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명소리와 함께 남양 도둑은 몸을 날리며 기내 가장자리에 그대로 부딪혀 얼굴을 감싸쥔 채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이 광경을 보고 현장에 있던 구경꾼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대하 사람이 감히 남양 땅에서 남양인을 때리다니?!이것이야말로 무법천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이봐, 당신 우리 남양에 여행 온 거지?”“이국땅에서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어떻게 된다는 거 몰라?”“대하인들이 우리 남양땅에 와서 여행하려고 하거든 깍듯하게 행동하고 출입국 직원들한테 팁도 줘 가면서 굽신거려야지 어디 우리 남양인을 괴롭히고 있어?”“당신이 이렇게 하는 건 얼핏 보면 화풀이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대하인 모두한테 피해를 주는 거야!”“우리 남양국에서 이렇게 함부로 날뛰고 사람을 때리는 건 이유가 어찌 되었든 간에 법을 위반하는 거야, 알아?”“지금 당장 사과해! 어서!”양복 차림의 남양 청년 몇 명이 앞으로 나와 하현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노발대발했다.그리고 아름다운 남양 여인들이 얼른 남양 도둑을 부축하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동시에 이 여자들의 눈에는 하현을 향한 노여움이 가득 차 있었다.어떻게 대하 사람이 고귀한 남양인을 감히 때릴 수가 있는가?설마 요즘 대하 사람들이 남양국에 오면 모두 멸시를 당한다는 걸 몰라서 이러는 건가?사람을 때리기까지 하다니!아마도 더 이상 살기 싫은 게 분명해!벌레 보듯 노려보는 사람들의 매서운 시선 속에 하현이 냉담하게 입을 열었다.“이 사람은 내 지갑을 훔쳤어. 그래서 한 대 때렸어. 뭐 문제 있어?”“우리는 이 남자가 당신 지갑을 훔치는 건 못 봤지만 당신이 이 사람 얼굴을 때리는 건 똑똑히 봤어! 당신은 법도 몰라?!”“우리 남양이 얼마나 부유한 나라인지 알아? 당신들 대하의 부자란 부자는 죄다 우리 남양에 휴가를 즐기러 오는데.”“어떻게 우리나라에 도둑이 있을 수 있어?! 응?”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한마디씩 거들었다.“거참, 대하 사
”도둑한테 사과하라고? 농담하는 거야?”하현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웃어?!”군중 속에서 화장을 곱게 한 여자가 달려나왔다.그녀는 하현을 노려보며 얼굴 가득 성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개자식! 함부로 사람을 때렸을 뿐만 아니라 뭐? 지금 우리 남양인을 무시하는 거야?”“이 일, 제대로 해명하고 사과해야 할 거야! 그렇지 않으면 정말 생각지도 못한 곤경에 처할 테니 각오해!”“해명?”하현은 매서운 눈빛으로 말했다.“당신들이 뭔데 나한테 해명하라고 하는 거야?”“당신이 당신 지갑을 우리 고귀한 남양인한테 순순히 바치려 하지 않고 사람을 때리고 말로 모욕했기 때문에 이제 아주 괴로운 시간을 보내게 될 거야!”아리따운 여자가 떵떵거리며 입을 열었고 한 걸음 걸어 나와며 기세등등한 모습을 보였다.“사과해! 얼른 무릎 꿇고 사과해!”하현은 거칠고 억센 남양 여자를 보며 눈을 가늘게 뜨고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만약 내가 거절한다면?”“거절?”“거절하면 입국을 할 수 없게 될 거야. 공항 경찰서에 구류되어 3박 4일을 옴짝달싹도 못한 채 지내야 할 거고.”“우리 남양인에게 미움을 산다는 게 어떤 건지 똑똑히 알게 될 거야!”남양 여자는 표독한 눈빛으로 하현을 깔보며 말했다.그 모습이 마치 한껏 날개를 펼친 공작새의 모습 같았다.“당신이 번지르르하게 차려 입고 일등석에 앉았다고 뭐라도 된 것처럼 생각하나 본데 내 눈에는 아무것도 아니야.”“셋을 셀 테니까 그때까지 무릎을 꿇어. 그렇지 않으면 내가 당신 얼굴을 날려줄 거야!”“하나! 둘! 셋!”셋을 셀 때까지도 하현이 아무런 미동이 없자 여자는 화가 나서 달려들어 손바닥을 힘껏 들어 올렸다.“퍽!”찰진 소리가 울렸다.팔짱을 끼고 덤덤히 서 있던 하현이 여자를 향해 손바닥을 날린 것이다.“개자식! 사람을 또 때리다니!”몇몇 남양인들은 이 광경을 보고 소매를 걷어붙이고 하현을 혼쭐내려고 달려들었다.“퍽퍽퍽퍽!
