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놈이...”“감히 날 때려?!”진기희의 성형한 얼굴이 한껏 더 일그러졌고 그녀는 분노에 휩싸인 채 고함을 질렀다.“내가 누군지 알아?”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스승님 행동이 사나우시네. 지금 당신 제자가 누구냐고 묻는데 대답 안 할 거야?”이희광은 냉소를 흘리며 한 걸음 앞으로 나가 진기희의 멱살을 잡고는 주먹을 날렸다.집법당 당주인 하현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이희광은 지금 자신의 역할을 독하게 해내야 했다.진기희 따위 조금도 봐줄 마음이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진기희의 얼굴은 돼지머리마냥 부풀어 올랐다.정교하게 깎은 그녀의 이목구비도 완전히 일그러졌다.순간 그녀는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이, 이봐! 이쪽으로 빨리...”그러자 몇 명이 몸부림치며 일어섰다.그러나 그들이 가까이 오기도 전에 이희광은 그들을 모두 걷어차 버렸다.이희광은 사나운 얼굴로 앞으로 나가 용문 제자들의 종아리를 밟아 부러뜨렸다.돼지 멱따는 소리가 이어졌고 용문 제자들은 완전히 전투력을 상실한 채 널브러졌다.“당신은...스승, 스승님?!”드디어 용문 제자 중 한 명이 이희광의 얼굴을 알아보고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다.“스승님, 제정신입니까?”“부인의 생신잔치에 선물을 준비하기는커녕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이 소란을 만들다니!”“죽고 싶습니까?”“퍽퍽!”이희광은 사람들이 계속 입을 열 기회를 주지 않고 완전히 기절시켜 버렸다.하현은 이희광의 이런 잔인함이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이런 사람은 좋은 개가 될 수 있다.발아래 두고 지시만 내리면 알아서 물어 버린다.별말 없이 담담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하현은 입과 코가 비뚤어지고 피범벅이 된 진기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이 정도면 초청장 없이도 들어갈 수 있겠지?”“부족하다면 더 보여줄 수도 있어!”“당신들...”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툭툭 내뱉는 하현을 보고 진기희는 온몸을 떨었다.특히 이희광의 정체가 밝혀지자 진기희는
처절한 비명이 온 사방에 퍼졌다.진기희는 그대로 옆구리 쪽을 걷어차여 가슴 보형물이 납작해졌다.곧이어 하현은 울부짖고 몸서리치는 사람들을 뒤로한 채 돌아서서 입구 쪽으로 향했다.하현은 연회장 입구에 도착했다.연회장에서의 환한 웃음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하현이 뭐라고 말할 사이도 없이 이희광은 얼른 하현 앞으로 나가 문을 발로 뻥 걷어찼다!펑 하는 소리가 천지를 뒤흔드는 것 같았다.이것은 부인의 생일잔치가 망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다.이희광이 끝까지 갈 준비를 했다는 뜻이기도 했다.굉음과 함께 객석의 모든 하객들의 시선이 문 쪽으로 쏠렸다.생일잔치 진행을 맡은 예쁜 여자 MC가 뜨거운 열정으로 말을 하고 있다가 그대로 얼어버렸다.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이가음의 모친은 무성에서 가장 높은 신분은 아니었지만 남편이 용문 서른여섯 지회장 중 가장 지위가 높은 용문 무성 지회장이었다.얼마나 많은 무성의 귀족 2세들이 용문 무성 지회의 제자들인지 셀 수도 없다.그리고 오늘 생일잔치에 온 사람들은 비록 상위권 최고 신분은 아닐지라도 모두 꽤 높은 신분과 지위를 가지고 있다.이런 생일잔치에 어떤 미친놈이 문을 박차고 들어와 거리낌 없이 날뛰고 횡포를 부릴 수 있겠는가?“누구야?!”“누가 이렇게 소란을 피워?!”현장 질서 유지를 담당하던 용문 제자들은 이 광경을 보고 쏜살같이 달려와 앞장서서 호통을 쳤다.다른 손님들은 모두 의아한 표정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저 너머 입구 밖에 진기희 일행이 널브러져 있는 것도 선명하게 보였다.이건 오늘 생일잔치를 완전히 망치겠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누가 함부로 이가음의 모친 얼굴에 먹칠을 한단 말인가?