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의 대머리 팀장이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보자 하현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이곳에는 법도 정의도 없다는 걸 하현은 마침내 완전히 깨닫게 된 것이다.하지만 상대가 이렇게 나오는 게 오히려 낫다.그래야 나중에 이런 관계를 이용할 때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웃어?! 날 놀리는 거야?”하현이 계속 웃는 모습을 보고 대머리 팀장은 자신이 모욕당했다고 느꼈다.그는 탁자를 세게 치며 소리쳤다.“개자식! 경고하는데 이곳에선 법과 정의가 무엇보다 우선인 곳이야!”“헛소리 또 지껄이다간 당장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거야!”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좋아, 난 당신들의 그 말을 기다렸어.”“양 씨 가문이 먼저 사람을 때렸기 때문에 내가 반격을 했다면 당신들 믿겠어?”동그란 얼굴의 여형사와 대머리 형사는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이내 코웃음을 쳤다.“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점잖은 신사들이야. 배운 사람들이고.”“그런 그들이 당신한테 먼저 손을 댔다고?”하현은 침착하고 입을 열었다.“그들은 양유훤을 여수혁에게 강제로 시집보내기 위해 먼저 사람을 때렸어.”“협박했다는 거야?”동그란 얼굴의 여형사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여수혁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 페낭에서는 아주 유명한 거물이야!”“그런 사람과 결혼한다는 건 이곳 페낭 여자들이 모두 꿈꾸는 일이야!”“그게 양 씨 가문이 양유훤을 협박할 일이야?”“게다가 아무리 협박한다고 해도 이건 양 씨 집안의 일이야. 당신과 무슨 상관이냐고?”이때 동그란 얼굴의 여형사는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자, 어서 빨리 사람을 때린 사실이나 인정해! 당신을 얼른 감옥에 보내야 우리도 퇴근할 거 아니야?!”하현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그렇게 독단적으로 말하지 말지! 스스로 결론을 다 정해 놓고 말하면 안 되지, 안 그래?”여형사는 얼굴이 싸늘해졌다.“나한테 지금 가
원가령은 이전에 이신욱의 괴롭힘에 당해 큰일 날 뻔했었는데 하현이 그녀를 구해 준 이후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비록 그때 이신욱이 먹인 약에 원가령이 완전히 취해 있었지만 하현이 생명의 은인이란 사실은 또렷이 기억한다.그래서 지금 하현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예전과는 조금 달라졌다.막무가내로 그를 무시하던 자세가 아니었다.그러나 원가령의 옆에 서 있는 여인은 금테 안경을 쓰고 나이는 마흔이 훌쩍 넘어 보였지만 세련된 얼굴에 호리호리한 몸매가 눈길을 끌었다.단지 그녀의 매서운 눈빛에선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보통 남자들은 그녀 앞에서 고개도 들지 못할 아우라가 풍겼다.“안녕하세요.”원가령은 두 형사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하현에게 다가갔다.“하현, 당신이 왜 여기에 있어?”“엄마, 이 사람이 하현이야. 날 구해 준 사람. 날 구하기 위해 사람을 때렸던 거야.”원가령은 병원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양유훤과도 연락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양 씨 집안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모르는 상태였다.원가령의 말에 동그란 얼굴의 여형사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원가령의 말을 듣고 하현이 그녀한테 큰 은혜를 베풀었단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게다가 원가령은 원 씨 가문 원천신의 딸이었다.원천신은 비록 원 씨 가문 둘째 딸이지만 사생아로 태어나서 집안에서 완전히 소외되었다.그러나 원 씨 가문은 어쨌든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였다.이런 일개 수사팀장이 미움을 살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하현이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금테 안경을 쓴 여인은 하현을 빤히 쳐다본 후 원가령을 향해 입을 열었다.“가령아, 수사관님들이 사건을 처리하고 있으니 방해하지 마!”그녀가 바로 원 씨 가문 둘째 딸 원천신이었다.그녀 자신이 젊은 시절 몹쓸 남자에게 잘못 시집간 경험이 있기 때문에 딸의 말을 듣자마자 그녀는 경계의 눈빛을 드러내었다.원가령은 그제야 탁자 위에 하현의 손이 묶여 있는 것을 보고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하