30분 후 비행기는 페낭 국제공항에 무사히 착륙했다.하현 일행은 일등석에 앉았기 때문에 가장 먼저 비행기에서 내렸고 동시에 특별 셔틀버스가 마중 나와 있었다.하현에게 뺨을 맞은 몇몇 남양인들은 먼저 차에 탔고 그 남양 도둑은 핸드폰을 꺼내 하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뒤 음흉한 미소를 띠며 입꼬리를 실룩거렸다.10분 후 셔틀버스가 터미널 밖 출입국 심사대에 도착했다.“선생님, 거기 서세요!”수백 명의 승객이 일일이 출입국 심사대에서 검사를 마치고 별다른 문제없이 모두 통과했다.그런데 하현의 차례가 되었을 때 갑자기 제복을 입은 여직원이 나타나 하현을 가로막았다.그녀의 눈에 의심하는 눈빛이 넘실거리고 있었다.그녀는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언짢은 듯 미간을 찌푸렸다.먼발치에서 남양 도둑은 흡족한 듯 냉소를 짓고 있었다.국제항공법에 따라 비행기에서 일어난 일은 남양 측에서 하현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하지만 그들에게 하현을 혼내 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하현은 곧 몇몇 공항의 보안요원들에게 둘러싸여 심층 검사를 위해 격리 구역으로 갔다.아무런 흔들림 없는 하현의 표정을 보고 많은 남양 승객들은 경멸하는 눈빛을 보냈고 일부는 손가락을 들어 목을 긋는 시늉을 지어 보였다.그들은 하현이 비행기에서 일으킨 행동 때문에 그곳에 끌려가서 샅샅이 검사를 받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자기 나라도 아닌 곳에서 신중하게 행동하기는커녕 오히려 거리낌 없이 주먹을 날리다니, 저런 꼴을 당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핸드폰 잠금장치를 푸세요. 안에 수상한 내용이 없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몇 명의 보안요원들이 하현의 짐을 마구잡이로 뒤지면서 몸수색을 시작했고 동시에 하현에게 핸드폰 잠금장치를 풀라고 종용했다.하현은 눈앞에 있는 여직원이 왠지 아까 그 남양 도둑과 닮았다는 느낌이 들자 얼굴 가득 흥미로운 기색을 떠올렸다.“선생님, 핸드폰 잠금장치를 어서 풀어주세요. 그래야 우리가 검사를 할 수 있습니
또 다른 여자가 냉소를 흘리며 끼어들었다.“당신이 아무개 그룹의 자식이든 말든.”“여기선 그런 신분 나부랭이 아무 소용없습니다!”“좋은 마음으로 한마디만 더 할게요. 최대한 우리 일에 협조하는 게 좋을 겁니다. 잠금장치 비밀번호 말씀하시고 태도를 똑바로 하세요.”“혹시나 금지된 자료를 가지고 왔는지 꼼꼼히 살펴봐야 합니다.”“그렇지 않으면 공항 경찰서에서 당신을 48시간 동안 가두고 본국으로 돌려보낼 수도 있어요!”“48시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우리는 책임질 수 없습니다!”여자의 말을 들은 다른 직원들은 하나같이 비웃으며 하현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이런 식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위협했을지 안 봐도 훤했다.아무리 능숙한 척해도 그들 앞에서는 결국 사나운 호랑이도 온순하게 머리를 납작 엎드려야 했을 것이다.심지어 소지하고 있는 현금, 시계, 보석류 등을 모두 기꺼이 ‘바쳐야'하는 일도 있었을 것이다.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바로 공항 경찰서로 넘겨버리겠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지금 그들은 하현의 트렁크에서 그다지 가치 있는 물건을 발견하지 못한 것임이 틀림없다.만약 발견했다면 아마 벌써 하현을 보냈을 것이다.“자, 당신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 같으니 내가 당신들한테 마음껏 기를 펼 수 있는 기회를 드리죠.”하현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내 핸드폰 잠시 줘 보세요. 전화 좀 할 데가 있어서요.”“오우! 전화해서 누구한테 일러바치려구요?”“아주 대단하군요! 흥!”이초연이 코웃음을 쳤다.“연경의 어느 대단한 분에게라도 전화하려구요?”“잘 들어요. 어떤 거물에게 전화를 한다고 해도 소용없어요!”이 말에 보안 직원들은 자기들끼리 키득거리며 비아냥거렸다.지나가던 승객들도 어느덧 구경꾼처럼 이 광경을 보고 아주 쌤통이라는 듯 비아냥거리며 수군거렸다.그들이 보기에 하현은 정말로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에 불과했다.이곳에서 감히 행패를 부