케이크를 자르려던 부인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그러나 그녀는 동요하지 않고 샴페인 잔을 쥔 채 불청객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비록 그녀는 갑자기 나타난 하현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단 하나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하현은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놀란 종업원에게 손을 흔들어 샴페인을 한 잔 청했고 목을 축인 뒤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샴페인 한잔 주셨으니 부인에게 기회를 드리죠.”“지금 당장 나가세요. 그럼 사지 멀쩡한 몸은 보전해 드리죠.”하현의 말을 들은 이가음의 모친은 코웃음을 치며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하현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놈이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했던 것이다.그래서 그녀는 누구든 자기 사람들이 하현을 처리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여사님, 왜 아무 말이 없어요? 원래 잘 하는 거 있잖아요?”“큰소리 뻥뻥 쳐 보시죠?!”“어째서 지금은 겁쟁이가 되셨어요?”하현은 샴페인을 쥐고 단상으로 향했다.“어쨌든 용문 무성 지회장 부인이잖아요.”“이러면 정말 실망인데.”“야! 어디서 건방이야!”“여기가 어디라고! 당신이 그렇게 대단해?”이때 중년 남자가 일어서서 양복 재킷을 벗어던지고 근육질 몸매를 드러낸 채 기세등등하게 단상으로 향했다.“감히 우리 사모님 앞에서 허세를 부려?”“잘 들어! 지금 바로 무릎 꿇고 사과해. 그렇지 않으면 목숨이 온전하지 못할 거야!”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이 남자를 쳐다보았다.웃는 듯 마는 듯한 하현의 표정을 보고 남자는 자신이 모욕을 당했다고 느꼈고 직접 호통을 치며 거친 발걸음을 옮겼다.그러자 그의 몸이 포탄처럼 튀어나와 그대로 하현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이 남자의 행동을 보고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하현을 향해 비아냥거리는 말을 쏟아내었다.“이제 저놈은 망했어!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와서 허세를 부려?!”“장 선배님이죠? 정말 셔츠핏 멋지네요!”“몸은 또 얼마나 단단한데! 여러 명이 동시에 덤벼도 끄떡없다고 하더라고!”“저 허여멀건한 놈은 재수가 없는 거지. 장 선배는 줄곧 여사님을 존중해 왔어. 그런 그가 저놈을 가만히 놔두겠어? 죽이지나 않으면 다행이지!”많은 사람들은 좋은 구
담담한 표정을 짓던 이가음의 모친은 눈을 가늘게 떴다.그녀는 하현의 경호원이 이 많은 사람들을 상대한 것에 놀랐지만 마음에 크게 두지 않았다.결국 현대사회는 권력과 돈의 힘이 모든 걸 좌우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순간 이가음의 모친은 어디론가 메시지를 보냈고 곧 십여 명의 경호원이 총을 들고 나타났다.하현은 본 척 만 척하며 이가음의 모친에게 입을 열었다.“부인,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뒤에 서 있을 겁니까?”“정말 내가 직접 당신을 꺼내야 합니까?”“젊은이, 이렇게 제멋대로 행동해서 도대체 뭘 얻으려고 그러는 거야?”“뒷감당을 어떻게 책임질 건가? 그걸 생각해 봤어?”“내가 뭘 얻고 싶냐구요?”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그저 정의를 되찾으려는 것뿐이에요.”“오늘 일은 사적인 원한이에요.”“그래서 부인에게 해명을 듣기 위해 온 거예요.”“얼마 전 무성 촬영 세트장에서 롤플레이 놀이 중 총이 오발한 사건 때문에 이가음, 즉 부인의 딸이 다쳤어요.”“부인은 진상을 파악하고 무성 촬영 세트장에 항의를 하기는커녕 무고한 내 처제를 잘못한 사람으로 몰아붙여 마구 때렸어요.”“심지어 부인은 현장의 총에 진짜 총알을 넣은 사람이 나라고 지목했어요. 결국 나 때문에 자신의 딸이 다쳤다고 주장하고 있구요.”“그래서 부인은 사람을 보내 날 처리하도록 했어요!”하현은 침착한 얼굴로 장내를 둘러보며 당당하게 말했다.“부인이 내 처제를 때린 것도 모자라 날 괴롭히고 있어요. 내가 이 정도 능력도 없었더라면 아마 지금쯤 감옥에 갇혔을 거예요.”“사건의 전말이 이런데도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정의를 되찾으려고 온 건 당연한 일 아닌가요?”장내는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모두가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무언의 의견을 나누고 있는 듯했다.만약 하현이 한 말이 사실이라면 이 사건은 누가 보아도 이가음의 모친이 잘못한 것이었다.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자신의 안위만 생각할 뿐 아가음의 부인을
