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마치며 여수혁은 왠지 꺼림칙한 기운이 느껴져 얼굴을 살짝 비틀며 말을 이었다.“능력이 있으면 한 번 더 해 보시지?!”“퍽!”하현은 손바닥을 휘둘러 우두머리 남자의 뺨을 때렸다.“자, 한 번 더 했어. 이제 어쩔 거야?”“개자식! 건방진 놈!”여수혁은 하현이 우두머리 남자의 뺨을 때리는 것을 보고 분노에 차올라 이성을 잃을 지경이었다.이건 그야말로 도발이었다.몇몇 예쁘장한 여자들은 하현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틀림없이 어느 시골 촌뜨기일 거라고 생각했다.촌놈 하나가 여수혁을 감히 도발해?이건 죽자고 덤비는 꼴이었다.여기는 페낭이었고 페낭 중에서도 가장 번화가에 위치한 클럽이었다.여수혁의 뒤에는 페낭 무맹과 남양 무맹이 버티고 있다.외지에서 온 촌놈이 감히 여수혁과 싸우려 들어?무슨 이런 장난을 치는 거야?드라마라도 감히 이렇게는 찍을 수 없을 것이다!하현은 우두머리 남자를 바닥에 넘어뜨린 후 그의 이마에 발을 올리며 차갑게 말했다.“그래, 나 오늘 밤 좀 건방지게 굴어 보려고.”“너 이 자식!”여수혁이 앞으로 나서며 부하들에게 불을 환하게 켜라고 손짓을 하는 순간 그의 얼굴이 얼음처럼 굳어버렸다.“너, 너, 또 너야!”“좋아! 너 이 자식, 잘 만났어. 안 그래도 벼르고 있었는데!”“오늘 내가 제대로 지옥의 맛을 보여주지!”여수혁의 얼굴에는 음산한 미소가 번졌다.“여기가 어디라고 와? 흥! 아주 간이 배 밖에 나온 놈이군!”“또 나를 건드려?!”“난 원래 양유훤 그 천한 것을 처리한 후에 네놈을 찾아가려고 했어!”“그랬는데 아주 제 발로 이리 찾아왔군!”옆에 서 있던 여영창은 눈 밑을 두툼하게 모으며 차가운 눈길로 하현을 응시했다.그는 여수혁의 말을 듣고 하현이 자신의 아들을 이 지경으로 만든 자임을 알아차린 듯했다.하현은 여수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날 찾아오려고 했다고?”“왜? 나한테 무릎 꿇고 용서를 빌려고?”
귀한 아들의 말에 여영창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런 다음 그는 앞으로 나가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여영창은 손을 뻗어 여수혁이 건네주는 담배를 받아 불을 붙이고는 한 모금 깊게 빨아당기며 눈을 가늘게 뜨고 희미한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이봐, 당신이 내 아들을 이렇게 만들었어?”“흥! 꽤 대단한 녀석이군!”“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어. 그리고 날 어르신이라 불러!”“그리고 두 손을 잘라!”“참, 당신 주변의 여자들은 남겨두고 우리 부자의 시중을 들게 해!”“그렇지 않으면 오늘 밤 당신은 죽어서 저 태평양 속으로 가라앉게 될 거야!”거만하기로는 여영창이 여수혁보다 한 수 위였다.하현은 엷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여영창 부맹주, 맞죠? 당신은 페낭 무맹의 부맹주이고 신분도 높은 사람입니다.”“그런데 이렇게 원칙 없이 행동하다니요?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법도 아랑곳하지 않겠다구요?”“내가 왜 당신 아들을 저렇게 만들었는지는 묻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여영창은 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차갑게 말했다.“당신이 무슨 이유로 내 아들을 저렇게 만들었든 감히 내 아들을 건드렸다는 사실만으로도 나한테 덤빈 거나 마찬가지야!”“나한테 덤볐다는 건 우리 페낭 무맹한테 덤볐다는 것이고!”“감히 여기서 나한테 법 같은 소리 하지 마!”“페낭에서는 내가 바로 법이야!”여수혁도 냉소를 흘리며 거들었다.“하 씨! 지난번에 병원에서는 우연히 양유훤을 만났기 때문에 내가 당신 체면을 봐준 거야!”“그래서 당신이 겨우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거라구!”“하지만 오늘은 아버지도 오셨고 하니 양 씨 가문 사람들이 온다고 해도 절대 봐주는 일이 없을 거야!”“게다가 이제 당신과 양유훤은 양 씨 가문과도 사이가 틀어졌잖아?!”“감히 양유훤이 이곳에 온다면 그 여자도 같이 해치워 버리는 거지!”말을 마치며 여수혁의 얼굴에는 거만하고 통쾌한 미소가 떠올랐다.지난번에는 체면을 많이 구겼지만