하현은 무덤덤한 얼굴로 전화를 끊고 이초연을 향해 손가락 세 개를 펼치며 3분을 표현했다.“3분?”하현의 동작을 본 이초연은 코웃음을 쳤다.“아무한테나 전화를 걸어 맞은편에서 당신 장단에 맞춰주면 내가 깜빡 속을 줄 알았어요?”“똑똑히 들어요! 쓸데없는 짓 해 봐야 아무 소용없어요!”“우리가 세상 물정 모르는 시골 촌뜨기도 아닌데 그런 어설픈 연기에 속겠어요?”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그렇게 자신만만하니 3분쯤 기다리는 거 아무 일도 아니잖아요!”“좋아요! 딱 3분만 기다리겠어요!”“그동안에 당신이 이 일을 처리하지 못한다면 내가 나서서 당신을 처리할 겁니다!”이초연은 두 손으로 팔짱을 끼며 콧대를 높이며 하현에게 큰소리를 쳤다.하현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핸드폰을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대하무맹이 정식으로 세계무맹 상임이사를 맡았다는 뉴스를 보았다.3분이란 시간은 훌쩍 지나갔고 하현과 이초연을 둘러싼 공간에는 침묵만이 가득했다.이초연은 손목을 들어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까르띠에 시계를 힐끔 쳐다본 뒤 입을 열었다.“3분 다 됐군요. 촌뜨기 씨!”“지금 당장 공항 경찰서로 가 줘야겠습니다. 거기 가서 우리 자세히 더 얘기해 봅시다.”그러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멀리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곧이어 양복 차림의 배불뚝이 중년 남자가 헐레벌떡 뛰어왔다.그의 뒤에는 임원으로 보이는 거물 수십 명이 긴장한 기색을 띠며 따라다녔다.이초연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을 맞이했다.“이 사장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이 사장은 이초연의 말은 무시한 채 시선을 돌려 주위를 빠르게 훑어보다가 하현을 발견하고는 엷은 미소를 띠며 두 손을 내밀었다.“하현, 하현 맞지?”하현은 아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이 사장은 하현의 뒤로 엉망진창으로 널브러진 캐리어에 시선이 쏠렸다가 하현을 바라보며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이 사장의 등줄기에선 이미 식은땀이
하현이 또박또박 당차게 받아치자 이 사장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하현이 마지막 말을 마치자 이 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하현, 이제 걱정하지 마!”“내가 절대 서운하게 대하지 않을 걸세!”“그리고 오늘부터 대하 사람들은 누구도 이런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을 거야! 약속해!”이 사장은 하현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돌아서서 손바닥을 마구 휘둘렀다.그의 동작은 빠르고 정확해서 이초연 일행은 순식간에 얼굴이 벌겋게 부어올랐다.“퍽!”결국 이 사장은 이초연을 땅바닥에 쓰러뜨리고 말았다.‘빠직'하는 소리와 함께 이초연의 코 뼈가 부러졌고 그녀의 입가에는 피가 흘러나와 얼핏 봐도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그제야 이 사장은 돌아서서 하현을 바라보며 공손히 입을 모았다.“하현, 이 걸로 어떻게 충분하겠는가?”“아직 부족합니다.”하현은 옅은 미소를 띠었다.“그 도둑놈 말입니다. 당신네 페낭 법에 따라 어떻게 처리할 겁니까?”“아, 알았네.”이 사장이 허리를 굽신거리며 뒤를 돌아 손을 흔들었다.그러자 십여 명의 건장한 보안 요원들이 방금 비행기에서 지갑을 훔치려던 남자를 향해 돌진했다.넋이 나간 듯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는 구경꾼들을 뒤로하고 하현은 자신의 물건들을 챙겨 유유히 그곳을 빠져나왔다.십여 분 후 하현은 공항 출구에 도착했다.그는 좌우를 몇 번 두리번거렸다.기다리던 양유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멀찌감치 포르쉐 한 대가 멈춰 서 있는 것이 보였다.차 주인인 듯한 여자는 미끈한 몸매를 자랑하며 샤넬 선글라스를 멋들어지게 쓰고 있었다.그녀의 손에는 하현의 이름이 쓰인 팻말이 들려 있었다.여자는 수려한 몸매와 화려한 옷차림과는 별개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사로잡을 만큼 매혹적인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많은 남자들이 그녀와 말이라도 한마디 하고 싶어서 안달인 듯 힐끔힐끔 쳐다보았지만 그녀의 강한 카리스마에 흠칫 놀라 스쳐 지나갈 뿐 가까이 다가오지는 못했다.