”너 이놈!”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는 화가 나서 숨을 헐떡였고 결국은 화를 참지 못하고 꺽꺽 숨을 헐떡이다가 피를 토하고 말았다.하현은 그에게 일일이 대응하기 귀찮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무심한 표정으로 장내를 훑어보았다.“부인, 아직도 그렇게 멀찌감치 서 계실 겁니까?”“그래, 내가 네 처제인지 뭔지 그 여자 때렸어!”하현이 사건을 끄집어내며 오만방자하게 구는 것도 모자라 손님들에게 손찌검까지 하는 것을 보고 이가음의 모친도 더 이상은 침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의자에 기대 앉아 가늘고 긴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눈꼬리를 가늘게 말아올린 눈으로 하현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그런데 문제는 누가 그 여자한테 그 재수 없는 대본을 손에 넣어줬다는 거야!”“소품용 총에 실탄이 들었든 어쨌든 상관없어!”“결국 방아쇠를 당긴 사람은 그 여자라는 거야!”“내 딸이 사고를 당했어. 그러면 책임을 져야지!”“어제 그 여자를 때린 건 시작에 불과해. 그저 약간의 훈계를 했을 뿐이야.”“만약 내 딸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그땐 정말 너와 그 여자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이가음의 모친은 매서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당신은 당신 자신도 지키지 못해!”이가음의 모친이 손뼉을 치자 사람들을 헤치고 미리 준비한 모양인 듯 열두 명의 경호원들이 총을 들고 뛰쳐나왔다.그들은 안전장치를 풀어 하현에게 총구를 겨누었다.“하현, 조심해!”이희광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치며 얼른 그의 앞으로 나와 술병을 집어 들고 거세게 깨뜨린 다음 오른손을 휘둘렀다.“쉭쉭쉭!”유리 파편은 순식간에 날아가 총을 들고 있던 경호원들의 목에 꽂혔다.경호원들은 허연 흰자위를 드러내며 비명을 지를 사이도 없이 순식간에 바닥에 널브러졌다.“탕탕탕!”총소리가 장내를 울리더니 경호원 두세 명이 풀썩 쓰러졌다.순간 경호원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허벅지를 움켜쥔 채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켰다.주위에 있던 손님들은 하나같이
”많은 사람들은 용문 무성 지회의 노구라는 이름을 들어보았기 때문에 그 위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실력도 출중하고 그동안 무성 지회장에게 혁혁한 공을 세워 준 인물이었다.그는 평소에 늘 지회장 곁을 따라다녔다.그런데 오늘 그가 이가음의 모친 곁에 있었다는 것은 지회장이 아내를 끔찍이 여긴다는 방증이었다.물론 그 와중에 하현은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다.“툭!”이가음의 모친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2층 한쪽 구석에서 검은 그림자가 툭 튀어나왔다.그는 빠른 몸놀림을 앞세워 순식간에 하현과 이희광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쓸데없는 말 대신 그는 전력을 다해 이희광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노구는 있는 힘을 다해 불청객들을 단숨에 날려버릴 기세였다.감히 이가음의 모친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사람은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 그는 서슬 퍼런 눈빛을 하고 있었다.“퍽!”살의를 끊임없이 풍기던 그의 주먹은 무서운 기세로 한순간에 터져 나왔다가 맹수처럼 이리저리 몸을 놀렸다.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놀라움을 감출 수 없게 만들었다.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하현은 이제 죽었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최소한 하현이 죽임을 면한다 하더라도 멀쩡한 몸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았다.이희광도 흠칫 놀라며 낯빛이 어두워졌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이미 하현 쪽에 줄을 서기로 선택했으니 전력을 다해 한 방에 상대를 날려버릴 수밖에 없었다!