자신의 소중한 아들의 말에 표정이 싸늘해진 여영창이 눈초리를 가늘게 뽑으며 말했다.“이봐, 난 원래 내 아들의 아버지인 입장에서 좋은 말로 당신을 타이르려고 했어!”“당신 같은 사람한테는 무력을 쓰는 것도 아깝거든.”“하지만 지금도 후회할 줄 모르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다니!”“그렇다면 내가 당신을 좀 업신여겨도 날 탓하지는 못하겠지! 잘 알아둬. 우리 여 씨 집안의 미움을 사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라고!”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영창은 천천히 코트를 벗어 옆에 있던 여자에게 건넨 뒤 목을 좌우로 비틀며 상대를 위협하는 동작을 취했다.주위에서 수많은 갈채가 흘러나왔다.이들은 여영창이 손을 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그런데 지금 운 좋게 그 귀한 광경을 보게 되었으니 당연히 박수갈채를 보내야 한다.여영창은 주위에서 들려오는 갈채에 진정하라는 듯 손을 흔든 뒤 한 걸음 내디뎠다.한걸음에 바로 하현에게 다가선 여영창은 한 발을 더 힘차게 내디뎠다.그 힘과 세력이 가히 입이 쩍 벌어질 만큼 출중했다.“쾅!”순간 여영창은 조금의 자비도 베풀지 않겠다는 듯 온 힘을 다해 공격했다.여영창의 눈에 하현은 죽는 게 뭔지도 모르는 피 끓는 애송이에 불과했던 것이다.자기 아들의 두 손을 부러뜨렸을 뿐만 아니라 오늘 밤 감히 자신의 구역에 와서 난동을 부리다니 가만히 두면 도저히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었다.그는 단번에 하현을 무너뜨리고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어 평생 침대에 누워 비명이나 지르는 신세로 만들어 줄 참이었다.여영창의 공격에 하현이 꼼짝도 하지 않고 서서 놀란 듯 어리둥절한 모습만 보이자 주위의 예쁘장한 여자들은 모두 코웃음을 쳤다.그녀들은 하현이 곧 죽을 것이고 끔찍한 결말을 맞이할 거라고 생각했다.여수혁은 소파에 잠자코 다리를 꼬고 앉아 하현의 끔찍한 결말을 기다리고 있었다.그가 두 손이 이렇게 되지 않았더라면 당장에라도 하현에게 덤벼들었을 것이다.“조심해!”하현이 여영창에게 당하게 될까
하현의 움직임이 너무 빨라서 여수혁 일행은 하나같이 얼굴색이 급변했고 자신들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여영창도 속으로는 깜짝 놀랐다.왜냐하면 하현의 깔끔한 손놀림에 지금까지는 본 적 없는 강한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다.“죽여...”순간 여영창은 피하려고 해도 이미 늦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는 울부짖으며 두 손으로 온몸을 감쌌다.하지만 하현 앞에서는 아무 소용없는 짓이었다.여영창이 온몸을 감싸는 순간 하현의 손바닥은 이미 번개처럼 여영창의 얼굴에 떨어졌다.“퍽!”찰지고 낭랑한 소리에 여영창은 얼굴이 따끔거리고 아파서 눈앞이 캄캄해졌다.그는 한 방에 힘없이 뒤로 넘어져 뒤에 있던 그의 사람들을 그대로 덮쳐 버렸다.십여 명이 모두 한꺼번에 바닥에 엎어졌고 하나같이 낭패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었다.여수혁도 그들 사이에서 깁스를 한 두 손을 덜덜 떨며 고통에 몸부림쳤다.그는 주변의 부축이 없으면 일어설 수도 없는 신세였다.여영창은 대리석 벽면에 균열을 가하며 부딪혔고 몸이 천천히 미끄러지다 바닥에 널브러졌다.그의 얼굴에 죽을 것 같은 고통의 그림자가 내려앉았다.하현을 기다리고 있는 끔찍한 결말을 구경하려고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예쁘장한 여자들은 이 광경을 보고 깜짝 놀라 입이 딱 벌어졌다.그녀들은 마치 계란을 통째로 삼킨 것처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여수혁은 벌벌 떨며 겨우 일어섰다.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하현을 상대로 이렇게 무참히 쓰러질 줄은 몰랐다.여영창이 누군가?수십 년 동안 무술을 익힌 고수가 아니었던가?그런 자신의 아버지가 어떻게 이런 꼴을 당할 수가 있는가?여수혁은 재빨리 자신의 부하들에게 눈짓을 하며 뒤로 가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하현도 이 모습을 보았지만 막을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무덤덤한 표정으로 이수혁을 바라보며 말했다.“여수혁, 당신도 나한텐 상대가 되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당신 아버지도 안 되겠는데? 응?”