별장 입구에는 경비가 삼엄했다.곳곳에 총과 실탄을 장전한 보안 요원들이 물샐틈없는 경비를 보고 있었다.원가령이 어딘가에 몇 번 전화를 돌린 뒤에야 경비는 겨우 문을 열어 주었다.차는 곧 주건물 입구에 도착했다.멀리서 양유훤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차량은 물 흐르듯 부드럽게 양유훤 앞에 멈춰 섰고 양유훤은 하현을 보며 반가운 듯 환하게 웃었다.“하현,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어.”“일이 바쁠 텐데 이렇게 급하게 오게 해서 정말 미안해.”양유훤은 이미 4대 무맹이 대하무맹을 위협한 일을 잘 알고 있었다.이런 때에 하현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기에 그가 이렇게 빨리 와 준 것에 감격하며 고마워했다.하현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양방주, 괜찮아. 우리 사이에 그렇게 예의 차릴 게 뭐 있어?!”“그런 쓸데없는 인사치레는 접어두고.”“그래, 어르신은 좀 어떠셔? 상태가 악화되진 않았어? 일단 어르신부터 뵙자구.”하현이 하는 말을 듣고 양유훤은 걱정스러운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하현, 솔직히 말하자면 할아버지의 일로 난 오늘 아침에 각 방면의 유명인들을 모두 초청했어.”“무도 고수, 명의, 그리고 남양굿에 능통한 사람들도 있었어.”“하지만 그들 모두 뾰족한 수가 없었어.”“이제 남은 희망은 오로지 하현 당신 하나뿐이야.”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양유훤의 뒤를 따랐다.차를 세우고 나온 원가령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하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아무리 보아도 평범하기 짝이 없는 하현에게 무슨 그런 대단한 능력이 있을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하지만 그녀는 입을 삐죽거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양유훤을 따라 별장 1층 로비로 들어갔다.“어르신이 토한 어혈을 검사해 봤는데 독은 없었어요.”“하지만 어르신의 체질상 견갑골이 많이 상해 있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되기만 해서 참 걱정스럽습니다.”“무엇보다 어르신은 전신이
”양유훤!”흰색 셔츠를 입은 남자가 먼저 다가와 당당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고 그의 시선은 곧바로 원가령에게 향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다만 시선이 하현에게 닿았을 때 그의 눈동자에는 알 수 없는 묘한 파동이 스쳐 지나갔다.“여수혁, 수고 많았어. 여러분들도 수고 많으셨어요.”양유훤은 사람들에게 고개를 살짝 숙인 다음 흰색 셔츠를 입은 남자를 보고 하현을 가리키며 낮은 목소리로 설명했다.“이 분은 냠양무맹 맹주가 아끼는 애제자 여수혁이야.”“실력도 좋고 배경도 만만치 않지.”하현은 가타부타 말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런데 옆에 있던 원가령이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보고 뭔가 긴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하현은 원가령을 힐끔 본 뒤 여수혁과 양유훤에게 시선을 옮겼다가 갑자기 소리 없이 웃었다.뭔가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하지만 그가 쓸데없는 데 신경을 분산시키기도 전에 얼른 양유훤이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여러분, 요 며칠 동안 우리 할아버지 일에 많은 심혈을 기울이며 고생 많으셨습니다.”“그런데 할아버지가 의식이 아직 돌아오지 않으시고 상태가 더 악화되었어요.”“여러분을 탓할 뜻은 없습니다만 오늘 치료는 여기까지 하고 싶군요.”“모두들 돌아가서 푹 쉬세요. 오늘 진료비에 대해서는 우리 양 씨 가문에서 잘 챙겨드릴 겁니다.”그녀는 말을 마치며 손을 옆으로 살짝 기울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할아버지께서는 후원에 계시니 내가 안내해 줄게.”하현은 프로젝터의 사진을 보고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면서 양유훤의 뒤를 따랐다.“양유훤, 잠깐만.”하현과 양유훤이 몇 발작 떼기도 전에 흰색 셔츠를 입은 여수혁이 한 발짝 앞서 나와 두 사람의 앞을 가로막았다.여수혁이 하현과 양유훤의 앞을 가로막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순식간에 시선을 집중했다.원가령도 의아한 기색을 띠며 뭔가 생각이 떠오른 듯 하현을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했다.여수혁은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말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