“쾅!”삼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놀란 눈빛 속에 이희광의 주먹과 노구의 주먹이 정면으로 부딪혔다.순간 이희광은 온몸을 움찔거리다가 피를 뿜어냈다.날아오른 이희광이 땅바닥에 착지하는 순간 그의 얼굴이 사람들을 향해 훤히 드러났다.“이희광? 이희광이었다고?”“지회장의 부인 생일잔치에 외부인의 앞잡이가 되어 분란을 일으킨 자가 이희광이라고?”“죽고 싶어 환장했나?”사람들은 이희광을 알아본 순간 소름이 돋았다.놀라움도 놀라움이지만 하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
노구가 내민 오른손은 순간 ‘또각'하고 부러졌고 팔 전체가 꽈배기처럼 비틀어졌다.“악!”노구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온몸이 통제 불능 상태로 빠져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졌다.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팔은 완전히 제 기능을 상실했다!이가음의 모친과 손님들은 아연실색했다.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무적인 노구였다.대충대충 해도 충분히 하현을 상대할 수 있는 게 아니었던가?방금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이 진정 사실이란 말인가?“어떻게 이럴 수가?!”“도대체 어떻게?!”“저놈이 그렇게 무서운 놈이었어? 손바닥 하나로 노구를?”“혹시 내가 잘못 본 건 아니야?”“노구가 하현을 얕잡아봐서 이렇게 된 건가?”“방금 이희광과 싸우다가 혹시 다친 거야?”“틀림없이 그랬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절대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없지!”하현이 손바닥 하나로 노구를 때려눕힌 것을 보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자신의 눈을 의심하는 듯 계속해서 눈을 비볐다.그러나 아무리 눈을 비벼 보아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그 유명한 노구가, 용문 무성 지회의 이희광을 한 방에 날려버린 노구가, 하현의 손바닥 한 방에 종잇장처럼 날려 가다니 어떻게 사람들이 믿을 수 있겠는가?이 광경은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누구냐, 넌?!”노구는 누런 이를 드러낸 채 으르렁거리며 말했다.그는 비명이 터져 나오는 입을 가까스로 진정시키고 오른손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무성의 고수들은 내가 다 알아.”“너 같은 놈은 없었어!”하현은 노구의 말을 듣고 심드렁한 눈빛으로 노구를 한 번 쳐다보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어리숙하게 다른 사람에게 잘 속아 넘어가는 걸 가엾게 여겨 내가 당신에게 살 길 하나 마련해 주지.”심드렁한 하현의 눈빛에 노구는 화가 치밀어 올라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노구는 지금 하현의 눈에는 자신이 그저 날아다니는 한
이가음의 모친은 어느새 눈매가 매서워졌다.“뒷배가 아무리 든든하기로서니 이렇게 건방질 수 있는 건가?”“정말 우리 용문에서 당신 하나 어떻게 못할 거라고 생각해?”“잘 들어! 우리 용문에는 실력이 출중한 고수들이 널리고 널렸어!”“지금 당신이 조금 앞서가는 것 같으니까 이젠 나를 괴롭히겠다? 내 남편을 끌어내리겠다고?”“당신은 그럴 자격도 능력도 없어!”“당신이 지금 누굴 상대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지?”이가음의 모친은 냉소를 지으며 매서운 눈빛으로 일관했다.“여기 있는 분들이 누구인지 알려 줄 테니까 똑똑히 들어!”“이 분은 용문 금정 지회 부지회장!”“이 분은 용문 외삼당의 둘째 자제분!”“이 분은 용문 집법당의 집법 제자로 아주 신분이 높은 분이지!”이가음의 모친이 연이어 호명을 하며 소개를 하자 십여 명의 남녀들이 모두 일어서서 거들먹거리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이가음의 모친은 이 사람들 때문에 잃어버렸던 용기를 다시 되찾은 듯했다.그녀는 눈꼬리를 매섭게 휘어감어 천천히 하현 앞으로 걸어 나와 냉소적인 입매로 말했다.“이 사람들은 모두 용문의 어른들이야!”“용문과는 얽히고설킨 사람들이지!”“감히 이 사람들의 미움을 사겠다는 건가?”“용문은 대하의 4대 초석 중 하나야!”“무성에서 우리 용문 사람들과 싸우겠다고?”“오만함도 이 정도면 병이지!”“아무리 뭘 몰라도 그렇지!”이가음의 부인이 하는 말을 듣고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한마디씩 거들었다.시쳇말로 용문은 강호의 무림 지존이라 할 수 있었다.강호에서 무학의 성지에서 온 사람이 아니고서는 누가 감히 용문과 겨루겠다고 큰소리칠 수 있겠는가?아무리 실력이 뛰어난다고 해도 용문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하현은 냉랭한 표정으로 이가음의 모친 뒤를 돌아보면서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내 기억이 맞다면 용문의 계율 제1조는 권세를 믿고 남을 업신여겨서는 안 되고, 옳고 그름을 분