남자친구?약혼자?이 두 단어를 듣고 하현은 하마터면 커피를 내뿜을 뻔했다.옆에서 거들먹거리던 두 수사관들도 지금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현을 주시했다.그들은 아무리 둘러보아도 하현에게서 특별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그들 중 누구도 하현이 양 씨 가문의 여인과 원 씨 가문 여인을 휘어잡을 만큼 큰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원천신도 어안이 벙벙하긴 마찬가지였다.잠시 후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타이르듯 말했다.“가령아, 이 사람이 진짜 네 남자친구든 아니면 약혼자든 어쨌든 죄를 지은 사람을 두둔할 순 없어!”원천신은 원 씨 가문에서의 자신의 처지를 잘 아는 것이 분명했다.비록 밖에서는 큰소리치며 군림하지만 조금이라도 분별없이 행동했다가는 순식간에 원 씨 가문의 비난을 한몸에 받을 것이다.원천신은 원 씨 가문 사람들에게 그런 빌미를 주고 싶지 않았다.원가령은 한껏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하현에게 말했다.“하현, 억울하다고 말해! 당신 같이 좋은 사람이 어떻게 아무렇게나 사람을 때릴 수 있겠어?”“당신이 때렸다고 해도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야!”동그란 얼굴의 여형사는 헛기침을 하며 끼어들었다.“우리도 당신 남자친구, 혹은 약혼자가 무죄이길 바랍니다. 하지만 양 씨 가문에 그렇게 많은 목격자들이 있으니 함부로 놓아줄 수가 없어요!”대머리 수사팀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보태었다.“맞아요. 완전히 무죄라는 실질적인 증거가 없는 한 누가 와도 보석으로 풀려날 수는 없어요!”자신의 말에 힘을 실어 넣기 위해서 대머리 남자는 배를 내밀고 더욱더 강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정총화 총경이 와도 소용없어요!”두 수사관이 생각지도 못하게 강경한 입장을 보이자 원가령은 머뭇거리며 하현에게 물었다.“하현, 정말 양 씨 가문 사람을 때렸어?”“그것도 먼저 때린 거야?”원천신은 눈을 내리깔고 하현을 내려다보다 원가령의 손을 잡아채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가령아, 사람
하현은 동그란 얼굴의 여형사를 휙 쳐다보며 말했다.“만약 원가령의 모친과 원가령이 이 자리에 없었다면 내 손안에 있는 이 증거를 당신들이 없애버리지 않고 고이 간직하게 해 주었을까?”동그란 얼굴의 여형사는 흠칫 놀라며 자신도 모르게 옆에 있는 대머리 팀장을 쳐다보았다.대머리 수사팀장은 하현을 매섭게 쏘아보다가 얼른 머리를 숙였다.하현은 이제 원 씨 가문을 뒷배로 둔 사람이 되었고 확실한 증거도 있으니 경찰 당국으로서도 그를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30분 후 하현은 경찰서에서 무사히 풀려났다.원가령 모친과 원가령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풀려날 수 있었겠지만 어쨌거나 두 사람이 옆에서 도와준 건 사실이기 때문에 하현은 깍듯한 목소리로 말했다.“부인, 원가령. 고맙습니다!”“이 일은 잊지 않겠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식사라도 대접하겠습니다!”원가령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하현, 페낭에서 내가 뒷배가 되어줄게.”“우리 엄마는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원 씨 가문 둘째 딸이야. 페낭이나 남양에선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지!”원천신은 원가령의 말을 듣고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며 말했다.“가령아, 쓸데없는 말 하지 마!”“하현이 무사히 빠져나온 건 큰 잘못이 없기 때문이야.”“정말로 죄가 있었다면 내가 아무리 역량이 뛰어나다고 해도 절대 그를 빼내올 수 없지.”“우리 원 씨 가문 권력은 이런 일에 쓰라고 있는 게 아니야.”원천신의 말속에 희미한 경고의 메시지를 읽은 하현이 담담하게 웃었다.그는 원래 원가령에게 득을 볼 생각도 없었으므로 이에 개의치 않았다.“어쨌든 오늘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다음에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제 능력껏 최선을 다해서 돕겠습니다.”원천신은 이 말을 듣고 한쪽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렸다.원 씨 가문은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이며 최근에는 대하에서 막 부상하고 있는 천일 그룹과도 연을 맺었다.