”퍽!”하현이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줄곧 무릎을 꿇고 있던 황천화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이신욱의 뺨을 그대로 날려버렸다.“개자식!”이신욱은 얼굴을 가리고 버둥거리며 일어섰다.“황천화, 감히 날 건드려?!”“죽고 싶어?!”“차칵!”황천화는 이신욱이 하는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곧바로 앞으로 나가 이신욱의 오른손을 움켜잡고 세게 꺾었다.이신욱은 죽자 살자 덤볐지만 황천화는 그렇지 않았다.페낭 무맹인으로서 감찰관이라는 직위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이럴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누구보다 꿰뚫고 있었다.“아!”이신욱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고 황천화는 그제야 단호하게 이신욱을 다시 한번 꺾었다.‘차칵'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잠시 후 이신욱은 사지를 쓰지 못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계속 경련을 일으켰다.그는 극심한 고통 때문에 화를 내고 싶어도 도무지 화를 낼 수가 없었다.오로지 땅바닥에 널브러져 돼지 멱따는 소리만 울부짖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사방팔방에서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부잣집 도련님들, 유명한 미녀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졌다.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며 두려움이 온몸을 전율시켰다.이신욱이 소리쳐 반항을 한 끝에 결국 이 꼴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말하자면 이신욱은 오늘 밤 하현을 세 번이나 공격한 것이다.그 결과는 처참한 자신의 몰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털썩!”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린 후 황천화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오늘 밤 일어난 이 모든 일은 다 내 불찰이고 이신욱의 잘못이야. 난 이미 당신 뜻에 따라 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렸어.”“당신이 만족할지 모르겠지만 말이야.”하현은 무덤덤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내가 한 말은 모든 사람들이 다 한 손씩은 부러뜨려야 한다는 거였어.”“당신은 말귀를 좀 알아듣는 것 같으니 왼손으로 하지.”황천화는 눈
”내 두 손을 자르라고?!”자신의 뒷배는 이미 무릎을 꿇었는데 하현이 자신의 두 손을 자르라는 말을 듣고 이신욱은 두려움도 잊고 어느새 숨겨 두었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하현! 당신이 무슨 대표든 무슨 감찰관이든 난 상관하지 않아. 하지만 당신, 이것만은 똑똑히 알아야 할 거야! 나 이신욱!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아!”“난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이 씨 가문 사람이야. 우리 이 씨 가문은 원 씨 가문과 운명을 같이 하는 집안이야!”“나한테 미움을 사고 해를 입히는 사람은 남양에서 수많은 적을 만드는 것과 같아!”“그리고 나 이신욱! 당신을 평생 기억할 거야!”“오늘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언젠간 당신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 말 거야!”“1년 안에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한다고 해서 5년, 10년 후에도 못하라는 법은 아니거든!”“지금 내 두 손을 끊는다면 절대 좋은 결말은 없을 거야! 두고 봐!”이신욱이 이를 갈며 하현에게 소리쳐 경고했다.감찰관이라는 하현의 신분이 무맹 사람들한테는 먹힐지 모르지만 이 씨 가문에는 하등의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걸 말한 것이다.