”여수혁?”하현은 여음채를 쳐다보며 차가운 미소를 띠었다.“그가 이 병원 대주주인 동시에 당신의 뒷배라고?”“그래! 알고 나니 이제야 겁이 나?”“무서운 줄 알면 이제 무릎 꿇고 내 신발 밑창을 핥아!”“그리고 다리를 부러뜨리고 이십억을 배상해! 그러면 여수혁도 당신한테 살길을 열어줄지도 모르지!”“그렇지 않으면 당신 오늘 재수 없을 줄 알아!”여음채는 경멸하는 기색을 한껏 드러내었다.하현이 남양 무맹과 여수혁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전혀 별 볼 일 없는 존재라고 여겼던 것이 분명했다.강옥연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하현에게 말했다.“하현, 여수혁은 남양 무맹주가 총애하는 제자야.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페낭 무맹의 부문주라서 건드리기가 쉽지 않아.”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어릿광대일 뿐이야.”“뭐? 어릿광대?”하현의 말에 여음채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누가 당신한테 그런 용기를 줬는지 모르겠군! 흥!”“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이 사람은 페낭 무맹의 부맹주 아들이야!”“이 사람은 페낭 무맹 장로가 아주 아끼는 제자라구!”“게다가 남양 무맹이 페낭 무맹에 파견한 제자라고!”“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딜 가나 거칠 것이 없는 사람들이야. 그뿐만 아니라 실력도 비할 데 없어!”화려한 옷차림의 남녀 예닐곱 명이 걸어와 소리치며 하현을 향해 멸시하는 눈빛을 보이며 비아냥거렸다.“야, 너 오늘 큰일 났어! 아주 재수 옴 붙은 날이라고! 우리가 당신 목숨뿐만 아니라 가죽까지 싹 벗겨버릴 거거든! 하하하!”이 사람들은 하현이 무슨 도마 위에 올려진 생선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원하는 대로 칼질을 해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험한 말을 마구 내뱉었다.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들은 더욱 경멸하는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 같은 외지인이 감히 그들 같은 거물들한테 입을 놀리다니 정말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망나니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하현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이 광경을 보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외지인 관광객 주제에 너무 오만하고 포악하지 않는가?진 반장이 이미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나려는데 여전히 권세를 믿고 남을 괴롭히려고 하다니, 이건 지나친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진 반장은 얼굴을 가리고 일어나 하현의 의기양양한 얼굴을 잠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도대체 이놈의 정체가 뭔지 알 길이 없어 진 반장은 순간 분노했지만 애써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젊은이, 당신 너무 심한 거 아니야?”“퍽!”하현은 손바닥을 휘둘러 또다시 뺨을 때리며 냉담하게 말했다.“그렇게 대단하게 나한테 큰소리쳤다는 건 잘못을 하면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도리도 잘 안다는 뜻 아니셨나?”“이렇게 간단한 이치도 몰라?”진 반장은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갈았다.생각 같아서는 하현을 죽이고 싶었지만 결국 그는 소리 없이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미안해! 