”사람들이 들이닥친다고?”“구원병을 불렀단 말이야?”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3분이면 부족하지 않아? 내가 10분 줄게.”“당신이 부른 사람들이 날 제압한다면 내가 기꺼이 무릎을 꿇겠어!”“그렇지만 그들이 날 제압하지 못한다면 그때는 당신 부자가 함께 내 앞에 무릎 꿇어야 할 거야!”여수혁과 여영창의 얼굴이 동시에 일그러졌고 둘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흉악한 미소를 입에 걸었다.그들이 불러들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쾅!”10분도 채 되지 않아 룸의 문을 발로 뻥 차며 누군가가 들이닥쳤다.무도복을 입은 남녀들이 싸늘한 표정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머리를 길게 기른 중년 남자가 맨 앞에 서 있었고 그의 얼굴에는 칼로 베인 듯 왼쪽 눈꼬리에서 오른쪽 턱까지 기다란 칼자국이 나 있었다.이 칼자국은 그의 외모를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패기 넘치는 인물로 보이게 만들었다.한눈에 봐도 보통 인물이 아닌 것이 느껴졌다.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 사람을 쳐다보았고 뒤에 있던 하구봉이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하현, 이 사람은 페낭 무맹주 심무해야.”하현은 그의 말을 듣고 살짝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여수혁 부자가 딱 이 정도 수준일 거라는 걸 짐작한 듯한 얼굴이었다.하현은 앞으로 나설 것까지도 없다고 생각되어서 소파에 기대어 앉아 아직 깨지지 않은 술병을 집어 들고 스스로 잔에 따라 맛을 보기 시작했다.“맹주 어르신, 오셨습니까?!”심무해가 사람을 데리고 나타나자 여수혁과 여영창 부자가 앞으로 나서며 공손히 인사했다.여영창은 말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여수혁이 이를 갈며 조심스럽게 말했다.“맹주님, 늦은 밤에 폐를 끼쳐서 정말 죄송합니다.”“하지만 저희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어느 멍청한 놈이 나타나서 우리 페낭 무맹을 존경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 형제 수십 명을 만신창이로 만들었고 제 아버지조차도 다치게 했어요.”“지금 페낭 전체
”당신 뒤에 누가 있냐고 물었어! 하지만 그건 내가 건드려서는 안 될 인물을 건드릴까 봐 두려워서가 아니라 당신 뒤에 있는 사람들을 모조리 파헤치려고 그러는 거야.”“그들에게도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하니까 말이야!”심무해는 어느 누가 와도 그 자리에서 깔아뭉개 버릴 수 있다는 듯 패기 넘치는 모습이었다.하현은 술을 한 모금 마시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정말 페낭 무맹주는 패기가 아주 넘치군요!”“잘못 들은 말은 아니었나 봅니다. 그래, 이제 깔아뭉갤 준비는 다 된 겁니까?”심무해는 냉랭한 얼굴로 말했다.“그래, 얼마든지!”“맞서 싸울 텐가?”“맞서 싸우고 싶다면 얼마든지 저항해 봐!”“우리 페낭 무맹이 얼마나 대단한지 몸소 보여주지!”심무해는 하현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이놈을 일으켜 세워 당장 고개를 쳐들게 해!”이 장면을 본 예쁘장한 여자들은 하나같이 눈이 휘둥그레졌다.심무해의 패기에 깜짝 놀란 그녀들은 역시 페낭 무맹주는 상남자 중의 상남자라며 감탄의 눈빛을 자아냈다.하현은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채 담담한 눈빛으로 심무해를 힐끗 쳐다보았다.두 눈동자에는 경멸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하현의 모습을 본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은 일제히 코웃음을 쳤다.헛!지금이 어느 때인데 저런 건방을 떨고 있는 거야?!이놈은 죽는 게 뭔지 모르는 놈이 틀림없어!여수혁도 사납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하 씨! 지금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허풍을 떨고 있는 거야?”“죽고 싶어 환장했어?!”여수혁 일행들이 토해 내는 분노의 외침 속에서도 심무해는 하현의 얼굴을 빤히 주시하고만 있었다.순간 온몸이 살짝 요동치며 그의 안색이 일그러졌다.페낭 무맹주인 그가 하현의 얼굴을 모를 리 없었다.남양 무맹이 얼마 전 특별히 자신에게 보낸 자료에서 분명히 본 얼굴이었다.자료 속에는 하현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고 모든 편의를 다 봐주라는 당부의 말도 함께 있었다.순간 심무해는 주변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건