하현이 원천신의 이런 마음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하현은 개의치 않을 것이다.어쨌든 어머니가 자식을 보호하는 한 방법이니 당연한 일이다.그는 명함을 받아 챙겼다.바로 그때 원천신이 갑자기 입을 가리고 가벼운 기침을 두 번 했다.순간 하현은 무의식적으로 원천신의 가슴팍을 바라보았다.하현의 눈이 자신의 가슴팍을 향하는 것을 본 원천신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가 어떤 신분인가?대하의 어중이떠중이가 감히 건방진 눈빛을 할 수 있는가?하현이 자신의 딸을 구해 준 사람이 아니었다면 벌써 원천신의 손바닥이 하현의 얼굴을 스쳤을 것이다.“부인, 제게 이렇게 친절히 대해 주셨는데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하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부인, 혹시 무슨 무학을 수련하셨습니까? 제가 보기에 부인이 수련하신 무학에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수련을 잠시 중단하시거나 아예 수련을 끊으시거나 하지 않으면 오래 살지 못하실 듯 보입니다!”“하현!”원가령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하현이 양제명을 치료했다는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정말이야?”“엄마, 하현은 대단한 사람이야. 하현의 말을 들어야 해!”원천신은 희미하게 눈을 치켜뜨고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당신 눈썰미가 이렇게 좋을 줄 몰랐군. 내가 몸을 좀 튼튼하게 하기 위해 몇 년 동안 무학을 배웠다는 걸 알아차리다니.”“그러고 보니 당신도 대단한 고수 같은데?”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고수까지는 못 됩니다. 부인과 비슷한 처지죠.”“부인께서는 지금 무술을 연마하느라 폐를 상하신 듯합니다. 빨리 수련을 멈추시거나 아니면 아예 그만두시는 게 좋겠습니다.”“그렇지 않으면 나중엔 고칠 약이 없을지도 모릅니다!”“절 못 믿으시겠다면 병원에서 사진이라도 찍어 보세요.”하현은 그녀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자신이 알아봐 줄 수 있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원천신이
”당신이 내 건강을 걱정해 준 건 고마워. 기회가 되면 건강 검진받으러 갈게!”“하지만 오늘은 이만. 나와 가령이는 먼저 가봐야겠어!”원천신의 눈에 의미심장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그럼 몸조심하고!”하현은 원천신의 의미심장한 표정을 보고 그녀가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부인, 잠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부인을 좀 살펴봐도 되겠습니까?”“됐어, 하현. 내가 면전에서 당신을 내치지 않은 것은 가령이의 체면을 봐서였어!”“아주 고분고분하게 대해주니까 만만하게 보는군!”원천신은 한 걸음 앞으로 나가 단둘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원천신이 화가 난 것을 보고 하현은 한숨을 내쉬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하현의 뒷모습을 보고 원천신은 냉랭한 얼굴로 코웃음을 친 후 원가령을 데리고 도요타 엘파에 올라탔다.원가령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어머니를 당해낼 수는 없었다.“가령아. 그가 널 구해 주고 양호남을 때리긴 했지만!”“양호남과 같은 부류가 아니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니?”“양호남은 예전에 네 남자친구이면서도 널 함정에 빠뜨릴 뻔했는데 하물며 방금 만난 저 사람은 어떻겠어?”“앞으로 연락하지 마! 절대!”원천신은 말을 하면서 긴 다리를 꼬며 냉랭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앞으로 어떤 장소에서든 그가 너의 남자친구라든지 약혼자라든지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돼. 알았니?”“시집을 가더라도 성실하고 진솔한 사람한테 가야지. 저런 사람은 안 돼!”“저런 사람은 사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평범한 친구로 만나는 것도 허락할 수 없어!”원천신은 화가 몹시 난 모양이었다.하현과 양 씨 가문의 원한은 둘째치고 이유 없이 남의 일에 말려드는 것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감히 그녀가 수련하는 무학에 잘못된 것이 있고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니!그녀는 일찌감치 하현에게 호감을 잃었다.젊은 사
원천신이 직접 병원에 가서 검사한 일을 하현은 당연히 알지 못했다.그는 경찰서를 떠난 뒤 바로 양유훤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리고 차를 한 대 불러서 곧바로 양 씨 가문 별채로 향했다.양유훤은 하현이 스스로의 힘으로 빠져나올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그래서 집안 주방장에게 성대한 식사를 준비하게 했다.취조실에서 고생한 하현을 위로하고 보상해 주려는 의도였다.“하현,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양유훤은 하현에게 직접 와인을 한 잔 따라주며 묘한 눈웃음을 지었다.하현이 오늘 양 씨 가문에서 그녀를 유일한 양 씨 가문 일인자로 만들겠다고 한 것에 그녀는 무척 흥미가 있었다.그녀에게도 이렇게 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그렇게 되면 더 이상 양 씨 가문 노부인의 통제를 받을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양 씨 가문의 영광을 다시 회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하현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난 항상 단순하게 일을 해 왔어. 