잘못했어!”그는 하현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구봉이 전화를 건 정종화 총경이 두려운 것이 분명했다.감히 이런 상황에서 어찌 그가 하현을 상대로 싸울 수 있겠는가?상대방의 사과를 들은 후에야 하현은 앞으로 나와 그의 오른쪽 얼굴을 툭툭 건드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꺼져!”진 반장은 그의 무리들을 데리고 쏜살같이 꽁무니를 뺐다.그리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들은 하현이 진 반장을 내쫓을 만큼 강력한 힘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진 반장 일행이 꽁무니를 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진 반장의 얼굴까지 때렸다.“내가 당신을 얕잡아 본 것 같군. 당신이 이렇게 큰 뒷배를 뒀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진 반장이 황급히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여음채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 냉소를 흘렸다.“그렇지만 똑똑히 들어. 당신 뒤에 얼마나 큰 거물이 있든 간에!”“페낭 병원의 뒷배가 훨씬 강할 거야!”“날 건드려?! 흥! 두고 봐! 당신은 죽
선두에 선 남자를 보자 여음채는 안색이 환해졌다.그리고 나서 얼른 다정하게 남자의 팔짱을 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진 반장님, 마침 잘 오셨어요. 바로 저 자식이에요. 저 자식은 우리가 의료 윤리를 중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때린다고 호도하고 있어요.”“게다가 내 아랫배까지 걷어찼다구요!”“저놈을 반드시 감옥에 가둬 주세요. 그 안에서 제대로 반성할 수 있게요.”여음채는 하현을 가리키며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었다.부일민 일행도 모두 큰소리로 맞장구를 치며 하현이 억지를 부린다고 한마디씩 보탰다.“뭐? 감히 병원에서 원장님을 때려요?”“대낮에 그런 짓을 한단 말이에요?”“법도 뭣도 없답니까?”진 형사는 하현의 얼굴을 주시했고 곧바로 그가 남양인이 아니란 걸 눈치챘다.그러자 얼굴이 싸늘하게 바뀌며 비아냥거렸다.“이봐, 어서 저놈을 데려가! 모질게 심문해! 지독하게 조사해!”“감히 반항한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법으로 다스려!”하현은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진 형사를 쳐다보았다.“당신은 어쨌든 형사반 반장이면 경찰서를 대표해서 일을 해야죠. 무슨 일이 생겼으면 제대로 조사를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일을 어떻게 하든 당신 같은 사람이 날 가르칠 건 아니지!”“당신이 먼저 사람을 치고 법을 어겼어. 그러니 법 집행자로서 당신을 연행하는 건 당연한 거야!”“물론 당신도 저항하는 길을 택할 수 있어!”“하지만 저항한 결과는 내가 당신을 한 방에 죽이는 거야!”진 반장은 언성을 높였고 눈을 부릅뜨고 하현의 얼굴을 툭툭 건드리려고 손을 내밀었다.하현은 손을 들어 진 반장의 오른손을 막은 뒤 담담하게 하구봉을 쳐다보며 말했다.“전화 걸어.”하구봉은 어리둥절해하다가 곧바로 하현이 말하는 뜻을 알아차리고 얼른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전화기 건너편에 냉랭한 목소리가 전해오자 하구봉은 핸드폰을 진 반장에게 건네주었다.“당신의 직속 상사가 전화를 받아
하현은 여음채의 말을 듣고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페낭은 정말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곳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이렇게 공공연하게 정경유착이 만연할 줄이야!하현의 표정을 살피던 여음채는 순간 하현이 겁을 먹은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자 여음채는 다시 의기양양한 기운을 내뿜으며 이를 악물고 하현을 냉소적으로 바라보았다.“왜? 무서워?”“이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겠어?”“지금이라도 용서를 빌면 봐줄 수도 있어. 아직 늦지 않았다구.”“그렇지 않으면 당신을 기다리는 건 억세게 불행한 일들뿐일 거야!”말을 하는 동안 여음채는 부일민에게 손짓을 하며 다른 의료진과 경호원들을 모두 불러들여 하현 일행을 겹겹이 에워쌌다.