여영창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맹주 어르신. 이 자식은 허풍이나 떠는 놈인데 왜 스스로 뺨을 때리십니까?”“퍽!”여영창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심무해는 손을 들어 여영창의 얼굴을 날려버렸다.여영창은 대리석 벽에 부딪혀 한참을 일어나지 못하다가 억울한 듯 입을 열었다.“맹주! 왜 날 때리는 겁니까?”화려한 옷차림을 한 남녀들도 깜짝 놀란 표정으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심무해는 분명히 여수혁과 여영창을 도와주러 왔는데 왜 자신의 뺨을 때리고 이제는 여영창의 얼굴까지 때리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러자 여수혁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맹주 어르신,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거 아니세요? 어르신이 때릴 사람은 이놈이지 제 아버지가 아닙니다...”“퍽!”여수혁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심무해는 바로 손바닥을 들어 여수혁을 옆으로 밀쳐 날려버리고 여영창의 뺨을 때렸다.여 씨 부자가 한 줄로 나란히 쓰러지고 말았다.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 광경을 지켜보며 입을 열었다.“맹주, 페낭 무맹에서 위신이 많이 떨어졌나 봅니다.”“스스로 뺨까지 때렸는데 아랫사람들은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오히려 맹주를 의심하기까지 하고 말이죠!”“참 실망스럽습니다.”말을 마치며 하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냉담한 눈빛으로 말했다.“하구봉, 가지.”하현이 일어서는 것을 보자 심무해는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어서 스스로 뺨을 때려!”“에?!”장내에 있던 사람들은 어이가 없었다.잠시 머릿속의 회로가 뒤죽박죽 엉킨 것처럼 뭐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자기 뺨을 때리라고! 못 알아들었어?”“내가 직접 일일이 뺨을 때려야 되겠어?”심무해는 고함을 지르더니 순간 홱 돌아서서 페낭 무맹 제자들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다른 페낭 무맹 제자들은 어리둥절해하다가 이 모습을 보고 자신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페낭 무맹에서 명령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하고 금지 사항은 절대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여기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심무해는 공손히 입을 열었다.“하현, 제가 잘못 가르쳐서 이렇게 폐를 끼치게 되었습니다.”하현은 술잔을 손에 들고 빙글빙글 흔든 다음 한 모금 마신 뒤 입을 열었다.“맹주, 폐를 끼쳤다 한마디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십니까?”하현의 감히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위엄 서린 태도로 말했다.“맹주, 대체 뭐 하는 겁니까?”여수혁이 참지 못하고 울부짖었다.“어떻게 이따위 대하놈에게 고개를 숙이십니까?”“뭘 그렇게 무서워하시냐고요?”“양유훤이란 천한 년이 키우는 기둥서방에 불과한 남자입니다!”“이전에 양유훤이 양 씨 가문과 찢어지지 않았을 때는 양 씨 가문이 겁이 났죠!”“하지만 지금 양유훤은 양 씨 가문과 찢어졌어요. 우리가 저놈을 두려워할 이유가 뭐 있습니까?”“양제명 때문입니까? 저놈이 그를 치료했다고 주장하지만 양제명이 저놈을 위해서 나선 적은 없었어요!”“제가 보기에 이건 속임수입니다.”“그러니 우리는 이놈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요!”여수혁은 심무해가 하현의 뒤에 있는 양유훤과 양제명을 두려워해서 이렇게 행동하는 줄 알았다.그래서 그는 하현이 별로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는 사람임을 심무해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퍽!”여수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심무해는 몸을 뒤로 힘껏 젖히고 달려와 그를 발로 걷어찼다.종이 인형처럼 날아간 여수혁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여영창에게 떨어졌다.연이어 부자가 얻어맞은 꼴이 된 것이다.“퍽!”“눈은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야? 남양 무맹 감찰관도 못 알아본단 말이냐구!”“퍽!”“하루 종일 놀기만 하고 남녀가 패를 이뤄 사람들을 괴롭힐 줄만 알다니! 정말 페낭 무맹 체면이 말이 아니야!”“퍽!”“계속해서 감찰관님을 화나게 만들고 있어. 감찰관님이 자비로우셔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지만 난 절대 당신들을 두고 볼 수가 없어!”순간 심무해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하현 일행이 집복당으로 돌아왔을 때 문 앞에는 이미 십여 대의 관용차가 서 있었다.