양 씨 가문이 그토록 페낭 무맹과 연을 맺고 싶어 했지만 우리는 그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었어.”“이참에 페낭 무맹이 바로 우리 편에 붙어 들러리가 되도록 해야지.”“페낭 무맹이 우리 편이 되면 페낭 무맹한테 빌붙어 겨우 연명하고 있는 양 씨 가문은 자연스럽게 우리 손아귀에 있게 되는 거야.”“앞으로 페낭은 물론 남양에 이르기까지 양 씨 가문은 당신이 손에 쥐게 되는 거야.”하현은 양 씨 가문의 협박이나 독살 시도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양유훤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당신 말대로 할게. 그렇지만 당신이 혼자 이리저리 뛰는 걸 나도 보고만 있을 순 없지, 안 그래?”하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내 기억이 맞다면 양 씨 가문이 예전에 상처치료제를 만들었었지?”양유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 수십 년 전에 우리 양 씨 가문에서 만든 약은 남양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명했어.”“치명적이지 않은 웬만한 상처에는 일정량만 바르면 바로 지혈이 되고 상처를 아물게
충격에 휩싸인 양유훤의 얼굴을 보고 하현도 약간 어리둥절했다.세상 일은 정말 어디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다.그러나 어쨌거나 다행한 일이었다.양유훤이 이 조제법으로 약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그렇게 된다면 빠른 시일 내에 남양 3대 가문에 속했던 과거의 영광을 다시 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두 사람이 이 조제법으로 최대한 빨리 약을 생산하는 방법에 대해 얘기하려는 순간 갑자기 양유훤의 핸드폰이 바쁘게 울리기 시작했다.핸드폰을 꺼내 잠시 들여다본 양유훤은 갑자기 안색이 어두워진 채 고개를 돌려 하현을 바라보았다.“하현, 일이 잘 안될 것 같아.”“여수혁이 방금 법원에 내 명의로 된 남양 자산을 모두 동결하는 소송을 제기했어.”“자산이 없으면 물건을 만들고 싶어도...”양유훤은 쓴웃음을 지었다.양 씨 가문 사람들이 이렇게 염치없는 짓까지 할 줄은 몰랐다.양 씨 가문 사람들이 자세한 속사정을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여수혁이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그녀를 고소할 수가 있겠는가?“여수혁, 페낭 무맹...”하현은 양유훤의 말을 듣고 웃으며 손을 뻗어 양유훤의 손에서 전화기를 가져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걱정하지 마. 이 일은 나한테 맡겨.”“양 씨 가문을 손에 쥘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내가 약속했잖아. 난 말한 것은 지키는 사람이야!”...“붕!”밤 10시 정각.페낭의 해변가 술집 거리에 차가 한 대 멈춰 섰다.이어 하구봉이 강옥연을 비롯한 몇 명을 데리고 차에서 내려 거침없이 미성 주점으로 들어섰다.오늘 밤 그들의 임무는 여수혁을 찾는 것이었다.술집에 들어서자마자 사방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다.여수혁이 소유한 이 술집은 장사가 아주 잘 되기로 소문난 곳이었다.홀에는 빈 좌석 하나 보이지 않았고 댄스 플로어에는 남녀가 미친 듯이 몸을 뒤흔들고 있었다.많은 여자들 곁에는 침을 질질 흘리며 손길을 바라는 남자들이 거머리처럼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이때 강우금과 진홍민의 시선이 스테이크 칼을 들고 있는 하현에게로 향했다.“어, 하 씨...”순간 두 여자의 눈빛이 갑자기 멍해졌다.진홍헌도 하현을 알아보았다.그는 자신이 가장 창피한 순간에 하현을 만났다는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이렇게 얼굴이 만신창이가 된 순간에 그와 맞닥뜨리다니!자리를 떠나려던 강우금과 진홍민 두 사람은 한편으로는 이여웅의 팔을 잡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현을 가리키며 작은 입을 가리켜 뭐라고 소곤소곤거렸다.이여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을 이끌고 오만불손한 표정으로 다가왔다.진홍헌은 깜짝 놀라 벌벌 떨었다.상대가 자신을 때릴 것이라고 생각해 화들짝 놀라 허둥지둥 자리를 떠났다.그는 속으로는 화가 들끓었지만 자신이 이여웅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이대로 계속 부딪힌다면 결국 자신은 묻힐 곳도 찾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 신세가 될 것이다.“탁!”하현이 스테이크를 계속 썰려고 하던 순간 이여웅이 갑자기 앞에 있는 의자에 발을 올렸고 의자는 그대로 주저앉았다.하현은 몸을 뒤로 빼면서 주저앉는 의자를 피했다.의자는 땅바닥에 부딪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술잔은 어지러이 널브러졌고 식사는 완전히 엉망이 되었다.“개자식!”나박하가 벌떡 일어났지만 하현이 그를 제지했다.하현은 눈을 지그시 뜨고 이여웅을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아이참, 여웅 오빠, 이게 무슨 짓이지?”이여웅은 담배를 움켜쥐고 긴 연기를 내뿜으며 비아냥거리듯 이죽거렸다.“이봐, 당신이 우리 진홍민과 강우금을 화나게 하고 당혹스럽게 만든 사람이지?”친밀감이 느껴지는 호칭으로 대화를 튼 두 사람을 보고 바닥에 쓰러져 있던 진홍헌은 이 상황이 창피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하현은 담담하게 내뱉었다.“괜히 진홍헌을 잡는 척하지 마. 나랑은 전혀 상관없으니까.”“내 머리릴 짓밟고 싶었지만 나한테 나가떨어질 게 겁이 났어?”“우후!”이여웅은 기괴한 웃음소리를 냈다.