기세등등하게 하현 일행을 노려보고 있는 그들 무리는 당장이라도 덤벼들 듯 사나운 모습이었다.이 광경을 본 여음채는 더욱 득의만만해져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이봐, 이제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려. 어서 사과하고 내 신발 밑창을 개처럼 깨끗이 핥아!”“그렇지 않으면 당장 오늘 밤부터 감옥에서 썩어야 할 거야!”강옥연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떠올랐다.하구봉은 콧방귀를 뀌며 시큰둥한 반응으로 일관했다.주위의 구경꾼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하현에게 다가올 불운을 생각하며 탄식했다.아무리 거세게 싸운다고 해도 경찰관들 앞에서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설마 하현 일행은 법이라도 어기려는 건가?하현은 냉담한 얼굴로 여음채의 얼굴에 시선을 던졌다가 이내 평온한 표정이 되었다.“내가 감옥에 갈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의료 윤리를 중시하지 않는 건 그렇다 쳐. 그런데 어떻게 이익만 챙기고 인명을 돌보지 않는 거야?”“멀쩡한 병원이 사기꾼 소굴이 되어 관광객을 속이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군.”“당신들 오늘 잘 만났어. 당신들은 이제 좋은 날 끝났어.”“이 병원, 망하게 해 줄게.”하현의 말을 들은 부일민과 예쁘장한 간호사들은 모두 코웃음을 쳤다.그녀들은 허
잠시 후 넋이 나간 듯 멍하던 여음채는 겨우 제정신을 차렸다.그녀는 배를 움켜쥐고 일어나 하현을 노려보며 말했다.“개자식! 감히 날 걷어차?”“내 엄마가 누군지 알아?”“당신은 누구야? 의료 윤리를 저버린 원장 아니야?”하현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때린 건 당신이야.”“뭐?”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하현의 목소리와 행동에 여음채는 화가 치밀어 올라 하현을 가리키며 호통쳤다.“모두 저놈을 죽여!”“일이 터지면 내가 다 수습할 거야!”그녀의 말에 수십 명의 건장한 경호원들이 사납게 웃으며 하현을 에워쌌다.강옥연은 이런 막무가내 인사를 본 적이 없었다.병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막무가내라니 정말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결국 강옥연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조심해!”그녀의 말을 들은 부일민은 냉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우리 원장님한테 미움을 산 사람은 살아남지 못해!”예쁘장한 간호사들은 앳된 얼굴로 눈을 흘기며 거들었다.“흥! 조심해 봤자 소용없어! 죽어야 해!”주위를 둘러보던 환자와 의료진들도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탄식하듯 깊은 한숨을 쉬었다.여음채의 인품이 별로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었지만 그녀의 영향력과 인맥은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다.이 페낭 병원에서 누가 감히 그녀한테 대들 수 있겠는가?아무 물정 모르는 외지에서 온 관광객이 하필 여음채를 건드리다니!이게 무슨 바보 같은 짓인가?이때 선두에 선 경호원은 음흉한 미소를 흘리며 하현에게 다가왔다.그는 고개를 옆으로 까딱까딱 꺾으며 광분한 사냥개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이놈아! 감히 여기서 소란을 피워? 여기가 어디라고? 눈을 어디다 둔 거야?”“퍽!”“앗!”경호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현은 듣기 귀찮다는 듯이 손바닥을 휘둘러 그를 내동댕이쳤다.맨 앞에 있던 경호원은 눈앞이 캄캄해졌고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져 기절하고 말았다.기절했어?!이 광경을 보고 놀