이 차들은 경찰서 소속인 것도 있었고 주택건설부 소속인 것도 있었고 동사무소 소속인 것도 있었다.말하자면 정부 차원의 합동 집행부가 다 모인 것이다.수십 명의 제복을 입은 남녀들이 집복당을 둘러싸고 저마다 삿대질을 하며 기세등등한 모습을 보였다.채굴기를 몰고 와서 위세를 부리는 사람도 있었다.맨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은 대머리 남자였고 한 사람은 키가 좀 크고 다른 한 사람은 좀 뚱뚱했다.키가 큰 사람은 주택건설부 유니폼을 입고 있었으며 가슴에 새겨진 명패에는 이홍파라는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뚱뚱한 사람은 경찰서의 황택호 형사였다.두 사람은 관청 동기로 알려져 있으며 항상 함께 출동해 각종 불법 건축물과 불법 매장을 소탕했다.오늘 그들의 목표는 바로 집복당이었다.고명원은 앞에 나서진 않았지만 부하들을 시켜 집복당 문을 막도록 하여 이홍파와 황택호 두 사람이 이끌고 있는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다.합동 단속반은 기세가 등등해서 뭐라도 하나 걸리기만 한다면 내부 인테리어 전부를 깡그리 부술 태세였다.이렇게 되면 일이 더 커진다.고명원은 연합 단속반에게 미움을 사는 것은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오직 하현의 집복당이 잘못되어 뭐라고 설명할 말이 없게 될까 그것이 두려웠다.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는 왕인걸도 와 있었다.그는 집복당에 와서 아첨이라도 좀 해 볼까 했는데 마침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하현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왕인걸과 고명원이 뭐라고 설명하려고 했지만 하현은 얼른 손을 흔들며 그들을 제지했다.하현이 입을 열기도 전에 나박하가 합동 단속반에서 나온 두 사람의 손을 잡고 인사를 건넸다.“아이고, 이거 이홍파 팀장님과 황택호 형사님 아닙니까?”“무슨 바람이 불어서 두 분이 함께 우리 집복당엘 다 오셨습니까?”“이 누추한 곳에 두 분이 자리를 빛내주시니 영광입니다.”말을 하면서 나박하
”전부?”이 말을 듣고 강우금의 얼굴에는 비아냥거리는 기색이 역력했다.“여자한테 빌붙어 살면서 꼴에 자기가 재벌 2세인 줄 아나?”“정말 요즘 사람들은 자기 분수를 너무 몰라!”“전부는 고사하고 그의 전 재산을 다 부어도 소남가인 옷 한 벌 못 살 거야. 아니, 양말 한 켤레라도 산다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지겠어!”금정의 스타트업 사장이나 재벌 2세들도 소남가인 브랜드의 옷을 함부로 사지 못한다.그런데 한낱 한량에 불가한 하현이 돈이 어디 있어서 저런 비싼 옷을 산단 말인가?매장의 직원들과 손님들이 좋은 구경거리를 보려고 시선을 집중했다.소남가인 직원들은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살짝 망설였지만 결국 황보정에게 세심한 서비스를 제공해 주었다.곧 황보정은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옷을 모두 골랐다.수십 개의 옷 가방들이 순식간에 매장에 늘어섰다.이게 다 얼마인가?몇십억은 되어 보였다!“삑!”하현은 별일 아닌 듯 단번에 카드를 긁었다.그러자 승인되었다는 소리가 나면서 영수증이 좌르륵 쏟아져 나왔다.“어머?!”순간 소남가인 매장 안팎에선 수군거리는 소리로 소란스러워졌다.주변에 있던 직원들과 손님들은 하현을 쳐다보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황보정에게는 질투와 부러움의 시선들이 쏟아졌다.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하현이 저 많은 옷을 한 번에 결제하다니!그야말로 거부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 이럴 수 없어! 절대로! 이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강우금과 그녀의 매장 직원들은 모두 넋이 나간 듯 멍해졌다.뒤늦은 후회가 쓰나미처럼 밀려와 그녀들을 단번에 쓰러뜨렸다.그들은 도저히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방금까지 그들은 입만 열면 하현을 비난하는 말을 퍼부었다.노점상에나 가서 옷을 사라고 쫓아냈다.그런데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들의 얼굴이 화끈화끈거렸다.역시 가장 난처해하는 사람은 강우금이었다.그녀는 도저히 믿기지