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다고 해도 하현은 외지인일 뿐인데 어떻게 남양에서 이 씨 가문의 끝없는 복수를 견뎌낼 수 있겠는가?이 씨 가문은 엄연히 남양 3대 가문의 하나다!황천화는 이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이신욱!”“닥쳐!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닥치라고!”이신욱은 황천화의 말을 거칠게 끊었다.“내가 매년 당신한테 몇 억씩 갖다 바쳤던 이유는 이럴 때 나에게 힘이 되어 달라고 그랬던 거예요!”“그런데 어떻게 되었죠? 당신은 무릎을 꿇고 뺨을 맞기만 할 뿐 아무것도 못 하잖아요!”“당신 같은 사람 키워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앞으로 당신 같은 바보 등신 앞에서 누가 머리를 조아리며 공손히 굴겠어요?”“퉤! 당신한테 그럴 자격이 있어요?”이신욱은 황천화가 아무리 하현의 신분이 두렵더라도 무도 정신을 잃지 말
황천화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하현, 이건 너무 심하잖아...”“정말로 내가 당신을 두려워하는 줄 알아?”“잘 들어. 당신 신분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제쳐두고, 설령 진짜 감찰관이라고 해도...”애써 침착하며 여기까지 말하던 황천화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갑자기 하현의 주먹이 날아와 그의 얼굴을 ‘퍽'하고 쳤기 때문이다.황천화는 이번 문제가 커진다면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페낭 무맹도 같이 곤란해질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남양 무맹 감찰관이 말이 쉽지 엄청난 자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황천화가 뺨을 맞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정신이 혼미해져서 도저히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그는 페낭 무맹에서 호령하는 사람이었고 이신욱을 도우러 온 것일 뿐이었다.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몇 마디 말로 하현이라는 외지인 앞에 무릎을 꿇게 생긴 것이다!황천화가 무능한 것인가?아니면 하현이 대단한 것인가?하현은 황천화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툭툭 치며 말했다.“황천화, 왜 갑자기 무릎을 꿇었지?”“무릎까지 꿇었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 얼굴을 때리겠어?”황천화는 눈가에 경련을 일으키며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감찰관님께 뺨을 얻어맞게 되어 영광입니다.”“좋아, 그렇게 말하다니 소원을 들어줘야지.”하현은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오른손을 치켜들고 세차게 손바닥을 내리쳤다.“퍽!”“이건 당신이 제멋대로 날뛰고 무맹의 얼굴에 먹칠한 대가야!”“퍽!”“이건 약자를 괴롭히고 힘들게 한 대가야!” 하현은 하나하나 낱낱이 열거해 가며 황천화의 얼굴을 뒤흔들었다.비록 황천화도 고수 중의 고수였지만 하현이 뺨을 때릴 때는 아무런 저항도 분노도 표출하지 못하고 억지로 견뎠다.하현이 손바닥을 휘두를 때마다 황천화의 눈빛은 아프게 이리저리 흔들렸다.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점점 초점을 잃어갔다.페낭 무맹의 실력자가 무릎을 꿇고 다른
원청산?원 대표님?황천화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문득 그가 누군지 떠올랐다.이 사람은 남양 무맹의 대표이다.페낭 무맹의 맹주는 그를 보면 넙죽 엎드려야 한다.그런데 이 어른이 방금 뭐라고?하현이 남양에 있을 때는 남양의 감찰관 임무를 맡기겠다고?맹주를 감찰하고 만인을 순찰한다고?원청산의 말이니 하현이 대하무맹 대표가 된 것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대하무맹 대표가 되고 세계무맹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남양에서는 감찰관이라...순간 황천화는 갑자기 호흡이 가빠졌다.두 다리는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얼굴에 가득했던 거만한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채워졌다.