앞뒤 사리를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여음채의 모습에 강옥연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뭐가 모욕이에요?”“당신들은 환자를 구하고 비용을 청구해야 하는데 환자를 구하기는커녕 무슨 스타가 나타났다고 부리나케 쫓아다니지 않았냐구요?!”“응급실에 30분씩이나 방치해 놓고 이제 와서 보증금은 돌려주지 못하겠다니요?”“당신들 같은 병원이 무슨 의료 윤리 의식이 있겠어요?”“병원이 아니라 사기 소굴이에요!”강옥연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식약청에 고소할 거예요!”하현은 침착한 눈빛으로 여음채의 표정을 살피다가 하구봉에게 원가령의 안전을 보호하라는 손짓을 했다.아마도 강옥연의 강경함에 여음채는 일을 처리하기가 좀 곤란해졌다고 느꼈을 것이다.여음채는 눈빛이 서늘해지더니 달려오는 수십 명의 경비원들에게 하현 일행을 포위하라고 손짓하며 지시했다.이어 그녀는 경멸하는 표정으로 긴 다리를 뻗으며 다가와 말했다.“우리 페낭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고 잘못을 하면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해.”“무릎을 꿇고 잘못을 인정해. 그리고 내 신발 밑창을 깨끗이 핥아. 그뿐만 아니라 우리 부일민 의사에게 십억을 배상해. 그러면 이 일은 이대로 덮어 두겠어!”“더 이상 일을 크게 만들지 마.”“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당신들은 칠흑 같은 남양 감옥에 갇히게 될 거야!”“1년 반 동안 안에서 통곡만 하다가 세월을 보내게 될 거라고!”분명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했다.여음채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아주 능수능란했다.어떤 외국인이라도 감히 페낭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는 자는 모두 이런 꼴을 당했을 것이다.부일민 일행은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린 채 고소하다는 듯 히죽거렸다.큰소리 뻥뻥 치더니 하현이 아주 제대로 걸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페낭 거물도 아닌데 감히 페낭 병원에 와서 행패를 부려?하늘이 얼마나 높고 땅이 얼마나 두꺼운지 모르는 거지!강옥연은 한기를 가득 품은 목소리로 소리쳤다.“당신들은 아주 법도 뭣도
응급실에 있던 원가령은 아직도 술에 취한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원래 같았으면 벌써 위를 씻고 상처를 치료해야 했었지만 의료진은 그녀를 병상에 눕혀만 놓고 방치한 것이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뻗어 원가령의 위를 몇 번 누른 다음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하구봉에게 쓰레기통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원가령은 술을 모두 토한 뒤에야 비로소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강옥연에게 응급실의 소독약으로 간단하게 원가령의 상처 부위만 소독한 뒤 휠체어를 구해 원가령을 실었다.그리고 하현 일행은 떠날 준비를 했다.이때 문밖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남양 말로 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분명 경비원들이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구봉에게 눈빛을 보냈고 하구봉은 지체 없이 한 걸음 내디디며 한 발로 세게 문을 걷어찼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응급실 문이 벌컥 열렸다.예닐곱 명의 건장한 경비원이 뛰어들려다가 튕겨나가는 부일민과 부딪혀 난장판이 되었다.비슷한 시각 복도 끝 쪽에서는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어딘가 낯이 익어 보이는 여자가 맨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몸매가 유려했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으며 걸어왔다.앳된 간호사 몇 명은 이 여자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이 중년 여자는 페낭 병원에서 제일 영향력이 센 원장, 여음채였기 때문이다.여음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우리 병원에서 소란을 피워? 눈도 없어?”“원장님, 외지 사람들이 와서 억지를 부리고 있어요. 우리가 의술의 도리를 저버렸다고 하면서 사람을 때리고 응급실 문을 발로 차고 있어요.”“우리는 모두 들어가서 환자를 치료하려고 하는데 환자를 마음대로 데려가려고 합니다!”“이건 아주 우릴 무시하는 거죠!”넘어져 있던 부일민은 여음채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하현 일행의 행동을 가리키며 고자질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