강우금의 말을 들은 손님들은 하나같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옷도 안 사고 민폐만 끼치다니!덜떨어진 저런 사람이 이런 가게를 드나들 수는 없다!정말 재수없어!황보정은 슬쩍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강우금, 당신 같은 점장이 어디 있어요?”“정말로 이런 식으로 사람을 대우할 거예요?”“우리가 정말로 못 살 거라고 생각해요?”“이런 식으로?”강우금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황보정,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에요?”“내가 일부러 이러는 거예요? 당신이 그럴 자격이나 된다고 생각해요?”“난 금정 쇼핑몰 판매율 10위 안에 드는 사람이에요! 연봉이 일억이 넘는다고요!”“흥! 그런데 당신은 뭐죠? 하얗게 세탁한 싸구려 티셔츠 한 장 입고 와서 무슨 부자 행세를 하고 그래요?”“그리고 정말로 옷을 사고 싶으면 다른 데 가서 사세요! 여긴 당신이 살 수 있는 옷이 없어요!”말을 하면서 강우금은 바깥을 가리키며 냉소를 흘렸다.“1킬로미터 정도 나가면 많은 노점상들이 있을 거예요!”“거기 가면 한 벌에 몇 천 원짜리가 널렸을 거라고요!”“그래도 당신이 우리 가게에서 옷을 사고 싶다면 내가 특별히 기회를 주겠어요. 당신이 그래도 집복당 아가씨니만큼 이월된 재고 상품들 중 쓸 만한 것을 권해 줄 수는 있어요.”“하지만 문제는 살 수 있느냐 하는 거예요. 아무리 이월 상품이라고 해도 값이란 게 있는 건데 당신이 살 수 있겠어요?”하현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한 걸음 앞으로 나가 손을 뿌리치며 물건을 카운터에 올렸다.그리고 나서 황보정의 손을 잡고 말했다.“다른 데 가서 사자고!”황보정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바로 하현을 따라 가게를 나섰다.강우금은 이 광경을 보고 냉소적인 목소리로 직원들을 불렀다.“그들이 만진 물건들과 지나간 자리 얼른 소독하고 방향제 뿌려!”“저런 싸구려 인간들이 우리 가게를 더렵히게 놔두면 안 되지!”“뭐라고?”“다른 가게에 가서 산다고? 흥! 아무리 둘러
강우금의 말을 듣고 갑자기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찾은 듯 주변에서 쇼핑하던 사람들이 하현에게 눈을 힐끔거렸다.남자가 돈을 벌어서 가족들 부양할 생각은 하지 않고 부잣집 여자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다니?!정말 염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남자야!“강우금?”황보정은 순간 누군가가 하현을 조롱하는 소리를 듣고 낯빛을 흐리며 말했다.“우리는 여기 옷을 사러 온 것이지 당신의 비아냥 따위를 들으러 온 게 아니에요!”“이런 식으로 손님을 대한다면 당장 당신 회사에 불만을 제기할 거예요!”황보정에게 있어 자신이 모욕당하는 건 아무 일도 아니었다.하지만 하현이 모욕당하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불만을 제기한다고요?” 강우금은 어이없다는 듯 입꼬리를 들썩였다.“황보정, 머리가 어떻게 된 거예요?”“내가 금정 쇼핑몰에서 판매율 10위 안에 드는 점장이라는 걸 몰라서 그래요?”“불만을 제기한다고요? 그게 무슨 소용이라도 있을 것 같아요?”“문제가 뭔지 알아요? 여자한테 빌붙어서 사는 이런 남자들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흥! 당신이 어떻게 불만을 제기하는지 어디 한번 두고 볼게요!”“난 당신을 위해서 이러는 거예요!”“아마 당신이 이 사실을 안다면 나한테 불만을 제기하기는커녕 잘했다고 상이라도 줄 거예요!”“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집복당은 이제 한물간 거 아니에요? 내 앞에서 이럴 자격이나 돼요?”“이 옷, 정말 살 수 있어요?”이를 듣던 몇몇 손님들은 더욱 비아냥거리는 눈빛으로 황보정 일행을 쳐다보았다.그녀들은 하현이 여자한테 빌붙어 있는 것뿐만 아니라 몰락해 가는 집안의 여자의 고혈을 쪽쪽 빨아먹고 있을 줄은 몰랐다.아마 오늘 그의 작전은 십중팔구 실패로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하현은 강우금 같은 여자와 쓸데없는 입씨름을 하며 기분 상하기 싫어서 황보정의 손을 붙잡고 그녀가 마음에 들어 했던 옷을 집어 냉랭하게 말했다.“이 옷으로 합시다. 다른 건 나중에 사죠.”강우금은 하현의 손에
”손님, 아무렇게나 만지면 안 됩니다. 이 옷은 너무 비싸서 더러워지면 팔 수가 없거든요!”황보정이 옷을 꺼내 보려고 손을 뻗었을 때 점장으로 보이는 거만한 여자가 하이힐을 앞세우며 다가와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황보정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정신을 번쩍 차리며 말했다.“아, 죄송합니다. 저 옷 사고 싶은데 좀 꺼내 봐 주세요.”“꺼내 봐 달라고요?”점장은 황보정을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깨끗하게 세탁한 셔츠에 눈길을 모으며 말했다.“정말 살 수 있어요? 꺼내 봐 달라고요?!”“그게 무슨 말이에요?”“우리 황보정이 집복당 손녀인 걸 몰라요?!”황보정 곁에서 가방을 들고 있던 나박하가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버럭 했다.“집복당 손녀?”점장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얼굴 가득 미소를 떠올렸다.부자가 망해도 삼 년은 간다고 했던가!비록 집복당 명성이 예전만 못했지만 점장은 함부로 황보정을 건드릴 용기는 없었다.점장의 목소리를 듣고 하현은 약간 귀에 익다는 생각이 들어 무심결에 고개를 들었다.그는 한눈에 그녀를 알아보았다.진홍민의 절친 중 한 명인 게 분명했다.예전에 진홍헌이 대대적으로 고백했을 때도 이 여자는 현장에 있었다.하현이 자세히 살펴보니 그녀의 가슴에 ‘강우금’이라는 명찰이 붙어 있었다.하지만 이 여자는 자신을 못 알아보는 것을 눈치채고 하현도 더는 쓸데없는 말씨름을 하기 싫어 아예 입을 다물었다.“손님, 어떤 색이 마음에 드시는데요?”“우리 매장에는 다양한 색상들이 있어서 선택할 수 있어요.”강우금은 미소를 지으며 한껏 판매에 열을 올렸다.황보정은 강우금의 말을 듣고 돌아서서 하현의 옷자락을 끌어당겼다.“하현, 여기 와서 좀 봐줘요. 어떤 색이 더 예쁜지.”“예?”“하현?!”강우금은 그제야 하현을 알아보았고 처음에는 살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이내 냉소 가득한 얼굴을 보였다.비록 그날 하현이 진홍헌의 청혼식에서 크게 한판 벌였지만 나중에