그를 따르던 무맹의 고수들도 모두 손발이 얼얼하고 팔다리는 저릿저릿 아파서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다른 사람들은 이런 신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지만 그들 무맹인들은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아주 높은 자리에 앉아 대표자로서 만인의 뜻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었다.아무도 그의 말을 거스를 수 없다는 뜻이다.황천화 일행이 위세를 떨치다가 갑자기 전전긍긍하며 어쩔 줄을 모르자 이신욱은 속이 타서 참을 수가 없었다.“형님, 이런 놈한테 속으면 안 돼요!”“대표라니요? 감찰관이라니요?”“이놈이 능청스러운 연기로 우릴 속이려는 게 틀림없어요!”“저런 놈이 무슨 대표고 무슨 감찰관이랍니까? 형님은 분명히 알고 계시잖아요?”이신욱의 말을 듣고 주위의 많은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몇몇 아리따운 여자들은 화들짝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시 조롱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감히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면서 황천화를 속이려고 하다니?“연기? 그래?”“내 연기가 아마 연기대상감인가 보지? 유명 배우 뺨칠 정도로 뛰어났던가 봐.”하현은 담담하게 웃으며 한 발짝 앞으로 나와 페낭 무맹 제자들 앞으로 가더니 사정없이 손바닥을 후려갈겼다.“퍽!”페낭 무맹 제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당당하고 거침없는 황천화의 모습에 사람들은 가소롭다는 듯 하현을 비꼬아 보았다.다들 하현이 겁을 먹고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다.하현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황천화와 대적할 수야 있겠는가?그건 정말 목숨을 거는 짓이고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였다.하현은 손을 뻗어 제멋대로 입을 놀리는 황천화의 뺨을 후려치려고 했지만 갑자기 뒤에 있던 하구봉의 핸드폰이 심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흠칫 뒤를 돌아보았다.순간 하구봉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이어 하구봉은 하현에게 공손히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하현, 무성에서 온 전화야.”“대하무맹을 대표해 의견을 전달한다더군.”“방금 만진해 맹주의 강력한 추천으로 대하무맹에서 치열한 토론을 펼쳤어. 그래서 당신이 대하무맹 대표로 확정되었대!”“대하무맹을 대표해 세계 무맹에서 상임이사로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어!”“간단히 말해 앞으로 당신은 대하무맹의 대표로서 만진해 맹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거야.”“만약 만진해 맹주가 물러난다면 당신은 그다음 맹주가 되는 거야.”말을 하는 동안 하구봉의 입술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그도 이 엄청난 소식에 적잖이 놀란 것이 틀림없었다.그러면서 그는 핸드폰을 켜고 방금 메신저를 통해 온 메시지 한 장을 보여주었다.대하무맹?대표?세계 무맹의 거부권?한마디 한마디 융단 폭격과도 같은 엄청난 단어에 황천화는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하지만 그는 무의식적으로 하현이 자기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황천화가 불같이 화를 내려 했을 때 하현의 부하들이 일부러 이런 말을 꺼낸 것만 봐도 뻔한 가짜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거짓말하지 마!”“세계 무맹이라니? 거부권이라니?”“그게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해?”“뻔한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줄 알았어?”“순진하기는!”황천화는 심호흡을 한 뒤 냉소를 흘렸다.그도 무맹 사람이다.만약 대하무맹에서 하현이라는 대표가 나왔다면 어떻게 그가 모