”홍민아... 네가... 어떻게...”진홍헌은 자신의 동생도 이여웅에게 찰싹 달라붙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는 화가 나고 어이가 없어서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똑똑해. 아주 똑똑해...”이여웅은 껄껄 웃으며 진홍헌을 쳐다보았다.“진홍헌, 여동생이 외모는 별로지만 아주 똑똑하군.”“내가 당신 총명함을 봐서 함께 데리고 가지!”진홍민은 눈이 번쩍 뜨였다.“여웅 오빠.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영광이에요!”진홍민도 중천그룹이 기울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만약 그녀가 빨리 이여웅 같은 사람을 잡지 않는다면 앞으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없을 것이다.진홍헌은 똥 씹은 얼굴을 했지만 이여웅은 두 여자를 끌어안고 깔깔대며 흡족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가자, 오늘 날 기쁘게 한다면 둘 다 내가 수양딸로 거둘게!”“앞으로 난 의붓아버지로서 매달 일억씩 용돈을 줄게!”“자, 아빠라고 불러!”그러자 진홍민과 강우금은 동시에 입을 모았다.“와! 너무 좋은 아빠다!”진홍민은 이여웅의 강점을 잘 알고 있었다.그리고 강우금도 지금 이 순간 이여웅의 재산이 진홍헌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래서 그녀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여웅의 품에 안긴 것이다.심지어 진홍민은 속으로 조심스레 몇 가지 생각을 떠올리기 시작했다.이여웅을 잘 모신다면 나중에 혹시 그가 가지고 있는 중천그룹 주식이 자신에게 넘어올 수도 있지 않을까 했던 것이다.그러면 자신이 쉽게 중천그룹을 장악할 수 있게 된다.이여웅은 환하게 웃으며 진홍헌을 쳐다보았다.“진홍헌, 당신은 먼저 꺼져!”“오늘 밤 당신 여자친구와 여동생은 돌아가지 않을 거야.”“앞으로 난 당신의 매부이자 동서이자 아버지야...”“하하하하!”말 같지도 않은 이여웅의 말을 들으니 아무리 부잣집 도련님이라도 진홍헌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그는 눈이 벌겋게 달아올라 이를 갈며 말했다.“개자식!”“사람을 이렇게 무시하
”오호! 아주 미녀들이시군!”이여웅의 시선이 강우금에게 쏠려 그녀를 위아래로 바쁘게 훑어보았다.“강우금, 오늘 내가 82년산 마오타이를 가져왔는데 나와 함께 위층에 가서 맛보는 건 어때요?”“참, 미리 말해 두자면 난 다른 사람이 내 체면을 무시하는 걸 제일 싫어해요.”“내 체면을 무시한다는 건 내 얼굴을 사정없이 때리는 거나 마찬가지거든.”말을 하면서 이여웅은 자신의 오른손을 스리슬쩍 강우금의 허벅지 위로 올렸다.“어머, 이거 왜 이래요?!”“나 술 잘 못 마셔요. 기껏해야 두 잔밖에 못 마신다고요...”강우금은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명품 매장에서 퇴출된 후 그녀는 진홍헌의 품에 안겨 그의 여자친구가 되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여자친구로서의 지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그녀는 겉으로는 싫은 척하는 듯했지만 속은 그렇게 싫지만은 않은 듯 한껏 아양 떠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모습에 이여웅은 만족스러운 듯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띠었다.“형님, 이 여자는 내 여자친구입니다...”진홍헌은 이여웅의 오른손을 그녀의 허벅지에서 떼었다.진홍헌은 강우금이 죽고 못살 정도로 좋은 것은 아니지만 다른 남자가 자신의 여자를 빼앗아가는 건 다른 문제였다.게다가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이 사실이 알려지면 진홍헌은 앞으로 금정 바닥에서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형님, 제 체면도 좀 생각해 주세요. 제가 다른 여자들 소개해 드릴게요...”“퍽!”눈앞의 여자에게 한껏 흥미가 끓어올랐던 이여웅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고 조금도 망설임 없이 손을 들어 진홍헌의 얼굴에 내리쳤다.진홍헌은 한방에 온몸을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쳤다.그의 얼굴을 벌겋게 부어올랐고 입가에는 붉은 피가 넘쳐흘렀다.“체면?”“진홍헌이 내 앞에서 무슨 체면이 있어서 세우네 마네 하는 거야?”이여웅은 담배를 깊이 빨아들여 연기를 내뿜고는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다.진홍헌은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형님, 그 여