황보정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하현은 앞에 놓인 다과를 말끔하게 먹은 뒤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좋아. 그럼 이 일은 이렇게 잘 마무리되었으니 나중에 쇼핑몰에 가서 옷이나 몇 벌 사자고!”“앞으로 내 대변인이 될 사람이니 말끔하게 보여야지.”“우리가 하려는 프로젝트는 대단히 수준 높은 프로젝트거든. 당신이 앞으로 접촉할 사람들은 모두 부유하거나 지위가 높거나 하니까 절대 무시당하지 않도록 준비를 단단히 해야지!”하현은 오늘의 이 결정을 그냥 기분 내키는 대로 내린 것이 아니었다.현재 임단은 이미 금정 화원에 있는 쓰레기 매립장 인수 일을 착수했다.비록 세간에서는 임단이 머리가 나쁘다는 소문이 돌고 있지만 하현은 금정 화원의 유적지가 발굴되는 순간 프로젝트 전체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 것이라는 걸 확신했다.이러한 전제하에 황보정이 자신의 대변인이 되어 일하겠다는데 멋진 옷 몇 벌 사 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황보정이 비록 풍수사로서 인정은 받았지만 방값이 꽤나 비쌌고 수입은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이전에 저축해 두었던 돈은 의사를 구하는 데 거의 써 버렸기 때문에 정말로 수중에 남은 돈이 얼마 되지 않았다.황보정은 한참 예쁘게 꾸밀 나이였지만 제대로 된 번듯한 옷도 몇 벌 없었다.하현은 이 기회를 빌어 황보정에게 옷도 몇 벌 장만해 주고 살아갈 발판도 마련해 주고 싶었다.황보정은 공손하게 머리를 숙여 나지막이 말했다.“하현, 아직 입을 만한 옷이 있어요. 살 필요까진 없다고 생각하는데요...”“왜? 안 사게?”옆에 있던 나박하는 차를 마시며 껄껄 웃었다.“하현이 옷을 사 준다고 하잖아!”“우리가 말끔하게 차려입지 않으면 하현의 체면이 깎여!”“이제 하현은 금정 제일의 풍수지리사로 불리게 되었어!”“그런데 우리 같은 사람들이 너무 허름하게 입으면 손님들이 우리 대사님의 실력을 의심할 거야!”“그러니 사양하지 마. 잠시 후에 우
다음날 아침 일찍 하현은 방을 나섰다.설은아의 방문을 지나칠 때 그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두 사람이 또다시 다투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거실에 와 보니 최희정은 핸드폰을 들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하현이 지나가자 그녀는 눈을 흘기며 슬쩍 곁눈질할 뿐 똑바로 쳐다보지도 않았다.미간에는 그를 향한 마뜩잖은 기색이 가득했다.최희정은 어젯밤 설은아와 하현의 말다툼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그래서 그의 뻔뻔함과 노여움을 눈빛으로 드러낸 것이다.하현도 최희정을 힐끗 쳐다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나 문을 나서려는 순간 최희정이 우다금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소리를 들었다.하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최희정이 우다금과 연락을 하고 있다고?지난번 저지른 일로 우다금은 따끔하게 혼이 나야 했었다.하지만 그다지 큰일이 아니라서 하현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바로 차를 타고 집복당으로 갔다.“하현, 아침은 먹었어요?”집복당 입구에 도착해 보니 언제 일어났는지 벌써 황보정이 나와 있었다.그녀의 눈은 이미 완전히 회복되었고 이제는 집복당 일을 하기 시작했다.하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황보정은 방긋 웃으며 말했다.“다과를 좀 만들었는데 한번 먹어 볼래요?”황보정은 오늘 짧은 잔꽃 무늬 치마를 입고 긴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긴 고운 자태였고 걸을 때 슬쩍슬쩍 보이는 하얀 다리는 눈부시게 빛났다.특히 그녀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하현은 싱그러운 젊은의 기운을 물씬 느꼈다.아찔해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그가 말했다.“그럼 감사히 먹어 볼게.”“감사할 사람은 나예요. 내 눈을 낫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몸도 정상으로 돌려놓았잖아요!”황보정은 동작이 재빨랐다.“안타깝게도 할아버지는 내가 남들 관상을 봐주는 일을 허락하지 않으세요. 내가 박명해서 다른 사람들의 관상을 계속 봐준다면 결국 내가 천기를 누설할 거라고 하셨어요.”“이번엔 다행히 당신을 만나서 살았지만 다