”옳고 그름?”“잘잘못을 따지자는 거야?”“하여튼 약자들은 이런 허무맹랑한 것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단 말이지.”황천화는 두 손을 뒷짐진 채 앞으로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겼다.걸음을 옮길 때마다 매서운 기운이 파장을 일으키며 사람들을 압도했다.“나 같은 강자들은 그런 걸 알 필요가 없지.”“난 말이야. 신분에 따라 편들지 이치에 따라 편들지 않아.”“내 후배가 사람을 죽이고 나쁜 짓을 했어도 그건 옳은 일이야.”“당신이 무수히 많은 도리를 가지고 법을 운운한다고 해도 내 후배를 건드린 당신은 나한테 여전히 나쁜 놈이야.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하지.”옆에 있던 이신욱은 황천화의 강력한 지지를 얻은 순간 없던 힘까지 솟아오르는 것 같아 큰소리로 선동하고 나섰다.“형님, 이 개자식이 방금 아주 큰소리를 쳤어요. 형님이 온다고 해도, 페낭 무맹 맹주가 온다고 해도 절대 자기를 건드릴 수 없다고요!”다른 부하들도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맞습니다. 이놈이 아주 기고만장하게 말했어요.”“날 무시하는 거야? 맹주를 무시해? 아님 우리 페낭 무맹을 무시하는 거야?”황천화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요즘 세상에 그런 얼빠진 놈이 있어?”“자기가 뭔지도 모르고 설치는 꼴이라니!”“무슨 자격으로 우리 동네에 와서 함부로 굴어!”“이봐, 당신 대하 사람이지?”“자자, 당신의 내력을 말해 봐. 당신이 5대 문벌 출신이라도 돼? 아니면 10대 가문 출신이야?”“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내가 체면을 봐 줘서 죽이지는 않겠어. 몸은 좀 상하게 하겠지만.”하현이 덤덤하게 말했다.“다 아니야.”“아니라고?”황천화가 입을 크게 벌리며 웃었다.“다 아니라면서 감히 페낭에 와서 위세를 떨치려는 거야?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이군!”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난 페낭이 법과 규율, 그리고 도리를 중시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황천화 당신을 보니 도리를 거론할 동네는
”확실히 이 외지인놈은 실력이 보통이 아니야!”“하지만 실력이 있다고 해도 뭐?”“우리 황천화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야.”“맞아! 하현이 부 사장 무릎을 꿇게 한 능력은 확실히 인정해. 하지만 그런 능력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땅강아지가 운이 아무리 좋다손 치더라도 그것도 한두 번이지!”“진짜 실력자를 만나면 아무 힘도 못 써!”“결국 실력 없는 자가 스스로 무능함에 분노하는 것밖에 안 되는 거야!”“황천화와 자신의 실력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이제 곧 알게 되겠지!”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업신여기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대하에서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하더라도 페낭에서는 이신욱의 저력을 능가할 수 없다.“형님!”“황 선생!”“황 도련님!”무리를 지은 사람들이 황천화에게 몰려들었고 선두에 선 이신욱은 한껏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이신욱, 도대체 무슨 일이야? 나까지 나서서 체면을 세워 줘야 할 일이 도대체 뭐냐구?”황천화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소매를 걷어붙이며 거들먹거렸다.마치 세상에는 그의 관심을 끌 만한 것이 없다는 듯.이신욱은 차가운 눈초리로 비아냥거리며 하현을 노려보았다.“감히 외지인 주제에 우리 페낭에 와서 허세를 부리고 사람을 때리다니!”“그래?”황천화는 실눈으로 눈썹을 치켜세우며 이신욱을 힐끔 쳐다보았다.그의 코는 푸르덩덩한 빛을 띠고 있었고 얼굴은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얼굴에는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고 이빨도 두어 개 비어 있었다.안색이 나쁜 건 말할 것도 없었다.비록 황천화는 이신욱을 그리 높이 보진 않았지만 이신욱은 일찌감치 황천화의 가능성을 보고 명절 때마다 그에서 그득한 선물을 보낸 덕분에 꽤 황천화 덕을 보고 있었다.그래서 황천화도 이신욱에 대해 슬슬 좋은 감정이 생겼다.그런데 지금 그런 후배가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얼굴이 퉁퉁 부어 있는 것이다.황천화의 안색이 어둡게 일그러졌다.이신욱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