흥미로워하는 이여웅의 눈빛을 본 순간 진홍헌의 눈꺼풀이 펄쩍 뛰어올랐다.그는 방금 일부러 이여웅이 들어오는 것을 못 본 척했는데 상대가 말을 걸어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금정 부잣집 도련님 망신은 혼자 다 시켜 놓고 어째서 이 형님한테 인사도 안 하는 거야?”“인사하는 법도 못 배웠어?!”“아주 정말 거만하군그래!”말을 하는 동안 이여웅은 자신의 사람들을 데리고 진홍헌 앞에 다가와 손을 뻗어 그의 오른쪽 얼굴을 툭툭 건드렸다.자기 세상인 것처럼 한껏 떠들고 있던 진홍헌은 이여웅이 자신의 얼굴을 툭툭 치는데도 화를 내지 못했다.“아, 형님, 제가 몰라봐서 죄송합니다.”비록 진홍헌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가 이여웅을 상당히 꺼려 한다는 걸 알아차렸다.이여웅과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이 영 마뜩잖은 눈치였다.“오호, 중천그룹 진홍헌이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었어?”“이 이여웅을 못 본 척할 정도로?”“눈이 나쁜 거야? 아니면 대놓고 날 무시하는 거야?”이여웅은 진홍헌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기분 나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제가 어떻게 그런 마음을 품겠어요? 형님, 너그럽게 봐주세요.”평소에 어디서도 당당하던 진홍헌이었지만 지금 이여웅 앞에서는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고 애써 웃음을 쥐어 짜내었다.하현의 얼굴에 더욱 짙은 의혹의 빛이 떠오르자 나박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당신이 모르는 게 있어요. 진화개발은 중천그룹 주식의 50%에서 60%정도를 가지고 있어요. 이는 당시 중천그룹이 진화개발에게 막대한 투자금을 빌렸기 때문이에요.”“그래서 다른 사람 앞에서는 큰소리치는 중천그룹도 진화개발 앞에서는 아무 소리도 못해요.”“듣자 하니 진홍헌이 당신 처제를 마음에 두었다고 하더군요. 아마 대구 정 씨 가문의 보호를 받고 싶어서 그랬을 거예요.”“그렇지 않으면 중천그룹이 진화개발에 합병될 수도 있거든요.”하현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저렇게 처량한 신세가 된 데에는 다 이유
하현이 뭔가 떠오른 듯 갑자기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그날 간민효가 비행기에서 총기를 가진 누군가에게 당했을 때, 그것도 완연결이 한 짓인가?”“맞아요. 얼마 전 간민효가 공격을 받은 것도 아마 대부분 완연결과 관련이 있어요.”“보아하니 해골파가 손을 쓴 것 같던데 배후에는 아마 완연결이 있었을 거예요. 확실해요.”엄도훈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겉으로 보기엔 일련의 사건들이 서로 아무 관련이 없는 독립된 일처럼 보였지만 하나하나 실마리를 풀고 보니 그 사건들이 모두 얽히고설켜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하현은 골똘히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했다.“보아하니 내가 이번에 금정에 온 건 정말 잘한 일인 것 같아.”그가 금정에 오자마자 장생전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니!하현은 자신이 운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장생전이 운이 나쁜 것인지 알 수 없었다.“자, 그 얘긴 이제 그만하지.”하현은 손을 뻗어 엄도훈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이제 어디 갈 거야? 내가 데려다줄게.”엄도훈이 몸을 곧게 펴며 정중하게 말했다.“죄송하지만 형님, 임페리얼 빌딩에 좀 데려다주실 수 있습니까?”30분 후, 차는 임페리얼 빌딩에 도착했다.이곳은 금정의 랜드마크 중 하나였다.아래 4층까지는 대형 쇼핑몰이고 위층은 오피스텔이었다.이곳에 입주한 회사들은 모두 금정의 대기업들이었다.엄도훈은 비록 정신이 몽롱하고 피곤했지만 그래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전용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하현은 따라 들어가지 않고 시계를 슬쩍 본 뒤 나박하를 데리고 아래층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가서 식사를 했다.그러나 두 사람이 앉아서 막 식사를 주문하려고 했을 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레스토랑 문을 벌컥 차며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하현은 자신도 모르게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한 남자와 두 여자를 보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남자는 진홍헌이었고 여자는 그의 여동생 진홍민, 그리고 전에 황보정에게 옷을 사 주다가 싸움이 벌어진 강우금이었다.“정말
