를 물고 대출을 했지만 여전히 이천억이란 돈이 모자랐다.그래서 그는 오늘 고성양을 만나 돈을 빌려볼 생각이었던 것이다.“당신한테 왜 말 안 했냐고?”설은아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말해 봤자 무슨 소용 있어?”“당신 능력이 대단하다는 건 알지만 한 번에 이천억을 융통하기란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을 대구 정 씨 가문의 일에 끼어들게 하고 싶지 않았어. 당신한테 이로울 게 없거든.”설은아가 아직 하지 않은 말이 있었다.그것은 아홉 번째 집안이 자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과 대구 정 씨 가문 고위층 사이에 일생일대 도박과도 같은 계약을 했다는 것이다.만약 그녀가 하현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청한다면 계약을 어기는 것이 된다.문제는 대구 정 씨 가문은 절대 함부로 할 수 없는 만만찮은 가문이라는 것이다.하현은 말끝마다 그녀를 대구 정 씨 가문의 수장으로 만들겠다고
저녁 9시.술과 밥을 배불러 먹은 하현은 소항 회관을 떠나 설 씨 가문으로 돌아갔다.하루 종일 고생한 그는 전에 최희정과 한바탕 크게 싸운 것도 있고 해서 그녀를 다시는 맞닥뜨리고 싶지 않아 소리 없이 2층으로 올라갔다.자신의 방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설은아의 방에서 ‘아앗’하는 소리가 들렸다.하현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서둘러 문을 열고 들어갔다.방에 들어서자마자 향긋한 꽃향기가 물씬 풍겨왔다.설은아는 방금 목욕을 한 것으로 보였고 하얀 목욕 수건은 몸의 중요 부위만 감싸고 있었다.그녀의 백옥 같은 긴 다리는 수건 바깥으로 훤히 드러나 있어서 하현의 눈앞을 아찔하게 만들었다.하현은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은 미녀들을 만났다.그녀들 각각의 매력도 상당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하지만 그를 가장 설레게 한 사람은 역시 설은아였다.순간 하현은 자신의 호흡이 가빠지고 온몸이 후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다행히 그는 곧바로 냉정을 되찾아 얼른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들어왔어?”누군가 들어오자 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며 경계하는 눈빛을 보였지만 하현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후 긴장을 풀었다.하현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이쪽에서 무슨 소리가 나길래 들어왔어. 괜찮아?”설은아는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괜찮아. 조금 삔 것뿐이야. 주물러주면 괜찮아질 거야.”“내가 해줄게.”하현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설은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설은아는 침대에 앉아 곧고 긴 다리를 하현 앞에 쭉 뻗었다.하현은 설은아 앞에 쭈그리고 앉아 긴 다리를 주물렀다.손끝이 닿을 때마다 심장이 펄쩍 뛰었다.백옥같이 아름답다는 말이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싶을 만큼 그녀의 다리는 곱고 매끄러웠다.하현은 거의 무아지경으로 그녀의 다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설은아는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하현, 안마해 주겠다고 하지 않았어? 왜 만지작
고명원의 눈꺼풀이 파르르 흔들렸다.“뭐라구요?”정홍매도 넋이 나간 듯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서 있었다.그녀는 남편이 고향에 가서 조상님께 향불을 올리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러나 그녀는 줄곧 그 이유에 대해선 모르고 있었다.그런데 이런 이유가 있었다니!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간단합니다. 당신은 기가 강한 사람입니다. 남을 압도할 만큼. 그래서 당신의 강한 기운이 조상의 기운을 눌렀던 거죠.”“만약 당신의 기운이 충분히 강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당신은 열 번도 더 목숨을 잃었을 겁니다.”“스스로 잘 생각해 보세요. 당신 평생, 당신 아들이 태어난 후 당신이 몇 번이나 죽을 뻔하다가 살아났는지!”하현의 말을 듣고 고명원은 마침내 큰 충격을 받았고 탄복해 마지않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하현, 당신은 정말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엄 회장님이 이렇게 당신을 좋아하는군요!”“맞습니다. 난 정말이지 몇 번이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났고 그때마다 중상을 입었지만 죽지는 않았어요.”“하지만 운이 좋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거죠.”“옛날 사람들은 큰 재난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으면 훗날 반드시 복이 온다고 했어요.”하현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그런 건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당신에게 조상의 비호가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당신에게 후사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죠!”“그래서 지금이라도 가능하다면 아들이든 딸이든 낳아 보길 권합니다.”“그러면 다음에 조상님께 제를 올릴 때 저절로 향불을 태우고 싶을 겁니다.”“봉분의 풀들도 그렇게 푸르지는 않은 것 같군요.”“조상들의 숨결이 모두 기운을 다했기 때문이죠!”“개자식!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야!”“자꾸 그런 말 하면 내가 당신 입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거야!”“여보! 가! 가자구!”“자기가 무당이야? 뭐야?”“저 말을 믿느니 차리리 죽는 게 나아!”말을 마치자마자 정홍매는 고명원을 데리고 얼른 나가려고 했다.“
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의술은 정말 잘 몰라. 하지만 살인술은 좀 알지.”“한번 보여줘?”“단번에 당신의 목숨을 앗아버릴 수 있는데.”하현의 말을 들은 엄도훈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그리고 나서 아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농담하지 마세요! 형님! 농담도 참!”“간 떨어질 뻔했잖아요! 전 지금 형님이 제 목숨을 구해 주길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구요!”하현은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은침을 자신의 손가락에 살짝 찔러 피 한 방울을 짜낸 뒤 엄도훈의 미간에 떨어뜨렸다.그리고 큰 혈이 지나가는 명치 몇 군데에도 떨어뜨렸다.그러자 가슴에 있던 흔적이 천천히 옅어지기 시작했다...“어? 어? 사라지고 있어?! 정말로 사라졌다구!”몇몇 측근들은 모두 놀란 얼굴을 한 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왜냐하면 그들은 눈앞에서 흔적들이 서서히 옅어지다가 사라지는 것을 똑바로 목격했기 때문이다.엄도훈은 처음에 하현이 뭘 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그런데 이제 보니 흔적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온몸을 얽매고 있는 기운도 함께 사라졌고 이윽고 정신도 맑아지는 것 같았다.고명원도 눈앞의 광경을 보고 어안이 벙벙했다.그는 처음에 하현이 농간을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일을 보고 자신의 식견이 이렇게 모자랄 줄은 몰랐다.“형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정말 대단해요!”“정말 감동했어요! 이건 정말 말로 표현하지 못할 감동이에요!”엄도훈의 얼굴은 완전히 흥분의 도가니였다.“다만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게 있긴 해요.”“집이나 가게에 팔괘경을 비치하는 것을 좋아하는 어른들을 많이 봤어요. 하지만 그들은 모두 무사했는데 왜 나만 이런 일을 겪은 거예요?”“그 물건이 무덤에서 출토된 것이라고 해도 이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다들 그런 골동품을 쓰니까요.”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당신이 가지고 있던 팔괘경은 출토될 때부터 원한에 얽혀 있었어. 만약 내 추측이 맞다면 그 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