”풍수?”“하 대사?”“풍수관?”설은아는 명함을 움켜쥐고 노기 어린 얼굴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제대로 된 일을 하지는 않고 강호의 사기꾼이 되겠다는 거야?”“내가 당신을 이렇게나 오래 알고 지냈는데 당신이 풍수지리술을 안다는 걸 어떻게 몰랐을까?”“풍수를 보는 일이 얼마나 진지하고 엄숙한 일인지 알아?”“몇 마디 말로 사람들을 속이며 돈을 벌 수 있는 게 아니야!”“자칫 잘못하다간 많은 사람들을 죽게 하기도 하는 거야! 알기나 해?”하현의 명함에 적힌 직함을 보면서 설은아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집복당, 아홉 대째 내려오는 대단한 실력, 주역 대사...하현은 자신의 본업에는 조금도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남원이나, 무성, 대구에서는 하현이 정말로 실력이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금정에 와서 하현과 간민효가 친밀하게 지내더니 지금 눈앞에 내놓은 명함이라는 것을 보고 설은아는 슬슬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이전에 하현이 보여준 모든 것은 자신을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닐까?지난 모든 것은 하현이 설 씨 가문을 설득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허상 같은 것이었다!그리고 이 허상을 만든 장본인은 하현이 밖에서 만나고 있는 간민효임이 틀림없다!금정 간 씨 가문의 간민효는 이 모든 것을 해낼 능력이 있는 여자이다.바닥에 널브러진 사진들이 그것들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증거들이다!분노한 설은아를 보며 하현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우선, 그런 눈빛으로 날 쳐다볼 필요가 없어.”“난 당신한테 말할 수 있어. 나와 간민효는 금정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처음 알게 되었어.”“과거의 모든 일은 그녀와 아무 상관이 없어.”“둘째, 그녀와 난 그저 평범한 친구일 뿐이야. 당신한테 하나하나 말하긴 어렵지만 지금 함께 몇 가지 일을 처리하고 있어.”“셋째, 내가 풍수관을 연 것은 나름의 목적이 있어서야. 내가 개업을 할 수 있다는 건 나 스스로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이 있다는 걸 의
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만약 내가 간민효랑 그냥 평범한 친구 사이라고 한다면 당신 믿겠어?”설은아의 두 눈에 찬서리가 내려앉았다.“그럼 내가 김탁우랑 그냥 친구 사이일 뿐이라고 한다면 당신 믿겠어?”“그거랑 이거랑은 달라.”설은아의 말을 듣자마자 하현이 되받아쳤다.“뭐가 달라?”설은아도 지지 않고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긴장감을 올렸다.“김탁우가 이 사진을 주었을 때 우리 부부간의 감정을 해칠 수 있다며 약간 망설였었어.”“하지만 지금 보니 이 사진들이 아니었어도 우리 두 사람 사이에는 더 이상 훼손될 감정도 없는 것 같아!”“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해 둘 게 있어!”“내 차는 정비한다고 당신 비서 이시운이 가져갔어.”“그래서 일이 끝난 후 김탁우가 마침 가는 길에 날 데려다준 것뿐이야!”“나와 그 사람은 결백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다고! 누구와는 정말 다르지!”하현은 설은아의 말에 다소 화가 치밀어 올라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난 당신을 믿어. 하지만 김탁우는 믿지 않아. 그는 좋은 사람이 아니야. 설마 당신이 그것을 눈치 못 챌 리가 없을 텐데?”“하현, 함부로 말하지 마! 김탁우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해!”설은아는 얼굴 가득 노기를 띠며 말했다.“내가 이 사진들을 당신 앞에 내놓은 것은 적어도 당신이 조금이라도 반성하길 바래서였어!”“앞으로 이 들개 같은 여자랑 엮이지 말라고 말이야!”“하지만 당신은 결국 나의 호의는 전혀 헤아리지도 못하고 이런 무의미한 질투까지 하고 있어!”“만약 당신이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우리의 재혼에 대해 엄마한테 잘 말할 수 있는지 그런 거나 궁리해야 하는 거 아니야?!”하현은 냉정을 유지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들이 조건을 내걸었잖아?”“당신을 대구 정 씨 가문 수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그래서 나도 그쪽으로 노력하고 있어...”“뭐?”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