하현은 희미한 시선으로 말했다.“장생전?”“네, 맞아요. 장생전이요.”엄도훈은 하현이 이를 짐작했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자세한 내막을 캐묻지 않고 장생전에 관해 세심하게 설명을 이어갔다.“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여섯 은둔가의 조상이 모두 제왕을 지냈기 때문에 신선을 찾아 장생전에 대해 알아보고 또한 그것을 꿈꿨다고 합니다.”“왕조가 멸망한 후 이러한 일들은 자연스럽게 후손들의 손에 넘어갔죠.”“여섯 은둔가들이 손에 쥐고 있는 비밀들을 모을 수만 있다면 분명 장생전을 만날 수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그런데 문제는 이 세상에 장생이 어디 있겠냐는 것입니다.”“제가 아는 한 여섯 은둔가가 가진 비밀은 사실 가문에만 전승되어 오던 것입니다.”“절대 다른 곳에 누설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죠.”“그래서 완연결이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지 알게 된 여섯 은둔가는 간민효의 지도 아래 완연결을 토벌하였습니다.”“완연결은 하룻밤 사이에 강인하고 야심찬 인물에서 포로로 전락하였고 수많은 그의 부하들도 사상을 입게 되었습니다.”“다만 감옥으로 압송되는 과정에서 그의 차가 납치되었습니다.”“그 순간 우리는 그가 장생전에서 왔다는 걸 알게 되었죠.”말을 마치고 난 엄도훈은 심하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분명 장생전을 입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은 매우 흥미로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여섯 은둔가가 이 상황에서 서로 연합한 것은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왜 간민효가 손을 썼을까?”엄도훈은 의아한 듯 눈을 살짝 찡긋거리며 말했다.“말하자면 완연결이 운이 나빴다고 할 수 있죠. 그에게는 아들이 있었는데 늘 간민효에게 관심을 가졌어요. 간민효를 차지하려고 여러 번 시도를 했고요.”“처음에는 간민효도 그를 무시하고 말았는데 나중에는 화가 나서 여섯 은둔가와 연합을 하고 나섰어요...”하현은 이 말을 듣고 눈초리를 가늘게 늘어뜨렸다.간민효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걸 알긴 했지만 이렇
완연결은 장생전에서 지위가 낮지 않았고 당시 금정 지부 수장이었다.지금 땅바닥에 널브러진 사람들은 모두 그의 수하에 있는 유능한 인재들이었고 모두 일등 고수들이었다.그런데 이 사람들이 하현과 맞붙어 제대로 방어도 해 보지 못하고 널브러졌다니?!하현은 엄도훈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상관하지 않고 얼른 부상 상태를 처리한 후 일어섰다.“됐어. 다친 곳은 기껏해야 3일 정도면 다 나을 거야. 시간 되면 한의사한테 찾아가서 약이나 몇 첩 지어서 컨디션 조절해.”엄도훈은 그제야 정신을 번쩍 자리고는 안간힘을 쓰며 일어섰다.“형님, 진심으로 말씀드립니다.”“지금부터 언제든지 제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해 주세요.”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별말을 다 하는군. 별거 아니야. 게다가 여기서 만나자고 한 건 나니까 나한테도 책임이 있어.”“그건 그렇고 여기는 당신 사람들을 좀 시켜서 정리하라고 해.”“당신은 나랑 함께 같이 가자고. 아니면 여기서 기다릴 거야?”“아니요. 같이 가시죠.”엄도훈은 주변을 휘익 둘러보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형님, 어떻게 이런 곳에서 날 보자고 하셨어요?”“내 추측이 맞다면 이곳은 아마 예전에도 험악한 곳이었을 텐데요.”“이곳은 금정 전체에서도 가장 흉악한 곳이에요!”“여기서 만나자고 할 줄 알았더라면 아마 죽어도 안 왔을 거예요.”엄도훈은 이 사실을 미리 떠올리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깊이 후회했다.“흉악한 곳? 이곳은 그냥 버려진 흉가 아니야?”엄도훈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형님, 예전에 관청의 최고 책임자가 이곳이 마음에 들어서 여름에 피서를 하기 위한 별장을 짓고 싶어 했죠...”“결국 반쯤 지어졌을 때 땅속에 있던 큰 무덤을 건드리게 되었고 일하던 사람들은 온데간데없이 소식이 끊겼다고 합니다...”“그러고 나서 이곳은 봉쇄되어서 아무도 들어갈 수 없게 되었고요!”“엽기적인 사건을 띄워 조회수라도 올려 볼까 했던 블로거들이 탐험하러 왔다고 들었는데 전부
”이런 살인술은 기이하긴 하지만 나한테는 어린아이들 소꿉장난이나 마찬가지지.”하현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여전히 담담했다.“단 3분 만에 내가 당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어.”요염한 여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하현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우리 문제를 해결해 주는 대가로 엄도훈을 풀어 달라는 거지? 그렇지?”하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로서는 지금 손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어쨌든 어렵게 장생전과 관련된 몇 개의 실마리를 찾았는데 만약 그들이 죽기라도 하면 얼마나 낭패스러운가?죽은 사람을 앞에 두고 어떻게 진술을 받아낼 수 있겠는가?“아주 매력적인 조건이지만 아쉽게도 난 당신한테 동의할 수 없어.”요염한 여자는 차가운 얼굴로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렸다.“하지만 우릴 생각해 준 당신의 마음이 가상해서 나중에 우리가 당신을 죽일 때는 고통이 길지 않게 단번에 죽여 줄게.”하현은 이 말을 듣고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그는 요염한 여자가 자신이 내건 조건을 승낙할 줄 알았다.그녀가 아무리 엄도훈에게 깊은 원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목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는가?하지만 상대방이 헌신짝 버리듯 하현의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보아 사혈이 막힌 그들의 상태는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인 행위였음이 분명했다.기꺼이 사혈을 틀어막은 것이다.그들을 이 지경에까지 만든 사람은 보통 잔인하고 냉혹한 사람이 아닌 것이 틀림없다.그렇지 않았더라면 이 사람들이 이렇게 철저하게 무릎을 꿇지는 않았을 것이다.간단히 말해서 사혈을 봉인해야 그들이 살 수 있는 것이다.사혈이 풀린다면 그들은 반드시 죽을 것이다.그래서 하현의 제안은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난 당신들과 싸우고 싶지 않았어.”“그런데 아쉽게 되었군!”“아쉬울 것 없어!”요염한 여자가 당차게 내뱉으며 웃었다.“당신은 이곳에 와서 몰래 염탐만 해도 될 일이었어.
요염한 여인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우리 완연결 선생 뒤에 누가 있는지 당신은 상상도 하지 못할 거야.”“당신 같은 사람이 우리 완연결 선생을 상대할 자격이 된다고 생각해? 순진하기는!”“내 말은 그러니까, 순순히 운명을 받아들이란 거야. 발버둥치지 말고. 왜냐? 그래 봐야 아무 소용없으니까.”“당신을 도와줄 동료들이 지금 옆에 없는 걸 탓할 필요도 없어. 왜냐하면 간민효가 여기 있었다면 그녀도 무릎을 꿇었을 테니까.”말을 하면서 여자는 쭈그리고 앉아 엄도훈에게 주사를 놓으려고 했다.“꿈도 꾸지 마!”엄도훈은 버럭 소리를 질렀고 순간 바닥에 흩어져 있던 유리 파편을 얼른 집어 자신의 목을 향했다.다른 사람의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훨씬 낫다!“퍽!”여자는 긴 다리를 휘둘러 유리 파편을 들고 있던 엄도훈의 손을 발로 차서 날려 버렸다.그런 다음 한 발을 엄도훈의 가슴에 짓누르며 주사기를 엄도훈의 몸에 찌르려고 했다.“아이 참...”그때 어디선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하현은 두 손을 뒷짐지고 유유히 걸어 나왔다.이 일은 원래 그와 무관했지만 상대방이 하는 말에 이 일이 간민효와 장생전과도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그로서도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어쨌든 그가 금정에 있는 가장 큰 목적 중 하나이기도 했다.하현이 나오는 것을 보고 요염한 여자와 그녀의 일행들은 눈살을 찌푸리다 이내 굳어졌다.가장 중요한 순간에, 이런 흉가에 누군가 나타날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 분명했다.순간 그들은 총과 칼, 쇠몽둥이들을 들어 올려 하현을 겨냥했다.요염한 여인이 입을 열었다.“당신 누구야?”여자가 말을 하는 동안 그녀의 일행들은 빠르게 흩어져 하현의 퇴로를 막아서며 잡아먹을 듯 사나운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엄도훈은 그제야 누가 왔는지 알아보았다.그도 처음에는 구원자가 나타난 줄 알고 기뻐했으나 이내 걱정스러운 얼굴로 소리쳤다.“형님, 어서 도망가세요! 이놈들은 보통 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